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의 조용한 평행선: 체제의 대립이 아닌 힘의 충돌
미·중 경쟁의 조용한 평행선: 체제의 대립이 아닌 힘의 충돌
2025년 4월 4일, Stéphanie Balme
현대 중국과 미국은 극명한 차이—혹은 노골적인 대립—를 보이지만, 사회·경제·정치 전반에서 미묘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유사점이 나타나고 있다. 양국은 전략적 경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상호 영향과 공통 과제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는 긴 역사 속에서 서로의 것을 차용·도입해온 결과다. 이러한 과정은 종종 간과되는 방식으로 양국의 모습을 형성해왔다. 본 기사는 우선 중국과 미국의 정치 이상과 거버넌스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유사성을 살펴본다. 이는 두 국가의 궤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탐구적 도구이며, 화해나 갈등을 예측하려는 의도는 없다. 궁극적으로 양국의 갈등은 체제 대립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힘의 경쟁’임을 부각한다.
중국학자 제레미 바메(Geremie Barmé)는 2017년 발표한 글에서 마오쩌둥과 도널드 트럼프를 비교하며, 두 권위주의 지도자 간의 중요한 공통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마오와 트럼프 모두 자국의 기존 질서에 도전하며 권력을 잡았고, 그 과정에서 큰 혼란을 초래했다. 마오는 중국공산당(중공)의 주석으로, 트럼프는 사업가로서 ‘이사회 의장’식 사고방식을 지닌 채 극단적 권위주의 성향을 보였다. 두 사람 모두 논쟁적 과잉 표현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바메는 트럼프의 당시 대통령직이 중국의 이념적 야심과 일치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글은 보다 넓은 관점에서 미·중 정치적 유사성을 해석한다. 현대 중국과 미국의 얽힌 궤적은 과학, 경제, 경영 전략이 양국 사이에서 연구·변형·모방되는 복합적인 역학을 보여준다. 특히 마오 이후 중국은 ‘중국적 특색’을 내세운 정치·경제 모델을 실험하는 장이 되었는데, 이는 겉으로는 반서방적이지만 반미적이지 않았다. 미국이 헌법 민주주의 외에 세계 초강대국으로 도약하게 만든 핵심 요인들은 중국공산당 지도부에 의해 면밀히 분석되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 부분 재현되었다. 그 결과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자유의 나라’인 미국에서 유럽 철학의 뿌리를 지녔음에도 극단적 정치사상의 변두리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 계보를 고려하면 중국이 오히려 유럽과 더 밀접하게 닿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트럼프의 두 번째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의 모델이 미국의 기술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미국 내 본토 중국 보수층과 1세대 중국계 이민자들이 트럼프의 정책과 노선을 강화하며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시진핑의 정치적 권위주의, 사회적 보수주의, 기술민족주의적 비전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정치 노선과 유사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지금까지 많은 분석가들은 중국의 소프트 파워와 모델이 설득력이 없다고 봐왔으며, 일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그렇다는 평가가 많았다.
베이징과 워싱턴 사이의 진정한 협력은 지속적인 목표가 될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두 나라가 일정한 핵심 궤도에서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는 이 역설적인 흐름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유럽연합과 향후 국제 질서에 미칠 파급 효과를 고려할 때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미·중, 오랜 차용과 상호 영향의 역사
역사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이보다 더 다를 수 없을 정도로 상반된 길을 걸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의 본고장인 중국은 20세기 내내 민주주의 실험에 실패를 거듭했다. 반면, 가장 젊은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행 헌법 민주주의를 유지해왔다. 마르크스주의·무신론 국가와, 깊이 종교적이고 강력한 반공 국가가 정면으로 맞선 셈이다.
