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실용주의의 종언과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부상

중국 실용주의의 종언과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부상


서구와 한국에서 중국을 “실용주의”로 평가했던 시기가 있었다. 대체로 2000년대, 장쩌민(江泽民)의 상하이방(上海帮)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후진타오(胡錦濤)의 공청단파(共靑團派)와 권력 균형을 이루던 시기였다. 두 파벌은 출신 배경과 정책 기조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이념적 순수성보다는 경제 성과와 안정적 통치를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공유했다.


상하이방(핵심 집권 기간은 1989년 ~ 2004년)은 덩샤오핑 사후 중국 공산당 내에서 가장 강력한 파벌 중 하나였다. 장쩌민이 상하이 시장과 당서기를 거치며 구축한 인맥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술 관료·기업 엘리트 중심의 실용주의 세력이 권력을 장악했다. 장쩌민 본인은 상하이에서 기반을 다졌고, 그의 심복들(쩡칭훙, 우방궈 등)이 핵심 요직을 차지하며 상하이방의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후진타오는 공청단파의 대표 주자였다. 지방 최말단에서부터 올라온 자수성가형 관료들로 구성된 이 파벌은 내륙 지역과 서민층 기반이 강했으며, ‘과학적 발전관’과 ‘조화로운 사회’를 기치로 빈부격차 완화와 내륙 개발을 상대적으로 강조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진 후진타오 시대는 명목상 공청단파가 주도하는 시기였으나, 실제로는 상하이방의 강력한 견제와 영향력이 지속됐다. 장쩌민이 퇴임 후에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2년간 유지하고, 정치국 상무위원 다수를 자신의 상하이방 인맥으로 채우면서 후진타오의 권한을 상당 부분 제한했다. 이 때문에 당시 중국 정치는 상하이방과 공청단파의 일당 양파(兩派) 체제로 특징지어졌다.


두 파벌은 출신 배경과 정책 강조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였지만, 근본적으로 이념적 순수성보다는 경제 성과와 체제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는 점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공유했다. 정치 영역은 철저히 당의 독점을 유지하면서, 경제 영역에서는 상당한 자유를 허용하는 ‘정치는 닫고 경제는 푼다’는 암묵적 거래가 이 시대의 핵심 원리였다.


그 결과 중국은 2001년 WTO 가입을 계기로 세계 경제에 본격 편입됐다.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폭발적으로 유입됐고, 민영기업들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연평균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이 지속되면서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다. 애플, 나이키,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 생산기지를 세우고, 수억 명의 중국 노동자를 고용하며 막대한 이익을 창출했다. 서구의 기업인과 투자자들은 “중국이 점차 시장경제와 자유화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품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결국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에서 ‘민주적 자본주의’로 부드럽게 전환할 것이라는 희망까지 품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기업들은 중국을 최대 해외 시장이자 생산기지로 삼았다. 현대·기아자동차, 삼성전자, LG화학 등은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세우고, 부동산·금융·유통 분야까지 진출하며 ‘차이나 머니’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당시 한국 재계와 정부, 그리고 상당수 진보·좌파 진영 인사들까지도 중국의 ‘발전 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중국을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거버넌스로 보는 시각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퍼져 있었다. 덩샤오핑 이후 이어진 이 모델을, 일부 관찰자들은 “이념적 광기 없이도 강력한 성과를 내는 효율적 권위주의”의 성공 사례로 보기도 했다.


그 이미지는 지금 어디 있는가.


상하이방~공청단파 시대의 작동 원리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경제는 과감하게 풀어주되, 정치는 철저히 폐쇄적으로. 중국 공산당이 정치적 권력을 절대적으로 독점하는 한에서, 민간 기업가들과 일반 국민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암묵적 거래가 성립됐다. 중국 인민이 재산을 축적하고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대신, 체제에 정치적으로 도전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 그 거래의 핵심이었다.


