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를 위한 정치철학서 15권 추천목록
요약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권력과 도덕과 이념을 냉정하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추천 목록이라고 할 수 있겠음.
이 도서목록의 일관된 질문들은 이러함. ’도덕은 어떻게 기능하는가(파레토, 니체, 순자)? 권력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번햄, 주베넬, 모스카)? 제도는 왜 필요한가(한비자, 겔렌, 홉스)? 정치는 무엇을 회피하는가(슈미트, 오크숏)? 이념은 어떻게 신앙이 되는가(슈펭글러)? 철학은 어떻게 독단적인 것이 되는가(니체)?‘
이 도서목록이 제거하는 것들은 이것들임. ’도덕적 우월감, 이념적 확신, 진보주의적 낙관, 리버테리안적 환상, 권위주의적 정당화, 철학적 독단주의‘
이 도서목록을 읽고나서 머리 속에 남게 하는 것들은 이것임. ’구조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냉정한 시선, 정치의 실제 작동 방식, 신념과 권력의 관계, 진리와 권력의 관계‘
최종적인 권고사항이 있다면, 이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정답을 얻는 것은 아님. 대신, 정치와 도덕과 권력과 진리에 대한 순진함을 없애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독서임.
1. James Burnham, The Managerial Revolution (1941)
번햄은 1941년에 이 책을 썼음.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지나 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된 시점. 번햄은 당시 트로츠키주의자에서 갓 전향한 상태였고, 이 책에는 아직 마르크스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었음. 하지만 그가 도달한 결론은 마르크스주의와 정반대였음.
번햄은 이렇게 시작함. "지금까지 알려진 한, 예외가 없는 역사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회적·경제적 집단은 사회에서 권력과 특권에 관한 상대적 지위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는 것"
번햄이 거부하는 세 가지 이론은 다음과 같음.
첫째, 자본주의 영속론. 바로 자본주의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임. 번햄은 자본주의가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는데 그 근거는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였음.
둘째,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론. 자본주의 다음에 사회주의가 온다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임. 번햄은 이것을 "꿈"에 불과하다고 일축함. 노동자 계급이 통치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봤기 때문임.
셋째, 자유주의적 개혁론.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임. 번햄은 이것도 환상이라고 봤음.
번햄의 제시한 대안은 관리 혁명 (Managerial Revolution)임.
자본주의 계급은 관리자들에게 생산을 실제로 통제하게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쓸모없게 만들었음. 관리자 계급은 여전히 자본가 계급에 고용되어 있지만, 번햄은 이 배치가 양립 불가능하다고 주장함. 이것은 결국 실제로 생산을 소유한 관리자 계급이 명목상으로만 소유하는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그것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함.
관리자 계급이란 누구인가? 번햄이 정의하는 관리자는 기업 임원, 엔지니어, 관료, 군 장교, 경제 관료 등임.
중요한 점은 이들은 소유자가 아니라 통제자임.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유와 통제가 분리되면서, 실제 권력은 소유자에서 관리자로 이동함.
번햄은 "관리 혁명의 메커니즘"이라고 부른 것의 핵심은 소유와 통제의 분리임. 기업가적 자본주의에서는 소유자가 관리자였지만, 관리주의에서는 소유자가 관리자의 기술적 전문성에 의존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관리자에게 경제의 실질적 통제권을 양도함
관리 사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음.
경제는 국가 소유 또는 국가 통제 형식이며, 중앙 계획에 따라 운영됨. 생산 수단에 대한 관리자 계급의 통제가 있으며, 자본가는 명목상 소유하지만 실제 권력은 없음.
정치의 경우엔 의회 민주주의의 쇠퇴가 일어나고, 행정 국가로의 팽창이 벌어짐. 주권은 의회에서 관료로 이동하며 전체주의적 경향을 보임.
이념의 경우에는 "국가 대 개인", "계획경제 대 자유 시장", "국가가 제공하는 일자리 대 민간에서의 기회", "안전 대 주도성", "인권 대 재산권"과 같은 대립구도가 벌어짐.
번햄이 관찰한 놀라운 패턴이 뭐냐면 소련, 나치 독일, 뉴딜 미국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음.