중국이 과학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불과 지난 10여 년의 일이며, 그 동력은 주로 공학자와 기술-유토피아적 비전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이에 비해 미국은 1세기 동안 세계 과학의 선두를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치 무대에서는 과학적 사실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지도자들이 등장했고, 증거 기반의 국가 정책 수립과 과학 외교를 ‘전쟁’ 수준으로 공격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편전쟁 이래, 양국의 정치적 궤적은 깊이 얽히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유럽이 지배하던 경제·과학 식민 질서의 그늘을 벗어나 양국이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한 기점이었다. 그 본질에는 부(富)의 가차없는 추구인 중상주의와, 더 넓은 이념적 사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1850년대)부터 2000년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그리고 오늘날 실리콘밸리 붐에 이르기까지 양국 모두 중상주의적 충동을 공유했지만, 이념적 접근은 극명히 달랐다. 미국은 종교·인권·민주주의라는 메시아적 이상을 내세웠으나, 그 속에는 ‘황화 위협’(Yellow Peril) 서사를 연상시키는 인종주의적 색채가 종종 깔려 있었다. 이에 반해 베이징의 전략은 보다 일관되게, ‘구체적’ 인권의 수호자라는 자기 서사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일종의 부러움이 깔려 있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맞물려, 양국은 화해와 위기의 시기가 반복되는 복잡한 애증 관계를 형성했다.
미국 정치철학은 19세기 말부터 중국 엘리트층에 영향을 끼쳤으며, 미국 정치 모델은 중국 통치 구조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1912년 첫 중화민국을 세운 기독교 혁명가 쑨원(손문)은 미국을 중국 발전의 청사진으로 보았다. 그는 민권주의 이상에 영감을 받아 ‘삼민주의’를 제창했고, 이는 지금도 대만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장제스의 미국 유학파 아내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의회와 중국 국민당 간 긴밀한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미 정서가 최고조에 달했던 마오쩌둥 시기조차, 마오는 미국과 복잡한 관계를 유지했다. 마틴 루서 킹 암살 이후 블랙 파워 운동에 연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그의 초기 저작과 정치 비전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특히 조지 워싱턴—에 대한 깊은 존경이 드러났다. 중·소 분열 이후, 미·중은 냉전 속에서 소련 견제를 위한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키신저-닉슨 독트린은 1972년 상하이 공동성명을 낳았고, 1979년에는 상호 외교 관계 수립으로 이어졌다. 그 직후 덩샤오핑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미국을 방문한 장면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되었고, 코카콜라·보잉·포드 공장을 시찰하며 ‘개혁·개방’ 정책 구상을 다졌다.
그 후 중국 중산층은 미국식 생활양식을 적극 수용했다. 역대 중공 지도부와 그 가족들은 미국 명문대에서 교육을 받으며 제도적·개인적 교류를 심화시켰다. 1989년 6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시위대가 자유의 여신상을 본뜬 ‘민주의 여신상’을 세운 장면은 이런 미국적 상징에 대한 매혹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십 년 동안 중공 지도부는 미국식 거버넌스 이상을 직접 차용하며 강력한 기술-군사 복합체를 구축하고, 아이비리그를 모델로 한 국내 명문대를 세우고, 조지프 나이식 ‘소프트 파워’를 도입하고, ‘서부 대개발’ 정책을 추진하고, ‘뉴 퍼블릭 매니지먼트’ 개혁을 시행했다. 심지어 중국의 ‘사회 신용 시스템’도 미국 금융 신용·은행 시스템에서 기원했다. 이 개념은 1999년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처음 설계된 뒤, 중국식 통치 모델에 맞게 변형·재해석되었다.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華民族偉大復興)’—은 2010년대 초에 형성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 대응하는 중국식 국가 부흥 비전이라 할 수 있다.
널리 퍼진 선입견과 달리,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일상은 핵심 가치에서 놀라울 만큼 유사성을 보인다. 두 사회 모두 돈과 부, 소비주의, 근면함, 경쟁심, 개인주의를 강하게 중시하며, 이는 중국 문화에서 ‘관시(关系)’라 불리는 밀착된 인간관계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양국 모두 복지 제도는 최소 수준에 불과하며, 교육 제도는 재정적 자원에 크게 의존해 극도로 엘리트화된 구조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중국 모두에서 성공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열려 있으며, 사회 계층·카스트·과두정치가 이를 가로막지 않는다는 ‘신화’가 존재한다. 트럼프가 성공의 모델로 여겨지는 이유는 지지자들이 자신과 자녀가 비슷한 부와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복음주의자와 오순절파의 ‘번영 복음’ 신봉자들 사이에서 특히 강하다.
