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개발자의 커티스 야빈 평론
원문 링크: https://note.com/kyohei_nft/n/n2fef55a4fc8d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이란 누구인가? 미국 사회를 뒤흔드는 암흑 계몽주의(暗黒啓蒙主義)의 카리스마
이토 쿄헤이(伊藤匡平), 2025년 6월 25일
서론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초기에는 ‘멘시우스 몰드버그(Mencius Moldbug)’라는 필명으로 알려져 있던 그는, 미국 지적 풍토의 변두리에 자리하면서도 가장 도발적이며 중요한 정치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야빈은 〈Unqualified Reservations〉(‘자격없는 권고’)라는 블로그를 통해 민주주의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대성당(the Cathedral)’이라 부르는 리버럴 지배 구조를 비판했으며, 미국의 정치 제도를 근본부터 “재부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핵심 사상인 신관방주의(neocameralism), 형식주의(formalism),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단적 비판은 처음에는 인터넷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실리콘밸리 테크 엘리트층, 탈리버럴·탈자유시장주의 우파, 그리고 체제 비판적 온라인 사상 서브컬처에까지 스며들게 되었다.
본 에세이는 야빈의 초기 블로그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적 진화를 세밀하게 추적하고, 주요 개념의 실체를 해명하며, 그의 영향력이 현대 미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파급되었는지를 살핀다. 궁극적으로 그의 사상이 어떠한 “도발”, 어떠한 “매력”, 그리고 어떠한 “위험성”을 품고 있는지를 공정하고 지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 1장: 기원과 초기 저작
커티스 야빈의 정치사상으로의 여정은 학계나 정책 싱크탱크가 아니라, 개인 블로그라는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2007년,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Unqualified Reservations〉라는 블로그를 개설하며 “당신의 뇌를 치료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는 ‘멘시우스 몰드버그(Mencius Moldbug)’라는 필명을 사용하며, 자신의 이론을 일종의 ‘레드 필(red pill)’로 제시했다. 즉, 독자들에게 사회적 환상을 깨뜨리는 각성을 촉구하는 장치로 자신의 주장을 소개한 것이다.
초기 글에서는 19세기 반동사상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과 같은 인물을 인용하고, 스튜어트 왕조 복고를 꿈꾸는 자코바이트 군주주의자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는 등, 역사와 정치사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스타일이 특징이었다. 그의 글은 박식하면서도 오타쿠 문화적 유머가 섞인 구어체로 쓰여 있었고, 계몽주의 사상과 『매트릭스』를 동시에 소환하는 독특한 문체가 독자들을 끌어당겼다.
그는 스스로를 “개종한 전(前) 리버럴”로 규정했다. 2008년에 집필한 다장(多章) 구성의 에세이 〈열린 마음의 진보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An Open Letter to Open-Minded Progressives)〉에서 그는 리버럴 독자들을 향해 “당신이 믿어온 역사와 정치의 이야기들은 사실 모두 정반대”라고 설득하려 한다. 이 시기의 야빈은 마치 전향자를 연상케 하는 조소를 띠고 있었으며, 현대 민주주의의 승리나 진보주의의 계몽성을 종교적 “환상”이라 단정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인터넷에서 널리 사용되는 비유인 ‘레드 필’을 야빈이 매우 이른 시기부터 자신의 사상적 각성을 상징하는 말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이후 체제비판이나 대안적 인식의 각성을 의미하는 인터넷 용어로 굳어진다.
2009년 무렵이 되자, 야빈의 블로그는 일정한 이데올로기적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평등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대안으로 ‘형식주의’, ‘신관방주의(新官房主義)’과 같은 개념들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2007년 4월 발표된 〈형식주의자 선언문(A formalist manifesto)〉은 그의 사상형성에서 일종의 선언문적 역할을 하는 글로, 그는 그곳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다. 21세기에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다소 오만한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렇게 그의 사상적 기반이 다져져 갔지만, 그 기반은 언제나 “근대적 기술자 정신”과 “빅토리아 시대 이전의 반(反)민주주의적 유산”을 결합하려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었다.
