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팬드렐, 신반동주의에 대한 사후분석
신반동주의에 대한 사후분석
2024년 3월 3일, 스팬드렐(Spandrell) 작성
...(중략)...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신반동주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말했듯이, 블로그스피어 전체가 거의 사라졌다. 따라서 그 안의 작지만 나름 영향력 있던 하위 집단이었던 신반동주의 역시 같은 운명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의 큰 부분은 단순히 소모와 교체, 즉 더 빠르고 (그리고 더 멍청한) 인터넷 매체들에 밀렸고, 세대 교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신반동주의의 주류는 초기 밀레니얼 세대, 중국식으로 말하면 ‘바링허우(八零后)’ 세대였다. 이들은 이제 확실히 중년에 들어섰고, 중년에는 여러 일이 생긴다. 아마도—그리고 내 경험상 (그동안 직접 만난 사람도 많다)—우리 중 상당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일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 결과 낯선 사람들과 인터넷에서 장문의 논쟁을 벌일 시간이나 에너지가 줄어들었다. 트위터에서 헛소리를 몇 줄 쓰는 건 언제나 쉽다. 그러나 몇백 명의 낯선 인터넷 독자들을 위해 역사나 정치이론에 대한 긴 에세이를 쓰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다.
또한 대부분이 글을 쓸 체력이 떨어지게 된 시점에,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 자체도 함께 사라졌다. 신반동주의는 본래 어떤 정치운동이 아니었다. 즉 자유지상주의자들처럼 점진적 규제 완화를 정부에 로비하거나, 제도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일부 분파는 실제 정치에 참여하려 했고, 들은 바에 따르면 그중 몇몇은 오늘날 일정한 권력의 주변부까지 접근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체로 신반동주의는 분석적 운동이었으며,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종말론(doomerism) 정서를 내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비판이 아니다. 나 자신도 그러한 경향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멘시우스 몰드버그(Mencius Moldbug), 즉 오늘날 ‘대중적 지식인’이자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일종의 유명 인사로 추앙받는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이다. 그는 유명하게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되라, 그리고 세상이 너무 망가져서 지배 엘리트가 스스로 우리에게 권력을 넘겨줄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연관된 접근법으로, 그리고 가장 널리 퍼진 것은 ‘반(反)엘리트’의 형성이었다. 즉 기존 체제에 동조적이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엘리트 일반인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하여, “붕괴” 이후 권력을 이어받을 새로운 ‘그림자 지배계급’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였다.
... 대체 무슨 붕괴 말인가? 나를 위한 붕괴는 어디 있나? 우리의 모든 정부와 금융 시스템이 완전히 좆망해서, 모든 사람들, 특히 우리 친구들과 가족 중의 그 '일반인들(normies)'이 자신들이 얼마나 틀렸는지, 우리가 얼마나 옳았는지 깨닫고 마침내 우리에게 운영을 맡기게 되는 그 거대한 위기는 대체 어디 있는가? 씨발, 그렇게 되면 참 좋을 것이다, 안 그런가? 하지만 안 된다, 우린 좋은 걸 가질 수 없다. 우린 모두 15년 넘게 모든 게 얼마나 좆같은지에 대해 길게 토론해왔다. 15년은 긴 시간이다, 씨발. 상황이 계속 좆같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좆같아지는데도 사람들이 그냥 그걸 받아들인다는 게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만약 2010년에 누군가 우리에게 영국이 개판이 될 거라고, 명백히 노망난 80대 늙은이가 대통령이 되고 재선에 도전할 거라고, 일본이 쿠르드족과 인도 아대륙 놈들로 채워질 거라고, 그리고 중국 시골이 흑인 혼혈 아이들로 채워질 건데 거기서 애새끼를 낳는 여자들이라곤 '깜둥이 신부'들뿐이라서 그럴 거라고 말했다면, 뭐, 나는 그게 그럴싸하게 들린다고 말했을 거다. 하지만 씨발, 상황이 정말 좆같긴 하다.
