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칸센을 전국으로” 타나카 카쿠에이의 철도 정책이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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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센을 전국으로” 타나카 카쿠에이(田中角栄)의 철도 정책이란 무엇이었나?
『일본열도개조론(日本列島改造論)』이 보여주는 45년 전의 미래상
코바야시 타쿠야(小林拓矢), 2017년 2월 3일 6:00
사회 전체에 폐쇄감이 감도는 오늘날, “만약 지금 타나카 카쿠에이(田中角栄)가 있었다면” 하고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도경제성장기 일본의 총리를 지냈으며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가 가운데 한 사람인 타나카 카쿠에이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타나카 카쿠에이 100가지 말(田中角栄100の言葉)』(타카라지마샤(宝島社))이나,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의 소설 『천재(天才)』(겐토샤(幻冬舎))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타나카는 밑바닥에서 올라와 국정의 정점인 총리 자리에 오른 이력과 뛰어난 인심 장악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타치바나 타카시(立花隆)가 「타나카 카쿠에이 연구(田中角栄研究)」에서 고발한 금전 스캔들 문제나, 코다마 타카야(児玉隆也)가 「고독한 에츠잔카이(越山会)의 여왕(淋しき越山会の女王)」에서 다룬 여성 문제(두 글 모두 『분게이슌쥬(文藝春秋)』 게재), 더 나아가 록히드 사건 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이라는 측면도 크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타나카 카쿠에이”의 이미지는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일본열도개조론』이 그린 철도의 미래상
그러나 타나카 카쿠에이에게는 ‘정책통’이라는 면모가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본인이 제안한 것만 33건, 관여한 것까지 포함하면 100건이 넘는 의원입법을 성립시킨 것으로 이름을 남겼으며, 현재까지 이만큼의 의원입법을 만든 정치가는 다른 예가 없다. 또 그의 주요 저작인 『일본열도개조론(日本列島改造論)』(닛칸코교신분샤(日刊工業新聞社))에서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함에 있어 앞으로 일본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교통정책을 포함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적어 두었고, 정책에 지대한 밝음을 보였다.
그렇다면 본인도 니가타현의 에치고 교통(越後交通: 현재는 버스회사, 과거에는 철도 운영) 경영을 맡았던 이력을 지닌 타나카 카쿠에이는 어떤 교통·철도 정책을 내세웠을까. 『일본열도개조론』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972년 『일본열도개조론(日本列島改造論)』이 발표된 해는, 산요 신칸센(山陽新幹線)의 신오사카–오카야마(新大阪–岡山) 구간이 개업한 해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타나카 카쿠에이는 신칸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칸센 철도의 장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다”고 단언한다.
예로 드는 것은 도카이도 신칸센(東海道新幹線) 덕분에 도쿄–오사카(東京–大阪) 구간이 무리 없이 당일치기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아침 8시에 도쿄역(東京駅) 에서 ‘히카리호(ひかり号)’로 출발한 승객은 오전 11시 10분에 신오사카역(新大阪駅) 에 도착한다. 편도 3시간 10분은 당일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라며 그 고속성과 편의성을 높이 평가하고, “신칸센 철도는 사람의 이동을 효율화하고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신칸센 계획의 원류도 확인할 수 있다. 타나카는 향후 신칸센에 대해 “홋카이도(北海道), 도호쿠(東北), 호쿠리쿠(北陸), 규슈(九州) 등의 지역 개발을 촉진하고, 태평양 벨트 지대(太平洋ベルト地帯)와 우라니혼(裏日本, 일본해측 지역), 북일본(北日本), 남규슈(南九州)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개업했거나 건설 중인 홋카이도 신칸센(北海道新幹線) · 도호쿠 신칸센(東北新幹線) · 호쿠리쿠 신칸센(北陸新幹線) · 규슈 신칸센(九州新幹線, 가고시마 루트〈鹿児島ルート〉·나가사키 루트〈長崎ルート〉) 의 정비 계획은 타나카 내각 시기인 1973년에 결정된 것이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야말로 신칸센 역을
타나카 카쿠에이가 이 책에서 제시한 것은 이러한 루트들만이 아니라, 주요 재래선 대부분을 신칸센으로 전환할 수준의 실로 거대한 구상이었다. 그는 “이렇게 9,000km 이상에 걸친 전국 신칸센 철도망이 실현된다면, 일본 열도의 거점 도시들은 서로 1~3시간권 안에 들어오게 되어, 거점 도시들끼리 사실상 하나로 통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신칸센들은 도카이도·산요(東海道・山陽)처럼 원래부터 수요가 많은 노선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역 발전을 위한 선행 투자라는 사고에 기반해 있다. “앞으로의 신칸센 철도는 인구가 집중된 지역만을 잇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구가 적은 지역에 계획적으로 역을 설치하고, 그 역을 거점으로 지역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문장에서 그 사상이 잘 드러난다. 타나카는 신칸센망을 통해 일본의 구조 자체를 다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도카이도 신칸센이 언젠가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을 예측하며 “제2 도카이도 신칸센이 필요해질 것”이라고도 적었다. 당시 이미 리니어 모터카 연구가 시작된 상태였다. 타나카는 “적어도 제2 도카이도 신칸센만큼은 리니어 모터 방식으로 달리게 해주었으면 한다”고 썼다. 지금 건설이 진행 중인 리니어 주오 신칸센(リニア中央新幹線)이 바로 그것이다.
