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의 신권위주의와 천민자본주의 전격 해부
중공의 신권위주의와 천민자본주의 전격 해부
중국 공산당의 신권위주의(新權威主義, Neo-authoritarianism)는 서구 학계에서 종종 ‘우익’으로 분류된다. 평등주의에 강하게 저항하고, 엄격한 위계적 질서를 옹호하며, 강한 중앙집권 국가와 사회적 안정을 최고 가치로 삼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전통적 보수주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껍질을 한 겹 벗겨 들여다보면, 서구 우익이 수세기 동안 다듬어온 보수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갑고 실용적인 권력 기제가 드러난다. 신이 없다. 자연법이 없다. 원죄론도 없다. 강한 국가가 ‘옳은’ 이유는 초월적 도덕 질서나 신성한 섭리 때문이 아니라, 오직 경제 발전과 체제 안정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결과가 정당성의 유일한 근거가 된다. 러셀 커크(Russell Kirk)가 평생토록 가장 혐오했던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극단적이고, 때로는 잔인한 변종이다.
신권위주의는 1980년대 후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사상 조류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변화하는 사회의 정치 질서(Political Order in Changing Societies)》에서 영향을 받아, 자유시장 개혁개방과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될 경우 발생하는 혼란과 불안정을 경계하며, 먼저 강력한 권위로 시장 개혁을 추진한 뒤 점진적으로 정치 개혁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북방파(급진 개혁론)와 남방파(점진적·전통 문화 강조)로 나뉘지만, 공통적으로 강한 중앙 권위 아래 시장화 선행, 정치 안정 최우선, 엘리트 주도 개혁을 강조한다. 우자샹(吴稼祥), 천이쯔(陈一谘), 왕후닝(王沪宁) 등과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학계에서 이를 ‘우익’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평등주의적 급진 개혁을 거부하고, 위계와 권위를 중시하며, 강한 국가가 사회를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서구 보수주의와 기능적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서구적 의미의 보수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구 보수주의(특히 기독교적 보수주의)는 초월적 가치 — 신의 법, 자연법, 인간의 타락한 본성(원죄) — 위에 세워진 질서다. 반면 중국 신권위주의는 철저한 결과주의와 실용주의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유명한 말처럼, 이념적 순수성보다 경제 성과와 권력 유지가 우선이다. 서구 진보주의(좌파)와는 평등주의·다원주의·개인 자유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대립하지만, 서구 보수주의와도 신학적·형이상학적 기반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이질적이다. 그것은 단순한 ‘보수’가 아니라, 현대화된 법가(法家)와 유교 위계주의, 그리고 공산당 권력 유지 논리가 뒤섞인 ‘개발독재’ 모델이다. 특히 신권위주의 학파는 해외 여러 개발독재·권위주의 모델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다. 브라질의 주앙 피게에레두(João Figueiredo) 체제, 리콴유와 고촉통이 이끈 싱가포르,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대의 한국, 미하일 고르바초프 시기의 소련, 장제스·장징궈·리덩후이의 대만, 투르구트 외잘(Turgut Özal)의 튀르키예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 모델들은 공통적으로 강한 지도력 아래 경제 개혁을 추진하며 안정을 유지한 경험을 제공했으며, 중국 지식인들은 이를 중국의 현실에 맞게 차용하려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절대적 일당 독점이 그 중심에 단단히 박혀, 다른 나라들의 모델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유교의 인간관은 기독교와 정반대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단순히 ‘성선설’ 하나로 환원하기에는 상당히 복합적이다. 맹자(孟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며, 인간 본성에 내재한 선(善)을 덕(德)으로 계발하면 이상적인 군자와 엘리트가 나올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순자(荀子)는 성악설(性惡說)을 내세우며,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 욕망에 이끌리기 쉽기 때문에 예(禮)와 법(法), 교육, 엄격한 규율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두 학파 모두 결국 ‘덕 있는 엘리트’가 올바른 통치를 할 수 있다는 낙관론으로 수렴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유교적 인간관은 법가(法家)와 결합되면서 더욱 강력한 권위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중국 역사에서 유교는 종종 ‘외유내법(外儒內法)’ — 겉으로는 유교의 덕치를 내세우고, 속으로는 법가의 철저한 국가 통제와 법치를 실현하는 — 형태로 운영되었다. 천명(天命) 사상은 군주의 권력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통치자가 도(道)를 잃고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천명이 다른 사람(새로운 왕조)에게로 옮겨갈 수 있다는, 이론상으로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은 실제 역사에서는 매우 불완전하고 위험한 결과를 낳았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천명을 받았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숙청과 권력 재편이 이루어졌으며, 일단 권력을 잡은 뒤에는 ‘덕 있는 군주’라는 유교적 이상이 오히려 절대 권력을 미화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독교 보수주의자에게 이 전체 구조는 여전히 순진함을 넘어 치명적인 망상으로 보인다. 그들의 세계관에서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지녔고, 권력은 그 원죄를 증폭시켜 필연적으로 타락시킨다. 따라서 어떤 개인, 집단, 당(黨)에게도 무제한의 권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중국 공산당의 경우, 유교적 ‘덕치’와 ‘천명’의 잔재를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언어로 재포장하면서, 법가적 통제 기술을 극대화했다. 덕 있는 엘리트(당)가 백성을 이끈다는 서사는 유지하되, 실제로는 당의 절대적 권력 독점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 복합적 유교-법가 혼종은 표면적으로는 안정과 효율을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권력에 대한 실질적 견제 장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결국 구조적 부패와 권력 남용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부패는 중공의 관념이 얼마나 허망한 전제 위에 서 있는지를 피로하고도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시진핑의 대대적인 반부패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부패는 구조적이다. 지방 정부와 개발업자 간의 땅 투기, 국유기업(SOEs) 자금의 사적 유용, 은행 대출의 정치적 로비, 고위 간부 가족들의 해외 자산 은닉, ‘공산당 귀족’ 세습 특권 등이 만연하다. 문화대혁명 이후 제도적 진공 상태에서 시작된 시장화 과정에서 관료와 기업의 관상결탁(官商勾結)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이는 단순한 개인적 비리가 아니라 체제 유지의 필수 윤활유가 되었다. 권력을 쥔 자가 덕을 발휘하기는커녕, 권력을 이용해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다시 권력 강화에 사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덕의 제도화는 불가능하다. 권력은 그것을 쥔 자를, 그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체제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부식시킨다.
