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사와 에이이치, 논어와 주판 中 공자의 경제사상
공자의 경제사상
원제: 孔夫子の貨殖富貴観(공자(孔夫子)의 재물 증식(貨殖)과 부귀(富貴)에 대한 관점)
종래 유자(儒者)들이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오해해 온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부귀(富貴)에 대한 관념과 화식(貨殖)에 관한 사상일 것이다. 그들이 『논어(論語)』로부터 이끌어낸 해석에 따르면, '인의(仁義)와 왕도(王道)'와 '재물의 축적과 부귀(貨殖富貴)'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마치 얼음과 숯처럼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렇다면 공자는 과연 “부귀한 자 가운데 인의와 왕도의 마음을 지닌 자는 없으니, 인자가 되려는 마음을 품는 자는 부귀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설하였던가? 이에 대해서 『논어(論語)』 이십 편 전편을 면밀히 탐색하여 보아도, 그러한 의미의 언구(言句)는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공자는 재물 축적의 길, 즉 화식(貨殖)의 도(道)에 대해 긍정적인 논설을 행하고 있다. 다만 그 설법의 방식이 예의 ‘반면관적(半面觀的)’—즉 사물의 일면에만 치우친 듯한—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유자들은 전체적인 맥락을 그로부터 파악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결국 오류된 해석을 세상에 퍼뜨리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를 들자면, 『논어(論語)』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부(富)와 귀(貴)는 사람이 바라는 바이나, 그 도(道)를 따르지 않고 그것을 얻는다면 거기에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 빈(貧)과 천(賤)은 사람이 꺼리는 바이나, 그 도를 따르지 않고 그것을 얻게 되었다면 그것을 떠나야 한다(『富と貴とはこれ人の欲する所なり、其の道を以てせずして之を得れば処らざるなり、貧と賤とはこれ人の悪む所なり、其の道を以てせずして之を得れば去らざるなり』).」
이 말은 얼핏 보면, 문언(文言) 속에 부귀를 가볍게 여기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처럼도 느껴질 수 있으나, 실상은 측면에서 접근하여 설한 것일 뿐이며, 자세히 고찰해보면 부귀를 비하한 부분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의 본래 취지는 다만 부귀에 탐닉하는 자들을 경계한 데 지나지 않으며, 이것을 곧바로 "공자(孔子)는 부귀를 혐오하였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는 바이다.
공자가 말하려 했던 요지는, 도리(道理)에 부합하는 부귀가 아니라면 차라리 빈천(貧賤)한 처지가 나을 것이나, 만일 정당한 도리에 입각하여 얻어진 부귀라면 굳이 거리낄 바는 없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부귀를 천시하고 빈천을 칭송한 바는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정당하게 해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도리에 따르지 않고 그것을 얻는다면(其の道を以てせずして之を得れば)」라는 부분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역시 『논어(論語)』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부(富)를 구할 수 있다면, 비록 채찍을 쥔 자(執鞭の士)일지라도 나 또한 그것을 하겠다. 만일 구할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富にして求むべくんば、執鞭の士と雖も、吾亦之を為さん、如し求むべからずんば、吾が好む所に従はん』).」
이 또한 일반적으로는 공자가 부귀를 천시한 언설로 해석되어 왔지만, 이제 정당한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면, 이 구절 속 어디에도 부귀를 경멸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부를 구할 수 있다면, 비천한 자로서 채찍을 잡는 사람이라도 되겠다"는 표현은, 곧 정당한 도리—인의(仁義)—를 따름으로써 부를 획득할 수 있다면, 설령 신분이 낮은 일에 종사하더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즉, "정당한 길을 밟는다면"이라는 말이 이 구절의 이면(裏面)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하반구(下半句)는, 올바른 방법으로는 부를 얻을 수 없다면, 언제까지나 부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으며, 간악한 수단을 써가며 억지로 부를 축적하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빈천함에 만족하면서 도를 실천하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도리에 맞지 않는 부귀는 단호히 포기하는 것이 좋지만, 반드시 빈천을 즐기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이 상하 두 구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당한 길을 밟아 얻을 수 있다면, 설령 천한 직업(執鞭の士)을 맡더라도 부를 추구하라. 그러나 부정한 수단을 취해야 할 바에야, 차라리 빈천한 처지에 머무는 편이 낫다.“
이렇듯 이 언구의 이면에도 역시 ‘정당한 방법’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자(孔子)는 부를 얻기 위해서라면, 참으로 비천한 자리에 몸을 두는 것조차도 마다하지 않는 입장이었다고 단언한다면, 세상의 도학(道學) 선생들은 아마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어디까지나 사실이다. 실제로 공자 자신이 그렇게 말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자의 ‘부(富)’란, 절대적으로 정당한 부를 의미한다. 만약 부정한 부나, 도리에 어긋난 공명(功名)에 대해서는, 공자는 바로 그 ‘나에게 있어서는 뜬구름과 같은 것(我に於て浮雲の如し)’이라 평하셨던 것이다.
그런데도 유자(儒者)들은 이 가운데 존재하는 구별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부귀’라든가 ‘공명’이라는 말만 나오면 그 선악 여부를 막론하고 모두 나쁜 것으로 간주해버렸으니, 이것은 너무나도 경솔한 처사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도(道)를 따름으로써 얻어진 부귀와 공명에 대해서는, 공자 역시 자발적으로 그것을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 원서 정보 (본문 수록판 기준):
저서명: 『논어와 주판』(再版)
출판사: 도아도쇼보 (東亜堂書房)
출판연월: 1916년 9월
해당 쪽수: p.148–152
- 원문 출처 (초출본 기준):
수록 제목: 「제22장 논어와 주판」
수록지: 『청연백화 : 축쇄본』(どうぶん칸, 1913년 7월)
출판사: 도분칸 (同文館)
해당 쪽수: p.15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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