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동남아시아의 반이슬람 관념에 대한 깊은 분석
남아시아·동남아시아의 반(反)이슬람 관념에 대한 깊은 분석
어떤 갈등은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비롯되고, 어떤 갈등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나온다. 그러나 가장 깊고 가장 해소하기 어려운 갈등은 세계 그 자체를 어떻게 보는가, 다시 말해 우주론과 형이상학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남아시아·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사이의 역사적 긴장을 단순히 종교적 반목이나 문화적 마찰로 읽는 시각은 현상의 표면만 건드릴 뿐이다. 그 아래에는 존재의 질서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는 세계관들이 놓여 있다.
이 에세이는 그 형이상학적 단층선을 따라가면서, 남아시아·동남아시아의 반이슬람 정서가 서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왜 다를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본다. 비교의 지렛대로는 베다 사상에서 이슬람 신학에 이르는 주요 텍스트들을 사용한다. 어떤 문명도 미화하거나 폄하하지 않고, 각 전통의 내적 논리를 그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되, 그 논리가 낳는 내적 모순도 함께 직시하는 것이 이 글의 방법론이다.
인도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위계적 질서에 대한 강한 감각이다. 그러나 이 유사성은 표면적이다. 두 위계의 형이상학적 뿌리는 완전히 다르며, 그 차이가 이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다만 이슬람이 힌두교보다 평등하다는 결론을 이 차이에서 곧장 끌어내는 것은 섣부르다. 이슬람의 평등주의는 처음부터 그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신학적 구조 안에 독자적인 위계를 내장하고 있었다.
카스트 제도의 철학적 기반은 리그베다의 「푸루샤 수크타(Purusha Sukta)」에 있다. 이 찬가에 따르면 우주적 인간 푸루샤의 입에서 브라만이, 팔에서 크샤트리아가, 허벅지에서 바이샤가, 발에서 수드라가 태어났다. 사회적 위계는 사회적 약속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구조 자체를 반영한다. 여기에 업(karma)과 윤회(samsara)의 논리가 더해진다. 이번 생의 카스트는 전생의 업의 결과이고, 이번 생에 자신의 다르마(dharma)를 충실히 이행하면 다음 생에 더 높은 카스트로 태어날 수 있다. 「마누 법전(Manusmriti)」이 이 구조를 법제화했다. 위계는 우주론적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에 내부에서 해체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이슬람의 출발점은 이것과 다르다. 쿠란은 선언한다. "가장 고귀한 자는 알라를 가장 경외하는 자다"(49장 13절). 무함마드의 마지막 설교(Khutbat al-Wada')에서 그는 아랍인이 비아랍인보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것이 이슬람의 평등주의 선언이 실재한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 평등의 범위를 정확히 봐야 한다. 그것은 무슬림 남성들 사이의 평등이었다. 이슬람 법 체계—샤리아—는 처음부터 무슬림과 비무슬림(딤미), 남성과 여성, 자유인과 노예 사이의 법적 지위를 다르게 규정했다. 쿠란 4장 34절은 남성이 여성에 대해 "카왐(qawwam)"—후견인, 보호자, 혹은 우위에 있는 자—이라고 명시한다. 이 구절은 오늘날까지 이슬람 세계의 젠더 위계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알-마와르디(al-Mawardi, 974-1058)는 「왕권의 규율(Al-Ahkam al-Sultaniyya)」에서 칼리프제의 조건을 논하며 그 정당성의 근거를 혈통이 아닌 능력과 공동체 봉사에서 찾는다. 이것이 수니파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또 다른 거대한 흐름인 시아파는 처음부터 다른 전제 위에 서 있다. 시아파는 예언자 혈통—알리와 파티마의 후손—만이 공동체를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하며, 12이맘파 신학에서 이맘은 신적 영감을 받은 무오류의 존재다. 이것은 신성한 혈통에 의한 위계이며, 카스트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은 존재론적 특권 개념이다. 이슬람의 분파적 기원 자체에 평등주의와 위계주의의 긴장이 내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위계의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아론의 차이에 닿는다. 우파니샤드 철학의 핵심 테제는 범아일여(梵我一如)다.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는 선언한다. "아함 브라흐마스미(Aham Brahmasmi)"—나는 브라만이다. 찬도갸 우파니샤드는 말한다. "탓트밤아시(Tat tvam asi)"—그것이 바로 너다. 개인적 자아(아트만)와 우주적 자아(브라만)는 궁극적으로 동일하다.
