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계몽 일어 번역가의 닉 랜드·가속주의 해설(1)
암흑계몽 일어 번역가의 닉 랜드·가속주의 해설
https://note.com/imuziagane/n/n8ace6af18729?magazine_key=mbd28cf65025b
- 인물 소개 -
히데시스(ひでシス): IT × 가족제도 붕괴로 한몫 챙기려는 서버 엔지니어
키자와 사토시(木澤佐登志): 『닉 랜드와 신반동주의(ニック・ランドと新反動主義)』의 인세로 큰돈을 벌어보려는 저자
에나가 이즈미(江永泉): 복권 당첨으로 한 번 크게 벌어봤으면 하는 소비자
[...]
■ 닉 랜드와 신반동주의 제1장
1. 피터 틸
· 피터 틸이란 누구인가
· 르네 지라르로부터 가르침을 받다
· 학내 분쟁에 개입하다
· 주권적 개인, 그리고 페이팔 창업으로
· 니체주의와 틸
· 암호화폐와 사이버펑크
· ‘이탈(Exit)’의 프로그램
· ‘공포(Horror)’에 맞서다
· 계몽이라는 기만, 그리고 9·11
■ 돌연변이의 천사
【히데】
피터 틸과 닉 랜드 두 사람은 ‘Exit(이탈)’하는 방식, 즉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지가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피터 틸은 자존심 높은 스타일의 초(超) 엘리트 게이오대생 버전 같고, 닉 랜드는 교토대 학생 같은 느낌이랄까… 니트 같은 분위기요.
【키자와】
닉 랜드는 그래도 전직 교수이고, 피터 틸은 창업가이니까요. 그런 자질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에나가】
트랜스휴머니즘을 바라보는 방식도 서로 다른 듯합니다. 피터 틸은 “나는 보통 인간을 초월해 나가겠다”라는 느낌인데, 닉 랜드는 “어딘가에서 인간을 넘어선 보통이 아닌 존재가 도래한다”라는 느낌이죠. 그런 의미에서 닉 랜드에게는, ‘초인’이 꼭 자기 자신일 필요는 없다는 식의 쿨한 단념이 느껴져요.
【키자와】
메시아 도래에 대한 열망이라고 할까요, 약간 발터 벤야민스러운 느낌도 있지요.
【에나가】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언급된, 클레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1920)가 떠올랐습니다. 역사의 천사는 ‘진보’라는 폭풍에 떠밀리면서도 얼굴은 뒤를 향한 채, 뒤에 남겨지는 파괴와 잔해의 흔적을 계속 응시하고 있는 존재죠.
【키자와】
닉 랜드의 관점에서는, 그 ‘역사의 천사’가 일종의 돌연변이, 『암흑계몽주의』에서 말한 ‘괴물’ 같은 것으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굴 전체가 촉수로 변한 인간 같은…
【히데】
그러니까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에 나오는, 불모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미나 젖가슴 같은 형태로 변형된 인간 같은 느낌이겠네요.
【에나가】
복수심이나 향수(鄕愁)를 싹 빼버린 쟈미라(ジャミラ, 울트라맨에 등장하는 캐릭터) 같은 느낌일까요.
■ ‘미국’이라는 것
【에나가】
앨런 블룸의 『미국적 정신의 종언』(1987)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피터 틸이 참여했다고 하는 스탠퍼드 대학의 학생운동을 보면, 확실히 ‘미국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이 고조되던 맥락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히데】
미국이라는 나라가 겨우 몇백 년밖에 안 되는 역사밖에 없는데, 무슨 전통주의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만… 뭐, 건국의 경위를 놓고 보면 ‘미국다움’ 같은 건 있긴 하지요.
【에나가】
막말로 말하자면, “신대륙”을 “발견”하고 “아무도 없는 땅을 개척했다”는 신화를 가진 국가니까요.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에 원래 있던 이웃이 있고, 국가의 외형을 다시 정비했다… 같은 감각은 약할 법합니다. 그래서 국가라는 것을, 기성 권위나 권력관계를 공식화한 실체라기보다는, 계약에서 출발한 커뮤니티, 즉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게임 세계처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롤스의 사유 실험은, 마치 이제부터 모두가 참여할 게임의 규칙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물론 이런 관점을 뒤흔드는, 자크 데리다의 미국 독립선언 비평 같은 논의도 있습니다만.