이 모델은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를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黑猫白猫论)”는 유명한 실용주의 원칙이 아직 살아 숨쉬던 시대였다. 이념적 순수성이나 혁명적 열정보다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당의 절대적 권력 독점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상하이방 기술관료들의 실용적 접근으로 인해 비교적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었다. 특히 경제 영역에서는 규제의 강도와 방향이 상대적으로 일관됐고, 기업가들은 정치적 충성만 바치면 상당한 경영 자율성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이 거래를 근본적으로 파기했다.


2012년 집권한 시진핑(习近平)은 태자당(太子黨) 출신으로, 혁명 원로 시중쉰(習近平)의 아들이라는 혈통적 정통성을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상하이방이 기술관료·상공업 엘리트 중심의 실용주의 파벌이었다면, 시진핑과 태자당은 당의 전통적 권위와 강한 중앙집권, 이념적 통제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2012년 이후 중국은 급격한 방향 전환을 단행했다.


경제적으로는 명확한 좌클릭이었다. 시진핑은 이른바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新时代中国特色社会主义)’를 선언하며, 개혁개방 이후 누적된 자본의 자율성을 전면 통제하는 새로운 막을 열었다. 그가 규정한 ‘신시대’란 시장의 질주를 멈춰 세우고 당의 절대적 주권을 복원하는 엄숙한 청산의 시기였다. 당은 ‘공동부유(共同富裕)’와 ‘국진민퇴(国进民退)’를 기치로 내걸고 국유기업의 위상을 대폭 강화했으며, 민간기업에 대한 직접적 통제를 확대하며 시장이 당의 최고 존엄을 넘보지 못하도록 선을 그었다.


2020년 앤트그룹의 IPO가 상장 직전에 전격 중단된 사건은 이 전환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마윈(马云)이 상하이 외국인 투자자 포럼에서 규제 당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는 단순한 금융 리스크 관리 차원의 규제가 아니었다. 시장경제의 외피를 입었을지언정 ‘신시대’의 본질은 결국 철저한 사회주의 통제 체제이며, 중국에서 재산권이란 법률에 의해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당 최고 지도부와의 정치적 관계, 즉 ‘정치적 충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강력한 신호였다. 이 체제 아래서 ‘중국 특색’이란 곧 법치 위에 군림하는 당의 자의적 주권(主權)을 뜻했다.


이후 규제의 물결은 거세게 이어졌다. 텐센트, 알리바바, 디디추싱, 메이투안 등 플랫폼 대기업들이 연이어 타깃이 됐다. 디디추싱은 미국 증시 상장 직후 국가안보 조사를 받으며 앱이 사실상 중국에서 퇴출 수준의 규제를 당했다. 민간 기업가들의 창업 정신과 혁신 공간은 급격히 좁아졌다. 더 이상 ‘성공하면 크게 벌 수 있다’는 꿈보다는, ‘너무 커지지 말고 당의 통제 안에 머물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전달됐다.


문화·이념적으로는 반대로 우클릭이 강하게 나타났다. 강렬한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양강(陽剛) 기질(양(陽)이 가진 속성, 즉 강인함, 굳셈, 남성성을 극대화하여 청소년과 사회 전반의 기질을 개조하는 것)’을 국가적으로 강조하며, 전통 문화와 유교를 재포장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신시대’가 도달할 종착지로 설정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서사가 당의 공식 이념으로 격상됐고, 시진핑 개인에 대한 충성과 숭배가 점차 공공연해졌다. 마오쩌둥 시대 이후 사실상 금기시됐던 개인 숭배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경제적 사회주의와 사회문화적 국가주의가 뒤섞인, 기존 서구의 좌우 스펙트럼으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체제로 변모했다. 상하이방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거버넌스의 성공 모델로 보았던 “기술관료 국가” 이미지는, 강력한 이념적 주권자와 중앙집권적 통제자로서의 시진핑 체제로 대체됐다. 그리고 그 방향은 이전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성격을 띠게 됐다.


그런데 이 전환의 시기에 역설적인 일이 벌어졌다.


