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 보수주의로는 박정희를 독해할 수 없다
왜 영미보수주의로는 박정희와 같은 인물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가?
러셀 커크(Russell Kirk)의 보수주의는 근본적으로 "지킬 것이 있는 사회"를 전제한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프랑스 혁명을 비판할 수 있었던 건 영국에 이미 코먼로(common law), 의회, 젠트리 계층이라는 축적된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커크의 처방론(prescription)은 연속성이 이미 존재하는 곳에서만 작동하는 논리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19세기 말~20세기 초 상황은 이 전제를 완전히 뒤집는다. 일본, 조선, 중국이 직면한 것은 단순한 내부 개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 단위의 생존 위기였다. 서구 열강이라는 외부 충격 앞에서 기존 전통의 연속성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멸망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었다.
러셀 커크는 이 상황을 범주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의 사상 체계 안에는 "전통이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에 대한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메이지 유신 지사(明治維新志士)들이 박정희와 같은 인물을 읽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같은 인물들의 사상 구조는 언뜻 보면 급진적 혁명론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은 전혀 다른 논리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핵심 명제는 이것이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체(國體)를 지키기 위해, 막번(幕藩) 체제라는 기존 제도는 파괴해야 한다."
즉 이것은 더 오래되고 더 근본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 덜 본질적인 것을 버리는 논리다. 형식은 혁명이지만 내용은 복고(復古)다. 메이지(明治)라는 연호 자체가 "밝은 정치로 돌아간다"는 뜻이고, 유신(維新)이라는 단어도 『시경』에서 가져온 것으로 "새롭게 한다"가 아니라 "근본을 새롭게 회복한다"에 가깝다.
요시다 쇼인은 이렇게 말했다.
"서양의 기술을 배우는 것은 서양을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양을 막기 위해서다."
이것은 러셀 커크가 이해할 수 없는 논리 구조다. 커크에게 전통의 파괴는 그 자체로 악이다. 그러나 요시다 쇼인에게 막부 체제의 파괴는 더 깊은 전통(천황과 국체)을 살리기 위한 수단이다. 전통의 층위가 복수(複數)로 존재하고, 하위 전통을 파괴해서 상위 전통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발상이다.
박정희는 유신지사(維新志士)와 비슷한 논리 구조를 반복한다. 그가 조선의 역사를 "불살라 버려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허무주의적 단절이 아니었다. 그가 살리려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세종의 한글, 이순신의 구국 정신, 그리고 그가 민족의 본래적 기상이라고 본 "삼국시대까지의 활달하고 남성적인 기질"이었다.
즉 박정희의 논리도 층위가 있다.
버려야 할 것: 조선 500년의 당쟁, 사대주의, 유교적 신분제,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
살려야 할 것: 민족의 원초적 자주성, 이순신으로 상징되는 결사적 호국 정신, 한글로 상징되는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
이것은 메이지 유신 지사들이 막부를 버리고 국체를 살린 것과 구조적으로 동형이다. 형식은 파괴지만 목표는 더 깊은 층위의 보존이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거치며 메이지 유신의 정신을 직접 흡수했다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그는 지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메이지 유신의 후예였다.
커크가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단순히 역사적 맥락의 차이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국가"와 "민족"과 "문명"이 맺는 관계의 구조 자체다.
영미권에서 국가는 개인들이 계약으로 구성한 것이다. 존 로크(John Locke)적 전통이든 커먼로(Common law) 전통이든, 국가가 개인보다 선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유교적 국가관에서 개인은 애당초 국가와 가족과 분리된 원자적 존재로 상정되지 않는다. 개인의 도덕적 완성(修身)이 가정의 질서(齊家)로, 가정의 질서가 국가의 통치(治國)로, 국가의 통치가 천하의 평화(平天下)로 이어지는 연속선 위에 있다. 이 구조에서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억압이 아니라 도덕적 실현이다.
