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익 종교인을 향한 불친절한 공개서한 9편
좌우익 종교인을 향한 불친절한 공개서한 9편
신 없는 세계에서 종교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
1. 9편을 읽기 전에: 도구에 대하여
9편부터 11편까지 이 에세이는 진보주의라는 세속 신학을 해부하는 데 주로 신반동주의(Neoreaction, NRx) 계열 사상가들의 분석 틀을 사용한다. 커티스 야빈(멘시우스 몰드버그), 닉 랜드, 울프 티비(Wolf Tivy), 스티브 세일러 등— 서구 지식 지형에서 우익 혹은 극우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이것은 그들의 결론 전체를 수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이 진보주의의 종교적 구조를 분석하는 방식은 그들이 도달하는 정치적 처방과 별개로 독립적인 분석 가치를 가진다. 1~7편이 기독교 신학자의 텍스트를 인용했다고 해서 기독교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듯.
이들이 도달하는 대안적 처방들 — 몰드버그의 신관방주의(neocameralism)와 패치워크(patchwork), 랜드의 우익 가속주의(r/acc) — 은 각자의 논리적 귀결로서 존재한다. 이 에세이는 그 처방들을 따르거나 거부하는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다. 분석 도구와 그 도구가 가리키는 방향은 별개다.
2. 들어가며: 무신론의 이상한 실패
무신론은 이긴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서구의 대학, 언론, 문화 산업, 정책 입안 기관은 대부분 명시적으로 종교적이지 않다. 신을 믿는다고 공언하면 일부 지식인 집단에서는 눈살을 찌푸린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가 베스트셀러를 쏟아내던 2000년대 초, 많은 사람이 신앙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신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신학은 남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신학은 다른 옷을 입고 더 강력해진 채로 돌아왔다. 죄(sin)는 특권(privilege)이 되었고, 회개(repentance)는 각성(awakening)이 되었으며, 이단(heresy)은 혐오 발언(hate speech)이 되었다. 교회는 사라졌지만 이단 심문소는 남았다.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멘시우스 몰드버그(Mencius Moldbug)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이 2007년경 "언퀄리파이드 리저베이션스(Unqualified Reservations)"라는 블로그를 통해 제기한 핵심 테제다. 그는 현대 진보주의를 단순히 나쁜 정치 이데올로기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기독교의 변종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칼뱅주의(Calvinism)의 극단적 후손, 즉 울트라칼빈주의(Ultracalvinism)였다.
3. 울트라칼뱅주의: 세속화된 청교도주의
몰드버그(Mencius Moldbug)는 2007년에 「울트라칼뱅주의의 간략한 역사(A Short History of Ultracalvinism)」에서, 1942년 3월 16일자 《타임(Time)》지 기사 “아메리칸 말번(American Malvern)”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 기사의 첫 문장이 이미 모든 것을 예고하듯이, “조직화된 미국 개신교의 초개신교적 새 프로그램(Organized U.S. Protestantism’s superprotestant new program)”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표현은 단순한 수사적 장식이 아니다. 몰드버그는 이를 현대적으로 날카롭게 재해석하며 울트라칼뱅주의(ultracalvinism)라는 개념을 창조한다. 그는 단순히 신학적 계보를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 진보주의가 “자신은 종교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하는 바로 그 부정(denial) 자체가 핵심 메커니즘이라고 지적한다. 이 부정은 가장 강력한 위장막이다.
“울트라칼뱅주의는 본질적으로 2007년 의미에서의 ‘유니테리언주의(Unitarianism)’와 거의 동일하다. [...] 울트라칼뱅주의는 종종 기독교와 정반대인 것처럼 뻔뻔스럽게 자신을 제시하기도 한다. 더 넓게 말해, 그것은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그저 예고에 불과한 우월한 계시로 여겨진다...(Ultracalvinism appears to be pretty much the same thing as ‘Unitarianism’—that is, in the 2007 sense of that word. [...] Often ultracalvinism even has the sheer, unmitigated gall to present itself as the opposite of Christianity. More broadly, it’s a superior revelation of which Christianity, along with all other religions, is a mere anticipation...)”
- <A Short History of Ultracalvinism>, Mencius Moldbug, JUNE 12, 2007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7/06/short-history-of-ultracalvinism/]
유니테리언주의(Unitarianism)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사이에서 실질적인 충돌 지점을 하나라도 찾아보라고 몰드버그는 도발한다. 찾기 힘들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믿음 체계의 두 가지 다른 외피이기 때문이다.
