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제 지지 블로거 Reactionary Future 소개

군주제 지지 블로거 Reactionary Future 소개


기본 정보


Reactionary Future(줄여서 RF)는 영국 출신의 반민주주의·반근대주의적인 정치철학 블로거임. 인터넷상에서 정치 이론, 역사, 정치철학 등 폭넓은 주제에 관한 글과 논쟁적인 비평을 남겼음.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영국인이라고 밝혔으며, RF라는 필명 외에도 Chris B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음. 자신의 블로그뿐 아니라 다른 사이트에서도 글을 썼음.


RF의 글은 일반적인 정당 정치 비평을 넘어 근대 정치철학 전체를 비판하고, 권력·권위·통치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데 초점을 맞췄음.


주요 활동 사이트


reactionaryfuture.wordpress.com (현재 접근 불가, 아카이브로만 존재 https://archive.md/reactionaryfuture.wordpress.com)


neoabsolutism.wordpress.com (현재 접근 불가, 아카이브로만 존재 https://archive.md/neoabsolutism.wordpress.com)


https://thejournalofneoabsolutism.wordpress.com/ (신절대주의(neoabsolutism)를 다루는 블로그)


정치철학적 성향


신반동주의/신절대주의


RF는 흔히 신반동주의(Neo-Reaction / NRx)나 절대주의(absolutism)와 관련된 논의를 펼쳤음. 일반적으로 근대 민주주의, 진보주의, 평등주의에 반대하며, 권력의 구조와 통치 이론을 재검토하려는 경향이 강함.


주요 이론 및 관심사


정치의 후견자 이론(Patron Theory of Politics): RF가 인터뷰에서 중심적 이론으로 소개한 개념임. 어떤 반란이나 정치적 전환은 기존 권력 구조 내부에서 후원(patron)을 가져야만 실질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주장임. 이 이론은 아나키즘, 자유주의, 민주주의 이론들을 "근본적인 정치 역학을 놓친 비현실적 모델"이라고 비판하는 방식으로 기능했음.


RF가 영향받았거나 언급한 사상가들


베르트랑 드 주베넬(Bertrand de Jouvenel) – 권력과 역사에 관한 작업으로 RF에게 중요한 영향을 줌

로버트 필머(Robert Filmer) - 자유주의 이전·이후를 관통하는 ‘권위의 존재론’을 제공한 사상가로 재해석함.

앨러스터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 도덕철학적 관점에서 RF가 인용한 철학자

커티스 야빈 a.k.a. 멘시우스 몰드버그 (Mencius Moldbug / Curtis Yarvin) – 신반동주의 커뮤니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론적 계보. 몰드버그에 대해서는 좀 비판적인 편. 닉 랜드에 대해서는 더더욱 비판적.


Reactionary Future는 NRx 보다는 군주주의자에 가까운 인물


RF는 커티스 야빈 및 닉 랜드 식의 NRx 정파 느낌보다는 사파 느낌. 좀 더 정확히는 The Mad Monarchist 처럼 군주주의자에 더 가까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갖고 있고,

권위·통치능력·책임의 집중을 긍정하며 "권력은 항상 존재하며, 문제는 그것을 부정직하게 분산시키느냐, 명확하게 책임화하느냐"라는 관점을 가짐. 또 통치의 정당성을 절차(선거)가 아니라 실제 통치능력과 국가 유지에서 찾음. 이 점들만 보면, 자유민주주의 ↔ 군주제 스펙트럼에서 RF는 확실히 군주제 쪽에 서 있음. 다만 전통적 군주주의자는 아님.  중요한 점은, RF는 왕이라는 제도 자체를 낭만적으로 옹호하는 전통적 군주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임. 보통 전통적 군주주의자가 따지는 것이 "누가 왕이어야 하는가?",  "왕위 계승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이런 식이라면, RF는 "정치는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권력은 어떤 조건에서 안정되는가?", "누가 실제로 보호자(patron) 역할을 수행하는가?" 이런 식임. 즉, 군주제는 '정답'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반복해서 등장한 '합리적인 결과물'에 가깝게 다뤄짐.