【히데】
유럽 대륙에도 프랑스 혁명 같은 큰 사건이 있습니다만, 미국에는 유럽 대륙처럼 오랜 역사에서 축적된 깊은 원한 같은 건 느껴지지 않지요.
【에나가】
다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선주민’이나 ‘노예’로 규정된 사람들에 대한 약탈과 착취를 도외시하면 그런 것일 뿐이겠지요. 문득 떠올랐는데, NOI(Nation of Islam: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속해 있던 시기의 말콤 X는, “백인”으로 구성된 사회로서의 미합중국으로부터 Exit(이탈)을 주장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후 말콤 X는 NOI를 탈퇴하게 됩니다만.)
■ 『반지의 제왕』의 영향, X세대
【키자와】
피터 틸에게 있어 『반지의 제왕』의 영향은 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피터 틸이 세운 데이터 분석 회사 팔란티어(Palantir)의 이름도 『반지의 제왕』에서 따온 것이고요.
그리고 60~70년대 컴퓨터사 관련 책들을 읽어보면 『반지의 제왕』이 꽤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PC 창세 제3의 신화』라는 책에는, SAIL(스탠퍼드 인공지능연구소)의 초창기 프린터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알파벳 글꼴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엘프어(Elvish languages)였다는 이야기, 또 SAIL에서는 각 사무실에 『반지의 제왕』 지하세계의 지명을 붙였는데, 이를 표시한 상세한 지도를 본부에 제출했더니 반려되었다는 일화 같은 것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이버 공간과 그에 수반하는 사상·문화가 탄생하게 되는 60~70년대 실리콘밸리의 긱 문화(Geek Culture)를 생각할 때, 『반지의 제왕』의 영향력과 중요성은 어쩌면 『스타워즈』를 능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 문화에 “아더킨(Otherki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북미판 중2병 문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쉽게 말해 자신을 엘프나 판타지 속 존재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가리킵니다. 이 문화는 사상적으로도 상당히 세련되어 있어서, 1995년에는 USENET에 “엘프 국가 선언(Elfkind Declaration)”이라는 기념비적 성명이 게시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반문화(反文化)나 정체성 정치와 연결될 가능성까지 품고 있었죠.
아래 링크(원문 기준)를 참고해 보시면 대략적 분위기를 잡을 수 있을 텐데, 이 운동의 기원 가운데에는 당연히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에나가】
(자칭) 이종족 아더킨 분들은 자연권 같은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실까요?
스스로의 기본적 엘프 권리 같은 것이 인정받고 있는지, 그런 점을 신경 쓰시는 걸까요?
일본에서는 80년대에 이른바 전사 증후군(戦士症候群)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오컬트 잡지 『무(ムー)』의 독자 투고란 같은 데서 “저는 지구 인류로 환생한 이세계의 전사이며, 전생의 동료를 찾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의 투고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히와타리 사키(日渡早紀)의 『나의 지구를 지켜줘(ぼくの地球をまもって)』나 타케우치 나오코(武内 直子)의 『세일러문』(80~90년대)을 거쳐 프리큐어 같은 작품으로 이어지는 계보에 속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60년대 미시마 유키오의 『아름다운 별(美しい星)』이나 우주우호협회(宇宙友好協会)의 “링고를 보내라, C(リンゴ送れ、C)”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흐름이기도 하겠지요.
미국에서는, 월터 벤 마이클스(Walter Benn Michaels)의 『기호의 형태(The Shape of the Signifier)』 3장에서 퇴행 최면을 통해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초고대 문명이나 외계인과 연관 있다고 믿는)라는 확신을 갖게 된 사람들의 저작이 정체성 정치의 맥락에서 논의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입니다만).
【키자와】
피터 틸 같은 사람들은 세대로 따지면 X세대(1965~1980년생)이죠. 윗세대—즉 부모나 상사가 히피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발로 히피를 싫어하고, 대신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에 몰입한 세대라고, 우선은 그렇게 말해둘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조금 어긋나기는 하지만, 신인류(新人類), 시라케 세대(白け世代), 그리고 오타쿠 1~3세대가 X세대의 일부에 포함되지요. 연령대로는 틸과 10살 정도 차이가 나지만, 신인류에는 예컨대 아사다 아키라(浅田彰)가 있고요. 오타쿠 세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틸은 1967년생이니 만약 그가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퍼스트 건담(1979년 방영)의 세례를 받고 하드코어 건담덕후(ガノタ)으로 성장했을 가능성도…
또 일본 80년대의 『무(ムー)』 문화권의 전사 증후군이, 미국의 아더킨처럼 ‘독립선언’적 반문화로 향하는 의지는 부족했으면서도, 그 대신 옴진리교와 같은 전혀 다른 방향의 반문화를 배태해 갔다는 점의 의미도 더 생각해볼 만하다고 봅니다.
