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전통에 대한 보수(保守)와 보수(補修)

병든 전통에 대한 보수(保守)와 보수(補修)


정치 언어는 대부분 빈 그릇이다. 화려한 형태만 있고, 정작 무엇을 담을지에 대한 본질은 없다. 그 그릇에 무엇을 채우느냐는 언제나 권력과 이해관계가 결정한다.


보수(保守)라는 단어가 특히 그렇다. 保(지킬 보)와 守(지킬 수), ‘지킨다’는 뜻을 두 번이나 겹쳐놓았지만, 무엇을, 왜,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답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이 말은 시대와 권력에 따라 수없이 다른, 때로는 정반대의 내용으로 채워져 왔다.


이 말장난을 벗어나려면 우리는 補修(보수; 기울 보, 닦을 수)라는 개념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망가진 것을 고치고, 기능을 회복시키며, 공동체가 엔트로피를 향해 서서히 무너지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하는 작업.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지켜야 할 정신이자, 보수의 본래 취지에 가장 가까운 태도다.


한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이 실제로 50년, 60년 넘게 지켜온 것은 무엇인가. 카르텔화된 농업 유통 구조와 농협의 독점적 지위, 법조계의 견고한 진입 장벽, 공공기관과 관료 사회의 경직된 서열주의와 무사안일주의 등이다. 이것들을 “오래된 전통” 혹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해왔다.


그러나 정작 공동체의 핵심 질서 — 국가 안보, 자유 시장의 건전한 경쟁, 법치의 중립성, 반공·반좌익 정신, 그리고 국민 전체의 장기적 번영 — 를 지키는 데는 무기력했다.


1988년, 민주화 물결이 한창이던 시점에 양동안 교수는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글에서 통렬하게 지적했다. 좌익 세력이 대학, 노동계, 문화예술계, 언론, 종교계 등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조직적으로 침투하여 헤게모니를 확대하고 있는데도, 우익은 조직력도, 연대의식도, 반격의 의지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좌익세력은 … 사회 각 분야에 빠짐없이 침투하여 그들의 세력을 부식·확대하고 있다. … 이처럼 각 분야에 침투한 좌익은 … 반공의식을 약화시키고 반미 감정을 고조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 그런데도 이 나라의 우익은 그에 대해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 [링크: https://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06]


양동안 교수가 지적한 대로,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은 기득권의 경제적·사회적 특권은 열심히 지켰지만, 정작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이념적·조직적 공세에 대해서는 나태하고 비겁하게 대응했다. 대학을 좌경화의 요새로 내주고, 노동계를 계급투쟁의 장으로 넘겨주고, 문화와 언론에서 서서히 영향력을 상실했다.

결국 그들이 지킨 것은 ‘보수’라는 이름이 아니라, 자기 진영의 안위와 기득권이었다. 공동체 전체의 장기적 질서와 기능은 점차 갉아먹히는 것을 방관하거나, 심지어 일부는 타협하며 살아남는 데 급급했다. 이는 진정한 보수(保守)가 아니라, 기생적 관행의 연장에 불과하다.


반대편 역시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은 거창한 구조 전환과 평등의 이상을 외치면서도, 현존하는 제도의 미세한 마모와 부패 축적, 작은 틈새를 메우는 조용한 유지보수 작업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방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양쪽 모두 자기 진영의 카르텔을 키우고 유지하는 데 더 집중했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진짜 기준은 이념적 구호가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행하는 행위가 공동체의 장기적 기능을 강화하는 보수(補修)인가, 아니면 특정 집단의 기득권을 영속화하는 단순한 보수(保守)인가 하는 실질적 효과다.


영어 Conservative의 어원은 라틴어 Conservare(콘세르바레)다. 이는 Con- (함께, 철저히, 완전히 — 강조·강화 접두사(intensive prefix))과 Servare(세르바레)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Servare는 단순히 ‘지킨다’는 의미를 넘어 위험으로부터 구하다, 지켜보다, 온전하게 보전하다, 돌보다는 뉘앙스를 지닌 고대 라틴어 동사다. PIE(인도유럽조어) 어근 ser- (보호하다, 지키다)에서 유래했으며,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유지한다’는 적극적이고 경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Con- 접두사가 붙으면서 의미가 강화된다. 단순한 ‘지키기’가 아니라, 철저하게, 함께, 완전하게 보전한다는 뜻으로 승화된다. 따라서 Conservare는 “함께 지켜서 온전하게 유지하다”, “위험으로부터 공동체를 구하고 보존하다”, “시간의 침식으로부터 지혜와 제도를 지켜내다”는 적극적 행위를 가리킨다.


