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티스톤, 허무주의와 블랙필

허무주의와 블랙필


2016년 5월 2일 스마티스톤(smartistone) 작성


브렛 스티븐스(Brett Stevens)말콤 폴락(Malcolm Pollack)은 허무주의와, 통상적인 ‘블루필/레드필’ 이분법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블랙필’ 은유를 논의한다.


‘블루필’은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레드필’은 자유주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처음 두 가지 색은 ‘좌파’든 ‘우파’든,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행동주의를 포함한다.


‘블랙필’은 체제의 붕괴나 병폐를 인식하지만, 변화가 불가능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입장은 행동주의를 거부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논의하듯, ‘허무주의(nihilism)’는 부적절한 단어일 수 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숙명론(fatalism)이나 결정론(determinism)일 것이다. 도덕적 허무주의자는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실존적 허무주의자는 삶이나 존재 자체에 목적이 없다고 믿는다. 반면 숙명론자는 자신만의 핵심적 가치 체계를 가질 수 있지만, 변화가 불가능함을 인정한다. 허무주의자는 그러한 가치조차 갖지 않을 수 있다. 이 블로그에서는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을 자세히 논의하는데, 이는 자유의지나 경제적 발전 혹은 사회적 이동성이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제한된다는 생각이다. 반동주의자들(헤스티아 협회(Hestia Society)의 표어에 따르면)은 그러나 “유일한 도덕은 문명이다”라고 믿으며, 이는 반(反)허무주의적 입장이다. 또한 신반동주의(NRx)는 기독교를 수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니체(Nietzsche)에 따르면 기독교는 사람에게 내재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허무주의적일 수 없다.


니체는 자신의 노트에 수록된 「유럽의 허무주의」라는 장에서, 그의 저작 전반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기독교를 허무주의 문제의 맥락에서 깊이 있게 논의한다. 그는 여기서 기독교의 도덕 교리가 인간에게 내재적 가치를 부여하고, 세상의 악을 정당화하는 신에 대한 믿음을 제공하며, 객관적 지식의 근거를 마련해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객관적 지식이 가능한 세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원초적 형태의 허무주의, 즉 무의미함의 절망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기독교 교리의 ‘진실성에 대한 추구’가 결국 그 자체의 붕괴를 초래한다. 진리를 향한 그 열망 속에서, 기독교는 결국 자신이 하나의 구성물에 불과함을 발견하게 되고, 그 결과 스스로 해체된다. 그래서 니체는 우리가 기독교를 ‘너무 멀리 떠났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극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기독교의 자기 해체는 또 다른 형태의 허무주의를 구성한다. 기독교가 유일한 ‘해석’으로서 자신을 절대화했던 해석이었기 때문에, 니체는 이 해체가 단순한 회의주의를 넘어 모든 의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나는 허무주의자는 아니지만, 인간이 고유하게 높은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1], 모든 사람이 ‘신의 눈에는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믿음, 혹은 종교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이 일부에게는 작동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에게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나는 기독교(및 대부분의 종교)가 제시하는 구원론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여러 차례 논의했듯, 종교적 구원은 ‘진입 장벽’이 매우 낮지만, 지성을 통한 구원은 훨씬 더 어렵고 선택적이며, 개별적으로 측정 가능한 성취를 요구한다. 그러나 경제와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지적 구원이 훨씬 더 만족스럽고 현실적이다. ‘하나님의 자녀’라거나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자기 확언은 월급을 만들어주지 않으며, 당신을 중요한 경제적 생산자로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인간의 가치는 단지 존재함으로써가 아니라, 업적과 공로를 통해서 생겨난다.


아마도 허무주의란 세상을 적극적으로 바꾸려 하거나 어떤 ‘집단’에 속하려 애쓰는 것보다, 냉담하고 초연한 태도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1] 아마도 IQ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게’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더 똑똑한 사람들은 경제적 가치를 더 많이 창출하고 사회를 더 발전시킬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덜 지적인 사람들보다 더 큰 내재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원문 링크: https://greyenlightenment.com/2016/05/02/nihilism-and-the-black-p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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