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 우파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이유

동남아에 우파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이유


동남아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것. 가족은 여전히 개인보다 앞에 놓인다. 종교는 일상의 질감에 깊이 스며 있다. 마을 공동체의 의례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도 놀라울 만큼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위계에 대한 감각, 어른에 대한 존중, 조상 제사, 축제와 의식—이 모든 것이 서구의 어떤 보수주의자도 고개를 끄덕일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 지역의 정치 지형을 들여다보는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보수적 삶의 방식을 이념으로 표현하고 조직하는 정치 세력이 없다. 있다고 해도 형편없이 빈약하거나, 아예 다른 무언가—군부 권위주의, 포퓰리즘 등—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다.


러셀 커크(Russell Kirk)는 『보수주의의 정신(The Conservative Mind)』(1953)에서 보수주의의 핵심을 "처방론(prescriptive order)"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오랜 시간 검증된 제도와 관습에는 단순한 편의 이상의 지혜가 담겨 있으며, 그것을 보존하고 이어받는 것이 정치의 근본 임무라는 주장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동남아의 삶 자체는 깊이 보수적이다. 그러나 이 보수적 아비투스(habitus)는 이념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삶은 보수적인데 정치는 이념적으로 공백이다. 이것이 이 글이 파고들려는 역설이다.


먼저 물음을 하나 던져야 한다. 보수주의는 어떤 조건에서 이념으로 태어나는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1790)을 썼을 때, 그것은 학문적 탐구가 아니었다. 혁명이라는 급진적 충격에 대한 반응이었다. 기존의 제도, 관습, 위계가 한꺼번에 쓸려나가는 광경 앞에서, 그것들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비로소 이념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보수주의는 공격받을 때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이것은 중요한 통찰이다. 도전이 있어야 방어 이념이 형성된다는 것. 전통이 당연한 것으로 남아 있는 한, 그것을 이념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듯, 전통 속에 사는 사람들은 전통주의자가 되지 않는다.


동남아의 경우 이 도전은 외부에서 왔다. 식민지배라는 형태로. 그러나 식민지배에 대한 응답은 보수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였다. 독립을 쟁취하는 이념이 필요했지, 전통을 지키는 이념이 필요하지 않았다. 탈식민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미래 지향적이고 건설적이다. 수카르노는 새로운 인도네시아를 건설하려 했고, 호치민은 새로운 베트남을 꿈꿨다. 두 사람 모두 지키는 자가 아니라 만드는 자였다.


여기서 동남아 우파 형성의 첫 번째 구조적 장벽이 드러난다. 독립운동이라는 시대의 출발점 자체가 보수주의를 부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식민지배의 유산은 단지 정치적 공백만이 아니었다. 지적 생태계 자체를 뒤흔들었다.


버크식 보수주의의 전제는 지킬 만한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그 전통이 검증된 지혜를 담고 있다는 것. 그런데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식민지배 이전의 전통 질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훼손되었다. 하나는 물리적 파괴—제도, 관료제, 언어 교육의 식민화. 다른 하나는 오염—기존 지배층이 식민 권력과 결탁함으로써 도덕적 정당성을 잃은 것.


버마 왕조의 귀족 계층이 영국 식민 행정에 협력했을 때, 태국 귀족층이 내부적으로 서구화를 수용했을 때, 필리핀 일루스트라도(ilustrado) 계급이 스페인과 미국 식민 교육의 산물이 되었을 때—이 지배 계층은 더 이상 전통적 권위의 순수한 담지자가 아니었다. 전통을 지킨다는 이념이 기댈 사회 계층 자체가 오염되었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1983)에서 민족주의가 어떻게 인쇄 자본주의(printcapitalism)를 통해 형성되는지를 분석했다. 그의 핵심 논지는, 신문과 소설이 공통의 언어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고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앤더슨 자신이 코넬대의 동남아시아 지역학자였던 만큼, 자바와 필리핀 사례가 책 전반에 걸쳐 직접적으로 다뤄진다. 그러나 "식민 교육을 통해 민족주의 엘리트가 형성되었다"는 논지는 앤더슨보다 파르타 채터지(Partha Chatterjee)에 더 가깝다. 채터지는 『민족주의 사상과 식민지 세계(Nationalist Thought and the Colonial World)』(1986)에서 식민지 교육이 역설적으로 반식민주의 사상의 언어를 공급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반식민주의를 외친 사람들이 식민지 대학에서 사상을 형성했다는 아이러니. 이것은 동남아 정치 이념의 지형에 구조적 편향을 남겼다. 좌파적 민족주의가 그나마 내러티브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교육이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보편적 저항의 언어를 함께 실어 날랐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주의가 기댈 "검증된 전통"의 언어는 그 교육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냉전은 동남아 정치 지형에 결정적 왜곡을 가했다. 그리고 이 왜곡이 진정한 보수 이데올로기 형성을 수십 년 더 지연시켰다.