RF를 규정하는 가장 정확한 키워드는 '정치적 현실주의 + 반민주주의 + 권력의 비도덕화'라고 할 수 있겠음. RF가 말한 정치의 후견자 이론의 군주제적 요지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음. RF가 말하길, 어떤 정치 질서든 후견자(patron)가 반드시 존재함. 후원자는 폭력, 자원, 결정권을 통제함. 민주주의든 혁명이든, 실제로는 항상 엘리트 후원자 간 경쟁일 뿐임. "국민의 의지"는 정치 신화에 가까움. 이 관점에서 여러 정치체제들을 보자면...

민주주의 → 가면 쓴 귀족정/과두정
혁명 → 후견자를 바꾼 권력 재배치
군주제 → 권력의 집중과 책임이 가장 솔직한 형태

그래서 RF는 군주제를 도덕적으로 찬양하지는 않지만, 정치적으로 가장 정직한 체제 중 하나로 취급함.

RF가 말하길, 정치는 항상 주권자의 위계로 수렴한다고 함.  RF는 인터뷰에서 사회를 "항상 중심점을 갖는 모델"로 봐야 한다고 말함. 그리고 그 중심점은 주권(sovereign)이며, 이 주권이 가능/불가능의 경계(=문화·규범·제도의 경계)를 설정한다는 식으로 전개함. 이것은 군주주의의 아주 전통적인 토대("정치 질서에는 최종 결정권이 있다")를 현대식으로 다시 세운 것임. 즉, RF에게서 군주주의는 감성적 "왕 찬양"이 아니라, 정치 실재의 형이상학(ontology)에 가까움.

신절대주의(Neo-absolutism): 하향식 주권론

RF의 인터뷰 2부에서 RF는 신절대주의를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이라고 못 박고, 주권 권력이 "자신의 통제 아래에서 일어나는 것을 궁극적으로 결정한다"고 설명함. 또한 법도 "주권자의 의지/결정이 정규화(regularization)된 것"이라는 필머(Filmer) 식 관점에 기대어 서술함.

이게 군주주의 연구 관점에서 중요한 이유가 뭐냐면, 민주주의적 정당화(동의·대표·절차)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질서의 근원"을 주권자의 결정과 위임(delegation)으로 두고, 법·관습·문화가 "상향식"이어야한다는 자유주의 서사를 정면 반박했기 때문임. 이것은 사실상 군주주의(특히 절대주의)에서 가장 핵심인 "누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가?"를 정치철학의 제1원리로 복원하는 작업임.

정치의 후견자 이론의 군주제적 성격


RF의 정치의 후견자 이론은 "성공한 반란은 기존 권력 구조 안의 후견자 없이 일어난 적이 없다"라는 관찰에서 출발해, 근대 정치이론(특히 무정부주의적·자생적·대중주권적 상상)을 "현실에 대한 설명 실패"로 쳐냄.


이 이론이 군주주의적으로 읽히는 포인트가 뭐냐면...

정치의 기본 단위가 '개인+계약'이 아니라 '보호자-피보호자'라는 점,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아래는 그 권력에 결부되어  있지 않으면 체제 변동을 만들 수 없다"는 점,

결과적으로 정치질서는 위계적 충성·보호·위임의 형태로 반복된다는 점임.


이것은 군주제의 고전적 설명(왕은 최소한 이론적으로 "보호와 질서의 최종 책임자"이어야만 함)을 정치사회학적 법칙처럼 재기술한 것임.


