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A. 도널드, 자유에 반대한 좌파의 역사

자유에 반대한 좌파의 역사


2013년 8월 7일, 제임스 A. 도널드(James A. Donald)


오늘날의 국가는 곧 좌파이며, 좌파가 곧 국가다. 이는 ‘점거’ 운동의 인위적 풀뿌리 자금 흐름을 추적해 보면 결국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좌파의 역사에 관한 몰드버그(Mencius Moldbug, Curtis Yarvin)의 논의를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미국 좌파를 수년, 수십 년, 나아가 수세기에 걸쳐 거슬러 올라가 추적해 보면, 오늘날의 뚜렷하게 반(反)기독교적이며 불균형적으로 유대인 비중이 높은 좌파의 뿌리는 명목상 기독교인이었던 집단으로 귀결된다. 이들은 1940년대의 ‘초(超)개신교도들(super protestants)’이었고, 그들 역시 그럴듯하게 기독교적 기원을 갖고 있었다. 곧 금주운동, 초기 페미니즘 운동, 동의 연령을 상향하려는 운동, 여성 참정권 운동, 노예제 폐지 운동 등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전진하라, 그리스도의 군사들이여”였다.


19세기 영미권 좌파의 중심은 영국이었으며, 이들은 자신을 무엇보다 좌파라기보다 기독교인으로 인식했다. 그들은 ‘누가 더 좌파적인가’가 아니라 ‘누가 더 거룩한가’를 자랑했다. 19세기 초 미국의 좌파는 영국 좌파의 꼭두각시였고, 당시 영국 좌파는 세계를 지배하며 무력을 통해 좌파주의를 강요했다. 예컨대 영국 해군을 동원해 노예제를 폐지한 것이 그러한 사례다. 오늘날에는 미국 좌파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반기독교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이 전환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미국 중심의 지배로의 전환은 남북전쟁 시기만큼 이르게 잡을 수도 있다. 당시 매사추세츠의 신정국가와, 하버드 대학교를 신정의 중심으로 삼은 보스턴이라는 신정 도시가 그들의 신정을 미국 전역에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지배적 좌파는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 인식했고, 실제로 예수보다도 훨씬 더 거룩하다고 여겼으며, 이러한 자기인식은 아마도 194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미국 중심 지배로의 전환을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늦춰서 볼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것은 명확한 극적 단절을 동반한 사건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진행된 과정이었다.


스스로를 기독교인, 더 나아가 저 끔찍하고 증오에 찬 반동분자들인 예수와 제자들보다도 훨씬 더 거룩한 존재로 여기던 인식에서, 스스로를 반기독교적 존재로 인식하게 된 전환은 좌파 권력이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이후에 일어났다. 미국 헌법은 연방 차원에서의 신정정치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은 사실상 연방 차원의 신정국가였고, 따라서 그들의 ‘정치체제’에서 ‘종교’를 떼어내는 작업이 필요해졌다.


그들의 체제에서 ‘종교’를 몰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이미 자신들이 예수보다 더 거룩하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다만 그 작업은 늦게 이루어졌다. 지배적 좌파는 1930~40년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스스로를 ‘타인보다 더 좌파적인’ 존재라기보다는 ‘타인보다 더 거룩한’ 존재로 인식했고, 1950년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유대인들이 권력의 핵심부에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늘날 좌파의 선조들이 기독교로부터 뚜렷하게 이탈하기 시작한 지점은 노예제 폐지 운동에서였다. 신약성서는 노예제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한다. 즉, 기독교인에게 자기 노예를 해방할 것을 부드럽게 권고할 뿐, 이를 의무로 규정하지는 않으며, 다른 사람의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은 분명히 금지한다. 다만 다른 사람의 도망 노예를 보고도 못 본 척 눈을 돌리는 정도는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남북전쟁은 신약성서가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허용하는 범위마저도 현저하고 극적으로 초과했다. 노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대규모로 사람을 살해하고 타인의 재산을 파괴하는 행위는 명백하고도 폭력적으로 비기독교적이다. 노예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이라면, “사람을 훔쳐 팔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라는 구약의 규율을 엄격히 집행하고, 그 결과로 노예제가 점진적으로 소멸되도록 내버려두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


미국 한 세대의 상당 부분을 죽이고 남부의 상당 지역을 불태운 것이 예수보다 더 거룩한 행위였다는 셈이다.


