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티스 야빈, 좌빨 기득권이 통제된 반대파를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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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

이제 그람시식 점진주의(Gramscian incrementalism)로 넘어가자. 이 접근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성과도 있었다.


내 생각에, 현대 ‘보수주의 운동’에서 가장 효과적인 세력은 단연코 ‘연방주의자 협회(Federalist Society)’였다.


이 연방주의자들(Federalists)은 전적으로 도덕적이고 원칙 있는 집단이며, 허울 뿐인 기성 보수 정치권과는 철저히 선을 그었고, 실질적인 지적 영향력도 행사했다.


솔직히 말해, 이보다 훨씬 못한 선택도 많다.


반면에, 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반드시 대성당(Cathedral)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로 그럴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람시식 반동주의(Gramscian reaction)를 지성적 개입이 아닌 제도적 권력 게임(institutional power play)으로 본다면 — 그건 그냥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최선의 경우, 연방주의자 협회(Federalist Society)와 그에 상응하는 조지 메이슨 학파(George Mason School)의 경제학자들은 대성당 체제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대성당은 그들을 포섭하는 데 훨씬 능숙하며, 그들이 대성당을 전복(subvert)하는 데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 게다가 ‘전복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인정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그람시식 전복(Gramscian subversion)이 효과를 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람시식 진보주의자(Gramscian progressive)의 진짜 목적은 ‘권력’이다.


그는 조직 내에서 ‘자유 에너지’를 끌어내고, 이를 조직 권력으로 전환하기 위해,


일부러 비효율적인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비효율성 자체가, 그와 그의 동료들에게 ‘일거리’를 영속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같은 조직 안에서, 명목상으로는 이들과 협력하는 ‘그람시식 반동주의자’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1. 진보주의자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일자리를 없애려 시도하는 것 —


   → 이는 자신의 파멸로 직결된다.


2. 자신의 원칙을 배신하고,


   편안하고 영속적인 자리(sinecure)를 얻는 것 —


   → 대부분은 이쪽을 택한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결국, 그람시식 반동주의자란 실제로는 그람시식 진보주의자일 뿐이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자신과 친구들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대성당은 가능한 한 많은 ‘길들여진(tame)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s)나 보수주의자(conservatives)’를 고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린든 B. 존슨(LBJ)의 말처럼: “차라리 그들이 텐트 안에서 소변을 밖으로 보게 하는 게 낫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악명 높은 ‘문화적 진보주의에 순응하면서도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코스모테리언(cosmotarians)’이다.


어쩌면 누군가 그들의 배설물을 작물에 비료로 쓸 방법을 찾는다면, 그들이 존재할 이유도 생기지 않을까.


...(중략)...


파비안식 점진주의(Fabian incrementalism)란, 명목 상의 기성 보수 정당을 지지하거나, 자유지상주의자당(Libertarian Party) 같은 소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려 한다면,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정당을 지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즉각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대의 '민주주의(democracy)'는 정치인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의 ‘불문율(unwritten constitution)’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문율은 문서화된 헌법만큼이나 위반하기 어려운 규범이다.


결국, 기성 보수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획득’한다 해도, 그들이 실제로 손에 쥐게 되는 것은, 영국 여왕이 가진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권력’일 뿐이다.


...(중략)...


왜 공화당은 1933년 민주당이 그랬듯, 워싱턴의 공식적인 통제권을 이용해 실질적인 권력을 굳히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구체적 답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이유는 이렇다: 그들은 애초에 실권을 쥐어본 적이 없다.


이론적으로는 영국 여왕도 왕국 전체를 통치할 권한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행사하려 한다면, 남는 것은 그 권한을 박탈당하는 일뿐이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기성 보수 정당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다음에 정권을 잡을 일이 생긴다고 해도, 권력은 잡지 못할 것이다. (물론 여전히 수많은 한직(閑職, sinecure)을 임명할 권한은 갖고 있다.)


기성 보수 정당이 항상 실패하는 데에는 좀 더 미묘한 이유도 있다. 보수주의자나 반동주의자들은 원칙에 기반한 정치만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자라면 애초에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이 더 성공적인 선택이므로, 보수주의자가 되는 순간부터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원칙보다 전술이나 인물 문제로 다툰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큰 방향에 대해선 항상 쉽게 합의하고, 대립이 생겨도 좌파 내부에서 적을 만들지 않으며, 우파와는 친구가 되지 않는다는 공식을 따른다. (pas d’ennemis à gauche, pas d’amis à droite — "좌파에 적은 없고, 우파에 친구는 없다.")


