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사와 에이이치, 『논어와 주판(論語と算盤)』中 진정한 이익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이익이란 무엇인가

(원제: 真正利殖法)

 

실업(実業)이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은가. 물론 세상의 상업과 공업이 이익을 증식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에는 틀림이 없다. 만약 상공업이라는 것이 사물의 증식, 즉 생산을 늘리는 기능을 지니지 못한다면,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해, 상공업은 아무런 공익도 창출하지 못하는 무익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익 증식을 도모함에 있어서 만일 전적으로 자기 자신만 이익을 보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타인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나아간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다소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만약 실제로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상태라면, 맹자(孟子)가 말하길 어찌 반드시 이익을 말하려는가, 인의(仁義)만 있을 뿐이다[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 “상하가 모두 서로 이익만을 좇으면 국가는 위태로워진다[上下交征利而国危矣]”, “진실로 의를 뒤로 미루고 이익을 앞세우는 일을 하면,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게 된다[苟後義而先利則無所不至]”라고 한 바 그대로의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진정한 이익 증식(真正利殖)이라는 것은 인의도덕(仁義道徳)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자칫 이익 증식을 천하게 여기고, 인간의 욕망을 제거하며, 세속을 떠나야 한다는 식의 생각으로 흘러가기 쉽지만, 그리로 치우쳐서는 곤란하다.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깊은 배려와 넓은 안목을 지니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한 일이지만, 자기 자신의 이욕(利慾)만을 따라 움직인다면, 그것은 곧 속됨()이다. 인의도덕이 결여되면, 세상의 모든 일이라는 것은 점차 쇠퇴해 가고 말게 되는 것이다.

 

다소 학자처럼 들릴지 모르나, 중국의 학문, 특히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송()나라 시대의 학자들이 걸었던 길은 바로 오늘날과 같은 문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인의도덕(仁義道徳)을 내세우는 데 있어, 이처럼 특정한 순서를 따라 진보해 간다는 사고 자체를 버리고, 모든 것을 공리공론(空理空論)으로 몰아간 결과, 이욕(利慾)을 멀리함은 좋았을지 모르나, 결국 그 사람들 자신도 쇠락하고, 그에 따라 국가 전체도 쇠약해졌다. 그리고 그 말로는 마침내 원()의 침략을 받게 되고, 이어지는 화란 끝에 마침내 원이라 불리는 이적(夷狄)에게 국토 전체가 통일되어버린 것이 바로 송말(宋末)의 참상이었다.

 

결국, 공리공론에 불과한 인의라는 것이 국가의 기운을 꺾고, 생산력을 약화시키며, 그 극에 이르면 국가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는 점을 우리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인의도덕이라 할지라도, 잘못 작용하면 오히려 망국(亡國)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익 증식(利殖)을 최고의 주의로 삼고, “나만 이익을 보면 그만이다. 남은 상관없다는 주의에 따라 나아가야 하는가? 오늘날 이웃 나라의 일부 지역, 혹은 원나라 당시의 모습이 바로 그러한 상태였다. 사람은 상관없고, 국가도 상관없으며, 오직 나 자신만 편하면 된다는 태도. 그 결과 국가가 어떤 권리를 잃고, 어떤 명예를 실추하더라도, 개인의 발전만을 생각할 뿐, 국가를 돌보는 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송나라 시대에는 앞서 말한 도덕과 인의에 의해 나라가 멸망했고, 오늘날에는 다시 이기주의에 의해 개인이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비단 우리의 이웃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여타 여러 나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과, 인의도덕이라는 도리를 중시한다는 이 두 가지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서서 대립하지 않는 수준에서 처음으로 국가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으며, 개인 또한 각자 알맞은 방식으로 부유해질 수 있는 길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석유 산업이라든가, 제분(製粉), 혹은 인조 비료(人造肥料)와 같은 사업을 생각해보아도, 만일 이익을 증진시키겠다는 관념 없이 그저 되는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식으로 운영한다면, 그 사업이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가 증대될 수 없다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가령 그 일이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하여, 남들이 돈을 벌어도 자기에게는 아무런 행복이 되지 않고, 반대로 손해를 보더라도 불행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그 사업은 결코 온전하게 발전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이 직접 하는 일이라면, 이 물건을 널리 보급하고 싶다, 이 사업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욕망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이러한 관념이 바탕이 되어 남을 누르고, 세상의 대세를 살피지 않으며, 사정도 헤아리지 않은 채, 그저 나만 잘되면 된다는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모두가 함께 불행을 겪게 되며, '자기 자신만 이익을 보자'고 생각했던 그 사람조차도 불행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먼 옛날, 사물의 발전이 더딘 시대에는 일종의 우연한 행운(マグレ)’이라는 것이 존재했을지 모르나, 시대가 진보함에 따라 모든 사물이 필연적으로 규칙과 질서를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자기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를테면 철도 개찰구를 통과하려 할 때, 좁은 통로를 두고 모두가 '나부터 먼저 지나가겠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아무도 지나갈 수 없는 꼴이 되어, 모두가 곤란에 빠지게 된다. 가까운 예만 보더라도, ‘나만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자기 자신의 이익조차 해친다는 사실은 이 한 가지 사례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내가 항상 바라는 바는 다음과 같다. , 사물의 유통을 촉진하고 증대시키고자 하는 욕망, 인간의 마음속에 늘 간직되어야 한다는 것. 다만 그 욕망은 반드시 도리(道理)’에 근거해 활동하도록 조절되어야 하며, 이 도리란 곧 인()()()이 나란히 함께 가는 이치다.

 

이 도리와 욕망은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며, 만일 그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앞서 말한 중국의 쇠퇴 사례처럼 공허한 이상론으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반대로 욕망이 아무리 왕성하다 해도, 그 욕망이 도리와 어긋난다면, 결국에는 맹자(孟子)가 말한 바와 같이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는불행에 이르게 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원제: 진정한 이식법(真正利殖法) — 『논어와 주판(論語算盤)중에서

저자: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

출처: 지츠교 호치 신문 5주년 행사장에서(実業報知新聞五週年式塲), 류몬잡지(竜門雑誌)306(용문사, 191311), pp.1923

수록: 논어와 주판(論語算盤)재판, 토아도 쇼보(東亜堂書房), 19169, pp.13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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