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티스 야빈 vs E. 글렌 웨일 토론 요약 정리

영상 링크: https://youtu.be/irc6creOFGs


미국의 CEO 독재자 통치 논쟁: 커티스 야빈 vs E. 글렌 웨일


2025년, 파격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미국이 CEO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어야 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놓고 두 지식인이 격돌한 것이다. 이 논쟁은 단순한 정치 체제 비교를 넘어서,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대안적 통치 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공했다.


논쟁의 배경과 등장인물


이 토론회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시작되었다. 1783년 미국 독립 전쟁 승리 후 조지 워싱턴에게 왕관을 씌우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워싱턴은 "인류가 그 생각에 반발한다"며 거부했다. 제임스 매디슨은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집중하는 것은 폭정의 정의"라고 말하며 권력 분산의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250년이 지난 지금, 한 사상가가 이러한 전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찬성 측에 선 커티스 야빈은 컴퓨터 과학자이자 정치 철학자로, 멘체스 몰드버그라는 가명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실리콘밸리와 정책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일론 머스크가 새로운 정당 창당에 대해 상의했고 현 부통령 JD 밴스도 그를 존경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의 인물이다. 야빈은 미국의 현재 공화제 시스템이 완전히 실패했으며, 독재 형태가 미국 정치 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할 최선의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반대 편에선 E. 글렌 웨일이 나섰다. 그는 플루럴리티 연구소 설립자이자 디지털 민주주의 분야의 선구자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의 플루럴 기술 협력 연구소를 이끌며, 기술이 세계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위한 힘이 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야빈의 CEO 독재론: 효율성과 역사의 논리


야빈은 자신의 제안이 21세기 일반인에게는 기이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오히려 21세기 대중의 사고방식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의 핵심 논리는 단순하다: 어떤 규모의 조직이든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중앙 집중식 구조가 거의 항상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폰을 완벽한 사례로 들었다. 아이폰은 애플과 중국이라는 두 군주제(기업과 국가)가 협력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결코 아이폰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며, 이는 기업의 군주제적 구조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작은 군주제들의 시스템이며, 이들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중국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야빈은 시진핑 주석 하의 중국을 효과적인 군주제로 보며, 뉴욕과 상하이의 치안 상황을 비교하면서 상하이의 현저히 낮은 범죄율을 언급했다. 이는 효과적인 조직 구조의 일반적인 특징이며, 영화 감독이나 레스토랑 셰프의 역할처럼 군주제적 리더십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역사적 관점에서 야빈은 더욱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다. 인류 역사에서 과두제나 집단 의사결정 구조는 매우 드물었으며, 250년 전까지는 군주제가 일반적인 통치 형태였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히틀러나 폭정을 군주제와 동일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의 렌즈로 군주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50년간의 민주주의 시대가 정말로 정부가 잘 작동한 시기였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현대 정부가 과거보다 더 많은 기술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웨일의 민주주의 옹호론: 데이터와 도덕의 결합


웨일은 야빈의 지적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주장이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그는 도덕적 비난보다는 역사적 경험과 실증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반박에 나섰다.


경제학자이자 정치학자로서 웨일이 제시한 데이터는 압도적이었다. 연구 결과들이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평균적으로나 성장 안정성 면에서 일관되게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장기적으로 소득을 20% 증가시키는 인과적 효과가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 세기의 경제적 기적들은 일본, 인도, 에스토니아, 아일랜드, 보츠와나, 모리셔스 등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시스템에서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야빈이 예외 사례로 언급하는 칠레, 중국, 싱가포르조차도 상대적 다원주의 시기나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반박했다. 반면 지난 100년간의 가장 큰 재앙들은 에리트레아, 북한,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철권 독재 하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웨일은 경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광범위한 이점을 강조했다. 인간 수명 연장, 과학 발전, 평화 유지, 안정성 보호, 환경 보호, 사회 불평등 감소 등에서 민주주의가 독재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지난 250년간의 삶의 질 향상과 폭력 감소는 민주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이루어진 유일하고 일관된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권력의 위험성에 대한 그의 경고였다. 웨일은 절대 권력이 절대적으로 부패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역사의 교훈을 강조했다. 일론 머스크를 예로 들며, 그가 절대 권력을 가졌을 때 개인적인 문제, 아마추어리즘, 행정적 혼란에 빠져 "살인적인 광대극"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기업의 성공은 철권 통치가 아니라 다중 이해관계자 피드백, 투명성, 권력 분산에서 온다고 강조했다.