메이지 유신 지사들과 박정희가 공유하는 것은 바로 이 유기체적 국가관이다. 국가는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라 개인이 그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더 큰 유기적 전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자유보다 민족의 생존이 우선하며, 점진적 개혁보다 체제의 생존이 우선하며, 전통의 형식보다 전통의 본질이 우선한다.
러셀 커크도 유기체적 사회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한 유기체다. 동아시아의 유기체적 국가관은 그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개인을 전체 안에 용해시킨다. 이 차이를 러셀 커크와 같은 영미 고전적 보수주의자(Paleoconservative)가 범주적으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흥미롭게도, 영미권 고전적 보수주의(Paleoconservatism) 철학자가 메이지 유신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단순히 비판하기보다 매우 복잡한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메이지 유신의 지사들이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을 복위시킨 논리는, 영미권 보수주의의 언어로도 부분적으로 번역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것(천황이라는 살아있는 제도적 상징)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하려는 시도였다. 이것은 러셀 커크, 에드먼드 버크, 조셉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 등이 프랑스 혁명에서 증오한 것(추상적 이성(理性)으로 역사를 지우는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여기서 더 재밌는 지점이 존재하는데 박정희와 같은 정치 지도자는 카를 슈미트(Carl Schmitt)의 언어로 더 잘 이해된다는 것이다.
슈미트적 관점에서 영미권 보수주의에 대해서는 표면적 정책 논쟁을 넘어 인신론적 해체가 가능하다.
영미권 보수주의는 근본적으로 정치를 도덕과 전통의 문제로 환원한다. 처방, 신중함, 질서. 이 모든 개념은 정치를 일종의 윤리적 관리 방법론으로 보는 시각을 전제한다. 슈미트라면 영미권 보수주의는 정치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며 즉각 반격했을 것이다.
슈미트의 관점에서 정치란 도덕이나 전통의 문제가 아니라 '적과 동지의 구분'이다. 영미권 보수주의자가 아무리 처방과 신중함을 설파해도, 그것은 이미 적과 동지의 구분이 완료된 안정적 질서 안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다. 그 구분 자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즉 진정한 정치적 순간에) 영미권 보수주의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슈미트의 예외상태(Ausnahmezustand) 개념이 여기서 핵심이다. 주권자(主權者)란 정상적 법질서가 작동하는 곳에서 단순히 위에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법질서가 정지되는 예외상태를 결단하는 자다. 러셀 커크의 처방론은 정상상태의 논리다. 그러나 19세기 말 조선, 해방 후 한국과 같은 곳은 예외상태였다. 법도, 전통도, 제도도 붕괴한 상황에서 러셀 커크의 언어는 공허하다.
슈미트는 더 나아가 러셀 커크의 자유주의적 의회주의 친화성도 공격했을 것이다. 슈미트는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Die geistesgeschichtliche Lage des heutigen Parlamentarismus)』에서 자유주의적 토론과 타협의 정치가 실은 정치의 본질(결단)을 회피하는 허구라고 주장했다. 러셀 커크가 옹호하는 점진적 의회적 전통은 슈미트에게 정치적 거세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카를 슈미트 관점에서 박정희는 어떻게 독해되는가?
첫째, 결단주의의 실현. 박정희의 5·16 군사혁명과 10월 유신은 슈미트적 의미에서 완벽한 예외상태의 결단이다. 기존의 헌법적 질서가 국가를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자가 그 질서를 정지시키고 새로운 질서의 근거를 스스로 정립한 것.
둘째, 적과 동지 구분의 명확성. 박정희의 글과 연설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적의 명확한 규정이다. 당쟁, 사대주의, 봉건적 타성, 그리고 공산주의. 슈미트에게 정치공동체의 정체성은 무엇에 맞서는가로 규정된다. 박정희는 이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민족주의는 추상적 애국심이 아니라 구체적 적대관계 위에 세워진 것이다.
