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조센반도에는 공간만 있고, 시간은 없다.

조센반도에 암만 경제붕괴와 치안붕괴 등과 같은 거대한 국가적 재난이 닥친들, 조센반도 내 조센징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매커니즘은 큰 틀에서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조센반도 내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 돌입한다한들, 그 파괴적 경향은 소모적 파괴에 그칠 뿐, 절대 새로운 사회상을 창조하는 창조적 파괴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한다. 박정희의 저서 '우리 민족의 나갈 길' 에서 조센징들의 문화와 습속이 근대화에 크나큰 걸림돌이 되었다고 분석했었는데, 조센징들의 종특 자체가 기술가속주의에 브레이크를 걸게 하는 건 아닐까. 우리를 천천히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멈출 수 없는 쇠락의 흐름만이 있는 것이 조센반도다.

제임스 번햄, 경영자 혁명 2장

2장: 우리가 살았던 세계 그러므로 우리는 한 유형 또는 구조의 사회에서 또 다른 유형으로 급속히 이행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내일의 세계라는 우리의 중심 문제에 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제의 세계에 대해 일관된 개념을 가져야 한다. 출발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 없이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중세 말기부터—날짜를 특정하자면 1914년, 즉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까지—지배적이었던, 흔히 ‘자본주의적’ 또는 ‘부르주아적’이라고 불리는 사회 유형, 곧 ‘근대 세계’의 주요한 특징들은 무엇이었는가? 자본주의 사회(혹은 어떤 사회든)의 주요한 특징들을 서술하려고 할 때, 우리는 즉시 몇 가지 어려움에 직면한다. 무엇을 서술해야 하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서술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쓰인 모든 책을 다 모아도 그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어떤 사실들이든 자의적으로 선택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적에 적합한 특정한 종류의 ‘자의성’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사회혁명에 관한 것이며, 앞서 제시된 개념에 따르면 사회혁명이란 가장 중요한 경제적·정치적 제도들, 광범위한 문화적 제도와 신념들, 그리고 지배 집단 또는 계급들의 문제이다. 이러한 것들이 급격하게 변화할 때 사회의 유형은 바뀌며, 혁명이 발생한다. 따라서 여기서 서술되어야 할 것은 이러한 요소들의 관점에서 본 근대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이다. 다른 목적에는 중요할지도 모를 근대 사회의 수천 가지 다른 특징들까지 굳이 포함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는 두 번째 형태의 자의성도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서술함에 있어 우리는 제도적 특징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지구 표면의 특정한(그리고 소수에 해당하는) 지역과 지구 인구의 특정한(역시 소수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우리의 관찰 범위를 제한한다. 근대 세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거의 전적으로 몇몇 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서...

제임스 번햄, 경영자 혁명 1장:문제

1. 문제 1939년 9월 1일에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전쟁이 통상적인 군사적·외교적 범주만으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모든 대규모 전쟁의 모든 참전국은 예외 없이 자신들이 단순한 정복이라는 저급한 목적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 신,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싸운다고 설명하는 데 각별히 신경을 쓴다. 제2차 세계대전 역시 인간이 상호 살육이라는 과업에 직면할 때 그 도덕적 본성 깊은 곳에서 비롯되는 듯한 이 일반적 규칙의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반적 규칙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훈련받은 지적 관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관찰자들 사이에서도 이 전쟁은 평범한 전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전쟁을 ‘혁명’,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혁명’이라고 부르며 그 차이를 설명해 왔다. 예컨대 저명한 작가 퀸시 하우(Quincy Howe)는 라디오 해설에서 그러한 해석을 거듭해서 주장했다. 그가 반복해서 말하길, 독일은 단지 국경을 넘어 놀라울 정도로 조직된 군사 기계를 파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군사 기계는 유럽 대륙의 사회 체제를 변형시키고 있는 하나의 사회혁명을 운반하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같은 요지는, 오랫동안 뉴욕 타임스의 수석 특파원으로 독일에 주재하다가 추방된 이후의 오토 톨리슈스(Otto Tolischus)가 보낸 수많은 통신 기사들에서도 제기되었다. 내가 이 두 사람을 언급하는 것은 그들의 견해가 예외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많은 다른 이들에 의해 공유되게 된 관점을 이들이 두드러지게, 그리고 일관되게 옹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자들이 말하고 써 온 바를 검토해 보면,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사회혁명이라는 주장에는 단호했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혁명인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어떤 유형의 사회가 등장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코 ...