제 2장: 핵심 개념과 철학적 원리
커티스 야빈 사상의 중심에는, 현대 정치의 병리를 진단하고 그 대안적 구조를 제시하기 위해 설계된 여러 핵심 개념이 놓여 있다. 그중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형식주의이다. 형식주의란 정치적 정당성은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라는 사실을 명료하고 안정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성립한다는 원리이다. 야빈에 따르면, 인간 사회에서 폭력과 갈등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권력의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형식주의가 목표하는 바는 그러한 모호성을 제거하고, 정부를 일종의 ‘소유권의 형식’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식주의의 기본 원리는, 인간 사회의 주된 문제는 ‘폭력’이라는 인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폭력 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형식주의의 실천은 먼저 “현 시점에서 누가 무엇을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사실을 ‘정식의 증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즉, 이상이나 도덕적 원리에 따라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권력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지배자를 법적으로 그대로 승인하여, 권력과 소유를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갈등과 폭력의 동인을 제거하려는 정치철학적 관점이다.
“형식주의자가 만족하는 때는 오직, 소유와 지배가 완전히 일치할 때뿐이다.”
이것이 야빈이 제시하는 정치적 안정에 대한 처방이며, 말하자면 하나의 ‘제도적 아스피린’이다. 혼란의 원인은 “누가 정통성을 갖는가”에 대한 불일치에서 비롯되며, 이를 해소하면 사회는 안정될 수 있다는 신념에 기반한다.
이 형식주의의 원리를 실제 국가 운영 모델로 확장한 것이 그가 제안한 신관방주의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국가를 주식회사로 다시 설계하는” 사상이다. 시민은 그 기업의 고객이며, 국가의 ‘CEO’가 영토를 수익화·최적화하는 방식으로 통치한다.
“신관방주의자에게 국가란, 국토를 소유한 일종의 ‘사업’이다.”
이 모델에서 국가는 주주가 소유하는 기업과 같으며, 주주는 이사회 과정을 통해 CEO를 임명한다. CEO의 임무는 그 ‘국가 주식회사’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익이란 국가의 안전성·질서·경제적 활력으로 평가되는 자산 가치이며, 이를 통해 국가는 시장 원리에 의해 스스로 ‘좋은 통치’를 하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과세가 고정자산세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국가는 부동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더 나은 통치를 추구할 것이다. 이는 범죄율 감소, 인프라 개선, 교육 향상 등 장기적 안정과 번영을 위한 강한 인센티브를 정부에 부여한다. 야빈에게 “좋은 정부”란 효율적이고, 책임감 있으며, 그리고 수익성이 높은 조직체이며, 민주주의처럼 ‘정치 게임’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의 세 번째 핵심 개념이자, 민주주의 비판의 중심에 있는 사상이 바로 “대성당(the Cathedral)”이다.
제 3장: 대성당과 그 비판
야빈의 사상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개념이 바로 ‘대성당’이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 리버럴 지식 엘리트들이 구성하는 비공식적이지만 실질적인 통치 구조를 뜻하며, 대학, 주요 언론, 비영리단체(NPO), 관료조직의 상층부 등으로 이루어진다.
야빈의 정의에 따르면, 대성당은 “이념적으로는 분산되어 있으나, 내적으로는 일관되게 협력하는 체제”이며, 이러한 기관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항상 진보주의적 가치관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려 한다. 형식적으로는 권력을 직접 행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혐오인지”와 같은 지적·윤리적 판단의 틀을 지배한다.
그가 이 개념을 ‘대성당’이라 부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중세 가톨릭교회처럼 정신적 권위의 중심으로서 사회의 규범과 사고방식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종교적 권위를 갖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야빈에게 현대 서구의 리버럴 지식인층은 단순한 의견 집단을 넘어 사실상의 국가 종교이다.
“현대 미국은 진보주의라는 ‘무신론적 국가종교’에 지배되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이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이 ‘종교’의 성전이 바로 하버드대학교이며, 뉴욕타임스이며, 워싱턴 DC의 관료제다. 야빈은 “지적 권위의 원천인 대학과 언론이 좌파적 세계관을 유일한 현실처럼 제시함으로써, 민주주의는 사실상 ‘선택이 없는 제도’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구조를 종종 “보이지 않는 성직자 제도”라고 묘사하며, 다음과 같은 도발적 비유를 덧붙인다.