하지만 그건 밧줄이 팽팽해지는 식의 나쁜 상황이 아니다. 1917년 러시아나 1789년 프랑스가 좆같았던 것 같은 그런 식의 나쁜 상황이 아니었단 말이다. 공기 중에 긴장감 따윈 없다. 전부 다 그냥 가짜고, 게이 같고, 병신같고, 갈색 피부 놈들 천지일 뿐이다. 에녹 파월(Enoch Powell)은 영국이 계속 제3세계 새끼들을 들여오면 '피의 강'이 흐를 것이라고 유명한 예측을 했다. 그리고 그게 그의 행동 촉구였다! 이제껏 살았던 마지막 위대한 영국인 중 한 명인 에녹 경을 내가 감히 디스하려는 건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웃길 정도로 오글거리고, 블루필(bluepill)적인 견해였다. "우리는 이민자들을 여기로 데려오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의 강이 흐를 것입니다." 정말? 그게 최악의 시나리오였다고? 아니, 실제로 일어난 일은 훨씬 더 끔찍하다. 피의 강 따윈 없다. 백인들은 그냥 그걸 받아들였고, 스스로 모든 것을 빼앗겼으며, 영국은 제3세계 국가로 쇠락했다. 한 친구가 말했듯이, 에녹은 피의 강을 예견했지만, 당신들이 얻은 건 진흙의 강뿐이었다. 그게 더 최악이다. 피의 강이 좋은 건 아니지만, 싸움이 끝난 후에는 재건할 수 있는 어느 정도 괜찮고, 깨끗한 나라를 얻게 되잖은가. 물론 우크라이나는 지금 끔찍한 상태지만, 전쟁이 끝나면 승자는 그곳을 버밍엄보다 더 멋지게 만들 것이다. 만약 에녹 경이 오늘날의 버밍엄을 본다면, 그는 영국에서 이미 인종 전쟁이 일어났었고, 단지 원주민들이 패배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니, 인종 전쟁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일어날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내가 이전에 쓴 「Conflict」란 글에서 말했듯이, 신반동주의는 민족주의자, 신정주의자, 그리고 기술가속주의자들의 느슨한 동맹이었다. 이 세 파벌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것들은 꽤 오래되고 안정적인 정치적 셸링 포인트(역주: Schelling point, 즉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는 초점)다. 인간 본성에 내재한 영속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산업 사회에서는 확실히 안정적인 균형 상태로 보인다. 한쪽에는 옛 종교적 농경 질서에 매달리는 사람들, 즉 신정주의자들이 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산업주의가 가능하게 한 더 대규모의 조직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합을 구축하며 그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은 세력, 즉 민족주의자들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의 민족주의적 지배 이데올로기가 행하는 온갖 타협에 실망하며 다음 변혁기를 준비하는 소수의 급진적 집단, 내가 예전에 ‘기술-공산주의자(techno-comms)’라고 불렀던 사람들—오늘날에는 ‘e/acc’(effective accelerationist. 효율적 가속주의자)이라 불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전통주의자와 가속주의자는 트위터에서 여전히 건재하며, 매우 잘 나가고 있다. 반면, 민족주의자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전직 파시스트 동조자로서 난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024년 현재 파시즘의 매력은 훨씬, 훨씬 줄어들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큰 하나는 우한폐렴이었다. 보다시피, 파시즘의 요점은 좋은 것들을 가지기 위해서는 집단 행동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겐 국민의 이익에 헌신하는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 야빈은 새로운 서브스택을 시작할 때 키케로의 문구인 "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이다(Salus populi suprema lex)“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성향을 일찍이 드러냈다. 물론 키케로가 파시스트는 아니었고, 야빈 역시 실제로 파시스트는 아니다. 파시즘의 큰 핵심은 국민을 입증 가능한 혈연적 유대를 가진 특정 민족 집단으로 좁게 정의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와 국민 간의 유대를 강화하여, 그들이 선한 집단 행동을 수행하겠다는 헌신을 증대시킨다. 이것은 중요하다. 매우 중요하다. 집단 행동은 좋을 수 있다, 물론이다. 지능적으로 수행된 집단 행동으로부터 많은 좋은 일들이 나올 수 있다.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열차를 정시에 운행하게 만들었다. 나치 독일은 끔찍했던 바이마르 경제를 회복시켰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비록 이념적 짐(황인종은 원래 그렇지 않으니까)은 덜할지라도, 사실상 모두 파시스트 국가와 다름없으며, 그곳들은 모두 깨끗하고, 안전하며, 건실한 경제를 가진 나라들이다. 파시즘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작동하도록 허용하면 실제로 효과가 있다. 강력한 정부는 꽤 멋질 수 있다.
