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와 천명(天命), 내성외왕(內聖外王)

장제스와 천명(天命), 내성외왕(內聖外王)


1934년, 장제스(蔣介石, Chiang Kai-shek)가 신생활운동(新生活運動)을 추진하던 무렵의 일이다. 외국인 고문 윌리엄 헨리 도널드(William Henry Donald)가 이 운동의 강압적 성격과 그 효용에 의문을 제기하자, 장제스는 짧고 단호하게 응수했다. "나는 중국이오. 중국은 나 없이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소."


표면적으로는 오만한 한마디다. 그러나 이 발언을 단순히 권위주의적 자존심의 발로로 읽는 것은, 그 안에 압축된 사상적 지층을 놓치는 일이다. 이 한 문장은 영미권의 정치 언어와 동아시아의 정치 형이상학이 어디서 근본적으로 갈라지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장제스가 기독교인이면서도 영미권의 기독교 기반 정치 철학과 결이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은 그 분기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같은 신을 믿는다고 하는데, 전혀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장제스라는 인물은 20세기 중국의 정치사에서 오랫동안 단순화된 방식으로 서술되어 왔다. 제이 테일러(Jay Taylor)는 그의 방대한 전기 <The Generalissimo: Chiang Kaishek and the Struggle for Modern China(2009)>에서 이 단순화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테일러에 따르면 장제스는 "근대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신유교주의자(新儒敎主義者)"였으며, 그를 평면적인 독재자나 친미 반공주의자로 환원하는 해석은 미국의 정책적 실패를 가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성된 캐리커처에 가깝다. 냉전 시기 대륙 중화민국의 '상실'을 설명해야 했던 미국 정치의 필요가 장제스에 대한 왜곡된 초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곡을 걷어낸 자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1934년 2월 난창(南昌)에서 시작된 신생활운동은 단일한 이념적 성격을 가진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러 사상의 층위가 서로 긴장하며 공존하는 복잡한 혼합물이었다.


가장 바깥에 놓인 층위는 유교적인 것이다. 운동은 예(禮)·의(義)·염(廉)·치(恥)의 사덕(四德)을 근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여 일상적 행동의 규범으로 삼고자 했다. 질서, 청결, 검약, 신속, 정확이라는 덕목들이 그 구체적 내용을 이루었다. 이것만 보면 신생활운동은 공자의 수신(修身) 논리를 국가적 차원으로 확장한 교화 운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파시즘의 층위가 자리 잡고 있다. 역사가 프레드릭 웨이크먼(Frederic Wakeman)은 신생활운동을 "유교적 파시즘(Confucian fascism)"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했다. 장제스는 군사 규율과 집단 동원의 방식에서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히틀러의 독일을 의식적으로 참조했고, 남방의 청셔츠단(藍衣社)은 이탈리아 검은셔츠단과 나치의 돌격대를 모델로 조직되었다. 이 파시즘적 층위가 운동의 강압적 집행 방식을 설명해준다. 신생활운동은 설득이 아니라 강제였다. 복장, 식사 예절, 공공장소에서의 행동 방식까지 국가 권력이 직접 규율했다.


여기에 기독교적 층위가 더해진다. 장제스의 아내 쑹메이링(宋美齡)의 영향 아래, 운동의 도덕적 언어에는 기독교적 색채가 스며들었다. 쑹메이링은 1935년 미국 잡지 포럼(Forum)에 기고한 글에서 "막대한 부의 축적만으로는 중국이 위대한 국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썼다. 봉사, 절제, 희생이라는 덕목은 기독교 윤리와 유교 윤리가 겹치는 지점에서 동원되었다.


그렇다면 윌리엄 헨리 도널드가 비판한 것은 정확히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이 사상적 혼합이 가진 근본적인 긴장, 즉 덕목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국가가 시민의 일상을 군사적으로 규율하는 구조에 대한 이의였다. 영미권의 기독교 정치 전통에서 이런 구조는 전체주의로 읽힌다. 장제스의 응수는 이 비판을 원천에서 차단했다. "당신은 외부인이고, 나는 중국이다."