“만약 모든 리버럴 교수와 기자를 같은 지위의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 대체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신권 정치’라 부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구조 속에서 진보주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음에도, 왜 당신은 그것을 ‘중립’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야빈은 “우리가 믿고 있는 ‘자유로운 언론 공간’은 환상일 뿐이며, 실제로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가 지배한다”고 논한다. 그리고 대성당이 시민의 인식을 통제함으로써, 선거와 여론은 실질적으로 무력화되어 있다고 본다.
이 비판은 단순한 음모론과는 다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 개념이나 현대 보수주의자들의 “딥 스테이트(deep state)” 논의와 겹치는 지점이 많다. 그러나 야빈은 이보다 훨씬 급진적이고 체계적이며, “제도 자체를 해체하지 않으면 진정한 개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2008년 그의 연재 마지막 글 제목은 〈대성당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How to Uninstall a Cathedral)〉였다.
이 글에서 그는 “대학의 권위를 끊고, 언론의 신뢰성을 폭로하며, 국민에게 새로운 현실 인식의 공통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2021년의 에세이에서는 더 나아가 이렇게 쓴다.
“대학이 구체제의 중추인 이상, 신체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인가 대학을 물리적·경제적으로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외는 최소화되어야 한다. … 순수한 직업훈련학교를 제외하고는, 대학이라는 제도는 영혼째 사라져야 한다.”
이러한 표현은 야빈을 온건한 제도 개혁가라기보다는 체제 자체를 갈아엎으려는 사상적 ‘체제 변혁가’로 드러나게 한다.
그에게 ‘개혁’이란 단순한 업데이트가 아니라 완전한 초기화이며, 민주주의라는 운영체제를 삭제하고 새로운 운영체제를 설치하는 작업에 가깝다.
제 4장: 테크 업계와 탈리버럴 담론에 미친 영향
초기만 해도 커티스 야빈의 저작은 자유지상주의 계열 게시판이나 사상적 오타쿠들 사이에서 은밀히 공유되는,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지적 언더그라운드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에서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은 점점 더 넓은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고, 특히 실리콘밸리의 테크 엘리트층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확산되었다.
언뜻 보면, 절대군주제를 긍정하는 이론이 자유주의적 성향의 창업가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야빈의 사상은 “진보적 체제의 위선과 기능 불능을 폭로하는 통쾌한 지적 도구”로 기능하며, 많은 테크 창업가와 엔지니어들에게 강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의 사상은 ‘자유시장적 자유지상주의 감각 + 관료제에 대한 불신 + 시스템 설계적 사고’라는, 테크 업계 특유의 감성과 매우 궁합이 맞았다. 민주주의를 단순히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수준의 외형적 장치로 보고, “진짜 운영체제(OS)”를 문제 삼는 그의 태도는 엔지니어적 세계관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야빈의 블로그 〈Unqualified Reservations〉는 자유지상주의 성향의 기술자들, 제도에 환멸을 느낀 관료들, 합리주의적 성향의 오타쿠들 사이에서 은밀히 읽히는 “지하 사상서” 같은 존재가 되었다.