시진핑 체제가 강한 민족주의와 ‘양강(陽剛) 기질’을 국가적 가치로 강하게 밀어붙이던 바로 그 시기, 중국산 서브컬처 게임들이 전 세계 오타쿠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소녀전선》, 《명일방주》, 《원신》, 《붕괴: 스타레일》, 《젠레스 존 제로》 등 미호요(HoYoverse)와 하이퍼그리프(Hypergryph) 같은 중국 개발사들의 작품들이 글로벌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이 게임들은 전형적인 오타쿠·서브컬처 감수성을 강하게 담고 있었다. 화려한 미소녀 캐릭터 디자인, 복잡하고 몰입감 있는 세계관, 가챠 수집 시스템, 서사 중심의 스토리텔링, 세련된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연출. 특히 《원신》은 2020년 출시 이후 수년간 모바일·PC·콘솔을 아우르는 초대형 글로벌 성공을 거두며, 중국 게임 산업이 단순한 ‘세계의 공장’을 넘어 문화 수출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수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리며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한 셈이다.


이것은 명백한 역설이었다.


시진핑 체제는 문화 영역에서 ‘양강 기질’을 강조하며 남성의 여성화된 이미지(일명 ‘니앙파오(娘炮)’), BL(Boys’ Love) 콘텐츠, 과도하게 미화된 남성상을 강력히 단속하고 있었다. 2021년을 기점으로 정부는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여성화된 남성 캐릭터’를 문제 삼아 신규 게임 승인을 지연시키거나 수정하도록 압박했으며, 동성애적 묘사나 과도한 성적 암시를 포함한 콘텐츠를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에 어긋난다고 규정해 검열했다. 남성 아이돌의 중성적 이미지도 공공연히 비판받았고, 게임 내에서도 ‘건강한 남성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조정이 요구됐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전 세계 남성향 오타쿠들을 사로잡는 미소녀 중심의 가챠 게임들이 중국에서 대거 쏟아져 나왔다.


이 역설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완전한 문화 통제를 원했지만, 외화 수입과 국제적 소프트파워 경쟁이라는 현실적 필요 앞에서는 민간 창의력을 어느 정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게임 산업은 중국의 신성장 동력 중 하나로 꼽히며, 해외 매출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컸다. 그 결과 당은 ‘허용과 통제’의 모호한 경계를 만들어냈다. 서브컬처 콘텐츠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한에서는 어느 정도 숨통을 트여주되, '중국 특색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과 같은 정치적 선을 넘는 순간 검열 칼날이 내려오는 구조였다.


실제로 여러 게임들이 성적 표현, 비주류 서사, 혹은 ‘부적절한’ 캐릭터 디자인을 이유로 규제를 받았다. 특히 미소녀 중심의 남성향 게임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노출도와 의상 디자인에 대한 검열이 두드러졌다. 여러 가챠 게임 개발사들은 출시 전후로 캐릭터 의상 수정, 대사 순화, 특정 스토리 라인 삭제, 과도한 신체 강조 표현 완화 등의 ‘자율 검열’을 강요받았다. 때로는 업데이트 자체가 중국 내에서 제한되거나, 특정 이벤트가 취소되기도 했다. 개발사들은 당국의 눈치를 살피며 ‘안전한 선’ 안에서 최대한의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처지였다.


