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荀子) - 성악(性惡)

순자(荀子) - 성악(性惡) 


人之性惡,其善者偽也。

(인지성악, 기선자위야.)

→ 사람의 성품(性)은 악(惡)하며, 그 선(善)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今人之性,生而有好利焉,順是,故爭奪生而辭讓亡焉;

(금인지성, 생이유호리언, 순시, 고쟁탈생이사양망언.)

→ 이제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이익(利)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 이를 그대로 따르면 다툼과 빼앗음이 생기고, 겸양(謙讓)의 마음은 사라진다.


生而有疾惡焉,順是,故殘賊生而忠信亡焉;

(생이유질오언, 순시, 고잔적생이충신망언.)

→ 또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있으니, 이를 따르게 되면 잔혹함과 해침이 생기고, 충성과 신의는 사라진다.


生而有耳目之欲,有好聲色焉,順是,故淫亂生而禮義文理亡焉。

(생이유이목지욕, 유호성색언, 순시, 고음란생이례의문리망언.)

→ 또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귀와 눈의 욕망이 있어, 좋은 소리와 아름다운 빛깔(색)을 좋아하니, 이를 따르게 되면 음란함이 생기고, 예의와 문리(文理, 질서와 조화)는 사라진다.


然則從人之性,順人之情,必出於爭奪,合於犯分亂理,而歸於暴。

(연즉종인지성, 순인정, 필출어쟁탈, 합어범분난리, 이귀어폭.)

→ 그렇다면 사람의 성품을 좇고, 사람의 감정을 따르게 되면

반드시 다툼과 빼앗음으로 나아가고, 질서를 어지럽히며 예법을 범하고, 결국 폭력으로 돌아가게 된다.


故必將有師法之化,禮義之道,然後出於辭讓,合於文理,而歸於治。

(고필장유사법지화, 예의지도, 연후출어사양, 합어문리, 이귀어치.)

→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과 법(法)에 의한 교화와, 예의(禮義)의 도(道)가 있어야만 비로소 겸양이 생기고,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마침내 다스려진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用此觀之,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용차관지, 인지성악명이, 기선자위야.)

→ 이로써 살펴보건대, 사람의 본성은 악함이 분명하니, 그 선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故枸木必將待檃栝、烝矯然後直;

(고 구목 필장 대 인괄, 증교 연후 직.)

→ 그러므로 굽은 나무는 반드시 인괄(檃栝, 곧 굽은 나무를 바로잡는 틀)과 찌는 교정(烝矯)을 기다려야만 곧아진다.


鈍金必將待礱厲然後利;

(둔금 필장 대 롱려 연후 리.)

→ 무딘 쇠붙이는 반드시 숫돌에 갈고 닦음(礱厲)을 거쳐야 날카로워진다.


今人之性惡,必將待師法然後正,得禮義然後治,

(금인지성악, 필장 대 사법 연후 정, 득 예의 연후 치.)

→ 이제 사람의 본성이 악하므로, 반드시 스승(師)과 법(法)의 가르침을 기다려야 바르게 되고, 예의(禮義)를 얻어야 다스려진다.


今人無師法,則偏險而不正;無禮義,則悖亂而不治,

(금인 무사법, 즉 편험 이불정; 무예의, 즉 패란 이불치.)

→ 사람이 스승과 법이 없으면, 치우치고 간사하여 바르지 못하며, 예의가 없으면 거꾸러지고 어지러워 다스려지지 않는다.


古者聖王以人性惡,以為偏險而不正,悖亂而不治,

(고자 성왕 이 인성악, 이위 편험 이불정, 패란 이불치.)

→ 옛날의 성왕(聖王)들은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알고, 그 본성이 치우치고 간사하며, 어지럽고 다스려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是以為之起禮義,制法度,以矯飾人之情性而正之,

(시이 위지 기 예의, 제 법도, 이 교식 인지 정성 이 정지.)

→ 그래서 그들은 예의(禮義)를 세우고, 법도(法度)를 제정하여 사람의 감정과 본성을 교정하고 꾸며서 바르게 하였다.


以擾化人之情性而導之也,始皆出於治,合於道者也。

(이 요화 인지 정성 이 도지야, 시 개 출어 치, 합어 도자야.)

→ 또한 사람의 감정과 본성을 부드럽게 교화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였다.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다 다스림(治)에서 비롯되어, 도(道)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今人之化師法,積文學,道禮義者為君子;

(금인지 화사법, 적문학, 도예의자 위 군자.)

→ 오늘날 사람 가운데 스승과 법의 교화를 받아, 학문을 쌓고 예의의 도를 따르는 자가 바로 군자(君子)이다.


縱性情,安恣睢,而違禮義者為小人。

(종정정, 안자수이, 이 위 예의자 위 소인.)

→ 반면 성정을 방임하고, 제멋대로 행하며, 예의에 어긋나는 자는 소인(小人)이다.


用此觀之,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용차 관지, 인지 성악 명의, 기 선자 위야.)

→ 이로써 살펴보면, 사람의 본성은 악함이 분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적(偽)인 것이다.


孟子曰:「人之學者,其性善。」

(맹자왈, 인지학자, 기성선)

→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배우는 까닭은, 그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다.”


曰:是不然。是不及知人之性,而不察乎人之性偽之分者也。

(왈: 시 불연. 시 불급 지 인지성, 이 불찰 호 인지 성위지 분 자야.)

→ 이에 말한다. “이는 옳지 않다. 이는 사람의 본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사람의 본성과 인위(偽)의 구별을 분명히 살피지 못한 것이다.”


凡性者,天之就也,不可學,不可事。

(범 성자, 천지취야, 불가학, 불가사.)

→ 무릇 ‘성(性)’이란 하늘이 부여한 것이며, 배워서 얻을 수도, 노력하여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다.


禮義者,聖人之所生也,人之所學而能,所事而成者也。

(예의자, 성인지 소생야, 인지 소학 이능, 소사 이성 자야.)

→ ‘예의(禮義)’란 성인이 만들어낸 것이며, 사람이 배워서 익히고, 힘써 행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다.