오늘날 중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보인다. 공산주의 체제를 표방함에도, 사람들은 오직 자신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법칙은 ‘정글의 법칙’이며, 이는 가난한 농촌 이주민이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가문을 위한 대물림 부를 이루려는 스타트업 창업가든 마찬가지다. 이는 전통 유교적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다. 중국 구글 사장을 지낸 인공지능 전문가이자 중국공산당의 AI 정책 자문역인 리카이푸(李開復)는 베스트셀러 《AI 슈퍼파워》에서 이러한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상호 보완점이 많고 유사한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으며, 여러 접근법을 서로 이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두 이를 경쟁으로만 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는 미국에서도 ‘카피캣’이 나타나지만,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 경쟁이 곧 끝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중국에서는 “중국판 옐프가 중국판 그루폰과, 중국판 오픈테이블과, 중국판 도어대시와 경쟁해야 했고, 결국 단 하나만 살아남았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 슈퍼앱이 탄생했다. 리카이푸에 따르면, 유럽의 주된 문제는 규제가 혁신을 억누른다는 점이 아니라, 미국처럼 치열한 ‘다윈식 경쟁’을 조성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 경쟁은 강자만이 약자를 도태시키고 살아남는 구조다.
중국과 미국의 정치 지도부는 흔히 ‘G2+0’로 불리는 세계관을 공유하며, 이는 ‘투키디데스 함정’—부상하는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이 불가피하게 충돌한다는 이론—에 집약된다. 이 개념은 중국 전략사고에 깊이 새겨져 있어, 시진핑을 비롯한 역대 공산당 간부 지원자들은 국가·당 기관의 간부 또는 공무원 채용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관련 에세이를 작성해야 한다. 2024년 미국 대선을 전후해,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트럼프’(特朗普)와 그의 기존 질서를 흔드는 정책들에 대한 검열 없는 긍정적 언급이 쏟아졌다.
또한 양국 모두 강한 민족주의와 자국 예외주의를 공유하며, 각자 보편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상이하다. 시진핑의 중국은 ‘인류 운명 공동체(人类命运共同体)’—소위 ‘신시대 중국 외교사상’의 핵심 요소—를 통해 집단적 복지와 세계 공동 발전을 강조하며, 이를 외교 정책의 중심축으로 삼는다. 반면,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여전히 세계 의제를 주도할 역할을 자임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중국과 미국은 모두 깊은 예외주의와 보편적 야망을 담아 각자의 비전을 투영하며 서로의 ‘거울’ 역할을 한다. 두 나라는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 담론을 주도하기를 원한다.
얽히고설킨 현대의 민감한 정치 논쟁
‘워키즘(wokism)’ 논쟁은 중국과 미국의 정치 궤적이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용어는 다양한 집단에서 강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분열적인 주제가 되었다. 한편에는 중국 본토의 민족주의자, 미국의 1세대 중국계 이민자, 그리고 미국 보수파가 반대편에 서 있다. 반대로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중국 청년층과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이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지지 그룹은 ‘워키즘’을 문자 그대로 번역한 ‘각성문화(觉醒文化)’를 “계몽된 문화”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들은 검열이 강화된 웨이보 같은 플랫폼에서는 목소리를 내는 일이 적으며, 미국의 2세·3세 중국계 이민자 사이에서도 소수 의견일 가능성이 크다.
반대 진영에서는 자유주의자·좌파를 지칭하는 ‘바이좌(白左)’라는 용어를 쓴다. 이 용어는 미국 보수 진영에서도 호응을 얻으며, 정치 이념의 문화 간 교류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이좌’라는 용어는 2010년대 중국 네티즌, 특히 웨이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1960~70년대 전 세계 공산 혁명을 특권층의 위치에서 지지했던 부유한 외국 좌파를 풍자한 글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시기는 특히 중국 문화대혁명으로 수백만 명이 희생된 시기였다. 일부, 예컨대 더럼대학교 장천천(张晨晨) 교수는 ‘바이좌’가 유럽 난민 위기와 미국 우익 포퓰리즘이 부상하던 2015년 전후에 유행했다고 본다.