셋째, 정치신학(Politische Theologie)적 구조. 슈미트는 근대 정치의 핵심 개념들이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라고 했다. 주권자는 세속화된 신이고, 예외상태는 세속화된 기적이다. 박정희의 민족중흥 담론도 이 구조를 가진다. 5천 년 역사의 죄를 씻고 새로운 민족사를 창건한다는 것. 이것은 정치신학적 구원 서사다. 슈미트는 이 구조를 꿰뚫어 보고 오히려 그것의 정치적 필요성을 인정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카를 슈미트는 동아시아에서 러셀 커크, 에드먼드 버크 등보다 훨씬 더 깊이 수용되었다.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한국과 대만에서는 권위주의적 근대화 시기에, 그리고 현재 중국에서는 류샤오보 이후 신권위주의 담론에서 슈미트는 지속적으로 소환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슈미트의 언어는 취약한 국가가 강력한 결단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문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러셀 커크의 처방론이 이미 안정된 전통을 전제하는 것과 달리, 카를 슈미트의 결단론은 전통이 파괴된 상황에서도 작동한다.
메이지 지사들이 슈미트를 읽지 않았어도 슈미트적으로 행동했고,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슈미트의 사상이 단순히 유럽의 지적 산물이 아니라, 전통이 붕괴하고 외부 충격이 가해지는 모든 사회가 본능적으로 도달하는 정치적 논리를 체계화한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영미권 보수주의가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것이 왜 근본적으로 어려운지가 드러난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처음부터 예외상태였고, 영미권 보수주의는 예외상태를 위한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자, 이제 박정희를 이해하기 위한 지적 좌표계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우선 영미권 보수주의/자유주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미권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공유하는 암묵적 전제가 있다. "앵글로색슨적 발전 경로가 보편적 모델이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좌파의 진보주의적 보편주의와 거울상을 이룬다. 좌파가 프랑스 혁명을 보편으로 삼는다면, 영미 우파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미국 독립혁명의 경로를 보편으로 삼는다.
영미권의 이러한 전제 안에서는 다른 경로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 이거나 "일탈" 로만 보인다. 박정희는 전자로는 권위주의적 개발독재로, 후자로는 파시즘의 아류로 분류되고 끝난다. 분석이 아니라 범주화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명확한 지적 태만이다. 박정희가 (본인이 의도했건 아니건) 작동시킨 사상적 자원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 독일 보수혁명(Konservative Revolution) — 아서 모엘러 판 덴 브루크(Arthur Moeller van den Bruck),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 에른스트 윙어(Ernst Jünger) 등
- 관방학(Kameralismus) — 국가 주도 경제 운용의 프로이센적 전통
- 메이지 유신 지사 정신 — 요시다 쇼인, 사이고 다카모리
- 만주국 혁신관료 — 기시 노부스케(岸 信介) 라인의 국가 자본주의 기술관료제
- 이탈리아 미래주의(Futurismo) — 속도, 의지, 기술에 대한 미학적 숭배
- 반동적 모더니즘(Reactionary modernism) — 제프리 허프(Jeffrey Herf)가 주창한 개념, 기술을 낭만주의적·민족주의적으로 전유하는 것
- 유교(儒敎)의 위계적 질서관 — 수직적 충성과 공동체 우선
- 법가(法家)의 부국강병론 — 상앙(商鞅), 한비자(韓非子) 등의 국가 강화 논리
이것들을 영미권의 보수주의-자유주의 이분법으로는 절대 포착할 수 없다.
보수혁명의 핵심 테제는 "근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를 전유한다"이다. 슈펭글러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차가운 현실주의로 이 시대의 기술과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박정희의 근대화론은 이 구조와 겹친다. 그는 서구적 근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도, 전통으로 도피하지도 않았다. 민족주의적 목적을 위해 근대적 기술과 국가 권력을 도구로 삼았다. 포항제철은 이 논리의 물질적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에른스트 윙어의 "노동자(Der Arbeiter)" 개념도 박정희의 철학과 공명한다. 윙어에게 노동자는 계급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 유형인 기술 문명 속에서 의지와 규율로 자신을 단련하는 존재이다. 박정희가 새마을운동에서 호출한 "잘 살아보세"의 인간형은 에른스트 윙어적 노동자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만주국 혁신관료는 두말할 것 없이 박정희와의 가장 직접적인 연결고리이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서 흡수한 것은 단순한 군사 훈련이 아니었고, 만주국은 1930년대 일본 혁신관료들의 실험장이었다.
