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윱저버] 트럼프 '보수주의' vs 밀레이 '자유주의' 유튜브 영상 내용 전문

 https://youtu.be/8Krkx0MZ37Y?si=s--WrRA2jRFMFTtv


현대 세계의 정치 철학적 3대 이념은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영상에서 좌파와 우파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제가 좌파라고 할 때는 보통 평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PC 이념, 또는 미국식 리버럴리즘을 의미하고, 우파라고 할 때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통칭합니다.

 

사실 현재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좌파라는 공동의 에 맞서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의견 대립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찰리 커크가 보수주의자와 리버테리언이 토론하는 영상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총기 소유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보였지만, 관세와 마약 합법화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이 두 집단 사이에 왜 이런 이견이 나오는지, 리버테리언 이즘과 컨서버티브의 차이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특히 보수주의로 대변되는 트럼프와 그를 대표하는 학자들인 에드먼드 버크, 러스 커크, 로저 스크러튼 세 명과, 리버테리언으로 대표되는 밀레이와 그를 대표하는 학자들인 하이에크, 로버트 노직, 머리 로스바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점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대표로 언급된 각각의 세 명 학자들은 제가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ChatGPT에게 한 번 물어본 결과입니다.

 

여튼, 이런 이론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복잡한 데다가, 제가 저런 개념에 대해 엄밀한 지식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미비하거나 오류가 있는 부분도 있을 텐데요. 지적할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라며, 영상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거칠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보수주의가 가장 중요하게 내세우는 가치는 전통과 안정성이며, 자유주의가 내세우는 가치는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러한 사상들의 원류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는 계몽주의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왕의 권한이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왕권신수설, 즉 군주와 가톨릭이라는 절대 권위에 맞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외쳤습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을 통해 인류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계몽주의의 핵심 논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은 신이 준 것이다, 즉 신이 준 능력을 통해 신의 섭리를 발견해 나가고 인류가 진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 바로 최초의 고전적 자유주의, 즉 클래식 리버럴리즘의 시조로 알려진 존 로크입니다.

 

존 로크는 우리가 하늘로부터 자연권, 즉 천부인권을 부여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자연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없으면 굶어 죽고, 먹을 것이 없으면 어차피 먹을 수 없으니 죽게 되며, 생명이 없으면 재산이나 자유도 쓸모가 없겠죠. 이런 면에서 생명, 자유, 재산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 로크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죠. 살인자, 강도, 독재자 등등 말입니다. 이러한 자연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 계약을 통해 정부를 조직했다는 것이 로크의 주장입니다. 그 정부는 법을 집행하고 치안을 유지하며 국방을 담당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해야 하며, 만약 정부가 이를 위협하게 된다면 국민은 저항할 권리, 즉 저항권을 가진다는 것이 존 로크의 주장입니다.

 

이는 왕이 신이 내려준 존재라는 왕권신수설을 반박하며, 당대에 절대적이었던 가톨릭에 대항해 종교의 자유를 확립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존 로크의 영향으로 크게 두 가지 혁명이 일어나는데, 하나는 미국의 독립 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혁명입니다.

 

먼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작성한 독립 선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는 몇 가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는데, 그 권리는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이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 목적을 파괴할 때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있다." 이는 존 로크의 주장에 상당히 영향을 받은 내용들입니다.

 

이후에 작성된 프랑스 인권 선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은 권리에 있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며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2.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를 보전하는 데 있다. 그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 등이다.

3.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 있다.

4. 자유는 타인에게 해롭지 않은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 자유에 대한 제약은 법에 의해서만 규정된다.

 

이 선언문은 앞선 미국의 독립 선언문과 유사해 보이지만, 예민하게 보면 두 가지 정도 차이점이 있습니다. 미국 독립 선언문은 창조주, 즉 하나님으로부터 자연권을 부여받았다고 명시한 반면, 프랑스 선언문은 천부인권 자체는 인정하되 그 자연권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즉 신이나 초월자의 개념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면에서 프랑스 선언문은 사람이 근본이다, 사람이 먼저다와 같은 인본주의적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앞서 말씀드린 계몽주의, 즉 인간의 이성으로 인류가 진보한다는 개념인데, 앞서 언급한 존 로크의 계몽주의와는 조금 다릅니다.