그렇다면 강력한 정부가 왜 요즘 덜 매력적일까? 음, 우한폐렴 사태가 발생했었다. 그리고 우리 정부들은 이 사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정말이지 굉장히 강력했다. 그들은 강력한 법을 만들고 그것을 강제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 완전히 얼빠진 짓을 했다. 그들은 세계 경제를 파괴했고, 95%의 사람들을 18개월 동안 완전히 비참하게 만들었다. 어떤 곳에서는 길게는 3년까지도 이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동양에 호의적인 사람으로서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부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내 삶은 그 덕분에 꽤 안락했으니까. 하지만 베이비부머들, 건강염려증 환자들, 그리고 신경질적인 폐경기 여성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본 후, 나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부에 대해서는 완전히 질렸다. 그딴 것은 집어치우라. 나는 이제 강력한 정부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나는 2019년 11월에 운 좋게도 중국을 벗어났다. 정말 우연이었다. 그 후 나는 황금의 삼각지대(역주: Golden Triangle. 동남아시아에서 태국, 미얀마, 라오스 세 나라의 국경이 메콩강과 그 지류가 만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산악 지대. 과거에는 아편 생산에 최적화된 기후와 자연 조건 때문에 세계 최대의 아편 및 마약 생산지로 악명이 높았으며, 이로 인해 '황금의 삼각지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역으로 이주했고,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역병의사'의 기간 동안은 정글의 법칙이 훨씬, 훨씬 더 나았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유럽에서 몇 달을 보냈는데, 정말 처참했다. 정부들이 얼마나 얼빠졌는지 보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순응 수준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진성 파시스트의 입장에서 국민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본다고 상상해 보라. 이들이 같은 국민이라고? 같은 민족이라고? 내가 이딴 국민의 안녕을 위해 내 삶과 몸을 희생해야 한다고? 개소리 말라. 그들이 자업자득하도록 내버려 두라. 그들은 그들에게 닥쳐올 모든 것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끝없는 보말리(역주: Bomalis. 스팬드렐이 지어낸 용어로 ‘brown and black people’의 약어이다.)다. 나는 이제부터 보말리라는 용어를 수백만 명씩 유럽과 북미로 이주해 오는 갈색 피부 및 흑인 이민자들의 총칭으로 사용하겠다. 이것이 인터넷 파시즘이 시들해지는 두 번째 이유이다. '민족(Volk)'이 실재할 때 파시즘을 주장하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 주장하는 것은 다릅니다. 물론 모든 '민족'이 실재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고, 모든 국민국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인위적으로 건설되었지만, 기존의 혈연적 유대는 존재했고, 약 200년 동안 같은 정치 체제 내에 갇혀 지낸 후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실제로 꽤 뚜렷하고 균일해졌다. 아니면 적어도 20년 전까지는 그랬다. 확실히 민족적 다양성의 문턱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이 문턱을 넘어서면 한 국가는 더 이상 '실재하는 것'이기를 멈춘다. 나는 그 문턱이 이미 넘어섰다고 주장하고 싶다. 적어도 대부분의 서유럽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100% 토착 혈통을 가진) 토착민의 출산율은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60% 미만이다. 이민자들의 출산율이 현대의 가장 나쁜 특성들을 채택하면서 꽤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고무적인 징후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구의 브라질화는 더 이상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자, 그럼 브라질은 지옥일까? 아니, 괜찮은 나라다. 어떤 곳은 아주 좋기도 하다. 하지만 당신은 브라질에서 파시즘을 원하나? 브라질의 인구 통계를 가진 나라에서 강력한 정부를 원하나? 절대 아닐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가장 경박하고, 가장 병신같고, 가장 비효율적인 정부다. 왜냐하면 (평균적으로) 병신같은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권력을 잡는 필연적인 생물학적 레닌주의(Bioleninist) 정권이 최소한의 피해만을 입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서유럽이 문자 그대로 영원히 파키스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블랙필을 먹으려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럴 위험이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백인이 간신히 다수파에 불과하게 될 다가오는 세상에서 파시스트가 되는 것은 극도로 자폐적인 짓이다. 그것은 그저 나쁜 거래일 뿐이다. 자유지상주의자나 가속주의자가 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 아니면 전통주의자가 되는 것도 낫다. 즉, 당신의 가족을 더 넓은 '보말리 세계'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는 강력하고 폐쇄적인 종교 집단을 찾거나 혹은 만드는 것 말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그것(파시즘 등 극단적 이념)에 끌리지 않고(나는 그렇지 않다), 또한 스카이넷이 지구상의 삶을 장악하고 우리 모두가 합성 컴퓨팅 장치가 되는 것에도 딱히 열광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음, 그렇다면 어려운 문제이다. 몸담을 정치적 장소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건실히 살아갈 수는 있다. 나는 수년 동안 인터넷에서 나에게 다가와 무엇을 해야 할지 묻는 청년들에게 똑같이 말해왔다. 나는 항상 그들에게 정치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그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고 아이를 낳는 데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레딧 유저처럼 찌질한 구석 없이, 그냥 일론 머스크처럼 행동하는 것 말이다. 그가 하는 것을 그냥 따라 하라. 다만, 케타민은 조금 줄이고.