이슬람의 자아론은 이것과 다른 방향을 취한다. 알라와 인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존재론적 심연이 있다. 이슬람 신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타우히드(Tawhid)—신의 유일성과 절대적 초월성—는 신-인간의 합일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알-아샤리(al-Ash'ari, 873-935)가 확립한 정통 아샤리 신학은 알라의 속성이 인간의 속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알-할라지(al-Hallaj, 858-922)가 "아나 알-하크(Anā al-Haqq)"—나는 진리다—라고 외쳤을 때, 그는 이단으로 처형되었다. 신과의 합일을 최고 목표로 삼는 인도적 영성과, 알라 앞에서의 절대적 복종을 요청하는 이슬람 신학은 자아의 본질에 대해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전제를 가지고 있다.
형이상학적 차이는 시간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도의 시간관은 기본적으로 순환적이다. 비슈누 푸라나(Vishnu Purana)에서 상세히 서술되는 유가(yuga) 순환론에 따르면, 세계는 황금시대인 사티아 유가에서 시작해 현재의 칼리 유가—가장 어둡고 타락한 시대—로 하강한다. 이 시간관에서 역사 안에서의 진보는 궁극적으로 의미가 제한된다. 개인의 진정한 해방—모크샤(moksha)—은 이 우주적 순환으로부터의 이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회 개혁은 칼리 유가라는 우주적 하강의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 진정한 실재는 시간을 초월한 브라만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시간관은 선형적이고 목적론적이다. 창조에서 최후의 심판을 향해 나아가는 역사. 알라는 역사 안에서 행동하고 예언자들을 통해 계시를 내린다. 이 구도 안에서 움마(공동체)의 역사적 사명이 있다. 알라의 율법—샤리아—이 구현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 역사가 이븐 할둔(Ibn Khaldun, 1332-1406)은 「무깟디마(Muqaddima)」에서 이슬람 공동체의 팽창 역학을 아사비야(asabiyya)—집단적 연대감—의 개념으로 분석했다. 이 역동성이 무함마드 사후 불과 100년 만에 이슬람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중앙아시아까지 팽창시킨 동력이었다.
그러나 이 역동적 시간관이 반드시 자유를 향한다는 보장은 없다. 알라의 율법이 구현된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는 그 율법의 해석권을 가진 자에게 막대한 권력을 부여한다. 샤리아의 내용이 무엇인지, 누가 그것을 해석하는지가 정치적 권력 배분의 핵심 문제가 된다. 선형적이고 목적론적인 시간관은 역사적 사명의 이름 아래 반대 의견을 봉쇄하는 논리로도 쉽게 전용된다.
무굴 제국(1526-1857)은 인도-이슬람 철학 충돌의 가장 정교한 역사적 무대다. 악바르 대제(재위 1556-1605)는 "딘-이-일라히(Dīn-i-Ilāhī)"—신성한 종교—라는 혼합주의적 실험을 시도했다. 아부 알-파즐(Abu al-Fazl)이 저술한 「악바르나마(Akbarnama)」는 이 실험을 상세히 기록한다. 악바르의 宮廷에서는 힌두 학자, 이슬람 신학자, 기독교 선교사가 함께 토론했다.