종교 탄압의 문제는 더 직접적이고 근본적이다. 중국이 자유주의나 평등주의를 비판한다고 해도, 기독교를 조직적으로 억압하고, 지하 교회를 철거하며, 신앙인을 감시·세뇌하는 체제는 서구 기독교 우익과 어떤 이념적 동맹도 맺을 수 없다. 이는 협상의 여지가 없는 지점이다. 더욱이 한 자녀 정책 시기(1979~2015) 자행된 강제 낙태, 강제 불임, 가족 강제 해체는 서구 기독교 우익이 생명 정치의 핵심으로 여기는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전통 가족 강조”라는 수사를 아무리 화려하게 써도, 국가가 국민의 자궁과 출산, 생명의 존엄을 철저히 통제하고 유린한 잔인한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정책 실수가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가장 사적인 영역까지 지배하려는 신권위주의의 본질적 폭력성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중국 신권위주의는 서구의 좌우 이분법으로 깔끔하게 분류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 분류 체계 자체가 기독교 문명 내부의 오랜 논쟁 — 평등 vs 위계, 자유 vs 질서 — 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중국 신권위주의는 그 논쟁에 참여하지도, 참여할 의사도 없다. 완전히 다른 형이상학(유교-법가 복합)에서 출발했고, 완전히 다른 역사적 토양(제국주의·공산주의·문화대혁명의 폐허)에서 자랐다. 이것을 ‘우익’이라 부를 때의 그 “우익”은 서구적 의미의 우익이 아니다. 평등주의를 거부한다는 기능적 유사성이 있을 뿐, 그 정당성의 근거와 세계관의 구조, 그리고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철저히 이질적이다. 오히려 그것은 서구 좌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문명적으로 낯선 ‘제3의 권력’ 형태다. 그리고 그 낯선 권력이 오늘날 세계 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서 서구 우익이 마주치는 불편한 역설이 생긴다.
중국 공산당 정치인들은 당 규율상 철저한 무신론자여야 한다. 당 헌장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이 요구하는 바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으로 규정되며, 고위 간부가 공개적으로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다. 그런데도 그들은 동시에 강한 국가, 엄격한 위계적 질서, 선택적인 전통 가족 강조, 평등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를 추진한다. 강한 지도자 중심 체제, 당의 절대적 우위, 사회적 안정과 경제 성과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모습은 표면적으로 ‘우익적’이다. 이것이 성립한다면, 무신론자도 충분히 우익적일 수 있다는, 서구 보수주의자에게는 불편한 결론이 나온다.
서구 우익의 상당수, 특히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들의 세계관에서 진정한 보수주의는 기독교적 형이상학을 필수 전제로 한다. 자연법은 신의 법에서 파생된 것이고, 위계 질서의 정당성은 신의 섭리와 도덕적 질서에서 온다. 신 없이 위계를 정당화하는 것은 단순한 힘의 논리, 즉 폭력적 독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존재는 냉정하게 묻는다. 기독교 없이도 위계는 작동하지 않는가? 신 없이도 강한 국가는 가능하지 않은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기묘한 이름 아래, 당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거대한 감시·통제 시스템이 실제로 사회를 안정시키고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 답이 불편한 이유는 “그렇다”이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초월적 가치나 도덕적 절대자 없이도 철저한 위계 사회를 구축했다. 디지털 전체주의 도구 — 사회신용시스템, 대규모 감시 카메라, AI 기반 검열, ‘제로 코로나’ 때 드러난 강제 격리와 이동 제한 — 를 동원해 사회를 관리한다. 전통 가족을 강조하는 선전은 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국가가 출산을 강제 통제하고, 인구 정책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다. 평등주의는 ‘공동부유’라는 구호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당 엘리트와 일반 인민 사이의 극단적 계층화, 도시-농촌 격차, 호구 제도에 의한 신분 차별을 공고히 한다. 이 모든 것이 신의 이름도, 자연법의 이름도 없이 오직 ‘국가 안정’과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실용적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이것은 보수주의의 초월적 정당성이라는 전제를 근본적으로 흔든다. 만약 보수주의의 핵심이 정말로 기독교적 세계관에 있다면, 기독교 없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보수주의가 불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중국은 기독교 없이 — 심지어 서구 자유주의가 가장 혐오하는 방식으로 — 강한 위계와 사회 통제를 강요하며 사회를 조직하고 있다. 그것도 상당한 기간 동안 경제적으로 ‘성공’하며. 이는 기독교 보수주의의 자기 이해에 깊은 균열을 낸다. 많은 서구 우익 지식인들은 이 균열을 직시하기보다는, 중국을 단순히 ‘반(反)서구 세력’이나 ‘공산주의 잔재’로 규정하며 넘겨버린다. 중국 모델의 본질적 이질성과, 그 안에 내재된 폭력성과 불안정성을 깊이 파고들기를 꺼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설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국 신권위주의가 보여주는 ‘강한 국가’는 초월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결국 권력과 성과에만 의존한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거나, 위기가 닥치면 그 정당성은 급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신이나 자연법 같은 절대 기준이 없는 권위는, 결국 더 강한 폭력과 통제로 그 공백을 메우려 한다. 오늘날 시진핑 체제에서 보이는 권력 집중, 반부패 캠페인의 정치적 숙청 성격, 홍콩·대만·남중국해를 향한 팽창주의는 바로 그런 불안정한 본질을 드러낸다. 기독교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오직 당(黨)과 권력이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이것은 서구 우익뿐 아니라, 중국 모델을 관찰하는 모든 이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 사회의 질서가 정말로 초월적 근거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충분한 힘과 실용적 계산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 중국은 후자의 가능성을, 그러나 동시에 그 한계와 위험성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위험성은 점점 더 전 지구적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더 기묘한 역설은 다른 방향, 즉 서구와 한국의 좌익 진영에서 온다.