반(反)‘바이좌’ 비평가들은 서구 자유주의자들이 이민, 사회문제, 성(性) 관련 사안에서 지나치게 관용적이라고 본다. 그들은 ‘바이좌’ 지지자들이 평화와 평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도덕적 우월감을 높이기 위한 위선적 행태를 보인다고 비난한다. 또한 소수자 권리나 성소수자(LGBT) 권리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다문화주의 명목으로 이슬람의 ‘퇴행적 가치’를 묵인한다고 본다. 미국-중국 비교를 연구하는 우궈(吴国) 앨러게니칼리지 역사학과 부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자녀가 비주류 성 정체성 다원주의에 ‘오염’되는 것을 우려하며, 사회정의나 환경보호 같은 추상적 개념과는 관계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지적한다.
‘바이좌’는 중국 인터넷에서 사회 안정과 국가 안보에 반하는 견해를 가진 사람을 공격하는 모욕어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 해석은 미·중 관계 속 위치에 따라 크게 다르다. 처음에는 인종을 뜻하던 ‘백(白)’이 점차 순진함이나 어리석음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우궈는 설명한다.
반중공(反中共) 디아스포라와 트럼프 지지자들은 ‘바이좌’를 예컨대 흑인 인권 운동(Black Lives Matter) 지지 아시아인에게도 사용한다. 이러한 용어 사용이 트럼프와 연결되면서, 이를 중국에 대한 실용주의적·대립적 접근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계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를 유일하게 중국공산당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정치인으로 존경한다. 반중공 디아스포라와 터커 칼슨, 로드 드레어 같은 미국 보수 논객은 비판적 인종이론(CRT)과 미국의 워크 문화, 홍위병과 미국의 진보주의자·페미니스트·환경운동가를 서로 비교한다. 반대로 중국 내에서는, 공산당을 지지하는 민족주의자들이 ‘바이좌’를 서구·백인 우월주의 이후(post-white supremacy) 세계를 지향하는 표식으로 삼는다. 이들에게 ‘바이좌’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서구의 우려를 비웃는 경쟁심의 표현이며, 서구 자유주의자들이 국제 경쟁의 냉혹한 제로섬 현실을 다룰 능력이 없음을 비판하는 용어다. 우궈에 따르면, 이 시각은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사고방식을 강조하며, 서구 자유민주주의 이상을 비현실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본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민족주의적 비판은 도널드 트럼프의 반(反)워키즘 레토릭과 밀접하게 겹치며, 중국 민족주의 ‘바이좌’ 비판자와 트럼프의 반자유주의 운동 사이에 예상치 못한 공명대를 만든다. 보수 사상가 로드 드레어는 ‘바이좌크라시(baizuocracy)’라는 용어를 만들어 ‘백인 좌파 정부’를 지칭했으며, 빅토르 오르반의 헝가리를 공개적으로 칭찬한 바 있다.
학자·역사가들을 비롯해, 워키즘은 ‘문화 각성’의 도구로 사용되며, 사람들에게 서구 문화를 재검토하고 서구가 설정한 ‘금기’ 개념에 정면으로 맞서도록 독려한다. 그러나 중국의 워키즘 논쟁은 전통 문화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서구의 타락한 영향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거부이자, 중국 고유의 사회 핵심 가치—‘정신 문명’—로의 회귀를 촉진한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1980~90년대에도 서구 ‘정신 오염’에 맞선 캠페인 속에서 유사한 담론이 있었다. 2015년부터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이 현상을 두드러지게 다루기 시작했다.
2022년 10월 제20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은 “유구하고 찬란한 중화문명은 현대 중국 문화의 뿌리이자 문화 혁신의 영감의 보고”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우수한 전통 문화는 중화민족의 근원이며 영혼”이라고 말했다. 이후 젠더 연구는 점점 제약을 받고, 탈식민 연구는 국가-당의 서사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으면 혹독한 비판에 직면한다. 기후변화 연구는 주로 공공정책이나 공학기술 분야로 분류돼 기존 정치 생태계를 위협하지 않는 한 수용된다. 그러나 이런 경계를 넘으려는 시도는 곧 검열로 이어진다. 중국에서의 워키즘에 대한 인식·두려움·정치적 이용은 ‘위로부터 정의된 순수한 전통으로의 회귀’를 강조하는 MAGA 노선과 뚜렷한 평행선을 이룬다. 이는 전통적·권위주의적·가부장적 성격을 띤다.
