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망의 네오모나키즘 1편

네오모나키즘 


1편: 권력의 선택적 집중


역대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시도들은 대체로 동일한 장벽에 부딪혀왔다. 권한을 줄이려 하면 권력자들이 강하게 저항하고, 관료 조직을 축소하려 하면 관료제가 스스로를 복제하며 확대된다. 규제를 철폐하면 새로운 형태의 규제가 출현하고, 특정 기구를 폐지하면 유사한 기능의 조직이 다른 부처 아래에서 부활한다. 이는 오랜 기간 반복된 패턴이다.


진짜 문제는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권력을 줄일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미 권력의 지속을 전제한다. 권력은 진공 상태를 용납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권력을 제거하면 비공식 권력이 그 자리를 채운다. 특히 선출되지 않은 언론, 학계, NGO, 관료 집단으로 이루어진 복합체—커티스 야빈(Curtis Yarvin)이 ‘대성당(Cathedral)’이라고 명명한 구조—가 실질적인 통치 권력을 행사한다. 이 대성당은 형식적인 정부 기구 밖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정책 방향을 설정하며, 공식 권력의 빈자리를 메우는 강력한 비공식 네트워크다.


따라서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다. 단순히 권력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권력의 어느 부분을 행사하기 어렵게 만들고, 어느 부분을 강력하고 선명하게 보존할 것인가? 다시말해 강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필자가 구상한 이 거버넌스 모델의 핵심은 일상적 행정 권력에 대한 의도적 과부하다. 모든 일상 행정 권한을 군주 한 사람에게 법적으로 집중시키되, 위임과 대리를 직속 관료에게 가급적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군주는 명목상 거의 모든 행정 권한을 보유하지만, 물리적으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업무를 혼자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결과적으로 행정은 구조적으로 마비 상태에 빠진다. 처리되지 못한 업무는 자연스럽게 민간 영역으로 이전된다.


이 모델은 권력 전체를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다. 선택적 과부하다. 일상적 행정 업무에만 과부하를 가하고, 외교·국방·경제 질서의 최종 심판 같은 핵심 권한은 과부하 대상에서 제외한다. 오히려 이 핵심 영역에서 군주의 권한은 더욱 명확하고 강력하게 집중된다.


이 모델에서 권력은 두 개의 명확히 구분된 층위로 운영된다.


첫째, 일상 행정의 층위. 각종 인허가, 규제 집행, 복지 지급, 토지 이용 관리, 민원 처리, 세부 감독업무 등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행정 결정이 여기에 속한다. 이 영역은 군주에게 극심한 과부하를 주도록 설계된다. 관료제는 원칙적으로 무력화되며, 어떠한 형태의 영구적 위임도 금지된다. 군주가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이 영역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모두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째, 핵심 권한의 층위. 외교 정책의 최종 결정권, 군사력의 독점적 보유와 지휘권, 그리고 국내 경제 질서에서 독과점, 대규모 부패, 체제 기반을 위협하는 행위가 발생했을 때의 최종 심판권이 여기에 속한다. 이 영역에서 군주의 권한은 제한 없이 강력하게 행사되며, 군주는 백엔드 역할(정보 수집, 전략 수립, 핵심 인사 조정, 최종 결정)도 직접 수행한다.


이 두 층위의 철저한 분리가 모델의 안정성을 결정한다. 일상 행정에서는 군주가 구조적으로 제한되고, 핵심 권한에서는 군주가 압도적인 통제력을 가진다.


핵심 권한, 특히 경제 질서에 대한 최종 심판권은 자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남발하면 체제는 독재적 폭정으로 퇴화하고, 너무 소극적이면 무정부 폭정(Anarcho-tyranny)이 확산된다.


군주의 권한 남용을 억제하는 실질적인 힘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시장 전반과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기업들의 즉각적 반응이다. 군주가 심판권을 빈번히 행사하는 패턴이 나타나면 행정 사기업들은 서비스 범위를 축소하고, 투자자들은 위험을 재평가하며, 외부 자본은 유출된다. 이는 군주의 권력 기반을 빠르게 약화시킨다.


둘째, 군주 본인의 운명 공동체적 이해관계다. 체제를 파괴하는 결정은 군주 자신의 장기적 지위와 기반을 동시에 붕괴시킨다.