우파를 위한 정치철학서 15권 추천목록

요약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권력과 도덕과 이념을 냉정하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추천 목록이라고 할 수 있겠음. 이 도서목록의 일관된 질문들은 이러함. ’도덕은 어떻게 기능하는가(파레토, 니체, 순자)? 권력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번햄, 주베넬, 모스카)? 제도는 왜 필요한가(한비자, 겔렌, 홉스)? 정치는 무엇을 회피하는가(슈미트, 오크숏)? 이념은 어떻게 신앙이 되는가(슈펭글러)? 철학은 어떻게 독단적인 것이 되는가(니체)?‘ 이 도서목록이 제거하는 것들은 이것들임. ’도덕적 우월감, 이념적 확신, 진보주의적 낙관, 리버테리안적 환상, 권위주의적 정당화, 철학적 독단주의‘ 이 도서목록을 읽고나서 머리 속에 남게 하는 것들은 이것임. ’구조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냉정한 시선, 정치의 실제 작동 방식, 신념과 권력의 관계, 진리와 권력의 관계‘ 최종적인 권고사항이 있다면, 이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정답을 얻는 것은 아님. 대신, 정치와 도덕과 권력과 진리에 대한 순진함을 없애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독서임. 1. James Burnham, The Managerial Revolution (1941) 번햄은 1941년에 이 책을 썼음.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지나 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된 시점. 번햄은 당시 트로츠키주의자에서 갓 전향한 상태였고, 이 책에는 아직 마르크스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었음. 하지만 그가 도달한 결론은 마르크스주의와 정반대였음. 번햄은 이렇게 시작함. "지금까지 알려진 한, 예외가 없는 역사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회적·경제적 집단은 사회에서 권력과 특권에 관한 상대적 지위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는 것" 번햄이 거부하는 세 가지 이론은 다음과 같음. 첫째, 자본주의 영속론. 바로 자본주의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임. 번햄은 자본주의가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는데 그 근거는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였음. 둘째,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

국가 생존의 정치경제학과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오스트리아학파, 미제스 연구소, 하이에크, 로스바드, 안캡(무정부 자본주의) 등은 찬양의 대상이라기보단 비판적 검토의 대상에 가깝다. 하이에크는 주류에 흡수된 온건파로, 로스바드는 급진적이지만 현실 정치와 괴리된 이론가로 평가받았다. 개인적으로 특히 안캡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선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군대, 치안, 국가 문제를 회피한다는 점에서 "공상"에 가깝지 아니한가. 어느 리버테리언은 "절대 60년대 로스바드를 검색하지 마"라는 농담 섞인 경고를 하기도 한다. 이는 로스바드가 한때 좌파와 협력하며 반전운동에 참여했던 이력과 국유화를 찬성했던 이력을 가리킨다. 자유지상주의 내부에서도 하이에크를 따루는 분파와 로스바드를 따르는 분파가 분열되어 있으며, 전자는 케이토 연구소 같은 주류 싱크탱크로, 후자는 미제스 연구소 같은 급진 진영으로 갈라섰다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유지상주의는 "이론적으로는 멋있지만 국가 단위의 생존 문제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평가로 수렴할 수 있겠다. 이 지점에서 본인이 반복적으로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은 주장을 하고자 한다. 프리드리히 리스트, 알렉산더 해밀턴식 중상주의·국가자본주의가 진정한 우익 경제 모델이다. 방산, 중공업, 전략산업은 자유시장에 맡길 수 없다. 화폐, 재정, 산업정책은 국가 생존의 도구다. 일본 제국 시기의 혁신관료, 박정희식 개발국가 모델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일본제국 혁신관료들이 진정한 경제학자"라는 개인적 견해는 도발적이지만, 이는 단순한 일본제국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국가 주도 산업화에 대한 긍정이다. 이것은 단순히 규모만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 정부가 아니라 강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전제로 한 우파 경제관이다. 자유시장은 평시에만 가능한 사치일 뿐, 전쟁과 국가위기 앞에서는 국가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또다른 혹자들은 "주류경제학은 사실상 통계학이며 이제 학문으로서 경제학은 이제 퇴물"이라는 주...