트럼프의 측근들, 중국에 대한 분노와 동경의 뒤섞임
일론 머스크는 현재 도널드 트럼프의 정부 효율성부(DOGE) 수장으로서 수년간 중국과 깊은 사업적 관계를 유지하며 미중 관계에 독특한 역학을 형성해왔다. 그의 중국 내 가장 중요한 투자처인 테슬라 상하이 기가팩토리는 회사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시설로 성장했으며, 테슬라 전 세계 배송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테슬라 배터리 공급망의 약 40%는 중국 기업에 의존하며, 상하이 정부는 테슬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장기간 세금 혜택을 제공해왔다. 또한 머스크의 공개 발언은 종종 베이징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중국의 인프라, 우주 프로그램, 친환경 에너지 분야의 리더십을 반복적으로 칭찬하며 경제 분리(decoupling)에 반대하고, 미중 경제를 ‘연체 쌍둥이(conjoined twins)’로 비유했다고 콩 링공이 언급했다. 대만에 대해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베이징 통제하의 특별행정구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 그의 입장은 중국 관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환영을 받았으며, 그의 PRC(중화인민공화국) 친화적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테슬라 외에도, 보도에 따르면 부유한 중국 투자자들은 SpaceX, Neuralink, xAI 등 머스크의 개인 사업에 수백만 달러를 은밀히 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복잡한 금융 구조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편, 그의 어머니 메이 머스크는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주요 중국 브랜드와 자주 협업하고 중국의 인프라와 생활 방식을 칭찬해왔다. 그녀의 저서 《A Woman Makes a Plan(人生由我)》는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현재 중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샤오홍슈, 도우인, 두반에서 ‘중국의 오래된 친구(老朋友)’로 애정 어린 호칭을 받고 있다. 이 용어는 전통적으로 미중 관계에서 핵심 인물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퀸 슬로보디안(Quinn Slobodian)은 저서 《Hayek’s Bastards: Race, Gold, IQ, and the Capitalism of the Far Right》에서 현재 미국 정치에서 극우 세력을 지배하는 이들이 신자유주의 핵심 과제의 상속자라고 주장한다. 즉, 민주주의로부터 자본주의를 보호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의미한다.25 여기서 민주적 규칙은 종종 비효율적이고 미국 내 가장 유능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인재들의 장애물로 인식된다. 확인 청문회 직전 미네소타 주 상원의원 앵거스 킹과의 대화에서, 헤그세스는 “우리 병사들은 80년 전 마호가니룸에서 존경받는 남성들이 만든 규칙에 따라 싸워서는 안 된다”며, 일종의 제네바 협약을 언급한 듯한 발언을 했다. 대신 그는 “미국은 우리만의 규칙으로 싸워야 하며, 승리할 수 없다면 싸우지 않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며 헌법적 제약과 ‘부담스러운 교전 규칙’을 무시하고 보다 공격적이고 타협 없는 방식을 선호했다.
슬로보디안은 이어 제2차 트럼프 행정부가 ‘암흑계몽주의(Dark Enlightenment)’라는 반동적 프로그램의 정치적 궤적을 따른다고 설명한다. 이 프로그램은 ‘CEO-대통령’이 이끄는 절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한다. 이 맥락에서 중국의 부상은 역사적 변혁으로 간주되며, 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나 심지어 미국 건국 자체에 비견될 정도로 중대한 변화로 여겨진다.
자유지상주의 학자 닉 랜드(Nick Land)와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은 규제 완화와 기업가 자유 극대화를 지향하는 이론을 제시하며, 동시에 사회적 보수와 소위 반-워크(anti-woke)적 입장을 결합한다. 이 역설적인 혼합체는 군주제와 유사한 국가가 경제 활동의 자유로운 흐름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언론, 헌법주의, ‘이념적’ 기관들을 해체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상한다. 이러한 비전에서 강력한 국가는 규제 완화된 시장을 보수적 사회·정치 엘리트에게 유리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효율적’ 정부는 민주적 안전장치를 무시하고, 장기적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실질적 기업 국가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J.D. 밴스는 야빈의 저서를 인용하며 읽었다고 밝혔으나, 야빈은 그를 다소 온건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트럼프의 측근인 피터 틸(Peter Thiel)은 커티스 야빈의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거대기업이 주도하는 자유지상주의 이념은 민주주의의 기본 헌법 원칙과 견제·균형 제도를 제치고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하는 비전을 지지한다.