 

존 로크는 인간이 오감, 즉 경험을 통해 앎에 도달한다는 경험주의라는 철학적 인식론에 가깝다고 평가되는데, 반면 프랑스 선언문에 영향을 미친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 즉 합리주의라는 인식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유명한 데카르트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잘 알려진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이 합리주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와 같은 인물들이 프랑스 출신인 반면, 존 로크 이후에는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 같은 인물들이 경험주의를 따르며 경험주의를 표방하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를 따르는 대륙식 계몽주의로 계몽주의가 크게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이후 칸트에 의해 경험과 이성을 종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여튼 다시 돌아와서, 프랑스 선언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계몽주의의 변종이자 장 자크 루소라고 평가되는데요. 일반 의지와 인민 주권을 주장한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의 이성보다 감성을 중시한 감상주의적 계몽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감성에 대한 신뢰가 법보다 우선하는 것이 루소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이성을 통해 나아진다고 하는데, 그건 헛소리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성이 인간을 얼마나 속박시키는지 보세요. 공부도 해야 하고, 남들과 경쟁도 해야 하고, 그 이성 때문에 얼마나 불행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런 걸 다 떠나서 과거의 자연 상태, 즉 원시시대 같은 곳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루소의 주장입니다.

 

어쨌든 프랑스 혁명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참고로, 현재의 좌익과 우익이라는 개념은 당시 자코뱅파와 지롱드파의 위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급진적 혁명을 주창하며 다 없애자라고 외친 자코뱅파는 의회에서 왼쪽에 앉아 좌익으로 불렸고, 점진적이고 차분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롱드파는 오른쪽에 앉아 우익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결국 이 급진파가 혁명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당시 왕이었던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서도 "아들과 근친상간을 했다"거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가짜 뉴스들이 퍼지면서 그녀도 단두대에서 처형당했습니다. 이는 사실 국내에서 좌파들이 박근혜를 비판할 때의 상황과도 유사합니다. "박근혜가 최태민과 부적절한 관계였고, 정유라가 그의 딸이다"라는 이야기나 "세월호 사건 당시 올림머리를 했다" 등의 가짜 뉴스들이 난무했었죠. 당시 유포된 가짜 뉴스는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후 로베스피에르가 공포 정치를 펼쳐 반혁명 분자들을 처형하며 공포정치를 주도했지만, 결국 그 자신도 턱이 너덜거리는 상태에서 단두대에 올라가며 처형당했습니다. 혁명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고, 수십만 명이 죽으며 결국 나폴레옹이 등장하게 됩니다.

 

프랑스 혁명의 효시가 되는 사건 중 하나가 바로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입니다.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영화 내용에서 건달들이 주유소에 불만을 품고 털어버리는 것처럼, 이 사건도 성난 군중들이 별 상관도 없는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탈취한 사건입니다.

 

아마 그 영화는 자본주의를 풍자하고, 건달 네 명의 주인공을 시민 군중으로, 주유소 사장 박영규를 자본가로 설정하여 몰아내는 풍자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당시 감옥을 습격한 시민들은 감옥을 수비하던 사령관을 비롯해 파리 시장을 말 그대로 집단 린치로 죽였고, 그 시체의 목에 죽창을 찔러 광장에 전시하는 등 잔인한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광경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던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이라는 글을 쓰며 보수주의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기간 중에 귀족층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거의 말살에 가까운 적폐 청산현상이 나타났는데, 버크는 이러한 급진적인 혁명과 개혁이 오히려 질서의 파괴만을 초래했다고 보며 프랑스 혁명을 비판했습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을 사기, 폭력, 신성 모독, 가족 파괴, 몰락의 사례등으로 규정했는데, 여기서 제가 처음에 언급한 보수주의가 강조하는 전통과 질서의 가치가 나오게 됩니다. 보수주의의 의미를 살펴보면,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을 옹호하며 현상 유지와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사고방식이나 경향을 뜻한다고 정의됩니다.

 

또한, 버크는 칼뱅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의 독립 혁명과 달리, 프랑스 혁명은 지나치게 인간의 이성을 과신했던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특히, 추상적인 관념론에 바탕을 둔 루소의 감성적이고 낭만주의적인 계몽주의, 그리고 합리주의 같은 것들이 기존 선대들이 역사적으로 발전시켜 놓은 전통과 지혜, 제도 등을 모두 무너뜨리고 사회를 혼란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버크의 지적이었습니다. 버크의 주장은 역사와 전통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공리주의에 가깝다고 평가됩니다.