전국을 잇는 신칸센망을 언급하는 한편, 타나카 카쿠에이는 재래선(역주: 在来線. 신칸센(新幹線)이 아닌 일반 철도 노선 전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복선(역주: 複線. 선로 2개 (상·하행 분리)) 전철화의 추진이나 복복선(역주: 複々線. 선로가 네 개 있는 구조)화 같은 방안을 제안했을 뿐 아니라, “레일을 내구성과 안정성이 높은 것으로 교체해 열차의 속도를 높인다”는, 토목·건설업에 종사했고 철도를 직접 경영했던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 할 만한 내용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당시 이미 적자로 인해 폐지가 거론되던 지방 노선과, 쇠퇴가 시작되고 있던 화물 운송에 관한 서술일 것이다.
『일본열도개조론』이 발표된 1972년 무렵, 일본국유철도(역주: 日本国有鉄道. 1987년 민영화 이전까지 일본의 철도를 운영하던 국가기관)의 적자는 이미 큰 사회 문제였다. 일본국유철도는 1968년, 경영 재건을 목표로 전국의 적자 로컬선 83개 노선·약 2,590km를 선정하고 이들 노선의 폐지를 추진하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타나카는 “일본국유철도는 수익성 외에 큰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고, “민간기업과 같은 잣대로 일본국유철도의 적자를 논하거나 재건을 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적자 노선을 철거하면 과소화가 한층 더 진행된다
그 논거로 타나카 카쿠에이가 제시한 것은, 과거 철도에 의해 홋카이도(北海道) 개척이 이루어지고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이었다. 적자 로컬선(赤字ローカル線)의 폐지에 대해서도 그는 “철도가 지역 개발에 수행하는 선도적 역할은 매우 크다. 적자 노선을 철거해 지역 산업이 쇠퇴하고 인구가 도시로 유출되면, 과밀·과소는 한층 심해져, 그 철도의 적자액을 훨씬 웃도는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논했다.
실제로 타나카 내각 시절에는 적자선 폐지 방침이 멈추게 되었다. 또한 타나카가 설립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철도건설공단(日本鉄道建設公団, 철건공단)을 통해 각지의 지방 노선 건설도 추진되었다. 철건공단은 국철(国鉄, 일본국유철도)을 대신해 새로운 노선을 건설하고, 그것을 국철에 임대하거나 양도하기 위한 공단이었다. 간선이나 도시부의 수송력 증강 등으로 국철이 지방 노선 정비까지 손이 닿지 않게 되자, 그 건설을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방 발전을 위한 정책이라는 명분 아래 이런 지방 노선들이 개업했지만, 이로 인해 국철의 적자가 확대된 것도 사실이다. 철건공단이 건설한 노선의 대부분은 개업 전부터 적자가 확실시되었고, 개업은 했으나 결국 폐지된 노선도 많았다. 그 결과 국철의 적자는 계속 커져갔고, 최종적으로는 분할·민영화로 이어지는 길을 걷게 되었다.
또한 타나카 카쿠에이는 철도의 화물 수송 능력 강화도 주장했다. 대량 수송의 시대에 모든 물류를 트럭이 담당하게 되면 도로 교통이 마비될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그래서 신칸센을 건설한 뒤, 비게 되는 기존 선로에 화물 열차를 운행하여 화물 수송력을 확대한다는 발상이었다.
도시간 화물 운송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처럼 역마다 화물 열차를 새로 편성하거나 분리하는 방식을 가능한 한 지양하고, 컨테이너 전용 급행 열차로 목적지까지 한 번에 운송하는 방식을 대폭 도입한다”고 제시했다. 이는 실제로 실현되어, 현재의 화물 열차는 컨테이너 운송이 기본이 되어 있다.
그러나 국철(国鉄)의 화물 운송 자체는 1970년을 정점으로 수송량이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여기에 1970년대의 잦은 파업으로 인해 트럭 운송으로의 전환이 가속되면서 국철 화물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종합 교통체계의 현재는…
지금까지 철도 관련 정책을 살펴보았지만, 타나카 카쿠에이는 교통 정책을 철도·도로 등으로 따로따로 생각했던 것이 아니다. 그가 그렸던 것은 일본 전역을 ‘하루 생활권(一日交通圏)’으로 만드는 종합적인 교통체계였다.
“일본열도를 하루 교통권, 하루 경제권으로 재편하기 위한 전제는 종합 교통체계의 확립이다.” 이 전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타나카가 만든 것이 바로 자동차 중량세(自動車重量税) 제도였다. “도로·철도·항만은 종합적이고 일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 타나카는 “자동차 중량세 수입을 철도 건설에도 투입하는 것은 정론이다. 철도 건설로 이익을 얻는 것은 자동차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종합 교통체계를 통해 타나카가 지향한 것은 “균형 잡힌, 살기 좋은 일본의 실현”이었다. 타나카 내각 시기에 정비계획이 마련된 이른바 ‘정비 신칸센(整備新幹線)’ 각 노선은, 이미 개업한 구간을 기준으로 보면 지방과 대도시 간의 이동을 늘리고, 새로운 경제 효과와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까운 사례로는 2015년 3월 호쿠리쿠 신칸센(北陸新幹線) 연장 개업으로 큰 혜택을 받은 가나자와(金沢)가 좋은 예다.
그러나 신칸센을 비롯한 고속 교통의 발전은 한편으로 도시 지역으로의 일극 집중 가속, 병행 재래선의 분리 경영과 같은 문제도 낳았다. 또한 홋카이도(北海道)의 철도는 과소화와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인해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균형 잡힌 국토 진흥과 발전을 기초로 했던 타나카의 이념에서 본다면, 현재의 상황은 분명 문제적일 것이다.
“일본 모든 가정에 단란한 웃음소리가 넘치고, 노인이 편안한 여생을 보내며, 젊은이의 눈동자에 희망의 빛이 반짝이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이상을 그리며, 그 실현을 위해 철도와 종합 교통체계에 힘을 기울였던 타나카 카쿠에이. 만약 그가 오늘날 철도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본다면, 과연 어떤 교통체계를 그려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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