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아니시모프, 반동과 권위주의적 판타지
반동과 권위주의적 판타지
2014년 9월 15일, 마이클 아니시모프(Michael Anissimov) 작성
신반동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자들(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은 반동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지배하고 싶어 하는 판타지를 갖고 있다고 비난한다.
아이들이 군주제를 떠올릴 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자신이나, 혹은 자신의 아버지를 군주로 상상한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진지한 반동주의 사유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즉, 군주제를 자아도취적인 환상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가능한 통치 형태로서 검토하기 시작할 때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유기적 국가를 단지 자기만족적인 판타지로만 생각하는 쪽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다. 반동주의자들은 그러한 체제 아래에서 자신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매우 제한적일 것임을 알 정도로, 이 문제를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소수에 속한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 통치를 만드는가를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신반동주의 사상에 이르게 되었다.
유기적 국가(The organic state)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다. 아이들이 블록을 가지고 놀 때조차도 위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민주적 절차와 같은 개념을 인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추가물이며, 유기적 국가와는 달리 인간 본성과 충돌한다. 수천 명의 갓난아기들을 사람이 살지 않는 에덴으로 옮겨 놓고 그들이 성장하며 스스로 조직되는 모습을 관찰한다면, 그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유기적 국가를 기반으로 형성될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유기적 국가를 옹호하게 만드는 어떤 “추가적인 무엇”, 예컨대 권위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옹호하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민주공화국을 믿게 만드는 데에는 세뇌라는 어떤 추가적인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적 국가는 끊임없이 수면 아래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반동주의 사상의 한 부분은 불평등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 더 정의로운 사람, 더 매력적인 사람, 더 야심찬 사람, 즉 단순히 더 나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상층으로 올라가고, 가족 간의 동맹을 통해 그 지위를 유지할 때 더 잘 작동한다.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택하는 민주사회는 결국 언론을 통제하는 자들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학계의 조언자들에 의해 지배된다. 이러한 구조는 극심하게 요동치며 사회적·경제적 혼란을 초래한다.
불평등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최고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아마도 그에 근접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자들(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은 자신들이 다른 모든 사람과 동등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길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 제도는 현실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반동주의자들 사이에서 우리의 판타지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로부터 벗어난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민에게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 정부의 초대를 재앙으로 본다. 통치는 정교한 회화처럼, 대중 투표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그 역할을 위해 길러진 전문가들에 의해 가장 잘 수행된다. 민주주의는 부엌에 요리사가 너무 많은 격이다. 대중의 통치 참여를 제거하는 것, 율리우스 에볼라가 아폴리테이아(apoliteia)라고 불렀던 이 상태가 우리의 목표다. 일상의 모든 것을 정치화하려는 마르크스주의/진보주의 교리와 달리, 우리는 삶을 탈정치화하고 인간 사회의 자연스러운 현실이 그대로 전개되도록 두고자 한다. 권력에 대한 판타지 대신,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과 공동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지역적 사건과 상황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삶을 꿈꾼다.
우리의 ‘권위주의에 대한 사랑’(혹은 예전에 불리던 말로는 정상성)에 대한 동기는 질서와 문화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지도력이 없으면 기업이 실패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4년마다 교체되는 CEO는 현실적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할 유인도 없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통치 가문이 국민과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깊은 문화적 유대를 갖는 정부를 재창조함으로써, 우리는 범죄율, 사회적 결속, 장기 프로젝트, 국민의 행복, 경제의 건전성 등과 같은 요소들이 개선될 것이라 기대한다. 우리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사적 정부를 옹호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계획이 아니라 점진적 개선을 위한 제안일 뿐이다. 우리에게 사적 정부는 상식에 가깝다.
물론 우리의 비판자들은 프랑스 혁명 이래로 반복되어 온 익숙한 전술로 계속해서 우리를 왜곡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원문 링크: https://archive.is/I1v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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