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번햄, 경영자 혁명 2장
2장: 우리가 살았던 세계
그러므로 우리는 한 유형 또는 구조의 사회에서 또 다른 유형으로 급속히 이행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내일의 세계라는 우리의 중심 문제에 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제의 세계에 대해 일관된 개념을 가져야 한다. 출발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 없이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중세 말기부터—날짜를 특정하자면 1914년, 즉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까지—지배적이었던, 흔히 ‘자본주의적’ 또는 ‘부르주아적’이라고 불리는 사회 유형, 곧 ‘근대 세계’의 주요한 특징들은 무엇이었는가?
자본주의 사회(혹은 어떤 사회든)의 주요한 특징들을 서술하려고 할 때, 우리는 즉시 몇 가지 어려움에 직면한다. 무엇을 서술해야 하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서술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쓰인 모든 책을 다 모아도 그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어떤 사실들이든 자의적으로 선택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적에 적합한 특정한 종류의 ‘자의성’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사회혁명에 관한 것이며, 앞서 제시된 개념에 따르면 사회혁명이란 가장 중요한 경제적·정치적 제도들, 광범위한 문화적 제도와 신념들, 그리고 지배 집단 또는 계급들의 문제이다. 이러한 것들이 급격하게 변화할 때 사회의 유형은 바뀌며, 혁명이 발생한다. 따라서 여기서 서술되어야 할 것은 이러한 요소들의 관점에서 본 근대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이다. 다른 목적에는 중요할지도 모를 근대 사회의 수천 가지 다른 특징들까지 굳이 포함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는 두 번째 형태의 자의성도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서술함에 있어 우리는 제도적 특징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지구 표면의 특정한(그리고 소수에 해당하는) 지역과 지구 인구의 특정한(역시 소수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우리의 관찰 범위를 제한한다. 근대 세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거의 전적으로 몇몇 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서만 도출하는 것은 다소 협소하고 자기중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결국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는 더 넓은 영토와 더 많은 인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의성 역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의 특수한 문제는 중앙 인도나 중국, 혹은 아프리카에서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사회 유형이 아니라, 영국·미국·프랑스·독일과 같은 나라들에서 근대기에 지배적이었던 사회 유형이 현재 무엇을 겪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밝혀내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떠나서 보더라도, 근대 사회를 이들 국가들의 제도들을 기준으로 규정하는 것이 부당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중세 이후의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행사해 온 것은 바로 이들 국가들이었으며, 그 영향력은 자국의 경계를 넘어서 세계적 차원에까지 미쳤다. 이들의 제도는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의 제도들에 깊은 영향을 끼쳐 왔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곧, 그 광대한 대륙들에 토착한 제도들이 근대의 주요 강대국들에 이와 견줄 만한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성격을 종합하려 할 때, 우리가 어떤 국가들과 민족들에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모든 기준에서 볼 때 대영제국이 가장 앞선다. 영국이 부상하기 이전에는, 특정한 핵심적 근대 정치 형태들에 대한 초기적 근사라는 점에서 프랑스가 특별한 주목을 받을 만하다. 또한 중요한 경제적 발전과 관련해서는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게르만 한자(동맹)의 도시들, 그리고 이후에는 저지대 지역의 도시들이 중요하다. 프랑스는 18세기 후반에 다시 중요성을 획득하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프랑스와 영국에 미국과 독일이 합류하고, 보다 부차적인 역할로 러시아·이탈리아·일본이 뒤따른다. 근대 세계란 아프가니스탄이나 니카라과, 몽골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국가들의 세계였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전형적인 경제 양식에 의해 특징지어져 왔다. 이 경제 양식은 여러 차례의 주요한 단계와 변형을 거쳤으며, 역사상 알려진 그 어떤 경제보다도 더 유동적이고 변화가 심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형들 전반에 걸쳐 몇 가지 결정적인 특징들은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특징들 모두는 자본주의 경제에 선행했고, 또한 그로부터 자본주의 경제가 진화해 나온 봉건 경제의 두드러진 특징들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전형적인 특징들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첫째,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은 상품 생산이다. 생산 과정에서는 수천 가지의 상이한 재화들이 만들어지며, 그 성격도 다양하고 수많은 서로 다른 인간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적합하다. 어떤 것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고, 어떤 것은 우리를 장식하며, 어떤 것은 먹을 것을 제공하고, 또 어떤 것은 오락을 제공하는 등 그 용도는 다양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이처럼 서로 다른 모든 재화들이 하나의 추상적 속성, 즉 흔히 ‘교환가치’라고 불리는 기준에 따라 서로 직접 비교될 수 있다. 이 교환가치는, 그 현상을 분석하는 경제 이론에 따라 정확하게 혹은 근사적으로, 화폐 가격으로 표시된다. 특정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질적 속성의 관점이 아니라, 모든 생산물이 동일한 종류이며 오직 양적으로만 차이가 나는 교환가치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산물—이것이 바로 ‘상품’이라 불리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신발이든 조각상이든, 노동이든 주택이든, 두뇌든 금이든 간에 모두 화폐 가치를 부여받고, 화폐라는 기호를 통해 화폐가 수행할 수 있는 무수한 거래와 조작의 대상이 된다.