이 어원은 영어에 여러 중요한 파생어를 남겼다:


- Conserve / Conservation: 손상·손실·부패로부터 보호하고 유지하는 행위. 자연환경을 ‘보전’한다는 의미로도 널리 쓰인다.

- Preserve: pre- (앞서) + servare로, 미리미리 지켜 미래까지 온전하게 남기는 것.

- Observe: ob- (앞에, 마주하여) + servare로, 주의 깊게 관찰하고 따르는 것.

- Reserve: re- (다시, 뒤로) + servare로, 남겨두고 보전하는 것.

- Conservator: 보호자, 관리자, 수호자.


이 계보를 보면 Conservative는 결코 현상 유지(status quo)나 수동적 기득권 보호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과 시간, 엔트로피로부터 공동체의 소중한 유산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상태로 넘겨주는 책임 있는 행위를 본질로 한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프랑스 혁명을 비판하며 현대 보수주의의 철학적 기틀을 세울 때, 바로 이 어원의 정신을 구현하려 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가들이 “인류가 수백 년 동안 피와 경험, 시행착오로 축적해온 제도적 지혜와 관습, 암묵적 지식”을 한꺼번에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버크에게 보수주의는 귀족 특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유기체가 오랜 시간 쌓아온 집단적 지혜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급진적 파괴가 아닌 유기적·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이어가는 태도였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이 개념은 빠르게 변질되었다. ‘보수’라는 이름은 각국 기득권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특권을 정당화하는 빈 그릇이 되어 버렸다. 프랑스에서는 반동(réaction)의 상징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기득권 수호’나 특정 이념 방어의 협소한 의미로 축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버크가 의도한 본래의 Conservare — 공동체를 위험으로부터 구하고, 오랜 축적물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적극적 태도 — 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바로 보수(補修)의 정신과 깊이 맞닿아 있다. 망가진 부분은 과감히 고치되, 전체를 파괴하지 않고 기능을 회복시키며 다음 세대에게 넘기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수다.


그러나 이 개념은 현실에서 빠르게 변질되었다. 각국의 기득권은 ‘보수’라는 그릇에 자신의 이익을 채워 넣었다.


전통을 지킨다는 말은 본능적으로 무게가 있다. 오래된 것에는 시간의 축적과 지혜가 깃들어 있다는 직관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의, 어떤 내용을 가진 전통을 지키느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기득권은 자신에게 유리한 최근 관행을 ‘전통’으로 포장한다. 수십 년 된 담합 구조, 진입 장벽, 유착 관행 등이 그렇게 성스러운 전통이 된다. 공동체 전체의 건강과 미래 경쟁력에는 해를 끼치면서도 특정 집단에게는 이익을 주기 때문에 보호된다.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 a.k.a. Mencius Moldbug)은 전통을 평가하는 실용적 기준을 제시한다.


"어떤 전통이 그것을 따르는 개체들로 하여금 자신의 개인적 목표를 해치는 오산을 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미제스적 병리성(Misesian morbidity)을 드러낸다. 만약 그 전통이 개체들로 하여금 자신의 유전자의 생식적 이익을 해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다윈적 병리성(Darwinian morbidity)을 갖는다. 만약 그 전통을 따르는 것이 개인에게는 유리하거나 최소한 손해가 없지만(즉, 탈전통주의자에게 보복이 없거나 보상이 주어지며), 전체적으로는 해를 끼친다면, 그 전통은 기생적(parasitic)이다. 반대로, 그 전통을 따르는 것이 개인에게는 손해이지만 집단 전체에는 이익이 된다면, 그것은 이타적(altruistic)이다.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는 공생적(symbiotic)이고, 양쪽 모두에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악성(malignant)이다. 이러한 각각의 분류는 미제스적 병리성이나 다윈적 병리성 어느 쪽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주제가 비합리적(arational)이기는 하나, 미제스적이거나 다윈적인 병리성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명하게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 《How Dawkins Got Pwned Chapter 2: M.41 and M.42》, MENCIUS MOLDBUG · OCTOBER 4, 2007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7/10/how-dawkins-got-pwned-part-2/]


조선 후기 성리학 체제는 야빈의 기준으로 볼 때 명백히 악성(malignant)에 가까운 전통이었다. 박정희는 이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해부했다.