이 모든 추세들을 고려할 때, 나는 다시 한번 민족주의(ethno-nationalism)가 실행 가능한 정치적 기반으로서 쇠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신반동주의는 죽었다. 신반동주의자들이 민족주의자들의 지능 분포 곡선 상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가장 영리한 엘리트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세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항상 똑똑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머지 지지층은 당연히 반응이 더딜 수밖에 없으며, 아예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트럼피즘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우파 담론의 전반적인 하향 평준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트위터를 한다면, 리처드 하나니아(Richard Hanania)라는 사람을 봤을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리처드 스펜서(Richard Spencer) 류의 익명 파시스트이자 열혈 투사였다. 그러다가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는, 곧바로 실명을 드러내고 평범한 네오콘이 되어 국경 개방과 "우리의 가장 위대한 동맹국 이스라엘"에 대한 무한한 지지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여성 문제와 깜둥이 문제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점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의 콘텐츠의 80%는 최근 몇 년간 급증한 트럼피즘과 더 광범위한 인터넷 우익의 사기 행각을 비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제, 나는 하나니아의 노골적인 관심종자같은 짓에 대해 혐오감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며, 나는 그가 얹혀살고 있는 나라에 끝없는 보말리(Bomalis)를 조장하는 죄로 지옥에 떨어지기를 바란다. 자국민이 자신의 조국을 민족적으로 해체시키도록 조장하는 행위는 명백히 경멸받아 마땅하며, 최악의 반역 행위다. 그러나 비(非)토착민으로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훨씬 더 죄질이 나쁘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거주한 사람으로서, 나는 정말이지 그런 행태가 매우 불쾌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나라에 임시적으로 체류 중일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는 토착민을 존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차치하고, 하나니아가 우파 담론이 얼마나 병신같아졌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는 점은 흥미롭다. 그가 파시스트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려 애썼다가, 이제 모든 것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의 기괴한 우상화로 변질되고, 나머지는 전통주의적 집착 (예: 반(反)낙태 광신주의)과 가짜 남성주의 코인팔이의 이상한 잡동사니가 된 것을 보며 얼마나 격분했는지 알 수 있다. 수많은 트위터/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스테로이드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비결이 생고기, 생달걀을 먹고, 물론 자신들이 판매하는 브랜드의 보충제를 잔뜩 챙겨 먹기 때문이라고 지껄인다. 물론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탓해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정말이지 매우 슬프다. 그리고 이는 파시즘의 죽음이 우파 정치 담론에 가져온 공백의 직접적인 결과다. 똑똑한 사람들은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 보고 탈출하고, 남은 사람들은 더 병신같아지고, 이는 남아있던 똑똑한 사람들마저 밖으로 밀어내며, 결국 평균적인 지적 수준은 더욱 낮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 몇 년간 내 친척 중 일부가 이런 기이한 인터넷 우파의 사기 행각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을 직접 목격했다. 다행히 유럽에서는 (적어도 지금은) 훨씬 덜 심각하다. 그리고 여전히 가족 중에 좌파가 있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꽤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는 그곳에 공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우파코인팔이는 일시적인 것이다. 그것들은 그저 병든 육체에 기생하는 병원균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육체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며, 육체가 다시 건강해지면 자연스럽게 시들어서 사라질 것이다.
육체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 방법이 있을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 근본주의도, 로봇 숭배도 아닌, 우파 이념의 후계자가 들어설 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트위터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어빗(역주: Urbit. 커티스 야빈이 만든 분산 컴퓨팅 플랫폼.)에서, 혹은 바로 이 사이트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도 나와 함께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내 블로그에 다시 온 것을 환영한다. 이제,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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