가장 원시적인 사회를 제외한 모든 사회는 그 재화들 가운데 일부를 상품으로 생산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를 제외한 모든 사회, 특히 자본주의에 선행했던 봉건 사회에서는 상품이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작았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회들에서는 재화의 압도적인 대부분이 즉각적인 생산자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생산되었으며, 교환에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따라서 상품으로 기능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교환가치나 화폐를 먹거나 입을 수는 없다. 생존을 위한 생산에서 중요한 것은 재화의 가격이 아니라, 특정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해 주는 그 질적 속성들이다.
그러나 다른 사회들에서, 특히 봉건 사회에서 재화가 교환에 들어가는 경우에도, 그것들은 대개 상품으로서 교환되지는 않았다. 중세의 교환은 대부분 화폐를 위한 교환이나 화폐를 매개로 한 교환이 아니라 현물 교환이었다. 이 경우에도 사고파는 농민의 관심사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가격이나 지불해야 할 가격이 아니라, 한 종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잉여 재화를 다른 종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어떤 것과 맞바꿀 수 있는지 여부였다.
둘째, 전면적이고 결정적인 화폐의 역할 역시 자본주의 경제의 명백한 특징이며, 사실상 상품 생산의 필연적 귀결이다. 화폐는 자본주의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다른 사회들에도 존재해 왔지만, 어느 사회에서도 자본주의가 화폐에 부여한 것과 비교할 만한 역할을 수행한 적은 없다. 이러한 차이는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 화폐의 다양한 형태를 다루기 위해 발전된 복잡한 은행·신용·통화·회계 장치들 거의 모두가 근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으며, 더욱 인상적인 점은 중세의 대다수 사람들은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화폐를 보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현대 세계에서 화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설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개인의 삶의 차원에서든, 국가의 부채라는 차원에서든 말이다.
화폐와 관련하여 하나의 신념을 언급할 가치가 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즉, 지폐·어음·신용 등 모든 형태의 화폐는 궁극적으로 금속 화폐, 특히 은과 금에, 그리고 발달된 자본주의에서는 무엇보다도 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대다수 경제학자들에게 거의 하나의 교리와도 같은 것이었으며, 지금도 일부에게는 여전히 그러하다. 그리고 실제 사실에 일정한 근거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가격과 가치의 관계, 나아가서는 생산 전체의 움직임마저도 금속 화폐의 보유량과 연관시키려는 여러 법칙들이 정식화되었다.
셋째,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는 하나가 아니라, 서로 전혀 다른 두 가지 주요한 경제적 기능을 가진다. 이 가운데 두 번째 기능의 막대한 발전 속에 자본주의 경제를 구별짓는 또 하나의 특징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화폐는 교환의 매개물로 사용된다. 이 용법은 다른 사회 유형들에서도 발견되며, 이 점에서 자본주의는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교환이 화폐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정도가 훨씬 더 크다는 점—발달된 자본주의에서는 거의 전면적인 수준에 이른다는 점—에서만 그들과 구별된다.
반면에 화폐는 자본으로 사용된다. 즉 “화폐가 화폐를 낳는다.” 이러한 기능은 다른 사회 유형들에서는 거의 발달하지 않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자본주의하에서 화폐는 원자재·기계·노동으로 전환될 수 있고, 그렇게 생산된 생산물은 다시 화폐로 환원되며, 그 결과로 얻어진 화폐의 총액은 최초의 금액을 초과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과정은 누구를 속이거나, 통용되는 법적·도덕적 규범을 위반하지 않고서도 수행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인정된 정의와 도덕의 규칙들에 완전히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화폐가 자본으로 기능하여 더 많은 화폐를 만들어 내는 경우와, 화폐가 대부되어 이자를 낳는 경우 사이의 차이는, 장부상의 수치 아래로 내려가면—그 차이가 보통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영역이지만—다소 난해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또한 자본주의 이전의 다른 사회들에서도, 비록 훨씬 제한적인 범위이기는 했지만, 화폐가 이자를 받고 대부되었던 경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모든 사회에서 그러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면, 결정적인 실천적 구분은 다시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세 동안 화폐는 주로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상당한 규모로 대부되었다. 하나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베블런이 ‘과시적 소비(conspicuous waste)’라고 불렀던, 거대한 성채·기념물·교회 건설과 같은 사업들을 위한 것이었다. 화폐가 이자를 붙여 상환되는 경우에는(그렇지 않은 경우도 자주 있었으며, 이 때문에 명목 이자율이 종종 100%를 훨씬 넘을 정도로 매우 높았다), 그 상환 자금은 공물의 형태로든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거두어들인 수탈, 혹은 정복한 민족에 대한 노골적인 약탈을 통해 조달되었다. 이는 화폐가 자본으로 사용되는 경우처럼, 정상적인 생산적 경제 과정에서 나오는 수익에서 상환되는 것과는 달랐다.
