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유전자와 민족집단의 면역반응

한민족은 타 민족 대비 유당 소화에 명백한 결함을 보인다. 이는 단순한 식습관의 차이가 아니라, 하드웨어 수준의 표식이다. 우리들은 양젖이나 소젖을 짜 마시던 유목민의 유전적 펌웨어를 물려받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첫 번째 모순이 발생한다. 한반도의 역사는 유목민에 의한 끊임없는 침입의 기록이며, 이는 상당한 수준의 DNA 교환을 전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인의 특성을 보면 유당 소화 능력이든 유목민 특유의 호방한 기질이든, 이 모든 '우월한' 형질은 모조리 퇴화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퇴화라기보다도 벼농사에 기반한 고밀도 정주 문명이라는 환경 압력 하에서의 최적화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환경이 운영체제(OS)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왕조를 거치며 한반도라는 새장 속에서 갇혀만 살았었던 굴욕을 겪었으며, 그리고 유목민적 환경보다 쌀농사를 짓는 정주형 민족으로 고착된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었다. 이 환경은 벼농사 문화권 특유의 폐쇄적인 면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했다.


동물의 젖은 초원의 산물이다. 쌀은 논의 산물이다. 한반도라는 환경은 유목민적 호방함 따위의 'R-전략'적 형질이 아니라, 좁은 땅에서 고밀도로 부대끼며 순응하고 복종하는 'K-전략'적 형질을 요구했다. 유당 소화 능력은 이 환경에서 생존에 아무런 이점을 주지 못했기에 자연적으로 도태, 즉 비활성화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목민의 DNA가 아니라, 그 DNA를 억누르고 정주민족의 형질을 우성으로 발현시킨 '쌀농사 문화권'이라는 강력한 소프트웨어다.


이러한 자연선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약 유목민의 혈통이 꾸준히 유입되고, 이들이 정착한 주된 환경이 논밭이 아닌 초원이었다면, 유목민적 기질이 우성으로 발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우리 한민족은 쌀농사에 종속되어 정주민족화되었다.


민족 기질의 개조에 있어 생물학적 유전은 문화적 유전자(meme), 즉 소프트웨어의 전파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한민족의 역사상, 그들의 운영체제는 같은 정주농경민족이자 고도로 발달한 관료주의적 밈을 수출한 중국 대륙의 한족(漢族)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밈적으로도, 한민족은 철저히 정주민족의 소프트웨어를 이식받은 것이다.


만약 서구 해양 세력의 밈(meme)이 더 일찍 유입되었다면, 기질이 조금은 더 '쿨'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무의미한 가정이다. 우리가 아는 한민족의 국민성은 이미 정주민족으로서 완성되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이 문화적 유전자, 즉 소프트웨어에 의해 절대적으로 지배당하는 존재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청(淸)의 역사가 250년이나 되는데, 왜 한민족은 그 (유목민 기원의 주변국) 청나라 밈을 체화하지 못했는가?". 일본 제국의 밈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증명하듯 일정 부분 체화되었는데 말이다. (물론, 그들이 일본 제국을 '탈피'했다고 주장하는 그 문화적 밈은, 사실상 억압된 기질의 재발현일 뿐이다).


답은 간단하다. 청나라의 밈보다 나머지 중화 왕조(정주민족)의 밈의 감염성이 한민족에 한해서는 더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미 한반도의 소프트웨어는 더 오래되고 강력한 '유교-한족' 밈에 의해 완전히 감염된 상태였다. 거기다가 유목민족이라도 특정 지역에 눌러붙으면 그들 역시 반쯤 정주민족화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청은 타 왕조보다 더 개방적이지 않았나?"라고 반문하겠지만, 이미 한반도의 기질은 청의 밈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늦었다. 명청교체기에 '북벌론'이니 '소중화(小中華) 사상'이니 하는 이데올로기적 방화벽을 치며 '오랑캐'의 밈을 병적으로 거부했던 것이 바로 조선왕조였다. 다시 말해 이미 설치된 프로그램이 새로운 프로그램과 충돌해서 새로 설치하려는 프로그램이 오류가 발생한 셈이다. 한민족은 실리(實利) 대신 밈적 순수성(?)을 택했고,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혹자는 "자기들을 심적으로 만족을 시켜주지 않는 밈은 내치는 느낌"이라거나, "일본 제국의 체화는 박정희·전두환이 억지로 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해양제국(일본/서구)의 밈을 체화한 역사는, 수백~수천 년간 누적된 정주민족의 밈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짧다.


이제 이 시스템의 핵심 작동 방식, 즉 '면역반응'에 대해 논해야 한다.


20세기에 들어 한반도는 서구 및 일본이라는 '해양 세력'의 밈 과 강제로 조우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정주민족 밈과는 이질적인,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돌연변이'들이 출현한다. 굳이 따지자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이 그 예에 속한다.


이 돌연변이는 개인 단위에서 해양제국의 밈을 성공적으로 이식한 특출난 소수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반도 공동체 전체로 볼 때 내집단의 일원이라기보단 외집단의 일원에 더 가깝게 인식된다. 그리고 돌연변이는, 압도적인 환경과 운의 보정이 없는 한, 비(非)돌연변이 다수의 뭇매, 즉 면역반응에 의해 강제로 배척당한다. 


물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들은 권력자의 자리까지 오른 희귀한 돌연변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식하려 한 새로운 밈을 전국민에게 '복사-붙여넣기'하기엔, 그들의 통치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이 돌연변이들이 죽자마자, 시스템은 즉각 기본값으로 복귀했다. 우리 한민족은 늘 하던 대로 대륙식 마인드대로 '우가우가'하며 살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네이션(nation) 집단('부족(tribe)'이라는 표현이 더 괜찮을지도 모르겠다)은 이 '돌연변이'를 외집단 보듯 경계한다. 설령 그 돌연변이가 내집단에 유리한 형질을 가졌더라도, 시스템(공동체)은 이를 외부 세균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 돌연변이들을 지지고 볶기 위한 일종의 면역반응이 즉각 작동한다.


이것이 바로 특출난 개인, 즉 돌연변이들이 주도한 모든 개혁이 엎어지게 된 이유다. "아니, 다른 서구권 국가들은 돌연변이의 성공에 호응하지 않았나?". 물론이다. 하지만 그곳은 한반도가 아니다.


한반도에서는, 이 돌연변이에 대한 면역반응이 너무나도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했을 뿐이다.


p.s. 이 링크의 글의 본문과 댓글을 참고하여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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