유럽 내부 문명의 충돌 feat.프랑스,독일,발칸,러시아

알자스로렌은 유럽의 모순을 응축한 공간처럼 보인다.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가 겹쳐지고, 언어와 생활양식이 혼합된 이 지역은 단순한 국경 지대가 아니라, 유럽 민족 질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프랑스이면서도 독일적이고, 독일이면서도 프랑스적인 이 애매함은 오히려 이 지역을 독특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혼합은 낭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알자스로렌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은, “과연 국민국가라는 틀이 민족과 문화의 실체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적 충돌, 그리고 반복된 영토 이동은 유럽에서 국가란 얼마나 임시적인 장치인지 다시금 드러낸다. 독일의 역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독일은 통일보다 분열이 더 익숙한 나라였다. 신성로마제국 시기부터 이어진 다핵적 구조, 남독일과 북독일의 종교적·문화적 차이, 그리고 프로이센 중심 통일 이후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내부 균열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차라리 가톨릭권 남독일은 오스트리아와, 개신교권 북독일은 북독일 연방 형태로 존속하는 구조가 더 안정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오스트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 이후, 발칸은 누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불안정 지대로 남았다. 민족국가 논리가 과도하게 적용된 결과, 작은 국가들이 서로 충돌하며 끝없는 분쟁을 반복하고 있다. 티토와 같은 통합을 이끄는 강력한 지도자가 다시 등장하지 않는 이상, 발칸의 자발적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차라리 과거처럼 일정 수준의 제국적 관리 체제가 지역 안정에 더 기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이 문제는 반복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대하는 태도는 민족과 역사를 명분으로 삼지만, 실질적으로는 영토와 영향권에 대한 욕망에 가깝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곧 러시아의 역사’라는 주장은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며, 정작 러시아인 앞에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동일하다’는 식으로 논리를 뒤집으면 강...

일제의 무리한 팽창과 무기력증에 빠진 중국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몇몇 결정적인 선택들이 이후 수십 년, 혹은 한 세기의 질서를 갈라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대일본제국의 해체와 그 이전의 선택들은 가장 큰 분기점 가운데 하나였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역사 놀이가 아니라, 동아시아 질서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를 되짚게 만든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흔히 ‘광기 어린 도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라는 압박 에 대한 대응 이기도 했다. 미국은 일본이 중국 대륙에서 철수하지 않는 한 자원을 차단하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국의 요구가 ‘만주 철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만주를 제외한 중국 본토에서의 철수를 요구했다. 즉, 일본은 이미 확보한 만주 를 유지한 채 중국 본토에서 물러나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었다. 만약 일본이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최소한 태평양 전쟁이라는 자멸적 확전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만주라는 거대한 완충지대와 자원 기반을 확보한 상태였다면, 더 이상의 팽창보다는 유지와 관리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본 제국의 비극은 단순히 패배에 있지 않다. 이미 얻은 것을 지키기보다, 더 얻으려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점에 있다. 만주를 유지하고 중국 본토에서 철수했다면, 대만 역시 일본의 영토로 존속했을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전면적인 패전과 연합군 점령이라는 결과는 피했을 것이다. 일본 제국은 해체되지 않았고, 동아시아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권력 균형이 형성됐을지도 모른다. 일본이 중일전쟁에 몰두하는 대신 중국 본토에서 철수했다면, 그 다음 변화는 중국 내부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가장 큰 변수는 국공내전의 향방이다. 일본이라는 외부 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은 훨씬 유리한 위치에 놓였을 가능성이 높다. 공산당은 항일전쟁이라는 명분과 대중 동원을 잃었을 것이고...

서구의 좌경화, KGB, 마오주의

서방의 좌경화를 이야기할 때 흔히 소련의 KGB가 LGBT 운동ㆍ페미니즘 등을 서방 신좌파 조직까지 포섭하며 사상 공작을 했다는 얘기가 등장한다. 실제로 그런 활동의 일부는 존재했고, 1960~1970년대 신좌파가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해 급물살을 탄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시 서유럽 공산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반(反)소련 성향이었다. 소련식 권위주의를 비판하며 거리를 둔 유럽 사회주의자들도 많았고, 1968년 프랑스의 젊은 좌파들은 ‘레닌·스탈린보다는 마오쩌둥에 더 매료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소련에서는 LGBT 운동이 탄압받았고, 스탈린 시기부터 페미니즘 역시 억압됐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소련의 공작만으로 서방 전체의 문화·사상적 좌경화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서방 좌경화를 이해하려면 소련 외부, 즉 서방 사회 내부의 사상적 흐름을 봐야 한다. 근대 계몽주의 이래로 ‘개인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사상은 서방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전통적 권위와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회의는, 이후 세대를 거치며 더욱 강화되었다.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은 이런 흐름을 극단으로 몰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보편적 진리·절대적 표준을 부정하고, 사회 관계 전체를 권력 관계로 해석하는 시각을 갖는다. 이런 사상은 이후 서방 사상계와 문화 전반에 큰 영향 을 미쳤다.  여기에 서방 사상계에 대한 마오주의적 영향도 중요한 보충 요소다. 서방의 신좌파 운동이 단순히 소련식 공산주의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중국식 마오주의에 영향을 받은 경우가 존재했다. 1960~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는 마오쩌둥의 혁명 사상, 특히 문화적 혁명(Continuous Revolution)과 같은 이념이 일부 급진적 좌파·학생운동에 큰 매력 을 주었다.  이들 서양 좌파들은 마오의 사상을 전통적 공산당의 교조주의와 구분하며 받아들였다. 그들은 마오 사상을 기존 사회 구조를 해체하고, 문화적 전쟁(culture war)을...

