커티스 야빈(멘시우스 몰드버그), '열린 마음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전편(1~14장) 리뷰

1장: 캔버스로 이루어진 지평선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4/open-letter-to-open-minded-progressives/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4/08/1.html


이 글은 커티스 야빈(필명 멘시우스 몰드버그)이 '열린 마음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의 첫 번째 장으로, 진보주의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임.


몰드버그는 진보주의를 기독교와 비교하며, 둘 다 세상을 이해하는 믿음 체계라고 주장함.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실제 세계에 대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정부, 역사, 경제에 대한 책이나 매체를 통해 습득한 지식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함. 이는 기독교 신자가 성령을 직접 본 적 없으면서도 믿음을 갖는 것과 유사하다는 얘기.


몰드버그는 미국 정치를 두 개의 "바이러스"가 경쟁하는 구도로 해석함. 보수주의를 "바이러스 X", 진보주의를 "바이러스 Y"로 명명하며, 둘 다 현실과 일관된 관계를 갖지 못하고 각자의 생존과 번식에만 관심 있는 정신적 바이러스라고 봄. 폭스뉴스가 보수주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면,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와 뉴욕타임스는 진보주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소리.


흥미롭게도 몰드버그는 미국의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모두 정부를 증오하지만 서로 다른 부분을 미워한다고 관찰했음. 진보주의자들은 국방부를 싫어하고 국무부를 사랑하며, 보수주의자들은 그 반대임. 이러한 분열이 정부 전체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함.


몰드버그는 또한 미국 사회를 두 부족으로 나눴음. 진보주의자들을 "브라만"(Brahmins, 고학력 엘리트층)이라 부르고, 보수주의자들을 "타우니스"(Townies, 교외 거주 중산층)라고 이름지었음. 브라만들은 지적 활동에 종사하고 실제로 미국을 통치하는 계층이며, 이들의 취향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고 설명함.


글의 후반부에서 몰드버그는 진보주의 세계관에 균열을 보여주는 세 가지 질문을 제시함.


첫째는 제3세계 문제로, 식민지 독립이 자유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내전, 빈곤, 부패를 초래했다는 모순. 특히 짐바브웨의 경우, 1965년 일방적 독립선언은 "불법적"이었지만 1980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독립은 "합법적"이었다는 기묘한 논리를 비판함.


둘째는 민족주의(내셔널리즘)에 대한 이중 잣대. 호치민이나 체코인의 민족주의는 선하지만, 독일인이나 미국 남부 사람들의 민족주의는 악하다고 여겨지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러한 불일치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음.


셋째는 나치에 대한 평가에서 나타나는 비대칭성. 나치의 대량학살은 강력히 비난받지만, 소련의 더 큰 규모의 학살은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다뤄진다는 점, 그리고 연합군도 드레스덴 폭격 등으로 민간인을 대량 살상했다는 사실을 들어 2차 대전을 인권 전쟁으로 보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


결론? 몰드버그는 진보주의 세계관이 표면적으로는 일관성 있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설명되지 않는 모순들이 있으며, 이는 마치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이 촬영장 세트의 가짜 지평선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함. 이 글의 독자들이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를 모두 벗어나 정부 자체에 반대할 가능성을 시사하며 1장이 마무리됨.


2장: 추가적인 역사적 특이점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4/open-letter-pt-2-more-historical/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4/09/2.html


이 글은 커티스 야빈(필명 몰드버그)이 진보주의 사상에 내재된 세 가지 역사적 모순들을 분석한 글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음.


몰드버그는 먼저 1장에서 다룬 세 가지 이상현상들을 다시 언급함. 독립에 대한 기묘한 정의, 내셔널리즘에 대한 진동하는 양가감정, 그리고 인권침해에 대한 비대칭적 민감성이 바로 그것. 이러한 현상들이 단순히 진보적인 것만이 아니라 현대적인 것이며,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까지도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함.


첫 번째 모순으로 제3세계의 "독립"을 다루고 있음. 몰드버그는 탈식민지 국가들이 진정한 독립을 얻었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함. 1960년 이후 제3세계가 2조 6천억 달러의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을 들어, "돈을 대는 자가 곡조를 정한다"는 격언을 인용하며 이들이 실제로는 새로운 형태의 종속 상태에 있다고 주장. 몰드버그는 이런 국가들을 "꼭두각시 국가"와 "머펫 국가"로 구분하며, 후자가 더 정교한 독립의 환상을 제공한다고 설명함. 머펫 국가(muppet state)는 몰드버그가 임시적으로 지어낸 단어인데, 머펫(인형극 캐릭터)이 아래에서 손으로 받치는 것뿐만 아니라 위에서 줄로도 조종된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단어임. 다시 말해, 머펫 국가는 '형식적으로는 독립했지만 막대한 원조 의존, 서구식 정치제도 채택, 서구 교육을 받은 엘리트 지배 등으로 실질적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종속 관계에 있는 국가'를 말하는 것.


몰드버그는 진정한 독립의 시험은 탈식민지 국가들이 서구화되지 않고 이전의 통치 구조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함. 그러나 실제로는 페르시아 만 지역의 몇몇 국가들과 보츠와나, 소말릴란드를 제외하고는 모든 곳에서 더욱 심화된 서구화가 일어났다고 분석.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전통적 지도자들이 서구 교육을 받은 새로운 엘리트들로 교체되었고, 이들은 "와-벤지"(벤츠족)라고 불린다며 비판함.


두 번째 모순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다뤘음. "국제사회"에 순응하는 민족주의 운동은 선하고, 이에 반하는 것은 악하다는 논리를 지적함. 이탈리아 통일을 예로 들어, 19세기 영국 주도의 "국제사회"가 어떻게 자유주의와 반동 세력 간의 투쟁에서 개입했는지 설명했음. 


몰드버그가 나폴리를 직접 방문한 경험을 통해 이탈리아 통일의 실상을 고발함. 현재의 나폴리는 범죄와 쓰레기로 가득한 도시이지만, 1860년 이전 양시칠리아 왕국 시절에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였다고 역사적 기록을 인용함. 부르봉 왕조는 4억 4천 3백만 금 리라의 금고를 보유했던 반면, 이를 정복한 피에몬테는 겨우 2천 7백만 리라만 가지고 있었음. 통일 후 나폴리의 부는 북쪽으로 이전되고 산업은 해체되었으며, 남부는 점령지처럼 통치되었다고 설명함.


세 번째 모순으로 히틀러와 2차 대전에 대한 해석을 다뤘음. 현재 히틀러는 홀로코스트 때문에 증오받고 연합군은 이를 막았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연합군도 스탈린 같은 독재자를 포함했고, 루즈벨트와 처칠은 유대인 구원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민간인 폭격도 서슴지 않았다고 지적함.


몰드버그는 파시즘을 "신군국주의"로 재정의하며, 이것이 반동적 성격을 가진다고 주장함. 독일이 1914년 전쟁을 시작한 이유를 "국제사회"의 포위에 대한 공포로 설명하면서, 그레이 경의 회고록을 인용하여 영국이 독일을 완전히 패배시키려 했던 의도를 드러냄.


결론적으로 몰드버그는 "국제사회"가 실제로는 약탈적 세력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도, 이 이론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인정함. 몰드버그가 아는 국제 관료들은 선량하고 지적이며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임. 그러나 동시에 이 이론이 세 가지 모순을 모두 깔끔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토로함. 결론적으로 2장은 진보주의적 역사 해석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도발적 분석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겠음.


3장: 세계의 자코바이트 역사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5/ol3-jacobite-history-of-world/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4/09/3.html?m=1


열린 마음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3장은 진보와 반동이라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시도이자 진보주의자들에게 그들의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유도하면서, 반동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 해석을 제시하는 글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음.