"이성계의 군사 쿠데타는 정권교체에 그쳤을 뿐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에는 다가갈 수 없었다. 나라의 지도원리를 유교에 고정시킨 이성계는 유교 진흥을 정책의 슬로건으로 내세워 국민교육에 활용했고 관직에 나가기 위한 필수과목으로 삼았다. 그렇게 조선의 관직은 유교 지식인 출신이 차지했고, 이들은 지배층을 이루면서 실제 땅을 경작하는 농민을 착취하며 자신은 놀고먹는 지주가 되었다. 양반이라는 사회적 신분은 대대로 물려주고 또 물려받는 특권이었다. 이처럼 유교사상은 신분의 차별을 당연시하고 임금과 신하, 윗사람과 아랫사람, 그리고 주인과 종의 관계를 합리화시켜주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회에 투영되었다. (...)조선왕조는 유교라는 가족적이고도 윤리적인 성격을 띤 사상을 지배원리로 하는, 그 본질상 전체주의라 하겠다."


— 박정희, 『평설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기파랑(2017), pp. 56~57


박정희는 특히 기술·산업 발전을 가로막은 성리학의 폐해를 강하게 비판했다.


"중앙관서의 기술직 종사자들은 양반 이하의 사무원 취급밖에 받지 못했다. 기술직을 업신여기는 사조가 팽배해서 수공업에 종사하는 기술사무원이나 종들은 '~쟁이'라는 천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상공업이나 과학기술을 업신여기는 생각들은 후일 근대화를 가로막는 암(癌)과 같은 역할을 했다. (...) 벼슬이면 다라는 생각에 감투 쓰는 일에만 모두가 집중하는 어두운 사회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근대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지방자치의 성장을 방해하고 '나으리'에게 아부하는 근성을 길러냈다. 나랏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얻지 못했던 백성은 나랏일을 자기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겼고, 그러다 보니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날 토양은 전혀 만들어지지 못했다."


— 박정희, 『평설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기파랑(2017), pp. 57~58


또한 당파싸움의 폐해를 이렇게 기록했다.


"본디 토론이나 논쟁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을 뜻하는 것인데, 조선의 당파싸움에서 시비는 그야말로 문제도 안 되는 남의 흠을 찾아 헐뜯고 공연히 시비를 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당파싸움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았다. 송시열(宋時烈)과 대립각을 세웠던 남인파 허목(許穆)은 주자학 말고 다른 학문도 진리가 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사문난적의 가시관을 썼다. 이렇게 사소한 시빗거리에서 시작한 당파싸움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으로 발전해 가곤 했다."


— 박정희, 『평설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기파랑(2017), p. 63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의 대립이 '동인, 서인'으로 발전, 동인은 다시 '남인, 북인'으로, 북인은 다시 '대북, 소북'으로 대북이 다시 '육북(肉北), 골북(骨北)'으로, 소북은 별도로 '청소북(淸小北), 탁소북(濁小北)'으로 남인은 '청남(淸南), 탁남(濁南)'으로, 서인은 '청남(淸南), 훈남(勳南), 소남(少南), 노남(老南)'으로 분열, '노론(老論), 소론(少論)'의 당파가 일어나고, 소론은 다시 '벽파(僻派), 시파(時派)'로 참으로 어떤 계보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 박정희, 『평설 국가와 혁명과 나』, 기파랑(2017), pp. 205~206


"선조 24년(1591) 3월 조정에서 사신을 일본에 보내 왜란의 기미를 탐색했다. 그런데 다녀온 자들의 보고가 서로 갈렸다. 정사(正使)로 간 동인의 황윤길(黃允吉)은 왕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눈빛이 찬란하고 야심만만해 보이니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라고 적의 정세를 똑바로 보고했다. 그러나 부사(副使)로 갔던 서인의 김성일(金誠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눈이 쥐눈깔 같고 인물이 보잘것없으니 감히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 소견을 들고 나왔다. 그 결과가 임진왜란이었다. 이렇게 당파싸움은 수시로 겨레를 위험한 고비로 몰아넣었다."


