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빈의 전통에 대한 견해와 이에 대한 닉 랜드의 논평

우선, 커티스 야빈의 '전통'에 대한 짤막한 견해:


"어떤 전통이 그것을 따르는 개체들로 하여금 자신의 개인적 목표를 해치는 오산을 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미제스적 병리성(Misesian morbidity)을 드러낸다. 만약 그 전통이 개체들로 하여금 자신의 유전자의 생식적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다윈적 병리성(Darwinian morbidity)을 갖는다. 만약 그 전통을 따르는 것이 개인에게는 유리하거나 최소한 손해가 없지만(즉, 탈전통주의자에게 보복이 없거나 보상이 주어지며), 전체적으로는 해를 끼친다면, 그 전통은 기생적(parasitic)이다. 반대로, 그 전통을 따르는 것이 개인에게는 손해이지만 집단 전체에는 이익이 된다면, 그것은 이타적(altruistic)이다.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는 공생적(symbiotic)이고, 양쪽 모두에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악성(malignant)이다. 이러한 각각의 분류는 미제스적 병리성이나 다윈적 병리성 어느 쪽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주제가 비합리적(arational)이기는 하나, 미제스적이거나 다윈적인 병리성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명하게(trivially)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야빈의 견해에 대한 닉 랜드의 논평:


"행동적 관점에서 볼 때, 미제스적(Misesian) 체계와 다윈적(Darwinian)체계는 각각 재산 축적(property accumulation)과 유전자 복제(gene propagation)에 초점을 둔 ‘이기적’ 동기의 군집들이다. 다윈주의자들은 ‘미제스적’ 영역을 유전적 자기이익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동기 체계의 특수한 사례로 간주하지만, 오스트리아 학파는—고도로 합리화된 신칸트주의적 반자연주의(anti-naturalism)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이러한 환원주의(reductionism)에 저항하는 경향을 본성적으로 지닌다. 이 양 진영 간 논쟁이 궁극적으로 함의하는 바는 매우 크지만, 현재 조건하에서는 시급한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혐오(hate)’라는 공통분모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즉, 부적응자(the maladapted)를 처벌하는 인센티브 구조에 대한 반동적 관용(reactionary tolerance)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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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내가 생각하는 전통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이전 글들에서 언급한 바 있기에 그것들도 가져와보겠음.


우선 한민족의 전통에 대한 생각(사실, 이것은 대부분이 박정희의 저서 중에서 발췌한 내용을 참고함): 


하지만 사회주의에도 모순이 존재하듯이 보수주의에도 내재적 모순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특정 국가, 혹은 특정 사회공동체의 전통 및 관습이 도리어 그 국가 및 사회공동체의 질서와 안녕을 어지럽히고, 특히 지속가능성에 있어 문제를 야기한다면 그 집단에 있어 보수주의는 무력하다는 것이다.


가령 한민족의 역사와 옛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한민족 특유의 전통과 관습을 생각해보라.


한 무제(漢武帝)가 침략한 고조선시대에서부터 고구려·신라·백제의 삼국 정립 시대, 그리고 신라의 통일 시대를 거쳐 후백제·후고구려·신라의 후삼국시대, 그리고 다시 통일 고려시대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국가들의 역사는 대개 어떠했나?


그 어느 시대에 변경을 넘어 타국을 지배하였으며, 그 어느 시기에 해외의 문물을 널리 구해 사회의 개혁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며, 또 그 어떤 시대에 민족국가의 위세를 밖으로 과시하고 산업과 문화로써 독자적인 자주성을 떨친 바가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강대국에 밀리고 치여 외래문화에 맹목적으로 동화되었고, 원시적인 산업의 범위를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으며, 전쟁이래야 겨우 동족상잔에다 구태와 나태에 무사안일주의로 찌들었던 우리 역사는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봉건사회의 축소판에 불과했다.


잦은 외세의 침탈에 시달리며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한민족 스스로 힘을 길러 외세에 대항하기보다 스스로 외세에 굴복하고 외세에 대한 과도한 사대(事大)를 보여왔다.


이러한 사대주의로 인해 문화, 정치, 사회에서 ‘우리 것’을 잃었고 대신 ‘남의 것’을 우러르며 거기에 영합하는 민족으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한민족 특유의 자주, 주체 의식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게 되었다.


물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강대국과의 사대외교를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면을 인정해야 하지만 역대 한반도 국가가 사대외교를 지양할 만한 실력도 창의도 없었으며 고려 이후 민족 고유의 문화를 스스로 말살하고 유교 등 외국에서 문화를 들여오는 데만 급급했고 신라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 당나라의 군사를 이용한 이래로 국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의 군사력을 불러들이는 못된 습성이 생겼다.


조선 이후 성리학이 사회를 지배하며 타협과 관용 따위는 없는 사화(士禍)와 당쟁이 이어져왔다. 심지어는 대한민국이 건국되고나서도 실질적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닌, 그저 공당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위한 무의미한 당파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신분제와 삼정의 문란, 양반을 특권 지주로 만든 조선의 토지 제도 등으로 인해 생산활동과 근로의욕이 위축되어왔다.