이 발언을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L'état, c'est moi)"와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운 출발점이지만, 비교는 곧 한계에 부딪힌다. 루이 14세의 선언은 절대왕정의 법적 주장이다. 왕의 신체와 국가 주권이 법적으로 동일시된다는 것이다. 장제스의 선언은 그보다 훨씬 더 실존적이고 역사신학적이다.


동아시아 정치 전통에서 통치자는 단순히 권력을 보유한 개인이 아니다. 그는 천명(天命)을 받은 자로서, 역사적 순간의 필연을 자신의 몸 안에 구현하는 존재다. 장제스의 "나는 중국이오"는 이 천명론적 자의식의 표현이다. 이 역사적 위기의 순간에, 중화민족의 생존과 부흥은 나라는 인격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 이것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 일종의 역사적 책임의식의 천명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의 발언은 영미권의 정치 언어로는 번역되기 어려운 성격을 갖는다.


영미권 정치 전통에서 지도자는 신 앞에 책임지는 개인이다. 마그나 카르타 이래 영국의 정치 전통이 반복적으로 확인해 온 것은, 왕도 법 앞에 굴복해야 하고 신 앞에 굴복해야 한다는 원리다. 지도자는 초월적 질서의 집행자이지, 그 질서 자체가 될 수 없다. 러셀 커크(Russell Kirk)는 <The Conservative Mind(1953)>에서 보수주의 사상의 첫 번째 원칙으로 "초월적 질서(transcendent order)에 대한 믿음"을 꼽는다. 사회뿐만 아니라 양심을 규율하는 이 자연법의 질서는, 결정적으로, 세속 권력을 제약하는 상위 원리로 기능한다. 커크에게 정치적 문제는 그 근저에서 종교적·도덕적 문제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떤 통치자도 그 질서 위에 설 수 없다.


장제스의 정치 형이상학은 이 구조를 정확히 역전시킨다. 그에게 신 혹은 하늘은 세속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 권력에 역사적 사명을 부여하는 존재다. 천명을 받은 자는 외부의 비판(외국 고문의 충고든, 영미식 민주주의 절차든)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다. 그 자신이 이미 역사적 필연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장제스의 기독교 개종은 단순하지 않은 서사를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1927년 쑹메이링과의 결혼이 계기였고, 그녀의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기독교 공부를 약속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그의 일기들은 보다 복잡한 그림을 보여준다.


미국종교학회(AAR) 연례회의에서 발표된 한 연구는 장제스의 기독교 민족주의를 세 가지 얽힌 힘의 산물로 분석한다. 왕권에 대한 유교적 이해, 다종교 사회를 통치해야 하는 현실적 제약, 그리고 서방 매체에 기독교 정치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동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가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장제스가 일기에서 반복적으로 중국을 기독교 국가로 건설하겠다고 썼으며, "그의 신앙은 진정한 것이었지만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믿음이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외국 침략자와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로부터 중국을 구하도록 선택받은 존재라고 보았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설이 등장한다. 일기 연구에 의하면, 그는 기독교를 유교적 도덕 수양의 연장선에서 받아들였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유교 경전을 공부하고 자기 성찰을 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 구조 안에 놓였다. 기독교의 신은 그에게 개인 구원의 하나님인 동시에,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자신에게 위탁한 존재였다.


이것이 영미권의 기독교 정치 전통과 어떻게 다른가. 영미권 기독교의 정치적 핵심은 개인의 양심이 최고 권위라는 데 있다.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세속 권력은 신의 권위 아래 제한된다. 청교도 혁명,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의 기독교적 기반이 모두 이 논리 위에 서 있다. 러셀 커크가 강조하는 초월적 질서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초월적 질서는 세속 권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한하는 원리다.