 

이 점은 존 로크의 인식론적 경험주의와 어느 정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지만, 버크는 그보다 더 나아가 인간 이성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회의주의라고 부릅니다. 이 부분은 자유주의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대륙식 계몽주의와는 철학적 배경에서 조금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수주의에서 강조해야 할 점은, 보수주의가 하나의 이념이나 사상의 범주로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수주의를 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맞냐는 일부 견해도 있습니다. 이념이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에 대한 개념인데, 버크는 언제나 옳고 절대적인 규칙이나 원칙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마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제일 계명과도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과 질서를 중시하는 태도나 경향성을 보수라고 부르는 것이며, 보수주의를 특정 이름표가 붙은 병에 담으려는 것은 공기를 액체로 만들려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보수주의는 정치적 사상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습관, 감정적 상태, 또는 삶의 방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보수주의자는 좌파와 달리 겸손함과 신중함을 주요 덕목으로 여기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버크의 위계에 대한 입장입니다.

 

위키에 따르면, 버크는 귀족주의와 엘리트주의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동시에 신분과 관계없이 도덕적 품성과 능력에 따라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실력주의도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그의 복지에 대한 주장에서도 드러나는데, 버크는 직접적인 국가의 복지 개입이 아닌 귀족과 부자의 도덕적인 고결함에 기초한 자발적인 온정주의에서 나온 복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귀족은 책임을 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입니다.

 

버크의 이러한 입장을 이어받아 잘 정립한 인물이 국내에서 보수의 정신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러셀 커크입니다. 보수주의는 획일적인 개념으로 정리되기 쉽지는 않지만, 러셀 커크는 보수의 규범을 몇 가지로 정리했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 양심이 아니라 사회를 규제하는 초월적 질서가 존재하며, 정치 문제는 근본적으로 종교와 도덕의 문제이다.

2. 공동체의 가치: 공리나 이익이 아닌 공동체 자체가 가치 있는 존재이다.

3. 문명화된 사회는 질서와 계급을 요구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무계급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4. 자유와 소유물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경제적 평등은 진보가 아니라 파괴를 가져온다.

5. 전통의 중요성: 당연하게 보이는 옛 관습이 인간의 무정부적 충동을 견제한다.

6. 신중한 변화의 필요성: 사회는 바뀌어야 하지만, 신중한 변화가 사회 보존의 수단이다. 정치인의 주요 덕목은 신중함이다.

 

커크는 이러한 규범을 다시 보수의 열 가지 원칙으로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보수주의자는 불변의 도덕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2. 보수주의자는 관습, 널리 오랫동안 합의된 지혜, 그리고 계속성을 중시한다.

3. 규범을 따르는 원칙을 믿는다.

4. 신중하게 행동한다.

5. 다양성의 원칙을 믿는다.

6.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원칙에 따라 스스로를 억제한다.

7. 자유와 재산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8. 자발적인 공동체를 지지하고, 강제적 집단주의에 반대한다.

9. 인간의 격정과 권력을 신중히 자제할 필요가 있음을 인지한다.

10. 사려깊은 보수주의자는 활력이 넘치는 사회라면 영속성과 변화를 반드시 인정하고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를 대략 정리하자면, 보수주의란 특정한 이념이나 사상이라기보다 전통과 질서, 안정성을 중시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서구의 핵심 가치, 가령 초월적인 신의 불변의 질서 등은 보수적으로 지키고 계승해야 한다고 보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이성이나 추상적인 관념에 대해서는 항상 회의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여기며, 신중하면서도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합니다.

 