흥미롭게도 닉 랜드와 커티스 야빈은 나치 시대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사상을 차용했으며, 그의 영향력은 특히 2012년 이후 시진핑 행정부와 결연된 중국 법학 학자들 사이에서 확장된다. 데이비드 오운비(David Ownby) 등 연구자들에 따르면, 칼 슈미트는 중국에서 신권위주의적 사고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시진핑의 사이버보안 및 군민융합 정책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한 정치 이론가 왕후닝(Wang Huning)의 사상에서도 공명을 찾았다. 왕후닝은 저서 《America Against America(美国反对美国)》에서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구조적 취약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자유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이 필연적이라는 통념을 지나치게 단순화된 관점으로 본다. 그는 정치 체제의 안정성을 위해 이념적 통합과 문화적 일치를 필수 요소로 강조하며, 전통적 가치에 도전하는 자유주의적 사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강력한 반-서구적·반-워크적 입장을 촉진한다.
왕후닝의 비전은 상향식 통제가 아닌 하향식 통제를 강조하며, 전통적 사회·문화적 가치와 순수한 경제 발전을 사회 미래의 핵심 기둥으로 설정한다. 이러한 점은 트럼프 교리의 핵심과도 일부 공통된다. 왕후닝은 MAGA 교리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며, 민주주의가 단지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기득권층과 엘리트가 권력을 조작하며 일반 시민의 근본적 필요에는 무관심하다고 본다. 한편, 중국 공산당은 숙청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정치 질서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새롭게 떠오른 ‘머스크-올리가르히(Muskoligarchy)’는 이를 특히 유리하게 평가한다. 흥미롭게도, 이 ‘머스크-올리가르히’ 또는 ‘잭마-올리가르히(JackMa-oligarchy)’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기술 엘리트들의 연합으로, 각기 다른 이유로 트럼프와 시진핑 양측의 정치적 야망에 상당한 도전이 될 수 있다.
다른 스타일, 같은 전략: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이 전략과 목표에서 만나는 지점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스타일 차이는 여전히 크지만, 특정 사안에서는 근본적으로 목표가 일치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대비는 2025년 2월 역사적인 뮌헨 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에서 양국 대표의 연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JD 밴스의 연설은 대립적이고 공격적이었던 반면, 왕이(중국 외교부장)의 연설은 합법성과 정당성을 강조하는 톤이었다.
며칠 후, 우크라이나 침공 3주년을 맞아 미국은 즉각 철군을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에 반대하며 러시아와 입장을 함께 했고, 중국은 기권을 선택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에도 다양한 흐름과 역학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2025년 2월 중국은 루샤예(Lu Shaye)를 EU 주재 신임 대사로 임명했다. 그는 서구 문명과 유럽 국가에 대해 직설적인 발언으로 잘 알려진 ‘전랑 외교(Wolf Warrior Diplomacy)’의 대표적 인물이다. 트럼프가 “EU는 미국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발언하자, 루샤예는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에 대해 노골적이고 지배적인 정책을 취하는 것을 보면, 유럽 관점에서는 참으로 충격적이다”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트럼프가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베이징을 향해 인종적 논조의 발언을 이어온 것은 의도치 않게 시진핑의 위상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시진핑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남반구와 세계 무대에서 위엄 있고 안정적인 지도자로 비춰졌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내 우파 권위주의자와 자유지상주의(populist libertarian) 엘리트들은 중국의 사회·경제적 회복력, 기술 발전, 혁신 중심 상승에 점점 매료되고 있다. 베이징 입장에서, 트럼프의 외교정책에서 인권 논의를 무시하고 친러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진행 중인 글로벌 갈등 속에서 거래적 협상의 전략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하는 역학은 트럼프, 푸틴, 시진핑 모두가 선호하는 신현실주의적 동맹을 촉진하며, 이들은 엘리트 중심의 ‘국가자본주의(national-capitalism)’를 보호하면서 1945년 이후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공통된 목표를 공유한다.