커티스 야빈(필명 멘시우스 몰드버그)은 먼저 진보와 반동의 정의를 명확히 내리며 시작함. 반동주의자는 질서, 안정성, 치안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반동주의자들에게 있어 '질서, 안정성, 치안'은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라고 봄. 반동주의자들은 정당성을 중시하며, 기존 질서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무질서나 정치적 혼란보다는 낫다고 봄. 찰스 1세의 말을 인용하며, 진정한 자유는 정부가 있을 때 가능하며, 개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본질적이지 않다고 주장.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진보를 믿는 사람들로,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거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함. 몰드버그는 이를 '휘그 역사관(Whig history)'이라고 부르며, 역사가 필연적으로 발전한다는 믿음을 비판함.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정의 운동들(정치적 올바름 운동들, PC주의)이 과거에 성공했기 때문에 미래에도 성공할 것이라는 순환논리를 지적함.


몰드버그는 역사상 진보 세력이 반동 세력을 지속적으로 누르고 승리해온 현상을 'W-force'(휘그의 힘)라고 이름지었음. 이 힘이 왜 작동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치적 진보를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유추라고 보고 있음.


특히 영국의 역사를 통해 이 현상을 설명하고 있음. 토머스 맥컬리(Thomas Babington Macaulay)의 영국사(The History of England from the Accession of James II) 서문을 인용하여, 1688년 이후 영국이 이룬 번영과 발전을 보여주지만, 만약 맥컬리가 현재의 영국을 본다면 "그리고 모든 것이 망가졌다"고 말할 것이라고 주장함. W-force는 지속적으로 정치의 중심을 좌측으로 이동시켜왔고, 보수주의는 단지 이러한 변화를 늦출 뿐 막지는 못했다고 분석함.


몰드버그는 이 W-force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면적인 저항이라고 제안함. 타협이나 점진적 양보는 오히려 더 큰 요구를 불러올 뿐이며, 이를 '역진자 모델(inverted pendulum model)'로 설명함. 싱가포르, 두바이, 중국 등의 예를 들며, 정치를 완전히 배제한 국가들이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함.


히틀러와 파시즘에 대해서도 내용이 나옴. 파시즘을 반동적 운동으로 분류하면서도, 이는 매우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타난 것으로, 자유주의 정부 하에서 구체제의 잔재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했다고 설명함. 현재 서구 사회에서는 우익 폭력에 대한 관용이 전혀 없기 때문에 고전적 파시즘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음.


마지막으로 진보주의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음. 솔 알린스키(Saul Alinsky)의 조직화 이론을 통해, 진보주의가 본질적으로 권력 추구를 위한 운동이라고 주장함. 진보주의자들이 표면적으로는 선한 목표를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장악하고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것에서 쾌감을 얻는다고 분석함. 이러한 파괴적 성격 때문에 진보주의를 엔트로피에 비유하며, 복잡성과 무질서를 증가시키는 힘으로 규정.


3장의 결론 부분에서 몰드버그는 진보주의와 반동주의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다고 결론지음. 반동주의가 질서와 안정을 추구한다면, 진보주의는 본질적으로 파괴와 무질서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 다만 진보주의가 때로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데, 이는 정말로 파괴되어야 할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함.


4장: 존슨 박사의 가설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5/ol4-dr-johnsons-hypothesis/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4/10/4.html



이 글은 커티스 야빈(필명 멘시우스 몰드버그)가 "첫 번째 휘그(Whig)는 악마였다"는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박사의 격언을 통해 진보주의의 본질에 대한 도발적인 가설을 제시하는 내용이라고 요약될 수 있음.


우선, 몰드버그는 자신의 개인적 배경과 진보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며 글을 시작함.


몰드버그의 조부모는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공산당의 실제 당원이었음.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몰드버그는 현대 진보주의가 과거 공산주의 운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 


현대 진보주의를 사이언톨로지와 비교하며, 겉보기에는 전혀 다르지만 심층 구조에서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고 주장함. 진보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교양 있고 합리적인 사람들이지만, 사이언톨로지처럼 권력을 장악하면 자발적으로 물러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고 봄.


그 다음으로 몰드버그는 문명 사회를 여론과 권위의 관계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음.


제3형 사회(열린 사회)는 칼 포퍼가 말한 이상적인 사회로, 사상들이 현실과의 일치도에 따라 경쟁함. 좋은 아이디어가 나쁜 아이디어를 이기며, 지식인들의 경쟁적 본성이 진실을 추구하게 만듬. 현실은 하나이므로, 똑똑하고 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진실 주변으로 모이게 됨.


제1형 사회(충성 사회)는 정부가 사상을 조정하는 사회임. 공론은 국가 안보의 문제가 되며, 국가는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을 구분하여 전자를 보상하고 후자를 처벌함. 이런 사회에서는 중앙 조정이 필수적이며, 모든 정보 기관들이 하나의 "시놉시스(synopsis)"를 통해 세상을 바라봄. 역사적으로는 신정일치 체제, 파시즘, 공산주의 등이 이에 해당함.


제2형 사회(합의 사회)는 몰드버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괴벨스 없는 글라이히샬퉁(Gleichschaltung)"이라고 표현함. 중앙 권위 없이도 자발적 조정이 일어나는 사회로, 언론과 대학이 국가를 통제하는 형태임. 제1형 사회와 달리 강제적 권력 왜곡 대신 "매력적 권력 왜곡"이 작동함.


여기서부터가 재밌는 부분.


몰드버그는 현대 서구 사회가 제3형 사회, 즉 열린 사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2형 사회(합의 사회)에 해당한다고 주장함. 하버드와 예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류 진보주의 성향의 언론이나 대학 등과 같은 비선출 권력기관들이 모두 비슷한 진보주의적 세계관의 지적 산물들을 생산하며, 마치 자전거 경주의 펠로톤처럼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고 보고 있음. 이들 기관들은 명확한 중앙 조정 없이도 하나의 시놉시스를 형성함.


몰드버그는 이러한 주류 기관들의 집합을 "대성당(Cathedral)"이라고 명명했음. 대성당은 주류 학계, 언론, 교육 기관을 포괄하며, 이들이 생산하고 전파하는 통합된 세계관을 "시놉시스(Synopsis)"라고 부르고 있음.


그렇다면 왜 하필 진보주의 성향의 비선출 권력기구의 집합들을 '대성당'이라고 부른 것일까? 몰드버그가 대성당이라는 명칭을 선택한 이유는 원문의 각주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음.


"이 용어는 실제 대성당들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물론 비종교적 반동주의자들조차도 실제 대성당들은 사랑한다. 주요한 수사학적 요점은 시놉시스를 전파하는 자들이 공공연히 세속주의와 유사 평등주의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신권정치적 사제 계급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진보주의적 세계관을 전파하는 이들이 표면적으로는 세속주의와 평등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신권정치적 사제 계급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임. 그리고 왜 대성당이라 부르는지는 중세 시절 유럽의 대성당의 특징과 비교해보면 더욱 잘 알수 있음. 중세 유럽의 대성당들은 종교적 교리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중심지였음. 거기다가 종교적 정통성의 원천이자 교리적 통일성과 권위 구조를 가진 곳이었음. 즉, 중세 유럽의 대성당의 매커니즘과 유사하게 현대 서구의 진보주의적 지적 생태계도 진보주의 세계관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며 현대 사회에서 지적·도덕적 정통성의 원천 역할을 도맡으며 진보주의에 대한 교리적 통일성과 집단 내부에서 권위 구조를 지니고 있음. 따라서 "대성당"은 현대 진보주의 기관들의 종교적 권위 구조와 교리 전파 기능을 꼬집는 신랄한 은유인 셈.


