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어두운 해석 '실존적 엘크 이론'

원본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wcDARQ7emv4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어두운 해석  실존적 엘크 이론 by 충코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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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뿔사슴이라는, 지금은 멸종된 전설적인 동물이 있습니다. 키가 2m가 넘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고요. 게다가 뿔은 양끝 거리가 4m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죠. 한 해석에 따르면 이 거대한 뿔은 큰뿔사슴의 멸종에 일종의 기여를 했습니다. 사냥꾼에게 쫓길 때 불편했을 거고요. 또 유지하는 데 영양분이 지나치게 많이 필요했을 겁니다.


진화는 결코 생명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특정한 환경에서 번식과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날 뿐, 상황이 바뀌면 그 과거의 진화가 심각한 비효율, 더 나아가 생명을 짓누르는 짐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는 흔합니다. 자루눈파리는 눈 사이 거리가 멀게 진화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눈 사이가 너무 멀어져서 비행에 불편함을 겪고 포식자로부터 도망가기 어려워질 지경에 이르렀죠.


1933년 노르웨이의 철학자 페터 베셀 자페(Peter Wessel Zapffe)는 큰뿔사슴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인간의 실존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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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장을 가리켜 실존적 엘크 이론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는 인간의 정신적인 능력이 너무 많이 발달해서 스스로의 생명을 짓누를 지경이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정신이 특별한 점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자의식은 필연적으로 분열을 만들어냅니다. 원래 생명체는 자신의 자연적인 본성을 따르는 하나의 통합된 개체로서 살아갑니다. 한 마리의 토끼는 풀을 뜯고 배설을 하고 잠을 자고 죽어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죠. 토끼는 자신이 자연과 구별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연 안에서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그 안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반면, 인간은 자신이 자연과 다르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과 다른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죠. 하지만 이런 인간도 사실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부인 면이 있죠. 하나의 생명체로서 이 땅에 태어나 생물학적인 본성의 지배를 받으며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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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식을 갖춘 인간은 "난 뭔가 달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과 자연을 구별 지으며 본능적 삶 이상으로 나아가길 꿈꾸죠. 우리에게는 무궁무진한 정신적인 생각의 힘과, 어디까지나 주어진 운명에 묶여 있는 자연적 본성 사이에 모순이 생깁니다. 이것이 인간에게는 끝없는 불안의 원천이 되죠.


동물들은 사자의 발톱 앞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외부의 위험, 적인 대상을 보면 불안을 느끼는 것이죠. 반면,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 자체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자연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연일 수밖에 없는 스스로의 운명이, 벗어날 수 없는 불편함과 이질감의 근원이 되죠.


자페는 이런 우리의 발달된 정신적 능력이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들어서, 그 붕괴의 에너지를 막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 요즘 시대에 저출산을 생각하시면 이해하기가 쉬울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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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유가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생명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왜 굳이 또 한 명의 인간을 탄생시켜서 이 세상에서 고통을 겪도록 해야 하는가?" 이런 이성적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현대인은 자연적 본성에 따라 계속 생명을 지속시키는 암묵적인 사이클에서 벗어나는 가능성을 정신적으로 인식했습니다. 이 인식은 어쩌면 문명과 인간, 생명의 역사를 붕괴시킬지도 모르죠. 이건 외부로부터의 붕괴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가진 정신적 능력으로 인한 내부로부터의 붕괴죠.


지금 사회에서 우리는 이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막기 위해 아주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만약 에너지가 고갈되기 시작한다면, 인류는 스스로 무너져 내릴 수도 있죠. 아직은 최후의 붕괴가 찾아오진 않았습니다. 그 최후의 순간까지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어떻게든 스스로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애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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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페는 인간의 경우, 스스로 붕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의식, 즉 정신적 능력을 깎아내는 메커니즘을 과거부터 계속 발전시켜 왔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뿔이 너무 큰 사슴이 살기 위해서 뿔을 바위에 비벼 깎아내듯이, 인간은 자신의 너무 발달한 정신이 스스로를 잡아먹지 않도록 정신적 능력을 일부러 퇴화시키는 전략을, 일종의 문명의 방어기제로써 사용해 왔다는 겁니다.


자페의 생각에는, 이 방어기제의 역사가 바로 문화의 역사이며 더 넓게는 인간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어떻게든 정신의 과도한 발전을 막고, 소위 건강하고 정상적인 정신을 유지하고자 몸부림친 과정이 인류의 역사라는 거죠.


