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수는 늘 멍청해지는가? (귀스타브 르 봉 '군중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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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수는 늘 멍청해지는가? (귀스타브 르 봉 '군중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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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대중이 강력한 힘을 갖는 사회입니다. 역사책을 보면 과거의 역사는 주로 엘리트 계급 위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어떤 왕이 전쟁을 벌였다. 어떤 귀족 집단이 정권을 획득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아마 과거에는 정보가 제한적이고 사람들이 결집할 통신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힘을 가진 사람들이 위에서부터 결정을 내리면 사회가 그대로 흘러가기 쉬웠을 겁니다.
반면 현대 사회에서는 군중이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투표를 통해 통치자가 결정되고 여론은 사회를 움직이는 결정적 힘이죠. 물론 지금도 알게 모르게 엘리트 세력은 사회를 장악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군중이 과거보다 더 많은 목소리를 내고 사회에 많은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1800년대 후반 프랑스의 의사, 심리학자, 물리학자였던 귀스타브 르봉은 군중 심리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기서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쟁 같은 주요 정치 사건은 군주들끼리 일으키는 사건이었는데 이제는 군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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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들에게 적극적으로 요구 사항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군중의 영향력이 막강해진만큼 군중의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봤는데요. 르봉은 10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봐도 인상깊은 날카로운 분석을 많이 제시했습니다. 오늘 영상에서는 군중 심리에 나온 핵심 주장을 저의 해석과 함께 알기 쉽게 전달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르봉의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군중은 개인과 다른 심리적 특성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이건 얼핏 보기에 당연한 소리 같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결코 당연하지 않습니다. 군중은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인들이 모이면 전체는 이상하게도 개인들의 성질을 상당히 많이 잃어버리게 된다는 거예요. 마치 몸이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세포와는 상당히 다른 성질을 갖게 되는 것처럼요.
르봉의 생각에 개인은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무엇이 합리적인지 판단하고 논리적 추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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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계산을 통해 감정을 통제할 수 있죠.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개인은 제한적으로라도 이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르봉은 군중의 경우 바로 이 이성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원인을 제시했는데요.
첫째는 집단의 힘입니다. 인간은 의식 이면에 깊은 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으로 드러나는 생각이나 감정은 정신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그 안에 엄청난 깊이의 미지의 에너지가 자리하고 있죠. 특히 이 무의식은 동물성과 큰 관련을 맺고 있을 겁니다.
현대 뇌과학의 시각에서 보면 이성과 주로 관련된 뇌의 가장 바깥쪽에 자리한 신피질은 가장 나중에 발전한 부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안쪽의 변연계는 훨씬 더 오래된 진화적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 부위는 공포, 분노, 즐거움 같은 기본적 정서와 식욕이나 성욕 같은 생존 본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자극적인 상황, 위험한 상황 등에 처하게 되면 신피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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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계가 더욱 빠르게 반응합니다. 평상시 이성을 통해 동물적 충동을 잘 억제하던 사람이라도 급박한 상황이 되면 동물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는 이유죠.
그런데 르봉은 군중의 경우 다수가 모이면서 개인을 한참 뛰어넘는 힘을 갖게 됐기 때문에 개인 단위에서 작동하던 이성이 멈추고 동물적 본성이 압도적 힘을 갖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평소 개인들은 나는 딱 여기까지야. 이 정도 선을 지키고 행동해야 돼. 이런 이성적인 사리 판단의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군중은 이 한계선을 넘을 수 있는 집단의 힘을 갖다 보니 고삐가 풀리는 겁니다.
군중은 마치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느끼고 장애물이 있으면 무작정 제거하려 하며 그게 뜻대로 안 되면 아이처럼 때를 쓰게 됩니다. 공격성과 생존 본능, 쾌락을 쫓으려는 본성 같은 동물적인 에너지가 행동에 주된 원천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군중은 흑백 논리를 따릅니다. 우리의 동물적 본성은 세계를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나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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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원시적 환경에서 우리 조상들은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저 사람은 착할까? 나쁠까? 한참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내 편인가 아니면 적인가를 구별하고 바로 행동에 나서는 것이 치명적인 위험을 줄이는 방편이었을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동물적 본성이 지배하는 군중의 심리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견해가 옳은가, 그른가 정의로운가 부정의스러운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려 합니다. 이성을 가진 개인처럼 여러 근거와 장단점을 저울질하며 판단을 유보하는 과정은 군중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군중에게는 전염이라는 힘이 작동합니다. 르봉이 말하는 전염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복사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고대부터 이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남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남을 따라하고 남의 견해에 영향을 받습니다. 아마 이는 사회적 동물로서 무리 안에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해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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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큰 관련을 맺고 있을 겁니다.
