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헨더슨(Rob Henderson), 교육받은 엘리트층의 '사치스러운 신념(Luxury Beliefs)'이 사회를 어떻게 침식시키는가
교육받은 엘리트층의 '사치스러운 신념(Luxury Beliefs)'이 사회를 어떻게 침식시키는가
결혼 제도를 비판하거나, '백인의 특권(white privilege)'을 지적하거나, 경찰 예산 삭감(defund the police)을 주장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학 교육을 받은 계층(university class)은 자신들에게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지위를 부여해주는 사상을 표방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의 실질적 영향은 사회에서 가장 덜 특권을 가진 이들에게 전가된다.
롭 헨더슨(Rob Henderson)
2024년 2월 23일 금요일 오후 5시, 더 타임스(The Times)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많은 이들이 ‘미국의 하층 계급’이라 부를 만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생모가 돌볼 수 없는 상태에 빠지면서 세 살 무렵 위탁가정(foster system)에 들어가게 되었다. 생모는 서울(Seoul) 출신이었으며, 약물 중독 상태였다. 이후 5년 동안 나는 일곱 곳의 서로 다른 위탁가정을 전전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자랐으며, 그가 멕시코와 스페인을 뿌리로 둔 히스패닉(Hispanic) 혈통이라는 사실은 지난해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일곱 살이 되던 해, 나는 노동자 계층(working-class)의 한 가정에 입양되었고, 이후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레드 블러프(Red Bluff)라는 먼지 나는 소도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입양 부모는 곧 이혼했고, 내 청소년기는 약물 남용과 폭력, 가족 내 비극, 재정적 파탄으로 얼룩졌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열일곱 살에 미 공군(US Air Force)에 자원입대하며 그곳을 탈출했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대학 중 한 곳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기 위해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 입학했지만, 내 호기심은 곧 전공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계급 차이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나는 계급 간 격차와 사회적 위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독서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지식을 캠퍼스에서의 내 경험들과 비교해보았다. 그렇게 점차 나는 ‘사치스러운 신념(luxury beliefs)’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되었다. 이는 상류 계층에게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지위를 부여하는 사상이나 의견을 뜻하며, 반대로 하층 계층에게는 실제적인 피해를 초래하곤 한다.
상류 계층(upper class)은 엘리트 대학(elite university)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사람, 그리고 부모 중 최소 한 명 이상이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포함하지만, 반드시 그 범위로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학력(parents’ educational attainment)은 사회 계층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객관적 지표이다. 부모의 소득(parental income)보다도, 부모의 교육 수준은 자녀의 미래 생활양식(lifestyle), 취향(tastes), 그리고 의견(opinions)을 더 강력하게 예측한다.
최초 대학 진학자(first-generation college graduate)가 과연 진정한 의미의 상류 계층에 진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사회비평가이자 『클래스(Class)』의 저자인 폴 퍼셀(Paul Fussell)은, 상류 계층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자산이나 학력만이 아니라, 매너, 취향, 의견, 대화 방식(conversational style) 등이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썼다. 그는 그러한 요건들을 충족하려면 태어날 때부터 풍요 속에 젖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유사하게,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도 상류 계층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schooling), 언어(language), 그리고 취향(taste)이라는 ‘삼원적 구조(triadic structure)’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부르디외는 이 삼원 구조의 숙달을 ‘자연스러움(ease)’이라 표현하였다. 특정 사회 계층 안에서 자라면, 그 계층을 몸으로 체화하게 된다. 그 계층의 취향과 가치관을 내면화함으로써, 그 안에서의 존재 자체가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부모를 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조직 내에서 능숙하게 움직이고, 동료들과 원활하게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위치를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데 능한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과 일치하게, 2021년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는 미국 내 대학 졸업자가 세대주인 가구들 중, 부모가 최소한 학사 학위 이상을 가진 경우의 중간 자산(median wealth)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약 10만 달러 더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이점을 ‘초대 졸업자(first-generation)’와 대비되는 ‘연속 졸업자(continuing-generation)’의 특권이라 하며, 이를 ‘부모 프리미엄(parent premium)’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는 이 ‘부모 프리미엄’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어린 시절 오랜 기간 동안 그 반대의 위치에 있었다. 