【히데】
피터 틸과 동세대라고 하면, 그 밖에 오루 한신(オール阪神)이나 손 마사요시 같은 분들이 있겠네요. 손 마사요시와 동갑이라는 건 놀랍습니다. 꽤 나이가 많은 편이군요.
【에나가】
이 『코드 기아스』의 를르슈 람페르지 같은 표지 사진 (토마스 라폴트 『피터 틸: 세계를 손에 넣은 “반역의 기업가”의 야망』, 아카사카 모모코 역, 아스카신샤 2018)을 보면, 더 신진기예하고 젊은 인물일 줄 알게 되지 않습니까.
■ 프랑크푸르트학파, 군산복합체
【키자와】
팔란티어의 CEO가 하버마스의 제자라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계보가 이런 곳에서 이어지고 있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피터 틸 본인도 르네 지라르의 제자이고, 주변에 철학 배경을 가진 사람이 꽤 많더군요.
【에나가】
알렉스 카프(Alex Karp) 이야기 말씀이시죠? (『“반역의 기업가”의 야망』 87~90쪽) 틸과 정치적 의견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다만 하버마스도 90년대 말 코소보 분쟁 당시에는 NATO의 공습을 지지했기 때문에 (수전 손택(Susan Sontag) 등도 지지), 그리 철저한 평화주의자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틸은 군수 산업과 관련이 있나요?
【키자와】
팔란티어는 분위기 자체가 군산복합체적이고, 최근에는 오큘러스 창업자인 팔머 럭키(Palmer Luckey)가 틸과 손잡고 VR·AR 기술을 이용해 멕시코 국경을 감시하는 프로젝트를 출범시키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실리콘밸리가 군산복합체의 성지였고, 그곳에서 인터넷이 탄생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는 이번 오큘러스 프로젝트도 어쩌면 오히려 원점 회귀에 가깝다 싶습니다.
■ 닉 랜드와 신반동주의 제2장
2. 암흑계몽주의
· 자유지상주의란 무엇인가
· ‘자유’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 커티스 야빈의 사상과 대칭적 주권
· 신관방학(新官房学)
· 반(反)근대주의와 그 모순
· 인종 문제에서 ‘생명공학의 지평’으로
■ 자연주의적 인권론
【에나가】
닉 랜드의 가속주의와 자유지상주의의 입장이 어느 정도까지 양립 가능한지가 궁금합니다.
【키자와】
자유지상주의의 밑바탕에 있는 존 로크식 자연권은 일종의 보편주의라서, 그 지점에서 닉 랜드와는 갈라질 것 같습니다. 자연권 이야기로 말하자면, 기본적 인권을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이론적 토대를 세우려하는 의욕적(?) 저작, 나이토 아츠시(内藤 淳)의 『자연주의의 인권론 ―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규범(自然主義の人権論―人間の本性に基づく規範)』을 최근에 읽었습니다.
【에나가】
게이소쇼보(勁草書房)에서 나온 책이군요. 책 소개를 훑어보았는데
“번식 자원의 획득 기회의 배분이라는 원리로서 인권을 위치짓는다”라는, 만만치 않은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키자와】
그래서 혹시 이른바 ‘모태솔로 남성’에게 ‘복지’라며 성노예를 1명씩 배당하자, 같은 그로테스크한 주장이 나오는 건가 기대(…?)하기도 했는데,
내용은 의외로 무난했습니다. 결국 핵심은 존 로크식 ‘자연권’을 어떻게 보편적 가치 아래에서 정당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에요.
자연권이나 인권의 기초를 잡아 정하는 것은 꽤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컨대 존 로크라면 그것을 “신이 부여했다” 정도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죠. 즉 인권을 초월론적으로 기초를 잡으려 하면 필연적으로 난제(Aporia, 아포리아 )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문제를 진화생물학을 끌어와 억지로 해소하려 한다는 점이 『자연주의의 인권론』의 혁신적인 부분입니다.