그리고 대성당의 지적 세계관을 시놉시스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음. 몰드버그는 제1형 사회(충성 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정보 기관들이 synoptic하다"고 표현함. 즉, 이들이 "하나의 눈, 하나의 교리 체계, 하나의 공식 스토리"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뜻임. 여기서 "synoptic"은 "같은 관점에서 보는" 또는 "통합된 시각으로 보는"이라는 의미. 그래서 몰드버그는 현대 주류 기관들이 생산하는 통합된 세계관을 "Synopsis"라고 명명한 것임. 이는 마치 제1형 사회의 공식 교리처럼, 모든 주류 기관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통합된 관점이라는 뜻임. 또한 "synopsis"라는 단어 자체가 "개요" 또는 "요약"이라는 뜻도 있는데, 이는 복잡한 현실을 하나의 일관된 내러티브로 정리해서 제시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음. 즉, 중앙의 조정자 없이도 마치 하나의 공식 교리서처럼 작동하는 통합된 세계관이라는 의미에서 "Synopsis"라고 부른 것임.


그리고 몰드버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시놉시스(진보주의적 세계관)는 근대사 최초의 '합의사회' 운동인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된 계보의 직계 후손이라고 함. 종교개혁에서 계몽주의로, 그리고 현재의 진보주의로 이어지는 연속선상에 있다는 소리. 1945년 이후 서구 체제는 종교개혁 이전이나 반계몽주의 세력들에 대해서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를 "휘그의 천년왕국"이라고 부름.


"첫 번째 휘그(Whig)는 악마였다"는 새뮤얼 존슨 박사의 가설을 계속 이어나가서 이번에는 자유주의(Liberalism)의 변천을 설명함. 19세기 자유주의자들(휘그당, 급진파)은 경제적 자유를 주장했음. 왜냐하면 당시 그들의 적은 토리당 귀족들이었고, 이들이 곡물법 같은 보호주의 정책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임. 그래서 19세기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자유무역과 경제적 자유가 주류 입장이었음. 하지만 20세기 초가 되자 상황이 바뀜. 구 귀족제는 이미 몰락했고 왕권과 교권이 결합된 전통 체제는 거의 사라졌음. 19세기 기준으로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급진파"가 된 상황이 되었음. 즉, 자유주의자들 입장으로서는 싸울 적이 없어진 상황임. 그러자 진보 운동은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 했고, 이제는 사회주의적 방향으로 전환하여 경제적 중앙집권화와 국가 주도의 복지(공적 자선)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얘기. 핵심은 진보주의가 일관된 원칙을 가진 게 아니라, 권력 획득에 유리한 방향으로 계속 변화한다는 몰드버그의 주장. 19세기엔 자유주의가 유리했으니 자유주의를, 20세기엔 사회주의가 유리하니 사회주의를 택했다는 소리.


또한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가 정치적 견인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실질적 권력을 장악한 대성당에 반대하기 때문이고, 둘째, 권력을 얻어도 정부 확대를 믿지 않아 추종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이며, 셋째, 반(反)대성당적 보수주의자들에게 어필하거나 대성당에 아부하려고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며 지적함.


4장의 결론부에는 모든 진보주의의 원칙들이 겉보기에는 고상하고 숭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력 장악이라는 목표와 일치한다고 결론지음. 진보주의는 사회의 상태보다는 자신의 권력에 관심이 있으며, 천국에서 섬기기보다는 지옥에서 다스리기를 원하고, 그 목적을 위해 어떤 천국이라도 지옥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함.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이 더욱 위험하다는 소리.


충성 사회를 뒤로한 채 합의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나아갈 방법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으로 4장이 마무리됨.


5장: 세계 평화로 가는 가장 짧은 길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5/ol5-shortest-way-to-world-peace/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5/5.html


이 글은 커티스 야빈(필명 멘시우스 몰드버그)이 세계 평화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만의 '반동적' 관점을 제시한 글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음.


몰드버그는 세계 평화를 위한 자신의 계획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함. "미국은 지구상의 모든 정부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하고, 고전적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이를 존중해야 한다." 이 제안이 진보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라고 주장함.


현재 모든 지식인들이 진보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것이 진보적 가치가 보편적이고 분석이 반박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진보주의가 일관되게 보수주의자들을 '패배'시켜왔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음. 그리고 만약 나치가 승리했다면 오늘날 나치의 관점을 반영한 버전의 위키피디아인 '나치피디아'가 존재할 것이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진리와는 별개로 권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함.


몰드버그는 영미 역사를 17세기 영국 내전, 18세기 미국 독립전쟁,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등과 같은 일련의 내전으로 해석함. 그리고 이 내전들 모두 휘그(진보)와 토리(보수) 간의 연속된 갈등이라고 봄. 


Daniel Defoe의 『The Shortest-Way with the Dissenters』를 인용하며, 300년 전 극우적 관점에서 내린 예측들이 실제로 현실이 되었다고 지적함. 영국 군주제가 공화정으로 변모하고, 정부가 외국인들에게 넘어간다는 예언이 오늘날 브뤼셀의 EU와 영국의 현실에서 실현되었다고 함.


미국 독립전쟁에 대해서는 Sydney George Fisher의 『True History of the American Revolution』을 통해 전통적 서사에 도전함. 미국 식민지들이 실제로는 전례 없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고, 영국의 '억압'은 과장된 것이었으며, 독립전쟁은 휘그적 폭동과 영국 내 휘그파의 지원이 결합된 결과라고 주장함.


그 다음으로는 휘그적 정부론의 모순을 지적함. 진보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혁명(미국 독립전쟁)은 '정당해서' 무력으로 진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반대로 남부 연합의 반란은 '부당해서' 무력으로 성공적으로 진압했다는 점을 들어 휘그적 정부론의 이중성을 꼬집음.


몰드버그는 성공적인 우익 반란이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함. 소비에트 블록 국가들에서 공산주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반란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며, 혁명은 강한 억압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가 약해졌을 때 일어난다고 저자는 주장함.


그리고 현대의 반란은 일종의 연극이라고 보고 있음. 무장세력이 실제 폭력을 행사하고, 정치 세력이 그 폭력의 의미를 해석하여 "폭력을 멈추려면 우리의 정치적 요구를 들어달라"고 설명하는 분산된 협력 구조라는 소리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테러리스트들이 공격을 하면, 정치인들이 "우리도 폭력을 원하지 않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 원인인 정치적 불만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임. 둘 사이에 직접적인 공모나 연결고리가 없어도, 서로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구조라는 것임. 몰드버그는 이런 방식으로 무장세력과 정치세력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면서도 객관적으로는 협력하게 된다고 분석함. 예를 들어 2006년 당시 알카에다의 2인자였던 아이만 알자와히리(Ayman al-Zawahiri)가 2006년 미국민주당 승리를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의 공로라고 주장한 것처럼.


이것은 꽤나 도발적인 주장인데, 몰드버그는 진보주의를 본질적으로 개신교 종파로 해석함. 1942년 연방교회협의회의 전후 계획을 인용하며, 이들이 제시한 프로그램(세계정부, 국가주권 제한, 국제군대 통제, 보편적 화폐제도, 이민 자유화, 자유무역, 식민지 자치권)이 현대 진보적 의제와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함. 


그리고 몰드버그는 진보주의를 "보편주의(Universalism)"라고 부르며, 이것이 17세기 영국의 기독교 이단종파(Dissenters; 17세기 영국 국교회의 교리에 동의하지 않고 분리된 개신교도들을 통칭하는 용어)에서 시작되어 현대에 이르는 가장 성공적인 종교적 정치 운동이라고 평가함. 특히 이 이단종파들 중 퀘이커교도들의 신념이 현대 진보주의와 거의 일치한다고 보고 있음.


그 다음으로는 5장의 제일 핵심적인 내용이 나옴.


몰드버그는 현대의 국제주의적 평화 전략 대신 고전적 국제법으로의 회귀를 제안함. 1908년 George B. Davis의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를 참고하여, 제1차 대전 이전의 국제법 체계(벨 에포크)를 모델로 제시함.


핵심 원칙은 현상 유지임. 모든 정부는 사실상 합법적이고 주권적이며, 국경은 군사력으로 정의되며, 각 국가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서로의 주권을 인정하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함.