셋째, 군주 직속 군사 지휘부의 계산이다. 그들은 장기적인 안정과 보상을 고려하며, 명백한 폭정은 자신들에게도 불리하다고 판단한다.


이 메커니즘들은 군주의 행동 퀄리티를 체제의 건강과 직접 연결시킨다. 군주는 단순한 행정관이 아니라, 질서가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순간마다 개입하는 최종 심판자, 즉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주권자(主權者)로서 기능해야 한다.


이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설계 변수는 “처리되지 않은 행정 업무의 기본값”이다.


이 기본값을 ‘보류’로 두면 업무가 누적되어 관료제 확대 압력이 발생한다. ‘국가 직접 처리’로 두면 과부하가 오히려 국가 기구 확장의 명분이 된다.


따라서 미처리의 기본값을 자동 민간 이전으로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국가가 정해진 기간 내에 처리하지 못한 사안은 자동으로 민간 기업이나 지방 자치 단위로 이관된다. 이 규칙은 단순한 법 조항이 아니라, 체제의 구조적·자동적 원리로 작동해야 하며 헌법적 수준에서 기계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이 설정 하나로 국가 권력의 실질적 범위는 권력자의 의지가 아니라 물리적 처리 용량에 의해 제한받게 된다.


이 모델에서 군주는 국가의 최종 책임자이자 대표자다. 시민과 외국이 마주하는 공식적 창구(프론트엔드)인 동시에, 핵심 권한 영역에서는 실질적인 백엔드 역할도 수행한다.


일상 행정 영역에서는 과부하로 인해 대부분의 세부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없지만, 핵심 권한 영역(외교, 국방, 시장 질서 심판)에서는 정보 수집, 전략 수립, 핵심 인사 배치, 장기 방향 설정 등 백엔드 작업을 직접 주도한다. 이 낙차(落差)—일상에서는 제한되고, 핵심 권한에서는 압도적인 역할—이 체제에 긴장감과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군주의 실질적 기반은 국군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이다. 민간군사기업(PMC)은 치안, 경비, 행정 지원 등의 계약 사업자로서 기능하며, 최종적으로는 국군에 종속된다. 국가비상사태 시 모든 PMC는 즉시 국군 지휘 하에 흡수된다. 평시에도 군주의 직속 군사력은 어떠한 민간 무력 집단보다 우월한 전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 폭력 독점이 모든 권한의 최종 보증이다.


이 모델은 단순한 권위주의나 전통 군주제로의 복고(復古)가 아니다. 핵심은 거버넌스의 구조적 효율성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하지만, 실질적 통치는 관료 복합체와 대성당이 행한다. 전통적 독재는 1인 지배를 선언하지만 실제 권력은 측근과 관료 네트워크에 분산된다. 두 체제 모두 선언과 실질 사이에 괴리가 크다.


필자가 구상한 모델은 이 괴리를 없애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의도된 설계 원리로 활용한다. 군주는 일상 행정 권한을 명목상 보유하나 구조적으로 전부 행사하기 어렵게 만들고, 핵심 권한은 실질적으로 집중시켜 강력하게 행사한다. 이 이중 구조가 체제의 안정성과 통제 가능성을 동시에 달성한다.


목표는 특정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누구이든 구조 자체가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거버넌스 구조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군주가 핵심 권한에서 강력한 지위를 가지며, 일상 행정에서는 의도적으로 제한된다는 점에서 분명 군주제적 특징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어떠한 역사적 군주제와도 다르다. 전통 군주제처럼 시민들의 일상 행정까지 직접 통치하려 하지도 않고, 입헌군주제처럼 군주를 꼭두각시로 만들지도 않는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군주제 모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일단 신군주제(新君主制), 영어로는 neomonarchism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참고로, 신권군주제(Divineright monarchy)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니 헷갈리지 말기 바란다. 하늘의 뜻이 아니라, 구조적 과부하와 선택적 집중이라는 공학적 설계에 기반한 군주제다.)


다음 편에서는 이 신군주제 모델의 백엔드, 즉 민간 행정기업들이 경쟁하며 일상 행정을 담당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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