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가 증오를 낳는다는 말은 본질을 궤뚫은 말

결국 우리 인류가 살아오면서 타인/타 부족에 대한 증오를 어느 정도 가지며 살아온 것이 증오가 현저히 적거나 없는 사람보다 더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증오의 연쇄 속에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 혹은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해를 입힌 타인 혹은 타인의 공동체에 대해서 증오심을 갖고 또 복수를 하는 것이 자기 공동체에 해를 끼친 개인이나 집단에게 용서를 하고 굴종하는 것보다 더 생존에 유리했을 거라 이런 얘기.

자신들로부터 적대적인 타 집단들로부터의 적절한 증오심은 단순한 스트레스로만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타 집단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단련하는 데 있어서의 동인이 되었을 거라 이런 얘기.

그리고 그러한 단련을 통해 강해진 뒤, 자신들 공동체를 해쳤던 타 공동체에게 복수를 함으로써 타 공동체와의 생존 경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기에 증오심이란 감정이 살아남은 것.

사랑, 존중, 배려, 공경은 같은 집단 내에서는 좋은 가치이나 적대적인 타 집단에 있어서는 분노와 증오심에 비해 크나큰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우니.

결국 사람은 증오하기 위해 살아간다기보다는 살아남다보니까 때때로 증오를 하기도 하더라 이렇게 생각.

증오를 안 하고 서로서로 더불어 살아갈 순 없느냐고?

글쎄...

인류가 여전히 한정된 자원을 놓고 의식주를 마련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상,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멈추지 않을거라서 증오 역시 없어질 순 없는 노릇.

설령 분노와 같은 감정이 희미해진다고 해봤자, 화나지 않은 몸짓과 표정으로 타 개인/집단을 약탈 및 강간 및 학살하는 더더욱 기괴한 모습 밖에 더 되겠나.

다른 이들에게 증오를 멈추라는 구호를 외치고, 서로 증오를 품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는 목적을 세워봤자 의미없다.

결국 만물은 무언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바뀌기보다는 이래저래 바뀌다보니까 이러저러한 결과로 바뀔 뿐이고 그 바뀐 결과가 무언가 쓸모있으면 살아남는 것이고, 쓸모없으면 버려지는 것.

무엇보다도 그동안 우리 인류가 나름대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이용되는 동인인 '증오를 없애자는 증오'는 결국 증오를 증오하는 증오라는 메타-증오 아니던가?

증오를 증오하자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정말로 전 인류의 공의를 위해서 메타-증오를 하는 것일까?

나는 앞서 인간의 증오란 우리에게 적대적인 집단에 맞서기 위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적었다.

결국 증오를 멈추라고 하는 이들은 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타 집단을 보고 증오를 하는 것인데 이들은 대놓고 타 집단을 증오한다고 말할 용기는 없으니 교묘하게 자기네들은 증오를 싫어한다고 위장하는 것.

무엇보다도 꼭 이상하게도 증오를 멈추란 이들은 사회 전체의 장기지속성을 해치는 방향을 해결책을 내세운단 것.

이 메타-증오를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한 사회의 장기지속성 자체가 혐오스러운 대상인 것일까?

증오를 증오한다는 이들이 한 사회의 장기지속성을 바라지 않고 사회의 단기간 내 파괴를 원한다면...이 세상에 있어 더더욱 증오의 연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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