중국 공산당이 어떤 객관적 기준으로 보더라도 신권위주의적, 즉 기능적으로 우익적 성격을 강하게 띤 체제라면, 그것을 적극 옹호하는 서구와 한국의 소위 ‘탱키(Tankie,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관련된 국가, 사상, 이념 등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멸칭. 또는 맹목적인 반서방주의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서방에 맞서는 권위주의 국가의 인권 탄압 및 대외 침공 등을 옹호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라 불리는 친중 좌익들은 대체 무엇을 옹호하고 있는가.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강한 국가 개입과 재분배를 주장하고, 문화적으로는 극단적 평등주의, 페미니즘, LGBTQ+ 권리, 탈식민주의 같은 진보적 의제를 신봉한다. 그런데 그들이 미화하고 방어하는 체제는 강제 노동 수용소(라오가이(劳改))를 운영하고, 위구르족을 대규모 수용소에 가두어 민족적·문화적 말살 정책을 펼치며, 동성애와 ‘비정상적’ 성 소수자를 사회적으로 억압하고, 여성의 출산을 국가가 철저히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은 단순한 이념적 모순이나 인지부조화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이념이 언제 지정학적 반미·반서방 감정으로 완전히 대체되는가의 전형적인 사례다. ‘반제국주의’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제국주의 권력 체제를 두둔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 관료의 시각에서 이 친중 좌익들을 바라본다면, 그들은 얼마나 가련하고 유용한 존재로 보일까. 그들의 핵심 진보적 의제 — 젠더 평등, 성 소수자 권리, 표현의 자유, 소수민족 자결권 — 는 중국 공산당이 가장 경멸하거나 적극적으로 탄압하는 것들이다. 중국에서 페미니즘 활동가는 '여권독계탕(女权毒鸡汤, 뉘취안 두지탕)'[1], '여권 (女拳, 뉘취안 - 주먹 권)'[2], '중화전원여권(中华田园女权, 중화 탠위안 뉘취안)'[3]으로 낙인찍혀 구금되고, 위구르·티베트·홍콩의 소수민족·민주 세력은 ‘분열주의자’로 규정되어 재교육 캠프나 감옥으로 보내진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철저히 짓밟힌다. 중국 공산당 고위 관료들은 이 서구·한국 좌익들을 이념적 동지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레닌이 말한 “유용한 바보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구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고, 반미·반서방 여론을 키우며, 중국의 부상을 방해하는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유용한 도구로만 활용될 뿐이다.
이 구도는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냉전 시기 서방의 공산당 동조자들, 스탈린의 대숙청과 기근을 외면하며 소련을 ‘미래의 등불’로 찬양했던 서구 지식인들(예: 장 폴 사르트르, 윌리엄 에드워드 버가트 듀보이스 등),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처음에 ‘반제국주의 승리’로 환영했던 일부 서구 좌파들 — 이들 모두는 자신들이 지지한 체제가 자신들의 가치관(자유, 평등, 인권)과 철저히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발견했거나, 끝까지 발견하기를 거부했다. 지정학적 반서방 연대감이 이념적 일관성을 압도한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 대한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는 중국’이라는 서사 앞에서, 위구르족 강제노동, 장기 적출 의혹, 홍콩 국가보안법, 대만 위협, 남중국해 군사화 같은 현실은 불편한 ‘세부사항’으로 치부된다.
한국의 친중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경우는 더 복잡하고, 여러 층위가 뒤엉켜 있다. 순수한 이념적 친화성인지, 대중국 무역·투자라는 막대한 경제적 이해관계의 합리화인지, 반일종족주의 감정이 친중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지정학적 현실주의(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견제)인지는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재계와 학계, 대다수 좌파 정치 세력 사이에서는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비판적 목소리가 점차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 뒤섞인 층위 속에서 ‘이념’은 장식이 되고, 실질적인 이해관계와 권력 계산이 본질을 결정한다.
이것 역시 인간 사회에서 반복되는 오래된 패턴이다. 이념은 언제나 이해관계의 사후 정당화를 위한 세련된 언어를 제공한다. 중국 공산당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경제적 유인(시장 접근권), 정치적 압력(경제 보복), 정보전(프로파간다)을 적절히 섞어 해외 친중 네트워크를 관리한다. 결과적으로 서구와 한국의 일부 좌익은 자신들이 증오하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의 더 정교하고 강력한 버전을, ‘사회주의’나 ‘동양적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게 된다.
이 역설의 진짜 위험성은, 그런 미화가 중국 국내의 억압 체제를 강화하고, 국제 사회의 비판 여론을 약화시킨다는 데 있다. 이념적 순수성을 가장한 지정학적 실용주의는, 결국 더 큰 권력에게 이용당하는 길을 열어줄 뿐이다.