어떤 공정한 관찰자라도, 이 전략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주의자들의 연합은 대체로 잘 유지되지만, 그 반대편은 항상 갈라지고 분열된다. 왜냐하면, 악은 선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악은 결코 양심의 가책이나 자기 의심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셋째, 기성 보수 정당의 정치인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게 되면 그 다음 유혹은 언제나 다음 단계의 성공을 위한 거래다. 즉, 자신의 원칙을 버리고 진보주의자들과 손을 잡는 것. 이렇게 되면, 원칙을 고수하는 경쟁자들을 훨씬 쉽게 이길 수 있으므로, 이 유혹을 이겨내려면 상당한 결의와 자제력이 필요하다.


미국 정치의 ‘웃고 있는 낡은 껍데기’ 같은 존재, 존 매케인(McCain) 상원의원은 이 전략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대표적 인물일 것이다. — 최소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동정 어린 보수주의자(compassionate conservative)'를 자처한 정치인을 봤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러한 실패의 보다 극단적인 사례를, 기성 보수 정치권 중에서도 바깥쪽 주변부에 있는 류 록웰 계열 자유지상주의자들(Lew Rockwell libertarians)의 비참한 몸부림(gyratio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VDare에서 날카롭게 찔리고, VFR에서는 바삭하게 구워졌다.


나는 Auster가 자유지상주의에 대해 내린 세부적인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내 분석은 여기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결론은 같다: 자유지상주의의 문제는, 그것이 휘그주의(Whiggery)의 한 형태라는 데 있다. 그리고 최초의 휘그는 악마였다.


게다가 론 폴(Ron Paul) 같은, 내가 보기엔 그저 지극히 양심적인 노인일 뿐인 사람을, 어떤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으로 포장하고, 노골적인 대필(ghostwritten) 서적에 그의 이름을 붙이는 행태는 정말이지 20세기 정치의 악취를 풍긴다.


넷째, 기성 보수 정당에서 성공하는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허커비 플랜(Huckabee Plan)”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허커비 플랜의 요체는 다음과 같다: “가능한 한 멍청하게 보이라.”


이 전략은 의외로 많은 유권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동일하게 멍청하거나, 그보다 더 멍청하기 때문이다. (기성 보수 정당의 주 지지층은 결코 지성의 정점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전략은 대성당(Cathedral)의 주목을 끈다. 대성당은 언제나 기성 보수 정당 후보 중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수준에서 최악’인 인물을 띄워주는 걸 즐긴다.


물론, 이런 관행은 악의적인 음모라기보다는 단순한 계급적 우월감(casual snobbery)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효과가 떨어지진 않는다.


언제나 흥미로운 기사감이 된다—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농촌 촌부(peasant)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있다는 얘기라면 말이다.


다섯째, 기성 보수 정당이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핵심 권력층 좌익 활동가들에게 있어 가장 큰 동기 부여가 된다. 그들은 이 허울뿐인 관제 야당을 자신들의 세계 전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위험으로 여긴다.


이들이 진심으로 그렇게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 역시도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위협(the right-wing menace)을 내 삶의 첫 25년 동안은 진지하게 믿었다.


만약 허울뿐인 기성 보수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대성당 체제는 단번에 실체를 드러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일당 독재 체제(one-party state)다.


소련이 무너진 건, 누군가가 야당을 조직하고 조작된 선거에서 이기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후기 공산국가들(예: 폴란드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은 관제 야당(bogus opposition parties)을 유지했다. 그 이유는 오늘날 미국이 기성 보수 정당을 보유하는 이유와 똑같다: “인민 민주주의(people’s democracy)”를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만약 허울뿐인 기성 보수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요즘 거리마다 넘쳐나는 좌파 정당 청년 활동가들이란 존재는 겉보기 그대로의 모습—즉 소비에트 연방 공산청년동맹(Komsomol)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버린다.


그들은 국가 권력에 충성을 다해 출세를 꾀하는 젊고 야심찬 인물들이다. 사실, 출세가 목표라기보다는 단지 이성(異性)과 같이 자고 싶어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들이 충성하고 있는 진보 엘리트 집단이 사실상 정부 그 자체라는 사실이 명확해지면, 그 활동은 더 이상 멋지거나 흥미로운 일이 아니게 된다. 이성과 같이 자고 싶다면 다른 방법도 많다. 훨씬 덜 따분하고, 덜 빡빡한 방법이 세상엔 얼마든지 있다.


만약 공화당이 스스로를 완전히, 그리고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해산시킨다면, 그것은 민주당에 가해지는 가장 잔혹한 일격이 될 것이다. 오비완 케노비(Obi-Wan Kenobi)조차 채드 베이더(Chad Vader)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다.


이후에 설명하겠지만, 수동적 저항이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기성 보수 정당 활동보다 천만 배는 낫다.


허울 뿐인 기성 보수 정당을 지지하지 말라.


원문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8/06/ol8-reset-is-not-revolution/


한국어 번역본 링크: https://natsuken00.blogspot.com/2025/0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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