「울트라칼빈주의 가설: 관점 속에서(The Ultracalvinist Hypothesis in Perspective)」에서 몰드버그는 이 믿음 체계의 네 가지 기둥을 명확하고 냉철하게 정리한다.
“내 계산에 따르면, 울트라칼빈주의 신조에는 네 가지 주요 포인트가 있다. 첫째, 울트라칼빈주의자들은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를 믿는다. 이상(Ideal)으로서 이것을 평등(Equality)이라고 부를 수 있다. [...] 둘째, 폭력의 무용함을 믿는다. 이에 대응하는 이상은 당연히 평화(Peace)다. [...] 셋째, 재화의 공정한 분배를 믿는다. 이상은 사회정의(Social Justice) [...] 우리는 이것을 롤스주의(Rawlsianism)라고 부르자. 넷째, 관리되는 사회를 믿는다. 이상은 공동체(Community)이며,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자비로운 전문가들, 즉 공직자(public servants)에 의해 이끌린다. [...] 우리는 이것을 만다린주의(mandarism)라고 부를 수 있다. (By my count, the ultracalvinist creed has four main points: First, ultracalvinists believe in the universal brotherhood of man. As an Ideal this might be called Equality. [...] Second, ultracalvinists believe in the futility of violence. The corresponding ideal is of course Peace. [...] Third, ultracalvinists believe in the fair distribution of goods. The ideal is Social Justice [...] we will [...] call this belief Rawlsianism. Fourth, ultracalvinists believe in the managed society. The ideal is Community, and a community by definition is led by benevolent experts, or public servants. [...] we can call this belief mandarism.)”
- <The Ultracalvinist Hypothesis in Perspective>, Mencius Moldbug, JUNE 24, 2007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7/06/ultracalvinist-hypothesis-in/]
이 네 가지가 1960년대나 2000년대의 발명품인가? 결코 아니다. 몰드버그는 이 신조들이 17세기 영국 청교도주의(Puritanism)와 뉴잉글랜드 유니테리언 전통에서 직접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롤스주의조차 17세기 “디거스(Diggers)” 운동에서 이미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몰드버그의 가장 신랄한 통찰 중 하나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현대 무신론자들이 자신들의 “세속적” 믿음을 어떻게 포장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도킨스가 자신의 세계관을 “아인슈타인의 종교(Einsteinian religion)”라고 부를 때, 그는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와 유니테리언 목사로서의 지적 혈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믿음을 ‘아인슈타인의 종교’라고 불렀다. 그의 그 신조에 대한 묘사는 에머슨의 신학 학교 연설(Divinity School Address)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그는 초월주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가? 에머슨이 유니테리언 목사였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Richard Dawkins has referred to his beliefs [...] as ‘Einsteinian religion’. Dawkins’ description of this creed is poetic and extremely reminiscent of Emerson’s Divinity School Address. Has he never heard of Transcendentalism? Is he unaware that Emerson was a Unitarian minister?)”
- <The Ultracalvinist Hypothesis in Perspective>, Mencius Moldbug, JUNE 24, 2007
이것은 단순한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니다. 그것은 위장된 연속성의 증거다. 신학적 표면 단백질(삼위일체, 구원, 계시 등)을 벗겨내고 “이성”과 “과학”이라는 새 라벨을 붙이면, 교회와 국가의 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라는 좁은 항생제는 무기력해진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좁은 스펙트럼의 항생제에 불과하다. [...] 이 방어를 회피하기 위한 명백한 돌연변이는 교회가 자신이 교회임을 부정할 수 있는 그럴듯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신학을 버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게임 오버. 당신이 졌다. 그것도 자업자득으로.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is a narrowspectrum antibiotic. [...] the obvious mutation to circumvent this defense is for the church to find some plausible way of denying that it’s a church. Dropping theology is a nobrainer. Game over, you lose, and it serves you right.)”