번햄은 나치 독일과 소련 모두 관리자 계급에 기반한 사회이며, 그가 자유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 경제 모델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함.
뉴딜에 대한 번햄의 평가도 주목할만함. "뉴딜은 발전되고 체계화된 관리주의 이데올로기가 아님. 그럼에도 이 이데올로기는 미국 자본주의가 관리주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기여함. 뉴딜도 그 자체로 더 혼란스럽고 덜 발전된 방식으로,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강조, 사적 기업에 대한 계획의 강조, 기회에 대한 일자리(구호 일자리라도)의 강조, 주도성에 대한 안전의 강조, 재산권에 대한 인권의 강조를 퍼뜨림. 뉴딜리즘의 심리적 효과는 자본가들이 말하는 것과 같았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음. 자본주의 사상과 권리와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약화시킴. 그것의 가장 독특한 특징들은 대중의 마음을 관리주의 사회 구조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킴"
번햄의 책임받지 않는 관리자 계급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 계급의 권력에 대항하려는 보수 지식인들 사이에서 견인력을 얻고 있으며, '깨어있음(woke)'을 새로운 계급의 정당화 이데올로기로 봄
"새로운 계급" 이론으로의 발전하기도 했는데, 밀로반 질라스의 『새로운 계급』(1957), C. 라이트 밀스의 『권력 엘리트』(1956), 현대 "PMC(Professional-Managerial Class)" 논쟁 등이 있음.
이 책의 방법론적 특징에 대해 번햄은 명확히 밝혔음. "나는 사회 개혁 프로그램을 쓰는 것이 아니며, 내가 다루는 주제에 대해 어떤 도덕적 판단도 내리지 않음. 나는 현재의 사회 전환 시기의 성격을 설명하고 최소한 일반적으로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적 이론을 정교화하려는 시도에만 관심이 있음. 이 이론이 가리키는 사실들이 '좋은지' 또는 '나쁜지', 정의로운지 부정의한지, 바람직한지 바람직하지 않은지는—이 책에서는—내 관심사가 아니며, 단지 그것들이 무엇인지에만 관심이 있음"
이것은 번햄의 『마키아벨리주의자들』(1943)과 연결됨. 번햄은 정치를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권력 분석으로 접근함.
2. James Burnham, The Machiavellians (1943)
번햄이 이 책에서 한 작업은 이러함. 마키아벨리부터 파레토까지, "정치를 있는 그대로 보려면 무엇을 제거해야 하는가"를 물었던 사상가들을 따라가는 것.
번햄이 추적한 사상가들의 공통된 관찰들은 이러함. 정치에는 항상 지배 엘리트가 존재하고, 민주주의든 군주제든 혁명이든 결국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로 나뉨. "민중의 의지", "자유", "평등" 같은 언어는 실제로는 권력을 정당화하고 은폐하는 기능을 수행함. 미헬스의 "과두제의 철칙"처럼, 모든 조직은 결국 소수의 지배로 귀결됨.
중요한 건 누가 지배하는가가 아니라, 지배가 어떤 언어와 형식으로 가려지고 정당화되는가임. 번햄은 이런 냉정한 분석이야말로 자유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주장함.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면 자유를 지킬 수 없고, 도덕적 수사에 속아 권력의 실제 구조를 보지 못하면 결국 새로운 지배 엘리트에게 복종하게 될 뿐이기 때문.
이 책은 이 리스트 전체의 기준점임. 정치 분석에서 도덕적 이상을 제거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정치적 신념 체계를 믿지 않아도 정치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듦.
3. Bertrand de Jouvenel, On Power (1945)
주베넬은 권력을 미노타우로스에 비유하며 이렇게 질문함. “권력은 어떤 명분을 사용할 때 가장 빠르게 커지는가?”
주베넬의 결론은 역사적 분석을 통해 도출됨. 권력은 "약자를 보호한다", "공공선을 대변한다", "민중을 해방시킨다"는 도덕적 언어를 사용할 때 가장 빠르게 팽창함. 절대왕정 시대에도 왕은 귀족으로부터 민중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확장했고, 민주주의 시대에도 국가는 약자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키움.