서구 좌파가 중국을 비판하는 언어와 서구 우파가 중국을 비판하는 언어를 나란히 놓으면, 그 비판들이 모두 기독교 문명의 깊은 구조 안에서 발화된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좌파는 인권, 개인의 존엄, 평등, 다양성 존중을 외친다. 이는 기독교적 인간 존엄론 — 모든 인간이 신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는 신학 — 의 철저한 세속화 버전이다. 만약 그런 초월적 전제가 없다면, 진화의 우연한 산물로서의 인간에게 왜 보편적이고 불가침의 권리가 있는지 설명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덩샤오핑을 우호적으로 평가한 흠결이 있다만)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이 지적한 대로, 현대 서구 진보주의는 칼뱅주의의 핵심 교의들을 신 없이 계승한 ‘초칼뱅주의(ultracalvinism)’다. 보편적 형제애(Universal Brotherhood of Man), 폭력의 무익함, 사회적 정의를 통한 공정한 분배, 그리고 사회를 과학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신념. 하나님을 제거했지만, 구원론적 열정과 선민의식, 이단 사냥의 본능은 그대로 남아 있다. 중국이 자행하는 위구르족 강제동화, 표현의 자유 억압, 계층 고착화는 이런 초칼뱅주의 세계관을 가진 (탱키 좌파를 제외한)서구의 주류 리버럴들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이단으로 보인다.
우파, 특히 전통 보수주의자들은 자연법, 종교의 자유, 권력 분산과 제한, 전통 질서의 보존을 강조한다. 이 역시 기독교 신학 — 특히 개신교 전통 — 의 직접적 산물이다. 자연법은 신의 영원한 법의 반영이고, 권력 제한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경계하는 장치다.
중국이 이 양측의 비판에 응수하는 방식은 오래되고도 일관적이다. “당신들의 인권 개념, 민주주의, 보편적 가치라는 것은 서구 기독교 문명의 특수한 산물이지, 인류 보편의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논쟁의 핵심이며, 리콴유가 1990년대에 반복했던 주장이고, 시진핑 시대에 ‘중국식 현대화’와 ‘인류 운명 공동체’라는 수사로 재포장되어 반복되는 것이다.
이 응수는 부분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서구의 보편주의적 자기 이해는 실은 특정 문명의 역사적 토양에서 자란 특수한 전제 위에 서 있다. 서구 진보주의는 기독교의 세속화된 후예일 뿐이며, 그 보편성을 주장할 때 이미 문명적 편향을 숨기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문명 다원주의의 문이 열린다. 중국은 유교-법가적 전통에 따라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를 조직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강한 국가, 위계, 집단적 안정, 결과 중심의 실용주의를 우선시하는 자신의 문명적 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문명 다원주의의 문을 열자마자, 중국의 팽창주의(남중국해 군사화, 대만 위협, 일대일로를 통한 채권 함정 외교), 조직적인 기독교·이슬람 탄압, 지적재산권 체계적 도둑질, 해외 화교 네트워크를 통한 영향력 공작, 그리고 타 문명권에 대한 경제·정치적 침투를 어떻게 거부할 것인가. 중국이 자신의 ‘특수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서구와 다른 문명에 자신의 모델을 강요하려는 이중성은, 서구 고보수주의자(古保守主義者, paleoconservative)에게 가장 난해한 이론적·실천적 딜레마를 안겨준다. 야빈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대성당(서구 지배 이념 복합체)이 자신의 초칼뱅주의 신앙을 보편 진리로 강요하려는 시도와, 중국이 자신의 문명적 주권을 주장하는 충돌이다. 어느 쪽도 완전한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문명은 자신의 언어로만 바깥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언어로 된 것은 번역되는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폭력적으로 재구성된다. 중국 신권위주의를 서구 이념 지형 — 우익, 좌익, 권위주의, 전체주의, 파시즘 — 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모든 시도는 이 번역의 폭력 위에 서 있다. ‘우익’이라는 분류도, ‘권위주의’라는 비판도, ‘디지털 전체주의’라는 낙인도 모두 서구적(기독교-세속화) 언어 체계의 산물이다. 중국 신권위주의는 그 언어로 완전히 포착되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유교의 위계와 덕치 이념, 법가의 철저한 국가 통제론, 공산당 레닌주의가 뒤섞인 독특한 혼종으로, 그 전통의 논리로 작동하며 그 전통의 언어로 스스로를 이해한다. 외부에서 가져온 잣대는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들어맞을 뿐, 본질을 놓친다.
이 문명적 이질성을 직시하는 것이 지적 성실성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구 지식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해 범주 안에 중국을 가두려 한다. 그 범주 밖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 불편함을, 그리고 서구 범주의 한계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거울이다.
문명의 이질성은 시장이라는 가장 공통된 공간, 즉 자본주의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본주의는 하나가 아니다. 같은 이름 아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시장들이 존재한다. 막스 베버가 이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날카롭게 지적한 바다. 서구, 특히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발현한 근대 자본주의는 특정한 종교적 에토스 — 프로테스탄트, 특히 칼뱅주의의 예정설 — 에서 비롯되었다. 구원의 불확실성이 세속적 성공을 신의 선택 증거로 해석하게 만들었고, 이는 금욕적 축적의 에토스를 낳았다. 번 돈을 사치로 소비하지 않고 재투자하는 것, 근면·정직·절약을 종교적 의무로 여기는 태도. 이것이 자본주의 초기의 정신이었다. 애덤 스미스 역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상업 사회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공정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시선 아래에서 작동하는 도덕적 질서임을 강조했다. 시장은 개인의 이익 추구를 통해 사회 전체의 부를 증진시키지만, 그 과정에서 공정성, 신뢰, 상호 존중이라는 도덕적 감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은 이러한 윤리적·제도적 인프라(재산권 보호, 계약 이행, 독립된 사법) 위에서 가능했다.
중국의 시장은 이 에토스를 근본적으로 공유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냉정한 관찰이다. 중국 자본주의가 서구 기준에서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 賤民資本主義)’처럼 보이는 현상 — 단기 수익 극대화, 규칙 회피, 관계 자본(꽌시(关系)) 중심, 품질 기만, 지적재산권 침해, 환경 파괴 — 은 개인적 도덕적 결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에 걸친 역사적·문화적·제도적 층위가 누적된 결과이며, 덩샤오핑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구현된 독특한 괴물이다.