이러한 제약들에 대한 주된 예외는 장거리 무역이었다. 중세에서 상인은 흔히 대상(隊商)의 우두머리이거나 선장의 역할을 겸했는데,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그 사업에 투입한 자금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이익은 자본 이윤과 이자 사이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탈리아와 게르만의 일부 도시들에서 화폐의 추가적인 자본 기능이 발견되는 경우, 우리는 전형적인 봉건 경제 제도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초기 단계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세적 상황은 경제 문제를 다룬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저작들에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들의 저술에서는 화폐가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개념을 찾아볼 수 없다. 화폐를 대부하고 이자를 받는 것조차도(그러한 의미에서조차 화폐가 화폐를 낳도록 허용하는 것), 그들이 대출이 통상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리대금이라는 중죄로 단호하게 규탄되었다. 철학자들이 이를 죄로 규정한 것은 통찰력 있는 판단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관행이 체제를 전복하는 성격을 지니며, 만약 그것이 확산될 경우 자신들의 사회 구조를 파괴하게 되리라는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때로는 상선 운송을 위한 자금에 한해서는 이자를 붙인 대부가 도덕적인 예외로 인정되었는데, 이는 그러한 용도가 사실상 유일한 중요한 생산적 사용처였기 때문에, 덜 죄악적인 것으로, 혹은 심지어 도덕적인 행위로 간주되기도 했다.
넷째, 자본주의하에서 생산은 이윤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기보다는 변호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일부 저자들은, 이와 같은 상식적인 관찰조차 비방으로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이는 아마도 그들이 이 명제를 흔히 부여되는 심리적 의미로, 즉 개별 자본가들이 언제나 개인적인 이윤 욕구에 의해 심리적으로 동기부여된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것이 때로는 사실이지만, 결코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관찰은 심리적 진술이 아니라 경제적 진술이다. 정상적인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본주의 기업이 일정 기간에 걸쳐 이윤을 내야만 계속 존속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윤을 목적으로 수행된다.
예컨대 어떤 신발 공장이 계속 운영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공장 주인이 신발 만들기를 좋아하는지 여부도 아니고,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는지 혹은 신발이 부족한지도 아니며, 노동자들이 임금을 필요로 하는지도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그 생산물이, 비록 아주 적은 이윤일지라도, 시장에서 이윤을 남기고 팔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일정 기간 동안 이윤 대신 손실이 지속된다면, 그 사업은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러한 점은 중세 경제에서는 해당되지 않았다. 가장 핵심적인 산업이었던 농업에서 생산은 이윤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생산자 자신을 먹여 살리고 봉건적 종주와 교회의 수탈(대부분 현물 형태로)을 충당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다른 산업들에서도(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했지만) 중세의 장인은 보통 특정한 개인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주문에 따라 재화—예컨대 의복이나 가구, 직물, 신발과 같은 것들—를 만들었으며, 대개는 고객이 제공한 원자재를 가지고 그 물건을 제작했다.