장제스의 기독교는 이 구조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의 신학적 내용을 수용했지만, 그 정치철학적 함의는 유교적 천명론의 논리로 흡수해버렸다. 결과적으로 같은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 전혀 다른 정치적 언어를 구사하는 인물이 탄생했다. 도널드가 당혹스러웠던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커크가 이 역설을 목격했다면, 아마도 이렇게 진단했을 것이다. 장제스의 기독교에는 원죄론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원죄론이 없다면 권력자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은 권력 제한의 원리 자체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그러나 장제스는 이 비판에 아마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의 원죄론은 영국이라는 특수한 역사의 산물이지, 4천 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의 언어가 아니라고.


장제스를 이해하는 데 있어 유교 정치철학의 핵심 구조인 내성외왕(內聖外王)은 불가결한 개념이다. 안으로 성인의 덕을 닦고, 밖으로 왕의 정치를 펼친다는 이 원리는, 통치자의 내면적 도덕 완성과 외면적 정치 행위를 연속선 위에 놓는다.


영미권의 정치 전통에서 내면과 외면은 분리된다. 정치인의 사생활은 공적 직무와 구별되며, 개인의 도덕성과 정치적 능력은 원칙적으로 별개의 문제다. 이것이 자유주의적 공사(公私) 구분의 기반이다. 그러나 내성외왕의 구조에서 이 분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내면적 덕성이 곧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렌즈를 통해 볼 때 장제스의 행동 방식에서 많은 것들이 다르게 읽힌다. 그의 금욕적 자기 단련, 일기에 기록된 끊임없는 자기 성찰, 도덕적 수양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성외왕의 논리 안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실천하려는 진지한 시도였다. '나는 덕이 있으므로 통치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덕이 있기 때문에 적에 대한 강압도 정당화된다'라는 것이 장제스의 논리였다.


물론 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컸다. 젊은 시절의 방탕한 사생활, 국민당 내부에 만연한 부패, 그리고 장제스 본인이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가 기록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장제스 자신이 이 간극을 모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일기에는 자신의 실패와 죄과에 대한 반복적인 고백이 등장하며, 그 고백은 기독교적 참회의 언어와 유교적 수신(修身)의 언어가 뒤섞인 형태로 나타난다. 내성외왕은 도달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향해야 할 이상이었고, 장제스는 그 이상과 자신의 현실 사이의 거리를 평생 의식했다. 이 긴장이 그의 통치를 위선으로만 규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동시에, 그것을 순수한 덕치로 미화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영미권 관찰자들이 장제스를 볼 때 경험하는 당혹감은 바로 이 복잡성에서 온다. 한편으로는 놀랍도록 강렬한 자기 성찰과 도덕적 자의식을 가진 인물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반대파에 대한 잔혹한 탄압과 조직적 부패를 방치하거나 묵인한다. 이 두 측면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는가. 내성외왕의 구조 안에서 이것은 단순한 모순이 아니다. 이상을 향한 지향과 현실의 실패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이 전통이 상정하는 통치자의 조건에 더 가깝다. 문제는 그 간극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심판하는가였다.


유교 정치철학이 상정하는 이상적 통치자인 군자(君子)는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존재다. 테일러는 장제스를 "근대주의자이면서 신유교주의자"로 규정하면서, 그의 모든 결정을 "국가 우선(nation comes first)"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국가 우선의 원리는 서구 민족주의의 언어를 빌리고 있지만, 그 내용은 군자론적 정당성의 구조 위에 서 있다. 장제스에게 국가는 추상적 정치 단위가 아니라, 그 자신의 도덕적 완성과 불가분하게 연결된 문명적 실체였다.


장제스는 서구의 개념들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민주주의, 법치, 근대화라는 언어가 그의 연설과 문서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언어들은 동아시아적 형이상학의 용기(容器) 안에 담겨 있었다. 개인의 자유 대신 집단적 규율이, 권력 제한 대신 도덕적 통치가, 절차적 민주주의 대신 천명론적 정당성이 그 내용을 채웠다.