여성 해방에 이르러서는, 그들은 기독교를 완전히 버릴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신약성서는 노예제에 대해서는 다소 미온적으로 비판하지만, 가부장제를 단호하고도 명확한 어조로 지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 참정권의 도입과 함께, 우리는 익숙한 현대 좌파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곧, ‘더 거룩한 예수’라는 오래된 자기인식과 뒤섞인, ‘더 좌파적인’ 현대 좌파가 등장한 것이다.


악명 높은 「악덕 억제 협회(Society for the Suppression of Vice)」는, 오늘날 우리가 ‘빅토리아 시대적(Victorian)’이라는 표현으로 떠올리는 성에 대한 엄격한 비난과 여성에게는 성적 본성이 없다는 믿음을 대표하는 조직이었다. 그러나 이 단체는 우파가 아니라 좌파 운동이었으며, 영국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 성공회에 칼뱅주의 주교들을 들여보내려는 운동, 그리고 「39개 신조」를 실질적 내용 없는 형식적 문서로 만들려는 운동과 동일한 본부에서, 동일한 인물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여성에게는 성적 본성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악덕 억제 협회」가 성공적으로 도입한 각종 억압적 조치들은 본질적으로 반(反)남성적 조치였다. 이는 그 명분이 매우 다르다고 주장됨에도 불구하고, 현대 페미니스트들이 부과한 조치들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악덕 억제 협회」는 이론적으로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정절을 요구한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 점을 자주 강조했다. 특히 ‘양쪽 모두’라는 표현을 지나치게 자주 강조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그 진정성을 의심했거나, 혹은 그들 스스로가 그것을 의심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믿음은, 여성을 정절하게 만드는 일이란 주로 사악한 남성들이 가엾고 순진한 여성들로 하여금 나쁜 일을 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막는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양쪽 모두’를 강조할 때, 어쩌면 그것은 성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존재는 여성이며, 여성 자신과 가족, 사회의 안녕을 위해 여성을 억제해야 한다는 우파적 관점에 대한 반박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그 ‘양쪽 모두’라는 강조는 죄책감과 방어심리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위선자는 우리가 아니라 너희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위선자였던 쪽은 바로 「악덕 억제 협회」였다. 이론적으로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성행위를 반대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타락한 여성’을 구제한다는 여러 운동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운동이 제시한 ‘구제’란, 혼외 성관계를 가진 여성에게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회적·법적·경제적 불이익을 제거해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실제로는, 겉으로는 성적인 것을 거부하는 단체였다고 여겨지는 「악덕 억제 협회(Society for the Suppression of Vice)」는, 오늘날 겉으로만 성관계 친화적임을 자처하는 현대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베타 남성들이 성관계를 갖는 것에는 반대하면서, 여성들이 결혼 밖에서 알파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것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흐름은 크롬웰(Cromwell)의 청교도들이 결혼을 탈신성화(desacralize)하고 이혼을 합법화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친성적인 입장을 표방하는 현대 페미니즘 운동은, 실제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강간’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 인적·조직적 연속성은 크롬웰의 청교도들까지 이어진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사생아를 집으로 데려오며, 이는 파국적인 결과를 낳는다. 또한 그 시대의 우파, 곧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반동주의자들’의 관점에 따르면 여성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성욕이 강한 성(性)이었다. 그렇다면 남성의 성을 통제하기보다 여성의 성을 통제해야 한다는 사고는 완전히 일관된 논리다. 이중적인 기준은 생물학에 기초해 있으며, 그 자체로 위선적일 이유가 없다. 당시의 우파와 오늘날의 반동주의자들은 이 이중 기준에 대해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진정으로 위선적이었던 것은, 악덕을 억제하자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여성들을 그 악덕의 결과로부터 보호하자고 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위선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들이 낯선 사람들과 술에 취하도록 장려되지만, 만약 낯선 사람과 함께 눈을 뜨고 끔찍한 숙취를 겪게 되면, 그것은 곧 강간이 되며, 그 낯선 남성은 강간범이 되고, 그 가엾고 순진한 여성은 강간 피해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금주운동은 여성 해방 운동 및 여성 참정권 운동과 인적 구성과 우편 주소가 대규모로 겹쳐 있었으며, 그 인물들과 조직, 그리고 주소의 일부는 노예제 폐지 운동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식사 자리에서 사회적으로, 그리고 절제된 방식으로 술을 마셨다는 점을 고려하면, 알코올 금지 운동은 예수보다 더 거룩한 태도를 취한 셈이며, 이는 곧 바리새인과도 같은 태도였다.