다섯째, 자본주의 경제는 다른 사회 유형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거나 극히 제한된 규모로만 발생하는, 특수한 형태의 주기적 경제 위기로 두드러지게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 위기들은 가뭄·기근·전염병 등과 같은 ‘자연적 재앙’과도 관련이 없고, 생산될 수 있는 재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물학적·심리적 필요와도 관련이 없다. 이러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가 다른 사회 유형들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위기를 결정지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본주의적 위기는 경제적 관계와 힘들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위기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논쟁적인 문제에 여기서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어떤 설명이 제시되든 간에, 그 실재성, 주기적 발생, 그리고 다른 사회 유형에서의 생산·소비의 혼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여섯째,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 전체는, 규제된다면, 무엇보다도 ‘시장’—국내 시장과 국제 시장 모두—에 의해 규제된다. 생산 전체를 의식적이고 계획적으로 조정하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은 인간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결정을 내린다. 자본주의 발전의 초기 단계(상업 자본주의)와 후기 단계에 이르러서는 독점적 장치들과 국가 개입이 생산에 대한 일정한 통제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은 제한된 영역에서만 작동할 뿐, 전체 생산 과정에 미치지는 못하며, 좁은 영역에서조차 생산을 시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는 데에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흔히 ‘계획’이라고 불리는, 생산 전체에 대한 의도적 규제는 자본주의의 본성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의 상품적 기반, 이윤 동기, 그리고 개인 소유의 권리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일곱째, 자본주의 경제에 고유한 제도적 관계들은, 결국 인구의 상당 부분을 대략적으로 두 개의 특수한 계급으로 분화시킨다. 이 두 계급은 자본주의에 특유한 관계들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에, 다른 사회 유형들에서는 발견될 수 없다. 또한 이 계급들은 서로의 존재를 전제로 정의되므로,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두 계급 사이의 경계선은 결코 엄밀하지 않으며, 특정 개인이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구분은 충분히 분명하다. 이들 가운데 한 계급은 개인으로서 생산수단(공장·광산·토지·철도·기계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을 소유하거나, 그 소유에 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고용하여 이러한 생산수단을 운용하고, 그 노동의 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유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 계급은 보통 부르주아지, 혹은 자본가 계급이라고 불린다.
두 번째 계급은 흔히 프롤레타리아트, 혹은 노동자 계급이라 불리며, 기술적인 의미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소유자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유롭다’는 것은 생산수단에 대한 어떤 소유권 지분도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다시 말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러한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동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그 대가로 자신의 노동 산물에 대한 소유권은 포기한다. 요컨대 이들은 임금노동자들이다.
이 두 계급은 다른 사회 유형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했다 하더라도 극히 미미한 정도였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예컨대 많은 사회들에는 노예와 노예 소유자가 존재했다. 봉건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농노나 소작농이었다. 이들은 농업에 종사했으며 토지에 ‘속박되어’ 있었다. 즉 생산수단인 토지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토지에서 쫓겨날 수 없었는데, 그 토지는 법적 의미에서 소유하는 대상은 아니었지만 사용할 권리를 가진 것이었으며, 또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토지를 떠날 수도 없었다. 산업적 수공업 역시 고용주와 임금노동자에 의해 수행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도구와 사용되는 기계들을 소유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던 장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에는 내가 언급하지 않은 다른 많은 특징들이 존재한다. 만약 우리의 목적이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분석하는 데 있었다면, 특정 단계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역동적 팽창성, 기술적 진보 등과 같은 여러 요소들은 내가 열거한 것들 못지않게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승하고 있는 사회 유형을 분석하는 데 있으며, 특히 그 사회 유형이 자본주의와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히 하는 데 있다. 이 장에서 이루어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검토와 그 강조점들은 모두 우리의 중심 문제에 종속되어 있다.
내가 요약한 자본주의 경제의 일곱 가지 특징 가운데 어느 하나도 사소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너무나 중요하고 광범위하게 작용해 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사회생활 구조의 필수적이며 영구적인 일부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틀 속에서 너무도 자동적으로 사고해 왔고, 지금도 그러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불변의 사실을 단순히 기록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공장의 소유자가 그 생산물 또한 소유해야 한다는 것, 물건을 사기 위해 화폐가 필요하다는 것, 대다수의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 임금을 받고 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기업이 이윤을 내지 못할 경우 생산을 줄이거나 임금을 삭감하거나 심지어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 모든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숨 쉬거나 먹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만큼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제도들이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자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며, 인류의 긴 역사 가운데 불과 최근 수백 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존재해 왔음을 단호하게 말해 준다.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제도들의 주요한 특징들을 일반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들은 경제 제도들에 비해, 시대에 따라 그리고 국가에 따라 훨씬 더 큰 다양성을 보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전 역사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나거나, 혹은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들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몇 가지 특징들을 선별해 낼 수는 있다.
첫째,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적 분할은 비교적 많은 수의, 그리고 비교적 규모가 큰 국민국가들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국가들은 생물학적 집단 구분이나 시민들 사이의 개인적 관계와 필연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이들은 변화 가능하지만 명확한 지리적 경계에 의해 규정되며, 그 경계 안에 거주하는 인간들에 대해 정치적 관할권을 주장한다(일부 특권적 외국인들에게 부여되는 ‘치외법권’을 제외하고). 학교 교과서의 지도 제작 관행은,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민국가가 결코 인간 정치 조직의 보편적 형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쉽게 잊게 만든다.