유교 전통은 상인을 사농공상의 최하층으로 두었다. 상업은 생산적이지 않고 기생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상업 윤리가 서구처럼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고 승화되는 과정이 없었다. 오히려 관료(관)와 상인(상)의 결탁(官商勾結)이 오랜 전통이었다. 관료의 비호 없이는 대규모 상업이 불가능했던 구조가, 시장 경쟁보다 정치적 연결을 사업 성공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제도가 아니라 아비투스 —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몸에 새겨진 무의식적 행위 체계 — 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쌓인 행위 방식이다.
화교 디아스포라의 천민자본주의는 또 다른 층위에서 작동했다. 동남아시아에서 화교들은 소수 민족으로서 법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재산 몰수 위험이 상시 존재하는 상황에서 합리적 생존 전략은 단기 수익 극대화, 자본 해외 분산, 폐쇄적 신뢰 네트워크(혈연·동향)였다. 막스 베버가 유대인에게 적용했던 ‘천민자본주의’ 개념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국가 보호 바깥에서 살아남는 집단이 개발하는, 불신과 기회주의가 강한 상업 패턴이다. 이 전략이 1970~80년대 해외 화교 자본을 통해 중국 본토로 역수입되면서 중국 자본주의의 DNA가 되었다.
공산주의가 남긴 가장 파괴적인 유산은 제도적·윤리적 진공이다. 마오쩌둥 시대, 특히 문화대혁명은 전통적 상업 관행, 가족 경영 윤리, 시장의 암묵적 규범을 철저히 말살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1978~)은 이 폐허 위에서 시작되었다. 시장은 도입되었지만, 시장을 규율할 법적·윤리적 기반(명확한 사유재산권, 독립된 사법, 신뢰 인프라)은 거의 없었다. 결과는 극단적 기회주의의 지배였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 천민자본주의의 본질은 민신 페이(Minxin Pei)가 《중국의 정실 자본주의(China’s Crony Capitalism)》에서 분석한 대로, 당-관료-기업의 철저한 결탁이다. 1990년대 이후 국유자산(토지, 광산, 국유기업)의 통제권이 지방 관료에게 분산되었으나 소유권은 불명확하게 남겨두면서, 잘 연결된 엘리트들이 국가 자산을 저가로 사유화하거나 약탈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땅 투기, 은행 대출의 정치적 배분, 가족 기업(홍색 귀족(红色贵族))의 특혜, 뇌물과 관직 거래가 일상화되었다. 이는 단순한 부패가 아니라 체제 유지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 모델은 여러 경제학파의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애덤 스미스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 시장은 《도덕감정론》이 강조하는 공정성과 상호 신뢰를 결여한 채, 순수한 이기심과 권력 결탁만 남아 있다. 스미스가 경고했던 “상인들의 음모”가 국가 권력과 결합되어 제도화된 형태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독일 역사학파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보호무역, 산업 육성)을 강조했지만, 중국의 경우 국가는 산업 보호를 넘어 당의 권력 유지와 엘리트 약탈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리스트가 꿈꾼 ‘국민경제’의 생산력 증진이 아니라, 단기 성장과 정치적 충성만을 우선시하는 왜곡된 형태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신자유주의자나 미제스·로스바드·호페 같은 오스트리아학파에게 중국 모델은 더 큰 경악의 대상이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강력한 사유재산권, 최소한의 국가 개입, 화폐 안정, 자유로운 가격 메커니즘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중국은 국가가 자원을 배분하고, 당이 ‘승자’를 결정하며, 화폐와 금융 시스템을 정치적으로 조작하는 정실 자본주의이다. 이는 오스트리아학파가 비판하는 ‘중앙계획의 계산 문제’와 ‘규제 포획’의 최악의 조합이다. 시진핑 시대 ‘공동부유’와 민간기업에 대한 당의 통제 강화(앤트그룹 사태 등)는 시장의 자발적 질서를 더욱 왜곡하고 있다.
결국 중국 천민자본주의는 놀라운 성장률을 달성했지만, 그 대가는 구조적 취약성과 도덕적·제도적 황폐화다. 신뢰 부족, 품질 스캔들(멜라민 우유, 부실 철도·부동산), 부채 폭증, 인구·환경 위기, 해외 투자에서의 채권 함정과 기술 탈취 — 이 모든 것이 아비투스와 제도의 산물이다. 서구 자본주의가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온 윤리적·법적 인프라 없이, 권력과 돈의 결탁만으로 운영되는 시장은 결국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이 이질성은 문명적 차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같은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인간과 권력, 신뢰와 윤리의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신뢰: 인간 본성과 사회 질서의 재구성(Trust: Human Nature and the Reconstitution of Social Order)》에서 신뢰에 대해 쓴 것은 단순한 사회학적 관찰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의 해부이자, 경제와 정치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를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문화적 인프라에 대한 분석이다.
사회마다 신뢰의 반경은 극적으로 다르다. 일부 사회에서는 낯선 사람조차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광범위한 사회적 신뢰가 존재하는 반면, 다른 사회에서는 가족이나 가까운 혈연·지연 관계로 한정된 좁은 신뢰만이 지배한다. 신뢰의 반경이 넓을수록 더 복잡하고 대규모이며, 장기적인 협력이 요구되는 경제 조직이 가능해진다. 독일의 세계적 대기업 생태계, 일본의 계열사·케이레츠(系列) 기반 제조업 네트워크, 스칸디나비아의 협동조합 경제와 복지 국가 모델 — 이 모든 것은 가족을 넘어선 광범위한 사회적 신뢰와 제도적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미국의 벤처 캐피털 시장과 주식시장 역시, 계약과 공시, 사법적 보호에 대한 상당한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가족 신뢰의 범위가 매우 좁고, 사회적 신뢰가 현저히 약한 사회였다. 《꽌시(關係)》 — 인적 관계망, 혈연·동향·학연·직연을 기반으로 한 개인적 신뢰 네트워크 — 가 법적 계약과 제도적 규범을 대체한다. 소규모 기업이나 지역 시장에서는 이 꽌시가 상당한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고, 익명의 거래가 늘어나며, 복잡한 공급망과 장기 투자 구조가 요구되는 현대 경제에서는 결정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꽌시 네트워크 바깥의 거래에서는 신뢰 보증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회주의적 행동이 만연한다. 중국 제품의 반복되는 품질 스캔들(2008년 멜라민 분유 사태, 각종 가짜 백신·의약품, 부실 건설 프로젝트), 국제적 계약 불이행, 체계적인 지적재산권 침해, 기술 탈취 — 이 모든 것은 개인의 단순한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문화·제도·역사의 구조적 산물이다.