不可學,不可事,而在人者,謂之性;

(불가학, 불가사, 이 재인자, 위지 성;)

→ 배우거나 노력할 수 없으나 사람에게 본래 갖추어진 것을 ‘성(性)’이라 하고,


可學而能,可事而成之在人者,謂之偽。

(가학 이능, 가사 이성지 재인자, 위지 위.)

→ 배워서 능하게 되고, 행하여 이루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것은 ‘위(偽, 인위)’라 한다.


是性偽之分也。

(시 성위지 분야.)

→ 이것이 곧 성(性)과 위(偽)의 구분이다.


今人之性,目可以見,耳可以聽;

(금인지성, 목 가이 견, 이 가이 청;)

→ 이제 사람의 본성에 있어서, 눈은 볼 수 있고, 귀는 들을 수 있다.


夫可以見之明不離目,可以聽之聰不離耳,

(부 가이 견지 명 불리목, 가이 청지 총 불리이,)

→ 보는 밝음은 눈에서 떠나지 않으며, 듣는 총명함은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目明而耳聰,不可學明矣。

(목명 이 이총, 불가학 명의.)

→ 눈이 밝고 귀가 총명한 것은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니, 밝음(明)이라는 것은 배움으로 생기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孟子曰:「今人之性善,將皆失喪其性故也。」

(맹자왈: 금인지성선, 장개 실상 기성 고야.)

맹자가 말하였다.

→ “지금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본래의 성품을 잃었기 때문이다.”


曰:若是則過矣。

(왈: 약시 즉 과의.)

→ 말하건대, “그렇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今人之性,生而離其朴,離其資,必失而喪之。

(금인지성, 생이 리기박, 리기자, 필 실이 상지.)

→ 지금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그 순수함(樸)과 바탕(資)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그것을 잃고 상실하게 된다.


用此觀之,然則人之性惡明矣。

(용차 관지, 연즉 인지 성악 명의.)

→ 이로써 살펴보면, 사람의 본성이 악함이 분명하다.


所謂性善者,不離其朴而美之,不離其資而利之也。

(소위 성선자, 불리기박 이 미지, 불리기자 이 리지야.)

→ 이른바 ‘성선(性善)’이란, 그 순수함에서 벗어나지 않고 아름다움을 얻으며, 그 바탕에서 벗어나지 않고 유익함을 얻는 것을 말한다.


使夫資朴之於美,心意之於善,若夫可以見之明不離目,可以聽之聰不離耳,故曰目明而耳聰也。

(사부 자박 지어 미, 심의 지어 선, 약부 가이 견지 명 불리목, 가이 청지 총 불리이, 고왈 목명 이 이총야.)

→ 그 바탕과 순수함이 아름다움에 이르는 것, 마음과 뜻이 선함에 이르는 것은, 마치 보는 밝음이 눈에서 떠나지 않고, 듣는 총명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눈이 밝고 귀가 총명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今人之性,飢而欲飽,寒而欲煖,勞而欲休,此人之情性也。

(금인지성, 기이욕포, 한이욕난, 노이욕휴, 차 인지 정성야.)

→ 이제 사람의 본성에는, 배고프면 배부르기를 원하고, 추우면 따뜻하기를 원하며, 힘들면 쉬기를 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람의 감정과 성정(情性)이다.


今人見長而不敢先食者,將有所讓也;勞而不敢求息者,將有所代也。

(금인 견장 이 불감 선식자, 장 유소양야; 노이 불감 구식자, 장 유소대야.)

→ 그런데 사람이 어른을 보고 감히 먼저 먹지 않는 것은, 양보(讓)하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며, 피곤해도 감히 먼저 쉬려 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를 대신하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夫子之讓乎父,弟之讓乎兄,子之代乎父,弟之代乎兄,

(부자 지 양호부, 제지 양호형, 자지 대호부, 제지 대호형,)

→ 아들이 아버지에게 양보하고, 아우가 형에게 양보하며,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고, 아우가 형을 대신하는 일,


此二行者,皆反於性而悖於情也;

(차 이행자, 개 반어성 이 패어정야.)

→ 이 두 가지 행위(양보와 대신함)는 모두 본성에 거스르고, 감정에 어긋나는 것이다.


然而孝子之道,禮義之文理也。

(연이 효자 지도, 예의지 문리야.)

→ 그러나 이러한 행위야말로 효자의 도(道)이자, 예의(禮義)의 질서와 조화이다.


故順情性則不辭讓矣,辭讓則悖於情性矣。

(고 순정성 즉 불사양의, 사양 즉 패어정성의.)

→ 그러므로 사람의 감정과 본성에 그대로 따르면 양보하지 않게 되고,

양보하게 되면 그 본성에 거스르게 된다.


用此觀之,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용차 관지, 인지 성악 명의, 기 선자 위야.)

→ 이로써 살펴보면, 사람의 본성은 악함이 분명하고, 그 선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問者曰:「人之性惡,則禮義惡生?」

(문자왈: 인지 성악, 즉 예의 악생?)

→ 누군가 물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예의와 의로움(禮義) 또한 악한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應之曰:凡禮義者,是生於聖人之偽,非故生於人之性也。

(응지왈: 범 예의자, 시 생어 성인지 위, 비 고 생어 인지 성야.)

→ 이에 대답하였다. “무릇 예의(禮義)라는 것은 성인(聖人)의 인위(偽)에서 생긴 것이며, 결코 사람의 본성(性)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故陶人埏埴而為器,然則器生於陶人之偽,非故生於人之性也。

(고 도인 연식 이 위기, 연즉 기 생어 도인지 위, 비 고 생어 인지 성야.)

→ 예를 들어, 도공(陶人, 도인, 옹기장이)이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릇은 도공의 인위적 기술(偽)에서 생긴 것이지, 사람의 본성에서 자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故工人斲木而成器,然則器生於工人之偽,非故生於人之性也。

(고 공인 착목 이 성기, 연즉 기 생어 공인지 위, 비 고 생어 인지 성야.)