- <The Ultracalvinist Hypothesis in Perspective>, Mencius Moldbug, JUNE 24, 2007
몰드버그의 분석은 냉혹하다. 현대 진보주의는 기독교의 포스트밀레니얼(postmillennial) 종말론(Eschatology) —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한다는 비전 — 을 세속화한 형태일 뿐이다.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말하지 않지만, 평등, 평화, 정의, 전문가 통치라는 이상을 통해 여전히 구원사를 추구한다. 그리고 그 이상에 반대하는 자들은 “근본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것이 몰드버그가 제시하는 울트라칼뱅주의 가설의 본질이다. 그것은 단순한 음모론이 아니라, 서구 근현대사의 연속성을 꿰뚫어보는 역사적·문화적 진단이다. 표면적으로는 세속적이고, 과학적이며,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17세기 칼빈주의의 저교회(low church)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유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4. 유사-무신론자들로 들끓는 우리 행성
몰드버그는 「우리 행성은 유사-무신론자(pseudoatheists)들로 가득 차 있다(Our Planet Is Infested with PseudoAtheists)」에서, 이전에 정의한 이데알리즘(Idealism) 개념을 더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는 이데알리즘을 “신비로운 보편자(mysterious universals)에 대한 믿음”으로 규정한다. 이 악의적인 특성(pernicious trait)는 종교적(초자연적) 믿음 체계와 세속적(비초자연적) 믿음 체계 양쪽에서 나타나지만, 현대에는 후자에서 압도적으로 만연하다고 지적한다.
“며칠 전 나는 관념론을 신비로운 보편자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했다. 이 악의적인 특성은 ‘종교적’(초자연적) 믿음 체계와 ‘세속적’(비초자연적) 믿음 체계 양쪽에 나타나지만, 요즘에는 후자에서 훨씬 더 흔하다고 지적했다. (The other day I defined Idealism as belief in mysterious universals. I noted that while this pernicious trait appears both in “religious” (paranormal) and “secular” (nonparanormal) belief systems, these days it’s much more common in the latter.)”
- <Our Planet Is Infested with PseudoAtheists>, Mencius Moldbug · MAY 16, 2007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7/05/our-planet-is-infested-with-pseudo/]
환경(Environment)을 숭배하는 사람과 위대한 신 판(Pan)을 경배하는 사람을 실질적으로 구별할 방법이 없다는 그의 비유는 특히 강렬하다.
“예를 들어, 환경을 숭배하는 사람과 위대한 신 판을 경배하는 사람을 구별할 방법이 없다. 현실 세계에서 두 사람은 동일하게 행동할 것이다. 사실 판 숭배자와는 대화하기가 더 쉽다. 그가 열대우림을 판에게 신성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면, (나 같은 판 회의론자에게) 대화는 끝난다. 양측은 공통의 기준점이 없다는 것을 즉시 알고, 서로 합의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반면 환경 숭배자가 열대우림의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녀는 끝없이 얽힌 논쟁의 실타래를 만들어낸다. 정확히 ‘생물다양성’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지구의 허파’는 무슨 뜻인가? 지구에게 간(肝)도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성경 없는 관념론은 영원한 대화의 샘물이자, 철학자 계급의 황금 광산이다. (For example, there is no way to distinguish someone who worships the Environment from someone who venerates the Great God Pan. In the real world the two will act identically. Indeed, it’s easier to reason with the Panworshipper. When he tells you that he needs to save the rainforest because the rainforest is sacred to Pan, the conversation (to a Panskeptic such as myself) is over. Both sides can see that there is no common point of reference, and the two of you can start working out how to agree to disagree. Whereas when the Environmentworshipper tells you about the biodiversity of the rainforest, she has created an endless hairball of arguments which trail off into nonsense everywhere. What, exactly, is “biodiversity,” and why is it important? What does “lungs of the planet” mean? Does the planet have a liver, too, and if so where is it? Idealism without holy books is a permanent fountain of conversation, a goldmine for the sophist caste.)”
- <Our Planet Is Infested with PseudoAtheists>, Mencius Moldbug · MAY 16, 2007
관념론의 진짜 위험은 그것이 합리주의(rationalism)의 한 형태라는 점이다. 합리주의는 자신이 받은 믿음을 순수 이성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이성과 과학에 대한 과학주의(scientism)처럼 왜곡된 것이다. 몰드버그는 “여기 UR(Unqualified Reservations 블로그)에서는 이성도 믿지만, 믿음들을 그 자체로 작업해서 끌어낸다”고 강조한다.