물론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속한 모든 개인이 동일한 특성을 지닌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대학 졸업자들은 대체로 소득 상위 20%에 속하며, 사회적 영향력이 과도하게 크고, 사회적 이동성을 저해하는 ‘사치스러운 신념(luxury beliefs)’을 비정상적으로 자주 보유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예일대학교(Yale)에서 함께 공부했던 한 동창은 나에게 “일부일처제(monogamy)는 이제 좀 시대에 뒤처졌고, 사회에도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자신의 배경과 결혼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동급생들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양친 가정에서 자랐으며, 장차 본인도 결혼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통적인 가족 구조는 구시대적이며, 사회는 그런 구조를 ‘넘어서서 진화’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이처럼 한 가지 이념(“일부일처제는 구시대적이다”)을 겉으로 주장하면서 정작 다른 생활방식(“나는 결혼할 계획이다”)을 따르는 이중적 태도는 다른 학생들에게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었다. 몇몇은 군대에 대한 존경심이나, 직업학교(trade school)가 대학만큼 존중받아야 한다는 견해, 또는 성공하는 데 대학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나에게 피력했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본인의 자녀에게도 대학 진학 대신 군 입대나 배관공, 전기공과 같은 진로를 권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말을 얼버무리거나 화제를 돌리곤 했다.
이후 나는 내 경험을, 또 다른 부유한 계층인 테크 업계 거물들(tech tycoons)에 대한 기사들과 연결시켜 보게 되었다. 이들은 대중에게는 중독성 강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조장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는 기술 사용을 철저히 통제하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자신의 자녀들이 아이패드(iPad)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에서는 보모(nanny)들에게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엄격히 관리하라고 지시하는 경우도 보고되었다. ‘자신이 공급한 것을 자신은 섭취하지 말라(Don’t get high on your own supply)’는 말처럼 말이다.
오늘날 많은 부유층은 자신들은 해를 입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이득을 얻는 방식으로 사회적으로 불리한 계층에게 해로운 생활방식을 미덕처럼 떠받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부터 철저히 단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여파를 통해 금전적·사회적 이익을 얻는 경우마저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은 물질적 소유물(material accoutrements)을 통해 자신이 상류 계층에 속해 있음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치품(luxury goods)의 접근성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이는 여전히 자신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자 하는 부유층에게는 문제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에 대한 영리한 해법을 찾아냈다. 부유층은 사회적 지위(social status)를 물질적 소비재로부터 분리시키고, 대신 신념(beliefs)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그것을 연결시킨 것이다.
인간은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사회적 지위(social status)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웰빙(wellbeing)을 결정짓는 데 있어 사회경제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보다도 또래 집단으로부터의 존중과 존경(sociometric status)이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부정적인 사회적 평가(negative social judgment)를 받을 때 사람의 체내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이 분비되는데, 그 수치는 비사회적 스트레스 상황보다 세 배나 높다고 보고된 바 있다. 우리는 사회적 지위를 쌓고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그것을 상실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두려움을 품는다.
상식적으로는, 가장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일수록 지위나 돈에 가장 관심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권위 있는 기관(prestigious institutions)에 속한 이들일수록 명성(prestige)과 부(wealth)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한 경향을 보인다. 이들 중 다수는 바로 이러한 열망 덕분에 지금의 높은 지위에 도달한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위로 상승하려는 경로를 모색하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회피하려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이를 예견한 듯 다음과 같이 썼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이 원하게 된다. 이미 얻은 만족은 필요를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심리학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0년에 발표된 한 심리학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상류 계층(upper-class) 개인은 노동 계층(working-class) 개인보다 사회적 지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더 높이 평가했다. 또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지위를 보호하거나 향상시키기 위한 행동에 더 많이 나서는 경향을 보였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지위에 대한 욕망이 더욱 크다.