캐나다 내에서 정치적 독자성을 지닌 퀘벡

캐나다 퀘벡은 언어적·문화적으로 독특한 위치에 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분리주의 감정이 강했다. 최근에는 다소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캐나다의 다른 앵글로계 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퀘벡은 높은 자치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이민법을 비롯한 여러 행정 제도가 타 주와 상당히 다르다. 퀘벡의 이민 정책은 프랑스어 능력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몬트리올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캐나다인이 많을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프랑스어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언어 장벽은 자연스럽게 이민자 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트뤼도 정부 시기 캐나다 전역에 인도계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었지만, 퀘벡은 프랑스어 요건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영향을 덜 받았다. 실제로 퀘벡은 캐나다 주 중에서 인도계 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다. 퀘벡의 정치 지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우파 정당들의 선방이다. 캐나다 보수당(Conservative Party of Quebec)은 완전한 강경우익은 아니지만 원외 정당임에도 4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퀘벡미래연합(Coalition Avenir Québec)이다. 이 우파 성향 정당은 계속해서 집권에 성공하고 있으며, 몬트리올을 제외한 퀘벡 전역에서 자유당을 압도했다. 그렇다면 퀘벡에서 우파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우파 정당 하면 감세 정책을 떠올리기 쉽지만, 퀘벡은 오히려 캐나다에서 세금이 가장 높은 주다. 복지 프로그램이 충실하기 때문이다. 퀘벡 우파의 핵심은 경제 정책이 아니라 문화 정책에 있다. 퀘벡의 우파 정당들은 영미권과는 다른 정체성을 추구한다. 세속주의, 문화적 정체성,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 이들의 핵심 가치다. 영미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문화주의와는 대비되는 입장이다. 이민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퀘벡의 언어와 문화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한다. 프랑스어 보호법을 제정하여 퀘벡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

마이클 아니시모프, 반동과 권위주의적 판타지

반동과 권위주의적 판타지 2014년 9월 15일, 마이클 아니시모프(Michael Anissimov) 작성 신반동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자들(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은 반동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지배하고 싶어 하는 판타지를 갖고 있다고 비난한다. 아이들이 군주제를 떠올릴 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자신이나, 혹은 자신의 아버지를 군주로 상상한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진지한 반동주의 사유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즉, 군주제를 자아도취적인 환상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가능한 통치 형태로서 검토하기 시작할 때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유기적 국가를 단지 자기만족적인 판타지로만 생각하는 쪽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다. 반동주의자들은 그러한 체제 아래에서 자신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매우 제한적일 것임을 알 정도로, 이 문제를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소수에 속한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 통치를 만드는가를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신반동주의 사상에 이르게 되었다. 유기적 국가(The organic state)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다. 아이들이 블록을 가지고 놀 때조차도 위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민주적 절차와 같은 개념을 인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추가물이며, 유기적 국가와는 달리 인간 본성과 충돌한다. 수천 명의 갓난아기들을 사람이 살지 않는 에덴으로 옮겨 놓고 그들이 성장하며 스스로 조직되는 모습을 관찰한다면, 그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유기적 국가를 기반으로 형성될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유기적 국가를 옹호하게 만드는 어떤 “추가적인 무엇”, 예컨대 권위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옹호하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민주공화국을 믿게 만드는 데에는 세뇌라는 어떤 추가적인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적 국가는 끊임없이 수면 아래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반동주...