《벽람항로》는 중국 서버에서 특히 많은 검열 사례를 보여줬다. 비키니나 고도로 노출이 많은 여름 스킨들(예: 프린츠 오이겐, 체셔 등)이 대거 수정됐으며, 가슴과 허벅지 등의 노출 부위를 추가 천이나 프릴, 레이스로 가리는 대대적인 변경이 이루어졌다. 글로벌 버전과 중국 버전의 일러스트를 비교하면 노출도와 의상 면적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소녀전선》 시리즈는 중국 내 서비스 과정에서 피해(데미지) 일러스트에 대한 지속적인 검열을 받아온 대표적인 타이틀이다. 캐릭터가 피해를 입었을 때 드러나는 노출이 많은 ‘데미지 아트’를 더 보수적으로 수정하거나 가려야 했으며, 일부 캐릭터의 의상 디자인 자체가 규제에 맞춰 조정됐다. 과거 인게임 제조 화면에 특정 수치를 입력하면 검열이 해제된 원본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던 이른바 ‘666 제조식(이스터 에그)’이 중국 당국의 압박으로 영구 삭제된 것이 시초였다. 이후 검열 웨이브가 몰아칠 때마다 9A-91, DP-12 등 수십 명에 달하는 전술인형들의 중상 일러스트 속 가슴골이나 엉덩이 라인, 속옷 노출 부위가 검은색 스타킹이나 덧칠로 허겁지겁 가려졌다. 개발사로서는 캐릭터의 정체성이자 세일즈 포인트인 디자인을 스스로 훼손해야 하는 뼈아픈 수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젠레스 존 제로》 역시 출시 초기부터 업데이트 과정에 이르기까지 여성 캐릭터들의 신체 강조 표현이 중국 당국의 이른바 ‘건강하고 적절한 문화 소비’라는 검열 기준에 맞춰 강제로 검열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개발사 호요버스는 당국의 서슬 퍼런 지침 아래 서브컬처 본연의 미학적 욕망을 거세하고 규격화된 이미지로 디자인을 타협해야 하는 전방위적 압력을 받았다. 베타 테스트 당시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니콜 데마라(Nicole Demara)’는 이 거세 작전의 가장 상징적인 희생양이었다. 초기 모델링에서 골반 라인을 과감하게 드러내던 하의는 노출 부위가 완전히 메워지며 한층 길고 보수적인 핫팬츠 형태로 대체되었고, 정식 버전에 이르러서는 상의의 파임이 줄어들어 가슴 볼륨 자체가 눈에 띄게 축소됨과 동시에 과도하게 연출되던 바스트 모핑(흉부 물리 효과)마저 얌전하게 칼질당했다. 또다른 여성 캐릭터인 ‘그레이스 하워드(Grace Howard)’ 역시 검열의 잔혹한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역동적인 초기 컷신 및 원화 속 모습과 달리, 정식 인게임 모델링에서는 지퍼 아래로 드러나던 가슴골의 음영이 완전히 지워져 평평하게 뭉개지거나, 탱크톱 안쪽의 의상 노출 부위가 덧칠을 통해 한층 보수적으로 덮이는 열화 과정을 겪었다.이념의 검열은 정적 모델링의 수정을 넘어,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시선마저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중공의 검열은 정적 모델링의 수정을 넘어,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시선마저 통제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지난 젠레스 존 제로 1.4 업데이트 초기, 플레이어가 카메라 각도를 조절해 캐릭터의 치마 아래를 올려다보려 하면 에이전트의 모델링 자체가 흐릿하게 페이드아웃(투명화)되도록 시야를 강제로 차단하는 카메라 패치가 감행되었던 것이다. 가상 세계의 시각적 공간에서마저 당의 이념적 도덕률을 수호하겠다는 실로 기괴한 시선의 규제이자 관음(觀淫)에 대한 국가적 징벌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시장의 욕망이 당의 보이지 않는 손을 밀어냈다. 검열에 격분한 글로벌 유저들의 거센 항의와 이탈 조짐에 부딪히자, 개발사는 이를 슬그머니 기술적 '버그'로 포장하며 단 하루 만에 해당 시야 제한을 롤백(철회)하는 촌극을 벌였다. 국가의 엄숙주의와 서브컬처 유저들의 게임을 즐길 권리가 정면으로 충돌해 빚어낸, 시진핑 체제 중국 게임 잔혹사의 상징적인 단면이었다.


《젠레스 존 제로》의 촌극 이전에, 이미 호요버스의 전작인 《붕괴: 스타레일》 역시 공산당의 엄숙주의적 검열 칼날 아래 미학적 거세를 경험한 바 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바로 천재 여성 해커 캐릭터 ‘은랑(Silver Wolf)’의 이른바 ‘배꼽 소멸 사건’이었다. 공식 일러스트와 트레일러 속에서는 선명하게 존재했던 은랑의 배꼽이, 정식 출시된 인게임 3D 모델링에서는 흔적도 없이 지워진 채 기괴할 정도로 평평한 맨살로 밀려버린 것이다. 