냉전 구도에서 동남아의 "우파"는 단순히 반공 세력으로 정의되었다.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이 아니라 진영 선택이 우파의 기준이 된 것이다. 태국 군부, 남베트남 정권, 필리핀의 마르코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이들은 모두 미국의 반공 동맹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통치는 커크가 말한 처방론과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이 부패한 가산제(patrimonialism)였고, 일부는 개발독재의 외피를 둘렀다.


수하르토의 신질서 체제를 보자. 그는 판차실라(Pancasila)를 이데올로기적 기반으로 삼았다. 다섯 가지 국가 원칙—신에 대한 믿음, 인도주의, 민족 통일, 민주주의, 사회 정의—은 표면적으로 보수적 가치와 공명하는 요소를 포함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와 공산주의 양쪽을 동시에 배격하고, 자바 문화의 위계적 조화를 현대 국가에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해럴드 크라우치(Harold Crouch)가 『군대와 정치: 인도네시아(The Army and Politics in Indonesia)』(1978)에서 날카롭게 분석했듯, 수하르토 체제의 실질적 작동 원리는 이념이 아니라 후원수혜 관계(patronclient network)였다. 판차실라는 이념이라기보다 정치적 경쟁을 봉쇄하는 언어적 도구였다. 1998년 경제 위기와 함께 체제가 무너지자 판차실라 보수주의도 함께 정당성을 잃었다. 이념의 공허함이 위기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마르코스의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그는 "새로운 사회(Bagong Lipunan)"를 내세우며 필리핀 전통 가치와 규율을 결합한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념이 아니었다. 권력 유지를 위한 수사였다. 폴 허친크로프트(Paul Hutchcroft)가 『버블 이코노미(Booty Capitalism)』(1998)에서 보여준 것처럼, 필리핀 국가는 이념보다 사적 약탈의 도구로 기능했다. 냉전기 동남아 "우파"의 민낯이 거기 있었다.


이 가짜 우파들이 남긴 유산은 심각했다. 보수주의와 권위주의적 부패가 동의어로 인식되는 역사적 기억이 형성된 것이다. 진정한 보수 이데올로기가 자라날 토양이 독재의 유산으로 오염되었다.


서구에서 보수주의의 사회적 기반은 중산층이다. 재산, 직업,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보수 정치의 핵심 지지층이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이익에서 나오는 정치"가 아니더라도, 잃을 것이 있는 사람이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는 것은 거의 보편적 경향이다.


동남아 중산층은 지난 수십 년간 빠르게 성장했다.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의 도시 중산층은 경제 성장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 중산층이 이념적 우파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이 중산층은 주로 국가 주도 발전주의의 수혜자였다. 그들의 부는 자유 시장이 아니라 국가 개입과 보호무역주의 속에서 형성되었다. 작은 정부와 재산권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서구식 경제적 보수주의가 이들에게 자연스러운 정치적 언어가 되기 어렵다.


둘째, 화교 자본가 계층의 특수한 위치가 있다.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화교는 인구의 소수이지만 경제적 영향력은 불균형적으로 크다. 이들이 서구에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보수 우파 정치의 핵심 후원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화교 자본은 동남아에서 정치적으로 침묵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화교는 반화교 정서의 잠재적 표적이다. 1998년 인도네시아 폭동에서 화교 자본은 대규모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 말레이시아의 부미푸트라(Bumiputera) 정책은 화교를 구조적으로 차별한다. 이 불안정한 위치가 화교 자본가들로 하여금 어느 정권과도 실용적으로 협력하되, 이념적 깃발을 들지 않는 전략을 택하게 만든다. 가장 자연스러운 보수 우파의 경제적 기반이 이념적으로 동원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념적 우파의 문화적 기반으로 종교를 빼놓을 수 없다. 동남아의 두 주요 종교—불교와 이슬람—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수 이데올로기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먼저 불교. 상좌부 불교는 공동체, 전통, 위계, 도덕적 질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적 가치와 공명하는 요소가 많다. 태국의 왕불교국가(NationReligionKing, ជាតិ សាសនា ព្រះមហាក្សត្រ) 삼위일체는 실제로 동남아에서 가장 체계화된 보수주의적 이념의 형태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태국 군부는 이 삼위일체를 체제 정당화의 언어로 사용했다.


그러나 불교가 체계적인 보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상좌부 불교의 전통은 근본적으로 탈정치적이다. 승가는 세속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더 깊은 문제는 불교의 업보론(karma)이 현세 질서를 설명하지만 그것을 이상(ideal)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카스트를 우주론으로 정당화하는 힌두교와 달리, 불교에서 현세의 위계는 전생의 업보가 만든 잠정적 상태이지 영구적 이상이 아니다. 이것이 불교가 보수주의의 형이상학적 기초가 되기 어려운 이유다.


