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방영토 문제 관련 뉴스 모음

https://news.yahoo.co.jp/articles/2448b4324cc4d854bfffa88dea0c95a2b739bc8b


"일본은 자원이 목적" 북방영토 문제에 대한 푸틴(プーチン) 최측근의 발언


9/2(화) 19:58 보도


러시아의 파트루셰프(パトルシェフ) 대통령보좌관은 2일 공개된 주간지 『논거와 사실(論拠と事実)』(전자판) 인터뷰에서 북방영토 문제에 대해 "일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원"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요구는 광물이나 수산자원 등 "순수하게 상업적 이익에 기반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파트루셰프(パトルシェフ)씨는 푸틴(プーチン)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2024년에 안전보장회의 서기를 퇴임한 후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3일에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승리와 제2차 대전 종결의 날'을 맞기 전에 일본을 견제한 것이다. 러시아는 22년 우크라이나(ウクライナ) 침공 개시 후 일러 평화조약 체결 교섭을 중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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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yahoo.co.jp/articles/f41d29f5217ff3f9d5871822730edbd7f41a4d47


러시아·푸틴(プーチン) 대통령, '역사문제로 일본 지명 비난' 보도에 네티즌 맹반발 "왜곡하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이야!!" "니가 할 소리야"


8/30(토) 19:36 보도


러시아의 푸틴(プーチン) 대통령이 제2차 대전과 관련된 역사문제에서 "왜곡할 음모를 비난한다"며 일본을 지명해서 비난했다고 교도통신(共同通信)이 30일 보도했다. 이를 받아 네트상에서는 "왜곡하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이야!!" "응, 니가 할 소리야?"(너가 그런 소리를 한다고?) 등 반발하는 목소리가 쇄도했다.


교도통신(共同通信)에 따르면 푸틴(プーチン)씨는 중국 국영통신 신화사(新華社)의 서면 인터뷰에 응해 제2차 대전 하에서 소련군과 중국이 연계해서 일본과 대치했다고 한 뒤 "제2차 대전의 역사를 왜곡할 음모를 단호히 비난한다"고 표명했다. 일본을 지명하며 역사문제에서도 중국과 공투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한다. 푸틴(プーチン)씨는 9월 3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80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


이 보도를 받아 X(구 트위터)에서는 "중국과 공투" "일본 지명" 등의 관련 단어가 트렌드에 올랐다. 소련은 종전 직전인 8월 8일 일소중립조약을 파기하고 일본에 선전포고하며 만주나 한반도 북부를 제압했다. 전후 시베리아 억류나 미해결인 북방영토 문제도 있어서 "일소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종전의 혼란 틈에 일본에 쳐들어가서 전승국?" "항복한 8월 15일 이후 국경을 넘어 밀려들어와 전쟁범죄를 저지른 소련의 행위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부당하게 북방영토를 점거하고 비난할 자격 없음" "조약을 깨고 일본에 쳐들어가서 시베리아 억류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옐친(エリツィン) 대통령은 사과했지만" 등 반발하는 글들이 넘쳐났다.


우크라이나(ウクライナ)에 대한 침공으로부터 3년 반, 화평의 움직임이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현황도 염두에 두고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외로운 건가. 우크라이나(ウクライナ)와 전쟁을 시작한 인간에게 듣고 싶지 않다" "현재진행형으로 우크라이나(ウクライナ) 침략이라는 전쟁을 하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녀석은..." 같은 의견도 있었다.


주니치 스포츠(中日スポー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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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yahoo.co.jp/articles/678f7c3e471908de9d5f7a682d34c1f754ea1062


전후 80년인 올해는 북방영토 점령 80년 도야마시(富山市)에서 반환 요구하는 대회 향후 기운 조성을 다짐


8/30(토) 18:25 보도


전후 80년인 올해는 북방영토가 점령된 지 80년이 되는 절목의 해이기도 합니다.


도야마현(富山県) 도야마시(富山市)에서 북방영토의 반환을 요구하는 대회가 열려 앞으로도 반환운동에 힘을 쏟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945년 종전 후 구소련군이 북방영토를 점령한 이 시기에 맞춰 매년 '북방영토반환요구운동 현민회의(北方領土返還要求運動県民会議)'가 여는 대회, 올해도 원주민 등 관계자 약 200명이 출석했습니다.


그리고 현민회의가 1970년부터 매년 반환운동의 원점인 홋카이도(北海道) 네무로시(根室市)에 현내 중학생을 파견하는 사업에 지난달 참가한 학생이 북방영토 반환에 대한 생각을 호소했습니다.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북방영토에 대해 배운 중학생 야나기하라 료타(柳原梁太)씨


"원주민의 평균연령이 89세를 넘었고, 러시아와의 관계는 이전보다 나쁘다. 북방영토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고, 일본 전체의 영토회복에 대한 여론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현민회의에 따르면 생존하는 현내 원주민은 415명으로 80년 전의 3할 정도가 되었고, 후계자 육성도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회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ウクライナ) 침공 후 스톱되고 있는 교섭이나 교류의 재개를 향해 앞으로도 북방영토의 반환운동에 힘을 쏟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도야마 텔레비전 방송(富山テレビ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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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yahoo.co.jp/articles/29c27e1c24c8965ac08d09ca7f17e0ec3de5e9a7


구소련 억류 희생자를 추도하는 모임, 100세 생환자도 참가 영양실조로 전우 잃어 "죄송하다"


8/23(토) 18:00 보도


구소련에 의한 일본인 억류 경험자나 유족 등 약 180명이 23일, 국립 치도리가후치 묘원(国立千鳥ケ淵墓苑, 도쿄도 치요다구(東京都千代田区))에서 희생자의 '추도모임'(시베리아 억류자 지원센터(シベリア抑留者支援センター) 주최)을 열었다. 올해로 구소련에 의한 대일 참전으로부터 80년. 경험자들은 기억의 계승과 전모 해명을 호소했다.