— 박정희, 『평설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기파랑(2017), pp. 65~66


"조선 사회가 후세에 남긴 가장 못된 유산이 사화(士禍)와 당쟁이다. 그것은 관인 지배층 내부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권력투쟁이었다. 이 싸움은 페어플레이가 아니었다. 헐뜯고 시기하고 모함하는, 일종의 테러와 같은 잔인성을 띤 음성적인 당파싸움이었다. 반대 당이나 정치적인 적수에 대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그 결과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고 평화로운 정치세력의 교체를 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후세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적지 않은 장애와 해독을 끼쳤다."


— 박정희, 『평설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기파랑(2017), p. 63


박정희는 사대주의와 체념 문화, 비판정신의 부재까지 성리학의 산물로 보았다. 그리고 한국사 전체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서 퇴영(退嬰)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였다. 그 어느 시대에 변경을 넘어 타국을 지배하였으며, 그 어느 시기에 해외의 문물을 널리 구해 사회의 개혁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며, 또 그 어떤 시대에 민족국가의 위세를 밖으로 과시하고 산업과 문화로써 독자적인 자주성을 떨친 바가 있었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강대국에 밀리고 치여 외래문화에 맹목적으로 동화되었고, 원시적인 산업의 범위를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으며 (...) 불교에서 유교로 문물제도가 바뀜에 따라 유교가 급격하게 민족의 자주적인 기개를 좀먹었다.(...) 우리가 진정 민족의 일대 중흥을 기하려면 무엇보다 이 역사를 새롭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악(惡)의 창고 같은 우리의 역사는 차라리 불살라 버려야 한다."


— 박정희, 『평설 국가와 혁명과 나』, 기파랑(2017), pp. 204~209


한국 역사를 직시하면 지킬 만한 ‘위대한 전통’을 찾기 어렵다. 박정희의 위 인용은 단순한 감정적 비판이 아니라, 500년 조선 체제의 구조적 병리를 냉철하게 진단한 것이다. 기술 경시, 당파 분열, 사대주의, 체념 문화, 전체주의적 인식론 — 이 모든 것이 성리학이라는 “우주의 이치”를 독점하는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나온 결과였다.


이 실패의 패턴을 정확히 파악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 앞으로의 보수(保守)의 출발점이다.


보수(保守)는 병든 관행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질서를 지키되, 그것이 훼손되었을 때 과감히 고쳐 나가는 과정 자체를 지키는 것이다.


농부가 잡초가 오래 자랐다고 그것을 ‘전통’이라며 두지 않는 것처럼, 사회도 마찬가지다. 잡초를 뽑고, 물꼬를 바로잡고, 무너진 둑을 고치고, 토양을 새로 갈아엎는 반복적인 노동이야말로 보수의 본분이다.


보수(補修)를 보수(保守)한다. '낡거나 부서진 곳을 깁고 닦아서 고치는 행위' 자체를 지킨다. 이것은 드라마틱하지도, 영광스럽지도 않다. 조용하고, 지루하고, 끝이 없는 노동이다. 그러나 문명이 지속되는 유일한 길이다.


보수 대 진보라는 프레임은 강력한 사고의 감옥이다. 이 안에 갇히면 “이 정책이 실제로 망가진 것을 고치고 공동체를 더 튼튼하게 만드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제대로 던지기 어렵다. 모든 질문이 진영 논리에 빨려 들어가 왜곡된다.


이 함정을 벗어나려면 실천이 먼저 쌓여야 한다. 보수(補修)의 정신을 실제로 구현하는 사람과 조직, 사례가 쌓일 때 새로운 언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아직은 개념이 언어보다 앞서 있는 태동의 단계다.


