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아니시모프,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


제1장


2015년의 세계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공간이다. 도쿄나 모스크바처럼 면적이 수천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 도시들이 즐비하며, 2019년이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높이가 1킬로미터에 이르는 킹덤 타워가 완공될 예정이다. 하늘에는 매일 5만 편 이상의 상업용 항공기가 오가고, 전 세계 인구의 91% 이상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보급된 스마트폰만 해도 이미 10억 대를 넘어섰다.


각국은 점차 부유해지고 있으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빈곤과 문맹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다. 암과 같은 난치병을 정복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통계적으로 볼 때, 인류 사회 전체의 폭력성 또한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세상이 이토록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어떤 이들에게는 유독 기이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하나 있다. 바로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거의 모든 선진국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를 가장 우월한 통치 형태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흔히 처칠의 말을 빌려 "민주주의는 이미 시도된 다른 모든 체제를 제외하면 최악의 정부 형태"라고 정당화하곤 한다. 하지만 처칠은 이런 말도 남겼다.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는 평범한 유권자와 나누는 5분간의 대화다.“


이 책에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최선의 통치 형태가 아니며, 실상은 최악에 가깝다는 주장을 펼치고자 한다. 지난 수백 년간 인류가 일궈온 문명적 진보의 공로는 대부분 과학과 기술의 혁신에 있으며, 그 밖의 성취 또한 민주주의 덕분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얻어낸 결과에 가깝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궤를 같이하기는커녕, 많은 경우 자유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를 참주 정치 바로 윗단계인, 밑에서 두 번째로 저급한 통치 체제로 분류했다. 귀족정이나 인자한 독재 체제보다도 민주주의를 낮게 평가한 것이다. 19세기 초반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이견을 억압하고 '수평적 압력'을 가해 구성원들을 순응하게 만드는지를 기록했다. 20세기 중반 오스트리아의 보수주의 사상가 에릭 폰 퀴넬트-레딘 또한 모든 것을 통제하에 두고 형해화하며, 획일화와 평범함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군중의 위협’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이 책은 학술적 연구 성과와 핵심적인 논거들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바람에 누구도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민주주의의 당위성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간결하고 명료한 서술을 통해, 독자들이 언제든 부담 없이 펼쳐볼 수 있는 참고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용을 압축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생략된 중요한 쟁점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 책은 완결된 결론이라기보다, 더 깊은 탐구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논거는 무엇인가? 우선, 민주주의는 통치의 질을 떨어뜨린다. 정부의 제1사명은 수준 높은 통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뒤에서 상세히 다루겠지만, 민주주의 사회가 그나마 제대로 작동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상당수의 공무원이 선거로 선출되지 않으며, 고위 공직자들이 정년이나 임기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민주적 수준이 높을수록 성공적이고 효율적일 것이라 믿는 대중의 통념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높은 수준의 통치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낮은 범죄율과 공직자의 역량, 정치적 안정과 결과의 예측 가능성, 교육 성취도,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응집력 등이 그 지표가 될 것이다. 물론 통치의 질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논의의 특성상 불가피한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좋은 통치'의 개념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과학적 척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저 지금까지 너무나 적은 수의 사상가들만이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한 의문을 제기해 왔으며, 많은 이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타성에 젖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우리의 논거는 크게 다음 아홉 가지 핵심 사항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민주주의는 미래를 위한 계획을 가로막고, 투자와 건설보다는 약탈과 소비에 열을 올리는 정치적 아수라장을 조장한다. 이러한 행태는 미래를 희생시켜 현재를 취하는 '높은 시간 선호(high time preference)'의 전형이며, 이는 '공공이 소유한 정부'라는 민주주의의 구조적 본질에서 기인하는 필연적 결과다.


2)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하며, 저강도의 갈등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이러한 갈등은 무언가를 세우는 생산적인 동력이 되기보다는, 대부분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양상을 띤다.