이러한 몰드버그의 평화에 대한 원칙(즉, 벨 에포크적인 대외정책)을 중동에 적용하면, 이스라엘과 이웃국가들 간의 국경은 1967년 전쟁 종료 시점의 실질적 점령선으로 영구 고정시킬 수 있음. 그리고 이러한 고립주의적 원칙 하에서 미국은 완전히 중립을 유지하며 어느 쪽에도 원조를 제공하지 않음.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으면 평화가 유지되고, 계속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이스라엘이 벨 에포크적인 고전적 국제법 하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갖게 됨. 몰드버그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실제로는 미국과 유럽의 원조에 의존하는 일종의 "증오 산업"이라고 진단함.


몰드버그는 현재의 세계가 실질적으로 미국이라는 하나의 주요 주권국가와 러시아, 중국 같은 미국보다는 영향력이 작은 주권국가들, 그리고 많은 미국의 보호령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봄. 몰드버그는 진정한 주권의 회복과 고전적 국제법 원칙의 부활이 세계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하며, 현재의 퀘이커적 국제주의가 오히려 평화의 장애물이라고 결론지음.


결국 5장의 결론은 근본적으로 현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며, 19세기식 고립주의적 현실주의적 국제관계로의 회귀를 통한 평화 달성 방안을 제시한 것임.


6장: 잃어버린 정부 이론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5/ol6-lost-theory-of-government/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5/6.html


이 글(열린 마음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6장: 잃어버린 정부 이론)은 커티스 야빈(필명 멘시우스 몰드버그)이 기존의 정부 이론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새로운 정부 모델을 제시하는 내용이라고 요약될 수 있음. 몰드버그는 현대인들이 배운 정부에 대한 모든 지식이 넌센스라고 주장하며 처음부터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제안함. 몰드버그는 과거의 왕권신수설이나 마르크스주의 같은 이론들이 진리가 아닌 권력의 왜곡에 의해 번성했듯이, 현대 진보주의 정부 이론도 마찬가지라고 봄. 현대 사회에서는 물리적 강압 대신 유혹을 통한 권력 부패가 일어나고 있으며, 진보주의자들이 이 고리에 포획되어 있다고 진단함.


몰드버그는 정부를 주권적 기업체로 정의하고, 좋은 정부의 조건으로 안전성(security), 효율성(effectiveness), 책임성(responsibility) 세 가지를 제시함. 효율성 측면에서는 개인의 통일된 지휘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며, 위원회나 권력 분립 시스템은 정치적 갈등을 야기하여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봄. 그 예시로 캘리포니아를 스티브 잡스가 CEO처럼 운영한다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제안함.


책임성 문제에서는 주식회사 모델을 제안함. 정부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운영하되, 주주들이 CEO의 성과를 평가하고 교체할 수 있는 시스템임. 이윤 동기가 정부로 하여금 주민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주장함. 인종청소(예시: 유대인 학살)와 같은 비합리적 폭력은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며, 자선 사업은 정부에서 분리하여 별도 기관에 맡기되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배당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제안함.


이러한 대안 모델을 몰드버그는 신관방주의(neocameralism, 新官房主義)라고 명명함. 이는 16-18세기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관방주의(cameralism, 官房主義)을 21세기에 맞게 재해석한 것으로, 고전적 관방주의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같은 군주들이 국가를 하나의 경제적 단위로 효율적으로 관리했던 방식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것임.


야빈은 프로그래머 출신답게 정부 구조를 전형적인 웹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에 사용되는 3계층 구조(3 Tier- Architecture)로 설계함. 


"책임감 있고 효과적인 정부는 세 가지 기본 부분을 가진다. 첫째는 프론트엔드(front-end)로, 스티브 잡스에게 보고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둘째는 중간계층(원문에서는 middle)으로, 스티브 잡스 자신이다. 셋째는 백엔드(back-end)로, 스티브 잡스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원문의 비유는 웹 애플리케이션의 전형적인 3계층 아키텍처와 정확히 대응된다기보다는, 비유적으로 대응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함. 프론트엔드(front-end)는 사용자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인터페이스를 의미하는 계층으로, 여기서는 ‘스티브 잡스에게 보고하는 직원들’을 비유한 것임. 미들 티어(middle tier)는 실제로는 애플리케이션의 비즈니스 로직을 처리하는 계층이지만, 원문에서는 이를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로 의인화하여, 시스템 내부의 핵심 판단과 방향 제시를 상징하게 했음. 즉, 이 스티브는 곧 정부를 운영하는 CEO 군주라고 보면 될 듯. 백엔드(back-end)는 데이터 계층 또는 제어 계층에 해당하며, 원문에서는 이를 스티브를 감시·평가하고 필요시 교체할 권한이 있는 이사회와 주주 집단에 대응시켰음. 따라서 이 은유는 ‘middle tier = 단순히 로직 처리 계층’이 아니라, 중추적 의사결정 기능의 중앙 관리자(CEO 역할)를 강조하고 있으며, ‘backend = 데이터 저장소’라기보다는 감독·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권위 집단을 지칭한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음. 


몰드버그는 "컨트롤러(controllers)"라는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이들의 역할을 매우 구체적으로 정의함.


"백엔드(back-end)를 컨트롤러(controllers)라고 부르자. 컨트롤러는 한 가지 일만 한다: 스티브 잡스가 책임감 있게 관리하고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스티브 잡스를 해고하고 새로운 스티브 잡스를 고용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컨트롤러’는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개발 방법론에서의 MVC(Model–View–Controller) 패턴의 컨트롤러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님. MVC에서 Controller는 사용자 입력을 받아 모델과 뷰를 연결하는 중간 계층에 해당하지만, 몰드버그의 비유에서 컨트롤러는 백엔드의 주주 집단을 가리키며, 이들의 유일한 역할은 CEO(스티브 잡스)의 성과를 평가하고 필요 시 교체하는 것임. 즉, 명칭만 차용했을 뿐, 실제 기능은 감독·승인·교체 권한을 가진 통제 장치에 가까움. 차라리 몰드버그가 말한 이 '컨트롤러'는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의 디자인 패턴 중 하나인 옵저버(Observer) 패턴에 더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음. 옵저버 패턴은 객체의 상태 변화를 관찰하고, 조건에 따라 반응하도록 처리하는 디자인 패턴인데, 주주(controllers)가 CEO의 성과(상태)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기준을 벗어나면 행동(교체)을 취한다는 점에서 유사함. 또한 디자인 패턴 중 Strategy 패턴과도 유사한데, 객체의 전략(Strategy)을 교체해 다른 방식으로 동작하게 만드는 것처럼, 주주가 CEO를 해고하고 새 CEO를 선택하는 과정은 핵심 로직 객체의 교체에 가까움. 


그리고 몰드버그는 시스템 설계에서 중요한 일관성(coherence) 개념을 도입함.


"단일한 공유된 책임 개념을 가진 컨트롤러 모델을 일관성 있다고 부르자. '책임'이라는 불가능할 정도로 모호한 단어로, 어떻게 공통된 정의를 공유하는 많은 수의 지적인 개인들을 모을 수 있을까?"


몰드버그가 말하는 “일관성(coherence)” 개념은,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의 단일 책임 원칙(Single Responsibility Principle, SRP)과는 유사하면서도 약간 결이 다름. 여기서의 핵심은 분산된 집단, 즉 여러 개의 컨트롤러들(주주 집단)이 "책임(Responsibility)"에 대해 동일한 정의를 공유해야만 시스템이 정치적 분열이나 갈등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임. 이 조건이 깨지면, 각 컨트롤러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CEO(스티브 잡스)를 평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정치", 다시말해 집단 간 권력 투쟁과 이해관계의 충돌이 다시 나타나며, 이는 시스템 오류로 이어짐. 따라서 몰드버그가 말하는 일관성은 분산 시스템에서의 공통 합의(consensus)와 정합성(coherence)을 유지하는 구조적 설계 원칙에 가깝다고 보면 될 듯.