국민국가의 정치적 권위는 다양한 제도들 속에 구현되어 있으며, 최종적인 권위는 어떤 개인이나 개인들의 집단에 의해 행사되는데, 보통은 의회가 그 역할을 맡는다. 각 국가는 절대적인 정치적 자율성, 즉 주권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보다 상위의 어떤 관할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물론 실제로 이러한 주장을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로 강대국들뿐이었다). 각 개인에게 있어 중심적이고 결정적인 정치적 관계는 특정 국가의 시민이라는 지위이다.
이러한 체계와 관념은 중세의 체계와 관념과는 가장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봉건제 하에서(소수의 도시 거주자들을 제외하면) 각 개인에게 있어 중심적이고 지배적인 정치적 관계는 추상적 제도인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의 사람’—즉 특정 영주에 속한 봉신이나 농노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정치적 충성과 의무는 제도에가 아니라 한 인물에게, 더구나 봉건적 위계 속에서 자신의 직접적인 상위자에게 귀속되었다. 단테의 『신곡』에서 사탄이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을 차지하는 이유도 봉건 사회에서 가장 중대한 죄, 곧 “자신의 주군이자 은인에 대한 배신”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는 근대 국민국가 체제에 비해, 한편으로는 더 많은 통일성이 존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큰 다양성 또한 존재했다. 정치적 통일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실제라기보다는 이론 속에서 훨씬 더 강력한 것이었지만, 모든 사회 제도 가운데 가장 강력했고(한때 유럽 경작지의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을 통제했으며) 어디에나 존재했던 교회를 통해, 법과 정치적 권리·의무에 대한 관념에서는 일정한 실제적 통일성이 존재했다. 교회는 신으로부터 위임받았다는 명분 아래, 영적 주권뿐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정치적 주권까지 주장했으며, 권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대략 1200년경)에는 그 주장을 거의 관철시킬 뻔했다.
이러한 부분적 통일성 속에서, 일종의 정치적 원자화, 나아가 혼란 상태가 공존했다. 수백, 심지어 수천에 이르는 지방의 봉건 영주들—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을 비롯해, 자기 고유의 봉건 영지를 가진 수많은 주교와 수도원장들까지—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들과 영토 집단 위에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들의 정치적 주권의 한계는 결코 명확히 규정된 적이 없었으며, 보통은 그 순간의 군사력에 따라 좌우되었다. 봉신 영주는 자신의 약점이나 계산이 요구하는 만큼만 종주에게 복종했고, 그 이상은 아니었다. 강력한 봉신들은, 기회만 된다면 스스로 왕이라 불리는 자들의 명령을 공공연히 어겼으며, 실제로 명목상 왕으로 인정되던 인물들보다 봉신들이 더 강력한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근대 국민국가의 중앙집권적이고 근본적인 권위에 비견할 만한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둘째, 자본주의 사회는 일정한 정도에서나마 세계적 범위를 지닌 최초의 사회였다. 한 가지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세계적 확장은 경제적 발전의 결과였다. 시장, 원자재의 공급원, 그리고 투자처를 찾기 위한 탐색이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지구의 대부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본주의적 정치 제도들의 궤도 안으로 편입되었다. 세계의 영토와 인구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직접적 국경 안에 포함하고 있었던 강대국들은, 나머지 세계의 대부분을 식민지나 지배령, 세력권으로 전락시키거나, 혹은 많은 경우 그 존속 자체가 강대국들의 묵인에 의존하는 약소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은 세계 곳곳에서 지배적인 소수의 자본주의 강대국들과 견줄 만한 국가들이 발전했음을 의미하지도 않았고,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문화적 제도들이 전면적으로 공유되었음을 뜻하지도 않았다.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 그리고 동·남유럽까지 포함해—말하자면 지구상의 토지와 인구의 대다수는—자본주의 ‘가족’ 안에서 가난하고 후진적인 관계로 남아 있었다. 이들은 주로 강대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통제되고 종속되며(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그 존재 자체가 강대국들의 존속에 필수적인), 그러한 의미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일부였다. 발전된 형태의 자본주의 문화가 지닌 전형적 제도들과 생활양식은, 이들 사회의 문화적 토대에 극히 제한적인 흔적만을 남겼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일반화해 보면, 세계 무대에서 선진 강대국들과 종속적이고 후진적인 영토·민족들 사이에 형성된 이러한 분할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배열을 이루는 본질적인 일부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셋째, 여기서 ‘국가(state)’라는 용어는 사회의 실제적인 중앙 정치 제도들, 곧 정부 행정 기구, 민간 관료제, 군대, 법원, 경찰, 교도소 등과 같은 것들을 가리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은 시대와 국가에 따라 크게 달라져 왔지만, 몇 가지 특징들은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예컨대 봉건제의 중앙 정치 제도들과 비교해 보면, 자본주의 국가는 국가 고유의 관할에 속한다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특정한 인간 활동 영역들에 대해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는 데 있어 훨씬 더 견고하고 잘 조직되어 왔다. 예를 들어 자국의 국경 안에서 자본주의 국가는 통일된 법 체계를 집행하고, 일반적인 조세를 부과하며, 주요 무장 병력을 통제하고, 교통·통신의 주요 노선을 유지하는 등과 같은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국가의 권위가 일부 영역에서는 이처럼 확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역들에서는 그것이 미치지 못했거나, 아주 미미하게만 미쳤다. 다시 말해 국가의 활동 범위는 제한되어 있었다.