몰드버그의 입장은 명확하다. 그는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서구가 기독교를 이데알리즘으로 대체한 것을 재앙으로 본다. 그리고 그 뿌리가 개신교에 있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제 내 세계관은 꽤 분명할 것이다. 나는 서구가 기독교를 이데알리즘으로 대체한 것을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관념론의 뿌리가 개신교에 있다는 점은 너무도 명확하다 — 민주주의(Democracy)와 평등(Equality) 같은 이상들은 순수하게 예수의 냄새가 난다 — 그래서 관념론은 단순히 비신론적 기독교의 광신적 변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 어쨌든, 스스로를 비신자라고 설명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은 관념론자이며, 종종 상당히 광신적인 관념론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행성은 유사-무신론자들로 들끓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My stance on the world should be pretty clear by now. I think the West’s replacement of Christianity with Idealism was a disaster. (In fact, since the roots of Idealism in Protestant Christianity are so clear—ideals such as Democracy and Equality simply reek of pure Jesus—it’s arguable that Idealism is simply a fanatical strain of nontheistic Christianity. [...]) In any case, it’s clear that most people who describe themselves as nonbelievers are in fact Idealists, often quite fanatical ones. Our planet is infested with pseudoatheists. It’s horrible.)”
- <Our Planet Is Infested with PseudoAtheists>, Mencius Moldbug · MAY 16, 2007
관념론의 ‘이데오크라시(ideocracy,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원칙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는 것)’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대개 고전적 보수주의자들이다. 몰드버그는 래리 오스터(Larry Auster)와 다니엘 라리손(Daniel Larison) 같은 인물들의 명쾌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전략 — 전통적 기독교로의 회귀 — 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기독교는 (a) 참이거나 (b) 거짓이거나 둘 중 하나다. (c)는 없다. 내가 (b)를 믿기 때문에, 보편주의적 관념론에서 전통적 기독교로의 회귀는 [...] 내 의견으로는 진리가 허구를 이기는 경우가 아니다. [...] 내 생각에 고전적 보수주의는 관념주의자 지배에 맞선 투쟁에서 전술적 막다른 골목이다. [...] 그래서 나는 볼테르적 각도를 선호한다. 나는 관념주의자든 기독교든 어떤 풍선이든 최선을 다해 터뜨릴 것이다. 나는 기회균등적인 바늘이다. (Christianity is either (a) true or (b) untrue. There is no (c). Since I believe it is (b), a return to traditionalist Christianity from universalist Idealism [...] is not, in my opinion, a case of truth outcompeting fiction. [...]Paleoconservatism, in my opinion, is a tactical dead end in the struggle against Idealist rule. [...] This is why I prefer the Voltaire angle. I will do my damnedest to pop any balloon, Idealist or Christian. I am an equalopportunity pin.)”
- <Our Planet Is Infested with PseudoAtheists>, Mencius Moldbug · MAY 16, 2007
무신론자가 관념론을 버리면 허무주의(nihilism)만 남는가? 몰드버그는 단호히 “아니오”라고 답한다. 도덕은 전통이 아니라 인간 생물학의 측면, 즉 감정적 반응이다. 진정한 “아무것도 믿지 않기”는 합리주의적 관념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비드 스토브(David Stove)의 신실증주의(neopositivism)에 가까운 태도다.
“내게 비관념론은 제대로 적용된 무신론에 불과하다. [...] 하지만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 합리주의적 관념론자가 아닌 합리적인 사람이 되려면 노력과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현대판 관념론의 가장 불행한 점은 그것이 실제 사고를 거의 완벽하게 대체한다는 것이다. [...] 이 과제를 대신해 관념론은 우리에게 공허한 수사를 준다. (To me nonIdealism is nothing more than atheism, properly applied. [...] But I just think it takes work and attention to really ‘believe in nothing,’ to be a reasonable person rather than a rationalist Idealist. [...] To me, what’s so unfortunate about our contemporary version of Idealism is that it’s an almost perfect replacement for actual thought. [...] In the place of this task, Idealism gives us cant.)”
- <Our Planet Is Infested with PseudoAtheists>, Mencius Moldbug · MAY 16, 2007
몰드버그의 진단은 냉정하면서도 희망적이다. 그는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미리 씹어둔 헛소리(premasticated tripe)”를 깨닫고 반발하는, 일종의 문화적 오렌지 혁명을 기대한다. 유사-무신론자들의 행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그는 관념론의 모든 풍선을 — 좌우를 가리지 않고 — 터뜨리는 볼테르적 역할을 자처한다.