미국의 전통적 외교 접근 방식은 패러다임 전환을 겪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확산에서 구세주적(messianic) 역할을 수행했으며,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넘어 지속되었다. 첫 번째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정권과의 관계를 강화했으며,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하고 법치주의와 개발원조 수출 정책을 해체했다(예: USAID 폐쇄).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근본적 차이는 현재 중국이 추구하는 진정한 글로벌 비전에 있다. 과거 한 세기 동안 이러한 비전은 미국 외교 정책의 DNA였다.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는 이러한 비전의 핵심 요소로, 마셜 플랜에 비유되며 중국의 접근 방식을 국경 너머로 확장하는 모델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이 계획은 ‘이중 임무(dual mission)’로 불리며, ‘중국식 특색의 세계화(globalization with Chinese characteristics)’ 과정으로 이해된다.
시진핑과 트럼프 모두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양자 다자주의(bilateral multilateralism)’ 원칙을 따른다. 즉, 배타적이고 개인화된 양자 관계를 우선시하고 필요할 경우 유연한 다자 연합체 내에서 활동한다. 일대일로가 보여주듯, 전략적 인프라 프로젝트와 천연자원 통제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특정 국가 및 지도자와 직접 교류하며 지역 블록과 더 통합된 기구(예: EU)에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다. 2012년 중국의 ‘16+1 플랫폼’ 설립은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중국식 비정형 국가 간 협상이 지정학적 환경을 형성하고, 방해적 동맹을 관리하며, 전통적 무역 구조를 재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의 ‘빅 노스(Big North)’ 이니셔티브(캐나다, 멕시코, 그린란드 포함)는 외교에서 순수한 힘을 투사하려는 그의 야망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진핑 치하 베이징은 대만에 대한 주권 주장을 강화하며 ‘하나의 중국 정책(One China Policy)’을 확고히 하고 있다. 트럼프의 전략적 우선순위—러시아와 관계 강화, 우크라이나를 전쟁의 공격자로 규정, 대형 사업 거래 추진, ‘빅 아메리카(Big America)’ 어젠다 추진—를 감안할 때, 중화민국(대만)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2025년 3월 TSMC가 미국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한 결정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에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결정은 대만 사회 내 분열을 야기했으며, 일부는 미국이 명시적 방어 보장 없이 중국 본토의 공격에 대응할 경우, 대만의 ‘실리콘 방패’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의 ‘중국제 2025(Made in China 2025, MIC 2025)’와 같은 국가 주도 전략은 미국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양국이 핵심 기술 분야에서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은 중앙집권적 정책을 활용해 기술 거대 기업을 육성했으며, 이는 미국이 특정 분야에서 유사한 접근을 채택하도록 자극했다. MIC 2025는 AI, 양자 물리학, 첨단 제조업 등 전략적 산업에 투자하며, 현지 공급업체에 대한 보조금·인센티브 제공과 외국 경쟁자에 대한 행정적 장벽을 활용한다.
이 모델은 미국의 기술 거버넌스 접근을 재고하게 했다. 예를 들어, 2024년 통과된 CHIPS and Science Act는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상당한 자금을 배정했으며, 이는 중국의 핵심 산업 보호 전략과 유사하다. 미국 혁신경쟁법(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 역시 과학 연구와 혁신에 집중 자금을 제공하며 보다 중앙집권적이고 전략적인 기술 개발 접근을 반영한다. 중국의 전 범위 디지털 경쟁자로서의 부상은 미국으로 하여금 기술 우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압박했다. 예를 들어, NSPM-33(National Security Presidential Memorandum 33)는 외국의 연구·개발 간섭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중국의 기술 자립 강조는 미국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트럼프의 스타게이트(Stargate) 이니셔티브는 MIC 2025의 목표와 유사하게, 외국 기술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혁신을 촉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모델이 미국으로 하여금 기술 거버넌스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전체론적인 전략적 접근을 채택하도록 장려했음을 보여준다.
