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게농, 율리우스 에볼라의 영원철학

르네 게농, 율리우스 에볼라의 영원철학


서구의 지적 전통은 놀라울 만큼 좁은 땅 위에 세워져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로마를 거쳐, 르네상스 이탈리아와 독일 관념론, 영국 경험론, 프랑스 계몽주의로 이어지는 계보. 이 계보는 빛나지만 편협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을 정초할 무렵, 인도에서는 나가르주나(Nāgārjuna)가 『중론(中論, Mūlamadhyamakakārikā)』에서 서양 논리학이 2천 년 후에야 근접하게 되는 방식으로 언어와 실재의 관계를 해체하고 있었다. 알 가잘리(AlGhazālī)가 11세기에 쓴 『철학자들의 모순(Tahāfut alFalāsifa)』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을 내부에서 논파하는 작업이었는데, 이 텍스트는 서구 스콜라철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사실을 철학사 교과서에서 제대로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이 공백을 진지하게 메우려 한 서구 사상가들이 20세기 초에 등장했다. 르네 게농(René Guénon, 1886–1951)과 율리우스 에볼라(Julius Evola, 1898–1974). 이 두 인물은 동남아, 중앙아시아, 인도, 중동의 사상 전통을 그 어떤 동시대 서구 철학자보다 광범위하게 연구했다. 그리고 그 연구의 결과물은 20세기 지성사에서 가장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사상 체계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글은 그들의 사상을 추종하거나 단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놓쳤는지, 그 비서구 철학의 광대한 지형을 어떻게 항해했는지, 그리고 그 항해에서 어떤 난파가 일어났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목표다.


게농의 핵심 테제는 단순하면서도 대담하다. 그는 『동과 서(Orient et Occident)』(1924)와 『다수 국가들의 통일성(L'unité de l'être)』에서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모든 위대한 종교 전통의 심층에는 하나의 동일한 형이상학적 실재가 있다. 힌두교의 브라흐만(Brahman), 이슬람 수피즘의 알 하크(AlHaqq, 진리),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의 신성(Gottheit), 도교의 도(道). 이것들은 같은 산의 서로 다른 등산로다.


이 발상의 계보를 추적하면 라이프니츠(Leibniz)가 1714년에 쓴 편지에서 처음 "영원철학(philosophia perennis)"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게농이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라이프니츠보다 훨씬 급진적이다. 라이프니츠에게 영원철학은 이성적 신학의 보편성에 관한 것이었다면, 게농에게 그것은 근대 서구 문명에 대한 전면적 고발의 근거가 된다.


알두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1945년 출간한 『영원철학(The Perennial Philosophy)』은 게농의 이 아이디어를 영미권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만든 책이다. 헉슬리는 힌두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 신비주의에서 발췌한 텍스트들을 나란히 배치하면서, 이것들이 하나의 공통된 형이상학적 실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헉슬리의 버전은 게농보다 훨씬 온화하고 생태주의적이다. 그러나 기본 구조는 동일하다.


게농은 헉슬리보다 더 예리하고 더 위험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이 원초적 진리가 실재한다면, 왜 서구 근대 문명은 이것을 잃어버렸는가? 그리고 그 상실의 결과는 무엇인가?


게농의 역사 철학을 이해하려면 힌두교의 유가(Yuga) 체계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와 여러 푸라나(Purāṇa) 문헌에 상세히 기술된 우주적 시간론이다.


사티아 유가(Satya Yuga)에서 시작해 트레타 유가(Treta Yuga), 드바파라 유가(Dvāpara Yuga)를 거쳐 현재의 칼리 유가(Kali Yuga)로 이어지는 이 순환은 황금에서 철로의 점진적 타락을 묘사한다. 각 유가를 거치면서 다르마(Dharma, 우주적 질서)는 4분의 1씩 줄어든다. 칼리 유가는 다르마가 4분의 1밖에 남지 않은 시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게농은 이 구조를 서구 근대 문명 비판의 형이상학적 틀로 채택했다. 『현대 세계의 위기(La Crise du monde moderne)』(1927)에서 그는 민주주의, 개인주의, 기술 숭배, 물질주의를 칼리 유가의 징표로 읽는다. 산업혁명은 진보가 아니라 타락의 가속이다. 계몽주의는 빛이 아니라 어둠을 향한 발걸음이다.