한민족의 구전설화 등에서는 수전노(守錢奴: 돈의 노예)를 욕하는 유머가 많이 존재했다. 돈을 아끼고 절약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저축 관념이 형성될 턱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날 하루 먹으면 그만이라는, 순간을 즐기려는 생각이 깃들기 마련이다. 이런 경향은 노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라든가 , 같은 노래를 보면 죄다 먹고 놀자는 쾌락주의뿐이다. 그러나 게으른 것도 양반 등 상류계급의 전유물이었다. 화롯가에 앉아 큰소리로 허세나 부리고 집안을 자랑하면서 온종일 집안에 들어앉아 수염만 쓰다듬는 샌님들의 게으른 양반 생활이 그것이다. 건전한 직업 관념이 발달되지 못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겠다.


사농공상 풍조가 만연하여 사회공동체 일원 모두가 관리가 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관권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가 장기간 지배해왔다.


한(恨) 정서가 한민족 대다수의 정신 깊숙한 곳에서부터 뿌리를 뻗음에 따라 노예적 체념이 일상화되었다. 따라서 억세게 헤치고 나가려는 유럽 식의 비극 의식은 한국에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저 나약한 눈물과 값싼 동정이 있을 따름이었다. 따라서 운명을 개척하거나 새 길을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으며 불가능한 것을 바꿔 보려는 용기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점(占)이니 관상이니 사주택일 같은 운명관에 사로잡혀 가난은 고질화되고 살림살이를 바로잡으려는 의욕이 움트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한(恨) 정서는 스스로 뭔가 일을 만들어 내려는 욕구의 부족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는 기업의식 대신 관청만 바라보는 나쁜 관습의 원인이 되었다.


종법(宗法) 제도의 유산으로 인해 하나로 뭉치는 마음이 부족하고 패거리를 짓는 경향이 생겼고 악성 집단이기주의가 판쳐왔다.


정명주의(正名主義)를 내걸었으나, 그 본질은 놓치고 오로지 ‘~답다’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남에게 보이기 위해 거창하게 혼사를 치르고 과다하게 제사를 모신 끝에 재산을 날리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또한 명예라는 관념이 결여되었고, '나'라는 개인이 부재한 사회분위기가 지속되어왔다.


비판정신이 결여되어 논리와 이성을 통한 학문의 발전대신 권세를 등에 업은 허위가 권세 없는 진리를 누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과연 이런 전통과 관습을 지닌 집단에서 서구식 보수주의(Conservatism)을 실현시킨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중략)...

전통과 관습을 충실히 따른 결과가 사회 공동체의 파괴라니, 보수주의자 입장에서 이보다 더한 촌극이 더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전통이 곡해되는 현상에 대한 분석


어떤 전통은 보존되어야 한다. 어떤 전통은 파괴되어야 한다. 문제는 단순히 무엇이 ‘전통’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현재를 구성하는 데 작용 가능한 힘인가다.


전통은 무조건적인 계승의 대상이 아니다. 때로는, 전통은 공동체의 생존을 해치는 독소다. 그리고 불행히도 많은 이들은 전통을 ‘무엇을 복원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의 말을 정당화할 것인가’의 도구로 사용해왔다.


누군가는 국가라는 말을 입에 올리며 사극의 예복과 선비의 말씨를 흉내 낸다. 누군가는 민족을 말하며 혈통도, 문화도 아닌 추상적 '정통성'에 집착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유를 말하며 국가를 시장의 보조자, 혹은 양심의 감시자로만 취급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유교적 가부장제를 교묘히 왜곡한 페미니즘, 전통을 모방한 탈전통, 공동체를 파괴하는 '진보', 주체를 지우는 ‘해방’을 목도해야 했고, 마음속에서 국가라는 말만 되뇔 뿐, 그 실체는 점점 공허해진 현실을 맞이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관념적 국가, 혹은 형해화(形骸化)된 국가다.


그리고 전통에 대한 과학적(?)이고 통치 면에서의 분석:


...(중략)...

전통과 민족은, 대중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 정서적 공통 기반으로 작동한다.

...(중략)


대중은 구조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는 언제나 이랬다"는 감각에 안도하며, 그 감각이 익숙할수록 설계된 질서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중략)...

전통은 인류가 생존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선택적으로 축적된 문화적 생존 알고리즘이다. 그것은 단지 ‘기억되는 감정’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선택과 행위의 경로로서 내면화된 사회적 신호 체계다.


우리가 ‘감성의 유산(遺産)’이라 부르는 그것은, 실상 복잡계 생존에 필요한 협동 프로토콜이자, 시간을 초월해 사회적 일관성과 의사결정의 안정성을 유지해 온 인류 문화의 압축 알고리즘이다.


전통은 감각을 넘어 구조다. 지도자의 임무는 이 구조를 감정으로 포장하되, 그 감정이 본능과 생존에 유효했던 경로로 인식되도록 서사와 상징을 배열하는 데 있다.

...(중략)...

전통과 민족은 체제를 감정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정서적 장치로서의 잠재력을 가진다. 이 잠재력을 어떻게 발휘시키느냐는 지도자의 역량에 달렸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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