민주주의든 군주제든 상관없이, 정당화 구조가 같으면 권력 팽창 패턴도 비슷함. 대중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력이 가장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
주베넬이 보여주는 패턴은 명확함. 중세 봉건 영주에서 절대왕정으로, 다시 민주국가로 이어지는 과정은 모두 같은 구조를 반복함. 기존 지배층이 민중을 억압하면, 새로운 권력이 민중을 보호한다며 개입하고, 기존 지배층의 권한이 약화되면서 중앙 권력이 강화됨. 결과적으로 민중은 더 큰 권력 아래 놓이게 됨. 이것이 선의로 포장된 권력 팽창의 역설.
주베넬은 이렇게 말함. "절대 권력은 죽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형태를 바꿨을 뿐이다." 현대 민주국가의 경찰, 세금 징수 시스템, 사법 제도는 절대군주가 꿈도 꾸지 못했던 수준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음. 다만 그것이 민중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될 뿐.
번햄이 이론적으로 말한 것을 주베넬은 역사적으로 증명함. 이 둘을 함께 읽으면 권력의 작동 원리가 입체적으로 보임.
4. Vilfredo Pareto, The Mind and Society (1916)
파레토는 원래 경제학자였지만, 경제 이론이 실제 인간 행동을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를 탐구하다가 사회학 연구로 넘어감. 그의 결론은 명확했음. 인간의 대부분의 행동은 비논리적이며, 이성과 논리는 사후적 정당화 도구일 뿐.
파레토는 인간 행동을 두 가지로 분류함. 잔여(Residues)는 비이성적 충동, 습관, 본능의 표현으로 행동의 실제 원인임. 파생(Derivations)은 잔여를 합리화하는 이념, 도덕, 논리로 사후적 설명이자 정당화 장치임.
정치, 이데올로기, 도덕은 대부분 행동의 원인이 아니라 사후적 설명임. 사람들은 본능과 충동에 따라 행동한 뒤, 그것을 이념으로 정당화함. 전쟁을 시작한 뒤 "자유를 지키기 위해"라고 말하지만, 실제 원인은 영토 확장 욕구나 집단 내 지위 경쟁일 수 있음.
파레토의 엘리트 순환 이론도 중요함. 지배 엘리트는 사자(힘과 폭력으로 통치)와 여우(술수와 협상으로 통치)의 두 유형으로 나뉨. 한쪽이 과도하게 지배하면 사회는 경직되거나 혼란에 빠짐. 혁명은 엘리트 순환의 과정일 뿐, 본질적으로 새로운 체제를 만들지 않음.
파레토는 이렇게 말함. "인간은 자신이 논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감정에 따라 행동한 뒤 그것을 논리로 포장할 뿐이다." 중요한 점은 파레토가 이것을 폭로가 아니라 설명으로 제시한다는 것. 그는 인간을 비난하지 않고, 단지 이렇게 작동한다고 말할 뿐.
차가운 분석으로 인간과 정치를 이해하게 해주는 책임.
5. 한비자(韓非子)
한비자는 전국시대 한나라 왕족 출신으로, 순자 밑에서 유가 사상을 배웠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법가 사상을 체계화함.
한비자가 목격한 것은 분명함. 도덕적으로 훌륭한 군주들이 나라를 망쳤고, 신하들은 충성을 말하면서 권력을 빼앗았으며, 백성들은 예의를 가르쳐도 혼란스러웠음.
한비자가 내린 결론은 이러함. 인간은 신뢰할 수 없음. 통치자의 도덕도 신뢰할 수 없음. 국가는 사람이 아니라 형식과 제도로 운영되어야 함.
한비자의 핵심 개념은 법(法), 술(術), 세(勢). 법은 명확한 규칙으로 공개되고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함. 술은 통치 기술로, 명분과 실적을 대조하는 기술임. 세는 지위의 힘으로, 권력은 개인의 덕이 아니라 지위에서 나옴.
한비자는 유가의 덕치론, 묵가의 겸애론, 도가의 무위론을 모두 비판함. 과거의 성군을 본받자는 주장은 시대를 무시한 것이고, 모두를 사랑하자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며, 군주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신하들이 권력을 빼앗음.