기업 모델 논쟁: 조직의 본질을 둘러싼 공방


두 사람의 가장 치열한 공방은 기업 모델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웨일은 사회가 기업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기업 내 의사결정이 항상 강력한 단일 리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대기업은 경쟁적인 스타트업과 달리 정부와 유사하게 운영되며, 조직이 커지고 권력이 커질수록 민주주의적 견제와 다중 이해관계자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웨일은 사티아 나델라가 CEO가 된 후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한 자신의 경험을 들어, 나델라가 과거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권력 분산과 문화 변화를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나델라의 리더십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치가 20배 증가했다는 사실을 들어, 기업의 성공이 반드시 독재적 리더십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야빈은 이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와 국무부나 에너지부의 업무 방식을 비교하며 정부 조직의 과두제, 절차, 관료주의 수준이 훨씬 높다고 주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을 스타트업과 비교하면 10배의 절차와 관료주의가 있으며, 연방 정부는 그 위에 100배가 더 있다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전기차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터무니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권력의 본질과 시민의 지위


논쟁이 깊어지면서 두 사람은 권력의 본질과 시민의 지위에 대해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냈다. 웨일이 야빈의 계획에서 사람들의 정치적 권력이나 열망이 어떻게 될 것인지 질문하자, 야빈은 놀라운 답변을 내놓았다. 자신의 비전에서 사람들은 현재와 거의 동일한 양의 권력, 즉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권력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야빈은 대규모 이민 정책을 예로 들며, 이 정책이 어떤 나라에서도 인기가 없었지만 완전히 위에서 아래로 추진되었고, 사람들은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에서도 여론은 최종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부의 "신민"이 될 것이며, 이는 수천 년간 알려진 국제법의 원칙이었다고 주장했다.


웨일은 이러한 "신민"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하며, 야빈이 정권에 우려가 되는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했다고 지적했다. 야빈의 글에서 억만장자의 돈은 컴퓨터 어딘가에 있으며, 주권자가 "루트 접근 권한"을 장악하고 우려가 없을 때까지 제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인용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야빈이 정부 지원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가상 사회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독방에 수용하여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이 될 자격이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웨일의 지적이었다. 야빈은 "독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으나, 웨일은 야빈의 글을 직접 인용하여 "보편적 독방 수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을 밝혔다.


언론과 정보 통제


두 사람은 언론과 정보 통제 문제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웨일이 야빈이 현행 미국 법률 시스템을 폐지하고 언론을 폐지하려 한다고 지적하자, 야빈은 기존 언론이 사적 기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 조직의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야빈은 뉴욕 타임즈를 예로 들며, 이 신문이 정부로부터 유출된 정보를 통해 기사를 작성하며, 이는 사실상 정부의 보조금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보조금이 경쟁을 막는다고 지적하며, 이를 "정보부"라고 부른다면 워싱턴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언론을 폐지하는 것이 토론을 폐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웨일은 언론 개혁에 대해 논의할 흥미로운 점이 많지만, 이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며 사람들을 강제 수용소에 넣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력 부패론과 역사적 사례


액튼 경의 유명한 경구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를 둘러싼 논쟁도 흥미로웠다. 야빈은 이를 믿지 않으며, 프리드리히 대왕이나 엘리자베스 1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부분적인 권력이 부패를 초래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야빈의 논리는 이랬다: 조직과 일치하는 실제 최고 경영자는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 많은 권력을 얻기 위해 조직에 해를 끼칠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 이전 시대의 기능하는 국가에서 왕은 국가의 소유자였으며, 국가의 자산(토지와 국민)을 개선하고 번성하게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차이나 주식회사"의 시가총액을 늘리기 위해 국민을 더 교육받고 생산적이며 근면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반면, 미국 지도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웨일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산 가치 극대화에 동기 부여되지만, 이는 거대한 시스템의 작은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일단 매우 강력해지면, 대부분의 부유한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부를 극대화하는 데 보내지 않고 다른 일들을 한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사례로 들어가면서 웨일은 로마 황제의 약 75%가 자연사하지 않았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언급했다. 야빈은 유럽 역사 2,000년 동안 수백 명의 왕들 중에서 웨일이 언급한 사례가 얼마나 있었는지 반문하며, 웨일이 제시하는 나쁜 군주들의 예시는 모두 "민주주의 거품" 안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어 통제와 자유의 역설


야빈은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현재의 과두제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바꾸게 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이다. 그는 웨일에게 "black"이라는 단어를 쓸 때 "B"를 대문자로 쓰는지 질문했다. 야빈은 뉴욕 타임즈가 "B"를 대문자로 쓰라고 지시하는 대신 군주가 그렇게 지시하고 목을 자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빈은 자신이 언어적 유행을 따르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 때문에 처형당하지 않을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웨일은 처형당하지는 않겠지만, 경력이 끝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야빈은 이 과두제의 압력 아래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웨일에게 질문했다.