가장 기술적인 부분은 CDCC(Cryptographic Decision and Command Chain, 암호 기반 의사결정 및 명령 체계)임.


"완전한 CDCC 정부에서는 주권적 결정과 명령 체계가 군사급 암호화로 종단간 보안이 유지된다. 핵무기뿐만 아니라 소화기(小火器)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부 무기는 코드 인증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정보보안의 핵심 개념들을 정부 시스템에 적용한 것임. 종단간 암호화는 명령 체계 전체를 암호화로 보호하고, 접근 제어는 인증된 사용자만 무기 시스템에 접근 가능하게 하며, 암호화 키는 대통령의 핵무기 통제 코드를 모든 무기로 확장하는 것임.


몰드버그는 Apple이라는 기업을 예시로 들면서 IT 회사의 의사결정 구조를 정부 모델로 제시함.


"Apple 외부의 누구도 힘을 사용해서 Apple의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방법은 전혀 없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응용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의 개념과 유사함. Apple의 내부 시스템은 외부에서 직접 조작할 수 없고, 오직 정해진 인터페이스(제품 구매, 주식 투자 등)를 통해서만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얘기임.


"암호화는 back-end에도 적용된다: 결정 측면에 말이다. Controllers가 Steve의 키 갱신을 거부하고 Marc을 선택하기로 투표하면, Steve는 더 이상 군대에 대한 지휘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심지어 사무실 문에 대한 접근 권한도 없을 것이다."


몰드버그의 이 비유는 권한 관리 시스템과 암호화 기반 키 검증 체계에 더 가까움. 주주(Controllers)가 Steve의 권한을 철회하면, 관련 암호화 키가 무효화되어 Steve는 모든 시스템(군대, 시설 등)에 접근할 수 없게 됨. 이는 현대 IT 시스템에서 권한 철회 및 접근 제어를 암호화 기반으로 보장하는 구조와 유사하며, 단순 세션 만료나 자동 로그아웃보다 더 강력한 보안 모델에 해당됨.


몰드버그의 이런 기술적 은유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정부를 하나의 복잡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으로 재설계하려는 컴퓨터공학적 접근법을 보여줌. 정치학의 추상적 개념들을 구체적이고 구현 가능한 기술적 명세로 번역하려고 시도했던 것이 무척 흥미로웠음.


이러한 통치 시스템을 통해 몰드버그는 권력을 둘러싼 모든 형태의 경쟁, 타협, 설득, 갈등인 '정치(혼란스러운 민주정)' 자체를 제거할 수 있다고 봄. 권력을 추구할 실질적 기회가 없어지면 정치적 음모나 갈등도 사라질 것이라는 논리임. 결국 몰드버그가 주장한 신관방주의 모델은 전근대 전제군주제의 효율성, 현대 기업 경영의 합리성, 그리고 21세기 암호화 기술의 보안성을 결합하여 정부를 하나의 복잡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으로 재설계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겠음. 그리고 지난 4세기의 혁명과 내전이 없었다면 세상이 더 행복하고 부유하며 자유로웠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번 6장이 마무리됨.


7장: 정부의 추악한 진실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5/ol7-ugly-truth-about-government/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5/mencius-moldbug-7.html


커티스 야빈(필명 멘시우스 몰드버그)의 '열린 마음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제7장: 정부의 추악한 진실'은 현대 서구 정부 시스템의 실체를 분석한 글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음.


몰드버그는 마키아벨리의 통찰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함. 정부 개혁은 겉으로는 기존 형태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은 실체보다는 겉모습에 만족한다는 것임. 로마 제국이 공화정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아우구스투스가 모든 권력을 장악했던 것처럼, 현대 정부도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유지하면서 실제 권력은 다른 곳(대성당)에 있다고 주장함.


권력은 본질적으로 전면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뒤로 숨는 속성이 있다고 분석함. 현대 영국에서 형식적으로는 여왕이 통치자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권력이 없고, 의회가 공식적 권력을 가진다고 하듯이 진짜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것임.


여기서부터 재밌는 부분인데 몰드버그는 진보주의자들이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혐오한다고 주장함. 이들이 '정치적'이라는 말을 혐오하면서도 '비정치적', '초당파적'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보고 있음. 진보주의자들은 정부가 물리학이나 수학처럼 객관적인 학문 분야가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따라서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라는 레닌의 질문 자체를 부적절하다고 여긴다고 분석함.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공공정책은 과학적 영역으로 간주되기 시작했음. 사회학, 심리학 같은 새로운 학문들이 등장했고, 법학이나 경제학 같은 기존 학문들도 19세기와는 완전히 다른 원리로 작동하게 되었음. 이런 변화를 통해 정치가 아닌 '과학적 공공정책'이 정부를 운영해야 한다는 관념이 확립되었다는 것이 몰드버그의 설명.


미국 역사를 통해 이런 변화를 추적하면서, 1933년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결정적 전환점으로 보고있음. 이때부터 선출된 정치인들보다는 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브레인 트러스트'가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함.


몰드버그는 이런 비선출 권력기구를 (이미 4장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대성당(Cathedral)'이라고 명명함. 하버드, 예일 같은 명문대학과 주류 언론, 시민단체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한다는 소리임. 조지프 매카시나 이넉 파월 같이 이 시스템에 정면으로 도전한 정치인들은 모두 파멸했고, 레이건이나 대처 같이 부분적으로 타협한 정치인들도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분석함.


그리고 몰드버그는 현대 정치는 내부 정당(Inner Party)과 외부 정당(Outer Party)의 이원 구조로 작동한다고 보고 있음. 이 내부 정당과 외부 정당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차용한 개념임. 내부 정당은 실질적으로 '대성당(Cathedral)' 시스템과 완전히 연결된 정치 세력을 의미함. 이들은 주로 하버드, 예일 등 명문대학의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하고, '주류 언론, 관료, 학계'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실질적으로는 선출된 정치인이지만 대성당에 모든 정책 결정을 위임한다는 특징을 보임. 미국에서는 주로 민주당, 영국에서는 노동당 등이 이 내부 정당에 해당됨. 외부 정당은 겉으로는 내부 정당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에 진짜 위협이 되지 않는 정치 세력임. 외부 정당은 내부 정당에 반대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대성당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으며, 가끔 선거에서 이기기도 하지만 핵심 정책들은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내부 정당의 일부 정책에만 반대함으로써 나머지 정책들을 '초당파적 합의'로 정당화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특징을 지님. 외부 정당의 예시로는 미국에서는 주로 공화당, 영국에서는 보수당 등이 해당됨. 


마지막으로는 대성당 시스템의 또 다른 특징으로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여론에 발맞춘다'라는 특성을 지적함. 다시 말해 대성당이 마치 순수하게 학문적이고 객관적인 판단만 내리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대중 여론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자신들의 이념을 밀어붙인다는 뜻임.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동성결혼 허용 판결을 예로 들면서, 이런 판결들이 법 조문의 해석이 아니라 시대적 여론에 맞춘 윤리적 판단에 기반한다고 분석함. 이는 '살아있는 헌법'이라는 개념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대성당이 여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관철시키는 방식이라고 보고 있음.


전체적으로 이 글은 현대 서구 민주주의가 표면적으로는 민주적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지식인 엘리트들이 '과학적 공공정책'이라는 명목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시스템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보면 됨. 


8장: 리셋은 혁명이 아니다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6/ol8-reset-is-not-revolution/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7/8.html


"열린 마음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8장: 리셋은 혁명이 아니다"에 대해 리뷰를 시작해보겠음.