이 주장의 도발성은 잠시 접어두고 그 철학적 무게를 먼저 봐야 한다. 게농이 힌두교의 시간관을 채택했을 때, 그는 서구 형이상학에서 가장 깊이 뿌리박힌 가정(역사는 진보한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헤겔의 역사철학,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 콩트의 실증주의적 진보론. 이 모든 것이 동일한 기본 가정을 공유한다. 역사는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


게농은 이것이 환상이라고 말한다. 실재는 거꾸로다. 우리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굴러떨어지고 있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발상이 21세기의 맥락에서 갖는 설득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핵무기, 기후 위기, 디지털 감시 사회. 근대 기술 문명의 성과물들이 인류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예속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은 게농 이후 더욱 강해졌다.


게농이 수피즘에 귀의해 이집트 카이로에서 생애 후반을 보낸 것은 단순한 개인적 종교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전체 지적 체계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이슬람 수피즘은 서구에서 종종 신비롭고 낭만적인 것으로 오해받는다. 잘랄 앗 딘 루미(Jalāl adDīn Rūmī)의 시가 전 세계적으로 읽히지만, 그 시들은 맥락에서 분리된 채 소비된다. 루미의 『마스나비(Masnavi)』는 단순한 사랑의 시가 아니다. 그것은 수피즘의 핵심 개념인 파나(Fanāʾ, 자아의 소멸)와 바카(Baqāʾ, 신 안에서의 존속)를 가르치는 교육 텍스트다.


수피즘의 핵심 철학은 이븐 아라비(Ibn ʿArabī, 1165–1240)의 『존재의 유일성(Waḥdat alWujūd)』 개념에서 정점에 달한다. 존재는 오직 하나다. 신 외에 어떤 독립적 실재도 없다. 피조물은 신의 자기 현현(自己顯現)이다. 이 개념은 힌두교 베단타 철학의 아드바이타(Advaita, 불이론)와 놀라울 만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게농이 이 유사성을 발견한 것은 탁월한 통찰이었다. 그는 『이슬람 교의의 형이상학적 기초(Introduction générale à l'étude des doctrines hindoues)』(1921)에서 힌두교의 아트만브라흐만 동일성 이론과 수피즘의 와흐다트 알 우주드를 동일한 형이상학적 구조의 두 표현으로 분석한다. 이것은 비교철학의 역사에서 실제로 중요한 발견이다.


문제는 게농이 이 유사성을 발견한 뒤 그것으로부터 너무 빠르게 달려나간다는 데 있다. 유사성은 동일성이 아니다. 힌두교의 브라흐만 개념과 이슬람의 알라 개념 사이에는 심층적인 신학적 차이가 있다. 이슬람은 근본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분한다. 와흐다트 알 우주드는 수피즘 내에서도 논쟁적이었고, 많은 이슬람 학자들에게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이 긴장을 게농은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중동의 철학 전통은 수피즘만이 아니다. 이슬람 철학의 황금기에 이븐 시나(Ibn Sīnā, 980–1037)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넘어서는 독창적 형이상학을 구축했다. 그의 『치유의 서(Kitāb alShifāʾ)』는 존재와 본질의 구분을 처음으로 명확히 형식화한 텍스트다. 이 구분은 훗날 아퀴나스에게 전달되어 서구 스콜라 철학의 기둥이 되었다. 이슬람 철학이 서구 철학의 형성에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게농은 이 철학적 계보보다 신비주의적 계보에 훨씬 더 관심을 가졌다.


게농에게 힌두교는 주로 베단타(Vedānta), 그중에서도 아디 샹카라(Ādi Śaṅkara, 8세기)의 아드바이타 베단타였다. 이것은 힌두교 사상의 한 갈래다. 중요한 갈래이지만, 전부가 아니다.


인도 철학의 다양성은 서구에서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 6개의 정통 철학파(āstika darśana)만 보더라도 그 내부의 차이는 엄청나다. 니야야(Nyāya)는 논리학과 인식론을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바이세시카(Vaiśeṣika)는 원자론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상키야(Sāṃkhya)는 이원론적 형이상학이다. 미만사(Mīmāṃsā)는 베다 텍스트의 의미론적 분석에 집중했다.