하지만 인권을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기반해 정당화하려 하면, ‘사실(~이다)’에서 ‘규범(~해야 한다)’을 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소위 ‘자연주의적 오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기묘한 레토릭을 구사해 이 난제를 넘어서려 하죠. 그것이 바로 ‘목적 달성을 위한 합리적 수단’으로서 ‘…해야 한다’라는 규범 명제를 도출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운전면허는 없지만 운전을 하고 싶은 여성”의 사례를 듭니다. 이때 시간이 있고, 돈이 있고, 운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면
“운전학원에 다녀야 한다”라는 명제가 도출됩니다. 즉 “운전면허를 딸 시간과 돈이 있다”라는 사실에서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규범이 나왔다는 것이죠.
그러나 읽다 보면, 이것이 정말 규범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규범이라기보다 권고·추천 수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복잡한 논리는 생략하지만, 저자는 이 ‘목적 달성을 위한 합리적 수단’이라는 구조를 진화생물학의 ‘인간은 번식(생존과 번식, 그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하게끔 살아간다’는 보편적 요소와 연결하여, 보편적 인권을 규범으로서 기초지으려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인간은 번식을 향해 산다”라는 테제는
경험적 사실과 꽤 동떨어져 있습니다. 기시다 슈(岸田秀)가 오래전부터 말했듯, “인간은 본능이 망가진 동물”이기 때문에 이 논리는 인간보다는 다른 동물들에 더 잘 들어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권’은 도대체 무엇인가, 애초에 ‘인간’이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기본적 ‘물개 권리’도, ‘너구리 권리’도 아니고 왜 하필 ‘기본적 인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이런 종류의 논의에는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이 제기한 ‘벌거벗은 삶’이 그대로 정치적 규범과 접속되는 위험한 지점이 어쩔 수 없이 동반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 ‘생명정치(biopolitics)’의 가장 위험하고 피할 수 없는 부분을 정면으로 가리키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에나가】
정말로 만만치 않은 논의를 다루는 책이군요. 그리고 닉 랜드의 가속주의가 자유지상주의 관점에서 보아도 서로 양립하기 어렵게 보이는 부분으로는
자기 소유권(self-ownership)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4년 논고 「Teleoplexy : 가속에 관한 노트」 (『#Accelerate: The Accelerationist Reader』 수록)에서 랜드는 소유권이라는 개념 자체에 결함이 있으며, 재산이라는 개념도 신뢰할 만한 철학적 기초를 가진 적이 없다고 비판합니다 (섹션 17 참조). 결국 그런 개념들이 가속을 방해한다고 보는 것이겠지요.
■ 사이버네틱스, 사이버신 계획,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탄생, 80년대의 카라타니 코진(柄谷行人)
【에나가】
소련 붕괴 이후, 어렴풋하게나마 계속 “자본주의만이 남았다”라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인상이 있는데,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이야기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걸까요?
【히데】
“자본주의의 승리!”와 “자본주의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절망은 다르지 않을까요?
【에나가】
어느 시점부터인가 꿈을 더 이상 꾸지 못하게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키자와】
적어도 1970년대 정도까지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른 비전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열쇠였던 것이, 가속주의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그리고 피드백(feedback)이라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면 이 방의 에어컨처럼, 피드백 루프를 통해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통제하는 네거티브 피드백이 대표적이지요.
사실 이 피드백이라는 개념을 이용하면 사회‧경제도 관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발상이 과거에는 존재했습니다.
예컨대 제가 오늘 가져온 이 이와나미 신서 『컴퓨터와 사회주의』는 원저가 1974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출판 조직에서 나온 책입니다. 저자 글루쉬코프(Viktor Glushkov라는 러시아의 사이버네틱스 연구자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인데, 그 안에서는 사이버네틱스 기술이 소련의 계획경제를 원활하게 통제·관리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주장이 공산주의자의 관점에서 펼쳐집니다.
강조되는 것은 경제 관리의 전산화의 필요성입니다. 글루쉬코프는 이후 인공지능 연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그것 역시 상징적인 흐름이지요.
인공지능의 통제로 이루어지는 완벽한 계획경제—어쩌면 이것이 현대의 좌파 가속주의(left accelerationism)가 바라는 궁극적 비전일지도 모릅니다.
여담이지만 이 글루쉬코프의 사이버네틱스 계획경제권의 아이디어는 1970년대 칠레에서 거의 실현될 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이버신(Cybersyn) 계획입니다.