이것은 위선이나 기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명 번역이었다. 서구의 언어와 개념을 동아시아적 아비투스(habitus)로 변환하는, 즉 개념의 형식은 수용하되 그것이 전제하는 존재론적 기반은 바꾸는 작업이었다. 장제스와 같은 세대의 동아시아 지도자들(박정희, 리콴유 등)이 모두 이런 선택적 수용의 기술을 구사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영미적 개념을 동아시아적 정치 문법으로 흡수하는 데 탁월했다.


영미권이 이 선택적 수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비판한 오리엔탈리즘은 좌파적 맥락에서 발전했지만, 영미 보수주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영미 보수주의의 오리엔탈리즘은 아시아를 결핍의 언어로 읽는다. 아직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에 도달하지 못한 발전 단계의 사회라는 것이다. 따라서 리콴유가 공동체 우선을 말하면 개인 자유의 억압으로, 장제스가 신생활운동을 말하면 전체주의적 사회 통제로 읽힌다. 이러한 독해 방법론은 동아시아 정치 사상이 독자적인 형이상학적 체계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차단한다.


더 깊은 문제는 존재론적 차이에 있다. 영미권 아비투스의 형이상학적 기반에서 존재론적 기본 단위는 개체(individual substance)다. 신도 개인이고, 인간도 개인이고, 사회도 개인들의 집합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 기독교의 인격신, 존 로크의 개인주의가 모두 이 존재론을 공유한다.


동아시아 아비투스의 형이상학적 기반에서 존재론적 기본 단위는 관계(relation)다. 유교의 오륜(五倫)은 이것을 명시한다.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 인간은 언제나 이미 관계 속에 있다. 관계 바깥의 개인은 추상이지 실재가 아니다. 이 존재론에서 자라난 사람에게 개인이 공동체보다 존재론적으로 선행한다는 발상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역방향도 마찬가지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지평의 융합(Horizontverschmelzung)의 실패다. 진정한 이해는 해석자의 지평과 텍스트의 지평이 융합될 때 일어난다. 그러나 영미권 보수주의자의 아비투스가 너무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동아시아적 지평이 그 아비투스를 근본적으로 변환시키지 못한다. 접촉은 있지만 융합은 없다.


장제스는 단순한 반공 군벌도, 파시즘의 아류도 아니었다. 그는 4천 년의 사상 전통을 몸에 새기고, 거기에 서구의 근대적 개념들을 선택적으로 접합하면서, 극도로 혼란스러운 역사적 조건 속에서 중국의 생존과 부흥이라는 문제와 씨름한 인물이었다.


러셀 커크가 보수주의의 핵심으로 내세운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질서가 세속 권력을 제한한다는 원리, 그것은 영국이라는 특수한 역사 속에서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아비투스의 산물이다. 그것이 보편적이라는 믿음 자체가 이미 특수한 역사적 입장을 전제한다. 커크는 <The Conservative Mind>에서 "우리가 천천히 더듬어 나아가는 것은 우리 본성의 태고적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인식론적 겸손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것이 영미 보수주의의 가장 깊은 맹점이다.


장제스의 "나는 중국이오"는 이 맹점을 정확히 겨냥한다. 그것은 오만의 언어가 아니라, 서로 다른 형이상학적 우주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화된, 번역 불가능한 선언이다. 그리고 바로 그 번역 불가능성이야말로, 장제스를 단순한 역사적 패자가 아니라 독자적인 문명적 행위자로 만드는 것이다.


- 주요 참고 문헌 - 


Jay Taylor, The Generalissimo: Chiang Kaishek and the Struggle for Modern Chin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Russell Kirk, The Conservative Mind: From Burke to Eliot (Regnery Publishing, 1953)

Frederic Wakeman, "A Revisionist View of the Nanjing Decade," China Quarterly, 1997

미국종교학회 연례회의 발표문, "Between Confucius and Christ: Chiang Kaishek's Christian Nationalism Across Multifaith China and Taiwan"

탄펑(Tan Peng), "Chiang Kaishek and Christianity: Religious Life Reflected from His Diary," Journal of Modern Chinese History, Vol. 3, No. 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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