공산주의, 특히 마오쩌둥 시대의 문화대혁명(1966~1976)은 이 신뢰의 기반을 더욱 좁히고 파괴했다. 자식이 부모를, 학생이 교사를, 이웃이 이웃을 고발하고 비난하도록 강요받는 시대였다. 가족이라는 마지막 신뢰의 단위마저 국가 권력이 의도적으로 균열시켰다. 그 트라우마는 공식 역사 서술에서는 지워졌지만, 행동 방식과 무의식 속에 깊이 새겨져 세대를 넘어 전해진다. “누구도 완전히 믿지 마라. 관계는 이용 가능한 자원일 뿐이다.” 이는 교과서에서 가르쳐진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처절한 학습이었다.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극단적 불신 문화, ‘인맥’ 중심의 제로섬 게임적 사고, 단기적 이익 추구 경향은 이 역사적 경험이 남긴 깊은 상흔이다.
더글러스 노스(Douglass North)가 제도 경제학에서 강조한 것은 바로 이 문제의 또 다른 언어다.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은 기술이나 자본 축적이 아니라, 거래 비용을 낮추는 제도적 인프라다. 명확한 사유재산권 보호, 계약의 신뢰성 있는 이행,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분쟁 해결 메커니즘, 그리고 부정부패를 억제하는 통치 구조가 없으면 모든 거래에 ‘불신의 세금’이 추가된다. 중국은 개혁개방 40여 년 동안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지만, 이 제도적 인프라를 근본적으로 발전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정치 권력의 자의적 개입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가 공고화되었다.
시진핑 시대 들어 이 문제는 더욱 명확해졌다. 2020년 잭 마의 앤트그룹(螞蟻集團) 기업공개(IPO)가 상장 직전에 강제 중단된 사건은 단순한 금융 규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중국에서 재산권이 법률에 의해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당 최고 지도부와의 정치적 관계에 달려 있다는 강력한 신호였다. 앤트그룹뿐 아니라 텐센트, 알리바바, 디디추싱 등 민간 기술 기업들에 대한 연이은 규제와 숙청, 부동산 개발사 헝다(恒大) 그룹의 디폴트 사태,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 폭증 — 이 모든 것은 ‘국가 자본주의’라는 이름 아래 재산권의 불확실성이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해외 기업과 투자자들이 중국에 투자할 때 알면서도 잘 입 밖에 내지 않는 구조적 리스크의 핵심이다. 오늘날 중국 경제의 부동산 위기, 청년 실업, 디플레이션 압력, 해외 자본 유출 가속은 이 신뢰와 제도의 결핍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결국 중국의 낮은 사회적 신뢰와 취약한 제도적 기반은, 단기적으로는 강한 국가 권력이 밀어붙이는 ‘집중 투자’ 모델로 고도성장을 가능케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의 질적 도약, 지속 가능한 시장 질서, 그리고 국제 사회와의 깊은 경제 통합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문명은 신뢰의 질에 따라 그 한계가 정해진다. 중국은 그 한계를, 화려한 성장 통계 뒤에 숨긴 채로, 점점 더 드러내고 있다.
중국과 달리 일본을 보면, 비기독교 사회도 천민자본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 고품질·장기 지향적 시장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는 중국 모델의 한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비교 사례다.
모노즈쿠리(物作り, 물건 만들기) — 일본의 장인 정신 — 는 단순한 기술 전통이나 생산 방식을 넘어 하나의 형이상학이자 삶의 철학이다. 특정 기술을 통해 자아를 완성한다는 관념, 즉 ‘도(道)’의 실천이다. 다도(茶道), 검도(劍道), 유도(柔道)에서처럼, 장인의 기술도 인격 수양의 경로다. 불량품을 만드는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실패가 아니라, 장인으로서의 인격적 실패이자 도(道)로부터의 이탈이다. 이 관념이 일본 제조업의 품질 집착과 지속적 개선(改善)을 가능하게 했으며, 서구 기준에서도 인정받는 높은 신뢰성을 만들어냈다.
이 정신의 기원은 불교, 특히 선종(禪宗)과 신토(神道)의 복합에 있다. 선종에서 일상적 행위 — 밥 먹기, 청소, 일하기 — 하나하나가 모두 수행(修行)이라는 관념이 핵심이다. 어떤 일이든 완전히 몰입해서 하는 것이 도의 실천이라는 태도. 이는 루터교의 직업소명설 — 모든 직업이 신의 부름이라는 개신교 윤리 — 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결정적인 것은 기독교냐 불교냐가 아니라, 일상적 노동과 기술에 초월적·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적 구조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중국이 이 전통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겹이다. 과거제도(科舉制度)는 수천 년 동안 사회적 상승의 거의 유일한 정당한 경로였기 때문에, 장인적 탁월성이나 기술적 숙련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과거에 합격하면 관리가 되어 출세하는 것이 최고의 길이었다. 반면 일본은 에도 시대부터 특정 기술의 최고 장인인 명장(名匠)이 사회적으로 높은 존중을 받았다. 메이지 유신(1868) 이후에도 이 장인 정신은 근대 산업으로 이어졌다.