이슬람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정치는 부분적으로 우파의 역할을 한다. 가족 가치, 종교적 도덕, 전통 공동체—이것들은 보수적 어휘다. 그러나 이것은 동남아 고유의 우파가 아니라 이슬람 문명권의 정치를 수입한 것에 가깝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 정치가 동남아의 맥락에서 토착화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더구나 이슬람 정치는 경제적 보수주의와 결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재분배와 공동체 연대를 강조하는 이슬람의 경제 윤리가 시장 자유주의와 쉽게 결합하지 않는다.


동남아에 왜 이념적 우파가 없는지를 이해하는 데, 역설적으로 동남아 바깥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리콴유의 싱가포르는 흥미로운 사례다. 그는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정치적 이념으로 명시적으로 내세웠다. 공동체가 개인에 앞선다는 것, 가족이 사회의 기본 단위라는 것, 규율과 질서가 자유보다 앞선다는 것—이것들은 분명히 보수주의적 어휘다. 파로크 모타마만(Farrokh Moshman)이나 다니엘 벨(Daniel Bell)이 『아시아적 가치와 민주주의(East Asian Challenge for Democracy)』(2001)에서 다룬 것처럼, 아시아적 가치 논쟁은 유교적 공동체주의를 서구 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려는 진지한 시도였다.


리콴유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우선 도시국가라는 특수한 조건. 인종적 다양성이 오히려 강한 국가 정체성 형성의 동인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성과가 이념의 정당성을 뒷받침했다. 아시아적 가치는 싱가포르의 경제 기적과 함께 설득력을 얻었다.


한국의 경우는 더 직접적으로 시사적이다. 박정희 체제는 유교를 발전 이데올로기의 문화적 기반으로 재구성했다. 이것은 단순한 전통 보존이 아니었다. 유교의 위계, 규율, 공동체 가치를 경제 근대화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능동적 지적 작업이었다. 


동남아에서 이런 작업이 가능하지 않았던 이유는 지적 엘리트의 성격 차이와도 연관된다. 한국과 싱가포르의 지배 엘리트는 유교 교육과 근대 교육을 동시에 체화한 집단이었다. 전통과 근대를 잇는 지적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 가교 역할을 담당할 엘리트 집단이 형성되지 못했거나, 식민 교육으로 인해 전통과의 단절이 더 심각했다.


이념적 우파의 공백은 비어 있지 않다. 무언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 동남아의 경우, 그것은 주로 포퓰리즘이었다.


탁신 친나왓의 태국, 두테르테의 필리핀, 자코 위도도의 인도네시아—이들은 겉으로 보기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체계적 이념보다 개인적 카리스마와 직접적 대중 호소에 의존한다는 것. 얀베르너 뮐러(JanWerner Müller)가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What is Populism?)』(2016)에서 지적했듯, 포퓰리즘은 이념이 아니라 정치의 스타일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순수한 인민과 부패한 엘리트를 대립시키는 수사적 구조를 가진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 구조를 채우는 내용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든 기울 수 있다.


동남아 포퓰리즘이 이념적 우파를 대체하는 구체적 메커니즘이 있다. 보수주의가 전통, 질서, 도덕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이념적 호소를 한다면, 동남아 포퓰리즘은 같은 불만—부패한 엘리트에 대한 분노, 전통 공동체의 파괴에 대한 불안—을 이념 없이 직접적 분노로 표현한다. 이념적 우파가 해야 할 일을 포퓰리즘이 이념 없이 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포퓰리즘은 지속적 정치 질서를 만들지 못한다.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사라지면 운동도 사라진다. 이념은 지도자 없이도 살아남지만, 포퓰리즘은 그럴 수 없다. 동남아 정치의 만성적 불안정—쿠데타, 권력 진공, 제도적 취약성—의 뿌리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다시 처음의 역설로 돌아가야 한다. 왜 이토록 보수적인 삶의 방식이 이념으로 번역되지 않는가.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아비투스 개념이 여기서 유용하다. 그의 『구별짓기(Distinction)』(1979)에서 아비투스는 의식적 선택이나 이념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 작동하는 성향과 감각의 체계다. 아비투스는 명시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력하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듯, 아비투스 속에서 사는 사람은 그것을 이념으로 표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동남아의 보수적 삶의 방식—가족, 공동체, 종교, 위계—은 아비투스의 수준에서 작동한다. 그것이 위협받지 않는 한, 이념으로 표면화될 이유가 없다. 버크가 보수주의를 이념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은 프랑스 혁명이 기존 질서를 뿌리부터 흔들었기 때문이다. 동남아에서 이에 상응하는 충격은 식민지배였지만, 그 응답은 보수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였다.


독립 이후에는 어떠한가. 근대화, 도시화, 글로벌화가 동남아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실질적으로 잠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보수적 아비투스가 이념으로 표면화될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가.


