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토론] 반공주의적 선문답(禪問答)
A: 공산주의자.
B: 선문답(禪問答)에 능통한 반공주의자.
----
A: 역사는 눈먼 자들의 우연이 아닙니다. 생산력의 발전은 반드시 낡은 생산 관계라는 껍질을 깨고 나옵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그 무덤을 파는 존재들을 길러내며,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역사적 필연성을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주체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반란군이 아니라 인류사를 선사시대에서 진정한 역사로 진입시키는 과학적 집행관들입니다. 이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의 고통은 인류가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치러야 할 불가피한 대가일 뿐입니다.
B: (테이블 위의 돌멩이를 집어 귀에 갖다 대고 한참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다가) 수레바퀴에 깔린 자들이 이름을 대고 있군. (돌멩이를 테이블에 탁 내려놓으며) 당신은 그 비명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오. ...계속하시오.
A: 혁명에는 당연히 희생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 희생이 더 큰 해방을 위한 역사적 도약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레닌이 말했듯 지배계급이 더 이상 예전처럼 다스릴 수 없고 피지배계급이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을 때 혁명적 상황은 도래합니다. 우리는 그 뇌관이 되어 낡은 체제를 폭파하고 인민의 새로운 세상을 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짊어진 역사적 소명입니다.
B: 뇌관은 터지면 재가 됩니다. (조용히) ...그런데 재가 되는 것이 뇌관뿐입니까?
A: 혁명적 열정은 때로 파괴적일 수 있으나, 그것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창조적 파괴입니다. 미래 세대가 누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생각한다면, 오늘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혼란과 희생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조직하는 과학적 실천가들입니다.
B: 그 해방을 미래 세대가 보았습니까? (찻잔을 들며) 소련 수용소에서 짐승처럼 죽어간 자들이 당신이 말한 그 찬란한 미래를 단 한 조각이라도 보았습니까?
A: 그것은 스탈린주의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발생한 변질입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관료주의와 독재라는 외부적 오염이 개입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오류를 반면교사 삼아 더 나은 길을 찾고 있습니다.
B: 중국 대약진 운동에서 굶어 죽은 수천만의 백성은 어떠합니까? 그들도 당신이 말한 '더 나은 길'을 위한 자양분이었습니까?
A: 마오쩌둥의 노선 역시 마르크스의 원전을 중국의 특수한 현실에 대입하는 과정에서 겪은 과도기적 시련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세력의 봉쇄와 척박한 생산력이 빚어낸 비극이지, 공산주의 그 자체의 속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실패를 넘어 진정한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B: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변질. (긴 침묵) ...씨앗이 심어질 때마다 같은 독초가 자랍니다. 한 번은 변질이라 합시다. 두 번은 우연이라 합시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리며) 세 번, 네 번, 다섯 번... 모든 땅에서 매번 피비린내가 난다면, 그것은 땅의 문제입니까, 씨앗의 문제입니까?
A: (입을 열었다가 닫고, 잠시 침묵 후) ...이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미숙함 때문입니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완전한 실현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B: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젖히며)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창밖을 향해 크게 소리친다) 어디 있습니까! 나와 보십시오! (돌아보며 냉소적으로) 백 년 동안 전 세계를 피로 씻었는데 아직도 '진정한' 것은 도착하지 않았군요.
A: 역사적 조건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내부 모순은 결국 우리를 그 지점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결론입니다.
B: (자리에 앉으며 냉혹하게) 진정한 기독교가 있었다면 십자군 전쟁이 없었을 것이고, 진정한 이슬람이 있었다면 테러가 없었겠지요. (조용히) 하지만 세상에는 '진정한 무엇' 따위는 없습니다. 오직 당신이 저지른 행위만이 남을 뿐입니다. 당신의 '진정한 공산주의'가 오기 전에, 진짜 인간이 몇 명이나 더 도살장으로 끌려가야 합니까?
A: (당혹하며) 우리는 도살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을 하려는 것입니다!
B: 당신은 마르크스를 믿습니까?
A: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과학적 분석의 도구로 삼습니다. 그의 통찰은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를 밝혀낸 위대한 발견이니까요. 예, 저는 그의 이론이 진리임을 확신합니다.
B: 레닌도 믿습니까?
A: 실천적 혁명가로서 그의 지도력과 이론은 우리 운동의 이정표입니다. 예, 신뢰합니다.