일본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은 중국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메이지 유신 지사들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외치며 서구 기술을 적극 도입했지만, 동시에 전통 윤리를 파괴하지 않고 융합하려 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 1840–1931)다. 그는 《논어와 주판(論語と算盤)》에서 유교의 도덕(논어)과 경제 활동(주판)을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되어야 할 관계로 보았다. “도덕 없이 경제는 지속 불가능하고, 경제 없이 도덕은 공허하다”는 그의 철학은,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강조하며 일본 기업가 정신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수백 개의 기업을 설립하면서도 윤리적 경영을 실천하려 했고, 이는 일본 자본주의에 ‘도덕적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색채를 입혔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관료 주도 산업화와 민간 기업가 정신을 결합했다. 만주국(滿洲國) 시대의 혁신 관료(革新官僚)들은 국가 주도 개발 모델을 실험하기도 했으나, 본토에서는 전후 자민당 체제 아래에서 더 안정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전후 일본은 고도성장기 ‘일본식 경영’(종신고용, 기업별 노동조합, 장기적 관계 중심)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일본도 완벽하지 않았다. 1980~90년대 버블 경제 붕괴 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 총리는 1996년 ‘빅뱅(Big Bang)’ 금융 개혁을 추진했다. 런던의 빅뱅을 본떠 금융 시장 자유화, 규제 완화, 경쟁 촉진을 통해 도쿄를 국제 금융 중심지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는 신자유주의적 개혁 — 우체국 민영화, 구조조정, 규제 완화 — 을 강력히 밀어붙이며 ‘고통을 동반한 개혁’을 단행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아베노믹스(Abenomics)는 통화 완화, 재정 확대, 성장 전략(3개의 화살)을 통해 디플레이션 탈출과 기업 활성화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중국처럼 정치 권력의 자의적 개입이 시장을 지배하는 대신, 제도적 개혁과 기업 자율성을 어느 정도 조화시키려 노력했다.
물론 일본 모델에도 문제(고령화, 잃어버린 30년, 관료주의 등)가 많았지만, 중국과 비교하면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일본은 장인 정신과 윤리적 자본주의 전통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제도적 신뢰와 장기 지향성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반면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장인 기술 전통이 대대적으로 파괴되었다. 수천 년의 도자기, 칠기, 직물 기술이 ‘부르주아 잔재’로 비판받고 말살되었다. 기술 전수의 단절은 세대 간 암묵지(tacit knowledge)의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그 공백은 오늘날까지 중국 제조업의 품질 문제와 혁신의 한계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중국처럼 비기독교 사회임에도 노동과 기술에 초월적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 구조를 통해 천민자본주의를 상당 부분 극복했다. 중국은 그 구조를 갖추지 못한 채, 권력과 돈의 결탁, 단기 이익 중심의 아비투스 위에서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비교는 문명적 아비투스가 경제 체제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이 모든 것이 수렴하는 지점은 하나다. 이념은 아비투스의 산물이지, 아비투스가 이념의 산물이 아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한 아비투스(habitus)는 개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행동과 판단을 결정짓는 성향 체계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몸과 마음에 새겨진, 거의 본능에 가까운 ‘습성’이다. 의식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역사와 환경, 제도와 일상의 반복적 경험이 침전되어 만들어진 무의식적 구조다. 이 아비투스가 이념이나 제도, 법률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인간과 사회의 작동 방식을 결정한다. 이념은 아비투스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언어일 뿐, 그 뿌리를 바꾸지는 못한다.
자본주의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에서 독일의 정밀 기계 산업과 중국의 대량 생산·단기 투기 시장이 완전히 다르게 작동하는 것, 보수주의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에서 러셀 커크의 초월적·전통적 보수주의와 중국 신권위주의자의 결과주의적 권력 숭배가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는 것, 공산주의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에서 마르크스의 서구 계몽주의 기반 공산주의 이론과 마오쩌둥이 만들어낸 농민 기반의 전체주의적 폭력이 근본적으로 다른 체제를 낳은 것 — 이 모든 차이의 밑바닥에는 아비투스가 자리 잡고 있다.
독일에서는 개신교 윤리와 장인 정신, 법치주의 전통이 결합되어 장기적 신뢰와 정밀성을 중시하는 아비투스가 형성되었다. 중국에서는 유교적 관료 중심주의, 법가적 권력 숭배, 문화대혁명의 트라우마, 화교식 생존 전략이 뒤섞여 단기적 기회주의, 정치적 연결, 불신을 기본값으로 하는 아비투스가 자리 잡았다. 같은 ‘시장경제’를 도입해도,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로 발전한 반면, 중국은 관상결탁형 국가자본주의로 변질되었다. 냉전 시절 같은 ‘공산주의’ 깃발 아래서도 소련과 중국, 베트남,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등이 서로 다른 길을 간 이유 역시 아비투스의 차이다.
이것이 보편주의의 가장 불편하고도 냉혹한 한계다. 동일한 언어가, 동일한 제도가, 동일한 이념이 다른 토양에 이식되면, 예상했던 것이 아니라 그 토양에 맞는 다른 것이 자란다. 민주주의를 이식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 사회의 아비투스가 민주주의라는 언어를 빌려 권위주의를 정당화하거나, 형식적 선거를 통해 새로운 엘리트 독점을 강화하는 ‘민주적 권위주의’를 만들어낸다. 중국이 1980년대부터 서구의 시장경제와 법치, 현대화 모델을 부분적으로 수입했음에도 결국 당의 절대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렴된 것이 그 증거다.
서구가 수출하는 ‘보편적 가치’ — 자유민주주의, 인권, 자유시장 — 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서구 기독교-계몽주의 아비투스 위에서 꽃피운 열매이지, 모든 문명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만능 열쇠가 아니다. 중국에 민주주의를 강요하거나,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라고 압박한다고 해서 서구식 자유주의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기대는, 아비투스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순진한 오판이다. 오히려 그런 압력은 중국 공산당으로 하여금 ‘외부 세력의 간섭’이라는 명분으로 내부 통제를 더욱 강화하게 만들 뿐이다.