예를 들어, 엘리트 대학에 다니는 부유한 학생들은, 그 부모가 소득 상위 1퍼센트(top 1 per cent)에 속하고, 통계적으로도 머지않아 자신들 역시 이 상류 길드(guild)의 일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1퍼센트 집단의 또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많은 엘리트 대학생들의 사회적 환경은 이미 ‘어린 백만장자들(baby millionaires)’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이들은 상류 계층 안에서조차 희소한 경쟁자들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유지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위기감을 내면화하게 된다.
토스틴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말한 고전적 개념인 ‘여가 계층(leisure class)’은 이제 ‘사치 신념 계층(luxury belief class)’으로 진화하였다.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베블런은 1899년 저서 『여가 계층의 이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사회 계층에 대한 자신의 관찰을 집대성하였다. 그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타인의 경제적 지위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사치품이나 여가 활동에 돈을 낭비할 여력이 있는지를 통해 그들의 부(wealth)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위의 상징(status symbol)은 대개 획득이 어렵고 구매 비용이 높게 설정되어 있다.
베블런이 살던 시기에는 턱시도(tuxedo), 실크 모자(top hat), 이브닝 가운(evening gown) 같은 불편하고 섬세한 복식, 혹은 골프나 사냥(beagling)처럼 시간 소모가 큰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지위를 과시하곤 했다. 베블런은, 이러한 사치적 상징은 실용적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값비싸거나 비생산적이기 때문에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어, 따라서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고 보았다.
2015년, 내가 예일대학교(Yale)에서 첫 해를 보낼 당시, 아이비리그(Ivy League) 대학 캠퍼스에서 캐나다구스(Canada Goose) 재킷을 입은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뉴잉글랜드(New England) 지역에서 따뜻함을 유지하려면 꼭 900달러를 써야 할까? 아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단지 보온을 위해 부모의 돈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평균적인 미국인의 주간 소득(\$865)에 해당하는 금액을 오로지 로고 하나를 위해 지출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25만 달러를 들여 교육을 받는 이유가 오직 학문을 위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 ‘로고’를 사는 것이기도 하다.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의 교수 스콧 갤러웨이(Scott Galloway)는 2020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는 애플(Apple)도,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도, 코카콜라(Coca-Cola)도 아닙니다. 가장 강력한 브랜드는 MIT, 옥스퍼드(Oxford), 스탠퍼드(Stanford)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최고 대학의 교수들과 행정가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공공 봉사자(public servant)로 보지 않고, 이제는 자신들이 사치재(luxury goods)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엘리트 대학들이 학생들을 교육하지 않는다거나, 캐나다구스(Canada Goose) 재킷이 실제로 따뜻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명문 대학(top universities)은 동시에 '사치 신념 계층(luxury belief class)'으로 진입하는 데 핵심적인 관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휘(vocabulary)를 보자. 평균적인 미국의 노동자 계층(working-class American)은 “헤테로노머티브(heteronormative)”나 “시스젠더(cisgender)”가 무슨 뜻인지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엘리트 대학을 방문해 보면, 이러한 단어를 기꺼이 설명해 줄 의욕 넘치는 부유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가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그가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은 “나는 명문 대학 출신이다”라는 선언인 셈이다. 이러한 낯선 어휘를 배우는 것은 오직 여유 있는 부유층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당면한 현실의 문제들로 이미 충분히 바쁘기 때문이다.
‘백인의 특권(white privilege)’은 내가 이해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사치 신념(luxury belief)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린 시절 가난한 백인들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인의 특권’이라는 개념에 가장 열성적인 이들은 부유한 백인 대학 졸업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신념을 내세우는 데 있어 거의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고백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린다. 만약 백인의 특권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이 실제로 시행된다면, 피해를 입는 것은 예일대학교(Yale) 졸업생들이 아니라, 가난한 백인들일 것이다.