건물은 무작정 방치하면 무너진다. 논둑은 보수하지 않으면 터진다. 하수도는 청소하지 않으면 역류한다.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다. 사회 제도 역시 방치하면 부패가 고착되고, 카르텔이 경제를 좀먹으며, 공동체의 신뢰와 기능이 서서히 해체된다.


그런데 유지보수는 티가 나지 않는다. 잘 되고 있으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고, 망가지고 나서야 눈에 띈다. 정치적으로 보상받기 어렵고, 언론에 뉴스가 되지 않고, 선거에서 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뒷전으로 밀린다. 그래서 모든 정권(특히 민주정 하에서)에서 유지보수는 영원한 후순위가 된다. 


인간의 뇌는 극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강렬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수십만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 — 사바나, 밀림, 소규모 부족 사회 — 에서는 생존과 번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빠른 판단과 강렬한 감정 반응이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포식자의 움직임, 부족 내에서 벌어지는 지위 경쟁, 갑작스러운 자원 발견, 적대 집단의 위협, 번식 기회 같은 것들은 즉각적인 주의와 행동을 요구했다. 매번 모든 가능성을 꼼꼼히 계산하고, 장기적인 결과를 따져보는 것은 사치였다. 그런 느린 사고는 오히려 목숨을 위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뇌는 새로움, 두드러짐, 감정 강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부정적 자극(위협, 분노, 공포)에 특히 더 강하게 반응하는 부정 편향(negativity bias), 극적인 사건을 더 잘 기억하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그리고 강렬한 서사와 영웅·악당 구도를 선호하는 이야기 본능(storytelling instinct) 등이 모두 여기서 비롯된다. 


이 설계는 석기시대에는 매우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복잡하고 추상적이며 장기적인 구조를 다루는 데는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현대 정치와 미디어는 이 진화적 취약점을 정교하게 이용한다.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고,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적대 세력을 극악하게 묘사하고, 위기감을 조장하는 쪽이 항상 주목을 받는다. 반면 조용한 유지보수 — 낡은 인프라를 조금씩 교체하기, 규제의 미세한 비효율을 고치기, 부패의 작은 축적을 제거하기, 제도의 마모를 방지하기 — 는 극적이지 않고, 시각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으며,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따라서 뇌는 그것을 ‘중요하지 않은 일’로 분류해 버린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는 단순한 주의력 문제만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개선은 측정하기 어렵고, 공로를 가시적으로 주장하기 어렵다. 반면 실패는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유지보수는 ‘투자 대비 정치적 수익률’이 가장 낮은 영역이 된다. 인간의 뇌가 진화한 방식과 현대 민주주의의 인센티브 구조가 만나, 사회 전체가 엔트로피를 향해 서서히 미끄러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치인들은 드라마틱한 구호를 외치며 표를 얻지만, 기존 제도를 성실하게 관리하고 보수하는 일은 선거 주기 속에서 영원한 후순위로 밀려난다.


한국의 반복되는 사회기반시설과 근로현장에서 벌어지는 안전사고와 노인사회주의적인 포퓰리즘 정책과 숭녀억남(崇女抑男)적인 여성이기주의 정책은 이 병폐의 결과물이다.


이 인지적 편향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보수(補修)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다. 뇌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뇌가 외면하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제도화할 수 있어야만, 공동체는 장기적으로 유지·발전할 수 있다.


병든 전통을 수호하려는 구조 안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여론이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갈 때 반대쪽을 보는 사람들.


이들은 대개 당대에 환영받지 못한다. 카르텔에 불편한 질문을 던지면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된다. 기성 여론에 이의를 제기하면 괴짜 취급을 받는다. 혼자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시대마다 있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의 광풍 속에서 “이 길이 자유가 아니라 새로운 폭정으로 갈 것”이라 경고했던 에드먼드 버크는 당시 영국 지식인 사회로부터 ‘반동분자’라는 낙인을 받았다. 프랑스 혁명 직후의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더 극단적으로 매도당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이 좌파가 지배하는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평생 ‘파시스트’라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서구 전통과 고전적 미의식을 끝까지 지켜냈다. 이들이 당대에 어떻게 취급받았는지는 대개 알려진다. 무시당하거나, 비난을 당하거나.