르봉은 개인은 혼자 있을 때는 자신 고유의 관점에서 판단을 하다가도 군중을 이루면 주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받으면서 결코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키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군중은 분명히 단체 행동을 합니다. 어떤 간식이 유행이다 하면 군중은 단체로 그 간식을 파는 곳에 가서 줄을 서죠. 그런데 과연 이런 군중의 행동은 누구의 판단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인가라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군중은 숙고 끝에 판단을 내린 게 아니라 그저 누군가가 가서 줄을 서니까 나도 줄을 서고 그걸 보고 또 누군가가 줄을 서고 이런 식으로 전염의 연쇄에 의해 단체 행동을 하게 된 것일 뿐이거든요.
이 전염이 군중 행동의 기본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군중의 심리에 대해서는 개인의 심리에서처럼 판단을 내리고 그것에 따라 행동한다라는 도식을 세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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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군중은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이끌리는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셋째로 군중은 암시에 취약합니다. 르봉이 말하는 암시는 사람들을 마치 최면에 걸리는 것처럼 특정한 심리 상태로 이끄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서 군중은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특정한 메시지를 주입받으면 처음에는 그 생각을 지지하지 않다가도 어느새 그 생각을 지지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전염을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인 원리 중 하나가 바로 암시입니다. 누군가가 어떤 견해를 강력하게 표출하면 주변 사람들은 나도 모르게 그 방향대로 변화하게 되는 거죠.
르봉은 역사상 모든 강력한 지도자들은 암시의 위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암시는 과연 왜 일어나는 걸까요? 여기에 대해서 르봉은 군중은 항상 뭔가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암시에 쉽게 넘어간다라고 주장합니다. 이 설명이 다소 불충분한데요. 제가 해석하기에는 이 주장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군중은 개인의 이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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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방향성을 상실한 존재입니다. 나는 이런 존재이며 이런 목표를 추구한다라는 명확한 의식이 없이 불특정하게 들끓고 있는 에너지를 가진 존재라는 거죠. 그래서 누구 한 명이 나서서 물꼬를 터주면 봇물 터지듯이 그쪽으로 에너지가 확 분출됩니다.
군중은 무언가를 원하고는 있으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깨닫지는 못합니다. 이건 우리의 일상을 생각해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끔씩 뭔가는 하고 싶은데 도무지 뭘 해야 만족스러울지는 모르겠어서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 군중은 애초에 개인의 통일성이 제거된 존재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렇게 방향성을 상실한 상태에 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때 어떤 강력한 인물이나 세력이 나타나서 이게 좋은 거고 이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이고 이게 우리가 돈과 시간을 바쳐야 할 대상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하면 어딘가로든 향해야 하는 에너지가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거죠. 이건 마치 현대 금융 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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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는 일과 유사합니다. 사회에 풀린 돈, 유동성이 넘쳐나면 어디론가는 그 유동성이 향해야 합니다. 그때 어떤 사소한 사건으로 하나의 섹터가 주목받게 되면 광적으로 그쪽에 자금이 집중되죠. 사회의 수많은 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하라고 제시해 주면 사람들은 그것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결집의 힘, 전염, 암시를 통해 개인과는 상당히 다른 성질을 갖게 된 군중은 보수성이라는 흥미로운 특징을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눕니다. 하지만 르봉이 생각하기에 군중은 언제나 보수적일 뿐입니다. 르봉이 말하는 보수성의 의미는 전통적인 신념과 가치관을 고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군중의 무의식은 오랜 시간 쌓여온 전통에 의해 구성된 면이 상당히 큽니다. 예를 들어서 유럽의 군중은 천년 동안 지속된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깊이 간직하고 있죠.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군중의 특징은 의식이 제거되고 무의식에 의해 움직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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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군중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늘 먼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통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르봉은 군중의 혁명은 항상 일시적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방향성을 추구하고 기존 질서를 뒤엎는 것 같다가도 막상 질서가 없는 새로운 상태에 이르면 곧 과거의 질서를 그리워하고 다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르봉은 사회주의처럼 제도나 정부 구조를 급진적으로 바꿔서 사회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소용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차피 사람들의 뿌리깊은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고 그게 바뀌지 않은 채로 형식적인 변화만 일어나는 건 괜한 혼란만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또한 군중은 강력한 지도자를 좋아한다는 특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동물적 본성은 약한 지도자를 깔보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지도자는 설령 압제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도 많은 군중의 지지를 받습니다. 그런 확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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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점으로부터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의 에너지를 표출할 방향성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성들을 고려해 르봉은 군중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도자들이 갖추는 기술을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확언입니다. 이성적인 사람은 확언을 피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견해가 확실하지 않고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그런데 르봉은 이런 사람은 군중에게 영향력을 획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군중은 어차피 이성적 사고의 능력이 제한적이고 흑백 논리를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중은 옳다. 그르다. 이렇게 될 것이다. 아니다를 명확히 말해 주는 사람들에게 가장 강한 지지를 보냅니다. 이도저도 아닌 중간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저 유약한 사람으로 무시받을 뿐입니다.