국가 활동 범위의 이러한 제한은 자본주의 국가 이론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론인 자유주의 국가론에서 핵심적인 요점이었다. 자유주의의 주된 관심사는 자본주의적 경제 과정의 촉진에 있었다. 자유주의 국가론에 따르면, 국가는 시민적 평화(‘국내의 평온’)를 보장하고, 대외 전쟁과 외교 관계를 처리하는 역할을 수행한 뒤, 경제 과정에는 개입하지 않고 물러나 있어야 했다. 다만 불의나 장애를 시정하고 시장을 ‘자유롭게’ 유지하기 위해서만, 즉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경제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자유주의 이론이 상정한 ‘국가’는 실현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바람직한 것으로조차 원해지지 않았던 이상형이었다. 현실의 국가들은 언제나 이론이 요구한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경제 과정에 개입해 왔다. 보조금과 관세를 통해서, 국내의 소요를 진압하거나 해외 투자에 수반되어 파견되는 군대를 통해서, 혹은 특정 자본가 집단에 유리한 규제를 통해서 말이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이른바 ‘중상주의’ 국가의 개입이 더욱 광범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과 현실 사이에 이러한 괴리가 존재했음에도, 자유주의 국가론에는 상당한 진실의 핵심이 있었고, 자본주의 현실과의 결정적인—비록 부분적인 것이기는 했지만—상응 관계도 존재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경제 과정에 개입하긴 했으나, 그 개입의 범위와 깊이는 결국 비교적 좁은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경제 영역에서 국가란, 말하자면 언제나 자본가들, 곧 ‘기업’의 상위자가 아니라 그에 종속된 존재, 그들의 하수인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는 단순한 이유가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개인에게 개인으로서 귀속된 사적 소유권에 기초한 ‘사기업’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경제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법 이론상으로는 아닐지라도 사실상 개인의 소유권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자본주의적 경제 관계의 종말을 뜻하게 된다.
많은 국가들에서는 경제 영역 외에도 국가의 활동이 거의 미치지 않았던 다른 중요한 분야들이 존재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교회이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미국 정치사에서 그토록 소중하게 여겨져 온 하나의 교리였다.
넷째, 정치적 권위, 즉 주권은 공중에 떠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어떤 개인이나 개인들의 집단 속에 구체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국가’나 ‘민족’이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을 만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법들이 어떤 개인이나 개인들의 집단에 의해 작성되고 공포된다. 이 과업은 사회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인물들과 서로 다른 종류의 제도들에 의해 수행된다. 주권이 자리 잡는 제도적 ‘소재지’, 다시 말해 주권의 제도적 귀속의 측면이 이동하는 것은 사회의 성격 전반에 나타나는 변화에서 언제나 극히 중요한 측면을 이룬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의 정치적 발전사는 주권의 소재지가(‘의회’라는 말을 넓은 의미에서 사용할 때) 의회로,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의회의 하원으로 이동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법을 제정할 권한은 의회에 부여되었으며, 법은 실제로도 의회에 의해 만들어졌다. 더 나아가 주권이 중앙 권위로서 의회로 이동한 이러한 정치적 변화는, 대체로 자본주의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과 역사적으로 맞물려 일어났다.
영국 의회의 하원(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 의회의 상원과 하원이 합쳐진 것이 영국의 단일한 하원, 즉 하원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이나 프랑스 국민의회의 ‘제3신분’은 ‘시민’, 곧 부르주아지—상인·은행가·산업가들, 요컨대 자본가 계급—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정되었다(영국 하원의 경우에는 봉건적이지 않은 지방 지주 계층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의회 하원이 봉건 영주들에 대해, 그리고 이후에는 국왕에 대해서까지 점차 제도적 우위를 확립해 나간 과정은(근대 초기 단계에서 국왕은 자본가들과 협력 관계에 있었다), 경제 영역에서 봉건적 관계가 자본주의적 관계로 대체되어 간 과정과 병행하는 정치적 변화였으며, 덧붙이자면 문화 영역에서 봉건적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로 대체된 과정과도 병행하는 것이었다.