자페는 인간의 역사에는 크게 네 가지 대표적인 정신 억압 메커니즘이 있어 왔다고 주장합니다. 첫째는 격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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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란 정신에서 고통을 억지로 몰아내 고통에 무감하게 되는 걸 뜻합니다. 인간은 고통과 삶의 비극적인 면모를 정신적으로 너무 강하게 인지하게 되면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의식 바깥으로 몰아내려 하죠.


예를 들면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때 몸의 끔찍한 모습을 봅니다. 죽음이라는 충격적 사건도 자주 마주해야죠. 이 삶의 비극적인 면을 직접 목격하는 것에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의사들은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환자를 그저 하나의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한 것으로 냉정하게 대하게 됩니다.


이 격리의 전략은 아이들 교육에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교육할 때 세상의 고통스러운 진실을 감춥니다. "아직 너희가 알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며 솔직한 대화를 피하죠. 특히 성, 배설물, 죽음 등 삶의 질서 맞은편에 놓여 있는 것들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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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관점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른들조차도 사실 이런 주제를 피하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일상에 잘 다듬어져 있는 평온함을 넘어서는, 인생의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려주는 주제를 너무 강하게 인식하는 걸 우리는 자연스럽게 문화적으로 삼가는 겁니다.


두 번째 정신 억압 메커니즘은 애착입니다. 정신이 안정감을 느끼는 포근한 울타리를 만드는 것, 일종의 집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전체가 다 고통과 공포로 가득하더라도 적어도 특정한 대상 안에서만큼은 삶을 긍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죠.


인간의 정신은 본래 더 넓은 세계의 객관적인 모습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능력을 깎아내서 시야를 좁게 만들고, 그 좁은 울타리 안에서 긍정의 희망을 찾습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애착 대상을 가지려고 하며, 기존의 애착 대상이 위협받으면 새로운 애착 대상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만약 새로운 대상이 잘 찾아지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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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는 자신의 애착 대상에 몰두하는 사람을 대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묘사하는 가치 평가의 체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 성공을 향해 앞을 보고 하루하루 성실히 나아가는 사람들, 가족에게 잘 안착한 사람들, 이들은 모두 사회에 좋은 평가를 받죠.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삶의 필연성을 구축해 놓았다는 겁니다. 자신이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명확한 거죠.


이렇게 애착 대상을 통해 삶의 필연성을 구축해 놓은 사람들은, 생명이 내부로부터 붕괴하는 것에 강력한 방벽으로 저항할 수 있습니다.


한 사회는 하나의 시대에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애착 대상들을 갖습니다. 전통일 수도 있고, 종교일 수도 있고, 가치관일 수도 있죠. 아마 지금 시대에는 돈이 가장 중요한 애착 대상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 보면 사람들은 이 애착 대상들이 사실은 허구적이며 우연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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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의 삶을 거기에 몰입시켜야 할 필연적인 이유 같은 건 없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히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해주지도 않을 거라는 걸 점차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거죠. 이러면 생명의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막는 방벽에 균열이 가게 됩니다. 이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애착 대상을 만들어냄으로써 방벽을 복원시키려고 합니다.


자페는 이게 인간 역사에 나타나는 거대한 문화적 전환의 힘이며, 심지어 경제적인 발전의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전환이 매끄럽게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종교개혁, 혁명, 전쟁 등 기존 사회를 해체하는 거대한 사건이 벌어질 때는, 이 애착 방벽의 붕괴가 매우 급격하게 벌어지죠. 이때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자원과 능력 안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애착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사회적 합의와 전통,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에 의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각자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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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시기에 사람들은 극심한 우울, 혼란, 삶의 의지 부정을 겪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세 번째 정신 억압 메커니즘은 전환입니다. 전환은 정신을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에 노출시킴으로써, 삶과 세계의 고통에 대한 통찰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아주 강한 전환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어릴 때는 조금만 할 게 없어도 심심하다고 떼를 쓰죠.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은 전환의 전문가가 됩니다. "저기 봐,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네"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아이의 주의를 전환시켜줘야 합니다.


어른이 돼서도 전환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전환거리를 찾아내는 데 능숙해지죠. 스포츠, 예능, 게임, 새로운 목표 등등 우리는 주의를 돌리는 대상들로 주변을 가득 채운 채 살아가게 됩니다. 돈이 많은 게 좋은 핵심 이유는 다양한 전환거리를 맘 놓고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전환이 사라지면 불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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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부터 극심한 우울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죠. 자페는 징역형의 핵심은 전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감옥 수감자는 맘대로 주의를 돌리지 못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절망에 처하게 되고, 그 속에서 우주 가운데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존재가 몹시 불안하고 부담스럽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되죠.