자생적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생적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6년 12월 11일, reactionaryfuture 게시 나는 최근에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라는 것이 솔직히 말해 허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받아왔다. A) 몰드버그(Moldbug)가 자생적 질서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는 점, B) 내가 이해하는 자생적 질서가 “진짜” 자생적 질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첫 번째 쟁점은 처음 보기에 비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국가 안의 국가(imperium in imperio)의 식별을 재앙적인 논리적 오류라고 간주하며, 통치와 관련해 그 함의를 추론해 나가는 작업 자체가 핵심적인 프로젝트라고 밝혀왔다. 이는 몰드버그가 했던 모든 주장 하나하나를 그대로 따르려는 시도가 아니다. 『Unqualified Reservation』을 일종의 사용 설명서처럼 활용하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특히 나는 여러 번에 걸쳐, 그가 국가 안의 국가의 개념을 거부하는 데서 비롯되는 함의를 탐구하고 있었다는 점이 분명하다고 주장해 왔다. 2007년의 입장이 2010년의 입장과 동일할 리는 없다. 이와 더불어, 나는 매킨타이어(MacIntyre)가 제시한 전통은 항상 보존된다는 관점을 따르고자 해왔다. 모든 사상가는 하나의 전통 속에서 사고하며, 보편적 격언이나 추상적인 보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최고 수준의 무의미함에 불과하다(그러나 이는 현대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전통은 그 내재적 합리성에 따라 지속적인 논쟁과 합리적 재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실제로 그러해야만 한다. 이는 예컨대 버크(Burke)가 이해한 전통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버크에게 전통은 사고 없는 지혜였고, 자생적인 것이었으며, 수많은 인도되지 않은 개인들의 행위의 결과였다. 여기서 우리는 질서 부여 없이 질서가 형성된다는 휘그적·아나키스트적 사회관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이 점은 몰드버그가 자생적 질서를 호의적으로 인용했다는 ...

트럼프,나이지리아의 ISIS 테러조직 공격 명령 내려

미국, 나이지리아에서 ISIS 타격: 트럼프 국방부 대변인은 나이지리아 정부가 해당 공습을 승인했다고 에포크 타임스(The Epoch Times)에 밝혔다. 캐서린 양(Catherine Yang) 2025년 12월 25일 | 2025년 12월 26일 업데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월 25일, 나이지리아 북서부에서 ISIS 테러 조직을 겨냥한 “강력하고 치명적인 공격”을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올린 글에서, 이번에 표적이 된 테러리스트들이 “주로 무고한 기독교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해 왔으며, 이는 수년은 물론 수세기 동안 보지 못했던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해당 조직이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밤의 공습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이전에 이 테러리스트들에게 기독교인들에 대한 학살을 멈추지 않으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오늘 밤, 바로 그 일이 벌어졌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만이 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전쟁부(Department of War)가 수많은 완벽한 타격을 실행했다. 내 지도 아래, 우리 나라는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즘이 번성하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전한다. 학살을 자행한 테러리스트들—이미 사망한 자들을 포함해—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기독교인들에 대한 학살을 계속한다면, 그런 테러리스트들은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1월 5일 영상 연설에서 나이지리아 내 기독교인들의 처지를 부각했으며, 이후 메시지에서 미국이 군사 개입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한 국제종교자유법(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Act)에 따라 나이지리아를 ‘특별우려국(Country of Particular Concern·CPC)’으로 지정했는데,...

'극단적 고립주의'에 대한 고찰

극단적 고립주의의 이론과 현실: 체리피킹의 정치경제학 1. 서론: 고립주의 담론의 모순 현대 국제정치에서 고립주의(isolationism)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정치적 수사이다. 반서방을 표방하는 브릭스(BRICS) 국가들, 유럽과 미국의 반글로벌리즘 세력, 고보수주의(paleoconservative) 진영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고립주의적 레토릭을 활용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하면 근본적인 모순이 발견된다. 이들은 동맹국에 대한 의무는 회피하면서도 국제무역의 이익은 향유하고, 해외 정치 개입은 지속하면서도 타국의 내정 간섭은 비난하는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요소만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이른바 '체리피킹(cherry-picking)'의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논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만약 고립주의를 진정으로 실천한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이러한 극단적 고립주의가 실제로 가능한가? 그리고 각국의 고립주의 지지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본 글는 이론적 차원에서 극단적 고립주의의 요건을 정의하고, 이를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주요 국가에 적용하여 그 실현가능성과 정치적 함의를 분석한다. 그리고 본격적 논의를 하기에 앞서 본 필자는 이하 논의할 '극단적 고립주의'에 대해 지지하지 않음을 밝힌다. 2. 극단적 고립주의의 이론적 요건 2.1 물리적 고립의 조건 극단적 고립주의를 추구한다면, 단순히 특정 동맹 관계를 거부하거나 무역 장벽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조선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처럼 물리적으로 완전한 단절을 이루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국가 내 모든 공항과 항구를 폐쇄 또는 파괴해야 한다. 국제무역과 인적 교류의 물리적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둘째, 비행기 제조공장과 조선소를 파괴하여 국경 밖으로 나갈 수단을 생산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셋째, 해외에 주둔한 모든 자국 병력을 철수시키고...