그러나 악바르의 실험은 그의 사후 와해되었다. 아우랑제브(재위 1658-1707)는 정반대 방향—이슬람 정통주의 강화—으로 갔다. 힌두 사원을 파괴하고 지즈야(비무슬림세)를 부활시켰다. 역사가 오드리 트러쉬케(Audrey Truschke)는 「아우랑제브(Aurangzeb: The Life and Legacy of India's Most Controversial King)」에서 이 시기를 정치적 맥락에서 재검토하지만, 그것이 오늘날 힌두 민족주의의 역사 기억에서 아우랑제브가 차지하는 상징적 위치를 바꾸지는 못한다. 무굴 제국의 역사에서 읽히는 것은 혼합주의와 정통주의 사이의 진자 운동이다. 이 진자 운동 자체가 두 형이상학 체계의 근본적 긴장을 반영한다.
인도 이슬람의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슬람이 카스트적 아비투스에 의해 내부에서 변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슬람의 평등주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인도 무슬림 공동체 안에 사실상 카스트적 위계가 형성되었다. 아랍이나 페르시아 혈통을 주장하는 아슈라프(Ashraf)와 하층 카스트 출신 개종자인 아잘라프(Ajlaf)의 구분이 실재한다. 사회학자 임티야즈 아흐마드(Imtiaz Ahmad)는 「인도 무슬림의 카스트와 사회적 층화(Caste and Social Stratification among Muslims in India)」에서 이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이슬람의 평등주의 원칙이 인도의 아비투스에 의해 오염된 것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이미 이슬람 세계 내부에도 혈통에 의한 위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임을 주장하는 사이이드(Sayyid) 계층은 아랍 세계에서도, 인도에서도, 중앙아시아에서도 특별한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 이것은 이슬람의 평등주의 원칙과 모순되지만, 이슬람 사회 안에서 광범위하게 용인되어 온 관행이다. 인도에서 카스트가 이슬람 안으로 스며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슬람 자체도 그것을 거부할 완전한 면역이 없었다.
이슬람의 평등주의를 논할 때 가장 자주 간과되는 것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기 자체가 바로 이 위계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시아파(Shia)는 예언자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와 그 후손만이 공동체를 이끌 자격이 있다는 주장에서 출발했다. 12이맘파 신학에서 이맘은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다. 신적 영감을 받은 무오류(infallible)의 존재이며, 그 권위는 혈통에서 나온다. 이것은 카스트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세습적·존재론적 위계다. 신앙심이나 학식이 아니라 태어남이 권위의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신학적 기반인 호메이니의 "벨라야트 에-파키(Velayat-e Faqih)"—법학자 통치론—는 이 시아파 위계 신학의 현대적 정치 제도화다. 12대 이맘이 은둔(occultation) 상태에 있는 지금, 가장 탁월한 이슬람 법학자가 이맘을 대신해 통치해야 한다는 논리다. 최고지도자(라흐바르)는 선출되지만, 그 권위는 신학적 자격에서 나오며 사실상 도전할 수 없다. 호메이니는 이 제도를 이슬람 평등주의의 구현이라고 주장했다. 서구 자본주의적 계급 불평등을 비판하고, 무스타자핀(mustazafin)—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레토릭과 실제 구조 사이의 거리는 크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성별, 종교, 정치적 의견에 따른 위계를 법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바하이교도는 고등교육에서 배제된다. 여성은 법정 증언에서 남성의 절반으로 취급된다. 무신론자와 개종자는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평등주의 레토릭은 내부 단속과 외부 비판 거부의 언어로 기능한다. 이것을 단순한 위선으로만 볼 수도 없다. 이슬람이 처음부터 설정한 평등의 범위—무슬림 남성들 사이의 평등—가 국가 권력과 결합하면서 그 한계가 극대화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시아파 신학 내부에서도 이 모델에 대한 강한 반론이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 나자프의 그랜드 아야톨라 시스타니(Sistani)는 성직자가 직접 통치에 나서는 이란 모델을 거부한다. 호메이니의 가장 가까운 제자였던 그랜드 아야톨라 몬타제리(Montazeri)는 훗날 벨라야트 에-파키를 신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고, 가택연금 상태에서 생을 마쳤다. 이란의 권위주의는 "이슬람 신학의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니라 호메이니가 선택한 하나의 정치신학적 해석이다. 그러나 그 해석이 이슬람 안에 잠재되어 있던 위계적 요소들—시아파의 이맘론, 법학자 권위주의—을 동원하여 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두 전통의 형이상학적 충돌이 가장 창조적인 결실을 맺은 것은 역설적으로 그 충돌이 가장 깊이 일어난 곳—수피즘과 박티 운동의 접촉지대—에서였다. 치슈티(Chishti) 교단의 창시자 무인우딘 치슈티(Muin ud-Din Chishti, 1141-1230)는 아즈메르에 정착하면서 힌두 성자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그의 성소는 오늘날에도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함께 참배하는 장소다.