이는 《원신》의 ‘신학(Shenhe)’ 때부터 이어진 이른바 ‘배꼽 검열’의 연장선이었다. 중국 당국이 복부 노출 중에서도 유독 배꼽의 직접적 묘사를 외설성의 잣대로 삼자, 개발사는 3D 모델의 굴곡만 남긴 채 피부 텍스처를 인위적으로 지워버리는 기만적인 타협을 택해야 했다. 여기에 또 다른 인기 여성 캐릭터인 ‘완·매(Ruan Mei)’가 의상의 옆트임과 노출도를 이유로 중국 당국에 ‘미풍양속 저해’로 고발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요구하는 도덕적 가이드라인은 미소녀 캐릭터의 허리와 골반, 심지어 배꼽이라는 지극히 사소한 신체부위에까지 집요하게 통제의 자국을 남겨왔다. 또한 《원신》은 2021~2022년 규제 강화 기간에 진(Jean), 모나(Mona), 로자리아(Rosaria), 엠버(Amber) 등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가슴골과 겨드랑이를 완전히 메운 '대체 의상'을 제작해 중국 서버에 강제로 적용시켰다.


검열의 칼날은 호요버스라는 거물만을 겨누지 않았다. 성인 지향의 서브컬처 미학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아 역주행에 성공했던 《스노우 브레이크: 포비든 존》 역시 당국의 혹독한 검열 독촉 아래 수영복을 포함한 고수위 스킨 수십 종을 상점에서 황급히 내리고 영구 판매 중단 조치를 취해야 하는 치욕을 겪었다. 텍스트와 시각 효과 역시 이념의 가위질을 피할 수 없었다.  중국 시장의 검열 가이드라인에 따라 스토리 내에서 '죽음(死)'이나 '피(血)' 같은 직접적인 단어는 사용이 원천 금지되어 '소멸'이나 '퇴장' 같은 어색한 단어로 순화되었고, 붉은 혈흔 효과는 정체불명의 유색 액체로 덧칠되었다. 심지어 2024년에는 중국 국영 기업인 중국 우체국과의 대형 콜라보레이션 이벤트가 당국의 선정성 지적과 압박으로 인해 개최 직전 전격 취소되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기도 했다. 자본이 아무리 독창적인 미학을 꽃피우려 해도, 신시대의 도덕률 앞에서는 언제든 뿌리째 뽑혀 나갈 수 있다는 공포의 방증이었다.


이러한 개별 게임들의 잔혹사는 호요버스나 일부 개발사만의 특수한 비극이 아니다. 이는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법제화한 ‘중국 게임 심사 가이드라인’의 도덕적 엄숙주의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중국 국가신문출판서(NPPA)와 산하 심사 기구들이 명목상 내거는 검열의 칼날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정형화되어 전 세계 게임 업계에 유례없는 문화적 검열 기준을 강제하고 있다.


첫째는 ‘문화적 청결성과 미신 타파’ 조항이다. 당국은 전통적 가치관과 사회주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가상 세계의 시각적 요소를 잔인하게 통제한다. 판타지 게임의 단골 소재인 해골이나 좀비 같은 언데드 몬스터는 '봉건적 미신 조장'이라는 명목에 걸려 살점이 덧대어진 로봇이나 무생물 석고 인형으로 기괴하게 변형되어야만 한다. 붉은색 피(血)의 연출 역시 전면 금지되어, 중국 내수용 게임 속 전장은 녹색이나 검은색, 혹은 정체불명의 야광 액체가 튀는 이질적인 공간으로 전락했다.