기시 노부스케로 대표되는 혁신관료들의 발상은 "자유방임 자본주의도 아니고 소련식 공산주의도 아닌,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적 자본주의로 후발국이 선발국을 추격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훗날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출 주도 성장, 전략적 산업 육성으로 그대로 이식된다. 박정희의 경제 모델은 자유시장 경제학이 아니며, 만주국 실험의 한반도 버전에 훨씬 가깝다.
영미권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경제 사상 지형이 기본적으로 애덤 스미스-프리드리히 하이에크-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삼각형 구조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만주국 혁신관료들이 작동시킨 논리는 이 삼각형 바깥에 있다.
제프리 허프의 "반동적 모더니즘(Reactionary Modernism)" 개념 또한 박정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허프는 바이마르-나치 독일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기술적 근대성을 낭만주의적·민족주의적 반근대성과 결합시켰는지를 분석한다.
그 핵심 역설은 기술은 받아들이되 계몽주의는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박정희의 담론에는 이 역설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면서, 동시에 충효 사상과 새마을 정신이라는 전근대적 공동체 윤리를 동원했다. 기술적 근대화와 윤리적 반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것이 반동적 모더니즘의 전형적 작동 방식이다. 영미권은 이것을 모순으로, 즉 근대화가 덜 된 증거로 읽는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일관된 기획일 뿐이다.
박정희 사상의 동양적 뿌리도 단일하지 않다. 거기에는 유교와 법가의 긴장이 있다.
유교는 덕치(德治)를 말한다. 지도자의 도덕적 모범이 사회를 교화한다. 박정희의 수출 역군 담론, 지도자의 솔선수범 강조, 공동체 윤리 호소는 지극히 유교적이다.
한편, 법가는 술치(術治)와 세치(勢治)를 말한다. 한비자는 '인간은 도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익과 처벌로 움직인다. 국가는 이것을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라는 냉혹한 논리를 내세웠다.
박정희의 실제 통치 방식(중앙정보부, 긴급조치, 재벌과의 거래)는 법가적이다. 그는 표면에서 유교를 말하고 내면에서 법가를 실천했다. 이것 역시도 영미권의 자유주의-권위주의 이분법으로는 포착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탈(脫)-영미권 지적 지형을 왜 영미권은 외면하는가?
단순한 오만인가?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구조적인 이유가 다 있다.
첫째, 냉전의 인식론적 효과. 냉전은 모든 것을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이분법으로 정렬했다. 이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것(보수혁명, 아시아적 발전국가, 반동적 모더니즘)은 분석 대상이 아니라 예외 처리 대상이 된다.
둘째, 앵글로색슨 예외주의. 영국과 미국은 대륙적 격변(내부 혁명, 본토가 점령당한 역사, 급진적 체제 붕괴)를 딱히 겪지 않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예외상태의 논리를 체험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카를 슈미트가 영미권에서 끝내 이방인인 것은 이 때문이다.
셋째, 승자의 역사 서술. 2차대전 이후 독일 보수혁명, 일본 유신 지사, 이탈리아 미래주의는 모두 패전국의 이데올로기로 낙인찍혔다. 이것들을 진지하게 분석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박정희 같은 인물은 영미권 담론에서 제대로 분석된 적이 없다. 자유주의자들에게는 권위주의 독재자이고,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불편한 동맹이며, 좌파에게는 파시스트이다. 세 범주 모두 분석이 아니라 도덕적 판정일 뿐이다.
진정한 분석은 그가 작동시킨 사상적 자원들의 계보를 추적하고, 그것들이 한반도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어떻게 접합되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영미권의 지적 도구만으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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