3) 민주주의는 대중의 가장 낮은 본능에 영합하는 선동적 지도자를 배출한다. 이들은 거시적인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여론 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즉각적이고 반사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지도자들은 결국 우리가 흔히 '보나파르트적 지도자'라 부르는 독재적 성향의 인물들로 변모하기 마련이다.


4) 민주주의는 벌어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부채 지향적 속성을 지니며, 이는 결국 경제적·사회적 붕괴로 이어진다. 비민주주의 국가를 포함한 모든 국가가 어느 정도 이런 경향을 보이지만, 민주주의에서는 그 양상이 유독 두드러진다. 보통선거권을 통해 증폭된 '즉각적인 자본 소비'라는 인간의 본능이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데다, 잘못된 정책 결정에 대해 직접적인 개인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5) 흔히 비합리적인 유권자들의 편향은 서로 상쇄되어 결국 다수의 이익을 조율하는 효율적인 정책 선택으로 이어진다고 믿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편향들이 서로를 강화하고 증폭시킨다. 그 결과, 소수의 유능한 관료들이 의사결정을 주도할 때보다 훨씬 저조한 성과를 낳게 된다.


6) 비민주적 통치가 지닌 위험성은 민주주의 사회 내에서 대체로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정당화하고, 그에 반하는 증거들을 거부하거나 낙인찍어야만 하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여느 사상 체계와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강화하는 '밈 복합체(memeplex)'로 작동하며, 추종자들로 하여금 체제의 효율성에 대한 정당한 비판조차 조건반사적으로 거부하도록 길들인다.


7) 서구 사회 대다수, 특히 지식인 계층이 보여주는 민주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는 이성적인 정책 선택이라기보다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 현대의 민주적·진보적 사상은 그 지적 계보를 보편주의적 개신교 전통에 두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실제 행태와 그 파급 효과를 가장 사실적으로 파악하려면 바로 이 종교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8) 정치사는 근본적으로 순환한다. 문명은 인자한 권위주의적 지도 체제에서 출발해 민주주의와 무정부 상태를 거쳐 참주 정치에 이르고, 결국 다시 인자한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주기는 대략 300년을 주기로 되풀이되지만, 때로는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완결되기도 한다. 사회가 가장 안정되고 문화적으로 찬란한 꽃을 피우며, 문명의 기틀을 다지는 대업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바로 이 '인자한 권위주의적 지도 체제'의 단계다.


9)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반(反)문명적이다. 스위스처럼 특정 지역에서 오랫동안 순조롭게 작동한 사례도 분명 존재하지만, 모든 국가의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체제는 결코 아니다. 이라크와 같은 곳에서 민주주의는 명백한 재앙이었으며,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서는 서서히 진행되는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이 아홉 가지 논점을 핵심만 추려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민주주의는 미래를 희생하는 높은 시간 선호를 부추긴다.

2) 민주주의는 정치적 변동성이 크며, 끊이지 않는 저강도의 정치적 내전을 유도한다.

3)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무능하거나 파괴적인 선동가를 낳고, 이들은 결국 보나파르트적 지도자로 변모한다.

4) 민주주의는 국가 부채를 늘리고 정부의 부실한 경제적 의사결정을 초래하며, 끝내 체제의 붕괴를 불러온다.

5) 유권자의 편향은 서로 상쇄되는 것이 아니라, 교차하며 서로를 증폭시킨다.

6) 민주주의는 자기 생존을 꾀하는, 스스로를 강화하는 밈 복합체다.

7) 서구 사회의 무비판적인 민주주의 옹호는 종교적 신념과 유사하다.

8) 정치사는 인자한 통치자, 민주주의, 무정부 상태, 그리고 참주 정치 사이를 오가는 순환의 과정이다.

9) 민주주의는 반(反)문명적이며 서구 국가들의 번영을 위협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룰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상징적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 마이클 아니시모프(Michael Anissimov),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 신반동주의자를 위한 가이드(A Critique of Democracy: A Guide for Neoreactionaries)』, Zenit Books, 2015,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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