구소련은 1945(쇼와 20)년 8월, 일소중립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일 참전했다. 민간인 학살이나 현재까지 계속되는 북방영토의 불법점거 등에 더해 56(동 31)년까지 시베리아나 몽골 등에서 일본군 장병들을 억류했다. 일본 정부는 약 57만5천명이 억류되었다고 추계한다. 이 중 최소 6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1945년 8월 23일은 당시 소련 최고지도자 스탈린(スターリン)이 억류 방침을 결정한 날이며, 유족들은 헤이세이(平成) 15년부터 이 날에 맞춰 추도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니시쿠라 마사루(西倉勝)씨(100)는 쇼와 20년 1월에 소집되어 종전 후 3년 가까이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다. 영양실조나 중노동 등으로 많은 전우를 잃었고, 자신도 병을 앓으면서도 귀환했다. 신원불명의 유골이 매장된 납골당 앞에서 "여기에 서면 항상 죄송한 마음으로 가득해진다"며 희생자를 그리워했다. 억류를 둘러싸서는 러시아 정부의 정보공개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지며, 억류자 수나 사망자 수의 전체상은 불명이다. "기본적인 것이 명확하게 되지 않고, 원인이나 책임의 규명도 방치된 채로 있다"면서 조사의 가속 등을 요구했다.


아버지 와시자키 요시오(鷲崎芳雄)씨를 잃은 후쿠오카현(福岡県)의 에조에 요시노리(江副芳徳)씨(81)는 유년기에 행방을 알려고 라디오의 찾는 사람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였다면서 "우리는 평화의 소중함을 후세에 전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도(東京都)의 코지마 유지(小嶋雄二)씨(82)가 아버지 쇼조(昇蔵)씨의 죽음을 정식으로 통지받은 것은 11년 전이다. 어머니는 그 전년에 돌아가셨다. "많은 사람이 8월 23일을 모른다. 소련이 한 일을 일본 국민에게 알리는 날로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우치다 유사쿠(内田優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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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yahoo.co.jp/articles/0cfc84cdfb76ef00b62f63840e9f3e415a56ab32


점령 80년, 돌아오지 않는 북방영토 일러 교섭 중단, 해결 보이지 않아 원주민 평균연령 89세에


8/20(수) 7:09 보도


"고향을 뛰어다니고 싶다" "조상의 묘참을 하고 싶다"—.


홋카이도(北海道)·네무로반도(根室半島) 앞바다에 있는 에토로후섬(択捉島), 쿠나시리섬(国後島), 시코탄섬(色丹島), 하보마이군도(歯舞群島)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의 절실한 소망이다. 소련(현 러시아)이 4개 섬을 점령한 지 80년. 일본 정부는 '고유의 영토'로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교섭은 중단되고 해결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직책은 당시)


일러 간의 국경은 에도시대 후기인 1855년 일러통호조약(日ロ通好条約)으로 에토로후섬(択捉島) 북쪽에 그어져 그 이후 4개 섬은 일본의 영토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1945년 8월 18일, 소련은 쿠릴열도(千島列島)에 대한 공격을 시작해 9월까지 4개 섬을 점령했다. 일본은 반환을 요구하며 영토문제 해결을 포함한 평화조약 체결을 향해 교섭을 계속해왔다.


일본에게 호기가 된 것은 91년 소련 붕괴 시였다. 영토문제에 대한 자세가 연화되어 옐친(エリツィン) 대통령이 방일한 93년 도쿄선언(東京宣言)에서는 북방 4개 섬의 귀속문제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기재되었다. 2001년 일러 정상회담에서는 도쿄선언(東京宣言)에 기반한 해결을 확인했다(이르쿠츠크성명(イルクーツク声明)). 13년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푸틴(プーチン) 대통령과 영토교섭 재개로 합의하고, 18년 회담에서 하보마이(歯舞), 시코탄(色丹)의 '2개 섬 반환'에 의한 결착에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후에도 해결에는 다가서지 못했다.


교섭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ウクライナ) 침공이다. 러시아는 일본의 제재에 반발하여 평화조약 체결 교섭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외상은 이달 8일 기자회견에서 "교섭의 전망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다"고 말한 뒤 "사태의 타개를 향해 끈질기게 교류를 계속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반환을 기다리는 원주민은 줄어들고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종전 시 4개 섬에는 약 1만7000명이 살고 있었지만, 쿠릴하보마이제도거주자연맹(千島歯舞諸島居住者連盟, 쿠릴연맹(千島連盟))에 따르면 원주민은 올해 6월 말 시점에서 4907명까지 감소했다. 평균연령은 89.6세가 되었다. 하보마이군도(歯舞群島) 출신 쓰누가 다이지(角鹿泰司)씨(88)는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80년이나 지났는데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것이 괴롭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실체험을 후세에 전하는 '구연자(語り部)' 활동의 지속도 과제다. 에토로후섬(択捉島) 출신이며 쿠릴연맹(千島連盟) 이사장인 마쓰모토 유조(松本侑三)씨(84)는 "세상의 관심은 확실히 옅어지고 있다. 원주민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맹은 2세, 3세 구연자를 육성하고 있다.


쿠나시리섬(国後島) 출신 부모를 둔 스즈키 히데오(鈴木日出男)씨(73)는 "섬이 잊혀지지 않도록 계몽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0년 이상 부모의 경험을 전해오고 있다. 쓰누가(角鹿)씨는 "목숨이 있는 한 반환운동을 계속한다"고 결의를 보이며 "밝지 않는 밤은 없다. 언젠가 반드시 보답받을 것"이라고 희망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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