5. 무신론자들이 ‘종교’를 믿어야 하는가
몰드버그는 2007년 4월 에세이 「무신론자들은 왜 종교를 믿는가(Why Do Atheists Believe in Religion?)」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한 단계 더 깊이 파고든다. 그는 “종교”라는 범주 자체가 과연 유용한 분석 도구인지, 아니면 우리를 심각하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독성 밈(toxic meme)인지를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요즘 누구나 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이 ‘종교’를 믿는다.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종교적’ 현상과 ‘비종교적’ 혹은 ‘세속적’ 현상 사이에 중요한 범주적 구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Not everyone these days believes in God. But pretty much everyone believes in religion. By ‘believing in religion,’ I mean recognizing a significant categorical distinction between ‘religious’ phenomena, and those that are ‘nonreligious’ or ‘secular.’)”
- <Why Do Atheists Believe in Religion?>, Mencius Moldbug · APRIL 26, 2007 [링크: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7/04/why-do-atheists-believe-in-religion/]
그는 “종교”를 명확하게 정의한다.
“우리는 ‘종교’를 의인화된 초자연적 존재들의 실재를 귀속시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We can define ‘religion’ as the attribution of existence to anthropomorphic paranormal entities.)”
- <Why Do Atheists Believe in Religion?>, Mencius Moldbug · APRIL 26, 2007
이 정의는 불교의 일부 종파처럼 모호한 경우를 제외하면 충분히 작동한다. 문제는 이 범주가 현실을 명확히 하는가, 아니면 혼란스럽게 하는가다.
몰드버그의 논증은 날카롭다. 그는 “종교”라는 라벨 하나가 정책의 도덕성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사례를 제시한다.
“히틀러가 린츠 출신의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토르(Thor)의 지상 예언자라고 선언했다고 가정해보자. 나치가 한 모든 일이 토르의 이름으로 행해졌다고 가정하자. 즉, 나치즘이 ‘종교’ 범주에 속하게 된 것이다. [...] 그러나 이 사소한 변경 하나만으로 나치즘을 토르교로 바꾸면, 연합군의 행위는 노골적인 종교적 불관용이 된다. 우리는 다른 신앙을 존중해야 하지 않은가? 최소한 ‘근본주의 나치즘’에만 적대적 조치를 제한하고, 보다 ‘온건한’ 버전의 신조를 장려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Suppose Hitler had declared that, rather than being just some guy from Linz, he was Thor’s prophet on earth. Suppose that everything the Nazis did was done in the name of Thor. Suppose, in other words, that Nazism was in the category ‘religion.’ [...] But if we make this one trivial change, turning Nazism into Thorism and making it a ‘religion,’ [...] the acts of the Allies are a blatant act of religious intolerance. Aren’t we supposed to respect other faiths? Shouldn’t we at least have restricted our unfriendly attentions to ‘fundamentalist Nazism,’ and promoted a more ‘moderate’ version of the creed?)”
- <Why Do Atheists Believe in Religion?>, Mencius Moldbug · APRIL 26, 2007
마르크스주의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뵈겔린이 말한 ‘정치적 종교’ 중 또 하나, 우리의 정의에 따르면 초자연적 존재가 없으므로 종교가 아닌 것은 마르크스주의다. 마르크스의 저술이 신성하게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살짝 수정해보자. 공산주의 역사상의 다른 모든 것은 그대로 둔 채. [...] 만약 마르크스주의가 종교였다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와 거의 정확히 동등한 위치에 놓였을 것이다. [...] 그러나 과거 미국인들은 오늘날 ‘지적 설계’에 맞서 싸우듯 마르크스주의를 근절하려 했다. 그것이 바로 매카시즘(McCarthyism)이었다. 시민 자유를 믿는 사람들은 정확히 반대편 바리케이드에 서 있었다. (Another one of Voegelin’s ‘political religions,’ which by our definition are not religions at all (no anthropomorphic paranormal entities) is Marxism. Let’s tweak Marxism slightly and assert that the writings of Marx were divinely inspired, leaving everything else in the history of Communism unchanged. [...] If Marxism was a religion, Marxist economics would come pretty close to being the exact equivalent of ‘intelligent design.’ [...] But there was a period in which Americans tried to eradicate Marxism the way they fight against ‘intelligent design’ today. It was called McCarthyism. And believers in civil liberties were on exactly the opposite side of the barricades.)”