이 접촉의 가장 아름다운 결실이 카비르(Kabir, 1440-1518)다. 힌두교 집안에서 태어나 이슬람 수피의 영향을 받은 카비르는 카스트 제도와 종교적 형식주의를 동시에 공격했다. 힌두교도에게는 우상숭배가 신을 만나는 길이 아님을 말했고, 무슬림에게는 할랄 도축이 자비의 증거가 아님을 말했다. 힌두교도와 무슬림 모두가 그를 자신들의 성자로 주장한다. 루미(Rumi, 1207-1273)의 「마스나비(Masnavi)」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신과의 합일을 갈망하는 루미의 신비주의는 힌두교의 아트만-브라만 동일성 구조와 공명한다. 그러나 루미는 이슬람 정통 신학의 언어를 유지한다. 그의 시 안에서 두 형이상학은 해소되지 않은 긴장으로 공존한다. 종합이 아니라 긴장의 창조적 유지다.
그러나 수피즘의 이 창조적 혼합주의도 이슬람 내부에서 언제나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와하비즘과 살라피즘은 수피즘을 이단적 혁신(bid'ah)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공격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금을 지원받는 살라피 운동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유입되면서, 수피즘과 힌두-불교 전통이 혼합된 토착적 이슬람을 이단으로 공격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이슬람 내부의 반이슬람이라는 역설이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이슬람의 한 형태를 지워나가는 것.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슬람은 중동의 이슬람과 상당히 다르다. 이슬람화 이전의 힌두-불교 문명층이 이슬람 아래에서 살아남았다. 자바의 케자웬(Kejawen) 전통은 이슬람의 외피 아래 힌두-불교-토착 신앙이 혼합된 것이다.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자바의 종교(The Religion of Java)」에서 이 혼합 구조를 산트리(정통 이슬람 실천자)와 아반간(혼합주의적 이슬람 실천자)의 구분으로 체계화했다. 이 구분 자체가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내적 긴장을 반영한다.
나들라툴 울라마(Nahdlatul Ulama, NU)로 대표되는 전통적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이 혼합주의를 수용하고 인도네시아적 이슬람의 독자성을 주장한다. 반면 사우디에서 자금을 지원받는 와하비즘과 살라피즘은 이 혼합주의를 이단으로 공격한다. 수피즘을 포함한 전통적 이슬람 실천이 위협받는 구도다. 이슬람 내부의 다양성이 이슬람 내부의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인도네시아가 보여준다.
미얀마의 불교적 반이슬람 정서는 세계를 충격시켰다. 평화와 자비의 종교로 알려진 불교가 어떻게 무슬림 학살을 용인하거나 주도할 수 있는가. 이것을 이해하려면 상좌부 불교의 특수한 국가-종교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상좌부 불교에서 왕—오늘날에는 국가—은 승가(Sangha)를 보호하고, 승가는 왕의 통치를 정당화한다. 마이클 아웅-트윈과 마우나 아웅-트윈의 「미얀마의 역사(A History of Myanmar)」는 이 불교-국가 일체화가 미얀마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적 특징임을 보여준다.
이 구도에서 이슬람은 불교 문명 자체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경험된다. 아신 위라투(Ashin Wirathu) 같은 불교 민족주의 승려들의 반이슬람 선동은 이 구도에서 나온다. 로힝야를 "벵골리"—외래 이민자—로 명명하는 것은 불교-미얀마 정체성 안에 이슬람이 존재할 공간이 없다는 선언이다. 불교의 반이슬람 정서는 힌두교의 그것과도, 서구의 그것과도 다른 제3의 구조다. 그것은 계몽주의적 비판도 카스트적 오염론도 아닌, 불교 문명과 국가의 동일시에서 오는 자기 보존의 논리다.
