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old Lee, 순종적인 반역자들

순종적인 반역자들

 

2016129, Harold Lee(해럴드 리)

 

1960년대, 한 시위자 집단은 자신들이 증오하던 대형 은행들을 공격하기 위해 다소 기발한 전략을 시도했다. 이들은 특정 은행에서 특정 시간에 전원이 저축금을 인출하자는 전단지를 시내 곳곳에 배포했다. 사실상 인위적인 뱅크런(bank run)을 유도하려 한 셈이다. 소수의 이념적으로 결속된 인원들이 대중의 공포와 동요를 자극해 집단적 인출 사태를 일으키려는 시도였다.

 

이 시위는 여러 이유로 실패했다. 참여자가 충분하지 않았거나, 은행 측이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충분한 준비금을 확보해 사태를 무력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이 시위자들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단지 전단지를 돌리거나 피켓을 드는 등 시위자에게 기대되는 관습적 행동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설정한 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동원해 실질적으로 그 목표를 실현하려 했다.

 

이와 비교해보면 최근의 캠퍼스 시위예컨대 오벌린(Oberlin) 대학생들이 구내식당 음식에 나타난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에 항의하거나, 프린스턴(Princeton) 대학생들이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의 이름을 보다 최근의 좌파 인물로 교체하라고 요구하는 사례는 다소 상반된 양상을 보인다. 이들도 몇 차례 집회를 열긴 한다. 아마 집회가 이제 어떤 정치집단의 문법처럼 굳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청원인의 태도를 취한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서명을 받고, 교수진에게 호소한다. 자신들의 것으로 간주되는 것을 정당하지 않은 권위로부터 탈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기존 권위에 자신의 입장을 설득하려 드는 것이다.

 

브래들리 캠벨(Bradley Campbell)과 제이슨 매닝(Jason Manning)은 세 가지 도덕 체제를 비교하며 통찰력 있는 논문을 쓴 바 있다. 명예(honor) 문화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명예를 직접 방어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존엄(dignity) 문화에서는 모욕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약하며, 갈등의 해결을 공적으로 합의된 시민 제도에 위임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반면 피해(victim) 문화에서는 다시금 모욕이 큰 의미를 가지지만, 이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무력한 피해자 역할을 수용하고, 강력한 제3보통 제도나 기관에게 개입을 요청하는 수동적 호소로 나타난다.

 

학생 시위자들의 경우, 이러한 피해자 전략은 객관적으로 올바른 전략일 수 있다. 이는 대학이 시위 운동보다 훨씬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그 내부에 청원에 공감할 수 있는 다수의 집단이 존재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인식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므로 피해자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태도는 무력감, 비겁함, 행위주체성의 부재를 내면화한 학생 문화를 보여준다. 세계는 너무 크고, 개인은 너무 작아서,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유일한 희망은 자신의 불만을 수동적으로 내보이고 그에 반응할 만한 거대한 제도가 이를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의 엘리트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세상 누구보다도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야 한다는 자각을 가져야 할 집단이 바로 이들이어야 한다. 물론 이들이 지나치게 동질화된 신호 속에 둘러싸인 거품 속에서 순응을 강요받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엘리트 과잉 생산(elite overproduction)이라는 현실에 반응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능력에 대한 회의는 어쩌면 정당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바로 이 미래의 엘리트들이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믿게 되었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비대한 무형의 제도에 정중한 청원을 올려야 한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원문링크: https://web.archive.org/web/20180105103511/http://thefutureprimaeval.net/the-obedient-re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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