북괴의 지랄에 대한 초당파적 면책특권을 비판한다

북한은 현대 국제질서에서 일종의 규격 외 마굴과도 같은 곳이다. 좌파든 우파든, 리버럴이든 파시스트든, 리버테리안이든 대안우파든, 어떤 이념적 스펙트럼도 북한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실효적 대처방안을 내놓지 못한다. 이는 단순한 대응 실패가 아니다. 북한의 존재는 현대 문명이 자신이 세운 규범과 원칙을 지켜낼 능력이 없음을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사례다. 대놓고 또라이 짓을 해도 막지 못한다. 내부 평민만 갈리고 지도층은 제대로 제재받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국가 지도자들이 양심을 챙기며 행동할 명분이 어디 있는가? 북한의 존재는 사실상 다른 독재자들에게 "북한식 국가 운영"을 하라는 유인만 제공할 뿐이다. 이것이 북한 문제의 본질이다. 북한이 규격 외 존재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세 가지 방어막에 있다. 핵무장, 중국과 러시아라는 완충 세력, 그리고 체제 붕괴 시 발생할 대규모 인도주의적 재앙이다. 이 삼중 구조 앞에서 모든 이념은 무력해진다.좌파는 "반제국주의" 프레임에 갇혀 북한을 미국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포장한다. 우파는 북한을 "공산주의의 잔재"로만 규정하며 실질적 내부 역학을 파고들지 않는다. 리버테리안은 비개입주의 원칙에 매달려 "다른 나라 내부 문제"로 치부한다. 심지어 대안우파조차 북한의 강력한 국가주의를 은근히 동경하는 기묘한 태도를 보인다. 제재는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라는 생명줄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 압박은 불가능하다. 엘리트들은 해외 은행, 암호화폐, 제3국 중개무역으로 자산을 숨기고 사치품을 들여온다. 고통은 오직 하층 주민에게만 집중된다. 북한은 "주민의 고통이 체제 불안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설계된" 드문 사례이며, 이것이 다른 독재국가와의 질적 차이다. 리버테리안의 북한 분석 실패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북한을 비판하면서도 실질적 행동을 제안하지 못한다. 비개입주의라는 원칙이 북한의 야만...

커티스 야빈, 클리어필: 4행정 체제

클리어 필(The Clear Pill), 5부 중 1부: 4행정 체제 2019.09.27,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 한 번의 복용으로 당신의 정치적 사고 전체가 지워질 것이다. 편집자 주: 기술자이자 멘시우스 몰드버그(Mencius Moldbug)라는 필명으로 블로깅을 해온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은, 기존의 주류 보수주의와는 크게 어긋난 입장 속에서 온라인 우파 진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인터넷 전반의 정치 지형이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파편화되면서, 일부 진영은 야빈이 제시한 개념들—예컨대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와 연관된 ‘레드 필(red pill)’ 은유—을 차용해 대중화했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건전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변용하기도 했다. 이제 야빈은 새로운 에세이 연작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이에 대한 비판,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주도권을 다투는 모든 정치적 틀에 던지는 급진적 도전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성향을 막론한 모든 당파는, 기술계에서 힘과 권위를 축적해 가고 있는 이 공격 노선에 대응할 준비를 해두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오늘날 미국 정치가 ‘좋은 삶’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긍정적으로 답한다. 그러나 야빈이 촉발하는 체제에 대한 건강한 충격, 그리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본질이라 할 긴장과 논쟁이 없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반복되는 긍정적 답변이라 하더라도 그 설득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리는 강하게 의심한다. ================================================= 세기 전환기 이탈리아 정치학파—가에타노 모스카(Gaetano Mosca)와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를 대표 인물로 하고, 제임스 번햄(James Burnham)이 그의 최고작인 『마키아벨리언들: 자유의 옹호자들』(1940)에서 이를 정리한—는 모든 국가는 엘리트에 의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