한비자는 국가를 도덕 공동체가 아닌 시스템으로 봄. 선한 통치자에 대한 기대를 제거하고, 제도를 비인격화하며, 권력 남용을 도덕 타락이 아니라 설계 실패로 설명함.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자주 비교되지만, 한비자가 더 체계적임. 마키아벨리는 군주 개인의 능력과 운을 강조하지만, 한비자는 제도 그 자체가 작동하게 만드는 것을 강조함.
현대 정치이론, 특히 제도주의와 놀라울 정도로 공명하는 고전임.
6. 순자(荀子)
순자는 유가 사상가이지만, 유가 중에서 가장 비관적이고 현실주의적임. 맹자는 인간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했지만, 순자는 정반대로 인간 본성은 악하다고 주장함.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익을 추구하고, 시기하고, 욕망함. 이것을 그대로 두면 혼란과 폭력이 발생함. 따라서 인위적 교정이 필수적임.
도덕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강제적 교정 장치임. 도덕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 성인들이 사회 질서를 위해 설계한 시스템.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함.
예(禮)는 도덕이 아니라 행동 규격임. 예는 감정이 아니라 형식.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틀. 내면의 변화가 아니라 외면의 통제가 목표.
순자는 유가이면서도 법가에 가까움. 한비자와 이사가 순자의 제자였음. 순자는 도덕을 신성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으로 봄. 하지만 법가와는 다름. 법가는 법과 형벌만으로 충분하다고 보지만, 순자는 예와 교육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봄.
순자가 설명하는 것은 이러함. 도덕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도덕은 인간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필요함. 도덕은 성인들이 설계한 인위적 시스템임. 예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행동 규격임. 교육은 이 규격을 내면화시키는 과정임.
순자는 도덕을 믿지 않으면서도 도덕을 버리지 않는 유가 사상가임. 니체처럼 도덕을 해체하지만 도덕을 폐기하지는 않음. 한비자처럼 인간을 불신하지만 교육 가능성은 인정함. 도덕을 신성시하지 않으면서도 도덕을 포기하지 않는 독특한 균형을 보여줌.
도덕을 비신성화하며 법가적 현실주의가 드러나는 드문 고전임.
7. Friedrich Nietzsche, On the Genealogy of Morality (1887)
니체는 이 책에서 도덕의 기원을 물음. 선과 악은 어디서 왔는가? 죄책감과 책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제1논문에서 니체는 선악의 기원을 추적함. 본래 ‘좋다’는 귀족적이고 강력한 것을 의미했고, ‘나쁘다’는 약하고 천한 것을 의미했음. 하지만 약자들은 이것을 뒤집음. 강자를 악으로, 약자를 선으로 재정의함. 이것이 노예 도덕의 탄생.
제2논문에서는 죄책감과 양심의 기원을 다룸. 빚이라는 경제적 관계가 죄라는 도덕적 개념으로 변환됨. 채권자-채무자 관계가 신-인간 관계로 바뀜. 처벌은 원래 빚 갚음이었지만, 나중에 도덕적 정화로 변질됨.
제3논문은 금욕주의 이상의 의미를 다룸. 왜 인간은 고통과 금욕을 숭배하는가? 니체의 답은 이러함.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권력을 주기 때문. 금욕주의는 약자가 강자를 통제하는 도구라고 봤음.
니체의 핵심 주장은 명확함. 도덕은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권력 관계의 산물임. 선과 악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임. 도덕은 약자가 강자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무기임.
니체는 이 책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지 않음. 단지 도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줄 뿐. 이것은 니체의 가장 냉정한 저작 중 하나임. 새로운 가치 체계를 제시하지 않고, 독자에게 특정 삶의 방식을 권하지 않으며, 도덕을 완전히 폐기하라고 말하지 않음. 도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추적하고, 그 형성 과정에 권력 관계가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만듦.
이후 모든 도덕 해체 논의의 출발점임.
8. Friedrich Nietzsche, Twilight of the Idols (1888)
니체가 쓴 분량이 짧고 메시지가 직접적인 책. 부제는 "혹은 망치로 어떻게 철학하는가". 니체는 이 책에서 철학, 도덕, 이성, 국가, 진보 같은 위대한 개념들을 하나씩 두드려 봄.