또한 보수주의는 자유와 재산권을 별도로 분리해 판단할 수 없다고 보고,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인간이 필연적으로 위계와 질서를 만들어내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선에서 획일주의와 평등주의를 배격합니다. 아울러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인 집산주의에 반대합니다. 이 정도로 보수주의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수주의의 현대적 사상가인 로저 스크러턴의 저작을 살펴보면서 본격적으로 리버테리언 이즘과 보수주의를 비교해 볼까 합니다. 조금 러프하게 보자면, 보수주의 입장에서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같은 급진적 사상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사실 로저 스크러턴의 "하룻밤에 읽는 보수의 역사"에는 이러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계몽주의 시기에 등장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맞서 인간 개인의 본성을 먼저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은 조국의 방위, 국경의 유지, 국가의 통일성과 일체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우파 내부에서 나타나는 긴장의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유경제와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신념은 불가피하게 보수주의가 중시하는 지역적 애착이나 공동체의 보호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개인의 자율성을 정치의 궁극적 가치로 수용하는 데 의견이 일치하지만, 전통적 제도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정치 질서가 개인의 자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가 정치 질서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버크는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합의로 이루어진 사회계약론이라는 자유주의 사상을 거부했습니다. 버크는 사회를 유지하는 원칙이 계약보다 신탁을 받은 사람들의 의무에 더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회를 위해 우리의 요구에 한계를 설정해야 하며, 사회라는 무언가를 받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끊임없는 연쇄의 고리 같은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리버테리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다시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가 난장판이 되어가던 시기에, 영국에서는 아담 스미스가 등장했고, 증기기관의 발전과 맞물리며 산업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참고로, 아담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에 기초한 고전적 자유주의자이자 경제학의 창시자로, 자본주의의 아버지로도 불리며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분업과 교환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옹호하며,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스미스는 인간이 자연적으로 교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는데요, 원시 시대의 물물교환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교환이란 것은 서로 주고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로 인류가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영국은 폭발적인 성장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과 빈부 격차 등이 문제로 떠오르면서 서서히 자유주의의 분화가 시작됩니다. 대륙의 프랑스 합리주의와 벤담의 공리주의 영향을 받은 존 스튜어트 밀은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자유는 옹호했지만, 경제적 자유에 있어서는 반대 입장을 보이며 사회 자유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는 현재 미국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리버럴의 원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 기사를 통해 밀의 사회주의적 태도가 잘 드러나는 저작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밀은 노동자 계급이 겪은 극심한 불평등에 대해 도덕적으로 분노하며, 단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노력 없이 누리는 즐거움이나 정신적, 도덕적 이점을 향유하지 못하는 것은 인류가 지금껏 없애기 위해 싸워온 그 어떤 악보다도 나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를 믿지 않을 수 있겠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소유권 제도가 타당한지에 대해 아무런 편견 없이 공평하고 이성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밀은 이 글에서 프랑스 혁명적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과 자유주의자 빅토르 콩시데랑의 논의를 소개한 뒤, 그들의 주장에 담긴 문제점도 다룹니다. 밀은 사유 재산권이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며, 사회가 충분한 검토 끝에 공익을 해친다고 판단되는 특정 재산권에 대해 이를 폐지하거나 변경할 완전한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밀은 이러한 변화의 핵심이 현재 상황에서 사회가 주는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후대의 진보적 자유주의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 이론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아담 스미스의 개념과는 달리, 밀은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분배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이는 즉, 당장 굶어 죽는 사람들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자유가 없는 셈이니, 국가가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자원을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 밀의 생각이었습니다. 이처럼 경제 문제에 있어 국가 개입을 옹호하고,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를 리버럴리즘적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자유주의라 부르면서, 기존 리버럴의 개념이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클래식 리버럴리즘)’라 불리며, 좌익 성향의 자유주의(리버럴)와 구분하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경제 계획과 같은 주장은 결국 생산 수단의 사회화, 즉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확대되어갔고, 그 정점에는 바로 칼 마르크스가 있었습니다. 당대 최신 철학과 과학을 집대성했다는 마르크스의 사상은 결국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기초한 유토피아적 환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이 아닌, 창조된 인간들은 모두가 평등해져야 한다는, 즉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산 사회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점차 자본주의를 대체할 체제로 인식되었습니다. 자유무역에 반대하고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던 페이비언 협회 소속원 중에는 유명한 인물이 있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이 추앙하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 쇼입니다. 지금도 유튜브에 그의 영상이 남아 있는데, 이 사람이 말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몇 년마다 모든 사람을 어떤 위원의 앞에 소개하여, 쓸모없다고 판단되면 제거하고, 쓸만하면 살려두자고 주장한 것입니다.

 

조선인들은 히틀러 같은 인물을 경계해야 한다면서, 정작 이런 극단주의자를 칭송하는 모습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튼,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후에도 네오 마르크시스트들이 모인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같은 이론을 도입해 마르크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시키며 결과의 평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여기서 또 프랑스의 68혁명이 발생합니다. 프랑스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상황을 겪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현재의 젠더 이데올로기, 환경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좌파, PC 주의 같은 것들도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 봅시다. 1923년대 미국에서는 대공황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전 세계에 퍼져 있던 사회주의적 분위기와 맞물려 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여기서 바로 수정 자본주의, 즉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에 큰 영향을 준 경제학자 케인스가 등장합니다.

