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중국에 대한 평가가 묘하게 NRx스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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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아재가 최근에 국힘 보고 뭔 민좆당 표밭인 강북으로 밭갈이 작업하라느니, 트럼프 나쁜 사람이다노~하면서 똥볼 차기도 하는 양반인데...

임건순 아재의 중국에 대한 평가를 보아하니 뭔가 해외 신반동주의(NRx) 글쟁이들 특유의 중국 모델에 대한 찬사의 그것과 비스무리한 느낌이 드는군.

임건순 아재는 수많은 페북글에서 아직도 조센이 망해가는 것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린 것이나 반중친미적인 관념이 디폴트로는 있다만 중국의 저런 우악스런 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건 참 신기한 일.

아니, 신기하다고 보는 것도 어쩌면 이상할지도 모르고, 임건순처럼 동양철학하는 도올이 중공 빨듯이 어느 정도 동양 문명의 통치 시스템에 대해서 호의적일 수 밖에 없을지도.

NRx의 거두인 커티스 야빈 센세와 닉 랜드 센세의 중국 모델에 대한 평가는 또 어떠한지 인용해보겠다.


야빈의 선천적인 정치 회의주의는 독재 정권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사라진다. 그는 엘살바도르의 강력한 지도자 나이브 부켈레(Nayib Bukele)에 대해 호의적인 말을 하고, 트럼프에게 푸틴이 “러시아어권 지역뿐 아니라 영국 해협까지” 자유주의 질서를 끝내도록 허락하라고 권한 적도 있다.

튀긴 오징어 접시를 앞에 두고, 야르빈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중국과 르완다를 강력한 정부를 가진 나라로 칭찬하며, 그런 정부들이 공공 안전과 개인의 자유를 모두 보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서는 당신이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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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Dupré: DeepSeek 사태 이후로, AI 경쟁에서 미국이 중국에 비해 구조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커티스 야빈: 미국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 이점은 매우 덧없고, 오래가지 않습니다. 빠르게 사라지죠. 중국인들은 복제(cloning)를 굉장히 잘합니다. 미국이 아직 가지고 있는 남은 구조적 이점들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활용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ASML과 SpaceX뿐입니다. 중국은 극자외선(EUV) 광원을 만들어낼 수 없고, 재사용 가능한 로켓을 우주에 쏘아 올릴 수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이점은 단 몇 년, 한 자릿수 연도 내에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이 기회를 이용해 중국의 세계 지배를 막고자 한다면, 매우 적극적이고 빠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Abderrahmane El Kadiri: 이런 상황에서, ‘법의 지배(rule of law)’는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자산이 될까요, 아니면 부담이 될까요?

커티스 야빈: 부담이죠. (웃음)

Max Goldminc: 유럽에서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AI에 대한 규제와 법률이 너무 많거든요…

커티스 야빈: 우리가 ‘법의 지배’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절차의 지배(rule of process)’입니다.
큰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절차로 운영하거나, 명령으로 운영하거나.
스타트업과 워싱턴을 비교해 보면, 한쪽이 자유주의적이고 다른 쪽이 그렇지 않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워싱턴은 절차로 움직이고, 실리콘밸리는 명령으로 움직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세계는 명령으로 돌아갑니다.
중국은 아직 SpaceX를 복제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발 앞으로도 그럴 수 없기를 바랍니다.
일론 머스크가 특허를 내지 않는 이유도 중국이 그것을 훔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밀로 유지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내 아이들은 중국어를 하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 중국어를 배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배우기 매우 어려운 언어거든요.
애국심 차원에서 말하자면 — 이번엔 우리가 이겨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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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랜드: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역사적 구조 같은 실제의 많은 구조들은 일종의 봉쇄(containment)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봉쇄 시스템이 르네상스 시기에 실패 모드에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초이데올로기적 공간(super-ideological space)’으로 돌아가자면, 그 극단적인 “고대 반동주의자들(ancient reactionaries)”의 올바름은 바로 이 점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중세 시대에 대한 우울한 향수적 태도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파국적 실패가 일어나 폭발적인 과정이 시작되었다”는 그들의 주장에는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체제(old regime)의 관점에서 본 근대성(modernity)의 내용이죠.

