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럴의 인식 틀을 어떻게 깨는가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d4gvyjY20ec
리버럴의 인식 틀을 어떻게 깨는가
2024년 12월 11일 / The Aristocratic Utensil (a.k.a. sp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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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번에도 벌집을 걷어찬 데에 충분히 한몫했고, 앞으로도 또 그럴 것이다. 원래 고집 센 놈이기도 하니,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내 청중에게 전부 좆이나 까잡수고 지옥이나 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건 그렇고, 본론으로 더 들어가기 전에, 이 영상 뒤에 Vex Electronica와 함께 Huang and the Whitelist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또 다시 라이브로 진행할 예정이다. 빠꾸 없는 꽤 재미있는 방송이 될 거다. 자, 이런 말들을 다 했으니, 남아 있는 여러분을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찾아보자.
안녕들 하신가? 자, “리버럴의 인식 틀을 어떻게 깨는가?”라는 문제로 들어가 보겠다. 사실 이건 특정 이념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리버럴 쪽이 가장 극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그 예를 드는 것뿐이다. 그 단계까지 도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더 이야기하겠다.
X(구 트위터)나 디스코드에서 내게 DM을 보내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그들에게 원래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조합해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해줬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이렇게 얘기한다. “군주제야말로 자연스러운 질서인 것 같지 않나요?”하고 말이다.
결국 내가 했던 일은 흩어진 점들을 연결해주는 펜 역할이었고, 그들 스스로 ‘식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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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렇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런 “식견”이 생겼다는 걸 깨닫고 나면, 동시에 대다수는 그 식견이 없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
“어… 스푼(spoon), 사람들이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못 알아듣는데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그리고 이런 질문이나 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댓글란에 답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알려달라. 솔직히 말해 나도 뾰족한 답이 없다.
내 채널을 몇 년 동안 지켜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여기는 거의 내 정치적 변천을 기록해온 공개 일기장 같은 곳이다. 그래서 일단 임시방편 정도는 제시해보려 한다.
비록 여기서 정치 해설을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나는 보통 사람과 정치 얘기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2차 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 속에서 리버럴리즘은 절대 틀리지 않고, 파시즘은 절대 옳지 않으며, 어떤 구제될 만한 점도 없다고 간주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평범한 병신들과 정치 얘기를 하다 보면, 결국 세상을 이 두 개의 틀 가운데 하나로 볼 수밖에 없게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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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대화 중에 누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마르크스주의 같은 단어만 꺼내도, 내 머릿속은 바로 ‘쾅!’ 하고 터져버리고, 나는 그 즉시 대화를 끊어버린다.
영국 쪽 콘텐츠 크리에이터 중에 Jimmy the Giant라는 사람이 있는데, 한 번 그의 디스코드 서버에서 이 방법을 시험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오래 못 갔다. 내가 누구인지 들켜버렸고, 망할, 어떤 미친 여자가 나를 캐버노(역주: Brett Kavanaugh. 브랫 캐버노는 미국 연방대법관이며, 브랫 캐버노 사태는 2018년 미국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치·사회적 논쟁을 말한다. 그는 대법관 인준 과정에서 과거 성폭력 의혹이 제기되며, 정치권·언론·여론 전반에서 극심한 비난, 공격,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움직임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이 사건은 미국에서 정치적 망신주기, 인격 살해의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사태 때처럼 난도질하려 들었다.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트롤링을 할 수 없다는 게 참 성가신 일이다.
아마 여러분이 이 방식을 적용하면 나보다 성공률이 더 높을지도 모르겠다.
이 역공 기제(counter mechanism)는 사실 아주 단순하다. 단 두 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0세기의 멍청한 정치 라벨링을 전부 우회하여 바로 상대의 정치적 사고 구조의 핵심에 다가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첫 번째 질문. “당신은 국가가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가?”
이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므로, 몇 년에 한 번 투표용지에 체크하는 동화 같은 절차를 빼앗기면 오만상 찌푸리며 비명을 지를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아마 온갖 지랄들을 주르륵 나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내가 ‘희망사항 정치(wishlist politics)’라고 부르는 것과 맞닥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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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에 주목해라. 이는 그들이 국가 운영에 대해 갖고 있는 도덕적 관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다음이자 마지막 질문이다. “잠시 민주주의에 대한 전제는 제쳐두고 생각해볼 때, 정치인이 왜 당신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민주주의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만약 민주주의가 잘 기능했다면 이런 질문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정치인들이 지금과 같은 평판을 가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앞선 질문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그들의 도덕성을 묻는 방향이었다면, 이번 질문은 정치인이 실제로 ‘그럴 것인가’, 즉 정치인에게 작동하는 인센티브 구조로 초점을 옮긴 셈이다.
이때 그들의 얼굴 표정을 유심히 보라. 정치 계급(political class)이 유권자인 당신이 원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만의 욕망을 갖고 있다는 개념을 이해하는지 여부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그냥 죽은 생선과 다름없다. 넘어가라.
질문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진짜 그 정도로 간단하다.
당신은 아마 세 종류 중 하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미 이런 문제를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물에 던져 넣자마자 바로 헤엄치듯 이해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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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유형은, 이런 개념들을 전에 들어본 적은 없지만, 내 댓글란의 ‘깨달은 사람들’처럼 사고력이 있어서 이 개념들을 생각해도 패닉으로 회로가 타버리거나 기절해버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서 말한 그 답이 안 통하는 인간들이 있다. 인간 본성도 모르고, 인센티브도 모르고, 국가 운영에 대해서도 전무하고, 정치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부류 말이다.
그러니까, “여성 참정권 부여를 철회하는 게 정상화의 첫걸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바로 그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럼 라이브에서 보자고. 봐줘서 고맙고—다시 한 번 말하지만—난 아무것도 사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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