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랜드, 그논 신앙(The Cult Of Gnon)
그논 신앙(The Cult Of Gnon)
2013년 5월 30일 / 닉 랜드
‘바벨에서 살아남기(Surviving Babel)‘에서 영감을 받아, ’우주의 중재자(The Arbiter of the Universe)‘는 질문한다. "누가 반동을 대변하는가?"
닉 B. 스티브스가 답한다. "자연… 혹은 자연의 신… 아니면 둘 다." (짐이 간결하게 논평한다.)
"자연 혹은 자연의 신(Nature or Nature’s God)"은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미묘하게 변형되어) 추출된, 탁월함이 돋보이는 표현이다. 스티브스에게 이것은 일종의 만트라인데, 왜냐하면 이 표현이 없었다면 먼저 끝없는 논쟁을 결론지어야만 했을 맥락에서도 중요한 것들을 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이 표현은 신학적 논쟁에 방해받지 않고 자연법에 대한 합의적 수용을 가능하게 한다. 현실이 지배한다는 동의가 종교적 차이가 해소될 때까지 미뤄질 필요는 없다 (그리고 지연의 회피는, 긍정적으로 파악되면, 추진력이다).
"자연 혹은 자연의 신"은 진술이 아니라, 용인된 불확실성에 의해 내적으로 분열된 하나의 이름이다. 이것은 고유명사의 단일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유보된 결정을 괄호 안에 넣는다 (피론적 에포케(Pyrrhonian epoche), 이에 대해서는 향후 포스트에서 훨씬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이것은 엄밀하게 지시하되 불분명하게 지시하는데, 왜냐하면 인식론적 어둠 속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 정체성을 '갖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체성을 전형적으로 구현하는 하나의 현실을 명명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를 위해서' 범주적 동일시를 회피한다. 그것이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에 대한 (혹은 그 얼굴 없음에 대한) 물음 앞에서 인내하며, '우리'는 하나의 협약으로부터 출현한다, 하나의 기본 조건과 함께: 예비적 결정은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로써 이것은 미지의 것에 의해 융합된, 선별된 언어 공동체를 합성해낸다.
만약 ‘우주의 중재자(The Arbiter of the Universe)’가 약어("TAofU")로 불릴 자격이 있다면, 자연 혹은 자연의 신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이유가 있다. 추진력은 어색함을 벗어나게 하고, 단일성은 그 호출을 압축한다. NoNG, Nong, No — 분명히, 안 된다. 이 표현들은 NoNGod(신없음)으로 기울어져 하나의 결정을 촉발시킨다. '자연의 신 혹은 (아마도 단순히) 자연'은 그논(Gnon)이며, 그의 이름은 알 수 없음의 심연(에포케)으로, 현실의 수용 속에서 필연적으로 용인된다.
그논은 현실 그 자체이며, 그 외에 무엇을 믿든 상관없다. 지금 지연 없이 유보되는 것은 무엇이든 그논이다. 현실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아직 결정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 그논이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논은 그를 부르는 별명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논은 그 '아님'이 무엇이든 그것을 지시한다. 그논은 광대한 단절이자, 그 건넘이다. 그논은 위대한 추진자이다.
스피노자적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은 하나의 결정(동등성의 결정)이므로, 그논을 기술하지 못한다. 그논의 내부적 '혹은'은 등치가 아니라 유보이다. 그것은 신이나 자연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며, 오직 현실이 지배한다는 것만을 말할 뿐이다.
하이데거는 '신'이 존재의 물음에 대한 철학적으로 만족스러운 응답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그논을 언뜻 엿보는 데 가까이 다가간다. 하이데거의 주된 유산이 우리가 아직 존재의 물음을 어떻게 정식화해야 할지 모른다는 인정이므로, 이 통찰은 제한적인 침투력만을 달성한다. 그러나 그것이 포착하는 것은 그논의 철학적 친연성으로, 그논의 하품은 신앙과 불신앙을 넘어선 사유의 공간이다. 신도 비-신도, 그논의 은폐된 심연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한, 근본적인 존재론적 정보를 추가하지 못한다.
암흑 계몽주의는 아직 근본적인 존재론적 비의(秘義)에 크게 몰두하고 있지 않다 (비록 결국에는 그렇게 될 것이지만). 급진적 실재론을 넘어서, 그논의 두려운 의례들 속에서의 그것의 교감은 두 가지 주도적 주제에 묶여 있다. 인지적 비-강제(non-coercion), 그리고 역사의 구조. 이 주제들은 서로 반발하는데, 정확히 그것들이 너무나 긴밀하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지적 자유는 세속적 계몽주의의 횃불이었던 반면, 신의 섭리는 전통의 관점을 조직해왔다. 둘 중 어느 하나를 생각하면서 다른 하나에 대해 암묵적으로 언급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심층에서 그것들은 화해될 수 없다. 만약 정신이 자유롭다면, 운명이란 있을 수 없다. 만약 역사에 계획이 있다면, 인지적 독립은 환상이다. 어떤 해결책도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그논 안에서를 제외하고는.
[이 염소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없이도 편하게 계속 주문을 외워도 됩니다]
추가: Anomaly UK의 연관된 생각들.
원문 링크: https://archive.md/kDY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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