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움의 나선(holiness spiral)과 소모전

성스러움의 나선(holiness spiral)과 소모전


neuropoison, 2019년 4월 2일 게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개념은 ‘성스러움의 나선(holiness spiral)’이다. 어쩌면 이것이 단일 개념으로는 가장 중요한 개념일지도 모른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성스러움의 나선은 소모전(war of attrition)과 동등하다.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 뉴로, 소모전이 흥미로운 건 알겠는데, 그럼 전액지불 경매(all-pay auction)나 특허 경쟁(patent race)은 어떤가? 성스러움의 나선은 게임이론적으로 그것들과도 동형(isomorphic)인가?”


운이 좋다. 답은 그렇다(Yes)이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가 승자독식(winner-take-all) 경쟁이기 때문이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승자독식 경쟁에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투입한 총자원보다 승리의 가치가 더 낮아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합리적이 되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미친 게 아니다. 이것은 게임이론에서 잘 알려진 현상이다.


고전적인 예가 바로 ‘달러 경매(dollar auction)’다. 이는 낙찰받지 못하더라도 모든 참가자가 입찰가를 지불해야 하는 경매(All-pay auction)일 수도 있고, 혹은 상위 두 명의 입찰자만 입찰가를 지불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경영대학원에서는 실제로 이런 실험을 해왔다. 한 경영학 교수가 강의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 1달러 지폐가 있습니다. 이걸 경매에 부치겠습니다. 규칙은 이렇습니다. 최고가 입찰자는 입찰가를 지불하고 1달러를 받습니다. 두 번째로 높은 입찰자는 입찰가를 지불하지만 아무것도 받지 못합니다. 그보다 낮은 입찰자들은 아무것도 지불하지도, 받지도 않습니다.”


어떤 얼간이가 1센트를 부른다. 또 다른 얼간이가 2센트를 부른다. 그리고 어리석음의 향연이 시작된다. 이제 누군가 2센트를 불렀기 때문에, 1센트를 부른 사람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 입찰을 바꾸지 않으면 1센트를 잃는다. 하지만 3센트로 올리면 1달러를 얻고 3센트를 내니, 순이익은 97센트다. 좋다, 그럼 둘 중 하나가 99센트를 부를 때까지만 입찰이 이어지고 거기서 멈출까?


아니다.


입찰가가 98센트와 99센트에서 멈춰 있다고 해보자. 98센트를 부른 사람은 그대로 있으면 98센트를 잃는다. 하지만 1달러로 올리면 1달러를 받고 1달러를 내니 손익분기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한다.


자, 이제 정말 끝났을까?


절대 아니다.


현재 99센트를 부른 사람은 그대로 있으면 99센트를 잃는다. 하지만 입찰가를 1달러 1센트로 올리면, 1달러를 받고 총 1.01달러를 내니 순손실은 1센트다. 이는 99센트를 잃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그대로 있으면 1달러를 잃는다. 하지만 1달러 2센트로 올리면, 1달러를 받고 순손실은 2센트다. 그래도 1달러를 통째로 잃는 것보다는 낫다.


이제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는가? (“무한대로, 그리고 그 너머로!”) 이것은 이론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 실험에서도 사람들은 1달러를 따기 위해 1달러가 넘는 돈을 실제로 지불하게 된다.


핵심적 특징들:


• 당신의 결과는 상대방과의 상대적 위치에 달려 있다. 자신의 입찰가만 알아서는 이겼는지 알 수 없다. 상대의 입찰가도 함께 알아야 한다.


• 이기든 지든 비용을 부담한다. 이것이 바로 ‘전액지불 경매(All-pay auction)’의 특징이다. 전액지불 경매는 인위적인 상황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소모전(war of attrition)을 생각해보라. 이기든 지든 병사들이 죽는 등 비용은 발생한다. 실제로 전액지불인 셈이다. 특허 경쟁(patent race)도 마찬가지다. 가령 10억 달러 가치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9억 달러를 썼는데, 경쟁자가 10억 달러를 투입해 승리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하자. 승패와 무관하게 연구개발 비용은 이미 지불했다. 그렇다면 2억 달러를 더 투입해 총 11억 달러를 쓰고서라도 ‘경쟁에서 이기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


• 행동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처음부터 1달러짜리에 1달러 2센트를 부를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일단 투자하고 나면, 회수하고 싶은 손실이 생긴다. 그 결과 경쟁에 투입되는 비용은 계속해서 증가한다.