그리고 군주주의 연구에서 자주 놓치는 지점이 "재산권"인데, RF의 텍스트에서는 재산을 개인의 비사회적 소유로 보지 않고, 권위가 승인해주는 '권리 묶음'으로 봄. 극단적으로 말하면 "군사적 방어를 통해 실질적으로 재산을 보유하는 건 주권자"라는 연결까지 나감. 이것은 고전적 군주주의가 갖는 명제(토지·권리·관할은 궁극적으로 주권적 질서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를 현대 정치경제 비판과 결부시키는 통로가 됨.


RF와 멘시우스 몰드버그와의 차이점


이 지점에서 RF는 야빈과 닮았지만, 또 다름. 야빈은 명시적으로 'CEO-군주'가 국가를 주식기업 식으로 운영하는 신관방주의를 주장했다면,  RF는 제도 설계보다 권력 역학의 해부에 집중함. 즉, "어떤 체제가 군주제처럼 작동할 수밖에 없는가"에 관심이 있음. 그래서 RF는 "나는 군주제를 주장한다"라기보다는 "민주주의를 제거하면, 결국 군주적 구조로 수렴한다"라는 쪽에 더 가까움.


RF의 특이한 종교관


일단, RF는 의외로 기독교인은 아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RF는 종교를 "초월적 진리 체계"로 보지 않음. RF에게 종교는 신적 계시의 직접적 표현도 아니고, 순수한 영적 진리도 아님. 대신 종교는 권력 구조에 의해 선택·형성·제도화된 문화 장치다. 즉, 종교는 언제나 정치적 구조의 함수인 것임. 이는 종교를 신학적으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의미. RF는 종교의 진리성이나 거짓성에 관심이 없음. 오직 종교가 어떤 정치적 기능을 수행했는지, 어떤 권력 구조에 헌신했는지를 보는 게 RF의 관심사.


그리고 RF는 기독교를 무신론적으로 조롱하지도 않고, 전통주의적으로 옹호하지도 않음. 앞서 말했듯, 스스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밝혔음. 그러나 RF의 관심사는 기독교의 진위 여부가 아님. RF의 진짜 관심사는 "이 신학은 어떤 권력 구조에서 선택되었고, 왜 이 신학이 다른 신학을 밀어냈는가?"임. 따라서 오컴식 신학과 프란치스코회 신학이 살아남은 것은 그것이 "이단이어서"가 아니라, 중앙 권력과 반(反)중간질서(중앙 권력이 자신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인간적 위계·판단·전통을 파괴하고 개인과 시스템만 남기는 과정) 정치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봄. Larry Siedentop의 『Inventing the Individual』는 이러한 과정을 상세히 추적했다고 언급함. Siedentop은 기본적으로 가톨릭 교회를 내부적으로는 갈등하고 외부적으로는 세속 권위와 갈등하는 평행 권력 구조로 제시했음. 그리고 중세 유럽은 고–저(high–low)간의 배틀로얄이었다고 표현함. 즉, 고교회파(성직 위계, 성례·의례, 전통·권위, 제도적 교회 강조)와 저교회파(개인 신앙, 성경 문자주의, 반(反)성직주의, 신자 평등 강조)와의 대립이었다는 말. RF는 이 고–저(high–low)간의 갈등을 비단 종교뿐만이 아니라 문명 전체의 반복 구조로 봄. 너무 길어서 간단히 요약하자면, 고–저 게임이란 중앙 권력이 자신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개인·평등·저급·반위계 흐름을 선택하는 문명사적 패턴을 말함.


그리고 RF에게 가장 중요한 통찰은 근대 자유주의·자본주의·개인주의는 기독교의 배신이 아니라, 특정 기독교의 승리라는 것. (이것은 몰드버그의 통찰과 비슷) "내 영혼과 신의 직접적 관계", "제도·위계·전통보다 개인의 양심",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모방하는 신앙" — 이 모든 것이 근대 개인 주권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는게 RF의 설명. 그래서 RF는 종교개혁을 "신앙의 회복"으로 보지 않음. 그것은 정치적 구조에 헌신한 신학적 선택이었다고 함. RF는"종교개혁은 주장되어온 만큼 큰 단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세속 제도들이 교회를 이기는 것이었는데, 세속 권위를 약화시키기 위해 촉진되고 있던 교회의 동일한 전술과 사고를 사용한 것이다. 그들은 교회를 '초-기독교화'했다."라고 말함. 이것이 뭔 소리냐? 세속 권력은 교회가 세속 권위에 대항하기 위해 사용하던 바로 그 신학적 무기를 빼앗아, 교회 자체를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임. 그 무기가 바로 극단적 개인주의와 직접적 신앙이었음.


