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도덕의 계보』 中 성직자적 귀족과 기사적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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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세습계급이 동시에 성직자 계급이며 따라서 그 계급을 전체적으로 특징짓기 위해 성직자의 기능을 상기시키는 술어를 선호하게 되는 경우에도, 정치적 우위를 나타내는 개념이 언제나 정신적 우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귀착된다는 이러한 규칙에는 지금까지 어떠한 예외도 존재하지 않는다(예외가 나타날 수 있는 계기는 있을지라도). 이 경우 예를 들어 처음에는 순수함불순함이 신분적인 차별의 표시로서 서로 대립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좋음나쁨이 나중에는 더는 신분을 나타내지 않는 의미로 전개된다.

 

덧붙여서 하는 말이지만 순수함불순함이라는 개념들을 처음부터 너무 심각한 의미로 혹은 너무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더욱 안 된다. 왜냐하면 고대인의 모든 개념은 오히려 처음에는 우리가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서투르며 표면적이고 좁게, 직선적이고 특히 비상징적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자란 원래는 단지 몸을 씻는 자, 피부질환을 초래할 수 있는 음식들을 스스로 금하는 자, 낮은 신분의 더러운 여자들과는 자지 않는 자, 피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는30) 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상의 다른 의미를 갖지 않았다!

 

다른 한편 바로 성직자적 귀족사회에서 가치평가의 대립이 왜 그렇게 일찍 위험한 방식으로 내면화되고 첨예화될 수 있었는지가31) 본질적으로 성직자적인 귀족사회의 전체적인 성격에서 분명하게 밝혀진다. 그리고 사실상 이러한 가치평가의 대립 때문에 마침내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자유 정신의 아킬레우스조차도 전율하지 않고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생겨나게 되었다.32)

 

그러한 성직자적 귀족주의와 그것을 행동 기피적이고 부분적으로 침울하며 부분적으로 감정을 폭발하는 습관에는 처음부터 건강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러한 습관의 결과 모든 시대의 성직자는 거의 불가피하게 내장질환과 신경쇠약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질환에 대한 치료법으로서 성직자들 자신이 고안한 방법은 결국 그것으로 치료해야만 하는 질환보다 그 부작용이 백배나 위험한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인류는 이렇게 순진하기 짝이 없는 성직자적 치료법의 부작용 때문에 여전히 병들어 있다!

 

예를 들어 식이요법(육식의 금지), 단식, 성적인 금욕, ‘황야로의 도피(이것은 웨어 미첼33) 식의 격리요법이지만 그 경우 웨어 미첼의 격리요법에 따르는 비만요법과 식사요법은 배제한다. 이러한 비만요법과 과식요법이야말로 금욕주의적 이상(理想)이 초래하는 모든 히스테리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를 생각해보라.

 

그에 덧붙여, 사람들을 감각을 적대시하고 게으르고 심약하게 만드는 성직자들의 형이상학 전체와 이슬람교 성직자와 브라만승 브라만을 [자기최면에 이용하는 도구인] 수정구슬과 고정관념으로써 사용한다 의 방식에 따르는 자기최면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근복적인 치료법인, (혹은 신, 신과의 신비적 합일에 대한 열망은 무, 즉 열반을 향한 불교도의 열망일 뿐이며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에 의한 최후의 너무나도 당연하고 전반적인 포만 상태를 생각해보라.

 

성직자들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더 위험하게 된다. 치료제와 치료술 뿐 아니라 오만, 복수, 명민함, 방종, 사랑, 지배욕, , 병을 비롯한 모든 것이 더욱 위험하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공정함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본질적으로 위험한 인간의 존재 방식, 즉 성직자적 존재 방식의 토양 위에서 인간 일반은 비로소 흥미로운 동물이 되었으며, 여기에서 비로소 인간의 영혼은 좀 더 높은 의미에서 깊이를 갖게 되었고 사악하게 된 것이다.34) 이것[깊이와 사악함]이야말로 정녕 인간이 이제까지 다른 짐승들에 대해서 지녀온 우월함의 두 가지 형식이다!