그리고 정통파 바깥에 불교와 자이나교가 있다. 자이나교의 아네칸타바다(Anekāntavāda, 비절대주의)는 어떤 명제도 절대적으로 참이거나 거짓일 수 없다는 다원주의적 인식론이다. 이것은 게농의 절대주의적 진리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이나교의 관점에서 보면, 게농이 힌두교의 베단타를 유일한 원초적 진리의 보존자로 특권화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며 절대화될 수 없다.


불교는 더 복잡하다. 테라바다 불교, 대승 불교, 금강승 불교는 서로 근본적인 교리 차이를 가진다. 나가르주나의 중관(中觀, Madhyamaka) 철학은 모든 개념적 구조(심지어 공(空, śūnyatā) 개념 자체도)를 해체한다. 이것은 게농의 긍정신학적 접근과 양립하기 어렵다. 중관 철학은 "원초적 진리"라는 실체적 개념 자체를 거부할 것이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논쟁을 좋아하는 인도인(The Argumentative Indian)』(2005)에서 인도 사상의 전통이 논쟁과 다원성의 전통이었음을 강조한다.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의 여러 파들이 서로 치열하게 논쟁했다. 이 논쟁적 다원성이 게농이 구성하는 "원초적 통일성" 안에서는 사라져버린다. 게농의 힌두교는 실제 역사 속에서 싸우고 논쟁하는 힌두교가 아니라 그가 선별한 형이상학적 정수다.


율리우스 에볼라는 게농에게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다. 『깨달음의 교설(La dottrina del risveglio)』(1943)에서 에볼라가 불교를 해석하는 방식은 도발적이면서 흥미롭다.


에볼라의 불교에 대한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붓다는 브라만 계급의 종교적 권위에 맞선 크샤트리아 전사 귀족 출신의 반란자다. 초기 불교는 내면의 전사적 극복을 통한 해방의 가르침이다. 자비와 평화의 종교로 해석되는 불교는 후대의 타락이고, 진정한 불교는 엄격하고 귀족적인 자기 극복의 가르침이다.


이 해석은 역사적으로 보면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실제로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이었다. 초기 불교는 브라만의 제의적 권위를 거부했다. 에볼라는 이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러나 그가 이 사실로부터 도출하는 결론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한다. 팔리어 경전(Pāli Canon)의 실제 내용을 보면,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은 자비(karuṇā)와 무아(anattā)다. 자비는 귀족적 영웅주의와 양립하기 어렵다. 무아론은 에볼라가 그토록 강조하는 귀족적 자아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해체해버린다.


에볼라의 불교 해석에서 사라지는 것이 있다.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 교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현상이 상호 의존적 조건 속에서 발생한다는 이 교리는 에볼라가 추구하는 자립적이고 자기완결적인 귀족적 주체의 개념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일 것이다. 에볼라는 불교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버린다.


남방 불교권 동남아의 불교 전통은 에볼라에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의 테라바다 불교는 에볼라적 영웅주의와 가장 멀리 있는 형태의 불교다. 출가 수행자의 공동체(sangha), 왕과 승가의 관계, 국가와 종교의 상호 의존적 제도화. 이것들은 에볼라가 찾는 귀족적 반란의 이미지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게농과 에볼라 모두 중앙아시아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심각한 결함이다. 중앙아시아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자적인 철학적 문명의 중심지였다.


페르가나(Fergana) 출신의 이슬람 학자들, 사마르칸드와 부하라의 마드라사(Madrasa) 전통. 이 지역에서 그리스 철학, 인도 수학, 이란 종교 전통, 중국 기술이 만나고 혼합되었다. 알 비루니(AlBīrūnī, 973–1048)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학자로, 그의 『인도 탐구(Kitāb fī taḥqīq mā li'lHind)』는 산스크리트 원전을 직접 읽고 힌두교 철학과 수학을 이슬람 세계에 소개한 기념비적 텍스트다. 알 비루니는 단순한 번역자가 아니었다. 그는 힌두교와 이슬람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양쪽의 유사성과 차이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게농이 그토록 찾던 사상들 간의 실제적 교류와 대화가 중앙아시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게농은 이 역사적 접촉의 현장보다는 각 전통의 "순수한" 형이상학적 핵심을 추출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역사적 접촉과 혼종은 게농의 영원철학 구도 안에서 오히려 불편한 것이었다. 순수한 전통이 서로 섞이는 것은 그에게 타락의 신호였지 풍요의 신호가 아니었다.