→ 또 목수(工人, 공인)가 나무를 다듬어 기물을 만드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 기물은 목수의 인위적 노력(偽)에서 생긴 것이지, 사람의 본성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聖人積思慮,習偽故,以生禮義而起法度,

(성인 적사려, 습위고, 이 생 예의 이 기 법도,)

→ 성인은 생각과 사려를 거듭하고, 인위적 기술을 익혀서 예의(禮義)를 만들어내고 법도(法度)를 세웠다.


然則禮義法度者,是生於聖人之偽,非故生於人之性也。

(연즉 예의 법도자, 시 생어 성인지 위, 비 고 생어 인지 성야.)

→ 그러므로 예의와 법도는 성인의 인위(偽)에서 비롯된 것이며, 결코 사람의 본성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若夫目好色,耳好聽,口好味,心好利,骨體膚理好愉佚,

(약부 목호색, 이호청, 구호미, 심호리, 골체 부리 호유일,)

→ 그러나 눈은 아름다운 빛깔을 좋아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좋아하며, 입은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마음은 이익을 좋아하며, 몸과 살결은 편안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는 것 —


是皆生於人之情性者也;感而自然,不待事而後生之者也。

(시 개 생어 인지 정성자야; 감이 자연, 불대사 이 후 생지자야.)

→ 이것들은 모두 사람의 감정과 본성에서 생긴 것이다. 감응하면 저절로 일어나며, 어떤 행위나 노력을 기다려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夫感而不能然,必且待事而後然者,謂之生於偽。

(부 감이 불능연, 필차 대사 이 후 연자, 위지 생어 위.)

→ 반면에, 감응만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고, 반드시 어떤 행위나 수단을 거쳐야 그렇게 되는 것은 ‘인위(偽)에서 생긴 것’이라 한다.


是性偽之所生,其不同之徵也。

(시 성위지 소생, 기 불동지 증야.)

→ 이것이 바로 본성(性)에서 생긴 것과 인위(偽)에서 생긴 것이 서로 다르다는 증거이다.


故聖人化性而起偽,偽起而生禮義,禮義生而制法度;然則禮義法度者,是聖人之所生也。

(고 성인 화성 이 기위, 위기 이 생 예의, 예의 생 이 제 법도; 연즉 예의 법도자, 시 성인지 소생야.)

→ 그러므로 성인은 인간의 본성을 교화하여 인위(偽)를 일으켰고, 인위가 일어나 예의(禮義)가 생겼으며, 예의가 생김으로써 법도(法度)가 제정되었다.

그렇다면 예의와 법도는 모두 성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故聖人之所以同於眾,其不異於眾者,性也;所以異而過眾者,偽也。

(고 성인지 소이 동어중, 기 불이어중자 성야; 소이 이어과중자 위야.)

→ 그러므로 성인이 일반 사람들과 같아서 다르지 않은 것은 ‘본성(性)’ 때문이고, 성인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은 ‘인위(偽)’ 때문이다.


夫好利而欲得者,此人之情性也。

(부 호리 이 욕득자, 차 인지 정성야.)

→ 이익을 좋아하고 그것을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假之有弟兄資財而分者,且順情性,好利而欲得,若是,則兄弟相拂奪矣;

(가지 유 제형 자재 이 분자, 차 순 정성, 호리 이 욕득, 약시, 즉 형제 상 불탈의.)

→ 가령 형제 사이에 재산을 나누는 일이 있다고 하자. 그들이 본성에 따라 이익을 좋아하고 얻고자만 한다면, 형제끼리 서로 다투고 빼앗게 될 것이다.


且化禮義之文理,若是,則讓乎國人矣。

(차 화 예의지 문리, 약시, 즉 양 호 국인의.)

→ 그러나 예의의 문리(文理, 도리)로 교화된다면, 그런 사람은 오히려 나라 사람들에게 겸양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故順情性則弟兄爭矣,化禮義則讓乎國人矣。

(고 순 정성 즉 제형 쟁의, 화 예의 즉 양 호 국인의.)

→ 그러므로 본성(情性)을 따르게 하면 형제끼리 다투게 되고, 예의(禮義)에 의해 교화되면 오히려 나라 사람들에게 양보하게 된다.


凡人之欲為善者,為性惡也。

(범 인지 욕 위 선자, 위 성 악야.)

→ 모든 사람이 선을 행하려는 것은, 그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夫薄願厚,惡願美,狹願廣,貧願富,賤願貴,苟無之中者,必求於外。

(부 박 원 후, 악 원 미, 협 원 광, 빈 원 부, 천 원 귀, 구 무 지 중자, 필 구 어 외.)

→ 천한 자는 귀함을 바라고, 추한 자는 아름다움을 바란다. 좁은 자는 넓음을, 가난한 자는 부유함을, 비천한 자는 존귀함을 원한다. 무언가가 자기 안에 없으면, 반드시 그것을 밖에서 구하려 한다.


故富而不願財,貴而不願埶,苟有之中者,必不及於外。

(고 부 이 불 원 재, 귀 이 불 원 세, 구 유 지 중자, 필 불 급 어 외.)

→ 그러므로 이미 부유한 사람은 재물을 탐하지 않고, 이미 귀한 사람은 권세를 구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그 안에 이미 있으면, 밖에서 구하지 않는다.


用此觀之,人之欲為善者,為性惡也。

(용 차 관 지, 인지 욕 위 선자, 위 성 악야.)

→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사람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그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今人之性,固無禮義,故彊學而求有之也;

(금 인지 성, 고 무 예의, 고 강 학 이 구 유 지 야.)

→ 지금 사람의 본성에는 본래 예의(禮義)가 없기 때문에, 억지로 배워 그것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性不知禮義,故思慮而求知之也。

(성 불 지 예의, 고 사려 이 구 지 지 야.)

→ 본성적으로 예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깊이 헤아려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다.


然則性而已,則人無禮義,不知禮義。

(연 즉 성 이이, 즉 인 무 예의, 불 지 예의.)