RF는 일신교를 "본질적으로 참/거짓"으로 평가하지 않음. 대신 일신교는 극단적 중앙집권이 낳은 종교 형식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함. 이는 매우 급진적인데 RF의 논리는 이러함.


신은 하나 → 권력도 하나

다신교 → 분권적 권위 구조

일신교 → 단일 주권의 상징화


이 관점에서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와 고대 이집트의 일신교 신앙은 모두 정치 구조의 종교적 반영임. 일신교는 신학적으로 "더 참된" 것이 아니라, 더 중앙집권화된 권력 구조에 적합한 종교 형식이라는 것.


결국 RF의 종교관을 요약하자면 '종교는 인간이 신을 만난 기록이 아니라, 권력이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선택한 상징 체계다.'임. 그래서 RF는 신학 논쟁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음. 


읽어보면 좋을 RF의 글들


- RF의 인터뷰 1부2부. RF의 사상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남.


- 정치의 후견자 이론(The Patron Theory of Politics): 신반동주의적 사고가 된다면 꼭 읽어봐야 할 글.


탁월함의 윤리(Ethics of excellence): 매킨타이어의 관점을 따라 탁월함의 윤리와 협력의 윤리를 구분한 도덕철학이 드러나는 글.

- 경험주의와 대성당에서의 그 역할(Empiricism and its role in the Cathedral): 베르트랑 드 주브넬의 통찰을 통해 경험주의 및 계몽주의를 비판하는 글.

유물론과 결정론(Materialism and determinism): 유물론과 결정론에 대한 비평.

절대주의적 가속주의(Absolutist Accelerationism): 신자유주의와 불안정한 권력 체제의 기반이 되는 소극적 자유를 거부하고, 절대주의적 가속주의 국가가 제공하는 진정한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 

- 미제스에 반대하며(Against Mises):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중립적 과학이 아니라, 사회·주권·공동선을 제거한 자유주의적 무정부주의의 가장 정직한 표현일 뿐이라는 신절대주의적 통찰이 드러난 글.

- 홍콩, 싱가폴, 그리고 두바이: 고전적 자유주의의 낙원(Hong Kong, Singapore, and Dubai: Classical Liberal Paradises): 자유주의자들이 ‘법치와 자유시장’의 승리라고 부르는 도시들은, 실제로는 민주적 제약이 거의 없는 강력한 통치자가 자유를 ‘허용’했기 때문에 번영했다는 점을 몰드버그와 비슷한 식으로 분석한 글. 

- 자유와 방종의 재조명(Liberty Versus Licence Revisited): 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공동선의 질서’가 제거된 방종에 불과하며, 방종이 제도화되는 순간 진정한 자유는 사라진다는 점을 매킨타이어와 조반니 젠틸레를 인용하며 분석한 글. 압권인 점은 RF가 파시즘 철학자 젠틸레는 국가 안에서의 자유를 옹호하고 추상적 개인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를 비판했다는 점을 칭찬하나, 젠틸레는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았다고 한 점. 

- 자본주의를 개념화하다(Conceptualizing Capitalism):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소유와 재산, 관습과 법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며, 이를 혼동해 온 자유주의·마르크스주의·오스트리아학파는 모두 국가와 주권을 부정하려는 동일한 무정부주의적 전제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제프리 호지슨(Geoffrey Hodgson)과 멘시우스 몰드버그를 인용하며 분석한 글.