 

참고로 수정 자본주의란 것은 혼합 경제 체제를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자본주의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여 무질서한 시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당시 케인스는 실업과 불황의 원인으로 유효수요 부족을 지목했는데,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기존 경제학계의 고전학파는 "세이의 법칙,"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케인스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유효수요 이론을 들고 나와서, 정부가 재정, 즉 돈을 풀면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통화 공급을 늘리며, 사회보장 제도 같은 것이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케인스파인 사회 자유주의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정부가 국민을 돌봐주겠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복지 확대를 주장했습니다. 이에 보수주의의 아이콘처럼 불리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 역시 "우리 모두는 케인지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이러한 뉴딜 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여 경제가 안정화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실업률과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케인스의 이론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케인스는 경제 활동이 둔화되면 실업률은 높아지고 유효수요가 떨어지며 물가는 하락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업률이 높아지면서도 임금과 물가가 동시에 오르니, 케인스의 이론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케인스의 이론에 맞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하이에크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리버테리언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적으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개인의 권리와 책임이라는 면에서, 자신의 권리만 내세우며 책임을 국가에 떠넘기는 것은 좌파 리버럴 사회주의적 사고입니다. 반면, 권리와 책임을 모두 개인이 져야 한다는 것이 리버테리언적 사고라고 정의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당시 하이에크는 케인스와 달리 대공황에 대한 진단이 달랐습니다. 케인스는 "저축의 역설," 즉 사람들이 저축을 많이 할수록 경기가 악화된다고 보면서 문제의 원인을 시장에서 찾았지만, 하이에크는 인위적인 통화 정책을 펼친 정부가 문제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하이에크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후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등장하게 되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약간의 경멸을 담아 "신자유주의"라고 부릅니다.

 

하이에크는 "자유의 방어" 등을 주장하며 자신을 고전적 자유주의자로 규정했습니다. 사실 하이에크의 주요 주장은 자생적 질서로, 이는 고전적 자유주의자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비슷합니다. 시장은 그대로 두면 스스로 잘 돌아가니, 국가는 되도록 개입하지 말라는 입장이죠. 어쨌든 이 영상에서는 편의상 하이에크를 리버테리언으로 부르겠습니다.

 

리버테리언들에게 최상의 가치는 당연히 자유지만, 철학적 배경이나 이론에 있어 학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영상에서는 하이에크, 노직, 로스바드를 중심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짚어둬야 할 것은, 리버테리언과 보수주의의 입장이 갈리는 부분이 바로 국가에 대한 시각이라는 점입니다. 대체로 리버테리언은 정부와 개인을 "집단 대 개인"으로 보고, 두 관계가 대립하는 반비례적 관계라고 상정합니다. 반면, 보수주의자는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도 중시하기 때문에, 개인과 정부의 관계를 비례적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리버테리언에게 "애국"이라는 용어는 잘 맞지 않지만, 보수주의자에게는 애국이 중요한 가치입니다. 한편, 보수주의는 인간을 불완전하다고 보는 입장에서 불완전한 인간으로 구성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도 하고, 반대로 불완전한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여 약간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입장을 좋게 말하면 실용주의적 태도라고 할 수 있고, 조금 나쁘게 보면 기회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리버테리언들은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버테리언들은 개인을 집단으로 보고, 국가가 커질수록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다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물론, 리버테리언들도 정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입장이 다소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하이에크는 정부가 그래도 필요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면, 노직은 정부를 필요악정도로 보았습니다. 한편, 아나코-캐피탈리즘, 즉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를 주장한 로스바드는 정부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자연권을 비롯한 철학적 배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선, 하이에크는 인식론에 있어서 보수주의와 유사한 면을 보입니다. 그는 사회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시도를 "치명적인 자만"이라고 하며, 인간 인식의 한계성을 수긍했습니다. 그러나 보수주의와의 차이점은 하이에크가 인간의 인식에 대해 회의적이기보다는 낙관적인 관점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하이에크는 시장을 자유롭게 두면 겉으로는 무질서하고 혼돈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질서가 자연스럽게 잡히며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해 나간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무질서 속의 질서"라는 카오스 이론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 자유와 질서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화합적인 관계로 존재한다고 보았고, 이를 자생적 질서라고 부릅니다.