흥미로운 징후들이 있다. 태국의 2020년 청년 시위에서 왕실 개혁 요구가 나왔을 때, 이에 반발하는 왕당파 청년들의 등장도 함께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전통주의와 경제적 민족주의를 결합한 정치 담론이 성장하고 있다. 이것들이 진정한 보수 이데올로기의 맹아인지, 아니면 또 다른 포퓰리즘의 변형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그렇다면 동남아에 진정한 보수 이데올로기가 형성될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경로로 가능한가.


조건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킬 만한 전통의 재발견과 지적 재구성이다. 커크의 처방론이 전제하듯, 보수주의는 지킬 것이 있어야 성립한다. 동남아 각국에는 그 재료가 있다. 태국의 왕불교국가 전통, 인도네시아의 자바 문화적 위계와 고통 인내(nrimo)의 미덕, 말레이 세계의 아닷(adat, 관습법), 베트남의 유교불교 혼합 전통. 그러나 이것들을 현대적 정치 언어로 번역하는 지적 작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작업은 서구 보수주의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버크나 커크를 번역한다고 동남아 보수주의가 생기지 않는다.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에서 길어 올리는 작업이어야 한다. 리콴유가 유교를 재구성했고, 박정희가 유교 윤리를 발전 이데올로기로 전환했던 것처럼. 그것이 역사적으로 가능했다면, 동남아 지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 유사한 작업도 가능해야 한다.


둘째, 중산층의 이념적 성숙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동남아 중산층이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이념적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할 때, 보수 우파의 사회적 기반이 만들어진다. 현재 이 중산층은 반부패 실용주의에 경도되어 있다. 이것이 이념적 보수주의로 발전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지적 자극이 필요하다.


셋째, 제도적 정착이다. 보수주의는 제도를 신뢰하고 제도를 통해 작동한다. 쿠데타, 권위주의, 포퓰리즘적 제도 해체가 반복되는 한, 보수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토대는 계속 유실된다. 안정적인 법치와 제도가 없으면 지킬 것도 없다. 보수주의는 역설적으로 제도가 충분히 성숙한 사회에서만 진정으로 가능하다.


동남아의 보수적 아비투스는 깊고 광범위하다. 가족, 종교, 공동체, 위계에 대한 감각은 어떤 이념보다 더 오래되고 더 끈질기다. 그러나 이 아비투스는 이념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조직화된 도전 앞에서 놀라울 만큼 취약하다.


포퓰리즘은 이 보수적 감성을 이용하면서도 보수적 질서를 만들지 못한다. 군부 권위주의는 전통을 내세우면서도 제도적 연속성을 파괴한다. 가산제 정치는 공동체를 이야기하면서도 사적 약탈을 일삼는다. 이것이 동남아 정치의 만성적 문제다. 이념 없는 보수의 취약성.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은 『보수주의란 무엇인가(The Meaning of Conservatism)』(1980)에서 보수주의를 "귀속(allegiance)"의 정치로 정의했다. 특정 장소, 공동체, 제도에 대한 뿌리 깊은 귀속감이 보수주의의 감정적 원천이라는 것이다. 이 귀속감이 없는 정치는 언제나 추상적이거나 기회주의적으로 된다.


동남아 사람들의 귀속감은 강하다. 마을, 가족, 사원, 지역 공동체에 대한 감각은 어떤 이념보다 선명하다. 그러나 이 귀속감이 국가 수준의 이념으로 번역되지 못하고,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에 의해 동원되거나 무시된다.


진정한 동남아 보수주의가 형성된다면 그것은 이 귀속감—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전통에 대한 애착—을 현대적 정치 이념으로 번역하는 지적 작업에서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서구의 보수주의를 수입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를 낭만화하는 복고주의도 아니어야 한다.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현대 세계와 씨름할 수 있는 이념의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이념적 공백이 포퓰리즘과 권위주의로 채워지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그 작업의 필요성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 참고 저작 -


Edmund Burke,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1790)

Russell Kirk, *The Conservative Mind: From Burke to Eliot* (1953)

Benedict Anderson,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1983)

Partha Chatterjee, *Nationalist Thought and the Colonial World: A Derivative Discourse* (1986)

Harold Crouch, *The Army and Politics in Indonesia* (1978)

Paul Hutchcroft, *Booty Capitalism: The Politics of Banking in the Philippines* (1998)

Pierre Bourdieu, *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 (1979)

Daniel Bell, ed., *The East Asian Challenge for Democracy: Political Meritocracy in Comparative Perspective* (2013)

Roger Scruton, *The Meaning of Conservatism* (1980)

JanWerner Müller, *What is Populism?* (2016)

James Scott, *The Moral Economy of the Peasant: Rebellion and Subsistence in Southeast Asia*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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