다섯째, 앞의 셋째 사항에서 언급한 국가 활동 범위의 제한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필연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말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도 필연적인 연관성은 없다. 자본주의의 ‘제한된 국가’는—근대사에서 그 사례가 수없이 존재했듯이—자신의 정치적 영역 안에서는 극단적인 독재 체제가 될 수도 있다. 16세기와 17세기의 절대 군주제 국가들, 올리버 크롬웰의 신정 국가, 나폴레옹의 국가를 떠올려 보라. 의회의 우위조차도 상당한 수준의 민주주의를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고화된 자본주의 사회에 가장 자연스러운 체제로서 부분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믿을 만한 일정한 근거는 존재한다. 최소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충분히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체제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주의는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제적·사회적 관계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지 않았는데, 이는 그러한 관계들의 성격상 배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영역에서조차도 민주주의는 어떤 방식으로든 성인 인구의 일부에게만 제한되어 있었다. 또한 언제나 자본주의 제도의 일반적 구조를 넘어서는 진지한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원시적 집단들을 제외한다면, 자본주의 이전 인류 역사에서 알려진 어떤 민주주의보다도 더 멀리 나아간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특히 오늘날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강조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들에도 정치적으로 민주적인 국가들은 많이 존재해 왔고,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도 비민주적인 국가들은 다수 존재해 왔다. 정치 연설가들, 전쟁 선전가들, 그리고 과학적이라기보다 감정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혼동한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의미하면서 ‘민주주의’라고 말하거나, ‘민주주의’를 의미하면서 ‘자본주의’라고 말하거나, 혹은 ‘우리의 생활 방식’과 같은 표현 속에 두 개념을 한데 묶어 버린다. 만약 민주주의의 운명이 실제로 자본주의의 운명과 얽혀 있다면, 그것은 느슨한 언어 사용을 통해 당연한 것으로 전제될 것이 아니라, 별도로 입증되어야 할 문제이다.
여섯째, 자본주의 사회의 법률 체계는 국가에 의해 집행되며,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 구조를 유지하고, 그 구조 안에서의 행위를 규정하고 집행하는 규칙들을 확립하는 성격을 지녔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념 양식을 일반화하는 일은 정치 제도의 경우보다도 더욱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결코 포괄적일 필요가 없다. 헌법이나 독립 선언서, 인권 선언과 같은 주요 공적 문서들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입증되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신념으로 인식할 수 있고, 동시에 전형적인 봉건적 신념들과는 다르며, 오늘날의 사회적 전환기에서 날카로운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 두드러진 신념들만을 선택하면 충분하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는 신념들은 흔히 ‘이데올로기’라고 불리며, 따라서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영역에서, 개인 심리의 영역에서 흔히 ‘합리화’라고 불리는 것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이데올로기는 과학 이론이 아니며, 비과학적이고 종종 반과학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은 사건들에 대한 가설이 아니라, 희망·욕망·두려움·이상과 같은 것들의 표현이다—비록 이를 믿는 사람들에겐 종종 과학 이론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진화론이나 상대성 이론, 혹은 물질의 전자적 구성에 관한 이론은 과학 이론인 반면, 미국 독립선언서나 헌법 서문의 교리들, 나치의 인종 교리,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 성 안셀무스의 세계사 의미에 관한 교리는 이데올로기에 속한다.
광범위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수용을 얻어낼 수 있는 이데올로기들은, 어떤 사회 유형이든 그 사회의 구조를 결속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언어적 접착제라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들을 그 실천적 효과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그것들은 대체로 특정한 사회 집단이나 계급의 이해관계를 봉사하고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해당 집단이나 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어떠한 주요 이데올로기도 자신이 실제로 표현하고 있는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만을 위해 말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자처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각 집단은 자기 이데올로기가 보편적 타당성을 지니며 인류 전체의 이익을 표현한다고 주장하고,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보편적 수용을 획득하려 한다. 앞 문단에서 언급된 모든 이데올로기들에 대해 이 점은 그대로 적용된다.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은 경영자 혁명과의 관련 속에서 더욱 자세히 논의될 것이다.