 

결국 하이에크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즉 경험주의 전통을 이어받아 진화론적 합리주의를 전개해 나갑니다. 그는 고전적 자유주의자 존 로크의 자연권과 사회계약론에 대해서도 다소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존 로크의 자연권이란, 어찌 보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절대적인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에크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하이에크에게 자연권이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역사적으로 진화해 오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들이 이러한 자연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를 조직했다는 사회계약론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로스바드는 합리주의에 근거하여 존 로크의 자연권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보완했습니다. 그는 미제스의 "인간은 목적을 갖고 행동한다"'인간 행동 학파'의 명제에 입각하여 자기 소유권과 비침해성 공리를 주장합니다. 인간이 목적을 갖고 행동한다는 것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비슷한 논리입니다. 이 명제를 반박하려면 수행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꼭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즉시, 그 사람은 자신의 발언을 통해 이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소유권이란 것은 말 그대로 '셀프 오너십,' 즉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이고, 비침해성 공리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신체나 재산을 절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공리입니다. 그런데 이 신체와 재산을 침해하는 존재가 바로 국가라고 보는 것이 로스바드의 생각입니다. 국가는 징병제로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보내고, 세금을 통해 재산을 강탈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로스바드와 존 로크의 견해는 달라집니다. 존 로크는 생명, 자유,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정부를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로스바드는 오히려 그러한 정부가 생명, 자유, 재산을 파괴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로스바드는 자유 시장 외의 모든 종류의 국가 개입을 "합법화된 악"으로 간주합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효용적 측면에서 자유를 옹호하는 반면, 로스바드는 도덕적·윤리적 차원에서 자유를 옹호합니다. 비침해성의 공리에 따라 인간의 생명, 자율성, 재산 등을 침해하는 정부가 없는 무정부적 자본주의야말로 가장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체제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노직의 경우 하이에크와 로스바드를 어느 정도 혼합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직은 하이에크의 영향을 받아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라는 저서를 집필하는데, 이 책에서 일부는 자연 상태론, 또는 의도적 노력 없이 어떻게 국가가 성립될 수 있는가에 관한 이론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태초의 국가가 인간들의 목적성을 가진 의도에 의해 성립된 것이 아니라,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처럼 자연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최소 국가가 출현해 나가는 과정을 논증합니다. 그러니까 유사 국가 조직은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직의 아이디어입니다.

 

노직은 또한 '권리 이론'이라는 개념을 전개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재산의 취득 과정과 이전이 정당해야 하며, 취득이나 이전이 부정하다면 시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재화의 분배는 양측의 합의에 의해서만 정당성을 갖는 것이며, 이는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거래와 교환의 법칙을 따릅니다. 한쪽이 동의하지 않았는데 다른 쪽이 강제로 무언가를 한다면, 이는 시정되어야 할 범죄로 간주됩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비침해성의 공리와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하여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노직은 정부가 없으면 비침해성의 공리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국가는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노직은 강압, 사기, 절도 등의 행정 문제에서는 국가 개입을 인정합니다. 결국, 노직은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경험주의적 논거들을 토대로 자신의 권리론을 논증하여 합리주의적인 결론을 도출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여튼 지금까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철학적 기초를 살펴보았는데요, 이제 이 두 진영의 차이가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트럼프와 밀레이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찰리 커크와 리버테리언 사례로 돌아가 보죠.

 

먼저, 왜 두 사람은 총기 소유에 대해 모두 찬성 입장을 보였을까요? 원론적인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총기 소유는 미국의 전통 그 자체입니다. 미국 수정헌법 2조는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영국과 독립 전쟁을 할 때부터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서부 시대에도 각자 무기를 사용하며 스스로를 방어하던 역사가 있습니다.

 

자유주의, 특히 리버테리언적 입장에서도 총기 소유에 찬성합니다. 이들은 모든 소유권에 대해 국가가 마음대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내 몸을 지킬 권리와 사유 재산권에 대한 침해라는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죠. 물론 보수주의와 리버테리언의 논리가 딱딱 이렇게 나뉜다고 할 수는 없으며, 서로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도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역사의 연장선에서 세금 문제에서도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는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당시 영국이 미국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며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와 재산권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낮은 세금을 주장합니다.

 

자유주의자들 역시 국가 개입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낮은 세금을 주장합니다. 다음으로, 보수주의자와 리버테리언이 이견을 보였던 관세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과 이민자 문제에 대한 관점은 보수주의자 입장에서 내부 공동체의 질서와 안녕을 지키기 위한 명분이 큽니다.

 

관세가 낮아지면 중국산, 한국산과 같은 저가의 물건들이 대거 유입되고, 불법 이민자들이 들어와 미국 국민들의 일자리가 파괴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중국이 틱톡 등을 통해 미국 국민의 정보를 빼가거나 세뇌를 시킬 위험이 있다며, 이민자 심사를 강화하고 관세를 올려 미국의 일자리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입니다.