상류 계층(upper class)은 경찰 폐지(abolishing the police), 마약 비범죄화(decriminalising drugs), 또는 백인의 특권이라는 담론을 내세우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인다. 그 논리는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와 유사하다. 예컨대, 부모로부터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받는 학생이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면, 그는 900달러를 기꺼이 낭비할 수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캐나다구스 재킷을 입는 것이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류 계층 구성원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적은 정책을 제안하는 것 또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 성적 문란(sexual promiscuity), 마약 실험(drug experimentation), 혹은 경찰 폐지 같은 사안을 옹호하는 것은, 그 비용을 본인보다 적게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엘리트 계층의 일원임을 알리는 방식이다.
엘리트 대학에 다니는 부유한 학생은 코카인(cocaine)을 시도해 보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손 가정에서 부모의 돌봄 없이 자란 아이는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에 처음 손을 댄 순간부터 자기 파괴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2019년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인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비율만이 마약 합법화를 지지하는 반면, 학사 학위 이상을 소지한 미국인의 60퍼센트 이상은 마약 합법화에 찬성하고 있었다.
이와 유사하게, 2020년 조사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이 경찰 예산 삭감(defunding the police)에 대해 가장 강한 지지를 보인 반면, 가장 가난한 계층은 지지율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그 해 하반기부터 2021년까지 미국 전역에서 살인율은 급등했다. 이는 경찰 예산 삭감 정책, 조기 퇴직 및 사직하는 경찰관들의 증가, 경찰에 대한 적대감을 조장한 사치 신념 계층으로 인해 경찰 신규 채용이 어려워진 결과였다.
미국에서 연소득 7만 5천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가장 가난한 계층은 강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7배, 중범죄 폭행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7배, 성폭행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20배나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부유층은 법 집행 기관의 폐지를 외치고 있다.
가장 개인적으로 와닿는 사치 신념(luxury belief)은 ‘가족은 중요하지 않다’거나, ‘모든 가족 형태에서 아이들은 동등하게 잘 자랄 수 있다’는 주장이다. 1960년, 양친 생물학적 부모와 함께 사는 미국 아동의 비율은 부유층과 노동자 계층 모두에서 동일하게 95퍼센트였다. 그러나 2005년이 되자, 부유층 가정은 여전히 85퍼센트가 온전한 가족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던 반면, 노동자 계층에서는 그 수치가 30퍼센트로 급감하였다. 하버드대학교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은 2017년 상원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부유한 아이들과 가난한 아이들은 이제 전혀 다른 미국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노동자 계층에서 양친 가정은 드물어진 반면, 상류 중산층(upper middle class)에서는 두 부모 가정이 여전히 일반적이며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부유층, 특히 1960년대의 상류 계층은 성적 자유(sexual freedom)를 열렬히 옹호했다. 완화된 성적 규범은 사회 전반에 퍼져나갔다. 그러나 상류 계층은 정작 자신의 가족 구조는 유지했다. 일반적으로 말해, 그들은 대학 시절 실험적 경험을 한 후 안정된 결혼 생활로 정착했다. 반면 하층 계층의 가족 구조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런 붕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06년에는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자녀가 있는 부부는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2020년이 되자 이 비율은 31퍼센트로 급락했다. 한편, 대학 졸업자들 사이에서는 단지 25퍼센트만이 자녀를 갖기 전에 부부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행동은 이 사치 신념과 모순된다. 자녀가 있는 미국 대학 졸업자의 대다수는 결혼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가장 부유한 이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들려온다.
롭 헨더슨(Rob Henderson)의 『트러블드: 위탁가정, 가족, 그리고 사회 계층에 대한 회고록(Troubled: A Memoir of Foster Care, Family, and Social Class)』은 포럼(Forum)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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