둘째로 반복도 중요한 전략입니다. 확언을 반복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면서 집요하게 암시를 해야 합니다. 반복적인 암시를 받다 보면 사람들은 모방 본능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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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셋째로 단순화가 있습니다. 군중에게는 가급적이면 모든 것을 단순화해서 전달해야 합니다. 인간은 모방 본능을 발휘할 때 자연스럽게 모방하기 쉬운 것을 선호합니다. 모방하기 어려운 것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모방될 수가 없고 그만큼 군중 안에서 전염력을 얻기에 불리합니다. 르봉은 바로 이런 이유로 복잡한 사상과 철학은 현실 세계에서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으로 힘을 얻으려면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쉽게 따라하고 전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화돼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상은 그 과정에서 주요 내용이 다 생략되고 껍데기만 남아 버리죠.
마지막으로 이미지화도 핵심 전략 중 하나입니다. 이미지화도 일종의 단순화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메시지를 객관적인 논리와 언어, 통계 수치 등을 통해 제공하는 게 아니라 한 눈에 보일 수 있는 느낌으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르봉은 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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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 군중은 파리에서 독감에 걸려 5만 명이 죽어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지만 에펠탑이 무너져 500명이 죽으면 아주 큰 관심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에펠탑 붕괴라는 사건의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하고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르봉은 부수적 해석이 필요 없는 단순화된 이미지, 경이롭거나 신비로워서 논리적 설명을 뛰어넘는 느낌을 주는 이미지가 군중의 관심을 끄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설명이 시도되고 꼬치꼬치 따지는 과정이 생기는 순간 그 대상은 군중을 상대로 권위를 잃어버립니다.
군중에게 권위란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려면 근거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근거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대중이 선호하는 대상은 반복적인 암시를 통해 단순하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주입받으면서 아무런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그냥 지지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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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입니다. 이런 대상은 웬만한 환난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이비 종교 지도자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신도들이 그 지도자를 왜 지지하냐? 거기에는 이성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그 사람을 논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상황이 생겨도 지지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르봉은 전통이란 게 기본적으로 이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랜 시간 계속 주입되어 왔기 때문에 모두가 당연한 듯이 지지하는 핵심 가치관과 규칙인 것이죠.
제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교육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르봉은 군중 심리가 형성되는 데에는 교육이 큰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육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람들의 기본 사고와 생활 방식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르봉이 당대의 교육을 비판한 것을 보면 그 내용이 정말 놀랍습니다. 그는 당대 프랑스 공화국 학생들에게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 용기를 가르치지 않고 그저 암기 위주의 학습을 시키면서 수동적인 학생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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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했습니다. 학생들은 반복되는 시험에 익숙해지며 그저 자격증을 따서 취업을 하려고만 하고 자신이 직접 생산적인 일을 기획해서 만들어 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르봉은 이게 무기력하고 무질서한 군중이 생겨나는 결과를 낳는다고 봤습니다.
그의 말을 한번 직접 살펴보죠. 사회 계층 사다리의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말단 서기에서 대학 교수와 도지사에 이르기까지 자격증을 가진 엄청난 수가 일자리를 구하려고 몰려든다. 기업가는 식민지에 파견할 직원을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지만 말단 공무원 자리에는 지원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 교원 자격증이 있어도 발령받지 못한 예비 교사가 전국에 2만 명에 달하지만 그들은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며 생계를 책임져달라고 국가에 요구한다. 채용 인원은 정해져 있기에 불평 불만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은 지도자가 누구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어떤 혁명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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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은 자신의 운명에 불만을 품고 언제라도 반란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는 프롤레타리아가 사회 계층 맨 아래쪽에 형성되도록 만든다.