2013년에는 테크 전문 매체 TechCrunch가 〈왕정을 지지하는 괴짜들(Geeks for Monarchy)〉라는 헤드라인으로, 몰드버그의 정체가 커티스 야빈임을 폭로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정치사상과 그가 참여하던 소프트웨어 기업의 투자 구조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야빈은 자신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Tlon(Urbit 개발사)의 자금 조달 중이었으며, 그 투자회사 명단에는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파운더즈 펀드(Founders Fund, 피터 틸의 벤처 캐피탈) 등 실리콘밸리 핵심 인물들이 있는 회사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피터 틸과의 관계였다. 틸은 이미 2009년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에 기고한 글에서 “이제 자유와 민주주의는 더 이상 양립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야빈의 민주주의 비판과 완전히 일치하는 관점이었다. 야빈 또한 “틸은 완전히 레드필을 먹은 상태”라고 말하며, 틸이 그에게 “너와 나의 관계가 공개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야빈의 영향은 보수적 탈자유주의 사상가 및 정치인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인물은 J.D. 밴스(『힐빌리의 노래』의 저자이자, 이후 상원의원·부통령에까지 오른 인물)다. 밴스는 2021년 한 팟캐스트에서 야빈의 RAGE(Retire All Government Employees, 전 공무원 조기퇴직 프로그램)에 가까운 정책을 제안하고, “판결에 따르지 않는 정부”, “우리 쪽 사람들로 관료제를 전면 교체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또한 야빈의 “CEO가 운영하는 국가 모델”은 마크 앤드리슨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테크 거물들에게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 앤드리슨은 “미국에는 창업자 CEO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머스크는 “정부란 가장 큰 기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2025년에는 머스크가 야빈과 접촉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 개혁에 조언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러한 사례들은 야빈이 단순한 인터넷 논객이 아니라, 권력의 핵심부에서 실제로 목소리가 들리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2016년쯤 그의 블로그를 읽던 사람들이 2020년대에는 실제 정치 권력을 쥐고, 야빈적 수사를 공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나아가 야빈은 실리콘밸리 외부에서도 ‘탈리버럴 우파’라는 새로운 사상 흐름 형성에 기여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The American Mind』, 『Compact』, 『First Things』 같은 보수 인텔리 매체에서 적극적으로 다뤄졌고, “민주주의의 재검토”를 정당한 의제로 떠올리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야빈 사상이 남긴 가장 큰 충격은, 민주주의를 ‘전제 조건’이 아니라 ‘검토해야 할 제도’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일부 엘리트층만이라도 “선택지 없는 체제”에서 “선택지가 있는 사상공간”으로 이동하도록 만들었다.
제 5장: 야빈 사상의 진화(2007년~현재)
커티스 야빈의 사상은 2007년 등장 이후 핵심 신념은 일관되지만, 문체·초점·전략 면에서는 뚜렷한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 궤적을 추적하면, 단순히 과격한 아이디어를 던지는 인물이 아니라 현실 정치의 플레이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론가로 변모해온 과정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1. 2007~2009년: ‘몰드버그 시대’ — 실험실 같은 사상의 원형기
2007~2009년의 ‘몰드버그 시기’는 말 그대로 사상적 실험장이었다. 그는 “21세기에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구축한다”는 도발적 프로젝트에 몰두했고, 문체는 자유분방했으며 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지나치게 진지하게 전개되었다. 절대군주제의 미덕, 토머스 칼라일식 지도자상, 심지어 유전적 지능 차이 같은 금기 테마까지 다루며, 그는 온갖 “금지된 사상 실험”을 시도했다.
이 시기의 〈Unqualified Reservations〉는, “진지한지 장난인지 알 수 없는” 지적 트릭스터로서의 야빈을 부각시켰다. 그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다니엘 디포(Daniel Defoe)는 내가 진심으로 공감하는 ‘교활한 남자’였다. 그도 독자들이 자신의 ‘소금’을 글에 보태주기를 기대했다.”
즉, 텍스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이중 구조가 초기 문체 전반에 깔려 있었다.
2. 2010~2013년: 사상의 ‘체계화’ — 추상 이론에서 제도 설계로
2010~2013년 무렵, 그의 글에는 일종의 제도화, 체계화 경향이 나타난다.
이 시기 대표작인 〈A Gentle Introduction to Unqualified Reservations〉(2013), 그리고 “패치워크(patchwork)” 구상은 추상적인 왕정 예찬을 넘어 실제 제도 설계론처럼 구체성과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패치워크’란 수많은 주권적 도시국가(= 패치)들이 병존하며, 각각이 신관방주의적 법인 국가로서 경쟁하는 모델이다. 주민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퇴거(exit)”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국가 간에 경쟁이 작동하며 가장 효율적·관용적 거버넌스만 살아남는다는 논리다.
이즈음 그는 자신의 문체를 가리켜 “버락 오바마풍 파스텔 톤”으로 쓰겠다고 농담하기도 했으며, 이는 독자층 확장을 의식한 변화였다.