모든 사회 시스템은 이 “핵폭탄 더미”가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되어 있습니다. 중국 문명을 보세요. “그건 뭘 하고 있는 거지? 무슨 목적이 있는 거지?”라고 묻는다면, 어떤 관점에서는 그것이 자본주의적 봉쇄 구조(capitalist containment structure)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그것은 분명히 유럽의 것보다 더 나았습니다. 유럽의 구조는 지나치게 분절적(fragmented)이었고, 미친 듯이 통제 불가능한 영향들의 폭격을 맞았으며, 그로 인해 전례 없는 피드백 구조들이 작동하게 되었고, 유럽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유럽에서 자본주의와 근대성(capitalism and modernity)을 받게 되었고, 그것이 서양의 군함들에 의해 중국으로 가져와졌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준 “선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봉쇄의 흑연(graphite)을 외부에서 뽑아내기 위해 온 것입니다 [웃음]. 이것이 바로 중국의 근대화 과정입니다.

즉, 외부에서 지역적으로 뿌리내린 봉쇄 구조를 해체하는 과정이었으며, 그 결과—서구에서 본 것 못지않게 장관을 이루며—중국은 결국 자기유지적인 근대주의적 폭발(self-sustaining modernist explosion)로 진입했습니다. 대체로 1980년대 초반이 그 시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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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붕괴 이후, 랜드는 영국을 떠났다. 그는 “새 천년이 시작된 초기에” 대만으로 이주했다고 말했으며, “몇 년 뒤” 상하이로 옮겼다. 지금도 그는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 “외부인으로 사는 것은 해방감이었다.” 중국은 또한 그에게 흥분을 주는 장소였다. 그는 2004년 상하이 스타(Shanghai Star)라는 영문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자본주의가 융합된 현대 중국의 체제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경제 발전의 정치적 엔진”이라고 묘사했다.

워릭대학 시절, 그와 CCRU는 “신중국(neo-China)”이라 부르는 개념에 대해 자주 열광적으로 썼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곳에 살게 되자, 랜드는 “매우 큰 정도로” 중국이 이미 하나의 가속주의 사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즉, 미래에 집착하며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중국 국가가 추진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접하고 나자, 그는 이전에 지녔던 ‘정부의 역량에 대한 자유지상주의적 경멸감’이 사라졌다고 한다.

반면, 혁명적 열기가 사라진 영국으로 돌아가 보면, 랜드의 중국 관련 저널리즘—정부 친화적 선전, 과장된 PR 수사, CCRU식 환상적 이미지가 뒤섞인 기이한 혼합물—은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에 거의 주목받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2010 상하이 세계박람회에서는… 평행한 궤도가 하나로 녹아들며, 세계사상 가장 거대한 단일 사건으로 수렴한다” 같은 문장이 그 예다.

가속주의(accelerationism)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던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랜드가 그 철학을 부적절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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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는 모르겠지만 NRx의 거두 두 명과 임건순 씨의 중국 모델에 대한 평가의 레토릭이 비스무리한 느낌이 든다.

해외 NRx 글쟁이들이 중공이던 뭐던 비서구권(아님 서구권이라도 그닥 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는 아닌 경우)의 권위주의 개발독재 통치체제를 선호하는 이유가 민주주의가 퇴행적이고, 효율적이고 장기적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통치체제를 이상향으로 삼기 때문임. 거기다가 서구 리버럴적 제약 없이 기술발전을 가속시킬 수 있다는 점을 더더욱 매력넘치게 보는 것.

바로 이 면에서 있어서 임건순 씨도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권위주의적 개발독재가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본 게 아닐까?

임건순 씨가 'unqualified reservations'나 'xenosystems'를 읽어봤을 리는 없겠다만, 어쩌다 얻어걸린 얘기인지도.

뭐 물론 우리들이 알아야 할 사항은 우리가 그런 권위주의 개발독재 정권의 장자방이나 제갈량 역할이 된다기보다는 체제가 돌아가기 위한 톱니바퀴 1, 톱니바퀴 2에 불과할 뿐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지만.

퇴폐한 서구 리버럴+글로벌리즘 정부에서 '이타적인 놈'이 되어 착취당하느냐, 비서구 권위주의 독재 정권에서 '이타적인 놈'이 되어 착취당하느냐...그것이 문제로다.
​하여튼간에 임건순 씨의 식견 정도를 보면 어설프게 중공 빨다 딱 민좆 정치인들이 중공 짝사랑 하듯 그 꼬라지 날까 심히 우려되기도 한다만, 그래도 임건순 씨가 센트릭스를 버리고 어두운 의미에서 계몽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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