소크라테스는 삶을 이성으로 통제하려 했지만, 이것은 삶에 대한 피로와 두려움의 표현임. 이성의 지배는 삶의 활력을 억압함. 이성은 실제로 권력 의지의 표현임. 논리와 개념은 삶을 단순화하기 위한 도구일 뿐. 진리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도덕은 약자가 강자를 통제하는 수단. 평등, 동정, 이타심은 생명력을 약화시킴. 인류는 진보한다는 믿음은 환상임. 역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않음.
이 책은 짧고 직접적임. 신화를 해체하지만 설교하지 않음. 니체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음. 문체 자체가 권위가 되지 않음. 경구 형식으로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듦.
니체는 망치로 우상을 두드려 보고, 그것이 공허한 소리를 내는지 확인함. 하지만 우상을 부순 자리에 새로운 조각상을 세우지는 않음.
철학 해체의 실습서에 가까움. 니체의 다른 저작들이 위버멘쉬 인간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 책은 그런 경향이 적은 편.
9. Friedrich 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1886)
니체의 후기 저작 중 하나로, 1886년에 자비 출판됨. 부제는 미래 철학의 서곡.
니체가 묻는 근본적 질문은 이러함. “왜 철학자들은 진리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하는가?”
니체는 전통 철학의 이원론을 공격함. 선 대 악, 진리 대 거짓, 정신 대 육체, 이성 대 본능. 니체는 묻음. 과연 이런 대립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이것들은 단지 피상적 평가가 아닌가? 개구리 관점에서 본 세계가 아닌가?
니체는 급진적 주장을 펼침. 의견이 거짓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그것에 반대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임. 문제는 그 의견이 얼마나 삶을 촉진하고 삶을 보존하는가임. 거짓 의견의 포기는 삶의 포기, 삶의 부정일 것임. 진리가 아님을 삶의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 이것은 확실히 전통적 가치 관념에 위험한 방식으로 도전하는 것이며, 이렇게 감히 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선과 악을 넘어선 것임.
니체는 스토아학파,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를 비판함. 자연에 따라 살라는 교훈은 자연을 스토아의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것.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여러 전제를 숨기고 있음. 기하학적 방법 뒤에는 개인적 소심함과 취약성을 숨김. 정언명령으로 옛 도덕주의자의 편견으로 회귀함.
진리에 대한 니체의 재평가도 중요함. 진리가 선하다고 가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외양, 기만, 이기심에 더 높은 가치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니체는 관점주의를 제시함. 절대적 진리는 없음. 모든 지식은 관점적임. 각 관점은 특정한 위치, 욕구, 권력 의지에서 나옴. 객관적 지식이라는 것은 환상임.
니체는 권력 의지를 모든 행동의 설명으로 제시함. 모든 생명체는 권력을 추구함. 자기보존은 부차적 목표일 뿐. 생명의 본질은 팽창, 성장, 지배임.
니체는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을 구분함. 주인 도덕은 강자의 도덕으로 자기긍정적이고, 노예 도덕은 약자의 도덕으로 반응적이며 원한에 기반함. 기독교는 노예 도덕의 승리임. 서구 문명은 노예 도덕에 감염되어 있음.
이 책은 니체의 사상을 가장 체계적으로 요약함. 니체의 중기 저작들의 경구적 스타일을 유지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식의 예언자적 톤은 없음. 명확하고 논쟁적이며 직접적임.
니체의 가장 철학적인 저작. 도덕적 판단과 진리 추구라는 철학의 두 기둥을 동시에 해체함. 새로운 이상을 섣불리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기존 이상의 허구성을 폭로함.
10. Michael Oakeshott, Rationalism in Politics (1962)
오크숏이 비판하는 것은 특정 이념이 아니라 합리주의적 정치라고 부르는 사고방식임.
합리주의적 정치는 사회를 설계 가능한 대상이라고 믿음. 문제를 정의하면 해결책도 이론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고 봄. 전통, 관행, 암묵지는 비이성적 잔재나 장애물로 취급됨. 정치란 옳은 원칙을 적용하는 문제라고 생각함.