좌파였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정권 시기인 1971~1973년,
계획경제를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 컨트롤 센터의 컴퓨터와 칠레 각지의 공장을 텔렉스(Telex)로 연결하고,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여 각 공장에 피드백을 보내는 구상이 추진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인터넷”이라고도 불린 이 계획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왜인가? 미국 정부를 뒷배로 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1973년 칠레 쿠데타 발발—피노체트는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좌파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처형하고 불태웁니다. 물론 컨트롤 센터의 컴퓨터도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이 사이버신 계획의 말로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사이버네틱스의 슈퍼컴퓨터가 아니라,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이끄는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였습니다. 이들은 칠레를 신자유주의 경제의 실험장으로 삼았고,
그 성과는 이후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의 경제정책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이때, 이곳에서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좌파 가속주의의 꿈이 무너진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해상 도시 계획을 제창하며 틸에게도 투자를 받았고 『암흑계몽주의』에서도 인용된 “이탈은 자유지상주의자에게 유일한 인권이다”라는 발언으로 유명한 패트리 프리드먼(Patri Friedman)은 밀턴 프리드먼의 손자입니다.
이제 닉 랜드(Nick Land)와 우파 가속주의입니다.
아까 사이버네틱스에서는 네거티브 피드백을 지향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닉 랜드는 그와 반대로 포지티브 피드백을 중시합니다. 안정이나 통제와 정반대, 혼돈이 계속 증폭되는 과정 말이지요.
굳이 에어컨 비유를 계속하자면, 차가워질수록 더 강한 냉풍을 내뿜고, 결국 자신의 냉기 때문에 자폭하는 미친 에어컨입니다.
마르크스(Karl Marx)는 경제에서 이런 사태를 “공황(恐慌)”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랜드의 “포지티브 피드백을 통해 <외부>에 접근한다”는 사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마르크스를 계승했다고도 볼 수 있고, 1980년대 고도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논하던 시기의 카라타니 코진(柄谷行人)과도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시기의 카라타니는 점성술 같은 오컬트·신비주의에도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나카자와 신이치(中沢新一)와의 대담에서 “컴퓨터와 사후세계가 어쩌고…”라고 하던 그 시기죠.
【히데】
인간의 본성과 자본주의를 연결해 논의하다가 오컬트로 가버리는 흐름이 『팬티를 입은 원숭이(パンツをはいたサル)』의 쿠리모토 신이치로(栗本慎一郎)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에나가】
그렇게 생각하면 『헌법의 무의식(憲法の無意識)』(2016, 이와나미 신서) 같은 저작도 카라타니 고진을 오컬티스트 혹은 영성주의자로 읽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외부’에 대한 기대라는 점에서는 확실히 카라타니와 닉 랜드가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요.
【히데】
마르크스도 쿠리모토도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도, 기본적으로 “외부” 이야기를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에나가】
쿠리모토 신이치로는 다만 예전부터 태양흑점 변동과 경기순환의 관련성 같은, ‘태양흑점설(sunspot theory)’을 말하곤 했지요. 물론 이것은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W. C. 제본즈(William Stanley Jevons)등이 논한 것으로 경제학사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외부를 지향하는 신비주의에도 다양한 전통—예를 들어 그노시스(Gnosis)같은 것들이 있는데, 왜 카라타니는 굳이 “사후세계의 컴퓨터” 같은 이야기로 갔던 걸까요?
【키자와】
1980년대는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스러운 “지구촌” 비전을 실현한다는, 뉴에이지(New Age)를 잇는 사이버스페이스 사상이 미국에서 등장한 시기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더글러스 홉스태터(Douglas Hofstadter)의 『괴델, 에셔, 바흐』 같은 컴퓨터 과학과 괴델의 상성(相性)을 논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요.
카라타니의 경우도 형식화(formalization)의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과정에서
결국 그런 영역에 도달한 케이스라고 봅니다.
카라타니가 나카자와 신이치와 대담을 한 1983년은 그에게 이른바 “위기”의 시기에 해당합니다. 『언어·수·화폐』 연재가 미완으로 끝나고 『탐구』로의 “전환”이 일어나던 과도기였죠.
이 시기는 타키 코지(多木浩二)와도 대담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가라타니는 “요즘 좀 빠져 있는 건, 저쪽 세계… 영계(霊界)의 구조입니다. 위상구조로 보면 존재해버려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제가 미쳤다고 하네요(웃음).” 라고 말합니다. 실제로는 웃을 일이 아니라, 정말로 정신적으로 위기에 있던 것이지요.