- 규범적 국가, 징벌적 국가, 강압적 국가(Normative, Punitive and Coercive States): 근대 자유주의 국가는 ‘규범적 지배’를 포기한 대신 ‘법과 처벌’에만 의존하는 처벌적 국가가 되었으며, 그 결과 법이 사회 전 영역을 침식하고 결국 통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해부한 글.

- 주권기업 개념은 홉스주의적이지 않고, 홉스주의의 정반대이다(Sovcorp is not Hobbesian, it the antithesis of Hobbes): 신반동주의에서 말하는 주권 기업 개념을 홉스적·자유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순간, 그것은 몰드버그가 의도한 반자유주의적 단일주권 모델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자유주의적 공상으로 붕괴한다고 분석한 글.

- 절대주의적 신반동주의적 정신적 순수성(Absolutist neoreaction spiritual purity): 대안우파와 보수주의는 민주적 틀을 벗어나지 못해 통치 능력이 없으며, 오직 절대주의적 신반동주의만이 체제 리셋과 네이션 리빌딩이 가능하다는 글.

- 몰드버그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Moldbug is not advocating capitalism): 몰드버그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 이후의 재산권에 대한 질서를 폐기하고 주권적 1차 소유를 복원하는 절대주의 국가론이다라는, 몰드버그에 대한 RF만의 참신한 해석이 드러나는 글.

- 종교는 무의미한 용어이다(Religion is a meaningless term): ‘종교’라는 개념은 근대 국가가 교회 권력을 해체·관리하기 위해 발명한 정치적 범주이며, 세속/종교 구분은 실체가 아니라 권력이 기능하는 방식의 표현일 뿐이란 글.

- 전통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An open letter to the Tradinistas!): 전통주의자들이 도덕 철학을 말하면서도 근대적 개인주의 전제에 갇혀 현대 세계에 대한 처방이 무쓸모해졌고, 전통주의자들의 요구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 형태는 단일 주권을 전제한 군주주의적 질서라고 주장한 글.

- 자생적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Spontaneous order does not exist): 리버테리언들이 말하는 자생적 질서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발명된 이데올로기적 허구라고 주장하는 글. 

- 윤리와 반동(Ethics and Reaction): ‘차별’과 ‘윤리’ 논쟁은 자유주의 인간관 내부에서만 의미를 가지며, 진정한 반동적 윤리는 아리스토텔레스–아퀴나스적 도덕적 공동체로의 복귀를 요구하고, 이는 근대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글. RF 특유의 NRx 정파에 대한 비판이 드러나는 게 특징.

- 젠틸레의 파시즘 철학에 관한 에세이(Gentile’s essay on the philosophy of Fascism): 젠틸레의 파시즘 철학은 자유주의·실증주의·유물론을 비판하며, 자유는 국가 안에서만 성립하고, 국가는 국민의 윤리적·정신적 의지를 통해 형성되는 ‘전체적 삶의 질서’라고 규정하며 젠틸레를 무작정 옹호하거나 비판하기보다 담담히 분석한 글.

- 반동주의 요약(The reactionary summary): 주권은 항상 보존되며 누군가는 반드시 지배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자유민주주의·자유주의·좌우파 정치 전체를 ‘비정형적이고 불안정한 권력’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 주권자의 판단에 기반한 형식화된 반동적 지배, 즉 엘리트 중심의 절대적 통치 질서를 제시한 반동주의에 대한 요약 글.

- 드 주브넬을 읽고나서(On reading De Jouvenel): 문화가 아니라 권력이 더 중요하며, 근대성은 인간의 판단을 배제하고 규칙·체계·시스템으로 통치를 대체한 ‘혼돈의 중앙권력’의 산물이고, 권력은 언제나 자기에게 유리한 문화를 선택·증식시킨다는 점을 드 주브넬의 글을 인용하며 분석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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