 

현재 미국의 상황, 특히 트럼피즘에 기반한 주장은 기독교 보수주의에 상당히 근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화를 외치는 세력, 즉 계몽주의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반기독교적 인본주의자들의 모임인 일루미나티와 딥 스테이트에 맞서 강력하게 국가주의를 외치는 것이 지금의 보수적 흐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 리버테리언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세계와 협력하는 쪽이 많아 이 부분에서 보수주의자들과 견해가 상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수한 원칙적 자유주의에 가까운 입장에서는 보수주의자의 주장을 비판하는데, 예를 들어 "미국 너희도 한때는 영국 하층민과 비주류, 즉 프로테스탄트 이민자들이 형성한 나라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관세를 크게 올리고 이민을 완전히 차단하면 오히려 미국 자국민들에게도 손해가 될 것이라는 것이 순수한 리버테리언 입장일 것입니다.

 

물론 리버테리언 중에서도 정부 개입에 대한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에, 관세나 이민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정말로 미국 국민들을 세뇌하거나 불법 이민자들이 모두 위험한 사람들로 판단된다면,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고 보는 리버테리언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입장들이 모두 명확하게 나뉘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으로, 마약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서 "좀비 거리"라 불리며 마약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은 아마도 마약의 불법화에 반대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혼자 마약을 하든, 술을 마시든, 매춘을 하든, 안락사를 하든 그 자유를 보장해야 하며, 설령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 해도 본인이 책임지면 된다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이는 리버럴리즘, 즉 좌파 자유주의자들의 입장과도 거의 동일할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리버럴과 리버테리언은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얼마 전 조국 전 장관이 명예훼손 관련 법안을 벌금형으로 개정하려는 시도를 했는데, 이는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보수주의는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가짜 뉴스나 거짓 선동으로 공동체의 전통과 질서를 위협하는 좌파 인사들에 대해 처벌을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마약, 게임 중독, 매춘, 안락사 문제에서도 어느 정도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 미국의 청교도들은 금주법을 시행했던 역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제가 남경필 의원이 자기 아들 마약 사건과 관련해 국회에 나와 발언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남경필 아들 사건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안타깝고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아들이 마약에 빠진 것을 알고 남경필이 직접 신고를 했다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남경필 의원이 국회에서 한 말은 "복지적 차원에서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국가 지원 예산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마약 문제의 심각성에는 동의하지만, 남경필 의원의 제안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마약을 한 책임을 국민 모두가 짊어져야 하느냐는 반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굶어 죽을 만큼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들은 바로는, 교도소에서도 마약 사범들이 가장 강하게 군림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마약 중독자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라면, 게임 중독, 알코올 중독, 성매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서도 국가 지원 예산이 배분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마약 중독이 문제라면, 게임 중독, 쇼츠(짧은 영상) 도파민 중독, 심지어 자위 중독도 문제로 여겨질 수 있고, 복지 대상은 점차 확대되며 국가 개입과 그 규모는 계속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제가 볼 때 복지와 사회 안전보장 등의 이름으로 국민들의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국민 모두가 직접 확인하게 된다면, 아마도 프랑스 혁명보다 더 심한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내용들이 국민 개개인에게 다 드러난다면, 아마도 허경영의 "국회의원 전원 3천만 원 지급" 같은 공약을 지지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요즘 삼성이 무너진다 마는 이야기가 많으니 이를 예로 들자면, 대개 보수주의자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 정부 개입을 용인할 것입니다. 구제 금융을 통해 삼성을 구제하는 데 찬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좌파들은 삼성이 무너지면 더 이상 이용할 대상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구제 금융에 찬성할 수도 있고, 아니면 무너져가는 삼성을 자신들이 차지하려고 정부 개입을 반대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한편, 리버테리언적 입장은 삼성이 망하든 말든 그대로 두자는 입장에 가까울 것입니다. 왜 삼성이 망하는 데 대해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것이죠. 이러한 점에서 보수주의는 국가 개입과 복지라는 면에서 좌파와 손을 잡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트럼프와 밀레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우선, 월스트리트 저널의 평가를 살펴보면, 월스트리트 저널은 밀레이가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경제 정책에서는 트럼프와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밀레이는 자유무역을 공약으로 내세운 반면, 트럼프는 미국 산업 보호를 위해 높은 관세를 주장했습니다. 또한, 밀레이는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해소하기 위해 화폐 가치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저금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밀레이는 자신의 개 이름을 "프리드먼""로스바드"라고 짓기도 했는데, 일각에서는 그를 아나코-캐피탈리스트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본인은 리버럴 리버테리언이라고 지칭하며 철학적으로는 아나코-캐피탈리스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순수한 로스바드식 아나코-캐피탈리스트라면, 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국가를 완전히 해체하고 자신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부분이 있겠죠.