→ 그렇다면 만약 오직 본성만으로 존재한다면, 사람은 예의도 없고 예의를 알지도 못할 것이다.


人無禮義則亂,不知禮義則悖。

(인 무 예의 즉 난, 불 지 예의 즉 패.)

→ 사람이 예의가 없으면 혼란해지고, 예의를 알지 못하면 도리에 어긋나게 된다.


然則性而已,則悖亂在己。

(연 즉 성 이이, 즉 패란 재 기.)

→ 따라서 오직 본성만을 따른다면, 혼란과 무질서가 그 사람 자신 안에 있게 된다.


用此觀之,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용 차 관 지, 인지 성 악 명 의, 기 선자 위 야.)

→ 이것으로 보건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孟子曰:「人之性善。」

(맹자왈: 인지 성선.)

→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한 것이다.”


曰:是不然。

(왈: 시 불 연.)

→ (순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凡古今天下之所謂善者,正理平治也;所謂惡者,偏險悖亂也:是善惡之分也矣。

(범 고금 천하 지 소위 선자, 정리 평치야; 소위 악자, 편험 패란야: 시 선악 지 분 야의.)

→ 예로부터 지금까지 천하에서 ‘선(善)’이라 하는 것은 바르고 이치에 맞으며, 평화롭고 다스려진 것이다. ‘악(惡)’이라 하는 것은 치우치고 간사하며,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이것이 선과 악의 구분이다.


今誠以人之性固正理平治邪,則有惡用聖王,惡用禮義哉?

(금 성 이 인지 성 고 정리 평치야, 즉 유 하용 성왕, 하용 예의 재?)

→ 만약 참으로 사람의 본성이 본래 바르고, 이치에 맞으며, 안정되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성왕(聖王)을 쓰고, 무엇 때문에 예의(禮義)를 써야 하겠는가?


雖有聖王禮義,將曷加於正理平治也哉?

(수 유 성왕 예의, 장 갈 가 어 정리 평치 야 재?)

→ 설사 성왕과 예의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바르고 평화로운 데에 무엇을 더하겠는가?


今不然,人之性惡。

(금 불 연, 인지 성 악.)

→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


故古者聖人以人之性惡,以為偏險而不正,悖亂而不治,

(고 고자 성인 이 인지 성 악, 이 위 편험 이 불정, 패란 이 불치,)

→ 그러므로 옛날의 성인들은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고, 그것이 치우치고 사특하여 바르지 못하며, 혼란스럽고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여겼다.


故為之立君上之埶以臨之,明禮義以化之,起法正以治之,重刑罰以禁之,

(고 위 지 립 군상 지 세 이 림 지, 명 예의 이 화 지, 기 법정 이 치 지, 중 형벌 이 금 지,)

→ 그래서 그(악한 본성)를 다스리기 위해 군주의 권세를 세워 위에서 제어하고, 예의(禮義)를 밝혀 교화하며, 법과 제도를 일으켜 다스리고,

무거운 형벌을 두어 금하였다.


使天下皆出於治,合於善也。是聖王之治而禮義之化也。

(사 천하 개 출 어 치, 합 어 선 야. 시 성왕 지 치 이 예의 지 화 야.)

→ 그렇게 하여 천하가 모두 다스려져 선(善)에 이르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성왕의 정치이자, 예의의 교화이다.


今當試去君上之埶,無禮義之化,去法正之治,無刑罰之禁,倚而觀天下民人之相與也。

(금 당 시 거 군상 지 세, 무 예의 지 화, 거 법정 지 치, 무 형벌 지 금, 의 이 관 천하 민인지 상여 야.)

→ 이제 만약 군주의 권세를 없애고, 예의의 교화를 없애고, 법과 제도의 통치를 없애고, 형벌의 제재를 없앤다면, 편히 기대어 천하의 백성들이 서로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라.


若是,則夫彊者害弱而奪之,眾者暴寡而譁之,天下悖亂而相亡,不待頃矣。

(약 시, 즉 부 강자 해약 이 탈 지, 중자 폭과 이 화 지, 천하 패란 이 상망, 불 대 경 의.)

→ 그렇게 되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해치고 빼앗으며, 풍요로운 자는 빈궁한 자를 억누르고 시끄럽게 떠들 것이며, 천하는 혼란에 빠져 서로 멸망할 것이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用此觀之,然則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용 차 관 지, 연 즉 인지 성 악 명 의, 기 선자 위 야.)

→ 이것으로 보건대,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故善言古者,必有節於今;善言天者,必有徵於人。

(고 선언 고자, 필 유 절 어 금; 선언 천자, 필 유 징 어 인.)

→ 그러므로 옛일을 잘 말하는 자는 반드시 지금의 일과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고, 하늘(자연의 이치)을 잘 말하는 자는 반드시 사람(인간 세계)에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凡論者貴其有辨合,有符驗。

(범 논자 귀 기 유 변합, 유 부험.)

→ 모든 논의는 그 말이 분명하게 구별되고, 실제에 부합하며, 증거가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故坐而言之,起而可設,張而可施行。

(고 좌 이 언 지, 기 이 가 설, 장 이 가 시행.)

→ 그래서 앉아서 말한 것이 일어나서도 세울 수 있고, 펼쳐서도 실제로 행할 수 있어야 한다.


今孟子曰:「人之性善。」 無辨合符驗,坐而言之,起而不可設,張而不可施行,豈不過甚矣哉!

(금 맹자 왈: ‘인지 성선.’ 무 변합 부험, 좌 이 언 지, 기 이 불가 설, 장 이 불가 시행, 기 불 과 심 의 재!)

→ 그런데 지금 맹자(孟子)는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라고 말하였으나, 그 말에는 분명한 구별도, 현실에 맞는 근거도, 증거도 없다. 앉아서 말로만 할 뿐, 실제로는 세울 수도, 행할 수도 없으니, 이 어찌 지나치지 않겠는가!


故性善則去聖王,息禮義矣。

(고 성선 즉 거 성왕, 식 예의 의.)

→ 만약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면, 성왕(聖王)은 필요 없고, 예의(禮義)도 사라질 것이다.