또 그는 “윤회는 적극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지만, 위상수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영계 같은 것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1년 뒤인 1984년, 『탐구』 연재가 시작된 시점의 무라카미 류(村上龍)·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와의 삼자 대담에서는
입장이 완전히 바뀌어 “신비주의에는 인간 지배의 추악한 동기가 느껴진다.”라며, “내가 신비주의에 가까워졌던 상태는, 정말로 멍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서 약점이 파고들어오는 것이었다.” 라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발언을 합니다.
카라타니는 1983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미국 콜롬비아 대학 동아시아학과에 연구원으로 체류했는데, 그 시기에 정신분석을 받기도 했습니다.
즉, 카라타니의 “위기”는 말 그대로 정신적‧개인적 위기이기도 했던 셈이지요.
마치 1990년대 닉 랜드가 암페타민 중독에 빠졌던 것처럼, 형식화라는 ‘내부’의 감옥 속으로 극도로 파고들어 그 반동으로 ‘외부’로 탈출하려는 시도는 대개 절망적인 비장함을 동반하곤 합니다.
【에나가】
뭐랄까… 수상쩍음과 통속성이 뒤섞인 그 이상한 느낌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이네요.
■ 사회주의와 테크놀로지
【에나가】
좌파 가속주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났는데, “테크놀로지로 사회주의를?”이라는 블로그 글을 읽었습니다. 다른 글들도 포함해서, 이 블로그 『Follow the accident, Fear the set plan』은 정말 재미있더군요.
【히데】
사회주의와 테크놀로지의 친화성은 꽤 자주 언급되지 않나요? “소련은 당시 기술 수준 때문에 실패했을 뿐이고, AI가 발명된 현대라면 사회주의를 더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요. 저는 사회주의는 결국 인간의 욕망을 구동시키지 못하면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히데】
저는 인간의 욕망 자체가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보고, 그 점을 지적한
쿠리모토 신이치로는 좋아했습니다.
【키자와】
그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무슨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걸까요?
【히데】
마르크스는 혁신의 원천은 ‘특수잉여가치’라고 했죠. 그 양 같은 걸까요?
【키자와】
그건… 수요 같은 게 아닐까요?
【히데】
수요를 언급하면 지는 겁니다. 수요라는 수치는 시장이 균형 상태에 놓인 이후에야 나타나는 값이라서, 결국 결과론일 뿐이거든요. 혁신은 시장 역학 속에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혁신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욕망은 시장 균형에서 벗어난 ‘괴리의 크기’로밖에 측정할 수 없습니다.
【에나가】
『닉 랜드와 신반동주의』 74쪽에 소개된 커티스 야빈의 사고실험, 즉 이상적인 통치자인 외계인 프나르글(역주: Fnargl. 커티스 야빈이 현대 국가의 주권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가상의 통치자 모델. 프나르글은 무적이며 손가락을 튕기면 누구든지 죽일 수 있으며 다른 목적 없이 금화만을 수집하고 인간 사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외계에서 온 통치자이다. 즉 야빈은 프나르글을 통해 주권은 다른 모든 권리 위에 있는 1차 재산권이며 주권이 개인화되고 소유화된 시스템은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고 민주주의적 혼란보다 절대적·단일한 소유권이 더 효율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야기, 흥미롭더군요. 그런데 인간이 프나르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키자와】
피터 틸(Peter Thiel)은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르죠. 젊은이의 피를 수혈해서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든가 말입니다.
【에나가】
하지만 야빈이 “전제군주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며 스티브 잡스(Steve Jobs)나 일론 머스크(Elon Musk)를 예로 들었다고 적혀 있던 건… 개인적으로 좀 허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히데】
거대 서사가 사라지고 난 이후, 창업가들 중에 스스로 서사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등장했잖아요. 그런 사람을 그냥 채워 넣은 것뿐 아닌가요?
【에나가】
토론을 하고 있는데, 지금 성공하고 있는 사람들밖에 예시로 들 수 없다는 건, 역시 좀 빈약하죠.
【히데】
(웃음)
【에나가】
…라고 말한 악담이 결국 제게 돌아올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야빈은 책 같은 걸 내지 않았나요?
【키자와】
자신의 블로그 글을 묶은 전자책(e-book)은 냈습니다. 블로그 자체가 양이 방대해서 다 읽기 어려울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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