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티스 야빈, 최적화된 자율조직
최적화된 자율 조직
“만약 치폴레(Chipotle) 주주들이 다음에 출시할 새로운 부리토(Burrito) 맛을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2022년 3월 26일 /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
2022년 현재, 탈중앙화된 자율조직(역주: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계약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 형태로, 중앙의 관리자나 법적 실체 없이도 규칙 집행과 의사결정이 자동화된다. 일반적으로 거버넌스 토큰 보유자들이 제안과 투표를 통해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며, 그 결과는 코드로 강제된다. 다만 실제 운영에서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가 강해 효율성·책임성 문제, 이해충돌, 대리적 목적의 개입 등이 빈번히 논의된다.)은 일종의 실재하는 제도가 되었다. DAO는 존재하며, 농담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022년의 DAO 표준 설계는 경험과 경쟁을 통해 무자비하게 최적화된 결과물이 아니다. 따라서 현 시점의 관행이 어떤 의미에서든 최적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참여자들의 경험이라기보다는 희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자율적(autonomous)이라는 것과 주권적(sovereign)이라는 것은 물론 동의어이거나, 적어도 거의 동의어에 가깝다. 우리가 DAO를 위한 계약을 작성할 때, 우리는 사실상 하나의 정부를 위한 헌법을 작성하고 있는 셈이다. 두 경우 모두에서, 해당 조직을 직접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상위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조직은 모든 경쟁 권력으로부터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어떤 힘—수학적이든 군사적이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법인(corporation)과 대비해보자. 법인은 자율적이기는커녕, 결코 자율적이지 않다. 주권체처럼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는 하지만, 그 운영 절차는 더 높은 정부의 법률에 의해 규제된다. 주권 권력은 원한다면 기업에 대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은 수학이 아니라 변호사를 통해 계약을 집행해 줄 것을 그 주권 권력에 의존한다. 최근에 변호사를 고용해 본 적이 있는가? 변호사들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의 구조는 무자비할 정도로 최적화되어 왔다. 규모와 야망이 큰 기업들은 역사상의 많은 주권 국가들과 맞먹거나 이를 능가한다. 만약 애플이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 혹은 스페이스X가 로켓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조직하는 데 더 나은 방식이 존재했다면, 아마 누군가는 이미 그 방식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 대신 영미식 유한책임 주식회사라는 기본 설계는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대체로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되어 왔다. 다만 역설적인 시각을 지닌 역사학자라면, 산업혁명은 실은 ‘기업 혁명(Corporate Revolution)’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식회사 설계가 완벽하게 최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거의 최적에 가까운 형태일 것이라 기대할 수는 있다.
이 두 조직 유형 사이에는 범주적 차이가 존재한다. 이를 각각 1차 조직(주권적 조직)과 2차 조직(계약적 조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사회를 보면, 매우 효과적인 2차 조직들은 존재하지만, 그에 비해 효과적인 1차 조직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2차 조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DAO를 설계할 때에는 정치학이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에서 출발해야 한다.
주권적 권력과 계약적 권력 사이에는 분명한 범주적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이 차이에 맞게 기업 설계를 조정해야 하며, 동시에 종이 문서의 시대에 기원한 낡은 장식물—즉 불필요한 구조적 잔여물들—은 최적화 과정에서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최적’인 무언가를 찾고자 하고 있다. 이제 이를 DAO라는 맥락 속에서, 처음부터 다시 도출해보자. 곧 최적화된 자율 조직(Optimal Autonomous Organization, OA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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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과 책임성
최적화된 자율조직(OAO)은 효율성과 책임성의 결합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된다.
OAO를 모래시계 형태로 그려보자. OAO의 최상단에는 통치자들(governors)이 있다. 그 아래에는 역피라미드가 놓이며, 이는 다시 더 작은 정방향 피라미드로 이어진다. 이 작은 피라미드의 밑면이 바로 이사회(board of trustees)이고, 그 꼭짓점—두 피라미드가 만나는 지점—이 최고경영자(CEO)다. 이 결절점 아래에는 정방향 피라미드, 즉 고전적인 조직도에서 보이는 직원 위계 구조가 펼쳐진다.