B: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을 천천히 걷는다) 마르크스가 죽었을 때 무엇을 가져갔습니까?
A: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육신은 런던의 묘지에 묻혔지만, 그의 정신은 살아남았습니다.
B: 레닌이 죽었을 때 '국가와 혁명(Государство и революция)'을 들고 갔습니까?
A: 그의 시신은 미라가 되어 보존되었지만, 사상은 여전히 붉은 깃발 위에서 나부끼고 있습니다.
B: (멈춰 서서 A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다면 지금 마르크스의 입은 누구를 통해 말하고 있으며, 레닌의 눈은 누구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습니까?
A: 우리 같은 혁명적 후계자들이 그의 이론을 계승하고 실천함으로써 그들을 역사의 현재 속에 살려내고 있습니다.
B: (단호하게) 아니, 그것을 세상에서는 '빙의'라고 합니다!
A: ...!(몸이 굳어버린다)
B: 죽은 자가 산 자의 몸을 빌려 말하고, 백 년 전의 원혼이 지금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줄을 쥐고 흔드니 이것이 무당의 굿판과 무엇이 다릅니까? 당신이 말하는 과학은 결국 시체를 숭배하는 종교에 불과합니다!
A: (당황하며) 그것은 학문의 전승을 모욕하는 언사입니다! 우리는 과학적 유물론을...
B: (찻잔을 들어 바닥에 탁 내리친다) ("쨍그랑"하는 큰 소리가 난다)
A: ...!(의자에서 튀어 오를 듯 놀란다)
B: (깨진 조각을 가리키며) 깨진 찻잔이 차를 담을 수 있습니까?
A: ...없습니다.
B: 수천만을 죽인 이론이 인류를 해방할 수 있습니까?
A: 이론이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그것을 악용한 독재자들이...
B: (새 찻잔을 꺼내며) 찻잔이 깨진 것이 찻잔 탓이 아니라면, 당신은 영원히 깨진 조각으로만 물을 마셔야 할 것입니다. 피 냄새를 씻어내지 못하는 그릇을 들고 어찌 생명을 논합니까? (새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마르크스를 만나면 마르크스를 죽이십시오.
A: (분노한 듯) 그것은 모독입니다! 그는 인류 해방을 위해 생애를 바친 성인입니다!
B: 레닌을 만나면 레닌을 죽이십시오.
A: 당신은 지금 혁명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B: (찻잔을 A 앞에 밀어주며 차갑게) 임제(臨濟) 선사(禪師)는 부처를 죽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집착을 버리고 스스로 주인이 되라는 자비로운 가르침이었지요. (조용히) 하지만 나는 다른 뜻으로 말합니다.
A: ...어떤 뜻입니까?
B: 임제의 부처는 살아있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으나, 당신의 마르크스와 레닌은 살아있는 사람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수백만을, 수천만을 수렁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냉혹하게) 그러므로 나는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살인자의 독약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독초는 아무리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결국 독초일 뿐입니다.
A: (오랜 침묵 후) ...그렇다면 이 세상의 착취와 불평등은 영원히 놔둬야 한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그저 현실의 고통을 관조하며 즐기겠다는 것입니까?
B: (창밖을 보며) 저 밖에 지금 굶는 자가 있습니까?
A: 자본주의의 그늘 아래 수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B: 마르크스의 책(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이 그들에게 밥 한 숟갈이라도 떠 먹여 줍니까?
A: ...체제를 변혁해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합니다.
B: (돌아보며) 체제가 바뀌기 전에, 당신의 그 '변혁'이라는 칼날에 먼저 목이 잘려 나갈 그 사람들은 어찌합니까?
A: (입을 다문다)
B: (문을 향해 걸어가며) 이론으로 지은 밥은 없고, 혁명으로 살린 목숨도 없습니다. 죽인 사람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뿐입니다.
A: (벌떡 일어서며) 그것은 너무나 일방적인 비난입니다! 역사의 진보를 위해 치른 고통을 그런 식으로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B: (돌아보지 않고 문고리를 잡으며) 수용소의 얼어붙은 땅속에 묻힌 자들도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문이 닫힌다. A는 홀로 남아 B가 따라준 차에서 오르는 김을 멍하니 바라본다. 차는 식어가지만, A는 끝내 손을 뻗지 못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