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사와 에이이치, 금전은 죄가 없다

금전은 죄가 없다

 

도연명(陶淵明)성년불중래(盛年不重来), 일일난재신(一日難再晨)이라 노래하였고, 주자(朱子)청년이로학난성(青年易老学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軽)이라 경계하였다. 이처럼, 특히 공상(空想)에 잠기기 쉽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청년 시절은 실로 꿈처럼 흘러가고 끝나버리는 법이다.

 

우리들 또한 청년기를 실제로 겪어보니, 참으로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렸고, ‘내일이 있으리라고 믿고 있는 사이에 그것은 마치 화살처럼 흘러가 버렸다. 오늘에 이르러 후회한들, 이미 어찌할 방도도 없다.

 

그러므로 청년 여러분은 이와 같은 전거(前車)의 교훈에 깊이 유의하여, 우리가 걸었던 후회의 궤적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

 

여러분의 분발과 정진에 따라, 장차 국가의 운명에 끼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므로, 이제껏 일정한 각오를 지녀온 사람일지라도, 그 결의를 다시금 굳건히 다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각오를 새롭게 다짐함에 있어 유의해야 할 점은 실로 무한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금전(金銭)의 문제이다.

 

차츰차츰 사회의 조직이 복잡해져 가고 있는 지금, 옛 시절조차도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일컬어졌던 만큼, 오늘날과 같이 활기 넘치는 사회적 사무(世務)에 종사하는 데 있어, 금전 문제에 대하여 충분한 각오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뜻밖의 실패를 범하고 과오에 빠지는 일이 결코 없으리라 단언할 수는 없다.

 

물론 금전(金銭)은 고귀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비천한 것이기도 하다.

 

그 고귀한 측면에서 말하자면, 금전은 곧 노동력의 대표로 기능하며, 약속에 따라 대개의 물건이나 서비스의 대가는 금전에 의하지 않고서는 결산될 수 없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덧붙여 여기서 말하는 금전이란 단지 금화·은화 혹은 지폐 등 유통화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재화는 금전을 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금전은 넓은 의미에서 재산(財産)의 대명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쇼켄코타이구(昭憲皇太后宮)의 어가(御歌)를 배독한 중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진 자의 마음에 따라 보배()도 되고

원수()도 되는 것은 황금이더라

 

이는 실로 매우 적절한 평가이며, 우리 모두가 깊이 감동하고 가슴에 새겨야 할 명가(名歌)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중국(支那)의 문헌에 의하면, 금전을 비천하게 여기는 경향이 대체로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좌전(左伝)에는 소인은 옥을 품고 있으면 죄를 얻는다(小人玉いてあり)”는 구절이 있으며, 맹자(孟子)에도 양호(陽虎)의 말로 전해지기를 인의를 행하면 부유하지 못하고, 부유하면 인의롭지 않다(せばまずめばならず)”는 표현이 보인다.

 

양호는 본디 존경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말을 식견 있는 언설(知言)’로서 일반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군자가 재물이 많으면 덕을 손상하고, 소인이 재물이 많으면 허물을 더한다(君子財多ければ小人財多ければ)”는 뜻의 문구를, 나 역시 한적(漢籍) 가운데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처럼, 대체로 동양(東洋)의 고래(古來)적 풍조에는 금전을 매우 천시하는 기풍이 강하게 깔려 있었다.

 

즉 금전은 군자에게는 가까이해서는 안 될 것이며, 소인에게는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본래 세속의 탐욕과 무절제한 악습을 교정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고, 그 결과 점차 금전을 지나치게 천시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상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청년들이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는 평소의 경험에 비추어, 논어(論語)와 주판(算盤)은 본래 서로 조화되어야 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며, 이것을 나 자신의 일관된 지론(持論)으로 삼아왔다.

 

공자(孔子)께서 간절히 도덕을 가르치신 것도, 그 가운데에는 경제에 대한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셨던 흔적이 보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점은 논어곳곳에도 산견(散見)되지만, 특히 대학(大學)에는 재화를 생성하고 다스리는 생재(生財)의 대도(大道)가 명시되어 있다.