예로부터 종교에서는 구원에 대해 많이 말해왔는데요. 자페는 인간이 구원에 집착하는 것은 현재가 아닌 무언가로 어떻게든 전환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은 사실 어떤 목표를 향해 나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품는 각종 목표나 미래의 행복, 구원의 약속은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무언가로서 상정되어 있는 것일 뿐입니다.


네 번째 대표적인 정신 억압 메커니즘은 승화입니다. 승화는 삶의 아픔을 행복한 경험으로 변모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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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게 아니라 살짝 비틀어서 견딜 만한 것, 혹은 오히려 좋은 것으로 변화시키는 거죠.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자페는 자신의 철학적 글쓰기야말로 전형적인 승화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고통을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고통과 다른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거죠.


지금까지 살펴본 대표적인 방식들을 비롯해, 인간은 각종 정신 억압 메커니즘을 통해 건강한 정신, 그리고 생명을 지키려 합니다. 하지만 자페는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고등적인 정신을 발전시킨 순간부터 결국 스스로의 모순을 깨달으며 멸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고, 각종 정신 억압 메커니즘은 그저 멸종을 늦추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또한, 그는 현대사회 특유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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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대사회가 인간의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몸의 본성을 상당히 많이 억압하고 있어서, 우리의 몸이 가진 생명의 잠재성마저 죽여버리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발달된 의식이 우리를 붕괴로 이끌 수밖에 없다면, 그나마 우리의 존재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우리의 몸이 가진 에너지입니다. 몸이 건강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때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긍정 안에서 정신도 비로소 우리를 붕괴로 이끄는 것 외에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죠.


그런데 현대인들은 반복적인 생활에 길들여지고, 원래 몸으로 직접 해결하던 일들을 기술을 통해 편리하게 해결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자신의 몸을 주체적으로 움직여 볼 기회를 많이 상실했습니다. 그러면서 활발한 몸의 생명 에너지를, 자신 존재의 모순과 비극성을 인식하는 정신적 힘이 넘어설 정도가 됐죠. 이런 상태에서는 인류의 붕괴가 앞당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페는 이런 이유로 현대인들은 엄청난 전환의 인프라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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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쾌락을 주는 상품들, 스포츠,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의 정신적 활동을 억제하는 상태로 회피함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늘리는 거죠.


또한 자페는 당대 유행했던 정신분석학과 공산주의 같은 현대적 사조들 또한, 인간의 의식과 지식을 더 낮은 단계로 낮춰서 일상을 긍정하게 하는 수단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각종 현혹적인 언어를 통해 마치 엄청난 새로운 깨달음을 줄 것처럼 이야기하고, 무비판적인 맹신을 유도함으로써 정신의 비판적 통찰력을 깎아냈다는 겁니다.


이렇듯 자페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계속 우리의 정신적 능력을 깎아내야만, 스스로를 더 아둔하게 만들어야만 멸종을 유예할 수 있는 종입니다.


저는 이 자페의 철학이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분석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문명이 진보할수록 사람들은 더 똑똑해지는가, 정보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지혜로워지는가, 의학의 발달을 통해 인간의 생명 에너지가 더 강화되는가 —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해 아마 우리는 쉽사리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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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엄청난 진보와 지식 속에서 불안해하고, 전통에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생명의 지저분하고 추악한 면에 혐오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애착 대상과 전환거리를 찾아 헤매죠. 사람들을 애매한 집중과 쾌락의 상태에 머물도록 하는 엔터테인먼트는 계속 발전합니다. 미신과 사이비 종교, 사이비 심리학은 이 과학의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더 나은 정치체제에 대한 토론은 사라져갑니다. 이 모든 현상이 정신적 능력을 깎아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저는 삶을 조금 더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정신은 분명히 스스로의 존재 안에서 모순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 모순이 꼭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것이기만 한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 모순 안에서 평화를, 누군가는 미소를, 누군가는 어딘가 모를 우주의 따스함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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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페의 철학에서는 우리 안의 모순을 매우 부담스러운 것으로, 우주를 차갑고 공포스러운 것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이건 세계의 유일한 모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세계는 조금 더 따스하고 재미있는 곳으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물론 세계에도 삶에도 고통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때로 고통은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없애버리죠. 하지만 그렇게 끝없는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는 살아가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과연 존재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삶이라는 가파른 산을 오르는 우리의 모습이 완전히 비극적이기만 한 것일지, 혹은 긍정할 만한 면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일지 — 저는 여전히 열려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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