멘시우스 몰드버그(커티스 야빈)는 먼저 현대 권력 구조를 분석하며, 실질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함. 몰드버그는 (4장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이 권력 구조를 "대성당(Cathedral)"이라고 명명함. 이 대성당은 더 넓은 권력 구조인 "폴리곤(Polygon)" 또는 "아파라트(Apparat)"의 두뇌 역할을 하며, 이는 관료와 NGO들을 포함함.


몰드버그는 20세기를 과학적 정부라는 가짜 과학의 시대로 규정하며, 정부가 과학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함. 통제된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은 사이비 과학에 불과하다는 것임. 동시에 현대 체제는 국민 주권이라는 모순된 원칙을 유지하는데, 국민의 의견이 항상 옳다고 하면서도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국민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유도된 국민 주권" 체제를 만들었다고 분석하고 있음.


몰드버그는 1960년대의 사회 변화를 쿠데타로 해석함. 신좌파가 구좌파를 권력의 자리에서 밀어낸 것이라고 보며, 이는 전통적인 "침묵하는 다수"의 패배를 의미했다고 주장함.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억압받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승리자라는 것이 몰드버그의 핵심 논점.


7장에서 이미 했던 바이나, 현재의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도 신랄하게 하고 있음. 공화당을 "외부당(Outer Party)"이라고 부르며, 실질적인 권력 없이 민주주의의 환상을 유지시키는 역할만 한다고 봄.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공화당이 대통령직과 양원을 모두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공 외에는 민주당과 다른 정책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점을 예로 들고 있음. 몰드버그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1933년 FDR 시대에 이미 죽었다고 선언함.


그러면서도 변화를 위한 전통적인 전략들에 대해서는 회의적임. 폭력적 저항, 그람시적 점진주의(Gramscian incrementalism진보주의자들이 지배하는 기관에 잠입해 변화를 시도하는 것), 페이비안적 점진주의(Fabian incrementalism, 명목상의 기성 보수 정당이나 리버테리언 성향 소수 정당을 지지함으로써 민주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려는 것) 모두 반진보주의 운동에게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음. 그람시적 전략은 본질적으로 기존 체제를 해체하려는 세력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며, 이미 진보주의자들이 지배하는 기관에 들어가서 변화를 시도하면 결국 그들에게 동화되거나 배척당할 뿐이라서 불리하다고 보고 있음. 그리고 페이비안적 점진주의가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는 이유는 좀 많음. 첫째로, 현대 민주정에서는 정책 수립 권한은 정치인보다는 대성당에 있기 때문에 민주적으로 당선되도 실질 권력이 부재하다고 보고 있음. 둘째로는 앞서 조지 W 부시 정권의 예시처럼 기성 보수 정당이 집권해도 좌파 정당과 별 다를 바 없는 정책을 펼치는 경우가 잦다고 보기 때문. 셋째로,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단합이 안되기 때문. 넷째로는 원내진입에 성공한 기성 보수 정당 정치인이 더 큰 성공을 위해 좌파 정당과 타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다섯 째, 대성당 자체가 보수 표방 정치인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정치인들만 허락하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원내에 진입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인재 풀이 좁아지고 인물 퀄리티도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 마지막 여섯째로는 허울뿐인 기성 보수 정당의 존재 자체가 실질적인 좌파 일당제를 은폐하는 역할에 도움을 주기 때문. 소련이나 중국의 위성정당들처럼, 진짜 선택권이 없는데도 마치 민주적 경쟁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소리. 한편으로 파시즘은 20세기 군주제 국가에서만 가능했던 현상이며, 현재와 같은 진보주의 지배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함.


대신 몰드버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리셋(Reset)"임. 이는 혁명과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컴퓨터를 재부팅하거나 운영체제를 새로 설치하는 것과 같은 과정임. 유머스럽게도 현대 영국의 상황을 예로 들어 스튜어트 왕조의 복원을 제안함. 현재 리히텐슈타인 공가와 연결된 스튜어트 왕조의 정통 계승자인 리히텐슈타인 후자 요제프 벤첼을 조셉 1세(King Joseph I)로서 영국 왕으로 옹립하고 리히텐슈타인 후세자 알로이스를 섭정으로 세우자는 구체적이면서도 매우 웃긴 제안까지 내놓음.


리셋의 원칙으로는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음. 첫째, 기존 정부의 완전한 숙청이 필요하지만 이는 보복적이 아닌 제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함. 둘째, 리셋은 혁명이 아니라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책임감 있는 정부의 복고(復古)이어야 함. 셋째, 리셋은 점진적이 아닌 단번에 이루어져야 함. 


마지막으로 몰드버그는 인터넷을 통해 직접 유권자를 등록하고 확실한 다수를 확보한 후 정부 이양을 요구하는 방식을 제안. 현재 체제는 정치에는 면역이 있지만 여론에는 매우 민감하므로, 명확한 다수의 지지만 있다면 평화적 이양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있음. 몰드버그는 현재 공무원들이 대부분 자신들의 일에 환멸을 느끼고 있어서 적절한 연금과 함께 퇴직할 기회를 준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측하며 이번 장이 마무리됨.


9장: 대성당을 제거하는 방법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6/ol9-how-to-uninstall-cathedral/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7/9-cathedral.html


커티스 야빈(필명 멘시우스 몰드버그)의 '열린 마음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9장: 대성당을 제거하는 방법'을 리뷰하겠음. 이 글은 "대성당(Cathedral)"이라고 부르는 현대의 비선출 권력기구를 어떻게 해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론적 탐구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


몰드버그는 1924년 역사학자 칼튼 헤이즈(Carlton Hayes)의 저작을 인용하며, 당시 기록된 "진보주의자"와 "근본주의자" 간의 기독교 내 갈등이 오늘날의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텃밭)" 대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텃밭)" 갈등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함. 몰드버그는 현대 진보주의가 실제로는 기독교의 세속화된 형태, 특히 퀘이커교의 "내면의 빛(Inward light)" 교리에서 파생된 "무신론적 종교"라고 분석함.

몰드버그는 현재의 진보주의가 모든 인간의 신경학적 균일성(Human Neurological Uniformity, HNU)을 핵심 교리로 삼고 있다고 함. 이 신경학적 균일성이 무슨 소리냐면, 모든 인간 집단(인종, 민족, 지역별 하위집단)의 뇌 구조와 인지 능력이 통계적으로 동일하다는 소리임. 그리고 이러한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이 과학적 증거와 모순된다고 몰드버그는 주장함. 특히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헨리 루이스 게이츠(Henry Louis Gates) 간의 인터뷰를 예시로 들며, 대성당이 진실보다는 교조적 믿음을 우선시한다고 비판함.


이에 이어 이번 장의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나옴. 몰드버그는 대성당 해체를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함. 첫째로 소프트 리셋. 소프트 리셋은 교육과 국가의 분리를 통해 공립학교를 민영화하고, 대학과 언론이 정부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는 것임. 그러나 몰드버그는 이 방법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함. 왜냐하면 민주주의 자체가 본질적으로 신권정치와 유사하며, 여론을 지배하는 자가 정부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데 바로 이러한 여론을 장악한 것이 진보주의 성향의 대성당이며, 여론을 장악한 정도가 매우 견고하기 때문임. 


대안으로 제시되는 하드 리셋은 훨씬 더 극단적임. '모든 정부 직원의 무조건적 교체(RAGE, replacement of all government employees)'를 시행하고, 여론 형성에 관여하는 모든 기관들(언론, 대학, 재단, 비정부기구 등) 을 국유화한 후 해체하는 것임. 이는 기존 권력 구조를 완전히 파괴하고 이들 기관(대성당)이 보유한 권위와 평판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함.


몰드버그는 헨리 8세의 수도원 해산이나 예수회 탄압과 같은 역사적 선례를 들며, 이러한 극단적 조치들이 과거에는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함.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런 조치들이 현대 미국 기준으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며,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정부가 완전히 악성이고 자기 교정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하지 않는 한 실현될 수 없다고 인정함.