이제 세 종류의 반이슬람 정서를 직접 비교할 수 있다. 서구의 반이슬람, 힌두교적 반이슬람, 불교적 반이슬람.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이 이 대립 구도의 학문적 정식화이지만, 헌팅턴 자신도 각 문명의 내적 다양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서구의 반이슬람 정서는 크게 세 층위로 이루어진다. 계몽주의적 반이슬람—이슬람이 이성, 개인의 자유, 정교분리와 양립 불가능하다는 비판. 기독교 문명론적 반이슬람—유럽은 기독교 문명이고 이슬람은 외래 문명이라는 주장. 인종주의적·이민 반대론적 반이슬람—이슬람 자체보다 이슬람을 가져오는 타자에 대한 거부. 공통점이 있다. 이슬람을 외부에서 온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서구의 반이슬람은 상당 부분 이슬람 신학의 내적 정합성, 수피즘의 영성, 이슬람 법학의 풍부한 전통을 거의 모른 채 이루어지는 거부다.
힌두교적 반이슬람은 구조가 다르다. 인도는 수백 년간 이슬람과 함께 살았다. 카스트적 오염론에서 오는 소의 도살에 대한 공포, 무굴 제국 시기의 사원 파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 V.D. 사바르카르의 힌두트바 이데올로기가 정의한 영토적-성지 논리—이것들은 서구의 계몽주의적 비판과는 전혀 다른 기반 위에 서 있다.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반이슬람 정서는 무지에서 나온 거부가 아니다. 깊은 접촉 끝에 내리는 거부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더 격렬하다. 사바르카르의 힌두트바 정의—조상의 땅(pitrbhumi)과 성스러운 땅(punyabhumi) 모두를 인도에 두는 자—에서 인도 무슬림은 수백 년을 인도에서 살았어도 영구적 이방인이 된다. 메카와 메디나가 그들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힌두교 내부에서 카스트에 가장 강하게 저항한 B.R. 암베드카르(B.R. Ambedkar, 1891-1956)는 이슬람에 대해 복잡한 시각을 가졌다. 「파키스탄 혹은 인도의 분할(Pakistan or the Partition of India)」에서 그는 이슬람의 평등주의 원칙을 카스트에 대한 비판의 자원으로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이슬람 사회가 실제로는 그 원칙을 얼마나 배반하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가 결국 불교로 개종한 것은 이 이중적 판단에서 나온다. 힌두교의 카스트 우주론도 거부하고, 이슬람의 젠더·비무슬림 차별 구조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카스트적 연결고리를 단절할 수 있는 다른 철학적 언어를 찾은 것이다.
인도-파키스탄 분리(1947)는 이 모든 형이상학적 충돌이 정치적 형태로 응결된 사건이다. 무함마드 알리 진나의 이슬람 국가론과 간디-네루의 세속적 인도 국가론의 충돌은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대립이지만 그 깊이에서는 형이상학적 대립이다.
진나의 논리—힌두교와 이슬람은 다른 문명에 속한다, 함께 식사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다—는 카스트적 오염 관념과 이슬람의 움마적 연대 의식이 근본적으로 공존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진단이다. 카스트 사회에서 타 집단과의 식사 공유는 오염의 위험을 의미한다. 이슬람에서 무슬림 형제들과의 식사 공유는 평등의 실현을 의미한다. 같은 밥상이 두 우주론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야스민 칸(Yasmin Khan)은 「위대한 분리(The Great Partition)」에서 1947년의 분리가 단순한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삶을 뒤흔든 폭력적 과정이었음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그 폭력의 밑바닥에는 형이상학적 차이에서 오는 실존적 공포가 놓여 있었다.