이 관찰은 허무주의적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를 오래 들여다본 자가 도달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사실이다. 인간 사회는 이념의 논리가 아니라,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아비투스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제도와 이념을 바꾸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아비투스를 바꾸는 것은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긴 시간과 극한의 충격을 필요로 한다. 문화대혁명처럼 의도적으로 아비투스를 파괴하려 했던 시도조차, 결국 새로운 형태의 불신과 권력 숭배 아비투스를 낳았을 뿐이다.
중국 신권위주의가 오늘날 보여주는 ‘효율적’ 성장과 강한 통제는, 그 뒤에 깔린 아비투스의 취약성을 감추지 못한다. 신뢰의 결핍, 장기적 비전의 부재, 권력에 대한 과도한 의존 — 이 모든 것이 위기가 닥쳤을 때 체제의 균열로 나타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문명은 자신의 아비투스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아비투스가 만들어 내는 한계는, 화려한 표면 아래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작동한다.
문명은 항상 자신의 범주로 바깥을 이해하려 한다. 중국 신권위주의를 우익이라 부르거나 파시즘이라 부르거나 혹은 그냥 극좌라고 부르는 것은 서구의 범주 체계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 범주는 서구 기독교 문명의 역사적 경험에서 나왔다. 다른 형이상학에서 자란 것을 이 범주로 포착하면 어긋난다.
이 어긋남을 직시하는 것이 지적 성실성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과 문명은 그 어긋남을 무시한다. 자신의 범주로 편입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문명을 오래 관찰하는 자의 조건이다.
서구가 중국을 비판하는 언어의 기독교적 구조, 중국이 서구를 반박하는 언어의 유교-법가적 구조, 그 두 구조 사이에서 탱키 좌익들이 반미 감정으로 중국을 옹호하는 구도—이 모든 것이 한 장면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인간이 이념과 신념을 도구로 쓰는 진화된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이념은 언제나 무언가를 위한 것이었다. 부족을 정당화하거나, 이해관계를 은폐하거나, 불안을 진정시키거나. 이념을 그 기능으로 환원하는 시각이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 실제로 이념을 사용해 온 방식이다.
신권위주의는 사실 마냥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강한 국가가 시장을 위에서 관리하며 발전을 이끈다는 논리는 박정희의 한국에서, 리콴유의 싱가포르에서, 메이지 유신 시기 일본에서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모두가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거두었다. 고도성장을 만들어냈지만 제도적 부패도 함께 자랐다. 강한 국가는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시장을 규율하는 법치를 자신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을 어려워한다. 강한 국가는 자신에 대한 견제를 본능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문명의 내부 논쟁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평등주의적 충동과 위계적 충동 사이의 긴장은 기독교 자체의 태생적 모순에서 온다. 모든 인간이 신 앞에 평등하다는 명제와, 신이 정한 질서를 보존해야 한다는 명제는 언제나 충돌한다. 이 긴장이 서구 역사의 엔진이었다. 그것은 해소되지 않았다. 다른 언어로, 다른 세대에 의해 반복될 뿐이다.
천민자본주의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법적 보호 없이 시장 안에 던져진 집단은 언제나 꽌시와 단기 수익과 기회주의로 반응했다. 중세 유럽의 유대인 상인들이 그랬고, 동남아의 화교들이 그랬으며, 19세기 미국의 이민자 공동체들이 그랬다. 제도적 신뢰가 없는 곳에서 인간이 만드는 시장의 형태가 있다. 그것은 문명권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인간은 반복한다. 다른 이름으로, 다른 지리에서, 다른 언어로. 그러나 같은 구조를 만든다. 강한 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념을 발명하고, 그 이념이 제도가 되고, 그 제도가 부패하고, 그 부패가 새로운 이념을 부른다. 이 순환이 문명이다. 그리고 이 순환은 끝나지 않는다. 다음 형태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문명은 안정과 붕괴 사이에서 영원히 흔들린다.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지 않는 것이 지속이다. 그 흔들림을 멈추려는 모든 시도—완전한 질서를 약속하는 이념, 완전한 자유를 약속하는 시장, 완전한 평등을 약속하는 혁명—는 흔들림을 멈추는 대신 더 격렬한 진동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러한 문명의 충돌 속에서, 중공의 신권위주의와 천민자본주의가 결국 드러낼 한계를 냉정하게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1] 여권독계탕 (女权毒鸡汤, 뉘취안 두지탕): ‘여성주의 독치킨스프’라는 의미. 위로와 공감을 주는 글을 뜻하는 ‘치킨스프(心灵鸡汤)’에 ‘독(毒)’을 붙인 말이다. 남성을 착취하고 여성의 이익만 극대화하라고 세뇌하는 ‘독이 든 페미니즘 사상’이라는 멸칭.
[2] 여권 (女拳, 뉘취안): 여성의 권리를 뜻하는 ‘여권(女权)’과 발음이 같은 ‘주먹 권(拳)’ 자를 쓴 언어유희적 멸칭. 한국의 ‘메갈’, ‘꼴페미’와 유사한 뉘앙스. 페미니스트들이 논리 없이 공격성(주먹질)만 보인다고 조롱할 때 쓰며, 이들의 활동을 ‘체권을 행사하다(打拳, 다취안)’라고 비하한다.
[3] 중화전원여권 (中华田园女权, 중화 탠위안 뉘취안): 중국의 똥개(토종견)를 뜻하는 ‘중화전원견(中华田园犬)’에서 따온 말로, 번역하면 대략 ‘방구석 페미니즘’ 또는 ‘토종 꼴페미’가 된다. 의무는 지지 않고 권리만 요구하는 ‘뷔페미니즘’ 성향의 중국 페미니스트들을 비하하는 가장 대중적인 낙인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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