오크숏은 이렇게 반박함. 정치는 설계가 아니라 숙련된 실천이며, 대부분의 정치적 지식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형태로 축적되어 있음. 정치는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항해술이나 요리, 장인의 기술에 가까움.
오크숏은 기술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을 구분함. 기술적 지식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지식으로 공식화되고 명시적임. 실천적 지식은 경험을 통해서만 습득 가능하며 명시화할 수 없음.
합리주의자들은 기술적 지식만으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지만, 정치의 핵심은 실천적 지식에 있음. 실천적 지식을 무시한 개혁은 대부분 실패함.
프랑스 혁명의 실패는 이를 잘 보여줌.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성적 원칙에 따라 사회를 재설계하려 했지만 전통적 관행과 암묵적 질서를 무시함. 결과는 혼란과 공포정치. 반면 영국의 점진적 개혁은 명시적 원칙보다는 축적된 관행을 존중하고 전통 안에서 천천히 변화함. 결과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발전.
이 책은 정치적 열정이나 신념을 직접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열정이나 신념이 기능하게 하는 전제 자체를 무력화함. 이상향 정치의 전제 자체를 해체하고, 개혁 실패를 도덕이 아니라 인식의 문제로 설명하며, 정치를 신념 경쟁에서 기술 문제로 전환하고, 급진성과 반동성을 동시에 차단함.
정치를 설계와 신념의 문제에서 암묵적 기술과 한계 인식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텍스트임.
11. Arnold Gehlen, Man, His Nature and Place in the World (1940)
겔렌은 철학적 인류학자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어떤 존재인가를 물음.
겔렌의 담은 이러함. 인간은 결핍 존재라는 것임.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때 인간은 본능이 불충분하고, 감각 기관이 특화되지 않으며, 신체적으로 취약하고, 자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함.
인간이 생존하려면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문화를 구축해야 하며, 규칙을 내면화해야 함. 인간은 제도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
겔렌의 행동 부담 경감 개념이 중요함. 인간은 너무 많은 선택지에 직면하고, 본능이 약해서 자동적으로 행동할 수 없음. 제도와 관습은 이 부담을 덜어줌. 결혼 제도는 매 순간 관계를 재정의하지 않아도 되게 하고, 법은 매번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되게 하며, 관습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게 함.
겔렌은 자유와 자율에 대한 낭만을 제거하고, 제도의 필연성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며, 인간 비관을 냉정하게 정식화함.
겔렌이 비판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환상과 리버테리안적 환상임. 인간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 국가와 제도를 최소화하면 자유가 온다는 주장은 모두 틀림. 실제로는 제도와 관습 없이는 선택조차 불가능하고, 제도의 약화는 자유가 아니라 혼란과 불안만 증가시킴.
겔렌의 정치적 함의는 명확함. 인간은 자유로워질 수 없음. 제도적 틀이 필수적임. 제도의 약화는 자유가 아니라 혼란을 의미함. 보수적 제도 유지가 인간학적으로 필연적임.
리버테리안적 환상을 구조적으로 무력화함. 자유를 제도의 부재로 보는 모든 사고를 인류학적으로 반박함.
12. Gaetano Mosca, The Ruling Class (Elementi di Scienza Politica) (1896, 1923)
모스카는 1896년에 이 책을 처음 출판했고, 1923년에 대폭 확장된 제2판을 냄. 이 책은 마키아벨리 이후 400년 만에 나온 정치 이론의 걸작으로 즉각 인정받았음. 모스카는 이탈리아 엘리트 이론 학파(파레토, 미헬스와 함께)의 핵심 인물이며, 정치 계급(political class) 이론의 창시자임.
이 책의 핵심 명제는 결국 이것임. “정치가 존재하는 한, 조직된 소수는 항상 조직되지 않은 다수를 지배한다.” 이 문장이 전부임. 도덕도, 이념도, 역사철학도 전부 부차적임.
모스카가 말하는 ‘지배 계급’이란, 조직된 소수이자 정치·행정·군사·법·종교 등 지배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집단임. 핵심은 이거임. 능력의 우월성도, 도덕적 정당성도 아니라 ‘조직성’이 지배를 형성한다는 것.