둘째는 ‘언어적 거세와 순화’의 강제다. 중국 당국은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폭력성을 유발할 수 있는 어휘를 철저히 검열한다. 스토리와 시스템 텍스트를 막론하고 '죽음(死)', '피(血)', '살인(杀)', '도둑(偷)' 같은 직설적인 단어는 일절 사용할 수 없다. 그 결과 작가들은 서사의 긴장감을 포기한 채 '소멸', '붉은 액체', '퇴장', '회수' 같은 기만적이고 어색한 관료제적 표현으로 문장을 순화하는 촌극을 매일같이 반복하고 있다.


셋째는 ‘사상 검증과 역사 왜곡 방지’라는 이념적 굴레다. 플레이어가 악인의 시점으로 서사를 이끌거나 반사회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도덕적 모호성'은 심사 단계에서 원천 차단된다. 나아가 역사 속 실존 인물을 미소녀·미소년화하는 서브컬처 특유의 '모에화(萌え化)' 문법 역시 역사를 왜곡하고 중화민족의 존엄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엄격한 제재 대상이 된다.


결국 중국의 게임 개발사들은 자본의 미학을 꽃피우기도 전에, 당이 규정한 서사적 가이드라인에 자신들의 상상력을 먼저 끼워 맞춰야 하는 거대한 이념적 창살에 갇혀 있는 셈이다.


강한 국가의 문화 통제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완전하지 않다. 허용의 경계는 자의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 불확실성 자체가 또 다른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 된다. 창작자들은 항상 ‘선 넘지 않기’를 의식하며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고, 이는 결국 체제에 대한 순응과 자기 통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상하이방에서 시진핑(태자당)으로의 전환을, 중국을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거버넌스 모델로 평가했던 관찰자들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자.


상하이방~공청단파 시대의 중국은 결과주의적 실용주의의 극단이었다. 이념적 순수성이나 도덕적 열정보다는 냉정한 성과와 효율을 최우선으로 삼는 체제. 정치적 권력은 당이 철저히 독점하되, 경제 영역에서는 기업가들에게 상당한 자유를 주고, 성장이라는 실질적 성과로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모델이었다. 많은 서구 관찰자들과 한국의 실용주의적 분석가들, 그리고 효율적 권위주의를 긍정적으로 보았던 이들은 이 체제를 “이념의 광기 없이도 강력한 성과를 내는 합리적 권위주의”의 성공 사례로 평가했다. 서구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열정 없이, 순수한 기술관료적 계산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듯한 모습이 매력적으로 비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실용주의는 근본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구조 위에 세워져 있었다. 초월적 가치나 철학적 정당성도 없고, 광범위한 사회적 신뢰나 견고한 법치도 없었다. 오직 경제 성장이라는 단일 지표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 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하려 했다. 성장률이 높고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동안에는 이 거래가 작동했지만, 성장의 동력이 약화되자 체제는 곧바로 더 강한 이념과 민족주의로 그 공백을 메우려 했다. 시진핑의 등장은 결코 외부에서 갑자기 찾아온 우연한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상하이방 시대 실용주의 권위주의가 내재적으로 품고 있던 논리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초월적 기반이 없는 권위는 결국 성과에 목을 매게 된다. 성과가 흔들리면 억압과 통제로 버티려 하고, 억압도 한계에 부딪히면 다시 강한 이념으로 회귀한다. 이 순환은 중국 역사에서 수백 년 동안 반복되어왔다. 왕조가 바뀌어도 본질적인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법가(法家)의 철저한 국가 통제 본능과 유교의 도덕·덕치 서사가 껍데기처럼 교체될 뿐, 권력 중심의 아비투스와 백성에 대한 불신, 관계 중심의 좁은 신뢰 반경은 그대로 유지됐다.


덩샤오핑이 특별했던 것은 바로 이 역사적 순환을 일시적으로 유예시켰기 때문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 정당성을 성과로 충당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영광스럽다”는 실용주의 메시지와 ‘흑묘백묘론’ 논리는 그 유예 기간 동안 중국 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 됐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연장전이었다. 성장의 황금기가 끝나가자, 유예됐던 구조적 모순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바로 그 유예가 끝났을 때, 중국 체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용주의가 더 이상 충분한 정당성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자, 체제는 중앙집권 강화, 개인 숭배, 강한 민족주의(중화사상), 이념 통제로 방향을 돌렸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성과 중심 실용주의 권위주의가 지닌 내재적 한계가 드러난 역사적 귀결이었다.


