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랜드 가속주의에 대한 더 간략하고 더 즉흥적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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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막연하게 느낀다. 세상이 어딘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기술의 변화 속도, 정보의 양, 정치적 사건들의 밀도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인상. 그런데 그 감각을 단순한 시대적 불안으로 넘기지 않고, 하나의 사상 체계로 끌어올린 흐름이 있다. 바로 가속주의(Accelerationism)다.

가속주의는 낯선 이름이지만, 우리가 이미 체감하는 어떤 현실을 이론화한 것이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이렇게 묻는다. '세상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속도를 늦추어야 하는가, 아니면 더 밀어붙여야 하는가?'

가속주의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핵심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달리는 기관차라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흔히 자본주의를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수요와 공급, 가격 신호, 그리고 인간의 합리적 선택. 그러나 가속주의의 관점에서 이 설명은 핵심을 놓친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긍정적 피드백 루프(positive feedback loop)'에 있다. 상업화가 산업화를 자극하고, 산업화가 다시 상업화를 불러오며, 이 두 힘은 서로를 증폭시킨다. 이 회로는 외부에서 설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강화되며, 스스로 확장된다.

닉 랜드는 이 과정을 두고 '자본은 인류를 일시적 숙주로 삼을 뿐, 주인으로 삼지 않는다'고 말한다. 섬뜩한 표현이지만, 논리는 명확하다. 자본의 축적과 기술의 발전은 어떤 인간의 의도나 정치적 결정보다 더 강하고 일관된 방향성을 가진다. 혁명가가 자본주의를 타도하려 해도, 자본은 그 혁명조차 흡수하며 더 새로운 형태로 변이한다.

가속주의의 철학적 뿌리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1972년 저작 『안티 오이디푸스』에 있다. 두 사람은 그 책에서 놀라운 질문을 던진다.

​"혁명적 경로는 무엇인가?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시장의 흐름, 탈코드화와 탈영토화를 더욱더 밀고 나가는 것인가? 과정을 가속하라."​

이것은 니체를 인용한 구절이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의 오래된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 마르크스는 1848년 자유무역을 지지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유무역이 사회 혁명을 가속화시키기 때문에 찬성한다고. 자본주의를 옹호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모순을 더 빨리 폭발시키기 위해 더 강한 자본주의를 지지한다는 역설적 논리다.

이 지점이 가속주의에서 가장 낯설고 불편한 대목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저항이 아니라 가속이 출구라는 발상. 이것이 가속주의의 핵심적 도발이다.

가속주의는 사이버네틱스(제어이론)에서 핵심 언어를 빌린다. 어떤 시스템이든 두 종류의 피드백 회로로 작동한다.

첫째는 '부정적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다. 이것은 안정화를 위한 회로다. 방 안의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에어컨이 작동하고, 너무 내려가면 난방이 켜진다. 시스템이 일정 상태를 유지하도록 편차를 교정하는 힘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를 '영토화'라고 불렀다. 국가, 법, 전통, 규범이 이런 역할을 한다.

둘째는 '긍정적 피드백(positive feedback)'이다. 이것은 증폭을 위한 회로다. 눈덩이가 굴러 내려가며 점점 커지는 것처럼, 한 번 시작된 변화가 스스로를 강화하며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를 '탈영토화'라고 불렀다. 자본주의적 기술 가속이 바로 이 회로 위에서 작동한다.

가속주의는 이 두 힘의 대결에서 탈영토화, 즉 긍정적 피드백의 편에 선다.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엑셀러레이터를 더 밟는 것. 그것이 가속주의의 태도다.

2013년, 닉 스르니체크와 알렉스 윌리엄스는 「가속주의 정치 선언」을 발표하며 가속주의를 좌파적으로 재구성하려 했다. 기술의 가속은 지지하되, 자본주의는 극복의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자동화와 AI가 만들어낼 생산력 증대를 자본이 아닌 사회 전체가 향유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전환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닉 랜드는 이 기획이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고 본다. 기술 가속과 자본주의적 가속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이 곧 가속의 엔진이며, 가속의 에너지원이다. 자본 없이 기술 가속을 유지하겠다는 발상은, 불을 피우되 연소는 막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예상대로, 좌파 가속주의는 결국 전통적 사회주의 정치로 수렴하며 스스로를 해체했다.

가속주의의 가장 불편한 통찰은 이것이다. 우리에게 사고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 기술과 자본의 속도가 인간의 숙고 능력을 앞지르는 순간, 의사결정은 더 이상 인간의 영역이 아니게 된다. 사건들은 저절로 일어나고, 제도는 뒤를 쫓으며 허둥대고, 정치는 점점 더 무력해진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많은 현상들이 이 틀로 설명된다.

AI, 블록체인, 양자 컴퓨팅, 생명공학. 이 기술들은 어떤 정치적 결정으로 멈출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가속주의는 그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서 두 가지 입장이 갈린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브레이크를 잡아야 한다'는 쪽과, '브레이크는 이미 고장났으니 더 깊이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가속주의는 후자의 입장을 이론화한 것이다. 그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니다. 일종의 냉정한 진단이다. 세계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가속주의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이 사상은 불쾌하거나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인간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자본과 기술의 자율성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쾌함은 역설적으로 가속주의의 힘을 보여준다. 그것이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어떤 진실에 가닿아 있기 때문이다. 기관차는 달리고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논의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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