 

그럼에도 현존하는 정치 지도자 중에서는 미국의 자유당 소속인 론 폴과 더불어 매우 순수한 리버테리언적 정치가로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밀레이는 공무원 7만 명 감축, 국세청 예산 34% 삭감, 월급 85% 삭감, 좌파 언론 폐쇄와 민영화 등 사실상 자유주의자들이 꿈속에서나 상상하던 일을 현실에서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정부 규모를 축소시키는 정책입니다. 그는 농산물 수출세 폐지, 노동세 완화, 공기업 민영화, 지구온난화는 허구라는 주장, 총기와 마약, 신생아 매매의 합법화, 의무 공교육 및 공중보건 시스템 폐지 등을 주장했는데, 이는 거의 기본적인 리버테리언적 입장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트럼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트럼프는 기독교 보수주의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과거 공식 공약집 "아젠다 47"의 핵심 20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국경 봉쇄와 이민자 통제 강화

2. 최대 규모의 이민자 추방 작전 수행

3. 인플레이션 종식

4. 미국을 세계 최고 에너지 생산국으로 만들기

5. 아웃소싱 중단과 제조업 초강대국으로 전환

6. 근로자 세금 감면 및 팁에 대한 세금 폐지

7. 언론, 종교, 총기 소지 자유 수호

8. 아이언돔 미사일 방어막 구축

9. 국민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 종식

10. 이민자 범죄, 외국 마약 카르텔 및 갱단 박멸

11. 도시 재건

12. 군대 강화 및 현대화

13. 미국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 지위 유지

14. 사회보장 및 메디케어 유지, 정년 연령 변경 없음

15. 전기차 의무화 폐지

16. 비판적 인종 이론 및 젠더 관련 기금 철회

17. 남성이 여성 스포츠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제한

18. 중국 및 급진주의자 추방, 대학을 애국적으로 전환

19. 선거 투표의 안전성 강화

20. 미국을 성공으로 이끌어 국민 단결 도모

 

전체적으로 볼 때, 트럼프의 정책은 밀레이와 달리 정부의 규모 축소보다는 자국의 질서와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어 정부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시키려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세금 부담을 완화하고 좌파적 ESG 정책을 저지하는 등 반시장적이고 반좌파적인 부분에서는 자유주의와 사실상 동의할 것입니다. 이 논의를 쭉 봐오신 분들은 리버테리어니즘과 보수주의에서 리버테리어니즘이 문화적, 도덕적 측면에서 보수주의의 빅텐트 아래에 일정 부분 이어져 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중적인 차원에서 아마 우파라고 하면 이쪽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편, 헨리 키신저 같은 외교 개입주의를 표방하는 신보수주의(네오컨서버티브) 계열, 즉 네오콘이라 불리는 조지 부시 같은 인물들이 미국 공화당 내에서 주류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중동 전쟁 등 여러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제 다시 미국에서는 트럼프와 같은 불개입주의자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연장선에서 우파 내에서도 "자유냐 질서냐"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오늘 영상을 이제 슬슬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오늘 영상에서는 철학, 역사, 경제를 오가며 다루다 보니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자연법이란 것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그 위로 올라가 스콜라 철학이나 로크의 반대편에 서 있던 홉스의 사회 계약론, 프로테스탄트 개신교가 자유주의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오스트리아 학파와 밀턴 프리드먼의 거시경제 시카고 학파의 차이점, 통화 정책이 비트코인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지 등을 더 검토했더라면 영상의 완성도가 높아졌을 텐데, 그렇지 못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제가 이전 영상에서도 조금씩 다뤄왔고, 앞으로도 꾸준히 설명할 예정입니다. 어쨌든 오늘의 내용은 이미 잘 아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기초적이고 거친 해석이 많아 지적할 부분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이런 내용을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생소하면서도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우파라고 자부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점검해 볼 만한 내용들을 담아내고자 애를 썼습니다. 또한, 다양한 논의가 오갈 수 있는 주제들을 다루어 보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영상은 진보 진영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틀딱들, 좌파식 캔슬 컬처에 심취해 있는 자칭 반페미 이대남들을 위한 사상 교육을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기본적인 비판적 사고와 사상 구분을 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튼, 긴 영상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오늘 영상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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