 

7

 

성직자적 평가방식이 얼마나 쉽게 기사적 · 귀족적인 평가방식에서 분리되어 그것과는 정반대의 것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지를 이미 잘 알았을 것이다. 특히 성직자적인 계급과 전사 계급이 서로 질투하면서 대립하고 승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서로 합의를 보려하지 않을 때이다. 성직자적 평가방식은 기사적 · 귀족적인 평가방식과 정반대의 것으로 전개되었다.

 

기사적 · 귀족적 가치판단은 강한 육체, 젊고 왕성하며 넘쳐흐르기까지 하는 건강, 그러한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 즉 전쟁, 모험, 사냥, , 투기(鬪技)와 강하고 자유로우며 쾌활한 행동을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을 그 전제로 한다.

 

이에 반해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성직자 귀족의 평가방식은 다른 전제를 갖는다. 전쟁은 그들에게 가장 불리한 것이다! 성직자들은 잘 알려져 있듯이 가장 사악한 적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가장 무력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증오는 무력함으로부터 생겨나서 기이하고 섬뜩한 것, 가장 정신적이고 가장 해로운 것이 된다. 세계사에서 가장 증오로 가득 찼던 자들은 항상 성직자들이었고, 또한 이들은 증오하는 자 중에서 가장 영리한 자들이었다. 성직자의 복수심에 비하면 다른 모든 정신은 거의 문제도 되지 않는다.

 

무력한 자들로부터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게 된 정신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극히 어리석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가장 현저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 지상에서 고귀한 자’, ‘강력한 자’, ‘지배자’, ‘권력자에 대항하여 행한 그 어떤 것도 유대인들이 이들에 대항하여 행한 것에 비하면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다.

 

성직자적인 민족인 유대인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적과 정복자들의 가치를 전도시킴으로써, 가장 정신적인 복수를 하는 방식으로 보복할 줄 알았다. 오직 이것만이 성직자적 민족, 즉 가장 뿌리 깊은 성직자적 복수심을 지닌 민족에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유대인이야말로 두려울 정도의 논리 정연함으로 귀족적인 가치 등식(좋은=고귀한=강력한=아름다운=행복한=신의 사랑을 받는)의 전도를 감행했으며 가장 깊은 증오(무력함에서 비롯되는 증오)의 이빨로 귀족적인 가치 등식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비참한 자만이 선한 자이고, 가난하고 무력하며 비천한 자만이 선한 자이다. 고통받고 가난하며 추한 자만이 경건한 자이고 신의 축복을 받는 자이며 오직 그들에게만 더없는 행복이 있다. 이에 반해 그대들, 그대 고귀하고 강력한 자들, 그대들은 영원히 사악한 자, 잔인한 자, 음탕한 자, 탐욕스러운 자, 신을 부정하는 자이고, 그대들이야말로 또한 영원히 축복받지 못하는 자, 저주받은 자, 유죄판결을 받은 자가 될 것이다!”

 

이러한 유대적 가치전환을 이어받은 자가 누구인지는35)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이 모든 선전포고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선전포고를 통해 행사한 거대하면서 헤아릴 수 없이 치명적인 주도권과 관련하여 내가 다른 기회(선악의 저편, 195)36)에 말했던 문구를 상기시키고 싶다.

 

즉 유대인과 더불어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이 시작된다. 이 반란은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그러한 반란을 의식하지 못하게 된 것은37) 그 반란이 계속해서 승리해왔기 때문이다.

 

30) 고대인들은 시체와 피를 불결한 오염원으로 보았다. 따라서 시체나 피를 다루는 계급은 가장 낮은 계급이었다.