이제… 성스러움의 나선(holiness spiral)으로 돌아가자. 이 개념이 처음이라면, 여기서 ‘성스러움’이라는 말은 아이러니다. 이는 곧 좌파적 특성을 의미한다. 아마도 몇 세기 전,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자. 왜 여성이 가정 밖에서 비서로 일하면 안 되지?” 같은, 지극히 무해해 보이는 주장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워싱턴 포스트』의 공식 입장은 “어떤 범죄를 저질렀든 여성은 결코 감옥에 가서는 안 된다”가 되어 있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왜 남성이 여성복을 입는 게 불법이어야 하고, 그 반대는 왜 안 되지?” (예전에는 실제로 불법이었다고 한다.) 한 세기가 지난 뒤에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가 여성 화장실에 들어가 있고, 그를 여성 화장실에서 내보내려는 경비원은 폭행 혐의로 기소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누군가가 정치적 의미에서의 전액지불 경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한 세 가지 특징의 관점에서 성스러움의 나선을 살펴보자. 이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이 빌어먹을 사태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성스러움의 나선은 자산 거품과 같다. 계속 팽창하든가, 아니면 붕괴하든가 둘 중 하나다. 따라서 우리가 이를 멈춘다면, 그것은 곧 파괴하는 것이 된다.


성스러움의 나선(holiness spirals):


• 결과는 다른 참가자(들)와의 상대적 위치에 달려 있다. 자신보다 덜 ‘성스러운’ 사람은 공격할 수 있지만, 그들은 당신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없다. 프레드라는 어떤 인물이 가장 성스러운 위치에 있다면 군중에게 “스티브를 공격해라. 그는 충분히 성스럽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스티브는 “프레드를 공격해라. 그는 너무 성스럽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곧 “프레드를 공격해라. 그는 너무 착하다!”라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서로를 상대로 더 성스러워지려는 경쟁을 벌이게 된다.


• 이기든 지든 비용을 부담한다. 예컨대 당신의 입장이 “남성은 여성 화장실을 사용해도 된다”라고 하자. 이 정책이 채택되면, 당신은 (그리고 사회 전체도) 정신 나간 화장실 정책의 비용을 치르게 된다. 그런데 어떤 미치광이가 “그래, 그리고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전부 감옥에 쳐넣어야 한다!”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가 이기든 말든 당신은 그 비용을 부담한다. 만약 그 사람이 이긴다면, 당신이 주장했던 대로 여성 화장실에 남성들이 들어오게 될 뿐 아니라, 반대자들은 처벌까지 받는다. 그는 왜 당신의 좌측에서 당신을 우회해 앞질렀을까? 그 주장이 사회를 더 미쳐 돌아가게 만들긴 했지만, 그 자신에게는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가장 성스러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 행동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처음부터 “남성은 여성 화장실을 사용해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다. 출발점은 “성별에 따른 복장 규범을 법으로 강제할 필요는 없다”라는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조금 더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주장을 내세우며 당신을 우회했다. 그러자 당신은 그에 비해 덜 성스러운 위치에 놓이게 되었고, 그는 당신을 공격할 수 있었지만 당신은 반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은 다시 그를 앞지르기 위해, 같은 방향으로 조금 더 나아간 주장을 내놓는다. 이렇게 입찰 전쟁이 벌어진다. “그 달러에 1센트를 부르겠습니다”로 시작해, 결국에는 남성을 여성 화장실에서 막으려 한 경비원이 범죄로 기소되는 지점에 이른다. 물론, 실제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성스러움의 나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재앙들과 싸우기


위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가령 당신의 입장이 ‘남성은 여성 화장실을 사용해도 된다’라고 해보자. 그 정책이 채택되면, 당신은 (덧붙이자면 사회 전체도) 정신 나간 화장실 정책의 비용을 치르게 된다.”