3. 2013년: 정체 폭로와 현실적 충격 — 몰드버그 활동 중단
그러나 2013년 정체가 폭로된 사건이 전환점이 된다. 테크 업계 전반에 그의 이름이 알려졌고, 2015~2016년에는 프로그래밍 콘퍼런스 Strange Loop 등에서 잇따라 강연 취소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정치 사상이 현실의 커리어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점을 그에게 뼈저리게 인식시켰고, 그는 2014년 몰드버그로서의 활동을 사실상 종료한다.
이후 그는 한동안 정치적 침묵을 지키며 Tlon·Urbit 개발 등 소프트웨어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4. 2016년 이후: 트럼프 시대와 재등장 — 그러나 트럼프 비평가
2016년 트럼프 당선은 역설적으로 야빈을 다시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하지만 야빈은 트럼프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에게 트럼프는 “구시대적 대중정치의 재방송”에 불과했으며, 진정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관료들이 운영하는 보여주기식 행정 따위 없는 신체제라고 믿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오버턴 윈도우를 넓힌 덕에, 야빈적 사상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고, 2019년 그는 〈The American Mind〉에 연재 에세이 〈클리어필(The Clear Pill)〉을 발표한다. 여기서 그는 기존의 “대성당 비판”을 더욱 추상화하여, “사회 전체가 잘못된 지식 틀에 갇혀 있다”는 문명비판적 관점으로까지 확장된다.
5. 2020년대: Substack과 새로운 전략 — ‘평화적 정권 교체’
2020년 그는 Substack에서 〈허무주의 왕자의 회색 거울(Gray Mirror of the Nihilist Prince)〉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그는 현대 정치에 대해 여전히 “CEO형 군주” 모델을 적용하는 시뮬레이션적 글쓰기를 이어갔다.
특히 비중 있게 드러난 변화는, 그가 “평화적·제도적 체제 전환”이라는 전략을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혁명을 거부하고 “리팩토링(refactoring)”, 즉 피를 흘리지 않는 시스템 재구축을 이상으로 내세웠다. 심지어 “민주적 절차로 왕을 선출해 민주주의를 종료한다”는 역설적 제안까지 던졌다.
6. 2020년대: 여러 집단과 ‘언어를 맞추는 사상 번역자’로
2020년대의 야빈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정치세력에게 다른 언어로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는 ‘사상 번역자’ 역할까지 수행한다.
· 기독교 보수주의자에게는 “진정한 공화정의 재건”
· 암호화폐 트레이더·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는 “스타트업 국가”
· 테크계에는 “제도의 하드 리셋”
이처럼 동일한 핵심 사상을 다양한 맥락에 맞게 번역하는 능력은, 야빈 사상이 얼마나 재배치·이식 가능한 철학인지 잘 보여준다.
총평: 변화한 것은 신념이 아니라 ‘적용 방식’
야빈의 사상적 진화란, 신념 자체가 바뀐 것이 아니라, 현실 권력의 중심부에 적용 가능한 언어와 구조를 다시 선택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동일한 목적을 유지한 채, 문체·전략·대상에 따라 그것을 “업데이트”하며
단순히 과격한 논객이 아닌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이론가로 자리 잡았다.
제 6장: 논쟁과 비판
커티스 야빈의 사상은 등장 초기부터 줄곧 거센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의 폭넓은 지적 레퍼토리와 독특한 문체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 반면, “반(反)민주주의적이고 반평등주의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급진적 사상 그 자체”로 간주하는 이들도 많다. 비판자는 리버럴에서 주류 보수주의자, 심지어 극우 일부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가장 흔한 비난은 그의 사상이 권위주의적이며 비(非)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파시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주류 언론은 그를 “극우”, “신(新)군주주의자”, “반동 사상가” 등으로 묘사하며, 그가 주장하는 “민주주의 폐지”나 “국가 지도자의 CEO화” 같은 구상은 파시즘 또는 전체주의로 귀결될 위험사상으로 자주 해석된다.