즉 르봉은 당대 교육이 사람들의 주도성, 창의성, 용기를 말살함으로써 개인이 그저 사회에 의존하는 삶을 살도록 만들고 결국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불만이 쌓여서 정부를 전복하자는 자극적인 선동에 쉽게 넘어가게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르봉은 노동자 계층에 대해서만 우려를 표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대의 교육이 우유부단한 엘리트 계층을 양성한다고 봤습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본 적이 없고 그저 지식을 수동적으로 배우기만 한 엘리트층은 정작 사회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하게 됐을 때 제대로 된 행동력과 판단력을 보이지 못하게 된다는 거였죠.
이 1800년대 후반 프랑스 교육에 대한 묘사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모두가 시험과 자격증에만 매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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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교육은 어디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아마 이런 현실이 지속되면 당대 사회가 거대한 전쟁과 혼란으로 빠졌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아마 점차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겁니다.
르봉은 당대의 교육을 비판만 했던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미국식 교육이 프랑스의 교육보다 더 우수하다고 봤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지식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많은 학생들이 어린 나이부터 직업 현장으로 가서 직접 일을 하면서 배웠습니다. 필요한 지식을 각 현장에서 알아서 가르쳤고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질문을 하고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자신이 탐구한 이론을 바로 일에 적용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이미 20대 초반의 나이에 한 분야의 숙련된 일꾼이 되고 20대 중반쯤이면 유능한 관리자가 되는 일도 종종 나왔다고 르봉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너무 많은 학생들이 나중에 써먹지도 않을 지식을 외우느라 젊은 시기를 죄다 낭비하고 있었고요. 르봉은 당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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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교육이 정부에 의해 모든 학생들이 일괄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각자가 필요에 따라 교육을 받는다는 점에서 훨씬 더 민주적이면서도 개인의 잠재성과 주체성을 존중하는 교육 방식이었다고 봤습니다.
이런 르봉의 견해가 무조건적으로 옳은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타당한 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한국 교육을 봐도 너무 많은 학생들이 똑같이 표준화된 교육을 받으면서 정작 자신 고유의 잠재성을 펼쳐 볼 기회는 거의 부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네. 지금까지 군중 심리에 대한 르봉의 분석을 살펴봤는데요. 오늘 영상에서 말씀드린 내용만 보면 르봉은 군중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르봉은 군중이 때로는 그 어떤 개인도 이루지 못할 놀라운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군중은 근거 없이도 특정 방향을 지지하는 맹목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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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애물도 없애 버리려고 하는 과격한 면모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만약 방향만 잘 설정되면 엄청나게 긍정적인 변화, 그 누구도 쉽게 이루지 못할 아주 어렵고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르봉은 인류의 거의 모든 위대한 일은 이런 군중의 힘이 없었다면 성취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다만 그가 현대 사회의 변화상과 관련해 우려했던 점은 현대에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떠다니게 되어서 군중이 하나의 긍정적 방향성을 갖고 결집하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렵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는 1800년대 들어 여론 매체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너무 많은 매체들이 각각 상반된 견해를 늘어 놓는데 그걸 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떤 견해가 옳은 것인지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견해가 좀 힘을 얻으려고 해도 그 사이 너무 많은 다른 견해들이 나오기 때문에 금방 힘을 잃고 흩어져 버리고요.
또한 르봉은 현대 언론은 더 이상 양질의 의견을 내놓는 기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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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단순한 정보 전달자로 전락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돈을 벌려면 그냥 그때그때 변화하는 현상에 대해 논해야 하기 때문에 언론은 더 이상 오랫동안 힘을 발휘하는 신념을 제시하지는 못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런 비판 역시 요즘의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요즘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알고리즘의 발달로 각 의견을 가진 군중이 각자의 신념을 갖고 결집해 사회에 여러 파벌을 만들어 내게 됐다는 건데요. 이런 여러 파벌의 형성은 한편으로는 사회의 다양성 증가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전혀 이성적으로 소통이 안 되는 여러 군중이 생긴 것이고 이는 국가가 위기를 극복해야 할 상황이 됐을 때 무력함과 우유부단함 분열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겁니다.
끝으로 제가 궁금한 것은 과연 군중은 르봉이 평가한 대로 정말 비이성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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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의 군중들 사이에 이성적 의사 소통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겉만 번지르르 하고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무언가 이성 이외에 다른 연결의 방책을 생각해 내고 구현해내는 사람이 새 시대의 새로운 영웅이 될 겁니다.
혹은 르봉이 틀려서 군중은 충분한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일 수도 있죠.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바라보시는 군중의 본성은 어떤가요? 댓글로 반응의 의견 남겨 주시면 함께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영상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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