간디는 힌두교 안에 이슬람과 공존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고 보았다. 박티 전통과 수피즘의 역사적 교류가 그 근거였다. 그러나 간디의 암살—힌두 민족주의자 나투람 고드세에 의한—은 힌두교 내부의 포용적 흐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이 이후 걸어온 길—군부 독재, 종교적 소수자 박해, 아흐마디야 무슬림의 법적 비무슬림화—은 이슬람 국가 건설이 평등주의의 실현이 아니라 또 다른 위계의 제도화였음을 보여준다.
이 에세이를 관통하는 핵심 주장은 하나다. 남아시아·동남아시아의 반이슬람 정서와 서구의 그것은 단순히 강도나 형태가 다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기반이 다르다는 것이다. 힌두교의 카스트적 위계는 우주론적으로 정당화된 존재론적 위계이고, 이슬람의 위계는 신학적으로 정당화된 법적·젠더적·종파적 위계이며, 불교의 반이슬람은 문명-국가 동일시에서 오는 자기 보존의 논리다.
이슬람이 힌두교에 비해 평등주의적이라는 단순한 대비는 몇 가지 이유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슬람의 평등주의는 처음부터 그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시아파는 신학 구조 안에 혈통에 의한 위계를 내장하고 있었다. 이슬람 역사에서 사이이드 계층의 세습적 특권, 숭남억녀의 법제화, 비무슬림에 대한 차별적 법적 지위는 이슬람 평등주의의 원칙과 나란히 존재해왔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평등주의 레토릭과 권위주의적 신정통치를 결합시키면서, 이슬람이 내장하고 있던 위계적 요소들을 현대 국가 제도로 극대화했다.
그러나 이것이 힌두교의 카스트와 이슬람의 위계가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카스트는 우주론적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내부에서 해체하기가 구조적으로 더 어렵다. 이슬람의 평등주의 원칙은 실재하며, 그것이 역사적으로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의 언어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암베드카르가 이슬람의 평등주의를 카스트 비판의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이 때문이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각 전통의 내적 한계와 모순을 직시하는 것—이것이 정직한 비교의 조건이다.
형이상학은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밥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지, 누구와 결혼할 수 있는지, 어떤 역사적 상처를 현재적 것으로 경험하는지, 누가 법정에서 온전한 증인으로 인정받는지를 결정한다. 문명 간의 진정한 이해가 어려운 것은 그 이해가 개념의 교환이 아니라 삶에 새겨진 형이상학의 교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문명의 형이상학을 미화하지 않고 직시할 때, 비로소 그 이해는 가능성의 문턱에 선다.
- 참고 문헌 -
• 리그베다 「푸루샤 수크타(Purusha Sukta)」
• 「마누 법전(Manusmriti)」
•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찬도갸 우파니샤드
• 쿠란(Quran), 49장 13절, 4장 34절
• 알-마와르디(al-Mawardi), 「왕권의 규율(Al-Ahkam al-Sultaniyya)」
• 이븐 할둔(Ibn Khaldun), 「무깟디마(Muqaddima)」, 1377
• 루미(Jalal ad-Din Rumi), 「마스나비(Masnavi)」, 13세기
• 아부 알-파즐(Abu al-Fazl), 「악바르나마(Akbarnama)」, 16세기
• B.R. 암베드카르(B.R. Ambedkar), 「파키스탄 혹은 인도의 분할(Pakistan or the Partition of India)」, 1940
•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 「자바의 종교(The Religion of Java)」, 1960
•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1996
• 오드리 트러쉬케(Audrey Truschke), 「아우랑제브(Aurangzeb: The Life and Legacy of India's Most Controversial King)」, 2017
• 야스민 칸(Yasmin Khan), 「위대한 분리(The Great Partition)」, 2007
• 마이클 아웅-트윈 외, 「미얀마의 역사(A History of Myanmar)」, 2012
• 임티야즈 아흐마드(Imtiaz Ahmad), 「인도 무슬림의 카스트와 사회적 층화(Caste and Social Stratification among Muslims in India)」, 1978
• 비슈누 푸라나(Vishnu Purana)
• 루홀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 「이슬람 통치론(Islamic Government: Governance of the Jurist)」,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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