性惡則與聖王,貴禮義矣。

(성악 즉 여 성왕, 귀 예의 의.)

→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성왕이 있어야 하고, 예의가 귀하게 여겨질 것이다.


故檃栝之生,為枸木也;繩墨之起,為不直也;立君上,明禮義,為性惡也。

(고 인괄 지 생, 위 구목 야; 승묵 지 기, 위 불직 야; 립 군상, 명 예의, 위 성악 야.)

→ 그러므로 곧은 자(檃栝, 인괄)가 생긴 것은 나무가 굽었기 때문이고,

먹줄(繩墨)이 쓰이게 된 것은 직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군주를 세우고 예의를 밝힌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用此觀之,然則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용 차 관 지, 연 즉 인지 성 악 명 의, 기 선자 위 야.)

→ 이것으로 살펴보건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偽)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直木不待檃栝而直者,其性直也。

(직목 불대 인괄 이 직자, 기 성 직야.)

→ 곧은 나무가 인괄(檃栝, 나무를 바로잡는 틀)을 기다리지 않아도 곧은 것은, 그 본성이 곧기 때문이다.


枸木必將待檃栝烝矯然後直者,以其性不直也。

(구목 필장 대 인괄 증교 연후 직자, 이 기 성 부직야.)

→ 그러나 비뚤어진 나무가 반드시 인괄과 불로 다스려 펴진 뒤에야 곧게 되는 것은, 그 본성이 곧지 않기 때문이다.


今人之性惡,必將待聖王之治,禮義之化,然後始出於治,合於善也。

(금 인지 성 악, 필장 대 성왕 지 치, 예의 지 화, 연후 시 출 어 치, 합 어 선야.)

→ 지금 사람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반드시 성왕(聖王)의 다스림과

예의(禮義)의 교화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다스려지고, 선에 합할 수 있다.


用此觀之,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용 차 관 지, 인지 성 악 명 의, 기 선자 위야.)

→ 이로써 살펴보건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偽, 인간이 만든 노력의 결과)이다.


問者曰:「禮義積偽者,是人之性,故聖人能生之也。」

(문자 왈: ‘예의 적위자, 시 인지 성, 고 성인 능 생지야.’)

→ 어떤 이가 질문하기를, “예의(禮義)라는 것은 인위(偽)가 쌓여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본성(性)에 속하기 때문에 성인(聖人)이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應之曰:是不然。

(응지왈: 시불연.)

→ 이에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다.”


夫陶人埏埴而生瓦,然則瓦埴豈陶人之性也哉?

(부 도인 연식 이 생와, 연즉 와식 기 도인지 성야재?)

→ 도공(陶人, 질그릇 만드는 사람)이 진흙을 빚어 기와를 만든다고 해서, 그 기와나 진흙이 어찌 도공의 본성이라 할 수 있겠는가?


工人斲木而生器,然則器木豈工人之性也哉?

(공인 착목 이 생기, 연즉 기목 기 공인지 성야재?)

→ 장인(工人)이 나무를 깎아 그릇을 만든다고 해서, 그 그릇이나 나무가 어찌 장인의 본성이라 할 수 있겠는가?


夫聖人之於禮義也,辟則陶埏而生之也。

(부 성인지 어 예의야, 벽즉 도연 이 생지야.)

→ 성인(聖人)이 예의(禮義)를 만든 것도 이와 같다. 마치 도공이 진흙을 빚어 기물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다.


然則禮義積偽者,豈人之本性也哉!

(연즉 예의 적위자, 기 인지 본성야재!)

→ 그렇다면 예의(禮義)라는 것은 인위(偽)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의 본성(本性)이 아니다!


凡人之性者,堯舜之與桀跖,其性一也;君子之與小人,其性一也。

(범 인지 성자, 요순지 여 걸척, 기 성 일야; 군자지 여 소인, 기 성 일야.)

→ 모든 사람의 본성은 요순(堯舜)과 걸척(桀跖, ‘걸’은 중국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桀王)으로, 폭군의 대표적인 인물. ‘척’은 도척(盜跖)을 가리키며 전설적인 대도(大盜), 즉 악명 높은 도둑.)이 다르지 않으며,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본성 또한 같다.


今將以禮義積偽為人之性邪?然則有曷貴堯禹,曷貴君子矣哉!

(금 장 이 예의 적위 위 인지 성야? 연즉 유 갈 귀 요우, 갈 귀 군자의 재!)

→ 그런데 지금 예의(禮義)와 인위(偽)의 쌓임을 인간의 본성이라 말한다면,

그렇다면 어찌 요·우(堯禹)와 군자(君子)를 귀하게 여길 이유가 있겠는가?


凡貴堯禹君子者,能化性,能起偽,偽起而生禮義。

(범 귀 요우 군자자, 능 화성, 능 기위, 위기 이 생 예의.)

→ 요·우나 군자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들이 본성을 교화하고, 인위를 일으켜, 그 인위로부터 예의(禮義)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然則聖人之於禮義積偽也,亦猶陶埏而為之也。

(연즉 성인지 어 예의 적위야, 역 유 도연 이 위지야.)

→ 그러므로 성인이 예의(禮義)를 쌓아 세운 것도, 도공이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다.


用此觀之,然則禮義積偽者,豈人之性也哉!

(용 차 관지, 연즉 예의 적위자, 기 인지 성야재!)

→ 이로써 보건대, 예의(禮義)가 인위로 쌓인 것은 결코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없다!


所賤於桀跖小人者,從其性,順其情,安恣睢,以出乎貪利爭奪。

(소천 어 걸척 소인자, 종기성, 순기정, 안자예, 이 출호 탐리쟁탈.)

→ 걸(桀)·척(跖)과 같은 소인이 천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들이 본성을 따라 감정에 순종하고, 제멋대로 방자하며, 탐욕과 다툼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故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고 인지 성 악 명의, 기 선자 위야.)

→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偽, 후천적 노력의 산물)이다.