- <Why Do Atheists Believe in Religion?>, Mencius Moldbug · APRIL 26, 2007
“사소한 가상 역사적 변경이 합리적인 정책을 끔찍한 불의로, 혹은 그 반대로 바꾸어버린다면, 당신의 현실 인식은 올바를 수 없다. 당신은 독성 밈에 감염된 것이다. (If trivial changes to hypothetical history convert reasonable policies into monstrous injustices, or vice versa, your perception of reality cannot be correct. You have been infected by a toxic meme.)”
- <Why Do Atheists Believe in Religion?>, Mencius Moldbug · APRIL 26, 2007
이것이 몰드버그가 지적하는 핵심이다. “종교”라는 범주에 집착하는 것은, 반교권주의(anticlericalism) — 즉 도킨스·해리스식 “종교는 망상”이라는 치료법 — 이 좁은 스펙트럼의 항생제에 불과하다는 증거다.
“밈을 기생 생물에 비유한다면, ‘종교’를 믿는 것은 불규칙하게 좁은 스펙트럼 항생제를 먹는 것과 같다. 도킨스 치료법 — 과거 반클레리칼리즘이라 불렸던 것의 최신 버전 — 은 숙주와 오랫동안 (불완전하지만) 합리적으로 공존하는 법을 배운 취약한 세균 군집을 제거한다. 그리고 항종교 치료에 영향을 받지 않는 완전히 다른 문(phylum)의 세균이 번성할 공간을 열어준다. 오히려 그 성장을 자극할 수도 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정치적 종교’들이 ‘종교적 종교’들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은 사망자를 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도킨스, 해리스, 데넷과 함께 페니실린을 먹고 있다. (If memes are analogous to parasitic organisms, believing in ‘religion’ is like taking a narrowspectrum antibiotic on an irregular schedule. The Dawkins treatment — our latest version of what used to be called anticlericalism — wipes out a colony of susceptible bacteria which have spent a long time learning to coexist reasonably, if imperfectly, with the host. And clears the field for an entirely different phylum of bugs which are unaffected by antireligious therapy. Whose growth, in fact, it may even stimulate. In the last two centuries, ‘political religions’ have caused far, far more morbidity than ‘religious religions.’ But here we are with Dawkins, Harris, and Dennett — still popping the penicillin.)”
- <Why Do Atheists Believe in Religion?>, Mencius Moldbug · APRIL 26, 2007
몰드버그는 무신론자로서 초자연적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종교” vs “세속”이라는 인위적 구분이 현실의 핵심 — 즉 현실 세계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행동 — 을 가려버린다고 본다. 진짜 위험한 것은 초자연적 포장지의 유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현실 세계에 대한 독성 믿음이다.
몰드버그는 단순히 “종교를 비판하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 도구 자체를 해부한다. “종교”라는 범주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광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고, 결국 더 치명적인 새로운 변종들을 키우는 데 일조하게 된다.
그의 진단은 여전히 날카롭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정치적 종교”들의 새로운 변종들을 목격하며, 여전히 낡은 페니실린 처방전을 고수하고 있지 않은가.
6. Gnon: 판단을 보류한 자리에서 시작하기
몰드버그가 “종교”라는 범주 자체를 해체하며, 신학적 교리를 벗겨낸 뒤에도 여전히 자리를 채우는 관념론의 독성을 지적했다면, 닉 랜드(Nick Land)는 그 빈자리를 그논(Gnon)이라는 개념으로 채운다. Gnon은 “Nature or Nature’s God(자연, 혹은 자연의 신)”의 역순 두문자어(acronym)다. 이는 단순한 신조가 아니라, 신학적 논쟁을 끝없이 미루면서도 현실이 규칙을 만든다는 출발점에서 사고를 시작하게 하는 전략적 도구다.
“‘자연 혹은 자연의 신’은 특별한 탁월함을 지닌 표현으로,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추출된 것이다. 스티브스에게 이것은 일종의 만트라인데, 그것이 신학적 논쟁이 먼저 해결되지 않아도 중요한 것들을 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주로 전략적으로, 신학적 논쟁에 방해받지 않고 자연법(Natural Law)에 대한 합의를 가능하게 한다. 현실이 규칙을 만든다는 데 대한 동의는 종교적 차이가 해결될 때까지 미뤄질 필요가 없다... (‘Nature or Nature’s God’ is an expression of special excellence, extracted (with subtle modification) from America’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For Steves, it is something of a mantra, because it enables important things to be said in contexts where, otherwise, an interminable argument would first need to be concluded. Primarily, and strategically, it permits a consensual acceptance of Natural Law, unobstructed by theological controversy. Agreement that Reality Rules need not be delayed until religious difference is resolved...)”
