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적 반동주의에 대한 더 간략하고 더 즉흥적인 소개

인류학적 반동주의에 대한 더 간략하고 더 즉흥적인 소개


인류학적 반동주의 (Anthropological Reactionism)


인류학적 반동주의는 진보주의도, 보수주의도 아닌 제3의 사유 방식이다. 그 출발점은 인간을 도덕적·이성적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생물학적·행동적 존재로 먼저 놓는 것이다.


핵심 전제는 세 가지다.


첫째, 전통은 신성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억 명의 생존·번식 실험을 거쳐 살아남은 진화론적 데이터다. 모든 안전수칙은 피로 쓰인다. 전통은 그 피의 축적이며, 따라서 함부로 파괴할 수 없다. 신이 명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로서는 대체 불가능한 물질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통주의 영원철학(Traditionalism/Perennialism)의 세속화 버전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결론의 일부는 겹친다. 그러나 출발점이 다르다. 전통주의는 전통의 신성(神聖)을 전제로 깔고 시작하기 때문에, 어떤 전통을 보존하고 어떤 전통을 버릴지 선별할 내부 기준이 없다. 인신공양도, 노예제도 오래된 전통이다. 신성(神聖)은 선별 기준이 될 수 없다. 진화론적 데이터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생존과 번식에 기여했는가. 그리고 현재의 조건에서도 유효한가. 세속화는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신학적 교조주의에서 꺼내어 반증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래야만 전통이 업데이트될 수 있다.


둘째, 진보는 환상이다. 선형적 진보 서사, 인간 본성을 교육과 제도로 교정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낙관론, 이념을 통한 근본적 인간 개조 가능성을 냉정하게 거부한다. 여기서 두 층위를 구분해야 한다. 진화론적 층위에서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형태는 비가역적으로 변해왔다. 그러나 그 진화된 본성이 만들어내는 문명의 패턴은 순환한다. 선형적 진보관이 저지르는 결정적 오류는 이 두 층위를 혼동하는 것이다. 기술이 축적되고 지식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문명 전체가 진보한다는 착각으로 확장하는 것. 그러나 권력 구조는 교체될 뿐 해체되지 않고, 이념은 세속화될 뿐 소멸하지 않으며, 엘리트는 순환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 문명은 진보하지 않는다. 순환한다. 우로보로스처럼 스스로를 먹어치우며 재생한다.


셋째, 업데이트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업데이트는 수십 년 단위의 이념적 환상이나 도덕적 과시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 조건 아래서 축적되는 실제 데이터에 기반해야 한다. 혁명이 아닌 리부트. 새로운 운영체제가 아니라, 오래된 소스코드를 다시 읽는 것.


인류학적 반동주의가 기존의 반동주의와 다른 점은 회귀할 황금시대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원해야 할 신성한 과거도 없고, 도달해야 할 이상적 미래도 없다. 다만 인류가 보편 종교 탄생 이전부터 축적해온 가장 오래된 생존의 패턴들, 그 속에 새겨진 냉혹한 현실의 문법을 직시하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을 뿐이다.


여기에는 신도 없다. 진보의 필연적 도래도 없다. 성역도, 절대적 금기도, 도덕적 우월감도 없다. 그러나 수천~수만 년의 데이터는 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방대하고, 가장 오래된, 가장 현실적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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