天非私曾騫孝己而外眾人也,然而曾騫孝己獨厚於孝之實,而全於孝之名者,何也?以綦於禮義故也。

(천 비 사 증겸 효기 이 외 중인야, 연이 증겸 효기 독후 어 효지 실, 이 전 어 효지 명자, 하야? 이 기 어 예의 고야.)

→ 하늘이 증겸(曾參, 증자)과 효기(孝己)만을 특별히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버린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증자와 효기가 유독 효(孝)의 실제에 두텁고, 이름으로도 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예의(禮義)를 지극히 따랐기 때문이다.


天非私齊魯之民而外秦人也,然而於父子之義,夫婦之別,不如齊魯之孝具敬文者,何也?以秦人從情性,安恣睢,慢於禮義故也,豈其性異矣哉!

(천 비 사 제로 지 민 이 외 진인야, 연이 어 부자 지 의, 부부 지 별, 불여 제로 지 효구경문자, 하야? 이 진인 종 정성, 안 자예, 만 어 예의 고야, 기 기 성 이의 재!)

→ 하늘이 제(齊)나라와 노(魯)나라 사람들만 사랑하고 진(秦)나라 사람들을 버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제·노 사람들은 부자 사이의 의리와 부부의 분별에 있어서 효성과 공경이 두텁고, 예의가 갖추어져 있는 반면, 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본성에 따르고, 제멋대로 행하며, 예의를 업신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의 본성이 다른 것이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塗之人可以為禹。」曷謂也?

(도지인 가이 위우. 갈위야?)

→ “길가의 평범한 사람도 우왕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 — 이것은 무슨 뜻인가?”


曰:凡禹之所以為禹者,以其為仁義法正也。

(왈: 범 우지 소이 위 우자, 이기 위 인의법정야.)

→ 이에 답하였다. “무릇 우왕(禹, 중국의 전설적인 성왕)가 우왕이 된 까닭은, 그가 인의(仁義)와 법정(法正, 법도와 준칙)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然則仁義法正有可知可能之理。

(연즉 인의법정 유 가지 가능 지리.)

→ 그렇다면 인의와 법정에는 반드시 배워 알 수 있고, 또 행할 수 있는 이치가 있다.


然而塗之人也,皆有可以知仁義法正之質,皆有可以能仁義法正之具,

(연이후 도지인야, 개유 가이지 인의법정지질, 개유 가이능 인의법정지구,)

→ 그리고 길 위의 평범한 사람도 모두 인의법정을 알 수 있는 본성의 바탕(質)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의 근거(具)도 가지고 있다.


然則其可以為禹明矣。

(연즉 기 가이 위 우 명의.)

→ 그렇다면 그들 또한 우왕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하다.


今以仁義法正為固無可知可能之理邪?

(금이 인의법정을 위 고무 가지 가능 지리야?)

→ 이제 인의법정이 본래 배워 알 수도, 행할 수도 없는 것이라 한다면,


然則唯禹不知仁義法正,不能仁義法正也。

(연즉 유 우 부지 인의법정, 불능 인의법정야.)

→ 그렇다면 오직 우왕만이 인의와 법도를 알지 못하고, 인의와 법도를 행할 수 없었던 것인가.


將使塗之人固無可以知仁義法正之質,而固無可以能仁義法正之具邪?

(장사 도지인 고무 가이지 인의법정지질, 이 고무 가이능 인의법정지구야?)

→ 혹시 평범한 사람은 인의법정을 알 수 있는 자질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본래부터 없다고 말하는가?


然則塗之人也,且內不可以知父子之義,外不可以知君臣之正。

(연즉 도지인야, 차내 불가이지 부자지의, 외 불가이지 군신지정.)

→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집 안에서는 부자(父子)의 의리를 알지 못하고,

밖에서는 군신(君臣)의 바름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今不然。

(금불연.)

→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塗之人者,皆內可以知父子之義,外可以知君臣之正,

(도지인자, 개내 가이지 부자지의, 외 가이지 군신지정,)

→ 길 위의 평범한 사람이라도 집 안에서는 부자의 의리를 알고, 밖에서는 군신의 도리를 알 수 있다.


然則其可以知之質,可以能之具,其在塗之人明矣。

(연즉 기 가이지 지질, 가이능 지구, 기 재 도지인 명의.)

→ 그렇다면 인의법정을 알 수 있는 바탕과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람들 속에 본래부터 있음이 분명하다.


今使塗之人伏術為學,專心一志,思索孰察,加日縣久,積善而不息,

(금사 도지인 복술 위학, 전심일지, 사색숙찰, 가일현구, 적선이불식,)

→ 만약 평범한 사람이 이 자질과 능력을 바탕으로, 학문에 힘쓰며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깊이 생각하고 세밀히 살피며, 날마다 쉬지 않고 오래도록 선을 쌓는다면,


則通於神明,參於天地矣。

(즉 통어 신명, 참여 천지의.)

→ 마침내 신명의 경지에 통하고 천지의 도리와 하나가 될 것이다.


故聖人者,人之所積而致矣。

(고 성인자, 인지 소적 이치의.)

→ 그러므로 성인이란, 타고난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쌓고 쌓아 이른 결과이다.


曰: 「聖可積而致,然而皆不可積,何也?」

(왈: “성 가적 이치, 연이후 개 불가적, 하야?)

→ “성스러움(聖)은 쌓음으로써 이룰 수 있다 하면서, 그런데 왜 모든 사람이 다 쌓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인가?”


曰:可以而不可使也。

(왈: 가이이불가사야.)

→ 말하기를: "할 수는 있지만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故小人可以為君子,而不肯為君子;

(고소인가이위군자, 이불긍위군자;)

→ 그러므로 소인도 군자가 될 수 있지만, 군자가 되려 하지 않는 것이고,


君子可以為小人,而不肯為小人。

(군자가이위소인, 이불긍위소인.)

→ 군자도 소인이 될 수 있지만 소인이 되려 하지 않는 것이다.