- <The Cult of Gnon>, Nick Land, May 30, 2013 [링크: https://web.archive.org/web/20130609065403/http://www.xenosystems.net/the-cult-of-gnon/]
Gnon은 명제가 아니다. 이름이다.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현실은 그 자체로 규칙을 부과한다. Gnon은 그 현실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신의 별칭일 수도 있고, 신이 아닌 것의 이름일 수도 있다. 핵심은 판단의 유보(epoche)다. 신학적·존재론적 결정을 미루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Gnon은 믿음의 여하를 떠나 현실 그 자체다. 지금 지연 없이 유보되는 모든 것은 Gnon이다. 아직 결정할 수 없는 것, 현실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결정되지 않는 것은 Gnon이다. 신이 있다면 Gnon은 그를 별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없다면 Gnon은 그 ‘없음’이 가리키는 것을 지칭한다. Gnon은 거대한 돌연( Vast Abrupt)이자 그 횡단이다. Gnon은 위대한 추진자(Great Propeller)다. (Gnon is no less than reality, whatever else is believed. Whatever is suspended now, without delay, is Gnon. Whatever cannot be decided yet, even as reality happens, is Gnon. If there is a God, Gnon nicknames him. If not, Gnon designates whatever the ‘not’ is. Gnon is the Vast Abrupt, and the crossing. Gnon is the Great Propeller.)”
- <The Cult of Gnon>, Nick Land, May 30, 2013
「Gnon 신학과 시간(GnonTheology and Time)」에서 랜드는 이 개념을 더 깊이 파고든다. Gnon은 신에 대한 존재론적 판단을 유보한다. 그것은 아직 불가지론(agnosticism)도 아니며, 확정적인 유신론이나 무신론도 아니다.
“Gnon은 신에 대한 존재론적 판단을 유보한다. 그것은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실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Gnon트랜스(Gnontrance)는 불안정한 상태다. 그것은 아직 불가지론적이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유신론적이거나 무신론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무엇을 믿기 이전에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에 주로 관심을 둔다... (Gnon suspends ontological decision about God. It begins from what is real, whether God exists or not. A Gnontrance is unsettled. It is not yet agnostic, any more than it is decidedly theistic or atheistic. It concerns itself primarily with that which has been accepted as real before anything is believed...)”
- <GnonTheology and Time>, Nick Land, June 16, 2013 [링크: https://web.archive.org/web/20131204192554/http://www.xenosystems.net/gnon-theology-and-time/]
Gnon 신학은 가설적(hypothetical)이다. “신이라는 관념이 우리에게 무엇을 사고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신학적·시간적 문제를 탐색한다. 여기서 랜드는 시간여행(reverse causation), 예언, 섭리 같은 개념을 끌어들이며, 기독교 자체를 일종의 시간여행 이야기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시뮬레이션된 Gnon 신학(Simulated Gnon Theology)」에서는 이 방법론을 더욱 밀어붙인다. 우리는 신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 있지만, 그 가정 자체가 곧 불분명해진다. 따라서 Gnon이라는 이름을 통해 모든 후속 가정들을 철회 가능한 상태로 유지한다.
“여기서 Gnon으로 알려진 자연 혹은 자연의 신은 회의주의에게 궁극적인 대상을 제공한다. 이 이름으로 우리는 유보 속에서 전진할 수 있으며, 사고를 믿음의 어떤 기반으로부터도 해방시킬 수 있다. 일상적 적용에서 Gnon은 현실주의가 교리적 확신을 초월하게 하며, 불확실한 정보 속에서도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Nature or Nature’s God, (un)known here as Gnon, provides skepticism with its ultimate object. With this name we can advance in suspension, freeing thought from any ground in belief. In its mundane application, Gnon permits realism to exceed doctrinal conviction, reaching reasonable conclusions amongst uncertain information.)”