적과 동맹을 바꾸고, 기존 동맹과의 관계를 해체하다: 바로크적 풍경
베이징과 워싱턴 간의 진정한 협력은 지속적인 목표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작은 마당, 높은 담장(小院高墙)’ 원칙에 따라, 미국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고, 베이징과의 디커플링 전략을 추진하려 한다. 현실적으로 핵 안보, 기술, 글로벌 보건 등 주요 사안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중국은 필수적인 무역 파트너이자 강력한 국가 안보 위협으로 동시에 존재한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최대 오염국으로서 치열한 경쟁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상호 의존성 역시 엄청나다. 중국은 약 8천억 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고, 미국은 월간 약 250억 달러의 대중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수십 년간 중·하위층, 종종 반중 성향의 소비자들이 월마트 등에서 저렴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구매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은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즉, 양국의 핵심 이해관계가 본질적으로 충돌하지는 않는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중국산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며 베이징의 신속한 보복을 유도했고, 중국의 ‘영구적 정상 무역 지위’를 박탈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러나 공격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실제 행동은 캐나다와 유럽 등 일부 전통적 동맹국에 대한 조치보다 중국에 대한 대응이 덜 엄격했다. 또한 그는 2020년 1단계 무역 합의를 이행하지 못한 바이든 행정부를 중국의 불이행보다 더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은 팬데믹을 이유로 비준수했다고 해명했다.
트럼프는 반복적으로 무역을 넘어 비즈니스 약속과 핵 안보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합의에 관심을 표명했으며, 이는 러시아와의 확고하고 충성스러운 관계와 함께 고려되는 요소다.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달러 패권에 도전하려는 시도와 맞물린다.
흥미롭게도, 트럼프는 다양한 관점을 가진 강경 이데올로기와 보수 참모진을 구성했으며, 이들 사이에는 종종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워싱턴의 최고 의사결정권자 중 중국 강경파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으며, 마르코 루비오가 핵심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와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 등 영향력 있는 트럼프 측 중국 관련 고문들은 미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한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내부 불화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실질적 전략은 양국 간 직접적, 1:1 개인 합의를 통한 접근일 것이다.
베이징 관점에서 중국은 부진한 부동산 시장 속에서도 수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전략—특히 무역 정책을 무기화하는 접근법—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관료들은 미국 내 사업 지분 소유, 기술 라이선스,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 북한·이란·이스라엘 문제, 우크라이나 재건 등 지정학적 사안에서의 협력 등 잠재적 제안을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의 거래 지향적 접근에 호응하고, 맞대응식 보복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에드워드 루트왁(Edward Luttwak)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가 모스크바와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균열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이론은 ‘역(逆) 닉슨 정책(reverse Nixon policy)’으로 불리며, 1970년대 리처드 닉슨이 미·소 간 긴장 속에서 중·소 분열을 이용해 중국을 서방과 결속시키고 소련을 고립시킨 전략을 반영한다.
트럼프와 러시아의 관계 강화,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심화된 중·러 관계에 놀란 사람들은 필요할 때 미·중 화해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첫 임기보다 더 파괴적 전략 동맹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이는 베이징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연상시키는 전술과 맞닿아 있다. 20세기 동안 이 세 강대국은 상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동맹을 자주 변경했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권력을 잡은 이후, 이념적 갈등은 군사적 충돌과 중·소 분열로 이어졌다. 2001년 체결된 ‘우호와 친선 조약’은 중·러 관계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러시아는 중국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SCO)에 통합되었다. 2004년 양국은 오랜 국경 분쟁을 해결했고, 2014년에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한 중국의 묵인적 지지가 전략적 결속을 강화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불과 며칠 전, 시진핑과 블라디미르 푸틴은 양국 관계가 냉전 시대 동맹을 초월하며 ‘무제한’이며 ‘금지된 협력 영역이 없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대와 달리, 당시 중국과 소련은 이념과 영토에서 대립했지만, 오늘날의 러시아와 중국은 실용적이며 심화되는 파트너십을 구축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오히려 러시아를 중국과 더 가까워지게 했다.
지정학적 환경의 주요 변화는 미·중 관계가 더 이상 주로 이념적 충돌로 정의되지 않고, 세계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으로 규정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화해와 외교적 단기간 호황의 순간이 나타날 수 있지만, 유럽연합은 트럼프의 워싱턴과 시진핑의 베이징 간 단기적 화해와 장기적 갈등을 모두 예상하며, 어떤 시나리오가 미래에 가장 큰 위험을 초래할지 신중히 판단하며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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