그 사람들을 발견할 때 느끼는 감정은 독특하다. 나만 이런 줄 알았는데, 더 힘든 시대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안도감. 그 사람이 당대에 어떻게 됐는지를 알면서 오는 씁쓸함. 그래도 끝까지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묘한 연대감.


이것이 자존감의 한 뿌리가 될 수 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런 사람은 시대마다 있었다는 확인 말이다.


자국사에서 지킬 만한 건강한 전통을 찾기 어려울 때, 다른 문명의 성공 사례를 공부하는 것은 매우 유용한 경로가 된다.


싱가포르는 리콴유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부패를 철저히 척결하고, 능력주의 교육과 엄격한 법치를 통해 다인종·다문화 사회를 안정적으로 통합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로 도약했다. 영국령 홍콩은 작은 정부와 자유로운 시장, 철저한 사유재산 보호로 난민 사회를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로 만들었다. 두바이는 사막 한가운데서도 강한 통치 질서와 실용적 개방 정책으로 국제 금융·물류 허브를 건설했다.


이 사례들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성공한 사회들은 대개 강한 질서 + 실용적 시장경제 + 장기적 공동체 유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거창한 이념적 실험보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제도를 꾸준히 보수(補修)한 결과물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성공 사례들을 공부할 때, 그것이 과대한 자아나 환상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리콴유나 영국령 홍콩 총독이나 알 막툼 왕가 구성원이 될 필요가 없다. 방향이 맞는 흐름 속에서,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공동체의 작은 부분이라도 제대로 유지·보수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건강한 태도다. 역사 속 대부분의 반골들도 결국 거창한 혁명가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끝까지 소신을 지킨 사람들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가 있다.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고 견디는 심리적 능력이다.


자국사의 실패를 직시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쉽지 않다. 조상이, 민족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자기 정체성의 뿌리를 흔드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실패는 외세 탓으로 돌리고, 성취는 과대포장하고, 작은 것에서 자존감을 채우려 한다. 


한국 교육은 정답을 맞히는 훈련은 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견디는 훈련은 하지 않는다. 역사 교육도 민족 자긍심 고취 위주다. 그러니 어른이 되어서도 불편한 현실 앞에서 쉽게 무너지거나, 외면하거나, 남과 비교하며 상대적 위안을 찾는다.


이 멘탈을 키우는 것이 가족 단위에서, 사회 단위에서, 국가 단위에서 한꺼번에 가능한가. 솔직히 말하면 쉽지 않다. 온라인 SNS 알고리즘은 불편함을 회피하는 것을 너무 쉽게 만든다. 불편한 콘텐츠 대신 의견에 동의해주는 커뮤니티로 자동으로 연결된다.


그럼에도 개인 단위에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한 명씩 늘어나고, 그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문화가 서서히 바뀌는 것. 느리고, 그 사이에도 카르텔은 계속 돌아가고, 지쳐서 떠나는 사람도 나온다. 하지만 그것 말고 더 정직한 경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혁명은 드라마틱하다. 기존 것을 불태우고 새로 세우는 서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유지보수는 그렇지 않다. 잡초를 뽑고, 물꼬를 트고, 둑을 고치는 일은 반복적이고 조용하다. 끝이 없다. 완성의 순간이 없다.


그것이 유지보수가 혁명보다 어려운 이유다.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게 아니라, 인간이 그 일에서 의미를 찾고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 드라마틱한 전환보다 꾸준한 관리가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데, 사람들은 전환에 열광하고 관리를 무시한다.


완벽한 통치는 없다.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어쩌면 그 이후로도 없을 것이다. 어떤 체제도, 어떤 지도자도, 어떤 제도도 완벽하지 않다. 그것을 전제로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더 건강한 사고방식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예전보다 조금 낫게 만드는 것이다. 대다수가 정당하게 일하고, 화목한 가정생활을 하고,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는 구조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조금씩이 쌓이는 것이 보수(補修)를 보수(保守)하는 일이다.


거창하지 않다. 그래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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