경제 성장률은 눈에 띄게 둔화됐다. 부동산 위기가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중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났다. 헝다 그룹(Evergrande)의 디폴트로 시작된 부동산 위기는 단순한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조 위안 규모의 미분양 주택,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LGFV: 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s), 그리고 그로 인한 소비 위축이 연쇄적으로 작용했다.


2025년 중국 경제는 국가통계국(NBS)이 공식적으로 약 5% 내외의 성장을 발표했으나, 로듐그룹(Rhodium Group) 등 독립 기관들의 추정치는 2.5~3.0% 수준으로 훨씬 낮았다. 2026년 들어서도 1분기 성장률이 5%대를 기록하며 일시적 반등을 보였으나, 내수 회복은 여전히 미미한 상황이었다.


특히 디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됐다.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수년째 마이너스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고, GDP 디플레이터 역시 장기간 부정적 성장을 기록하며 수요 부족을 드러냈다. 청년 실업률은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됐다. 2026년 3월 기준 16~24세 도시 청년 실업률(학생 제외)이 16.9%까지 상승했으며, 4월에도 16.3% 수준을 유지했다. 매년 1,200만 명 이상의 대학 졸업생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 자본 유출도 가속화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중국 시장 신뢰 하락과 민간 기업가들의 자본 이전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중국공산당의 응답은 예측 가능하면서도 전형적이었다. 성과가 흔들리자 더 많은 통제와 더 강한 민족주의 선전을 동원했다. 공동부유 정책의 명목 아래 민간 부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서는 더욱 공격적인 수사와 군사적 시위를 벌였다. 내부 불안이 커질수록 외부 적을 강조하며 국민의 결속을 유도하는 고전적인 패턴이었다.


시진핑 3연임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필연적 귀결이었다. 경제 성장이라는 실용적 정당성이 약화되자, 권력 집중과 개인적 카리스마를 통해 체제를 결속하려는 선택이었다. 권력 집중이 체제 불안정의 해법으로 제시된 셈이다.


중국을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거버넌스의 모범으로 보았던 많은 관찰자들은 지금 씁쓸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그들이 기대했던 “효율적 주권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체제를 더 취약하게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반부패 캠페인은 부패를 근절한 것이 아니라, 시진핑에게 정치적 위협이 될 수 있는 경쟁자들과 잠재적 반대 세력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강력한 정치 도구로 기능했다. 법치 역시 강화된 것이 아니라, 당과 최고 지도부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더욱 노골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강한 국가가 반드시 좋은 국가가 아니라는 것. 주권자의 강함, 즉 권력 집중의 강도가 반드시 체제의 장기적 안정과 번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중국은 이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진리를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하이방과 공청단파는 더 나았는가?


상하이방의 약탈적 정실 자본주의와 공청단파의 무능한 기술관료적 현상 유지는 중국의 깊은 문화·역사적 아비투스에서 파생된 표면적 변주에 불과하다. 이들 세력은 고속 성장과 기만적인 조화의 수사를 통해 중국 내 특유의 불신과 권력 숭배 구조를 영속화했으며, 이는 시진핑의 전체주의적 회귀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토양을 제공했다. 


상하이방이 보여준 실용주의는 결코 근대적 의미의 합리성이나 제도적 투명성을 담보한 적이 없다. 그것은 정당성의 공백을 오직 물질적 풍요로만 메우려 했던 '성장 지상주의'의 이면에 불과했다. 동부 연안의 특권적 개발과 국유자산의 사유화 과정에서 상하이방 엘리트들은 꽌시라는 전통적 인맥 구조를 자본주의적 약탈의 도구로 재발명했다. 그들이 구축한 관상결탁형 정실자본주의는 시장의 효율성이 아니라, 권력의 크기가 이윤의 크기를 결정하는 왜곡된 구조를 고착화했다. 서구와 한국 기업의 기술을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흡수하며 이룩한 ‘황금기’는, 사실상 국가가 배후에서 범죄적 지적재산권 편취(騙取)를 묵인하고 장려했던 레몬 사회주의(Lemon Socialism)의 정점이었다. 상하이방에게 개혁개방이란 체제의 근본적 전환이 아니라, 당의 영구 집권을 위한 자금 조달 창구를 다각화하는 고도의 생존 전략이었을 뿐이다.