웨일은 이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바꾼 경험을 예로 들며, 힘들었지만 경력이 끝나거나 직장을 잃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원주의 사회의 장점을 언급하며,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통제하여 사소한 방식으로 그를 거스르면 목을 자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야빈은 이 나라의 자유 수준이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보다 훨씬 낮다고 반박했다.


법치주의와 폭력 감소 논쟁


법치주의에 대한 야빈의 견해는 급진적이었다. "아무도 법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찰스 1세가 법 위에 있지 않다고 인정했을 때 참수당했다고 언급했다. 앵글로-아메리카 법학 이전에는 영국 역사에서 "왕실 특권"이 있었으며, 이는 칼 슈미트가 "예외"라고 불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빈의 논리는 이랬다: 왕이 법 위에 있지 않다면 법이 왕 위에 있는 것이고, 법은 통치할 수 없으며, 사람이 통치한다. 법이 왕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판사들이 왕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이는 고전 정치학에서 "imperium in imperio"(국가 안의 국가)라고 불리는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웨일은 야빈이 "불안정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신은 "견제와 균형" 또는 "적응성"이라고 부른다고 반박했다. 야빈의 가설(절대 독재가 폭력을 없앤다)은 역사적으로 시도되었지만, 19세기 메테르니히 시대 이후 사망자 수가 대폭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야빈은 20세기의 사망자와 폭력이 역사상 가장 높았다고 반박했다. 기술이 더 많은 학살을 가능하게 했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20세기에는 18세기 내각 전쟁보다 훨씬 더 많은 폭력적인 죽음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청중의 질문들과 현실적 사례들


토론이 진행되면서 청중들의 질문은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례들로 이어졌다.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기능적으로 군주제로 전환하면서 삶의 질이 상당히 향상된 사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웨일은 부켈레 대통령이 엘살바도르의 폭력을 극적으로 줄여 국민들에게 큰 이득이 되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미국 정보기관이 부켈레가 갱단과 거래를 했다고 믿는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어 상황이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부켈레는 야빈이 옹호하는 철권 독재자와는 거리가 멀며, 일시적으로 독재자를 통해 상황이 개선된 국가의 사례가 있지만 매우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 총체적인 재앙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야빈은 부켈레가 미국 정부로부터 거의 저항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고 언급했다. 지난 250년간의 군주제 사례들이 대부분 미국과 영국의 적들이었기 때문에, 이들 독재 국가들의 성과가 저조하게 보인다고 주장했다. 르완다의 카가메 대통령도 비슷한 사례로, 르완다 학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미국이 그의 통치를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독재의 규모와 한계


청중 중 한 명이 독재가 작동할 수 있는 규모나 숫자에 대해 질문했다. 은하계 독재자가 10조 명을 통치할 수 있는가 하는 극단적인 질문이었다.


야빈은 계층적 조직이 규모를 확장하는 데 실패하는 수준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일론 머스크의 기업들은 각각 5만~10만 명의 직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를 통치하기에 충분한 숫자라고 주장했다. 인도 라지 시대의 인도 민간 서비스는 수억 명의 사람들을 2,300~3,000명의 영국인으로 통치했으며, 이는 가장 좋은 비율이었다고 언급했다.


웨일은 작은 규모에서는 강력하고 제한적인 리더십을 가진 조직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는 노예제가 되며, 자신은 이를 믿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 사람이 조직 내 누구의 목이든 자를 수 있는 것을 믿지 않지만, 생산 관리 등 제한된 범위 내에서는 절대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야빈이 누가 그 한계를 강제하느냐고 묻자, 웨일은 법이 강제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야빈이 법이 어떻게 작동하느냐고 재차 묻자, 웨일은 사람들이 도덕적 원칙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보통법을 바탕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보통법은 시민법의 반대이며, 배심원들이 말하는 것, 즉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가족과 노예제의 어원


논쟁이 깊어지면서 야빈은 충격적인 언어학적 분석을 제시했다. "가족"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라틴어 "famulus"(노예)에서 왔다고 설명한 것이다. 미성년자를 부모로부터 분리하는 "해방"이라는 단어도 로마법에서 왔으며, 이는 부모와 미성년자의 관계가 문자 그대로 주인과 노예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5세 자녀가 도망가면 도망자 추적대가 찾아내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것처럼, 18세라는 임의적인 나이로 이러한 관계를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웨일이 야빈이 이러한 주장을 할 때 청중의 반응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 질문하자, 야빈은 청중의 반응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정치적 양극화와 전체주의