小人君子者,未嘗不可以相為也,

(소인군자자, 미상불가이상위야,)

→ 소인과 군자는 일찍이 서로 될 수 없는 것이 아니지만,


然而不相為者,可以而不可使也。

(연이불상위자, 가이이불가사야.)

→ 그럼에도 서로 되지 않는 것은 할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故塗之人可以為禹,則然;

(고도지인가이위우, 즉연;)

→ 그러므로 길거리의 평범한 사람도 우왕이 될 수 있다고 하면 그렇다.


塗之人能為禹,則未必然也。

(도지인능위우, 즉미필연야.)

→ 하지만 길거리의 평범한 사람이 우왕이 될 능력이 있다고 하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雖不能為禹,無害可以為禹。

(수불능위우, 무해가이위우.)

→ 비록 우왕이 될 능력은 없더라도, 우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足可以遍行天下,然而未嘗有遍行天下者也。

(족가이편행천하, 연이미상유편행천하자야.)

→ 발로는 천하를 두루 다닐 수 있지만, 실제로 천하를 두루 다닌 사람은 없는 것이다.


夫工匠農賈,未嘗不可以相為事也,

(부공장농고, 미상불가이상위사야,)

→ 무릇 공인, 장인, 농부, 상인이 일찍이 서로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然而未嘗能相為事也。

(연이미상능상위사야.)

→ 실제로는 일찍이 서로의 일을 능히 해낸 적이 없다.


用此觀之,然則可以為,未必能也;

(용차관지, 연즉가이위, 미필능야;)

→ 이것으로 보건대, 할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능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며,


雖不能,無害可以為。

(수불능, 무해가이위.)

→ 비록 능히 할 수 없더라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해치지는 않는다.


然則能不能之與可不可,其不同遠矣,

(연즉능불능지여가불가, 기부동원의,)

→ 그렇다면 '능(能)'과 '불능(不能)', '가(可)'와 '불가(不可)'는 그 차이가 크고,


其不可以相為明矣。

(기불가이상위명의.)

→ 서로 같다고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堯問於舜曰:「人情何如?」

(요문어순왈: "인정하여?")

→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물어 말하기를: "사람의 본성은 어떠한가?"


舜對曰:「人情甚不美,又何問焉!

(순대왈: "인정심불미, 우하문언!")

→ 순임금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사람의 본성은 심히 아름답지 못한데, 또 무엇을 물으십니까!


妻子具而孝衰於親,

(처자구이효쇠어친,)

→ 처자를 갖추면 어버이에 대한 효도가 쇠하고,


嗜欲得而信衰於友,

(기욕득이신쇠어우,)

→ 기호와 욕망을 얻으면 벗에 대한 신의가 쇠하며,


爵祿盈而忠衰於君。

(작록영이충쇠어군.)

→ 관작과 녹봉이 가득 차면 임금에 대한 충성이 쇠합니다.


人之情乎!人之情乎!

(인지정호! 인지정호!)

→ 사람의 본성이란! 사람의 본성이란!


甚不美,又何問焉!

(심불미, 우하문언!)

→ 심히 아름답지 못한데, 또 무엇을 물으십니까!


唯賢者為不然。」

(유현자위불연.")

→ 오직 현명한 자만이 그렇지 않을 뿐입니다.“


有聖人之知者,有士君子之知者,有小人之知者,有役夫之知者。**

(유성인지지자, 유사군자지지자, 유소인지지자, 유역부지지자.)

→ 성인의 지혜가 있고, 사군자의 지혜가 있으며, 소인의 지혜가 있고, 역부(하인)의 지혜가 있다.


多言則文而類,

(다언즉문이류,)

→ 말을 많이 하되 문채가 있고 조리가 있으며,


終日議其所以,

(종일의기소이,)

→ 종일토록 그 이치를 논하되,


言之千舉萬變,其統類一也:

(언지천거만변, 기통류일야:)

→ 말이 천 가지로 들고 만 가지로 변하여도 그 통일된 조리는 하나이니,


是聖人之知也。

(시성인지지야.)

→ 이것이 성인의 지혜이다.


少言則徑而省,

(소언즉경이성,)

→ 말을 적게 하되 곧바르고 간략하며,


論而法,

(론이법,)

→ 논하되 법도가 있고,


若佚之以繩:

(약일지이승:)

→ 마치 먹줄로 재는 것과 같으니,


是士君子之知也。

(시사군자지지야.)

→ 이것이 사군자의 지혜이다.


其言也諂,

(기언야첨,)

→ 그 말은 아첨하고,


其行也悖,

(기행야패,)

→ 그 행동은 어그러지며,


其舉事多悔:

(기거사다회:)

→ 그 일을 행함에 후회가 많으니,


是小人之知也。

(시소인지지야.)

→ 이것이 소인의 지혜이다.


齊給便敏而無類,

(제급편민이무류,)

→ 말을 빠르고 민첩하게 하나 조리가 없고,


雜能旁魄而無用,

(잡능방박이무용,)

→ 여러 재주가 넓고 많으나 쓸모가 없으며,


析速粹孰而不急,

(석속수숙이불급,)

→ 분석하고 빠르며 순수하고 익숙하나 긴요하지 않고,


不恤是非,不論曲直,

(불휼시비, 불론곡직,)

→ 옳고 그름을 돌보지 않고, 굽고 곧음을 논하지 않으며,


以期勝人為意,

(이기승인위의,)

→ 사람을 이기기를 기약함을 뜻으로 삼으니,


是役夫之知也。

(시역부지지야.)

→ 이것이 역부의 지혜이다.


有上勇者,有中勇者,有下勇者。

(유상용자, 유중용자, 유하용자.)

→ 상등의 용기가 있고, 중등의 용기가 있으며, 하등의 용기가 있다.