통치자들은 이사회를 선출하고, 이사회는 CEO를 선임하며, CEO는 직원들을 지휘한다. 이 단순한 군주제적 설계는 세상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낸 구조다. 주위를 둘러보라—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은 군주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스무 개쯤의 군주제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쪽의 보조 피라미드는 책임과 통제를 담당한다. 아래쪽의 운영 피라미드는 권한과 효율성을 담당한다. 이 둘의 결합은 곧 책임 있는 군주제, 혹은 설명 가능한 군주제—본질적으로는 ‘자비로운 독재’라 할 수 있다.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역사는, 어떤 규모에서든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해내는 데 있어 피라미드형 위계 구조가 최선의 방식임을 입증해왔다. 고전적인 피라미드형 군주제가 주권적 차원에서 갖는 근본적 문제는, 정상부에 존재하는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이다. 주식회사(Joint-stock company) 설계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토대를 제공하지만, 이 해결책은 지금까지 주권적 차원에 제대로 적용된 적은 없었다.
주권 군주제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덜 자주 실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책임성이 없는 전제정(autocracy)은 실제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만약 체제의 효율성에 거의 타협하지 않거나 전혀 타협하지 않은 채 책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아마도 거의 최적에 가까울 것이다.
모래시계형 구조의 목적은 효율성과 책임성이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책임성은 일정 수준의 역량을 보장하며, 이는 간접적으로 정상 상태의 유지까지 담보한다. 다시 말해, 자율적이면서도 광기에 사로잡힌 CEO-독재자-군주가 등장할 수 있다는 공포를 해소해준다. 물론 책임성은 효율성에 0이 아닌 영향을 미친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CEO의 행동 반경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비용은 충분히 감내 가능한 수준일 수 있다.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는 기업 경영(corporate management)과 동일하지 않다. CEO는 언제나 경영자다. 이사회가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하는 기업은 재앙이다. 이 경우 책임성은 효율성을 크게 잠식하지만, 주주들이 직접 경영에 나서는 경우보다는 덜 나쁘다.
잘 구성된 이사회의 목표는 단 하나다. CEO가 모든 합리적인 기준에서 탁월한 인물임을 보장하는 것이다. 순수한 수치적 목표들은 극도로 유용하지만, 언제나 직관에 반하는 방식으로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인간으로 구성되는 이유는 인간이 상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조직은 상식을 위반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이사회는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고, 실제 권력 행사의 현장에 관여하지 않으며, 성공적인 기업에서는 아예 자문을 받을 필요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이유로, 이사회의 대리적 목적은 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다.
이사회는 기업의 운영 루프에 속하지 않는다. 이사회는 일종의 백업 장치다. 권력은 사람을 타락시키지만, 권력은 이사회를 타락시키지 않는다. 이사회는 권력으로부터—적어도 그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 있는 어떤 권력으로부터도—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의 핵심적인 존재 이유는 가능한 한 적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며, 바로 그 점에서 이사회는 문자 그대로 독립적이다.
이사회는 다른 형태의 책임성 유사 기능을 위해 재목적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구조적 결정을 승인하거나, 예산을 설정하거나, CEO의 보수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DAO에서의 이사회는 재무 금고의 콜드 월렛을 집단적으로 통제하거나, 그 금고에서 조직으로 유입되는 자금 소진률을 설정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회가 정책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기업 경영의 한 플레이어가 된다. 이는 효율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성과뿐 아니라, 이사회 자체의 성과 역시 저하시킨다. 이사회는 더 이상 독립적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요 기업 이사회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며,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뼈아프게 배워왔듯이, 어떤 이사회든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미시적 개입을 자제한다. 이는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이사회 스스로의 문화적 자율성에 따른 선택이다. 전문 이사회의 목적은, 무작위로 모인 잡다한 통치자 집단과는 달리, 문화적으로 표준화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주들이 CEO를 직접 선출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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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DAO는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있는 재미있고 실제로 작동 가능한 개념이지만, 아직까지는 ‘진짜’ 기업들과 같은 링 위에서 자신의 체급에 걸맞은 타격을 가할 정도로 성숙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DAO들이 모두 (a) 위원회에 의해, (b) 민주적으로, 혹은 (c) 비공식적인 권력 구조에 의해 통치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버넌스 형태들은 전제적 효율성(autocratic efficiency)이라는 강점을 지닌 주식회사(joint-stock corporation)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가능성이 없다. 기업의 열차는 제시간에 운행된다. 그 결과 DAO들은 보호된 틈새 영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OAO는 현대화된 주식회사 설계를 적용한 DAO다. 모든 공식적 기업을 느리게 만드는 형식적 의례들을 제거하는 동시에, 그 기업들을 확장 가능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경영 구조는 유지함으로써, 새로운 경영 형태와 기존 경영 형태 사이에 보다 대등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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