이에 맞섰던 공청단파의 '과학적 발전관'과 '조화사회론(和谐社会)' 역시 이 아비투스의 중력을 벗어나지 못한 또 다른 한계적 포장이었다. 이들은 상하이방이 남긴 극심한 빈부격차와 내륙의 낙후성을 시정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대안은 결국 유교적 온정주의(Paternalism)와 관료주의적 통제의 강화라는 과거의 유산으로의 회귀였다. 공청단파의 정치는 밑바닥에서부터 단련된 기술관료들의 효율성을 자랑했으나, 본질적으로는 위에서 아래로 시혜를 베푸는 ‘목민관(牧民官)’적 시각에 갇혀 있었다. 이들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역량이나 법치주의를 통해 모순을 해결하려 한 것이 아니라, 지방 정부의 행정력과 예산 투입이라는 국가 주도형 배분 메커니즘에만 의존했다. 결과적으로 공청단파는 상하이방의 부패를 제어하지도, 내륙의 구조적 소외를 근본적으로 치유하지도 못한 채, 무능하고 비대해진 관료 체제의 무기력함만을 노출했다. 성장판이 닫히기 시작하자 이들이 내세운 조화의 수사는 통제와 감시의 정당화 기제로 손쉽게 전락했다.


이처럼 상하이방은 탐욕스러운 자본의 팽창으로, 공청단파는 무기력한 관료적 배분으로 각자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을 뿐이다. 경제 영역에서의 방임적 실용성과 정치 영역에서의 강한 통제(보모국가)라는 이중 구조 자체가, 중국의 깊은 문화·역사적 아비투스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물이었다.덩샤오핑이 유예시켰던 역사적 순환의 시계추는 상하이방의 탐욕과 공청단의 무능을 자양분 삼아 마침내 시진핑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했다. 상하이방이 심어놓은 정실주의의 독버섯과 공청단이 방치한 관료주의적 비효율은, 역설적이게도 "당이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시진핑 체제의 전체주의적 서사를 완성하는 완벽한 핑계가 되어주었다. 포장은 끊임없이 바뀌었으나 내용물은 언제나 동일했다. 권력의 사적 소유, 법치(Rule of Law)를 대체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 그리고 타자에 대한 깊은 불신이라는 중국적 아비투스는 40년의 번영 속에서도 단 한 치도 흔들리지 않은 채, 오늘날 더 가혹하고 정교한 통제의 외피를 입고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상하이방 시대의 실용주의와 공청단파 시대의 조화사회론, 그리고 현재 시진핑 시대의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표면적으로는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식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듯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이 공유해 온 깊은 아비투스 위에 서 있는 세 가지 변주곡에 불과하다.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이 아비투스가 만들어내는 내부의 균열은 결국 어디서 먼저 드러나는가.


답은 예상보다 일상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영역에 있다. 탕핑(躺平) 세대와 젠더 전쟁이 바로 그 균열의 가장 가시적이고 날카로운 표면이다. 강한 국가가 사회 전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서사가 가장 먼저 무너지는 곳은, 언제나 추상적인 이념이나 거시경제 통계가 아니라, 청년들의 일상과 남녀 사이의 관계, 결혼·출산·가족이라는 가장 구체적이고 원초적인 삶의 영역이다.


시진핑 체제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양강 기질’을 외치며 강한 국가 이미지를 강조할수록, 정작 그 국가 아래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는 점점 더 무기력과 회의감, 그리고 성별 간의 적대감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이 통제하려 할수록, 통제 불가능한 일상의 균열이 더 크게 벌어지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야기는 향후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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