모스카의 정치 이론이 무서운 이유는 모스카는 체제 구분을 거의 의미 없게 만듦.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 공화정 혁명 정부 전부 동일한 구조로 환원함.
구조는 항상 소수(조직됨 / 협력함 / 규칙을 만듦)와 다수(분산됨 / 비조직적 / 규칙을 따름)의 형태임. 그래서 모스카에게 중요한 질문은 “누가 선한가?”도 아니고, “누가 정당한가?”도 아니고 “누가 잘 조직되어 있는가?”임.
‘정치 공식(political formula)’ 개념은 모스카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임. 정치 공식이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념·도덕·신화·원리임. 그 예시들로는 왕권신수설, 국민주권, 계급 해방, 신의 뜻, 자유·평등·정의 등이 있음. 정치 공식에 대한 모스카의 핵심 주장은 지배는 항상 먼저 존재하고, 정치 공식은 나중에 만들어진다는 것. 즉, 민주주의가 있어서 엘리트가 생긴 게 아니라 엘리트 지배를 민주주의라는 언어로 포장하는 것임. 이 점에서 모스카는
번햄·파레토·주베넬의 사유에 있어서의 공통 조상임.
모스카를 냉소주의자라고 볼 수 있을텐데, 모스카는 현실 인식 우선하고 그 위에서 제한적 개혁 가능성 논의한 사람이긴 함. 다만 그 개혁이란 것도, 엘리트 제거하거나 대중에 의해 직접 지배하는 체제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대신 엘리트 내부 경쟁, 엘리트 개방성, 법·관습을 통한 견제를 주장함. 즉, “주권자의 지배를 없앨 수는 없지만, 지배의 성격은 조절할 수 있다.”는 소리.
결국 모스카의 이 책은 정치에서 ‘선악·진보·퇴보’를 걷어낸 뒤에도 왜 주권자에 의한 지배가 항상 남아있는지를, 그리고 우리가 왜 엘리트 이론을 거부할 수 없는지에 대한 최종 근거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정치철학서라고 할 수 있겠음.
13. Thomas Hobbes, Leviathan (1651)
홉스는 이렇게 물음. “왜 인간에게 주권이 필요한가?”
홉스의 답은 자연 상태 때문임. 홉스가 상상하는 자연 상태는 명확함.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서로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자원은 제한되어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권위가 없음.
결과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더럽고, 야만적이고, 짧음.
홉스의 주장은 간단함. 질서 없는 자유는 공포임. 주권은 도덕적 정당성이 아니라 물리적 필요에서 나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권력에 복종함.
주권은 절대적이어야 함. 주권자는 절대적 권력을 가져야 하고, 주권이 나뉘면 내전이 발생하며, 주권자에게 저항할 권리는 없음.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한 비판이며, 자유주의적 환상을 차단함. 권력 없는 자유는 실현 불가능함. 권력의 발생 조건을 명확히 설명함.
홉스의 중요성은 홉스가 권력을 정당화하지만 그 정당화가 도덕이 아니라 필요성에 기반한다는 것. 이것은 신학적 정당화나 도덕적 정당화와 다름. 순전히 물리적이고 심리적 필요성만을 근거로 함.
동의하지 않아도 반드시 거쳐야 할 출발점. 모든 정치철학은 홉스에 대한 동의나 반박으로 시작함.
14. Carl Schmitt, The Concept of the Political (1932)
슈미트가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는 책임.
슈미트의 답은 명확함. 정치는 적과 동지의 구분임.
도덕은 선과 악을 구분하고, 미학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며, 경제는 이익과 손해를 구분함.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분함.
정치의 핵심은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가를 결정하는 것. 적에 대해서는 물리적 투쟁이 가능하고, 동지에 대해서는 연대와 보호가 필요함.
슈미트는 자유주의가 정치를 회피한다고 비판함. 자유주의는 모든 것을 도덕이나 경제로 환원하려 하고, 적이라는 개념을 부정함. 하지만 실제로는 적을 범죄자나 비합리적 존재로 재정의함.