이 점이 핵심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측면 하나는,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조차도 화장실에 트랜스젠더가 들어오고, (워싱턴 포스트가 원하는 대로라면) 여성들이 처벌 없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게 되는 데 따른 비용을 함께 부담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아기 말고도 더 넓은 범위로 확대하길 원한다.) 이는—전액지불 달러 경매와는 달리—성스러움의 나선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멈출 유인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예컨대 2016년 11월 8일에 중요했고, 성스러움의 나선이 점점 더 극단화될수록 그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은 무엇인가? 첫째, 이 광기의 실상을 가능한 한 널리 알리는 것이다. 나는 인터넷의 여러 구석에서 이를 하고 있고, 우파에 속한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


또 하나—그리고 분명 이미 시작된 일이기도 한데—블랙 나이팅(black knighting)을 강화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여기서 말하는 블랙 나이팅은 몬티 파이선의 허당 기사 같은 것이 아니라, 더 성스러운 적인 척하면서 적을 공격하는 것을 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조직이 트위터에서 “우리는 동성애자인 여성을 채용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하면, 그 조직을 다른 성소수자나 무슬림 동성애 여성을 채용하지 않았다고 공격하는 식이다. 이런 일은 지금도 상시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그게 미친 사람들이 더 미쳐가는 것인지, 아니면 좋은 편이 블랙 나이팅을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장점이다.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효과적인 것이다.


그 효과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좌측으로 이동하는 데 따르던 안전성과, 따라서 그 이익을 제거한다. 내가 “백인 레즈비언을 채용했다”고 자랑하자마자 “왜 흑인 레즈비언을 채용하지 않았느냐”는 공격을 받는다면, 그런 성스러움 신호 보내기에는 더 이상 안전이 없고, 따라서 할 이유도 없다. 요즘은 오히려 이성애자 백인 기독교 남성을 조용히 채용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레즈비언 채용을 자랑하는 좌파보다 혐오 군중에게 공격받을 가능성이 더 낮다. (좌파는 취약성을 노린다. 좌파는 다른 좌파를 공격하는데, 그 이유는 좌파가 (1) 좌파 집단에 속해 보이는 것을 중시하고, (2) 좌파 고객·기부자·기타 이해관계자를 유지하기 위해 최신 좌파 요구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이 복스 데이(Vox Day)가 자신의 출판사에서 이성애자 백인 남성을 채용했다고 소리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는 그저 비웃을 것이다. 그의 고객층은 절대로 SJW가 아니다.) 결국 “그냥 가장 적합한 사람을 채용하고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퍼질 것이다. 그게 점점 더 안전해지고 있다. 설령 완전히 안전하지 않더라도, SJW 군중을 달래려 애쓰는 것보다 크게 더 위험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스러움의 나선을 추동하는 유인을 파괴한다.


블랙 나이팅은 완전히 진지한 얼굴로 해야 한다. 이미 당신이 SJW가 아니라는 걸 아는 포럼에서 이걸 시도하지는 말라. 그러면 그냥 분탕질로 치부될 뿐이다. 대신, 새로운 정체성(신상 털림 방지)으로, 당신을 모르는 포럼에서 하라. 우리 모두 블랙 나이팅에 나설 수 있다.


블랙 나이팅의 아름다운 점은, 적에게 방어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변명하려 들면, 곧바로 이렇게 나가면 된다. “이봐! 얘네 트랜스젠더 혐오야! 여성 혐오야! 동성애 혐오야!” 등등. 그들은 당신이 자기들보다 더 성스러워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건 이론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이런 일이 점점 더 많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는 실제로 보아왔다. 예컨대 최근에는 정치적 올바름이 덜하다는 이유만으로, SJW식 공개 망신과 압박을 견디다 못해 책을 회수해야 했던 흑인 게이 작가의 사례도 등장했다.


그러니 우파에 속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이 광기의 소식을 보통 사람들(normies)에게 퍼뜨릴 것. 둘째, 이미 본격적으로 진행 중인 블랙 나이팅 운동에 합류할 것이다.


원문 링크: https://neurotoxinweb.wordpress.com/2019/04/02/holiness-spirals-and-wars-of-attrition/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주권(主權), 책임, 소유: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 일치의 방법론에 관하여

정치적 자유라는 이름의 버퍼(Buffer)

일본천황 황위 계승권 개정안 통과, 여성 천황 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