天下有中,敢直其身;

(천하유중, 감직기신;)

→ 천하에 올바른 도리가 있으면 감히 그 몸을 곧게 하고,


先王有道,敢行其意;

(선왕유도, 감행기의;)

→ 선왕의 도가 있으면 감히 그 뜻을 행하며,


上不循於亂世之君,

(상불순어난세지군,)

→ 위로는 난세의 군주를 따르지 않고,


下不俗於亂世之民;

(하불속어난세지민;)

→ 아래로는 난세의 백성에게 속되게 굴지 않으며,


仁之所在無貧窮,

(인지소재무빈궁,)

→ 인이 있는 곳에서는 가난을 없는 것으로 여기고,


仁之所亡無富貴;

(인지소망무부귀;)

→ 인이 없는 곳에서는 부귀를 없는 것으로 여기며,


天下知之,則欲與天下同苦樂之;

(천하지지, 즉욕여천하동고락지;)

→ 천하가 자신을 알아주면 천하와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고자 하고,


天下不知之,則傀然獨立天地之間而不畏:

(천하부지지, 즉괴연독립천지지간이불외:)

→ 천하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우뚝하게 홀로 천지 사이에 서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是上勇也。

(시상용야.)

→ 이것이 상등의 용기이다.


禮恭而意儉,

(예공이의검,)

→ 예로써 공손하고 뜻이 검소하며,


大齊信焉,而輕貨財;

(대제신언, 이경화재;)

→ 크게 신의로써 가지런히 하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며,


賢者敢推而尚之,

(현자감추이상지,)

→ 현명한 자는 감히 추천하여 높이고,


不肖者敢援而廢之:

(불초자감원이폐지:)

→ 불초한 자는 감히 끌어내려 물리치니,


是中勇也。

(시중용야.)

→ 이것이 중등의 용기이다.


輕身而重貨,

(경신이중화,)

→ 몸을 가볍게 여기고 재물을 중히 여기며,


恬禍而廣解苟免,

(염화이광해구면,)

→ 화를 편안히 여기고 구차하게 면하려고 널리 해명하며,


不恤是非然不然之情,

(불휼시비연불연지정,)

→ 옳고 그름과 그러함과 그렇지 않음의 실정을 돌보지 않고,


以期勝人為意:

(이기승인위의:)

→ 사람을 이기기를 기약함을 뜻으로 삼으니,


是下勇也。

(시하용야.)

→ 이것이 하등의 용기이다.


繁弱、鉅黍古之良弓也;

(번약、거서고지량궁야;)

→ 번약과 거서는 옛날의 좋은 활이지만,


然而不得排檠則不能自正。

(연이부득배경즉불능자정.)

→ 그러나 활틀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 바르게 할 수 없다.


桓公之蔥,太公之闕,文王之錄,莊君之曶,闔閭之干將、莫邪、鉅闕、辟閭,

(환공지총, 태공지궐, 문왕지록, 장군지홀, 합려지간장、막사、거궐、벽려,)

→ 환공의 총, 태공의 궐, 문왕의 록, 장군의 홀, 합려의 간장·막사·거궐·벽려는,


此皆古之良劍也;

(차개고지량검야;)

→ 이들은 모두 옛날의 좋은 칼이지만,


然而不加砥厲則不能利,

(연이부가저려즉불능리,)

→ 그러나 숫돌로 갈지 않으면 날카로울 수 없고,


不得人力則不能斷。

(부득인력즉불능단.)

→ 사람의 힘을 얻지 못하면 자를 수 없다.


驊騮、騹驥、纖離、綠耳,

(화류、원기、섬리、록이,)

→ 화류, 원기, 섬리, 록이는,


此皆古之良馬也;

(차개고지량마야;)

→ 이들은 모두 옛날의 좋은 말이지만,


然而必前有銜轡之制,

(연이필전유함패지제,)

→ 그러나 반드시 앞에는 재갈과 고삐의 제어가 있고,


後有鞭策之威,

(후유편책지위,)

→ 뒤에는 채찍의 위엄이 있으며,


加之以造父之駛,

(가지이조부지사,)

→ 여기에 조부와 같은 명마부의 조종을 더하여야,


然後一日而致千里也。

(연후일일이치천리야.)

→ 그런 뒤에야 하루에 천 리를 갈 수 있는 것이다.


夫人雖有性質美而心辯知,

(부인수유성질미이심변지,)

→ 무릇 사람이 비록 타고난 성질이 아름답고 마음이 총명하고 지혜로워도,


必將求賢師而事之,

(필장구현사이사지,)

→ 반드시 어진 스승을 구하여 섬기고,


擇良友而友之。

(택량우이우지.)

→ 좋은 벗을 택하여 사귀어야 한다.


得賢師而事之,

(득현사이사지,)

→ 어진 스승을 얻어 섬기면,


則所聞者堯舜禹湯之道也;

(즉소문자요순우탕지도야;)

→ 듣는 바가 요·순·우·탕의 도이고,


得良友而友之,

(득량우이우지,)

→ 좋은 벗을 얻어 사귀면,


則所見者忠信敬讓之行也。

(즉소견자충신경양지행야.)

→ 보는 바가 충성·신의·공경·겸양의 행실이다.


身日進於仁義而不自知也者,

(신일진어인의이부자지야자,)

→ 몸이 날마다 인의에 나아가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은,


靡使然也。

(미사연야.)

→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今與不善人處,

(금여불선인처,)

→ 이제 선하지 못한 사람과 더불어 지내면,


則所聞者欺誣詐偽也,

(즉소문자기무사위야,)

→ 듣는 바가 속이고 거짓되고 사기치는 것이며,


所見者汙漫淫邪貪利之行也,

(소견자오만음사탐리지행야,)

→ 보는 바가 더럽고 방만하고 음란하고 사악하고 이익을 탐하는 행실이니,


身且加於刑戮而不自知者,

(신차가어형륙이부자지자,)

→ 몸이 장차 형벌과 살육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은,


靡使然也。

(미사연야.)

→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傳曰:「不知其子視其友,

(전왈: "부지기자시기우,)

→ 전에 말하기를: "그 자식을 알지 못하거든 그 벗을 보고,


不知其君視其左右。」

(부지기군시기좌우.")

→ 그 임금을 알지 못하거든 그 좌우를 보라."


靡而已矣!靡而已矣!

(미이이의! 미이이의!)

→ 환경일 뿐이다! 환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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