이란의 철학 전통도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수흐라와르디(Suhrawardī, 1154–1191)의 이쉬라크(Ishrāq, 조명) 철학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조로아스터교의 빛 형이상학, 이슬람 신학을 독창적으로 종합했다. 물라 사드라(Mullā Ṣadrā, 1571–1636)는 존재의 등급적 위계와 운동에 관한 이란 고유의 형이상학 체계인 트란센던트 신지학(alHikmat alMutaʿāliya)을 구축했다. 이 전통들은 게농의 영원철학 구도와 훨씬 더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상들이다.


에볼라의 철학적 전쟁터는 게농과 달랐다. 『현대세계에 대한 반란(Rivolta contro il mondo moderno)』(1934)에서 에볼라는 게농의 전통주의 틀을 계승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어간다.


게농은 칼리 유가를 거스를 수 없다고 보았다. 타락한 시대에 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내면에서 전통적 진리를 보존하면서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것이 그가 수피즘으로 귀의하고 카이로에서 은둔한 이유다. 이 태도는 인도 철학의 언어를 빌리면 비나샤(vairāgya, 초탈)에 가깝다. 세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내면의 실재를 향하는 것.


에볼라는 이 관조적 태도를 거부했다. 그에게 칼리 유가는 전사의 극복 의지를 시험하는 시대다. 힌두교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ītā)』에서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전쟁터에서 도망치지 말라고 가르치듯이, 에볼라는 타락한 시대에서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에볼라의 『바가바드 기타』 독법은 편향적이다. 바가바드 기타의 핵심 가르침은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행위하는 것(karma yoga)이다. "나는 의무를 위해 싸우지,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에볼라는 이 비집착의 측면을 약화시키고 전사적 행동의 영웅주의적 측면을 극대화한다. 바가바드 기타를 파시즘의 형이상학적 텍스트로 만드는 것은 바가바드 기타 자체의 논리에 폭력을 가하는 일이다.


에볼라가 힌두교 카스트 체계에서 브라만보다 크샤트리아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도 흥미롭다. 전통적인 힌두교 사회에서는 브라만이 정신적 최고 계급이다. 에볼라는 이것을 뒤집는다. 사제적 지성보다 전사적 행동이 더 높은 가치를 갖는다. 이 역전은 유럽 귀족제의 가치관을 힌두교 체계에 투영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귀족은 전사 계층이었기 때문이다.


에볼라가 힌두교에서 가장 깊이 파고든 영역은 탄트라(Tantra), 특히 좌도 탄트라(Vāmācāra)다. 『탄트라로 보는 남성과 여성의 형이상학(Lo yoga della potenza)』(1949)에서 그는 탄트라의 철학적 구조를 분석한다.


탄트라의 핵심은 이원성의 초월이다. 시바(Śiva)와 샥티(Śakti), 의식과 에너지, 남성 원리와 여성 원리의 합일. 좌도 탄트라는 금기를 의도적으로 위반함으로써(고기, 생선, 술, 성적 결합)이 합일을 추구한다. 판차마카라(Pañcamakāra), 다섯 가지 M(마디야( madya, 술 ), 맘사( māṃsa, 고기 ), 마츠야( matsya, 생선 ), 무드라(mudrā, 곡물), 마이 투나( maithuna, 성행위 ))으로 불리는 이 의례들은 사회적 금기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넘음으로써 에고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에볼라는 이 구조를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체계에 맞게 재해석했다. 그에게 탄트라의 좌도는 귀족적 영웅이 사회적 도덕의 한계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정당화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인론과 탄트라의 금기 위반이 만나는 지점 말이다.


그러나 탄트라를 실제로 연구한 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해석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알렉시스 샌더슨(Alexis Sanderson)이나 다글라스 브룩스(Douglas Brooks)의 연구에 따르면, 좌도 탄트라의 금기 위반은 철저히 의례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개인적 방종이나 도덕 초월의 영웅주의가 아니라, 엄격한 의례적 질서 안에서 수행되는 변형 실천이다. 탄트라의 진정한 목표는 에고의 해체(dissolution of ego)이지 에고의 강화가 아니다. 에볼라가 추구하는 귀족적 주체의 강화는 탄트라가 지향하는 것과 정반대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1978)은 서구가 동양을 어떻게 자신의 욕망과 불안의 스크린으로 사용해왔는지를 분석한다. 사이드의 분석은 주로 식민지 행정, 문학, 회화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 분석은 게농과 에볼라에게도 적용된다. 단, 다른 방식으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을 열등하고 미개한 타자로 구성한다면, 게농과 에볼라의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잃어버린 황금의 보고로 이상화한다. 타자를 혐오하는 대신 숭배한다. 그러나 타자를 자신의 욕망의 투영면으로 사용한다는 구조는 동일하다.