첫째, 자본주의 사회에 전형적인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에는, 비록 그 의미를 정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개인주의를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켜야 한다. 자본주의적 사유는 그것이 신학이든 예술이든, 법·경제·정치 이론이든, 철학이나 도덕이든 간에, 일관되게 ‘개인’이라는 관념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우리는 어디를 보나 ‘개인’을 발견한다. 종교적 진리의 기준으로서 성경에 대한 ‘개인적 해석’을 호소한 루터에게서, 청교도주의에서 ‘양심’이 차지한 과도한 비중에서, 수백만의 분리된 개인들이 각자 자신의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것으로 경제 과정이 구성된다고 보는 경제적 관념에서, 혹은 도덕이란 각 개인이 자신의 최대의 개인적 쾌락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보는 이에 상응하는 도덕적 관념에서 말이다.
우리는 또한 르네상스와 근대 예술의 개인주의적 천재들에서, 근대 문학의 개인주의적 영웅들에서(햄릿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토록 큰 매혹을 불러일으켜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핵심이 사적인 개인이 사적인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개별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고 보는 이론적 관념에서도 이 ‘개인’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개인주의적 의미에서의 ‘개인’이라는 관념 역시 다른 어떤 관념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회 유형들에서 발견되는 개인 개념과는 구별되는, 고유하고 특징적인 성격을 지닌다. 지배적인 자본주의적 관념에 따르면, 정치·심리학·사회학·도덕·신학·경제학의 근본 단위는 단일한 인간 개인으로 이해되었다. 이 개인은 자기 자신의 본성 안에서 완결된 존재,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충분한’ 존재로 파악되었으며,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의 관계는 오직 외적인 관계만을 맺는 것으로 여겨졌다.
헤겔과 그의 추종자들이 이와 같은 개인 개념을 공공연히 거부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념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전형적인 것이었으며, 앞서 언급한 여러 분야의 영향력 있는 학설들과 공적 문서들 속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더라도 암묵적으로는 내재해 있다. 교회나 국가, 유토피아 역시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단순한 수적 합계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둘째, 개인주의라는 일반적 이데올로기와 조응하여, 자본주의 사회는 ‘사적 주도성(private initiative)’이라는 개념에 강한 강조를 두었다. 사적 주도성은 무엇보다도 경제 과정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 동기와 도덕적 행위의 근원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셋째, 자본주의적 개인의 지위는 ‘자연권’(‘자유 계약’, 표준적인 시민권, ‘생명·자유·행복 추구권’ 등)에 관한 교리들을 통해 더욱 규정되었다. 이러한 권리들은 각 개인에게 어떤 필연적이고 영원한 의미에서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권리들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완전한 합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목록은 미국 독립선언서, 미국 헌법의 전문과 권리장전, 혹은 프랑스 인권 선언과 같은 문서들에 제시되어 있다.
넷째, 마지막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세계사의 의미에 대한 신학적·초자연적 해석이 ‘진보’라는 관념으로 대체되었다. 이 진보의 관념은 르네상스 시기의 저술가들에게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며, 18세기에 이르러 명확한 형태로 정식화되었다. 진보 사상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었다. 첫째, 인류는 더 나은 상태를 향해 꾸준하고 불가피하게 전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둘째, 그 전진이 향하는 목표가 초자연적 용어가 아니라 자연주의적 용어로, 다시 말해 천상의 낙원이 아니라 지상의 낙원이라는 관점에서 규정되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의 체계적으로 완성된 이데올로기가 존재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변형들이 가능했으며, 철학자·정치 이론가·기타 지식인들에 의해 수십 가지의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들이 정식화되었다. 그들의 개념과 구호, 표현들은 아래로 스며들어 대중적 사고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이데올로기들, 그리고 대중적 사고는 말하자면 서로 연관된 주제들의 변주였다. 그것들은 공통적으로 공유된 일정한 단어·관념·전제들의 집합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앞서 내가 열거한 것들이 두드러지게 포함되어 있었다.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사회적 권력과 특권의 지위를 차지한 집단이 자본가들, 곧 부르주아지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경제적 생산 수단은 단순히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 그 자체이다. 어떤 사회에서든 이 수단들을 통제하는 집단은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지는 지배 계급이라고 불릴 수 있다. 다만 ‘지배 계급’이라는 개념과 계급들 간의 ‘권력 투쟁’이라는 관념은 이 책의 중심 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제5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한 특징들을 개관하는 이 개요에서 내가 선택하고 강조한 내용 전반에 대해, 모든 사람이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특징이 주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이들 가운데 상당한 비율이 사라진다면 그 결과로 형성될 사회 구조를 더 이상 ‘자본주의적’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모든 특징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존재하는 많은 다른 요소들이, 수 세대가 아니라 길어야 수십 년, 아니면 수년 안에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바로 이것이 경영자 혁명 이론의 부정적 측면이다.
James Burnham, The Managerial Revolution: What Is Happening in the World (New York: The John Day Company, 1941),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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