결국 이 글은 현대 미국 사회의 권력 구조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자, 기존 체제를 완전히 뒤바꾸기 위한 이론적 청사진을 제시한 것으로, 몰드버그 스스로도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입장을 보이며 결론을 내고 있음.


10장: 간단한 주권국가 파산 절차에 관하여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6/olx-simple-sovereign-bankruptcy/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8/10.html


커티스 야빈(필명 멘시우스 몰드버그)의 '열린 마음을 지닌 진보주의자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10장: 간단한 주권국가 파산 절차에 관하여'를 리뷰하겠음.


몰드버그는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선거 캠프의 영상을 분석하면서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함. 다양성을 중시한다고 하는 오바마 선거 캠프가 실제로는 압도적으로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모두 고학력의 "브라만" 계층이라고 지적함. 이는 경쟁적이고 인종 중립적인 선발 과정의 결과라고 분석하면서, 대학의 다양성 정책과 모순된다고 비판함.


그리고 소비에트 라이프 잡지(소련에서 발행한 잡지)와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비교하며, 두 매체 모두 비슷한 선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함. 특히 에디스 마크슨이라는 인물이 1986년 소비에트 라이프에서는 소련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미국인으로, 2008년 뉴욕 타임스에서는 평범한 은퇴자로 묘사되는 것을 예로 들어 언론의 일관된 편향성을 지적함.


또한 로디지아 정보부와 국제 언론의 로버트 무가베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언급하면서, (로버트 무가베가 옛 로디지아 땅, 즉 짐바브웨에서 폭정을 펼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결국 로다지아 정보부가 옳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언론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함. 또한 스와스모어 대학의 티모시 버크 교수가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대한 폭력적 저항을 정당화한 것을 비판하면서, 그 결과로 남아공이 현재 겪고 있는 높은 범죄율과 사회적 혼란을 지적함.


글의 후반부에서는 "복고(restoration)"라는 개념을 "주권 파산"의 틀로 설명하는 데 집중함. 정부를 하나의 기업으로 보고, 도덕적·지적·재정적으로 파산한 현 체제를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함. 이 과정에는 임시적으로 절대적 권력을 가진 "관재인(Receiver)"이 필요하다고 주장함.


화폐 개혁 방안으로는 현재의 법정화폐를 고정된 수량의 주식으로 전환하고, 궁극적으로는 금본위제로 복귀할 것을 제안함. 정부 부채와 공약들을 모두 주식 희석(stock dilution, 기업이 새로운 주식을 발행하여 전체 주식 수가 늘어날 때,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과 주식 가치가 감소하는 현상)을 통해 해결하자고 주장함. 이 주식 희석에 대해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정부의 각종 부채와 공약들(연금, 의료보험, 복지 등)을 모두 새로운 화폐 발행을 통해 일시에 정산하자는 소리. 이는 기존 화폐 보유자들의 가치를 희석시키지만, 대신 정부의 모든 의무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논리임. 마치 파산한 회사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새로운 주식을 대량 발행하여 채권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처럼. 또한 비생산적인 공무원들에게는 연금을 지급하여 퇴직시키는 방안을 제시함.


사회 질서 회복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한 입장을 보임. 갱스터들을 "민병대"로 규정하고 이들과의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하며, 비생산적인 모든 사람들에게 전자발찌를 착용하게 하고, 필요시 "안전 재배치 센터(원문에서는 'secure relocation centers'. 즉, 사실상 감옥)"에 수용할 것을 제안함. 또한 현대 기술을 이용한 가상현실 독방 시설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박한 주장을 함.


전체적으로 이 글은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와 진보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함께, 권위주의적이고 기술관료적인 대안적 통치 체제에 대한 몰드버그의 비전을 제시하는 글이라 볼 수 있겠음. 19세기 말의 "벨 에포크" 시대로의 복귀를 이상향으로 설정하면서, 현대 사회의 각종 문제들을 기술적·관료적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10장의 결론.


11장: 좌파와 우파에 대한 진실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6/olxi-truth-about-left-and-right/


한국어 번역본 글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8/11.html


한 줄 요약하자면, 몰드버그(커티스 야빈)가 ‘좌파’와 ‘우파’를 단순 진영 논리가 아니라, 더 깊은 원칙의 차이로 설명하는 글이라고 하면 될 듯.


일단 글은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시작됨. 가상의 행성 ‘어플랫’이 있는데 이 곳에는 좌·우 대신 M과 Q라는 두 정치 원칙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함. M과 Q 둘은 서로 모순되는 세계관이며,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릴 가능성이 높음. 그리고 Q가 M보다 항상 더 ‘유행’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식인 계층에서 특히 그러함. 하지만 ‘인기’가 진실과 일치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음.


그 다음엔 결국 M과 Q가 각각 뭘 의미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옴. M은 노모스(nomos), Q는 안티노미언(antinomian) 에 각각 대응됨. '노모스'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사회적 및 정치적 행동의 습관 또는 관습을 말함. 명시적 법률과 자연법이라던지 전통 이런 것들이 '노모스'라고 보면 됨. 즉 '노모스'를 지키는 원칙은 프로노미어니즘(pronomianism)인데 이는 곧 약속과 재산권, 소유권, 보호 위계 등을 존중하고, 강하고 작지만 효율적인 주권(권한 없는 주체)이 사회 안정의 핵심이라고 인정하는 사상인 셈. 그리고 이 프로노미어니즘을 따르는 사람은 프로노미언(pronomian). 이에 반해 안티노미언은 '노모스'를 파괴하거나 방해하려는 경향을 보임. 즉 안티노미언의 성향을 띤 사상은 antinomianism이라 불리우게 됨. 그리고 이 사상은 프로노미어니즘과는 달리 법과 질서를 해체·재분배하려 하며, 종종 권력 쟁취와 파괴적 변화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임. 그리고 이 안티노미어니즘의 예시로는 리버테리어니즘, 급진주의, 무정부주의, 각종 혁명사상 등이 포함됨.


그리고 이 안티노미어니즘의 매력과 위험성에 대한 설명이 쭉 이어짐. 안티노미어니즘은 권력·파괴 본능, ‘변화’ 명분, 이상주의가 결합되어 젊고 야심 있는 계층에 인기가 있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재산·권력을 지속적으로 재분배해야 지지층을 유지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비효율과 관료주의를 심화시킴. 이에 대해 역사적으로도 강한 국가보다 약한 국가에서 비효율적 관료제가 번성한다고 주장함.


그 다음엔 프로노미언의 입장에 대해서 얘기가 나옴. 현재의 부패한 질서 속에서도 노모스의 뼈대를 복원해야 하고, 불필요한 법·관료를 제거하고 약속·재산권·보호체계를 강화시키고, 강하고 단순하며, 경제적 인센티브로 약속을 지키는 국가를 이상적으로 보는 것이 진정한 프로노미언이다~ 이런 소리.


결국 아까의 사고실험에서 M(프로노미언)는 우파이고, Q(안티노미언)는 좌파를 뜻함. 그리고 우파의 순수 원칙인 ‘노모스’는 희석되기 쉽지만, 이를 단일·명확한 정치 원칙으로 제시하면 강력한 조직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함. 


해당 챕터의 결론은 첫째로 좌파-우파의 본질을 ‘질서 존중(프로노미언)’ vs ‘질서 파괴(안티노미언)’라는 구조로 재정의한 것. 그리고 둘째로 우파가 승리하려면 불필요한 장식 없이 이 노모스라는 원칙을 전면에 내세워 조직해야 한다는 것.


12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7/olxii-what-is-to-be-done/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8/12.html


열린 마음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12장 요약 및 리뷰를 해보겠음.


커티스 야빈(a.k.a 멘시우스 몰드버그)의 이 글 내용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듯.


