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회고록 1권(글을 시작하며)

 전두환 회고록 1권(글을 시작하며)


(혼돈의 시대 1979-1980)


삶의 지혜가 될 명언들을 남긴 영국의 한 작가는 ‘진실의 가장 큰 벗은 세월이고, 가장 큰 적은 편견’이라고 했다. 내가 대통령의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난 지 한 세대가 흘렀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묵묵히 견뎌내는 일이었다. 갖은 핍박과 능멸을 참아내는 일은 고통스러웠고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침묵함으로써 세월이라는 큰 벗을 얻게 된 셈이니 무의미한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글은 그동안 말할 수도 없었고 들어줄 사람도 없었던 얘기들에 대한 기록이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일 뿐이어서 ‘패자’의 얘기는 모두 묻히게 된다고 한다.


나를 역사의 전면에 끌어냈던 일들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사람들 앞에 진실된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편견과 오해가 사람들의 밝은 눈을 가려놓고 있는 것이다.


의도된 편견은 세월이 지난다고 바로잡히지 않는다. 어떤 일들은 편견의 벽에 갇혀 있는 데 그치지 않고 성역 안에 모셔져 있다. 이 글이 세월의 힘을 빌어 진실을 밝힌다 해도 신화처럼 굳어진 편견과 오해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이란 시에서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고 읊었다.


사람들은 이 글에서 내가 투박한 육성으로 토해내는 항변과 원망과 자기자랑을 읽게 될 것이다. 시간의 여과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지난 세월이 힘겨웠던 만큼 가슴에 맺힌 것이 없지 않은 것이다.


애써 착하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려고 가성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의 회고록은 참회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뒷공론을 나는 개의치 않으련다.


우리 현대사의 논쟁적인 사건들을 국민은 각자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몇 번의 사법적 판단들도 있었다. 시대가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뒤집힌 결론이 내려지기도 했다.


국민은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나는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과 역사의 요구에 따라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알고 있는 대로 서술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일들에 대해서는 각자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 이견이 첨예하개 대립해 있고, 나는 당사자의 한 사람이었던 만큼 나의 진술이 냉정한 관찰자의 증언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그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국민 각자의, 그리고 역사의 몫이다.


나는 일찍부터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일기를 써왔고, 대통령이 되자 비서실에 처음으로 통치사료 담당 비서관을 두었다.


대통령으로서의 막중한 소임을 완수한 뒤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면 바로 회고록을 쓸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문을 나서자마자 나를 겨냥한 온갖 비난과 공격의 화살이 빗발쳐 미처 해명할 기회마저 찾지 못한 채 백담사에 유폐된 것이다. 그곳에서 2년여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에도 정치권과 언론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나는 정치적 책략의 희생물이 되어 투옥과 재산 몰수의 수난을 겪었다. 삶을 회고하며 기록을 정리할 여유로움은 가질 수 없었다.


지금 나에게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한 가닥의 명예와 앙상한 혜택조차 남아 있지 않다.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른 이제, 내가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 땅에 무엇을 남겨 놓을 수 있을 것인가. 무궁하게 이어갈 겨레의 역사 앞에 무엇을 남겨 놓을 수 있는가.


역사가 불러냈던 나의 존재와 삶은 이미 또 하나의 역사가 되어 있다. 그런 만큼 이 글은 한 개인 전두환의 삶의 궤적을 적어놓은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격동기 대한민국의 현대사이고, 지금도 그 실체적 진실에 관한 논란과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당대의 역사서다.


나는 내 삶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일이고, 또한 나의 마지막 책무라는 깨달음에서 새삼 이 책의 결말을 서두르게 되었다.


근년에 이르러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까운 일들이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 사례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사물을 인식하고, 사리를 판단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정리해야 할 일들을 서둘러 마무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오래 전의 일들은 마치 그림처럼 생생하게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그 기억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서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나의 회고록은 모두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1979년의 10.26부터 이듬해 9월 1일 내가 11대 대통령에 취임하던 때까지의 일들을 담았다.


12.12, 5.17, 5.18이라는 극적인 사건들로 이어진 이 시기는 10개월 남짓한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우리 모두가 힘겹게 통과해야 했던 우리나라 현대사 최대의 격동기였다.


뿐만 아니라 나 개인으로서도 생애의 운명적 변곡점을 맞이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회고록의 앞 대목에 놓았다.


2권은 대통령이 되어 7년 반 동안 혼신의 힘을 다 쏟은 국정 수행의 총체적인 기록이다. 3권의 전반부에서는 어린 시절과,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국군보안사령관이 되기까지 군인으로서의 삶을 회고해 보았다.


후반부는 대통령의 소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한 사람의 가장으로 돌아온 뒤의 이야기다. 임기를 마치고 퇴임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평화적 정부 이양의 선례를 만든 전직 대통령의 수난사다.


원고를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당시에는 몰랐거나 깨닫지 못했던 사실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내용들은 관계자의 진술이나 관련 자료들을 충실히 인용했다.


나 개인의 기록물은 물론, 국회청문회 기록, 5.18 특별법에 따른 수사·공판기록, 재임 중 정부의 기록물, 그 외에 내가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나 개인의 회고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나와 함께 했던 동시대 관련자 모두의 발언록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연구자들을 위해 그 모든 자료들을 모아 자료집을 만들도록 당부해뒀다.


나는 이 책의 출간시기를 정해놓고 원고를 준비해오지는 않았다. 10여년 전부터 나의 아내와 출판사를 하는 장남 재국이 틈틈이 나의 일기와 메모, 구술 내용 등을 정리해 초고를 만들었고, 이상희 전 내무부장관이 이 일에 참여했다.


이 글에는 특히 각종 기록물과 자료들의 인용이 많은데 권오준, 김용진 군이 많은 분량의 기록물을 취합 정리하고 전산화하는 작업을 맡아 수고해주었다.


재임 중 나를 보좌했던 수석비서관들의 조언도 도움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원고를 완성하는 일은 민정기 전 공보비서관의 손을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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