게농이 구성하는 동양 전통은 실제 살아있는 동양 전통이 아니다. 힌두교 카스트 체계의 억압, 이슬람 법학의 세속적 논쟁, 불교 승가 내부의 정치, 수피즘과 정통 이슬람의 역사적 갈등. 이것들은 게농의 전통주의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오는 것은 그가 형이상학적으로 세련되었다고 판단한 측면들만이다.


진정으로 힌두교를 내부에서 이해하려면 라마누자(Rāmānuja)의 한정불이론(Viśiṣṭādvaita)이 샹카라의 불이론에 제기하는 비판을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라마누자에게 세계는 브라흐만의 환영(māyā)이 아니라 브라흐만의 실제 신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신학적 미묘함이 아니라 인식론과 윤리학의 근본을 가르는 차이다. 게농은 샹카라의 불이론을 택하고 라마누자의 비판을 무시한다. 그 선택 자체가 이미 힌두교 내부의 특정 입장을 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게농은 그것을 힌두교 전체의 형이상학적 핵심인 양 제시한다.


게농과 에볼라를 읽은 뒤 무엇이 남는가. 그들의 작업에서의 흠은 분명하다. 비서구 전통을 자신의 형이상학적 기획을 위해 도구화했다. 각 전통의 내부적 다양성과 논쟁을 무시했다. 역사적으로 살아있는 전통들을 탈역사화된 영원한 진리의 텍스트로 환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제기한 질문은 여전히 살아있다. 서구 근대 문명의 물질주의적 단일문화에 대한 비판. 진보라는 개념의 형이상학적 전제에 대한 의문. 상이한 문명 전통들 사이에 공통된 형이상학적 구조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게농과 에볼라보다 훨씬 더 정밀한 방법이 필요하다. 각 전통을 그 내부의 논리로부터 이해하는 것, 그러면서도 그 전통들 사이의 실제 교류와 영향을 추적하는 것, 그리고 비교의 행위 자체가 가져오는 왜곡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것.


비교철학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전통이 하나의 진리를 향한다는 사전 결론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비교는 통일성의 확인이 아니라 차이의 발견에서 시작해야 한다. 힌두교의 무한(ananta)과 이슬람의 신의 무한성(lā nihāya)은 같은 개념인가 다른 개념인가. 불교의 무아(anattā)와 수피즘의 파나는 같은 체험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다른 체험인가. 이 질문들에 쉬운 답은 없다.


게농과 에볼라는 이 어려운 질문들을 너무 빨리 해결했다. 그들의 지적 용기는 인정받아야 하지만, 그 해결의 방식은 비판받아야 한다.


황금시대는 과거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실재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 어렵고 느린 비교의 작업 속에서,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인내 속에서만 얼핏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주요 참고 저작 -

르네 게농 『현대 세계의 위기(La Crise du monde moderne)』(1927), 『동과 서(Orient et Occident)』(1924)

율리우스 에볼라 『현대 세계에 대한 반란(Rivolta contro il mondo moderno)』(1934), 『깨달음의 교설(La dottrina del risveglio)』(1943), 『탄트라로 보는 남성과 여성의 형이상학(Lo yoga della potenza)』(1949)

알두스 헉슬리 『영원철학(The Perennial Philosophy)』(1945)

아마르티아 센 『논쟁을 좋아하는 인도인(The Argumentative Indian)』(2005)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1978)

이븐 아라비 『존재의 유일성(Fuṣūṣ alḤikam)』

나가르주나 『중론(Mūlamadhyamakakārikā)』

이븐 시나 『치유의 서(Kitāb alShifāʾ)』

알 비루니 『인도 탐구(Kitāb fī taḥqīq mā li'lHind)』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주권(主權), 책임, 소유: 공적 이익과 사적 이익 일치의 방법론에 관하여

정치적 자유라는 이름의 버퍼(Buffer)

일본천황 황위 계승권 개정안 통과, 여성 천황 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