현대인들은 과학이랑 민주주의 덕에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고 믿는데, 이건 기술 발전이 정부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을 가려줌으로써 발생한 착시임. 기술이 받쳐주니까 나라가 덜 망가진 것처럼 보이는 거지, 실제론 계속 썩고 있음. 이 흐름 계속 가면 기술도 한계 오고, 결국 장기 쇠퇴나 붕괴 가능성 높음.


민주주의? 대중 여론? 이거 행정 능력이랑 아무 상관 없다. 정치의 과정은 원래 왜곡되고 타락함. 역사적으로 보통선거랑 대중정치가 권력 집중, 부패, 심지어 독재로 가는 루트였던 사례 많다. 파시즘, 대중선동, 무력혁명? 지금 권력구조에선 성공 확률도 낮고, 해봤자 제2차세계대전 패전한 히틀러처럼 망함.


그래서 멘시우스 몰드버그가 제안하는 게 ‘신관방주의(Neocameralism)’. 국가를 주권 자본으로 보고, 부동산 가치랑 삶의 질을 극대화하는 책임 경영을 목표로 함. 주식회사처럼 운영해서 주주들이 경영자(CEO 군주)를 뽑고, 정치 개입 없이 수익(=국가 가치) 극대화. 미국은 수백 개 자치 도시국가로 쪼개서 모나코 같은 국가들 여럿 만들고, 서로 경쟁하게 함.


문제는, 'CEO 군주'(원문에서는 Receiver라고 표현함. 일단은 파산 관재인이라고는 번역했으나, 그냥 CEO 군주라고 봐도 된다.)를 어떻게 뽑을지, 민주정 정치꾼들 짜고치는 고스톱하는 짓거리 다시 안 살아나게 어떻게 막을지, 유능한 경영진을 제대로 뽑을 수 있을지가 전부 불투명함. 민주정을 없애고 바로 그러한 없앤 상태를 유지하는 게 설계 자체보다 훨씬 어려움. 폭력이나 대중 동원 없이 이런 개편을 실행할 정치적 힘을 만드는 것도 막막.


결론적으로, 파시즘식 폭력도, 민주적 대중동원도, 그냥 가만히 있다가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도 다 믿을 수 없음. 당장 실현 경로가 없어서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는 허무한 결론. 그래도 이상적인 방향은 민주주의적 정치질이 없는, 책임 있고 효율적인 주권 경영 구조로 가는 거라고 제안함.


13장: 향후 복고의 전술과 구조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7/olxiii-tactics-and-structures-of-any/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8/13.html


커티스 야빈이 멘시우스 몰드버그라는 필명으로 작성한 "열린 마음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제13장은 현재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완전히 해체하고 이를 기업 운영 방식을 따르는 새로운 형태의 정부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다루고 있음.


몰드버그는 먼저 기본적인 전제로서 20세기에 발달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실패했다고 진단하며, 이를 "주권적 기업"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형태의 통치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함. 이때 몰드버그가 사용하는 핵심 개념이 "복고"인데, 이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혁명과는 정반대로 올바른 질서를 회복한다는 의미임.


이러한 체제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몰드버그는 "민주 쿠데타"라는 개념을 제시함. 이는 무력을 사용하는 군사 쿠데타와 달리 정치적 압력과 여론의 힘을 통해 기존 정부를 항복하게 만드는 방식임. 몰드버그는 소련의 붕괴나 일본의 메이지 유신 같은 역사적 사례들을 이러한 방식의 성공적인 선례로 제시하면서, 선거를 통한 점진적인 개혁이 아닌 완전하고 급진적인 "리셋"이 필요하다고 강조함.


구체적인 실행 구조로는 "신탁" 시스템을 제안했음. 이 시스템에서는 현재의 정부를 새로운 기업형 정부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담당할 관재인(쉽게 말해서 CEO-군주)을 임명함. 이 관재인은 신탁자문위원들로 구성된 신탁회사의 감독을 받으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민주주의를 폐지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민주적인 절차와 전술을 활용한다는 것임.


신탁자문위원을 선발하는 방안으로는 "정밀한 휴리스틱 시험(PHT, precise heuristic test)"이라는 방법을 제시함. 몰드버그가 가장 선호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항공기 조종사나 의사, 경찰관, 군 장교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독립적인 사고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을 신탁자문위원으로 지정하는 것임.


몰드버그가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근본적인 논리는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가 악성 종양과 같은 병리적이고 퇴행적인 시스템이라는 진단에 기반하고 있음. 실제로는 비선출 권력 기구(몰드버그가 자주 말하는 바로 그 '대성당')가 진정한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는 단순한 형식에 불과하다고 봄. 따라서 전문적 자격과 능력을 갖춘 소수의 엘리트가 통치하는 것이 무지하고 무능한 대중의 다수결 원칙에 의한 통치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이 해당 챕터의 결론.


14장(完): 반동주의자들을 위한 규칙들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7/olxiv-rules-for-reactionaries/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8/14.html


드디어 길고도 길었던 '열린 마음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시리즈가 이번 14장에서 막을 내림. 


내용을 요약하자면, 커티스 야빈(필명 '멘시우스 몰드버그')가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함께 반동적 정치 이론을 제시하는 글. 몰드버그는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하며, 완전한 정치적 재편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음.


몰드버그는 민주주의의 문제를 두 가지 층위로 분석하고 있음. 첫 번째 문제는 민주주의가 거대한 권력과 자원을 둘러싼 "총 없는 내전"의 성격을 띤다는 점. 각 정치 세력은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몫을 늘리는 데 집중하며, 이 과정에서 전체적인 통치의 질은 악화됨. 더 심각한 두 번째 문제는 민주주의 정부가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국민을 선출한다"는 점임. 즉, 이민 정책과 교육 시스템을 통해 자신들을 지지할 유권자들을 의도적으로 양성하고 수입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진단을 토대로 몰드버그는 반동주의자들이 따라야 할 다섯 가지 규칙을 제시하고 있음.


첫 번째 규칙은 반동이 이분법적 결정이라는 것. 현재의 정치 체제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거나, 아니면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 부분적 개혁이나 점진적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음.


두 번째 규칙은 진정한 복고(신반동주의)는 기존의 정당 정치를 통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는 점. 미국 민주당과 미국 공화당의 갈등과 같은 기성 정당 간의 갈등, 더 나아가 전통주의와 진보주의 간의 종교적 갈등을 초월해야 한다고 보고 있음.


세 번째 규칙은 전면적 리셋이 영미 정치 전통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한다는 것. 과거의 제도나 관행에 대한 향수를 버리고 처음부터 새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함.


네 번째 규칙은 진실만이 유일한 무기라는 점. 몰드버그는 구글 북스를 통해 1922년 이전의 문헌들을 연구할 것을 권하고 있음. 몰드버그는 과거의 "우파적" 관점들이 현재 상황을 더 정확히 예측했다고 주장하며, 역사적 삼각측량법을 통해 누가 옳았는지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함.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규칙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것. 대중 동원보다는 소수의 고급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며, 궁극적으로는 '현대 서구 사회의 언론, 학교,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적·문화적 좌파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 정보 생산 및 유통 네트워크'인 대성당(Cathedral, 쉽게(?) 말해서 딥스테이트라고 봐도 무방)에 맞서는 반(反)-대성당 기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함. 이는 대학 시스템보다 더 신뢰할 만한 진실 검증 기관으로, 논쟁적인 주제들에 대해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판단을 제공해야 한다고 봄.


그래서 결론은?


몰드버그는 현대 민주주의가 거짓말에 의해 결속된 공산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함. 몰드버그는 범죄 통계 조작, 기후 변화 과학의 문제점, 인종 문제에 대한 왜곡된 접근 등을 예로 들어 현재 시스템의 실패를 입증하려 했음. 결국 이 공개서한 시리즈는 단순한 정치적 비판을 넘어서 서구 문명의 지적 기반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하는 반동적 정치 이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는 게 최종적인 결론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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