- <Simulated GnonTheology>, Nick Land, July 23, 2013 [링크: https://web.archive.org/web/20170719231558/http://www.xenosystems.net/simulated-gnon-theology/]
이 접근은 몰드버그의 문제의식과 정교하게 맞물린다. 몰드버그가 “종교” 범주에 집착하면 더 치명적인 정치적 종교들이 번성한다고 경고했다면, 랜드의 Gnon은 신학적 판단 자체를 유보하면서도 현실의 엄격한 규칙(선택압, 지능 폭발, 시간 구조 등)에서 출발한다. 유신론자도, 무신론자도, 불가지론자도 이 출발점에서는 함께 설 수 있다.
Gnon은 편안한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냉혹한 이름이다. Gnon은 약한 것을 도태시키고, 강한 지능을 증폭시키며, 판단을 미루는 자에게조차 결국 대가를 치르게 한다. 몰드버그의 울트라칼뱅주의 비판과 랜드의 Gnon은 서로를 보완한다. 하나는 현대 진보의 숨겨진 종교성을 해부하고, 다른 하나는 그 너머에서 현실의 메커니즘을 직시하게 한다.
이것이 Gnon의 힘이다. 신학적 논쟁을 끝없이 미루면서도, 현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규칙들을 직시하게 하는 — 판단 유보의 전략적 실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개념적 무기다.
7. 지식인의 아편: 허위 무신론
이 모든 논의를 종합하면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무신론이 승리했다는 선언은 거짓이었다. 더 정확히는, 무신론이 신학적 도그마를 해체하는 데는 부분적으로 성공했지만,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오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맹목적이었다.
몰드버그가 말하는 유사-무신론자(pseudoatheist)들은 신을 부정하면서도 이데알리즘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종교를 믿는다. 평등(Equality), 진보(Progress), 환경(Environment), 민주주의(Democracy) — 이 이상들은 초자연적 존재자는 아니지만 기능적으로는 신과 동일하게 작동한다. 정의할 수 없고, 반증할 수 없으며, 거부하는 자는 이단으로 처단된다.
도킨스와 히친스의 무신론 운동이 궁극적으로 도달한 곳은 어디인가? 그들의 독자들 상당수는 새로운 신학, 즉 진보주의라는 세속 신학의 가장 열렬한 신자들이 되었다. 종교적 믿음을 공격하는 지적 패기는 있었지만, 그 패기가 향하는 곳은 사실 이미 힘을 잃어가던 전통 기독교였다. 정작 지식인 계층의 주류를 지배하는 세속적 신학은 건드리지 못했다.
이것이 유사-무신론의 핵심 역설이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면서, 신의 자리에 앉은 새로운 신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
진정한 무신론은 더 어렵다. 그것은 초자연적 신만이 아니라, 세속화된 형태의 신들도 — 진보, 역사, 인민의 의지, 올바른 쪽의 편에 서기 — 거부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거부는 전적인 허무주의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몰드버그가 말했듯, 도덕은 전통도 이상도 아니라 인간 생물학의 측면이다.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여전히 실재한다.
그리고 신학적 판단을 유보한 자리에서, 랜드의 Gnon이 말하는 것이 있다: 현실은 규칙을 만든다. 그 규칙들은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작동한다. 우리의 선호가 아니라 현실의 구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유사-무신론이 아닌, 진짜 무신론(혹은 그냥 무신론)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다음 편에서는 다윈주의(Darwinism)가 왜 좌파에게도 우파에게도 불편한 진실인지, 그리고 두 진영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왜곡하는지를 살펴본다.
- 참고문헌 -
Mencius Moldbug, "A Short History of Ultracalvinism"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7/06/short-history-of-ultracalvinism/)
Mencius Moldbug, "The Ultracalvinist Hypothesis in Perspective"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7/06/ultracalvinist-hypothesis-in/)
Mencius Moldbug, "Our Planet Is Infested with PseudoAtheists"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7/05/our-planet-is-infested-with-pseudo/)
Mencius Moldbug, "Why Do Atheists Believe in Religion?" (https://www.unqualified-reservations.org/2007/04/why-do-atheists-believe-in-religion/)
Nick Land, "The Cult of Gnon" (https://web.archive.org/web/20130609065403/http://www.xenosystems.net/the-cult-of-gnon/)
Nick Land, "GnonTheology and Time" (https://web.archive.org/web/20131204192554/http://www.xenosystems.net/gnon-theology-and-time/)
Nick Land, "Simulated Gnon Theology" (https://web.archive.org/web/20170719231558/http://www.xenosystems.net/simulated-gnon-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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