역사학자 스탠리 페인에 따르면 파시즘은 “자유나 평등이 아니라, 권위·계층·질서를 최상위 가치로 두는 운동”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야빈의 사상은 분명 높은 친화성을 보인다. 『Time』지 칼럼니스트 에드 사이몬은 그를 이렇게 비판한다.
“계몽주의가 자유·해방·평등·연대를 약속했다면, ‘암흑 계몽주의(Dark Enlightenment)’가 주는 것은 복종·계층·예속·냉혹함이다.”
야빈 본인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나는 파시스트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오히려 역사적 파시즘은 대중 동원형이며 강한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었지만, 자신의 구상은 비(非)민족주의적이고 엘리트 중심적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는 스스로를 “왕당파”, “자코바이트(Jacobite)”라고 부르며, 나치나 스탈린처럼 대중 동원을 전제로 한 체제와 자신을 선을 긋는다.
그럼에도 비판은 멈추지 않는다. 특히 보수 진영 내부에서는 그가 “선량한 독재자를 전제로 한 공상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국가의 CEO가 항상 이성적이고 온건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의 논법은 종종 이런 질문을 낳는다.
“만약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인물이 다시 등장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야빈은 가볍게,
“그렇다면 우리는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를 재현한 셈이겠지요.”
라고 넘기지만, 이러한 태도는 “지나치게 무책임하고 위험한 낙관주의”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또한 야빈이 과거 언급한 인종, 지능, 노예제에 대한 발언도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몰드버그 시절 블로그에서 토머스 칼라일 등의 노예제 옹호론을 인용하며, “노예제에는 좋은 면도 있었다”, “일부 집단은 복종에 적합한 특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인종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2016년에는 자신이 연사로 예정되어 있던 테크 행사에서 배제된 뒤 해명문을 공개하며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언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충분히 논란을 잠재우는 행위가 되지 못했다.
지지자들은 “그는 금기에 도전했을 뿐, 주장 자체는 과학적이고 실증적이었다”고 옹호하지만, 많은 독자에게 노예제를 상대화하는 듯한 발언 자체가 이미 위험한 사상적 신호였고 신뢰를 망가뜨리는 요소였다.
더불어 그의 모델의 현실적·윤리적 취약성 역시 빈번한 비판 대상이다. 국가를 기업으로 재설계하자는 신관방주의 발상은 투명성·효율성을 중시하는 테크적 합리주의이지만, 그것이 “정의”나 “인간적 존엄”을 보장할지는 전혀 불투명하다.
부동산 가치만 오르면 억압적 통치가 정당화되는 사회—그것은 과연 “안정”인가, 아니면 “통제된 디스토피아”인가? 야빈은 이에 대해 분명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실제로 그런 체제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현실성의 문제도 크다. 선거·의회·헌법·대학·언론 같은 제도를 한꺼번에 폐지하는 체제 재편이 과연 피를 흘리지 않고 가능한가? 야빈은 “제도적 재부팅”을 이상으로 제시하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새로운 통치자가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결국 아무리 정교한 제도 설계를 해도 정치에는 “인간의 감정과 권력욕”이 작용한다. 기업 경영과 국가 통치를 동일하게 볼 수 있다는 전제가 가장 위험한 지점이라는 비판도 있다.
마지막으로, 야빈에 대한 비판 중에는 그의 인터넷적 레토릭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레드 필, 대성당, 패치워크, 주식회사적인 국가 등은 모두 그럴듯하지만 추상적인 메타포이며, “철학적 깊이보다 인터넷 밈적 즉효성을 우선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보수 지식인 중에서도 “그는 진지한 왕당파가 아니라, 단지 반체제적 취향에 빠진 마니아에 불과하다”고 거리를 두는 이들이 많고, 반대로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야빈은 인종이나 국민성에 관심이 없는 냉혈한 엘리트주의자”라며 그를 비판한다.