마찬가지로 예수와 제자들은 노예제라는 제도를 받아들였고, 노예들에게 도망을 권하지 않았으며, 타인의 노예를 해방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그런 점에서 노예 해방 운동 역시 예수보다 더 거룩한 태도를 취한 것이며, 이는 다시 말해 바리새인과도 같은 태도였다.


예수와 제자들이 엄격한 가부장제를 단호하게 승인하고 명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 해방 운동은 예수보다 더 거룩한 태도를 취한 것이며, 다시 말해 바리새인과도 같은 태도였다.


이처럼 빅토리아 시대의 ‘점점 더 큰 거룩함’을 향한 운동은, 훗날 ‘점점 더 큰 좌파성’을 향한 운동을 예고하고 그 자체로 전환되었으며, 오늘날의 좌파적 특이점(left singularity)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어권 좌파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적 구성과 이념의 연속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 이념은 청교도적 기독교에서 유니테리언 보편주의(Unitarian Universalism)를 거쳐 현대 좌파로 서서히 변화했지만, 그 변화는 급격한 단절 없이 느리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시간이 흐르며 이념의 거의 모든 세부 사항은 바뀌었지만, 크리스마스에 대한 전쟁, 결혼의 모독, 여성 해방이라는 세 가지 요소만은 끝까지 유지되었다. 다만 그 정당화 논리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어떤 때에는 크리스마스가 지나치게 이교도적이라는 이유로, 또 어떤 때에는 충분히 이교도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공격받았고, 때로는 기이하게도 이 두 논리가 동시에 동원되기도 했다. 반면 결혼의 모독은 그들이 스스로 그것을 하고 있다고 인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설명조차 제시되지 않았으며, 여성 해방 역시 그들이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 인식하던 시기에는 정면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위를 사회적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에 반대한다는 것은 곧 국가에 반대하는 것이며, 국가에 반대한다는 것은 곧 좌파에 반대하는 것이다. 국가를 크고 강력한 형태로 대체하려는 이들과, 작지만 강력한 형태로 대체하려는 이들 사이의 불일치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이유는, 중앙 권력, 즉 연방 차원의 권력이 지나치게 많은 일을 시도할 경우 규모의 불경제로 인해 필연적으로 무능하고, 파괴적이며, 무질서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정부는 어떤 의미에서는 신권정치적이다. 그 이념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척하든, 혹은 공산주의처럼 실제로 신을 전혀 갖지 않든 마찬가지다. 신권정치의 적용 범위를 지역 수준으로 제한할 수도 있다. 이는 미국이 남북전쟁 이전에 취했던 방식이다. 또는 오스만 칼리프국처럼, 하나의 종교가 제국적 지배를 행사하되 다른 종교들을 속국의 종교로 관용하는 방식도 있다. 이는 마치 황제가 여러 종속 왕들 위에 제국적 권위를 행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신권정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상태는, 어떤 형태로든 무정부 상태뿐이다.


정부가 존재하는 한, 그 정부는 학교를 통제하게 되며, 노골적으로든 은밀하게든 교회를 통제하면서 특정한 관점을 가르치도록 만들게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관점이 무엇이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공식적인 신념 체계가 오늘날처럼 지나치게 많은 이단을 금지하게 되면, 과학과 기술은 정체된다. 과학적·기술적 사고방식 자체가 적대적이고 전복적이며 저급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위키피디아에서는 증거가 금지된다. 오직 권위의 목소리만이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반대로, 적대적인 외부 신권정치적 신념 체계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적일 경우, 공식 신정 체계는 더 열정적이고, 더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으며, 더 억압적인 신념 체계에 의해 침투되고 전복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러한 일은 신권정치적 성공회주의(theocratic Anglicanism)에서 일어난 바 있다.


원문 링크: https://blog.reaction.la/culture/the-history-of-leftism-against-freedom/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주권(主權), 책임, 소유: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 일치의 방법론에 관하여

정치적 자유라는 이름의 버퍼(Buffer)

일본천황 황위 계승권 개정안 통과, 여성 천황 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