31) 이에 반해 원래 정복 민족이 지배계급이 된 귀족사회에서 인간들 사이의 대립은 강하고 용감하며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갖는 자와 약하고 비겁하며 비굴한 자 사이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성직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들 사이의 대립은 성욕이나 물욕, 명예욕과 같은 모든 욕망에서 벗어난 순수한 성직자들과 그렇지 못한 세속적인 인간들 사이의 대립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은 개인의 차원으로 전이되어 욕망들과 그것들을 부정하고 억압하려는 양심 사이의 대립으로 내면화되었다. 이러한 내면화와 함께 각 개인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학대하는 식으로 병들게 되었다. 이 점에서 니체는 성직자적 귀족사회에서 가치평가의 대립은 위험한 방식으로 내면화되고 첨예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32) 성직자적 가치평가에서 성직자들은 가장 순수한 영혼을 소유한 신의 대리인으로 간주되며 일반 신자들은 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33) 미첼(Silas Weir Mitchell, 1829~1914)은 미국의 의학자이자 소설가로 격리, 침대 감금, 다이어트, 마사지 등을 이용한 신경병 치료요법인 웨어 미첼법을 창안했다.

34) 인간의 영혼이 깊이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내면화와 연관이 있다. 성직자적인 가치평가가 지배하게 되면서 인간은 성욕이나 소유욕과 같은 자연스러운 욕망들을 불순한 것으로 보고 그것들과 투쟁하는 내면의 싸움에 몰두하게 된다. 원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냥을 비롯한 갖가지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외부로 분출해야 하지만, 이제 인간은 그 에너지를 자신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인간은 자신을 악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단죄하면서 고통스러워한다. 이러한 현상은 동물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전통 형이상학이나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내면화를 인간이 동물 세계를 초월하는 것으로 보면서 긍정적으로 본다. 이에 반해 니체는 이러한 내면화와 함께 인간은 동물적인 건강함을 상실하고 병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본다.

니체는 성직자적 가치평가가 지배하면서 인간이 또한 사악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7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니체는 기사적인 귀족계급은 정직하지만, 성직자들은 교활하고 위선적이라고 본다. 기사적인 귀족계급은 자신이 설령 전투에서 패배했더라도 자신의 역량이 부족해서 패배했다고 인정하며,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적을 존경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성직자적 귀족계급은 사회의 지배자들을 다른 인간들을 억압하는 자들로 단죄하면서 자신은 민중을 사랑하는 선한 자들로 자처한다. 그러나 이들도 사실은 기사적인 귀족계급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이고 권력을 갖고 싶어한다. 이 점에서 이들은 위선적인 자들이다. 또한, 성직자적 귀족계급은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라는 식의 거질말로 민중을 선동하여 기사적인 귀족계급에게서 권력을 빼앗고 자신들이 지배자가 된다. 니체는 성직자적인 귀족계급이 보여주는 이런 식의 위선과 교활함은 동물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사악함이라고 본다. 또한 니체는 성직자적 귀족계급이 보여주는 이러한 사악함을 사회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이 이어받고 있다고 본다.

35) 다음 절에서 보겠지만 예수를 말한다.

36) 니체는 선악의 저편195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유대인, 타키투스나 고대 세계의 모든 사람이 말한 대로 노예로 태어난민족, 그리고 그들 자신이 말하고 있는 바로는 모든 민족 중에서 선택된 민족인 유대인들은 가치 전도라는 저 기적적인 일을 해냈다. 이 덕분에 지상에서의 삶은 이삼천 년에 걸쳐서 하나의 새롭고 위험한 매력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예언자들은 ()’, ‘신에 대한 부정’, ‘’, ‘폭력’, ‘관능과 같은 것들을 하나로 융합했으며, 맨 처음으로 세상이라는 단어를 더럽고 욕된 것으로 가리키는 용어로 만들어버렸다. 그러한 가치전도 가난이라는 말을 성스러움친구라는 말과 동의어로 쓴 것은 그 한 예에 속한다. 에 유대민족의 의의가 존재한다. 이 민족과 더불에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친구라는 말은 신의 친구를 의미하는 것 같다.

37) 오늘날 지배하는 노예도덕이 원래부터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반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반란이 2000년 전부터 승리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도덕의 계보, 아카넷, 2021, 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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