결국 그의 사상은 좌우 어디에서도 완전히 수용되지 않는, 정치적 스펙트럼 전체로부터 이질적인 ‘이물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결론: 남겨진 영향과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들
커티스 야빈의 사상적 여정은, 무명의 블로거에서 대안우파의 “흑막”으로 변모해 온 하나의 궤적이며, 동시에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다. 한때 변두리에 머물던 사상이라도, 역사적 전환점과 적절한 조건이 맞아떨어질 경우 주류에 근접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야빈(몰드버그)은 약 20년 동안 자유민주주의의 근간 자체를 흔드는 이데올로기를 구축해 왔다. 그가 제시한 신관방주의, 형식주의, 대성당 비판 등의 개념은 일부 기술관료, 보수 지식인, 반체제적 엘리트들에게 현 체제에 대한 깊은 불만과 회의를 이론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야빈의 저작을 읽는 창업가나 정치인들은 더 이상 비밀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부통령이 된 정치인이 그의 제안을 정책에 반영하고, 유명 투자자들이 그의 이론을 찬양한다. 이것은 야빈의 사상이 이미 공상(空想)에서 ‘시행 가능한 제안’의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이 곧 그의 완전한 승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1. 가장 큰 미해결 문제: 그의 ‘신체제’는 실현 가능한가?
야빈이 구상하는 체제 전환은 기본적으로 “국가 운영 소프트웨어를 재부팅한다”는 발상으로 요약된다. 이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 관료제의 해체
· 의회·사법부의 무력화
· 대학·언론의 폐지 혹은 전면적 재편
· 국가를 ‘주식회사 모델’로 재통치
문제는 이러한 급진적 구조개편이 실제 사회에서 비폭력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야빈 본인은 “폭력 없는 이행”을 이상으로 내세우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즉 국민과 엘리트층의 깊은 자각적 협조—은 현실적으로 극히 얻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설령 체제 전환이 이루어진다 해도, 새로운 정권이 과거의 전제정치와 같은 폭주를 일으키지 않을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야빈은 “주주 구조·수익 동기·인재 이동성” 등을 근거로 기존 독재보다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수많은 독재가 “안정”과 “효율”을 내세우며 권력을 집중시킨 끝에, 자유와 인권을 억압했던 사례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즉, 그의 구상은 “제도적으로는 아름답지만, 도덕적으로는 위험한 모델”
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2. 야빈 사상의 핵심 역설: 대중을 경멸하지만, 대중의 묵인이 필요하다
야빈은 철저하게 엘리트 중심주의를 지향하며, 대중의 의지나 동의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어떤 체제든 국민적 정당성 없이 장기 안정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그의 이론은 구조적으로 “대중 부재의 정치 설계”라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3.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영향력
비판이 아무리 많아도, 그의 체제 비판이 남긴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 “대성당”이라는 비유는 기존 지식계층과 문화 권위에 대한 체계적 회의를 확산시켰고,
· “CEO에 의한 국가”는 강력한 집행권을 지닌 지도자에 대한 대중적 선망을 정당화했으며,
· “형식주의”는 정치 권력을 이상이 아니라 현실의 권력 분포로부터 다시 구성하는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이 영향은, 야빈이 원하든 원치 않든, 보수 진영 전반에 점점 깊게 스며들고 있다.
4. 야빈의 진정한 유산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의 유산은 “체제 파괴자”가 아니라 “체제 회의론을 언어화한 자”로 남을 것이다. 그는 미국의 건국 원리 자체에 근본적 질문을 던졌고,
보수·리버럴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원초적 물음을 제기했다.
·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 현재의 제도는 여전히 유효한가?
사상사적으로 보면, 야빈은 19세기 토머스 칼라일, 오스발트 슈펭글러와 같은, 몰락하는 질서를 애도하며 동시에 대체안을 제시하는 ‘황혼의 예언자’에 가깝다.
그의 이론은 동의를 얻기엔 너무 급진적이고, 실행되기엔 지나치게 불안정하다. 그러나 세계가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 야빈 같은 인물이 “왜 그것이 당연한가?”라고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사상적 가치는 충분하다.
- 마지막 질문
미래에 이 질문이 다시 의미를 갖게 될까? 아니면 그의 이론은 이단적 판타지로 잊혀질까?
어느 쪽이든, 야빈의 그림자는 이미 테크 기업의 회의실에서부터 정치의 핵심부까지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먹구름이 될지, 혹은 새벽의 짙은 안개가 될지는 이제 우리 스스로 던져야 할 다음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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