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무리한 팽창과 무기력증에 빠진 중국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몇몇 결정적인 선택들이 이후 수십 년, 혹은 한 세기의 질서를 갈라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대일본제국의 해체와 그 이전의 선택들은 가장 큰 분기점 가운데 하나였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역사 놀이가 아니라, 동아시아 질서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를 되짚게 만든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흔히 ‘광기 어린 도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라는 압박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미국은 일본이 중국 대륙에서 철수하지 않는 한 자원을 차단하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국의 요구가 ‘만주 철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만주를 제외한 중국 본토에서의 철수를 요구했다. 즉, 일본은 이미 확보한 만주를 유지한 채 중국 본토에서 물러나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었다.
만약 일본이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최소한 태평양 전쟁이라는 자멸적 확전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만주라는 거대한 완충지대와 자원 기반을 확보한 상태였다면, 더 이상의 팽창보다는 유지와 관리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본 제국의 비극은 단순히 패배에 있지 않다. 이미 얻은 것을 지키기보다, 더 얻으려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점에 있다.
만주를 유지하고 중국 본토에서 철수했다면, 대만 역시 일본의 영토로 존속했을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전면적인 패전과 연합군 점령이라는 결과는 피했을 것이다. 일본 제국은 해체되지 않았고, 동아시아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권력 균형이 형성됐을지도 모른다.
일본이 중일전쟁에 몰두하는 대신 중국 본토에서 철수했다면, 그 다음 변화는 중국 내부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가장 큰 변수는 국공내전의 향방이다.
일본이라는 외부 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은 훨씬 유리한 위치에 놓였을 가능성이 높다. 공산당은 항일전쟁이라는 명분과 대중 동원을 잃었을 것이고, 국공내전의 결과는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장제스 역시 만주를 일본에 넘기는 선에서 타협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만주를 두고 전면전을 벌이기보다는, 중국 본토의 통일과 안정이 더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 중국이 북중국과 남중국으로 분단되는 시나리오도 완전히 비현실적인 상상만은 아니다. 냉전기 동아시아에서 이는 오히려 안정적인 균형을 만들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현대 중국으로 시선을 옮기면, 또 다른 흥미로운 모순이 보인다. 중국에서 분리주의 감정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중국은 대안우파의 부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충분히 ‘서구식 pc주의’로 혼란한 상태까지는 아니다.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사례를 보면, 대규모 이민 유입과 과도한 PC 운동이 대중에게 혼란을 일으킴에 따라 이에 반대하는 대안우파의 부상을 야기했다. 그런데 중국은 이와는 흐름이 다르다. 이슬람·아프리카계 이민자 유입도 없고, 문화적 급진성도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명확한 보수주의적 질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결과 중국 공산당은 좌파적 구호를 유지하면서도, 체제를 흔들 만큼 급진적이지 않은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 ‘어정쩡함’이 오히려 사회 전반에 무기력을 퍼뜨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시진핑 이전의 중국 체제(상하이방에 의해 주도되던 체제)는, 적어도 경제 정책 측면에서는 사민주의 국가들이나 민주당 정권 하 미국보다 나았다고 느껴지는 지점도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은 시장과 국가가 불완전하게나마 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리커창식 실용 노선이 더 지속되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는 경제적으로 과도한 좌클릭을 선택했다. 여기에 장쩌민 계열의 권력 정치가 겹치면서, 중국은 유연성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의 사회문화적보수주의 코스프레와 중앙집권적 코포라티즘 정책은 반서방 정서를 가진 이들에게 있어서 중국을 유토피아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는 경제적으로 과도한 좌클릭을 선택했다. 여기에 장쩌민 계열의 권력 정치가 겹치면서, 중국은 유연성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의 사회문화적보수주의 코스프레와 중앙집권 중국은 반서방 정서를 가진 이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본 제국의 선택, 중국의 체제 진화, 서방의 좌경화는 서로 단절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어디까지 확장하고, 어디서 멈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변이 만들어낸 결과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종종 가장 위험한 선택이 가장 용기 있어 보였던 순간들로 인해 결정되어 왔다. 그리고 그 대가는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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