’테러리스트는 적이 아니라 범죄자다, 독재자는 적이 아니라 비이성적 존재다.‘ 슈미트는 이것이 위선이라고 봄.
이 책은 자유주의의 회피를 정확히 찌르고, 정치의 본질을 명확히 정의함. 또한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주권자의 결단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
15. Oswald Spengler, The Decline of the West (1918-1922)
슈펭글러는 1918년과 1922년에 걸쳐 두 권으로 이 책을 출간함.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패배와 혼란 속에서 즉각적인 베스트셀러가 됨.
슈펭글러는 문명은 영원히 발전하는가, 아니면 생명체처럼 생로병사의 주기를 거치는가에 대해 논함.
슈펭글러의 답은 명확함. 문명은 유기체임. 모든 위대한 문명은 약 천 년의 번영기를 거치고, 그 후 천 년의 쇠퇴기를 거쳐 소멸함. 이것은 불가피한 생물학적 법칙임.
슈펭글러는 문화와 문명을 구분함. 문화 단계는 창조적 활력이 넘치는 시기로 예술, 철학, 종교가 꽃피는 단계. 유기적이고 자연스러운 성장. 문명 단계는 창조력이 고갈되고 제국주의적 팽창이 시작되는 시기. 기술과 조직화에 집중하지만 문화적 생명력은 사라짐. 거대 도시, 대량 생산, 물질주의가 지배함. 이것은 문화의 겨울임.
슈펭글러는 여덟 개 주요 문명을 식별함. 바빌로니아, 이집트, 중국, 인도, 메소아메리카, 고전 문명(그리스-로마, 아폴론적), 중동 문명(마기안), 서구 문명(파우스트적).
각 문명은 특징적 정신을 가짐. 아폴론적 정신은 공간적으로 제한된 세계관을 가지며 육체의 완성과 조화, 균형을 중시하고 현재와 가시적인 것에 집중함. 마기안 정신은 유대교, 기독교 초기, 이슬람이 이 범주에 속하며 영적 계시와 신비주의, 선과 악의 이원론적 투쟁을 특징으로 함. 파우스트적 정신은 무한을 향한 욕망을 가지며 끝없는 탐구, 정복, 확장을 추구하고 미적분, 교향곡, 대성당의 수직성에서 표현됨.
슈펭글러의 진단은 명확함. 서구 문명은 현재 로마 제국 말기와 같은 저녁에 있음.
서구의 겨울 징후들은 이러함. 대도시의 팽창과 농촌 공동체의 붕괴, 예술의 창조성 고갈(반복과 기술로 대체), 돈과 기술에 의한 지배, 철학의 실용주의화(형이상학의 소멸), 제국주의적 팽창(문화적 창조 대신 군사적 통제).
슈펭글러의 역사관은 독특함. 역사는 선형적 진보가 아님. 고대-중세-근대라는 유럽중심적 구분은 착각임. 각 문명은 독립적인 유기체로 자체적인 생명 주기를 가짐. 한 문명의 가치와 진리는 다른 문명에 이식될 수 없음.
이 책은 진보주의적 역사관을 근본적으로 뒤집음. 역사는 발전한다는 믿음을 거부하고, 서구 우월주의를 비판하며(서구도 로마처럼 쇠퇴할 것), 낙관주의를 거부함(비관주의는 비겁함이라는 슈펭글러의 유명한 말).
이 책은 20세기 사상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침.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조지프 캠벨의 신화 연구, 카밀 팔리아의 문화비평 등등.
비판도 있음. 지나치게 결정론적이고, 인간의 선택과 우연을 무시하며, 생물학적 비유를 과잉적으로 사용하고, 영혼이나 운명 같은 신비주의적 용어를 남용함.
그럼에도 이 책의 가치는 명확함. 슈펭글러는 이래야 한다고 말하지 않음. 단지 문명은 이렇게 움직인다고 분석할 뿐.
역사적 낙관주의를 구조적으로 해체하고, 진보 이데올로기의 전제를 무력화하며, 서구 중심주의를 상대화하고, 각 문명의 독자성을 인정함.
진보와 발전을 믿는 모든 이념에 대한 냉정한 반박. 역사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믿음을 생물학적 주기로 대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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