현재의 자기 분류와 선거구 재조정 패턴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웨일은 현재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에는 무한한 결함이 있으며, 선거구 재조정은 그 중 좁은 한 측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승인 투표나 순위 선택 투표와 같은 훨씬 더 나은 투표 시스템이 많으며, 선거구 재조정은 훨씬 더 작은 단계로 큰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야빈은 사람들이 어차피 잔디밭 표지판을 보고 투표한다고 냉소적으로 답했다. 후보자에 대해 실제로 아는 유일한 선거는 대통령 선거뿐이며, 선거구 획정 방식은 단순히 이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나라에는 합의적이고 협력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이 없으며, "냉전 내전"을 겪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전체주의의 효율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 야빈은 인간에게는 권력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이 있으며, 사람들은 중요하고, 강력하고, 관련성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권력에 대한 욕망이 좋은 정부로 이어진다고 설명하지만, 자신은 이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일종의 석기 시대 과정의 유물이며, 워싱턴과의 관계에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믿게 만드는 "음란한 것들"에 의해 이 갈망이 부추겨진다고 설명했다.


웨일은 권력을 향한 갈망이 가장 큰 파괴와 혼란을 초래한 시기는 수백 년간의 군주제 시대였으며, 이때는 권력 전환을 둘러싼 끊임없는 내전과 싸움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민주주의 하에서는 권력 통제를 둘러싼 시민 폭력 사이의 평균 간격이 10배 더 길다는 모든 연구 결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네트워크 국가와 새로운 실험


마지막 질문 중 하나는 테크 CEO들이 독재자로서 실험하는 "네트워크 국가"에 대한 것이었다. 웨일은 발라지 스리니바산의 아이디어인 네트워크 국가, 즉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그룹을 형성하여 새로운 생활 방식을 실험하는 아이디어에 대해 언급했다. 실험과 새로운 생활 방식의 아이디어는 좋아하지만, 모든 것에 완전히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세상과 단절되는 생각은 싫어한다고 말했다.


"네트워크 국가"라는 이름 자체가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네트워크의 전체 개념은 사람들이 복잡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며, 봉건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의 전체 아이디어는 봉건적인 것이 아니라 복잡한 연결을 가지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폐회 연설: 두 세계관의 최종 충돌


토론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철학을 집약한 폐회 연설을 했다.


야빈은 웨일이 지난 200년간의 연구 결과에만 의존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1750년 이전의 모든 증거를 무시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인터넷, 항생제, 컴퓨터가 없던 시대의 정부 운영 방식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간과한다고 지적했다.


야빈은 로마 공화정의 몰락 사례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로마 공화정의 몰락이 권위주의자들의 집권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견해에 반박하며, 실제로는 로마 공화정의 군사 시스템이 민간 시스템보다 훨씬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폼페이우스가 지중해의 해적을 소탕하는 데 로마 민간 시스템이 실패하자, 군사적 방식을 채택하여 3개월만에 해적을 소탕한 사례를 언급했다. 이는 엘살바도르의 부켈레 사례와 매우 유사하며,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이 새로운 정부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것이 로마 제국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웨일의 폐회 연설은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호소로 가득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하는지 논의해야 하는 현실 자체가 공화국이 직면한 위기의 명확한 증거라고 말했다. 야빈의 견해가 아무리 극단적이거나 허무주의적일지라도, 그는 오늘날 미국에서 결코 주변 인물이 아니며, 부통령과 세계 최고 부자의 귀에 그의 목소리가 닿고 있다고 강조했다.


웨일은 토마스 제퍼슨이 미래 세대 미국인들에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제도를 재정비할 신성한 의무를 부여했다고 언급했다. 만약 우리가 삶의 방식을 사랑하는 것을 잊고 이 신성한 신뢰를 저버린다면, 야빈이 약속하는 미래를 마땅히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웨일의 마지막 선언이었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했듯이, 위대한 문명은 살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살로 죽는다고 인용하며, 야빈이 오늘날 "다수 속의 하나"에서 "하나"를 찢어내는 냉소주의, 절망, 불신을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프랑스가 비시 정권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항복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의 정신은 야빈이 항복하라고 했을 적들(토리당, 노예주, 유화주의자, 전체주의자)에게 결코 항복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조상들처럼 채찍과 가스실을 피해 이곳에 온 사람들의 이름으로, 자신은 그 유산을 포기하는 첫 세대 미국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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