 

본래 세상에 나아가 정사를 행함에 있어, 정치 행정상의 경비는 물론, 일반 백성들의 의식주(衣食住)에 이르기까지 필연적으로 금전적 관계가 발생하게 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도덕이 반드시 필요하며, 따라서 경제와 도덕을 조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한 사람의 실업가(實業家)로서도, 경제와 도덕의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논어와 주판의 조화를 강조해 왔다. 그리고 이것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함으로써, 일반인들이 이 점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금전을 천시하는 풍습은 동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대체로 극단적으로 행해졌던 바 있는 듯하다.

 

이는 경제에 관련된 사안이란 본질적으로 득실(得失)이라는 관점이 전면에 드러나게 마련이므로, 어떤 경우에는 겸양(謙譲)이나 청렴(清廉)과 같은 미덕을 해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며,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때때로 과오에 빠지기 쉬운 까닭에, 이를 강하게 경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러한 가르침을 설파한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이러한 관점이 점차 자연스럽게 사회 전반의 풍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어느 신문지면(新聞紙面)에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말로, “모든 상업(商業)은 죄악이다라는 의미의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무척이나 극단적인 표현이라 여겼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든 상업행위는 득실(得失)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이익과 욕심에 쉽게 눈이 멀고, 그 결과 자연히 인의(仁義)의 도()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폐해를 경계하고자, 이와 같이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인간의 심리적 약점으로 인해, 물질적 사안에 쉽게 눈길이 쏠리고, 정신적인 가치를 망각한 채 물질을 과도하게 중시하는 폐단이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폐단은 대체로 사상(思想)이 미숙하고, 도덕적 관념이 천박한 사람일수록 더욱 쉽게 빠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고대에는 전반적으로 지식이 빈약하고, 도의심(道義心) 또한 피상적이었기에, 단순한 손익 계산에 따라 죄악으로 빠지는 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하여, 유독 금전을 비천하게 여기는 풍조가 강하게 고조되었던 것이라 판단된다.

 

오늘날의 사회 상태는 과거에 비하여 지식의 발달이 현저히 진보하였고, 고상한 사상과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시 말하면, 사회 전반의 인격 수준이 향상되어 온 것이다.

 

이에 따라 금전에 대한 사고 역시 상당히 진전되었고, 떳떳한 수단을 사용하여 수입을 도모하고, 선량한 방법을 통해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으로써, 점차 금전에 대해 공정한 관점을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 심성의 약점으로 인해, 이익과 욕망의 심정이 앞서게 되면 부()를 우선하고 도의(道義)를 후차적으로 여기는 폐단이 쉽게 발생한다.

 

그 결과, 금전을 지나치게 중시하게 되어, 마침내 금전이 만능이라도 되는 양 여겨지고, 참으로 중대한 정신적 문제들을 망각한 채 물질의 노예가 되기 쉬운 것이다.

 

이와 같이 되는 경우, 책임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에게 귀속되는 것이지만, 금전이 불러오는 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그 가치를 낮춰 보게 되며, 결국 다시금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말을 반복하게 되는 사태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세상 일반의 진보와 더불어 금전에 대한 취급 방식 역시 개정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 도덕과 분리되지 않으려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특히 구미(歐米)에서는 진정한 부()란 정당한 활동을 통해 획득되어야 할 것이라는 관념이 점차 실천에 옮겨지고 있는 바, 이는 실로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청년 여러분 또한, 이 점에 깊이 유의하여, 금전에 따르는 재앙에 빠지지 않고, 도의(道義)와 더불어 금전의 진정한 가치를 활용하는 데 더욱 힘쓰기를 바라는 바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 청년과 금전, 류몬잡지307(류몬샤, 191312), p.3033.

※ 『논어와 주판(재판, 도아도쇼보, 19169) p.157163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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